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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 & 경남지사라는 자리에까지 오른 극적인 경력의 소유자로, 참여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인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구는 경기도 김포시 갑 지역이며 소속 정당은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친노성향의 정치인인데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생긴 앙금으로 인하여 문재인 대통령과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2017년 19대 대선 때 문재인 대선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고,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기도 했다.




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만 36세로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선거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연소 기록이 깨지지 않는 중이다. 이어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여 재선 남해군수를 지냈다.





남해군수 재임 시절인 1998년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 무소속에 젊은 나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군수로 당선된 그의 이력이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 방송으로 그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민선 2기 남해군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상태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났고 결국 17%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의 김혁규가 넘사벽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당시 김혁규는 무려 74% 이상의 득표율로 김두관을 개박살냈다.

이후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문재인 당대표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당시 장관직 수행평가에서 1위를 여러차례 차지할 만큼 장관직 수행을 잘 했다고.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그의 장관직 수행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었으며, 한총련이 미군기지에 침투하여 불법시위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결국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거부하고 그의 장관직을 지킬 것이라고 했으나, 계속 논란이 되자 그는 스스로 사의를 제출하면서 결국 장관직에서 퇴임하였다. 


사실, 그동안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경우는 여야를 불문하고 스스로 사임해야되는 것이 관례다. 승복하지 않으면 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셈이 되었으나, 민주당계에서는 그는 한나라당의 딴지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라는 시각이 강해지면서 차츰 민주당계에서는 떠오르는 정치인으로 올라섰고, 열린우리당이 생기자 바로 합류했다. 


그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남해군-하동군 지역구로 출마하였고, 당시 탄핵 논란으로 열린우리당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평이 있어 어느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에서도 20% 가까운 우위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박희태후보가 워낙 막강하다보니 박희태에게 7000표 차이로 석패했다. 2년 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다시 도전했으나, 한나라당의 김태호도지사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며 낙선. 2년 뒤에는 지역주의를 의식했는지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로 출마했지만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여상규 후보에게 밀리며 40%의 득표율로 낙선하였다.




이로서 2년 주기로 걸친 4번의 선거에서 연속으로 2위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했고, 무소속 신분이었던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와 단일화되어 대통합 야권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3%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에 이달곤후보를 꺾고 성공했다. 본인으로선 도지사 선거만 3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이달곤에 비해 오랫동안 PK에 몸담아온 김두관이었기에 지역밀착형 후보라는 태그가 승리의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2006년을 기점으로 세를 보이기 시작한 PK의 진보층도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이로서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 되면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경남내 공사를 일시 중지 시켰는데, 이에 따라 중장정부가 사업권을 회수해 완전 중단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본인은 경남이 불의에 대해 저항했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도지사 취임 후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무난히 도정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재임 2년차인 2012년 경남지사직을 돌연 사퇴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였다. 이로 인해 경상남도 진보층 사이에서는 배신감(?)이 쌓이게 되었다.

경선 결과, 손학규에게도 밀리며 14%의 득표율로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자세한 경선 과정은 이곳을 참조. 같은 PK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지지율이 높은 상태라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애초에 높지 않았는데, 도지사직을 뛰쳐나와 무리하게 경선에 참여하여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대선과 병행하여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어렵게 얻은 경남지사 자리를 다시 새누리당쪽에 헌납한 꼴이 되어버려, 야권 지지자들에서까지 평생까임권을 얻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발음한 '관두김' 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생긴 것은 덤이다. 경선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고 왜 경남지사직을 사퇴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사실 안철수의 국회의원 사퇴도 그렇고 대선후보 또는 경선후보 역할과 국회의원, 도지사직을 동시에 수행하면 한쪽에 소홀하게 된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안희정, 남경필 등이 대권도전으로 인한 도정소홀 문제로 약간 논란이 있기도 했다.


문제는 그러한 명분보다 도지사를 다시 뽑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자신을 뽑아준 도민들에 대한 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출마를 이유로 지사직을 사퇴하는 사례는 없다.


졸지에 다시 재야가 되어버린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1년 간 연수를 받은 뒤, 경남지사 사퇴에 대해서 사과하고 나서 2014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구는 당초 활동했던 PK가 아닌 경기도 김포시로 정해졌다. 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나서자 낙하산이나 뜨내기라는 비판이 생겨났지만, 본인으로선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힘을 뻗어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수였다.




거주지도 김포로 완전히 옮기고 본인은 분투를 했지만, 지역 토박이들은 PK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고 그나마 지역 정체성이 덜한 신도시 지역에 승부수를 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승리여부에 의문을 둬야 했다. 결국 경쟁상대인 새누리당의 홍철호후보에게 밀리며 4년만에 낙선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예상대로 농촌지역에선 홍철호에게 몰표가 쏟아졌고, 신도시에서도 패배하여40% 득표율로 선거를 마감했다. 


경남지사 당선 배경에는 PK 지역밀착형 후보였던 점이 상당히 먹혔던 것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그 점이 낙선의 큰 요인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로도 경남으로 주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김포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마침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포시 선거구가 갑/을로 분리되면서 자리가 하나 더 늘었고, 김포시 갑 선거구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새누리당측의 상대는 김동식 전 김포시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PK 출마를 기대했지만, 본인은 대권도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김두관 본인 말로는 경남지사 자리에서 중도 하차해 다시 보수정당의 홍준표에게 헌납한 그 원죄 때문에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현재까지 나온 관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의 김동식 후보보다 5~10% 안팎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포시(갑)이 도시 인구가 많아 야권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결과를 두고볼 일이지만, 일단 2014년 재보궐 선거때보다는 해볼만한 승부로 여겨진다. 


김동식 후보는 김두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김포시장 시절 권력형 비리(!)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

여담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지역 출마자 중 91년 이후 역대 공직선거 출마횟수가 8회로 가장 많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포함하면 9회이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10회가 된다. 승률이 3할대라는 게 함정

결국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59.3%를 받아 前 김포시장인 김동식 후보를 완전히 KO 시킴으로써 국회의원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기간에 경남에 내려가서 똑같은 내용으로 고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의 내용은 '죄송하다 내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중도사퇴는 잘못됐다' → '내가 관둬서 홍이 됐다' → '나는 준비가 미흡했다' 이 순으로 간 다음 그 다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하며 여기에 홍준표를 벌해달라는 말은 덤.

대한민국 No. 1 공부법 공신닷컴 CEO.


2001학년도 수능 상위 0.18%의 점수인 396점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에 입학해 ‘공부를 신나게’라는 이름으로 교육봉사 동아리 ‘공신’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부의 신"이라고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정작 본인은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뜻풀이하든 개의치 않는다.


2006년, '공신'은 서울대학교 출신 자신의 남동생 그리고 서울대 동기, 후배들과 함께 입시공부법을 알려주는 멘토링 서비스로 시작했다. 강성태는 공신을 2008년 11월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공신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기에 이른다.


MBC 공부의 제왕에 출연했고, KBS 드라마 공부의 신을 자문하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일선 학교들과 청소년 기관에서 멘토링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신혼여행 시절의 에피소드가 기가 막힌다(?). 처음엔 정기를 흡수하자라는 이유로 백두산 등정을 하자고 했다가 당연히 아내의 반대로 취소하고 대신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독일에서 간 방문지가 쾰른 대성당이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같은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독일 자동차 공장과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학살 수용소였고 신혼여행 이후로 일주일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유대인 학살 수용소만 간 건 아니고 본인 학과에 맞게 독일차를 타보기도 하고 즐긴 건 즐겼다.



상북도 문경시(前 점촌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왔다. 


시골 촌놈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 때는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일진이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차마 화장실을 가겠다는 한마디를 할 용기가 없어서 그대로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힘도 없고 공부도 별로 못해서 따돌림을 받았다고.


그런데 자기랑 똑같이 약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도 건들지를 못했다. 바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었고 공부를 잘 하면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실 이점을 몇몇 사람들이 "공부 못하는 사람은 왕따 탈출 못해?"라고 오해하고 블로그나 유튜브 댓글에서 강성태를 비판하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나 강성태가 공부하게 된 계기이지 왕따당하는 이유를 피해자에게 돌리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걸러듣자.


원래는 공부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으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고교 입학시험 점수는 전교 꼴찌에 가까웠고, 고2 때까지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를 몰라 하루에 18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강행군을 했음에도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에 전교 380명 중 307등을 할 정도로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일산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시절 이었으며, 백석고등학교는 평준화 전 매년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 이상의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명문 고등학교였으니 일반 고등학교 수준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 15명, 연세대 71명, 고려대 62명 등 졸업생 341명 중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SKY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동시합격 포함)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내기도 했다. 


그러니 전교 꼴찌에 가까웠다고 하더라도 평준화된 현재 일반고 기준 상위 2~30%안에는 들었을, 최상위권 대학 수준이 아니었을뿐, 어지간한 서울 중상위권 대학은 충분히 노려볼만 한 성적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후에 자신이 공부하는 모든 교재의 표지에 바를 정(正)자를 2개씩 쓸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해서 성적을 올렸지만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피부병을 앓아 자퇴를 고민했을 정도로 힘들게 공부했다고 한다.


민감한 피부 때문에 겨울에 교실에 히터를 틀어놓으면 몸에 반점이 돋고 피부가 찢어질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그가 시험을 보던 2001년 수능 당일날, 고사장에서는 히터를 거의 틀지 않았고 만점에 수렴하는 점수인 396점을 받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에 합격했다. 다만 대학생활은 그렇게 성실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꿈이 없어 입학하자마자 학사경고를 2번이나 먹었다고. 


그러나 해병대 전역후 교육봉사 활동을 통해 본인의 뜻을 찾게 되었고, 이후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 서울대 학점 4.0에 달하는 높은 성적을 받음은 물론, 교육봉사를 위한 교육학과 전공 수업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심각한 음치로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양파의 '다 알아요' 란 곡을 불렀었는데 음정도 안 맞고 박자도 이상해서 모든 출연진들을 충공깽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자신도 음치인 걸 인정했다.



여러 차례 고액과외, 강남 학원가의 스타강사 제의, 공신사이트를 넘기면 10억을 주겠다는 제의, 새누리당의 청년비례대표 제안 등 엄청난 러브콜을 받았지만,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계속 가기 위해 거절해왔다. 자신의 꿈은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 멘토 1명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이미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능에 응시하고 있는데, 수능의 경향성을 파악하거나 멘토링을 위해 응시한다고 한다. 시험을 보고, 답안을 마킹할 때, 일부러 틀린 답을 적어내서 다른 수험생들에게 일부러 성적을 깔아준다고 한다. 


2018학년도 수능은 처음으로 아예 안보고 그냥 시험장만 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바람에 강연회 일정이랑 겹쳐져서 국어영역만 풀고 올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또 뒷사람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지장을 줄 수 있어서 아예 안봤다고 한다.


2014년 5월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 아프리카 방송 영상을 업로드 하고 있으며, 그 외 공부 쓴소리 영상이나 공부법, 방송출연 영상 등이 업로드되어 있다. ASMR도 올리는데 일부 영상의 경우 여러분들은 공부를 안 해요 사운드가 에코까지 입혀진 채로 2시간 20분마다 한 번씩 광고마냥 나온다. 잠 깨라는 뜻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이 나라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며 자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7년 8월 "더 이상 수시 입시상담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흔히 말하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자기소설서 쓰는' 세태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결국 사기쳐서 대학가는 꼴인데 이게 무슨 교육이냐며 자괴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7년 9월 [택배왔다!!!] 청와대에서 선물을 보내왔ㄷ...읍읍...!!! 어떤 이유에선지 청와대에서 온 선물을 받았다. 선물 내용은 평창 잣, 영동 호두, 예천 참깨, 진도 흑미로 견과류 및 곡물류를 포장한 선물세트다. 청와대 선물 포장지를 뜯을 때 평생 간직하고 싶었으나 먹는 물건이다 보니 슬퍼하면서 뜯을 정도였다고.


2017년 10월 66일 습관의 기적 강성태가 세바시라는 15분 강연 프로그램에서 66일에 대한 강연을 했다. 66일동안 무언가를 하면 그 무언가가 습관이 된다는 내용.


2014년 영단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하여 말을 지어내 연상하여 외우는 암기법을 강도높게 비판한 적이 있었고 해당 방법으로 강의를 하는 경선식 쪽에서 2016년 반박 영상을 올리며 10억을 걸고 단어 암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 


자신은 공부법 알려주는 사람으로 좋은 공부법과 나쁜 공부법을 이야기한 것 뿐 특정 업체를 거론한 적은 없으며 연상법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다 해명했으나 경선식은 계속해서 반박 영상을 올렸고 강성태는 이후로 경선식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먹었는데 그 때 본인 이름으로 광고까지 단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강성태는 그럼 내가 연상법을 알려주겠다며 영단어 강의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강의가 반응이 좋아 단어장도 내게 됐고 단어장은 출시 이후 3일 만에 매진. 출간 이후 지금까지 단어장 1위를 지키며 경선식은 역관광 으로 보내 버린다.



그 후에 강성태 역시 경선식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보였고 한 시청자가 경선식의 공부 방법을 저격했는데 이 때 2년동안 공부를 안했다는 내용을편집해서 올렸다. 이에 분노한 경선식은 계속해서 강성태에 대한 저격 영상을 올리고 강성태를 키워드로 광고를 돌리는 중이다.


출간 이후 대한민국 영단어 분야 전체 1위를 놓친 적이 없다고 함


[노란리본 물결]

세월호 사고 직후 최초로 노란리본 운동을 시작한 사람. 사람들의 단체를 만든 사람. 공신의 멘토 멘티들이 노란리본을 시작했다. 강성태가 만든 공신이 없었다면 세월호 노란 리본은 세상에 없었단 이야기. 덕분에 강성태 노란리본 운동 직후 청와대로부터 사찰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부지런한 분이 7시간 동안 뭘한거지 


EBS 대학입시의 진실에 출연하여 본인이 지금 수험생이었다면 서울대는 못갔을 거라고 셀프 팩폭 날림. 수시와 학종이 대세인 상황에선 학생과 학부모가 챙길 것이 너무 많다는 이유. 자신의 어머니는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시는 분이었다고 함.


[출처: https://namu.wiki/w/%EA%B0%95%EC%84%B1%ED%83%9C]



카페 동접 숫자는 500명도 안될만큼 소소하지만 인터넷,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왕성하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트위터 페미니스트, 여성시대, 기타 몇몇 여초 커뮤니티와 미묘한 연대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 워마드, 메갈리아 등을 대단히 싫어하는 몇몇 여성들조차도 "워마드는 싫은데 가끔 맞는 말은 한다."는 등의 스탠스를 취하며 사실상 애매한 위치에 있다. 메갈리아와 연관되어 발생한 넥슨 건물 앞 시위 사건도, 이미 망한 메갈리아가 아니라 워마드를 중심으로 조직된 시위였으나, 여성시대 등 연대 관계에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다발적으로 참여하며 진행되었다.


온라인 상에서도 그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대두 되는데, 네이버 뉴스 기사에서도 명백히 피해자가 남성인 게시물에 고인이 된 남성을 조롱하거나, 비난하거나, 군대 관련 게시물에는 군인들과 6.25 유가족들을 비하하기 위해 여성시대 등의 화력 지원을 받아 댓글을 점령하고 있다. 게다가 몇몇 커뮤니티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물들이기 위해 남성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고 선동하는 경향이 지속 포착되고 있다. 



사실 인터넷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는데, 각종 웹툰, 네이트 판,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 남성 비하 및 일반화 글은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활동 또한 상당히 왕성하다. 지속적으로 남녀 화장실 등에 남성혐오성 스티커 등을 부착하고 있으며, 2016년 12월 11일에도 "낙태 허용"이라는 명목으로 추운 날씨에도 수십 여명이 거리에 나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등 강한 행동력을 보여준다. 


다만 본인들의 이미지가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회원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으며, 메갈리아의 선례에서 보였듯, 자신들 때문에 페미니즘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우리는 여성단체, 페미니즘 단체가 아니다."라고 줄곧 주장하긴 하는데 마치 이것은 사람 죽여놓고 증거를 들킨 살인자가 "나 사람 안 죽였어요."라면서 거짓말이나 하는 궤변이나 마찬가지다.


표면적 목적은 단순히 '남성 비하 및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만이 가입 가능한 규칙, 카페 내 페미니즘에 대한 수많은 담론과 향후 계획, 지속적인 오프라인 시위 주도 등을 보면 사실상 여성주의와 그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선례였던 메갈리아와는 다른 행태를 띄고 있는데, 메갈리아처럼 자신들을 '젊은 페미니즘' 등으로 억지 포장하지 않는다. 카페 개설 목적부터가 남성을 비하하고 차별하기 위함이였으며, 지속적으로 그것을 강조했고, 지금도 비교적 온건한 페미니즘 단체나 여성주의 등으로 엮이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분위기를 띈다. 혹시라도 타 커뮤니티로 신분세탁을 하더라도 페미선동이 어려워질걸 우려하는 듯.


표면적인 목적은 남성 비하 및 조롱으로 웃고 즐기는 것이겠지만, 근원적인 목적은 일반 여성들과의 암묵적 연대 및 이념 확장, 그로 인한 여성주의 단체 및 여성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여초, 페미니즘 단체와 암묵적으로 연대하여 성별 갈등을 조장하고, 존재하는 모든 문화, 예술, 사상을 여성혐오 프레임으로 끌어들여 여성주의를 확장, 인터넷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고 사회적 힘을 얻겠다는 취지이다. 



즉, 단순 남성혐오라기 보다는 전투적 페미니즘에 가까우며, 지금도 게시물들 대다수는 오프라인 시위, 페미니즘 서적 추천, 인터넷 여론 형성 및 댓글 조작 등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을 페미니즘 또는 여성 단체가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전 메갈리아의 과격한 여성주의 행동으로 그를 우호하는 페미니즘 또한 사회적 논란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건적 페미니즘이 아닌 과격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나쁜 페미니즘, 최소한 도덕에서, 최대 법률까지 위반하는 행위 등 자극적인 행보가 같은 여성들의 불만과 고충을 직설적으로 풀어준다는 것에 있다. 이에 인터넷, 언론 등 유명세를 타고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도도 키우고 연대 세력도 모으니 분명 이점은 있다.


물론 부정적인 영향도 따라왔다. 연예인, 재벌가까지 개입된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등의 거대한 범죄부터 시작해서 독립 운동가 비하, 성추행, 부동액 살인 모의, 연예인 마녀사냥, 동성애자 혐오 등 논란이 거세지면서 이에 대한 반감도 늘어났다. 


2017년 웬만한 남초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거세졌고, 비교적 온건한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외 남성 비하 및 남성에 대한 차별 주장도 속속 드러나면서 성별 갈등은 더욱 심화 되었고, 여성들이나 페미니스트 또한 워마드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상기 서술되어 있듯 워마드는 설립 목적부터가 남성혐오였으며, 그에 따른 비난이나 부정적 여파도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자극적인 표현과 논란 거리들이 인터넷에 퍼지기 쉽다는 성질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따른 부정적 여파보다도 긍정적 여파가 더욱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념대로라면, 공격적 언행으로 성별 갈등을 조장하며 여성주의를 전파하는 것은 결국 여성 입장에서 이득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루이스의 법칙과도 상통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여성혐오로 규정 짓고, 문화, 예술, 이념에 '여성 비하'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거론하며 여성에 대한 혐오로 선동하는 행위 자체가(만물여혐설로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결국 여성주의 담론과 시각을 확장 시킨다는 것이다. 



즉, 최근 논란 거리가 진짜 여성 차별이냐, 아니냐는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여성이 환기 및 언급되면서 사회 전반을 '여성 모드'로 만드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것.


그러나 본래부터 극단적이었던 활동이 점점 더 극에 치닿고 있고 비도덕적이며 추한 면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지라 잠재적 아군이어야 할 여성들에게조차 혐오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선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있다. 이들 생각과 달리 정상적인 여자들 눈에 보이는 이들은 여자의 이름을 더럽히는 정신병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최근 혜화역 폭동, 그리고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으로 인해 워마드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거나 잘 몰랐던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확실하게 그들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몰락하게 되고, 우파 가 다시 대두하게 된다면 가장 명확한 원인이 될 사이트


메갈리아/비판 참조. 현재는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성향을 지닌 사람과 사건 사고가 마구 뒤섞여 있는 즉,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과 워마드에 대한 비판은 상통한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메갈리아는 '미러링'이라는 명분이라도 내세웠기 때문에 옹호하는 이들도 있기는 했으나, 워마드는 도덕과 법률을 모두 무시하는 행태로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논란 및 비판이 많다. 


2016년 8월 1일, 미디어오늘에 한혜수 독자가 투고한 '워마드 비판 총정리' 성격의 기고문이 나왔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관련해서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나온 글로서, 이 기고에 링크된 관련 기고 묶음에서 이번 사태에 관한 찬반 글들을 모두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기고문의 작성자 한혜수는 초기 메갈리아를 지지했고, 메갈리아 운영자가 될 뻔했을 정도로 메갈리아를 잘 알다 보니, 지금껏 보던 기사들과 달리 메갈리아와 워마드 관련 비판이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다. 평소 남성혐오 경향을 보이고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여성학자 정희진마저 비판할 정도로, 이 글은 이제껏 언론사에서 게재됐던 기사, 기고 중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관해 가장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반대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한혜수 기고자는 자기가 이렇게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판하는 이유는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거나 여자들의 어려움을 몰라서가 아닌 진정한 페미니즘을 위해서 임을 밝히고 있다. 즉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제대로 된 페미니즘이 아님을 분명히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전우용씨는 메갈과 워마드를 비호하는 행위는 오히려 ‘벌레들의 세계’에 유폐됐던 일베를 석방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는 부당하나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는 정당하다는 주장에 수긍하는 강자는 없다”면서 “오히려 이런 경우 강자는 도덕적 열세조차 극복했다며 기뻐한다. 뉴라이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게 바로 이런 담론세계”라고도 했는데요.


오죽하면 워마드가 메갈리아시절 거의 일베유저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있는 그 이상으로 인식이 나빠지자 여시,메갈리아의 남혐사상에 동조했던 쭉빵등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워마드를 비난하고 워마드가 출처인 글을 올리지 말라고 공지가 내려오고있다. 


2017년 1월 기준으로는 트위터 여론조차도 마찬가지. 물론 단순히 "우린 쟤네랑 상관없다."식의 꼬리 자르기이지만 사실상 워마드는 인식 면에선 메갈과 일베를 합친 것 그 이상일 것이다.




* 2018년 최저시급 : 7,530 원 / 2019년 최저임금 8,350원 결정


고용노동부에서 매년 8월 5일까지 그 다음 해에 시행되는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데, 근로자위원 + 사용자위원 + 공익위원 각각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과반수인 14명 이상의 찬성 필요)하고 이를 공포하게 된다. 


재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과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들이 매년 최저임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을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되는 경우가 잦다. 재계 측에서는 최저임금 소폭 인상 혹은 동결, 심지어 10% 인하까지 요구할 때가 있고,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을 30~50%씩 인상하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최저임금위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게다가 요즘엔 간보듯이 서로 최저임금을 제시하고 있다. 


한쪽은 지나치게 낮게, 한쪽은 지나치게 높게. 다만 최저임금 도입 당시 갑작스러운 도입은 자영업자 등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유로, 낮은 수준에서 시작하여 그 증가폭을 크게 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현실화를 목표로 한 바 있다.


대한민국 아르바이트에서는 일부 그릇된 인식으로 인하여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용자는 합법적인 이유없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면 엄연한 범죄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때에는 일단 꾹 참고 근로계약서(노동계약서)나 없더라도 충분한 증거(통장 입금내역)들을 확보한 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된다. 특히 알바 자리에서 나올 때 신고하면 그동안 못 받은 임금 + 모자란 임금 때문에 생긴 물질적/정신적 피해보상비까지 받을 수 있다. 절대로 사용자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참고 넘기면 안 된다.


참고로 최저임금을 강제하는 법률과 임금체불을 처벌하는 대한민국 법률의 입법목적은 매우 유사하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택시운전근로자들의 임금의 불안정성을 일부나마 해소하여 생활안정을 보장한다는 사회정책적인 배려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위와 같은 헌법 규정에 따른 조치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 


현재와 같이 초과운송수입금이 임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는 경우 이와 같이 열악한 근로조건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하여 운송질서 저해 등 사회적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적어도 택시운전근로자들이 생산고에 관계없이 지급받을 수 있는 고정급의 비율을 높여 보다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 (#2008헌마477 택시기사의 기본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한 최저임금법의 입법목적)


임금이 생계의 원천인 근로자의 경우 임금의 지급이 장기간에 걸치거나 부정기적으로 행하여지면 근로자의 생활이 불안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한 점 (#2011도10539 임금체불 처벌의 입법목적)



요즘엔 아르바이트라도 노동의 강도에 따라 시급이 다양한 경우가 많다. 가령 일도 쉽고[18] 자기공부도 가능한 독서실 알바는 시급이 3,000원이어도 지원자가 널렸고, 같은 비숙련직 아르바이트라도 번화가에 위치한 직영 편의점 같은 곳은 일이 힘들어서 8000원도 준다.


최근에 지자체마다 생활임금제를 도입하여 최저임금제를 보조하는 수단을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서 최저임금을 받는 대상자에게 처음부터 (최저임금+생활임금 추가액) 형태로 주거나, 최저임금을 받고 나머지를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추가 금액 부분을 대상자에게 주는 형태로 나뉘어진다. 자세한 것은 생활임금제 참고.


20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최저임금 인상 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새누리당: 2020년까지 8,000~9,000원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2016년부터 4년간 매년 13.5% 인상되어야 한다.)

정의당: 2019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2016년부터 3년간 매년 약 20% 인상)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최저임금에 대한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약을 지키지 않자, 이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2017년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7.3% 인상되었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1년(16.6%) 이래 가장 큰 폭의 인상이 이뤄졌고,(6470원에서 7530원으로 1060원, 16.4% 인상)[19] 2020년까지 1만 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최저임금위원회는 위에 상술된대로 교수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공익위원 9명, 양대노총의 추천[20] 으로 임명된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단체가 추천 한 사용자위원 9명으로 이루어진다. 주요부처 의 국장급 공무원인 특별위원 3명이 존재하지만 의결권은 없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공익위원 가운데 선출되고 부위원장은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이 겸직하는 것이 관례이다. 


임기는 3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노동자위원 측은 양대노총의 지도부가 교체되면 최저임금위원회의 위원도 교체가 되는 경향이 있어 재임 이상의 임기를지내기에는 쉽지 않지만 사용자위원 측은 6연임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로 장기집권이 강한 편이어서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때 연임 횟수를 제한 하는 논의를 한 적도 있었다. 2017년 최저임금의 최대폭 인상으로 인해서인지 몰라도 2018년 새로 선임된 사용자측 최저임금위원은 대다수가 신임위원으로 교체되었다.


노사 양측이 최저임금에 대한 팽팽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측을 조율하는 것은 공익위원들이다. 결국 최저임금 수준을 투표로 결정할 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공익위원들인 셈. 하지만 현재 제도에서는 공익위원을 전적으로 정부에서 추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서 추천 위원의 성향이 뒤바뀌는 맹점이 존재한다.


노동자위원은 양대노총에서 전적으로 추천하는 형태인데, 대부분의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시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체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이 20%가 되지 않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조직률은 2%대이기 때문에 이들을 잘 대변하지 못하는 양대노총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다소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양대노총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한 제 10대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 가운데, 민주노총 측에서 2석을 여성, 청년 대표 의석으로 할당했고, 한국노총 측에서 1석을 비정규 대표 의석으로 할당하여 추천하였다. 하지만 2018년에 임명된 제 11대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중에서는 여성 대표 의석이 사라져 내부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용자위원 측도 노동자위원들과 같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전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총, 전경련[23],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가 위원을 추천했지만 경총, 전경련의 경우는 대기업집단의 연합회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업장이 아니며,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추천된 인사를 보면 최저임금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업장과는 거리가 멀다. 최저임금을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업장은 자영업자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의석은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아 직접적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명단

2018년 5월 17일, 제11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임명되어 3년 임기를 시작하였다.


공익위원

- 류장수(위원장,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 김성호(부위원장,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 강성태(재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권혜자(여성,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 김혜진(여성,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 박은정(여성,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 백학영(여성, 강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오상봉(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이주희(여성,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노동자위원

- 이성경(한국노총 사무총장)

- 백석근(민주노총 사무총장)

- 정문주(한국노총 정책본부장)

- 이주호(민주노총 정책실장)

- 김현중(재임, 한국노총 전국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김만재(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전수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 이남신(재임, 한국노총 추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김영민(민주노총 추천,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사용자위원

- 이동응(재임, 경총 전무)

- 하상우(경총 경제조사본부장)

- 박복규(재임, 중소기업중앙회 추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회장)

- 이재원(중소기업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

- 김영수(재임, 중소기업중앙회 추천,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권순종(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

- 오세희(여성, 소상공인연합회 추천,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

- 정용주(소상공인연합회 추천, 경기도가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 이경숙(여성, 소상공인연합회 추천, 주식회사 뷰티콜라겐 대표이사)


경제 상황, 그리고 정권의 친기업 성향 등의 요인에 상승률이 크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80년대후반~90년대 초반, 2000년대 초반 IMF 극복기와 2007년 경기 과열양상 때에 상승률이 높고, IMF와 2008년 경제공황 이후 1~2년간의 상승폭이 가장 적다. 또한 친기업 기조를 핵심 정책으로 삼는 보수정권이 집권한 시기에는 임금 상승률이 크게 둔화함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의 높은 상승률은 이렇듯 평가절하된 최저시급을 정상화하기 위한 명분의 외부 요인이 개입되어 인상률이 2001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나, 이에 대한 반발을 무시할 수 없어 2019년 상승률은 10.9% 수준으로 억제되었다.


여담으로, 이렇듯 2019년 상승률이 10.9% 수준으로 억제되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의 대선 시기 주요 공약이었던 2020년 1만원 시대 공약을 실현하려면 20%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상률은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전례가 없다시피한 상황.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2020년 1만원 시대 공약을 폐기했다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는 견해가 있으나 문재인 정부가 총선 이후 최저임금을 20% 이상 인상하여 공약을 완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문제시되는 임대료 등을 완화시키는 대책을 내놓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 판단하면 인상해도 별 문제가 없다 판단하고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5월 25일 최저임금법 개정안

2018년 5월 25일 새벽, 국회 환노위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표결에 부쳐 통과하였다. 주 내용은 상여금 , 현금으로 따로 주는 근로자의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의 산정액에 포함하는 것으로,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양대노총을 주축으로, 정치권 대한민국 국회 원내정당에서는 평화와 정의의 모임 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며,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이 사퇴했고 특히 민주노총은 5월 28일을 전후하여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비판의 가장 큰 이유는, 통상임금을 피하기 위해 지급하였던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산입하겠다는 것. 사실상 최저시급의 급격한 인상으로 촉발되었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합법화 라는 주장이 주요 골자다.


2019년부터 기본급의 25%를 초과한 상여금, 기본급의 7%를 초과한 복리후생이 산입범위에 포함되는데 매년 상여금 기준 점진적으로 15%씩 산입범위를 매년 확대하여 최종적으로 2024년 기준으로 산입범위를 전액 반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공약으로 내세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사실상 무력화되는것인데, 위 법안대로 매해 해당 법안개정이 적용될 경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최저임금 인상률이 15.2%를 인상하여야 하나, 위 법안으로 인해 매년 임금의 삭감폭이 12.7%라는것이다. 


이를 역산할 경우 실제 인상폭은 0.5696%으로 사실상 동결. 물론 최저임금 인상폭이 상기한 조건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도 불투명하기에 실질적으론 최저임금을 삭감한다는 비판도 나온 것이다. 



게다가 반대로 기존에 복리후생 및 상여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소상공인들 입장에서도 산입범위 확대의 혜택을 못누린다.


만약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 기본급의 과반이상이 특근/연장/상여금으로 점철된 비정상적인 페이구조를 지닌 정규직 생산직 공장 노동자의 경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에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게 최저임금으로 연봉 3~4천 이상을 찍는 이들(즉 반발하는

이들)을 직접 겨냥한 공격 이라 빈축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썰전의 유시민 작가는 

“최저임금제는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의 수단이 아니다.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임금의 최저 선을 쳐 놓은 것이며, 각종 수단 명목으로 실제로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기본급이 최저임금 이하라고 해서 최저임금제의 혜택을 다 받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법 개정 전보다 덜 받게 되는 노동자들이 21만명 생긴다고 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에서는 조합원들에게 기대이익이 안 오면 비판하고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합리적인지는 의문”

이라고 했다. 


이어 유 작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은 두번째 그룹으로 예컨대 최저임금이 내년에 30만원 오르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그대로 받고 인상분도 받던 게 법이 개정되면 일부가 산입돼 10만원 밖에 더 못 받는 것이다.  20~30만원 정도의 월급 인상을 기대했던 분들이 법을 고쳐 9~10만원 밖에 안 된다고 계산서에 나오니까 서운한 것은 맞다. 그런데 두번째 범주 노동자들의 급여를 인상시켜주기 위해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인가, 그건 아니라는 것”

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A0%80%EC%9E%84%EA%B8%88%EC%A0%9C?from=%EC%B5%9C%EC%A0%80%EC%9E%84%EA%B8%88#s-3]

근로자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로, 노동자의 생존권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단 국가가 아닌 고용인의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복지 정책보다는 시장 규제에 가깝다. 경제학적 의미로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가격에 최저한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1항에서 최저임금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제도는 대한민국 헌법 32조에 의거한 최저임금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고 있으며 2018년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이다.


2019년 부터 최저임금이 10.9% 인상된 '시간당 8350원'으로 확정됐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 1894년 뉴질랜드에서 도입한 게 시초이다.



1940년대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학자인 발터 오이켄(W. Eucken)등이 최저임금제를 주장하였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하락하면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노동 공급이 하락하고 그에 따라 임금이 적정수준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임금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면서도 노동 공급이 증가하는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벌 수 있는 임금이 최저 생계비 이하로 낮으면 근로자들은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하여 잔업을 하거나 부녀자와 아동들도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임금이 하락하는데도 불구하고 늘어난 노동공급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으로 나타난다. 발터 오이켄은 이러한 행태가 노동시장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파악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은, 고용노동부에서 매년 8월 5일까지 그 다음 해에 시행되는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데, 근로자위원 + 사용자위원 + 공익위원 각각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과반수인 14명 이상의 찬성 필요)하고 이를 공포하게 된다. 



재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과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들이 매년 최저임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을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되는 경우가 잦다. 재계 측에서는 최저임금 소폭 인상 혹은 동결, 심지어 10% 인하까지 요구할 때가 있고,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을 30~50%씩 인상하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최저임금위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게다가 요즘엔 간보듯이 서로 최저임금을 제시하고 있다. 


한쪽은 지나치게 낮게, 한쪽은 지나치게 높게. 다만 최저임금 도입 당시 갑작스러운 도입은 자영업자 등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유로, 낮은 수준에서 시작하여 그 증가폭을 크게 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현실화를 목표로 한 바 있다.


대한민국 아르바이트에서는 일부 그릇된 인식으로 인하여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용자는 합법적인 이유없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면 엄연한 범죄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때에는 일단 꾹 참고 근로계약서(노동계약서)나 없더라도 충분한 증거(통장 입금내역)들을 확보한 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된다. 


특히 알바 자리에서 나올 때 신고하면 그동안 못 받은 임금 + 모자란 임금 때문에 생긴 물질적/정신적 피해보상비까지 받을 수 있다. 절대로 사용자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참고 넘기면 안 된다.



참고로 최저임금을 강제하는 법률과 임금체불을 처벌하는 대한민국 법률의 입법목적은 매우 유사하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택시운전근로자들의 임금의 불안정성을 일부나마 해소하여 생활안정을 보장한다는 사회정책적인 배려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위와 같은 헌법 규정에 따른 조치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 현재와 같이 초과운송수입금이 임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는 경우 이와 같이 열악한 근로조건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하여 운송질서 저해 등 사회적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적어도 택시운전근로자들이 생산고에 관계없이 지급받을 수 있는 고정급의 비율을 높여 보다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 (#2008헌마477 택시기사의 기본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한 최저임금법의 입법목적)


임금이 생계의 원천인 근로자의 경우 임금의 지급이 장기간에 걸치거나 부정기적으로 행하여지면 근로자의 생활이 불안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한 점 (#2011도10539 임금체불 처벌의 입법목적)


요즘엔 아르바이트라도 노동의 강도에 따라 시급이 다양한 경우가 많다. 가령 일도 쉽고 자기공부도 가능한 독서실 알바는 시급이 3,000원이어도 지원자가 널렸고, 같은 비숙련직 아르바이트라도 번화가에 위치한 직영 편의점 같은 곳은 일이 힘들어서 8000원도 준다.


최근에 지자체마다 생활임금제를 도입하여 최저임금제를 보조하는 수단을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서 최저임금을 받는 대상자에게 처음부터 (최저임금+생활임금 추가액) 형태로 주거나, 최저임금을 받고 나머지를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추가 금액 부분을 대상자에게 주는 형태로 나뉘어진다. 자세한 것은 생활임금제 참고.


20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최저임금 인상 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새누리당: 2020년까지 8,000~9,000원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2016년부터 4년간 매년 13.5% 인상되어야 한다.)

정의당: 2019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2016년부터 3년간 매년 약 20% 인상)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최저임금에 대한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약을 지키지 않자, 이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2017년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7.3% 인상되었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1년(16.6%) 이래 가장 큰 폭의 인상이 이뤄졌고,(6470원에서 7530원으로 1060원, 16.4% 인상) 2020년까지 1만 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레바논계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1976년 2월 24일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중세 역사와 전쟁 및 군 문화를 전공했다. 히브리 대학교 졸업 후,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예루살렘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집필 활동이나 외부 인터넷 강의도 같이 한다.


자신의 역사적 통찰을 담은 사피엔스을 출간하면서 기존 역사학계와 관련 학계, 대중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문에 하라리는 일약 이름있는 역사학자로 등극하게 되고 사피엔스가 해외 45개국으로 활발히 출간되면서 세계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의 유튜브 세계사 강의 조회수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수십만 뷰에 이르고 있으며, '인류의 간략한 역사'라는 무료로 제공되는 그의 무크 강의의 수강생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그의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역사관에 여러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하라리는 역사학자이면서도 단순 역사 연구가 아닌 생물학과 역사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 넓은 연구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의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그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외에 한국에 알려진 저서로는 2017년 5월에 출간된 사피엔스의 후속작 <호모 데우스>,7월 출간된 <극한의 경험>,12월에 출간된 <대담한 작전>등이 있다.


유발 하라리는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도달했는지 궁금해하며, 이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연구에 임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그의 남다른 호기심과 통찰력이 나타난 결과물이 바로 <사피엔스>이다. 그의 연구는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인가?, 역사에 하나의 정의란 진정 존재하는가?, 역사의 발전에는 방향성이 있는가?, 역사가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해졌는가?"과 같은 심오하면서도 광범위한 질문들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의 발전이 진행될 경우, 인간보다 더 일처리를 잘하는 소규모 초인류 엘리트 집단,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공지능 알고리즘 시스템이 새로운 계층으로 떠올라 호모 사피엔스의 정체성과 위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위협은 현재 당연히 생각되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같은 이념과 제도들이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려서 후대엔 이것과는 전혀 다른 이념과 제도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미래에 인류의 중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농업 혁명이후, 동물이 가축화되는 것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인류가 해놓은 최악의 범죄 중 하나를 산업 농업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는 이런 심각한 동물 복지 현 주소가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윤리적 문제"라고 평했다. 아울러 동물 복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는 그는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태생이며, 동성애자이다. 


그는 2002년 자신의 반려자인 이지크 야하브(Itzik Yahav)트위터 계정를 처음 만났다. 반려자 유하브는 하라리의 매니저이기도 하다(아마 바쁜 학자의 스케줄과 할 일을 관리해주는 것 같다). 하라리의 모국 이스라엘은 국교가 유대교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동성 결혼이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동성 결혼이 합법인 캐나다 토론토에서 결혼했다. 현재 하라리-유하브 부부는 예루살렘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라리는 옥스포드에서 중세전쟁사를 전공하던 무렵인 2000년에 "소승 불교식 명상"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종종 말한다. 그는 하루를 시작할 때 명상 1시간, 하루가 끝날 때 명상 1시간으로 총 2시간씩 명상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명상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호모 데우스>에서는 명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내면의 평화, 통찰력 등이 없었다면 책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진정한 명상 마니아!).


그는 위에서 서술했듯이 철저한 채식주의자이다. 


자신의 채식주의는 "낙농업이란 자식과 어미간의 유대를 파괴시켜 놓는 행위"라는 자신의 철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동물 도축업과 낙농업에 관해서도 그렇게 적어도 긍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채식주의를 시작한 것이 동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만큼, 하라리는 동물 친화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거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한편 하라리는 스마트폰이 없다! 여러모로 보아 자연친화적인 사람인 듯하다.


그는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가진 학자에게 주는 상인 '폴론스키 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에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을 인정받아 '몬카도 상'을 수상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2년에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는 총 6권으로 한국에서 출간된 도서는 4권, 출간되지 않은 도서는 2권이다.그 중 출판하지 않은 1권은 사피엔스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2004년부터 저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한국에서 첫 출간한 도서는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이다. 그는 한국 사피엔스 출간 기념으로 내한 기자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기자간담회 유튜브 영상 한편,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AI의 위험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따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현직 검사(사법연수원 33기)이자, 검찰 성추문 사건의 내부고발자이자,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의 포문을 연 인물이자 강철멘탈.


1973년, 故 서용석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의 차녀로 출생했다. 1992년 목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이대 법대 92학번). 그리고 졸업한 지 5년 뒤인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2004년에는 사법연수원을 33기로 수료하였다.


검찰에 몸을 담은 후 법무부장관 표창 2회, 대검 우수사례 다수 선정뿐 아니라, 영상녹화 매뉴얼, 장애인 조사 매뉴얼 작성 등 나름의 훌륭한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나 서울북부지검 검사 시절이던 2010년 검찰 상관한테 성추행을 당한 뒤부터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검찰청 내부 성추문 사건 피해

2010년 10월 30일 어느 장례식장에 앉아 있다가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한테 허리와 엉덩이 등의 터치를 당했다. 검찰 상관에 의해 허리와 엉덩이가 더듬어지는 등 성적 농락을 당한 뒤, 충격이 너무 커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가, 집에 있는 아이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귀가했다.



직후 당시 직속상관에게 성추행 문제를 보고했다. 그때 “당사자 사과를 받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후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았다. 당시 법무부도 피해 사실을 확인했지만, 서 검사는 자신이 피해를 당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고 한다.그 후 당시 검찰국장이던 최교일에게 불려가 위로는커녕 호된 꾸지람을 당했다. 그러나 최교일은 그 사실을 부정했다.


결국 서울북부지검에서 2011년 여주지청으로 발령 받았다.수원지검 여주지청 근무 시절인 2014년 4월 사무감사를 받았고, 사무감사에서 다수 사건을 지적 받았으며, 사무감사 지적을 이유로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전결권을 박탈 당했다.


2015년 8월에는 지망 근무지와 달리 2015년 8월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규모로 볼 때 경력검사[3]는 1명만 배치되어야 할 통영지청에 이미 후배 검사가 경력검사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차의 검사로서 추가 배치되어 사실상 좌천성 발령을 받았음이 분명해졌다.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이 당시 우병우 라인에 속해 있었다.


이후 수치심과 굴욕감, 그리고 트라우마로 공황장애가 오고 두 번이나 유산하였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2017년 7월 19일에 새로 취임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2017년 9월 메일을 보내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 후 10월 추석이 지난 뒤 박상기 장관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 검찰과장인 권순정과 면담했고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진상조사를 약속한 법무부로부터 그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하였다. 또 건강상 이유로 근무지 변경을 요청하는 편지를 법무부에 보냈지만, 이마저도 묵살됐다.


한편 서 검사는 법무부에 전보발령을 요구했으나, 검찰과장은 서 검사와 면담할 당시 인사 문제에 대해 전보 발령을 내기 위한 최소 근무 기간을 채우지 못한 상태여서 다른 근무지로 보내주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박상기 장관은 "서 검사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2018년 1월 26일 검찰 정기인사 명단에 서 검사의 이름은 없었다. 마침 성추행 가해자는 교회에서 신앙간증을 하면서 '그간 청렴하고 깨끗하게 공직을 수행했다', '억울하게 공직을 그만두었다', '스스로 회개했다'는 등의 말로 사실상 가해를 부인했다. 



결국 2018년 1월 29일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 게시판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성추행 및 인사불이익 피해 사건의 법률대리인으로 이화여대 법학과 동기인 김재련 변호사(사법연수원 32기)[5]를 선임하여 사태에 대응했다. 그런데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jtbc 인터뷰에서 직접 가해자인 안태근은 제쳐두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답이 없었다는 말을 했다. 이에 조중동 및 종편이 박상기 장관을 공격하였다.


김재련 변호사가 언론에서 서 검사에게 좋은 자리만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SBS와의 인터뷰 당시 "서 검사에게 있어서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부당하게 발령된 통영지청으로부터 정당한 자리로 복귀하는 것입니다."라는 함으로써, 마치 서 검사가 검찰 꿀보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기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다는 뉘앙스를 주었다. 


이러한 논란은, 김재련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의 최대 적폐 중 하나인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의 이사로 일한 경력이 드러남으로써 더욱 크게 불 붙었다. 비단 화해치유재단의 이사로 일한 경력 때문만이 문제가 아니라, 김재련은 여성가족부 국장 시절에 벌어진 대한송유관공사 여직원 강간살해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게 윽박을 지르며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거로도 모자라 성범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보듬어줘야 할 자신의 일을 "국비장학생"으로 표현하여 유가족의 분노를 사기도 했었다. 


이에 따라 결국 김재련 변호사는 서지현 검사의 대리인 자리에서 사퇴하였다.


2018년 3월에는 김재련 변호사가 여성부 국장 시절 위안부 문제 대처에 대한 YTN 기자들의 발언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YTN기자 다섯 명을 형사고소했다.


위와 같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언론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것으로 인해 이제는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서지현 검사가 가해자 처벌이나 조직문화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결국 본인의 인사이동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냐는 식으로 폭로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실제로 이에 따라 엠엘비파크 등 친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인사불만 가지고 징징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자신의 영달에 이용하려 했다", "걘 그냥, 통영이 싫어 딴 데 보내줘, 나 이런 데 있을 사람 아니야, 이거 하나밖에 없다", "아무 잘못 없이 나름 도움 주려고 했던 장관은 죽일 놈 만들고 정작 가해자들은 힘 있는 상관이라는 이유로 숨겨주고 있다", "애초에 의도 자체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정치적 저격이었다", "그 후 하는 행동들을 보면 일반적인 성추행 피해자의 행동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피해자의 태도가 마치 소극적이고 두려움에 떨면서 하는 것이 피해자의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은 단순 편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인터뷰를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서지현 검사가 괴로워하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부당함을 견디고 견디어 절차에 따라 상부에 보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부탁했지만, 무관심으로 무너지자 용기를 내어 폭로로까지 이어진 것이라 한다는 포스팅이 줄을 이었다. 


페미니즘에 시종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왔던 엠팍 불펜에서 처음에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를 보고 지지하며 응원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가해자에 대한 일반적인 분노라기보단 그 가해자가 보수 진영 사람인 안태근이었기 때문일 것인데, 김재련이 나오고 박상기가 조리돌림 당하는 식으로 흘러가자 하루 아침에 서지현의 폭로를 박상기에 대한 저격이라 해석하기 시작했고, 김재련을 과거 이력으로 날려버리면서 서지현까지 '이미 끝났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지현 검사가 인사문제를 언급한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 인사 불이익 자체가 피해에서 큰 부분이었던 데 있다고 얘기한다. 검찰 관례상 그 연차에 절대 발령 날 수 없는 곳으로 발령이 났고 전결권까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제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 폭로가 늦은 이유는 안태근이 검찰총장도 어찌 못 하는 실세였기 때문에 무리한 비난이라고 주장한다. 우병우 사단의 힘이 약해졌고, 이로 인해 조직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으로 용기있게 법무부의 진상조사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으니, 결국 언론 폭로 외에는 길이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추가로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당한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는데, 이러한 내부고발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특히 검찰 내에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하며 인사 이동 시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로 인해 인사이동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그 후 오랜 기간 법무부에서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것 또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메일 받은 적이 없다, 있다." 해서 언론한테 진실공방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서 검사가 아니라 법무부이며, 서 검사가 원하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조사였는데 법무부가 인사이동 문제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 사건을 조사한 사람이 안태근과 연결 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편파 조사이며 현직 법무부 장관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주장한다.


2018년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서지현 검사는 수사단이 아니라 조사단으로 구성된 점, 조사단장을 맡은 조희진 검사장이 평소에 여검사들에게 태하는 행동 등이 적절치 않아 조사단장의 적정성 등을 꼬집었다. 




대한민국의 제18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는 인천 부평구 을 지역이다. 


대표적인 친노무현계-친문재인계로 분류되어온 정치인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뒷얘기를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 기술한 저서 '비망록(2013년)', 지난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홍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당내 '친노' 진영이 뒷선으로 물러났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2017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7표 차이로 우원식 의원에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후 2018년 원내대표에 재도전하여 총 116표 중 78표를 득표하며 노웅래 의원을 40표 차이로 꺾고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친일파의 후손이지만 조부의 친일 행적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반성과 속죄의 차원에서 독립운동가 유공 단체들을 돕는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57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익산 이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다가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2001년부터는 시민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 무렵에 유시민을 만나 개혁국민정당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아 당시 노무현 후보 당선에 일조를 하게 된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때, 같이 입당,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평구 갑 지역 출마를 노렸지만, 문병호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출마를 접었다. 


이후, 이해찬 총리 임명 당시 총리실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총리실 비서관으로 임용되었고, 이해찬 총리가 사퇴한 후에는 한미 FTA 지원단장으로 임명되어 참여정부에서 계속 활동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인 홍미영 의원을 제치고 부평구 을 지역의 공천장을 받아 출마했으며 낙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구본철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아 인천 지역에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20대 총선 후에 돌연 사임했다. 친노계 3선 중진 의원으로써 원내대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친노 세력의 당 장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며 오히려 20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3일 제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참고로 같은 전북 출신 후배 의원인 김성주 의원의 간청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로서 "탄소소재 융·복합 기술개발 및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의 상임위 안건 상정과 통과에 힘썼고,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함께 이보다 더 우선적인 법안보다 본회의 통과가 되도록 노력했다. 수구초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듯.


2017년 5월에는 우상호 의원의 뒤를 이을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우원식 의원과 양자 대결을 하였으나 7표 차이로 아깝게 우원식 의원에게 승리를 내줘 친문 지지층들의 아쉬움을 샀다.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정 자본금을 2조 원에서 3조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지원법 개정안’에 대해 표결에 앞서 홍 의원은 반대토론을 통해 멕시코 볼레오 광산 등 연이은 투자실패로 부채 덩어리가 된 광물공사는 더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결국 부결되었다. 이 경우는 같은 집권 여당(소속 송기헌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가 자당 의원의 반대토론 후 표결에서 부결된 꽤 특이한 사례이다.


2018년 4월에는 전북 군산에 있는 한국 GM 공장 폐쇄로 촉발된 노사 간 대립을 놓고 민주당의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GM 본사와 노조 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중재하였고, 폐쇄된 군산공장에 남은 근로자 680명에 대해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시행하고, 무급휴직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임금 및 단체 협약은 데드라인을 57분 남겨둔 가운데 노조가 법정휴가, 상여금 지급방법, 귀성여비 및 휴가비, 학자금 등 일부 복리후생 항목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동의하면서 타결되었다고 한다. 


2018년 5월 4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칙을 지키면서도 통 큰 타협을 하는 역지사지의 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의 한국 GM 대책특별위 위원장으로서 정부와 노사 간 협의와 중재를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서, 여야가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입법과 정책, 예산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해서, 여당인 민주당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노웅래 의원과의 경쟁 끝에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3대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116명이 출석한 가운데 78표를 얻어 38표에 그친 노 의원을 2배 이상 앞섰다. 이번 원내대표 투표에 민주당 소속 의원 121명 중 116명, 그러니깐 현재 장관직을 수행 중인 5명을 제외하고 모든 의원들이 모였다. 그만큼 신임 원내대표에 거는 민주당 내부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취임 첫 행보로 단식 투쟁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았다. 둘 다 노동계 출신이고, 19대 국회 환노위에서 각각 여당 간사, 야당 간사를 맡아 노동 관련 법안과 정책을 조율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김 원내대표가 홍 신임 원내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홍 원내대표는 건강 챙기라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오후에 바로 협상하자고 말하자 아직 업무 파악이 안되었다고 협상을 뒤로 미루었다. 


5월 14일, 추경안 동시 통과 등을 조건으로 드루킹 특검을 수용했다. 민주당이 특검 수용으로 지방선거에 참가하는 의원 4명의 사직서가 본회의에서 처리되었고, 국회는 40여일 만에 정상화 되었다. 비록 야당의 요구대로 특검을 수용했지만 민주당은 사직서 처리와 체포 동의안, 그리고 추경안 처리의 실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특검법 처리에 소비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는 지방 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야당 입장에서는 특검을 관철했다는 명분 말고는 얻은 것이 없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특검 수용 사실이 알려진 초기에는 친문계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여론이 거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응하는 인원이 늘고 있다. 결국 한 차례 진통을 더 겪고, 5월 21일 정부 추경안과 드루킹 특검법이 동시에 국회를 통과했다. 


2018년 7월 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여성경제포럼에서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된 건 1, 2, 3차 협력업체들을 쥐어짠 결과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임금 소득 기여도가 굉장히 낮은데도 조세 부담은 오히려 가계에 비해 낮다. 삼성이 작년 순이익 60조 원 가운데 20조 원만 풀면 2백만 명에게 천만 원씩 더 줄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친재벌 성향의 보수 언론들과 수구-보수 성향의 누리꾼들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선동적인 발언이며, 특히나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데 신경 쓰라"는 당부를 한 직후 나온 발언으로 적절치 않다"며 홍영표 원내대표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사 사장들이 장충기에게 보낸 충성 문자가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7월 10일 법사위, 예결위, 산자위, 정보위, 국토위, 환노위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한 것 때문에 대노한 범진보계 누리꾼들에게 페이스북에서 큰 수난을 당하고 있는데다 한국당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극언까지 듣고 있다. 친문계 핵심 멤버인데 한국당 스파이라니 이들은 원내대표의 타이틀은 물론 6.13 선거 압승 업적, 자기 자신의 업적을 통 크게 말아 먹었다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합종연횡 면에서 연대해야 할 바른미래당과 평화와 정의의 모임을 홀대하여 장기적 이익을 갉아먹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 일 때문에 하반기 국회에도 공전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안 그래도 여전히 계류 중인 법안들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한국당에게 실질적인 이익과 명분을 준 셈이 되어, 훗날에 대통령하고 여당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싸움을 두려워하다 장기적 이익을 놓친 셈이라는 얘기로, 범진보 연합 과반으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될 일이었고 적어도 이 카드로 협박은 시도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민평당과 정의당은 표결 강행에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바미당도 뚜렷한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없으므로 반란표 나올까봐 불안하면 바미당까지 끼워주면 됐다. 바미당까지 꼈으면 자유당 포위 모양새가 되어 "몰아줬더니 오만하게 군다"는 역풍도 맞을 일이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의석수대로 배분하더라도 농해수위 등 인기 상임위를 자유당에게 주고 의정활동에 중요한 상임위는 뺏기지 말았어야 한다.



한편  이번 원 구성 협상 결과에 '야당 의석이 더 많으니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누리꾼이나 민주당 지지층은 툭하면 지지 철회하겠다는 강경파를 향하여 "민주당이 국회를 마음대로 이끄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다면 다음 총선 때 민주당을 최소 18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 만들면 된다. 180석을 먹었는데도 민주당이 머뭇거리면 그때 촛불로 뒤집으면 그만이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히려 이 협상 결과는 '표면상으로는 한국당이 가장 실익을 많이 챙겨간 거 같은데 실제로는 민주당의 압승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한국당이 가져간 상임위들은 법사위를 빼고 거의 다 지역구 관리에 용이한 곳이지,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될 만한 곳은 한 곳도 없으며,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영향을 끼칠 만한 상임위는 죄다 민주당이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법사위는 (야당 의원이 맡는다는 국회 전통상 야당에게) 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민주당이 80석이었고 한나라당 의석은 170석 이상을 넘나들던 18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의원이 맡았었다. 뼈는 민주당, 살은 한국당으로 완벽하게 나눠졌다. 이 정도로 확실하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은 결과는 어느 정도 청와대와 교감한 게 아니냐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출처 : https://namu.wiki/w/%ED%99%8D%EC%98%81%ED%91%9C]

대한민국 최초로 구독자 수 250만 명을 돌파한 먹방 유튜버 밴쯔


먹방으로 아프리카TV 방송을 시작했다. 쩝쩝대지 않고 리액션이 과하거나 일부러 높은 톤으로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으며, 먹으면서 주변을 더럽히지도 않고, 방송에서 욕을 하지 않아 인기가 많다. 한마디로 깔끔한 방송 매너에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깔끔하게 먹는다.


벤쯔는 먹는 양만으로 따졌을 때 아프리카TV에서 먹방을 하는 전체 BJ 중에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 유명한 신대방의 모 돈까스 집에서 대왕돈까스를 가뿐하게 해치웠고, 한남동의 유명 일본 라멘집에서도 점보라멘을 가볍게 해치웠다. 심지어 정준하가 하와이에서 도전했다 실패한 방석팬케이크도 어렵지 않게 해치웠다.


벤쯔 링크 방송을 보면 얼마나 먹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대부분 거의 천상계 푸드 파이터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말 맛 없기로 소문났던 신호등 치킨 먹방에는 기어이 실패하면서 신호등 치킨이 얼마나 큰 실패작이었는지 다시 한 번 교훈(...)을 얻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음식을 고루 먹는 편이나 중국 요리 등 맛이 강한 음식을 좀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벤쯔 유튜브 댓글을 보면 간간이 건강을 염려하는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 체중관리에 대해서 의심의 목소리가 많은데, 밴쯔의 운동량이 사실이고 방송 이외에는 음식을 소량만 섭취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음식 섭취량과 섭취물 흡수율은 반비례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실제로 흡수되어서 지방으로 전환되는 에너지는 보기보다 적다. 


다시 말해 흡수율로 따지면 일반인보다 대식을 하는 밴쯔의 에너지 흡수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끼에 몰아먹는다면 흡수율은 이보다 훨씬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밴쯔가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10분 내로 해치우는 유명 프로 푸드파이터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체형의 소유자이다. 밴쯔 역시 마찬가지로써 대사량이 높은 평균 체형 푸드파이터의 전형이다. 몇몇 유투버들은 한국의 키노시타 유우카라 카더라.


또한, 벤쯔의 몸매가 유지되는 이유로는 엄청난 운동량도 한몫 한다. 벤쯔 본인이 시청자 QNA서 언급한 바로는 몸관리를 위해 평소에 8~10시간가량의 운동을 하는데, 1~2시간가량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유산소 운동을 한다고 한다. 


특전사의 경우 3주일의 혹한기 훈련기간 동안 섭취하는 칼로리가 끼니당 1,500 kcal가 넘어가는데, 3주일 동안 10kg가량을 감량해서 나온다. 베어 그릴스의 경우, 현대의 성인 남성이 산에서 하루종일 움직이는 생활을 할 경우에는 하루에 6,000 kcal을 섭취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엑소 시우민 비하 유도 논란으로 인해, 엑소 팬들에게 이미지가 나빠졌다.


2016년 9월 21일, 서브채널 밴쯔의 ASMR을 개설했다. 씹는 소리를 강조하는 리얼사운드 먹방을 업로드하고 있다. 


아프리카TV 갑질 논란으로 2016년 10월 20일 아프리카 방송에서 아프리카TV와의 '파트너 BJ' 계약을 파기, 위약금을 지불한다고 발언하였으며, 유튜브로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2016년 10월 23일, 벤쯔는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시작했다.


2016년 12월 15일 개최된 "2016 아프리카 BJ 대상" 시상식에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참석했다. 


이미 아프리카TV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였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밴쯔와 함께 아프리카TV를 떠나 유튜브로 플랫폼을 이적한 사람들(대도서관, 풍월량, 양띵, 머독, 악어)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팅창에 밴쯔만 나오면 배신자라는 말이 도배 되었을 정도(...)그리고 수상하면서 "아프리카TV는 제게 친정 같은 곳이다. 앞으로 제 방송(아프리카TV 본인 계정)으로 방송을 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 다른 형들(BJ들) 방송의 게스트라도 참여하는 것은 괜찮겠죠?"라며 처음 아프리카TV를 떠날 때와는 다른 우호적인 발언을 하였으며, 끝으로 "트로피는 제 이름으로 나온 것이니 받겠는데, 상금(200만 원)은 제 것이 아닌 것 같으므로 기부하겠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마쳤다.



2017년 3월 14일, 역시 전직 아프리카TV BJ인 김이브님과 같은 날에 카카오TV에서 첫 방송을 시작하였다. 둘 다 스타PD 등급을 달고 시작한 것으로 봐서는 카카오TV 측과 계약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월부터 고작시리즈로 연어초밥 1개로 시작하여 고작시리즈 먹방을 진행하고 있다. 연어초밥 1개의 먹방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작시리즈 먹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자 고작시리즈 먹방을 시작했다고. 주로 밴쯔가 원본 음식물로 먹방을 진행하다 잠시 다른 용무로 인해 자리를 비운 순간 음식물이 밴쯔의 평소 먹방량 추정치에 근접하게 진화하는 것이 특징.


메르세데스-벤츠를 타고 싶어서 닉네임을 밴쯔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타고 다니는 차량은 BMW(...). 벤츠가 할인을 안 해서 BMW를 구입했다고 한다.


2015년 6월 철구와 음식 빨리 먹기 대결을 한 적이 있다. 종목은 삶은 계란 5개, 불닭볶음면 5개, 그리고 레몬 5개였다. 결과는 약 3분 50초 만에 다 먹은 밴쯔의 승리였다. 풀영상하이라이트 그런데 이 영상이 2018년 3월에 와서야 여초 커뮤니티쪽에 논란이 되는 바람 에 해당 영상들은 결국 내려갔다. 현재는 철구 시점 영상이 남아있다.


인기 때문에 푸드 파이트를 함께 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밴쯔 본인은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듯. 2015년 7월 10일 날 햄버거 10개 빨리 먹기 방송에서 그러한 제의를 피곤하게 여기며 더 이상 신청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많은 음식을 먹은 뒤에는 운동을 해서 칼로리를 다 소모한다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기사에 나온 운동량 정도로는 절대 소모할 수 없는 열량이다. 그저 체질. 관련 기사. VJ특공대에 출연한 전적이 있으며, 이 당시 방송에 나온 메뉴들은 중국 요리들이다.



키썸의 팬이다. 키썸이 밴쯔의 먹방 영상을 잘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수줍어하며 말도 더듬거리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둘 다 팬이라서 그런지 서로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지간한 치킨은 몇 마리씩 해치우는 밴쯔조차 정복하지 못한 치킨이 하나 있다. 바로 후르츠 치킨.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거의 절반 정도를 남기고 방송을 종료했다. 사실 이것도 다른 BJ들에 비하면 많이 먹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소프는 각 색깔별로 1조각씩 도합 3조각 먹고는 맛없다고 치킨을 씻어서 다시 튀겼는데 밴쯔는 이런 엄청난 물건을 반이나 먹은 거다. 본인도 먹으면서 어이가 없었던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 먹기도 전에도 "치킨을 딱 열었는데 기분이 안 좋은 건 처음"이라고 평했으며, 치킨에 조금 익숙해진다 했더니 떡을 먹고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나 맛이 끔찍했으면 방송 도중 집에 있는 양념이란 양념은 죄다 꺼내와서 곁들일 만한 걸 찾아와 먹어볼 수준이었다. 


중간에는 거실로 나가서 일부를 식구들이 먹던 일반 간장 치킨 몇 조각으로 바꿔오고 애지중지하며 먹기까지 했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이후 비빔면 먹방을 했다. 다친 친구에게 병x이라고 하면 정말 큰 욕이라며 끝까지 맛없다는 말은 안 했다 그 신호등 치킨을 먹은 식구들은 어땠을까 식구들 : 아 젠장 정만수 잠깐만... 몇 달 뒤 클리어하지 못하고 남긴 음식이 하나 더 생겼는데, 같은 회사의 유자 치킨(...) 밴쯔야 또 속냐!!


밴쯔도 온정돈까스의 디진다돈까스는 다 먹지 못했다. 근데 뭐 애초에 저건 정상적인 음식이라고 볼 수 없으니 논외로 쳐야 할지도...? 이건 양이 아니라 맵잖아


가끔 밴쯔의 팬들이 타 먹방 BJ 들의 유트브 영상 댓글란에서 그들을 밴쯔와 비교하며 타 먹방 BJ를 폄하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하다못해 전문 푸드파이터인 '고바야시 타케루'를 무시하며 "그 정도야 밴쯔가 그냥 이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할 정도... 한마디로 빠가 까를 양산하는 행동. 이로 인해 밴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밴쯔 본인에게도 해가 미치니 자제하는 것이 좋다.



[출처 : https://namu.wiki/w/%EB%B0%B4%EC%AF%94?from=%EB%B2%A4%EC%AF%94]

수도권 최고령 국회의원이자 현역 최다선 의원, 최경환과 더불어 친박의 좌장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직 기자.



대한민국의 제11대, 제13대~16대, 제18~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무소속이며, 지역구는 경기도 화성시 갑 지역이다. 20대 국회 기준 현역 최다선 국회의원이자 최경환과 더불어 친박계의 좌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때는 6.3 항쟁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정의로운 기자였고, 지금은 친박계의 좌장, 그리고 이제는 상도동계 중에서 성향이 180도 정도로 가장 크게 변화한 인물.


1943년,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생 때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병역을 이수하고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였다. 1980년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현장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5.18특파원리포트>에 내신기자 중 한 명으로서 이름을 올리고 기고했을 정도. 


후에 친박계 좌장으로서의 행동과 대비되는 것으로 당시의 서청원을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탄식할 일.


이후 그는 김영삼 의원과 관계를 맺고 정계에 진출하며 점차 상도동계 대표의원으로 성장한다. 이때의 지역구는 모두 현재 동작구 갑을 포함하는 동작구로 모교 중앙대와 김영삼 대통령의 자택이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높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조종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박실 후보와 민주정의당 허청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고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6] 같은 해 통일민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89년 통일민주당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당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 12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정무 제1장관을 겸임하였다. 이 때부터 보수정치인으로서 쭉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편 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투표에서 새천년민주당 이만섭 의원(당시 8선, 전 국회의장)에게 단 8표 차이로 패해서 의장이 되지 못했다. 당시 그는 5선이었으니 다음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영원히 없었다.


2002년 5월부터 2003년 1월까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대표라는 직함이지만 총재직에서 물러나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던 이회창 대선후보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2인자인 직함이었다. 


이후 이회창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대선 재검표를 주장했으나, 어찌됬던 노무현의 승리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아서 결국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이후 17대 총선은 탄핵여파가 워낙 컸던데다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 문제로 인해 불출마했다. 그리고 서청원이 20여년간 가지고있던 동작구 갑 지역구는 이 때 당선된 초선 의원인 열린우리당 소속의 전병헌이 12년간 가져간다. 그 전병헌도 서청원처럼 비리가 터졌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및 친이계와 사이가 상당히 나빠지면서 친이계의 친박계 공천학살 첫 표적이 되었다. 때문에 2008년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친박연대를 창당해서 당대표가 되었고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양정례(비례 1번), 김노식(비례 3번)의 비례대표직 금품 수수로 대법원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여담으로 충격적이지만 당시 대법원 상고심 변호사 중에서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위치한 현 대통령 문재인이 포함되었다.(....) 


그 뒤 친박연대가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는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화성시 갑 선거구로 옮겨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에 이미 70세의 고령이어서 그런지 심근경색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쓰냐는 민주통합당측 공세가 있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화성시 갑 지역구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건강 문제는 쑥 들어갔다. 거물답게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잔뜩 끌어왔다는 후문



박근혜정부 들어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무성 대표와 시시건건 마찰을 빚었는데,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김무성에게 밀려 2위로 떨어진 이후에도 친박 좌장 타이틀이란 영향력은 건재하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을 동원해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들이 공천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최경환 등 친박 의원들과 같이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진실한 친박)이란 민망한 표현을 쓰는 등 새누리당 내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그 결과...


20대 총선에서 122석을 얻고 원내 제2당으로 밀려난 새누리당의 대참패 이후, 김무성을 포함한 지도부는 전격 사퇴 수순에 들어갔는데도 별 소식이 없다. 아마도 수도권을 제외하고 경상도 등 새누리당의 주요 텃밭 지역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어찌어찌 당선에 성공했기 때문.



그런데 당 내부에서 국회의장에 서청원을 지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친박 대표주자인 서청원의 박 대통령 마케팅으로 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보면... 꿈도 희망도 없다. 결국 6월 8일 20대 국회의 전반기 의장을 더민주가 맡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무산.


6월 9일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 표결에서, 현역 최다선 의원으로서 임시 의장을 맡았다.


표결 후, 당선자인 정세균 의원에게 의장석을 넘겨주었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국회의장이 될 수도 있었을 본인에게는, 꽤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듯.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꿈이 국회의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위의 서술을 보아도 알 수 있듯, 국회의장 출마 자격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5선 시절, 즉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 자리에 도전했었고, 20대 국회에서야말로 의장석에 앉을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으나, 끝내 임시 의장만 맡아 봤으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할 만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섰던 라인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당에서 청산되어야 될 구태정치인 1호로 지목되었다. 최경환과 함께 출당처리된다 만다 하고 있을 정도이므로.


11월 22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비박계 인사들을 협박하고 모욕 주는 조폭과 같은 행태를 일삼았다고 주장하면서, 서청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하고 탈당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반독재 투쟁을 벌였던 그가 마지막 정치경력에 왜 이런 오명을 남기는지 안타깝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깠다.



남경필이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진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이 박근혜에게 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치밀한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7월 1일에 서청원 의원의 아들이 쌍방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기사엔 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인 서 모씨라 되어있지만, 현재 자유한국당에 서씨 성을 가진 국회의원은 서청원 뿐이다. 


20대 국회 본회의에 가장 많이 결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2위인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1.6배 정도 되는 수치로, 압도적인 결석을 자랑했다. 


제3당을 이끄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나, 진박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다만 본회의 참석률뿐만 아니라 상임위원회 참석률, 법안 발의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서 의원의 전반적인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역사상 최대 참패를 겪은 후, 2018년 6월 20일에 스스로 탈당 선언을 했다. 보수계의 몰락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였다. 


홍준표 체제에서 겨우 피했던 출당 등의 중징계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당의 선거 참패로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당협위원장도 아닌 서청원 의원이 스스로 보수 진영 내에서 무언가를 할 여지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도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가 몰락함에 따라 정치 생명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고, 또 서청원 의 나이도 이젠 7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정치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7월 13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 의장단을 선출하는 본회의에서 또(...) 임시 의장을 맡았다. 본래는 전반기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장이 퇴임하기 직전에 본회의를 주최해서 하반기 의장단을 선출하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5월 29일 정세균 의장의 임기가 만료된 후에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2018년 재보궐선거로 인해 국회 의장단 및 상임위 구성을 위한 여야 협상이 계속해서 미뤄졌기 때문에 의장단이 공석이었다. 그래서 또 서청원이 명목상 임시 의장 자리를 또 맡아서 의장단을 선출하게 된 것. 


후반기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문희상 의원이 맡게 되면서 결국 국회의장이라는 서청원의 꿈은 임시로 의장석에 앉아 본 걸로 끝나게 되었다.


[출처 : https://namu.wiki/w/%EC%84%9C%EC%B2%AD%EC%9B%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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