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金秉準)/1954년 3월 26일/경상북도 고령군/델라웨어 대학교 정치학 박사/무소속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남경필 현 경기도지사를 비판하며 새로운 인물을 경기도지사 선거로 내보내겠다고 했는데, 김병준이 언급되고 있었다. 


다만 남경필 도지사가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고 홍준표 대표도 막상 바른정당을 탈당하자마자 연락을 취하는 태도를 보면 사실상 경기지사 후보는 남 지사로 확정된 분위기이다. 김병준 교수는 그 대신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리고 2018년 3월 21일자로 홍문표 사무총장이 라디오에 출연하여 늦어도 서울시장 후보를 다음주에 공개할 것이라며 "언론에도 언급된 적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사실상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많은 언론과 정계 그리고 네티즌들이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가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허나, 그 또한 불출마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면서 또다시 불투명해진 상태. 결국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또다시 유야무야되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면서 또 다시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다가 2018년 7월 12일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의 최종 후보 가운데 하나로 압축되었다.이쯤되면 후보왕..



김병준 교수 과거 정치 이력...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실질적인 '브레인' 역할을 해온 자문학자 그룹의 리더로 노 대통령과는 국민대 교수로 재직 당시부터 1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고 전해진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을 위해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기도 했던 의리파로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력과 함께 보스 기질을 인정받았다. 


다만 주로 관료로 활동했지 국회 정치권에서 활동한 적은 없다.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 발전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어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4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는 대통령 정책실장으로서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근저에서 보좌했다.


2006년 7월에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곧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캐낸 제자의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였고 드러난 것도 '논문 중복보고·중복게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두 딸이 각각 최고 명문고인 대원외고와 대일외고에 편법으로 편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받아, 정운찬 서울대학교 총장과 김대용 대일외고 교감 등이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취임한 지 14일 만에 사퇴하였다. 추가로 논문 관련 사기혐의로 한나라당이 김병준 부총리를 고발까지 했었다. 그런데 10년 후엔 그 새누리당이 빨리 총리에 앉히자고 야당에 읍소를 하니 참 사람 앞 일은 모른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유권자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시민운동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으며, 학계에서도 지방분권 문제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평.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를 맡았다.


그리고 친박 함승희가 만든 ‘포럼 오늘과 내일’의 정책연구원을 맡아왔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실상, 박근혜 싱크탱크를 운영해 온 셈. 그래서 총리 지명자로 임명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빠지고 거국중립내각안이 떠오르자 김종인, 손학규 등과 함께 차기 총리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2016년 11월 2일 기어코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되었다. 세간엔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노무현카드를 꺼낸 것 아니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일 수락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 반발과 고민 때문인지 다음 날에 발표하겠다고 회견을 미뤘다. 총리 내정에 관해 여야는 물론 황교안 총리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당일 문자통보)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다 쉬운 해고의 당사자가 된 황교안 책임총리제의 일환으로 그가 참여정부 당시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박승주씨를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비박들은 대통령의 총리 지명 과정에 국회와의 어떠한 협의가 없었다며 인사청문회 거부 입장을 취했다. 야당은 인물 문제가 아닌 임명 절차에 대한 문제라며 인준을 거부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김병준 총리내정자에 대해 언급했다. 유시민 작가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해 정치감각이 많이 무뎌진것 같아서 이런 자리를 받아들인거 같아서 상당히 안타깝고, 차라리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나한테라도 물어봤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밝히며 안타깝게 생각했다.


11월 3일, 오후 2시경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정국 구상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미리 작성해온 글을 읽던 중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말하던 부분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본인도 성향상 박근혜정부와 상당부분 맞지 않는건 인정했지만, 국정마비사태만큼은 막고 싶어서 총리직을 수락했다고. 또 편가르지 않고 나라 걱정하는게 노무현정신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임명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고, 국회에서 인준해주지 않으면 군말없이 떠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박근혜정부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짤리기 전 마지막으로 꽂은 인물 아니냔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2008년에 사망한 경북 고령군 향우회장 이상달(우병우의 장인)의 5주기 추모식이 2013년 열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참석해서 "2003년 당시 서슬 퍼렇던 정권초기 민원조사 과정에서 부당하다며 비서관에게 호통치던 회장님의 기개를 잊을 수 없다. 



이는 청렴결백하고 투명한 경영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항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챙기셨다" 라며 고인 이상달을 추모했기 때문...


다만 본인은 고령군 향우회 소속으로 이상달 회장과만 친분이 있을 뿐, 우병우랑은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다. 언론에선 친노 인사 중 그래도 중립적 성향이 강하고 현재 주류랑은 거리가 좀 먼 관료, TK 출신인 김병준 교수를 뽑았다는 시각이 많다.


그 외 사실 10월 26일까지만 해도 안철수 전 대표의 추천으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입당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 왈 호남중진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괜히 분란을 키우는 것 같아 29일 총리내정을 수락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뒤통수 맞은 격이 된 국민의당 일부 당원들은 언짢은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이 직후 대통령 하야론을 내세우며 강경론을 펼친 것도 이런 사정이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병준 교수가 과연 총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당장 과거 10년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김병준 부총리 임용에 강하게 반발하며 논문 표절 문제에서 논문 중복보고, 중복게제, 두 딸들의 대원외고, 대일외고 편법 편입 의혹 등을 지적하며 이런 사람이기에 부총리라는 공직에 임명될 자격이 없음을 비판하였으며 김병준 본인도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기보다 스스로 사퇴를 해버렸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병준 내정자 둘 다 의지를 굽히지 않고 청문회를 강행할 시 자칫하면 새누리당에서 자신들이 10년전에 저격했던 공직 자격 미달의 이유들을 오히려 본인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실제 생길수도 있다. 다만 상술했듯 표절 문제는 2016년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했다.


일단 본인은 최대한 야당을 설득해보겠단 입장이긴 한데, 언론 인터뷰를 보면 총리 내정자직을 자진사퇴할 의사는 없어보인다. 과거 부총리직을 14일만에 사퇴한 것이 본인에겐 크나큰 충격이였기에 이번 총리직에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병준이 교수로 재직했던 국민대의 일부학생들은 2016년 11월 3일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자리입니다라고 주장하며 김병준 교수의 총리후보직 자진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내각구성추천권을 사용해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추천한 박승주씨도 논란이 되었는데, 그가 90년대 토속신앙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도심에서 '구국 천제'라는 이름의 굿판을 벌이는가 하면 2013년 펴낸 자서전에는 47번이나 전생을 체험했으며,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 장군이 자신에게 왕의 일기 '일성록'을 건냈다는 내용도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안 모 씨'를 자신의 큰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안 씨는 '구국천제'를 주도하기도 했고, 무속신앙과 관련 된 종교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예지력과 심령치료에 능하다고 한다.(...) 물론 개인의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자유야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해필 샤머니즘 논란이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시점에, 과연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장관으로 이런 인물이 적절한가, 이런 인물을 추천한 책임총리 내정자가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11월 7일 저녁 JTBC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여야청 합의가 되면 없어지는 존재, 20일이 지나면 자연적 지위 소멸"의 논리로 논란의 "지명 철회여부, 사퇴여부 문제"를 비켜갔다. 그런데..


11월 8일 오전, 결국 김병준 교수는 사실상 청와대에 의해 총리 내정자 자리를 소멸지명 철회당했다. 쉬운 해고로 들어왔다가 쉬운 해고의 당사자가 된 김병준 애초 청문회를 강행했어도 야당의 동의가 없는 한 총리로 인준될 가능성이 0%에 수렴했기 때문에 뻔한 결말이긴 했다. 심지어 여당측에서도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상당했기에 더더욱...


어쨌든 이로서 김병준 교수의 정치 활동은 사실상 끝난 셈. 다만 직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정식적으로 지명철회를 당한건 아니라면서, 여야청이 합의할 때까지 압박용으로라도 남아있겠다며 스스로 자진 사퇴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또 국회가 날 다시 지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면서 총리 지명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러한 행적을 두고, 여러모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직 요청을 수락한 상태에서 야당이 동의해줄 리가 없는 대통령의 총리 내정을 받아들여서 안철수의 당내 입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고 이는 안철수가 당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서 지지율 하락에도 기여했다. 



국민의당 소속인 이상돈 의원이 그를 인간이 아니다라는 엄청난 비난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김병준 자신이 무슨 이득을 본 것도 없고 체면만 깎인 채로 자연인으로 돌아갔으니...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대통령의 권위 실추로 인한 국정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파를 불문한 나름 '선의'에 입각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실제 총리 인준을 받아 그동안 비판을 받아온 박근혜 정부의 주요 내치 정책들을 앞장서 시정하거나, 설령 총리 인준을 못받더라도 이를 계기로 여야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합의를 앞당기도록 유도하여, 거국 중립내각을 통한 국정 수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발상이었던 것.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짓은 거국 중립내각 정도로 수습되기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잘못이었고, 이러한 민심의 분노를 확인한 정치권도 거부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무산되었다. 좋게 말해 순진한 거고, 나쁘게 말해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였던 셈.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B%B3%91%EC%A4%80]


대한민국의 정당인이자 정치학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로,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첫째, 둘째 형인 김홍일, 김홍업과는 배다른 형제다. 오랫동안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일 없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로 일하며 학자로 지내다가 안철수 전 대표와 관계된 모종의 일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민주당에 입당한 뒤 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시민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의 상임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63년 11월 12일 김대중과 이희호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 차남인 김홍일과 김홍업과는 이복 형제 지간이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82학번으로 입학하였다. 




재학 기간 동안 아버지의 정치적 고난을 목도해야 했으며, 당시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는 고려대에 이런저런 압력을 넣어서 그의 입학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1993년에야 고려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째 형인 김홍일과 둘째 형인 김홍업의 뒤를 이어 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학군 24기 출신으로 중위로 만기전역했다.


미국 포모나대학교 태평양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국민의 정부 시기. 김대중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5월 최규선 게이트 (불법 뇌물 자금 수수)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위반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억 원을 선고했다(2002노3189). 이후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 6000만 원을 선고받았고 그 후 2005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광복절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2016년 1월 4일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안철수가 이희호 여사와의 비공개 독대 자리에서 이희호 여사의 안철수 신당 지지 의사표현을 들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자, 즉각 "그런 거 없다. 어머니는 그냥 듣기만 하셨다"는 내용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국민의당 창당 멤버들이 연로한 어머니를 정치적 언플에 악용했다고 생각했고 이에 크게 격분했던지 정치와는 선을 긋고 지내던 기존의 태도를 바꾸고 2016년 1월 24일 국민의당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줄곧 안철수 전문 저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입당일에 열린 국회 기자회견에서 "2012년 대선 때 순수한 뜻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뛰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당이야말로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합쳐진 60년 민주당의 정통 본류이며, 더 이상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호남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분열의 수단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며 민주당 탈당파를 겨냥했다.


이미 입당 인사에서 총선에 나가겠단 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나중에라도 총선에 나가겠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나중에 분명히 밝히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 무려 15억 원을 뇌물로 받은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두 형들도 모두 감옥 신세를 져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나 평판을 떨어뜨렸는데, 민주당에서 과연 공천을 받아도 되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1년 전에 그 죗값을 다 치렀고, 김대중의 아들을 민주당이 받아들인다면 국민의당과의 정통성 논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후 문재인 대표는 1월 26일 김홍걸 교수 본인이 아예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출마설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었다. 총선에 공천을 받지 못한 대신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 문제에 대해선 "친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친문 의원은 1명 밖에 없더라"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하여 비대위의 후보 명단 발표로 당내에 분란이 일어나자, "A,B,C그룹안을 나눈 다음 투표를 하는 것은 당헌에도 어긋난다"는 발언을 하였다.


입당 이후 2월 6일에는 민주당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인 진짜가 나타났다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방송에 출연해서도 일측에서 제기된 국회의원 출마설을 거듭 일축하기도 하였으며, 당 입당에 앞서 자신에게 도움의 이야기를 건내준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 이른바 '진김(...)' 3인방을 공개했는데, 그 중 설훈, 김한정 의원과 김우철 민주당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 이 대표로 언급되었다.



20대 총선 기간 막판에는 문재인의 호남 선거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때 문재인은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 및 대선 불출마를 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는 패배했으나, 정작 총선 후에 문재인 지지율은 올랐기 때문. 비록 호남에서 패배한 것은 맞지만 문재인이 직접 지원 유세를 한 PK 지역에서 낙선을 각오하고 출마한 후보들이 8개 지역구에서 당선에 성공한 기적같은 결과를 이뤄냈고, 수도권에서 더민주 지지세가 집결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 


그리고 선관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득표율을 보면 더민주가 국민의당에게 패한 것은 맞지만, '전북의 맹주'라고 불리던 정동영 의원이 이제 재선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 김성주 후보에게 불과 0.7% 차이로 간신히 이기는 등 압도적 참패보다는 예상 외로 접전 구도가 많았기에 문재인이 섣불리 정계 은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다시 역전하기 시작하면서 16년 8월 기준으로 호남에서는 문재인이 지지율 1위를 회복했다.


2016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6주기 기념식에서 손학규가 "정치의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하자, "국민들께서 이미 20대 총선을 통해 새로운 판을 짜 주셨는데 무슨 새 판을 또 짠다는 것인가?"라며 손 전 지사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최측근인 박지원과는 앙숙관계이다. 김홍걸 입장에서는 어머니를 이용해 먹은 안철수의 '배후'이기도 하고 사실상 국민의당 기획자나 다름없는 박지원은, 본인이 아버지의 적자로 인정한 더불어민주당을 배신하고 나가 본가를 역공하는 배신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이자 현재 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은 노무현 아들인 노건호와고는 막역한 사이이다.



2017년 5월에는 광주 및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유세를 적극적으로 나서며 지역민심을 잡고자 하고 있다.  한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도 함께 유세를 하며 다녔다. 


나름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혈육의 화합이라는 점 덕에 일부 지지자들과 적지않은 수의 지역 주민들에게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결국 문재인이 대통령 당선에 성공하면서 당선기여를 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2018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석이 된 전남 영암·무안·신안에 전략공천이 될 거라는데, 이에 대해 김홍걸 의장은 3월 17일에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6·13 국회의원 재선거에 뜻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당에서 출마하라는 제안이 오면, 헌신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진일보한 답변을 내놨다. 


민주당 이춘석 사무총장은 "6·13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김 의장 출마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해당 지역구에는 서삼석 지역위원장이 공천을 받았다. 


2018년 6월 28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에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는 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수의 강제징용자의 유골 을 고려한 것과, 남북한 모두가 공감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북측 민화협도 이에 대해서 봄부터 논의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통일부의 승인을 7월 12일날 받았으며, 14일에 베이징을 경유하여 방북하였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D%99%8D%EA%B1%B8]

1947년 경기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네살때인 1950년 6.25 전쟁중 피난하여 수원에 정착했다. 서호초등학교 수원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재경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하였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비밀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할 때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 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를 역임하였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중용되어 장차관 5번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경선 과정에서 패배한 것이기에 의원직은 유지하였다. 2011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야당에 유리한 구도였고, 출구조사에서도 앞섰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새누리당의 남경필 후보에게 1%차이로 석패하면서 잠시 야인 신분이 되었다. 


낙선 후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이때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초로 열린 정책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 정책정당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새롭게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원래의 지역구는 박광온이 자신이 사퇴했을 때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이 선거구를 옮겼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았으며, 문재인의 당선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직인 남경필 지사와의 경기도지사 리매치가 점쳐졌으나,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전해철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아무래도 경선까지 포함해서 두 번이나 패배한 만큼 또 출마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듯. 또한 70대의 많은 나이도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 : 청년들이 정치를 지망하는 이유는 출세와 욕심 때문?

2017년 9월 21일 "제정임의 문답쇼"에 출연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정치가를 꿈꾸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청년들이 정치를 돈벌이의 수단이나 생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청년들이 그저 돈과 출세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으로 매도하는 발언을 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을려는 욕심을 가지는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정치는 생업이 아니다.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된다. 이른 나이(젊은이, 청년)에 정치를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것은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정 그렇게 정치가 하고 싶거든 자기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성공하고 인정받은 후에 그걸 발판으로 들어와야 한다."

라는 내용으로 발언을 했다. 따라서 청년의 정치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젊은 청년들이 정치를 지망하는 이유를 치부의 수단이나 출세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욕심이라고 보는 관점은 매우 부당하며 김진표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도 그러려니 넘겨짚은 발언이다. 


우선 청년들 중에도 물론 돈과 출세를 위해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모든 청년들이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청년 전체를 전부 거론하며 발언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발언이다. 게다가 청년의 정치참여 또한 시민의 정당한 권리행사이다.


오늘날의 청년들이 정치를 지망하는 진짜 이유는 그동안 한국의 기성 정치인이 너무나도 현실에 어두운 채로 시대착오적인 구태정치만을 반복해 온 데 대한 분노와 절망에 있다. 


한국의 기성정치인들이 한결 같이 엘리트기득권카르텔에 갇혀 서민이나 중하류층과 괴리되어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현실을 개혁하기는 커녕 기득권과 타협하며 그저 트러블 없앤다고 차떼고 포떼고 장기하듯 근본적인 원인은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하나마나한 근시안적이고 언발에 오줌누기에 가까운 정책만을 거듭한 것을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거기다 정부 눈먼돈을 업자에게 뿌리는데나 골몰해서 돈은 돈대로 들고 실효성은 전혀 없는 정책(ex 10년동안 총 80조 들어간 저출산 정책등)을 정책수혜자나 당사자의 목소리는 도외시 한 채 변화 없이 계속해 온 것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 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정치를 지망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청년이 정치에 관심 가지고 정치를 지망하게 된 이유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불러온 기성세대와 기성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절망인데 그것을 치부나 돈과 권력,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매도한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표적인 모피아(경제마피아의 의미)로 불리는 김진표 본인은 노무현 정부시절 경제부장관을 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기업과 기득권에게 유리한 정치를 한 인물로서 수많은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자신이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저출산에 기여한 인물 중 한명인데도 지난 정치에 대한 조금의 반성이나 사과는 커녕 지금껏 아주 진보적이고 개혁적으로 잘 해온 것처럼 인터뷰하는 것은 후안무치하게 보인다.(심지어 교육부총리 시절에도 경쟁과 형평성과 학생인권 사이에서 갈피 못잡다 내신 수능 본고사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차라리 청년 시절에 인내하여 본인 분야의 전문성을 확실히 쌓았고 그걸 바탕으로 정계에 들어와 실무적인 업적을 좋은 쪽으로 쌓아올렸다고 평가받는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했어도 조금이나마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년들의 일관된 부정적인 반응은 본인의 정치관에 대한 논란과 별도로 경제 및 교육 분야에서 김진표의 정치인으로서의 업적 또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함을 의미할지도.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C%A7%84%ED%91%9C(%EC%A0%95%EC%B9%98%EC%9D%B8)]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1953년 7월 27일 생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이다. 

MBC 기자 및 앵커 출신으로서 정계에 입문하여, 15, 16, 18, 20대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를 지냈다.


전라북도 도의원을 지낸 아버지(순창군)로부터 태어났다. 전주시에서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재수로 입학해 졸업했다.


당시 운동권으로 지냈다가 구금된 적이 있었으며, 아버지를 여의고 대학시절에는 서울에서 옷을 팔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강제징집 되고나서 제33보병사단(현 17사단) 사단 본부대 행정병으로 군 복무 후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우여곡절의 학업 끝에 1978년 문화방송(MBC)로 입사한 뒤 대학까지 졸업하여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추억이 되어버린 정동영의 앵커 시절


문화방송에 입사한 뒤 기자를 거쳐 오른 뉴스 앵커는 그의 대표적인 커리어라고 할 수 있다.


기자 시절에는 5.18 민주화운동에 현장 특파원으로 취재한 적이 있었지만, 취재 내용은 보도되지 못했다. 


주미 특파원으로 지내는 동안 1984년 웨일스 대학교 언론학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걸프전과 독일 통일 등 굵직한 사건을 현장취재한 적도 있었다. 물론 전두환을 찬양하는 흑역사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때는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했기 때문에 전두환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1995년 12월 3일 전두환 구속 당시 MBC 뉴스데스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뉴스 앵커로 지내면서 억압받는 언론 상황에서도 소신있는 보도로 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며 명품 앵커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마감뉴스인 0시 뉴스 앵커로 재직했는데 언론인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정권에 반하는 보도를 하여 '여소야대' 정국이 되어버린 일은 유명한 일화.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에 취재하던 도중에 좀 흑역사스러운 일도 있었기는 했다. 여하간 삼풍백화점 사건으로 본인이 느낀 바가 있어서 정계에 입문하기는 했지만.


1996년 김대중 당시 총재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뒤로는 정치인으로 완전히 전업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 오탄 대신 전주시 덕진구 지역구로 출마하여 전국 최다 득표(97,858표)를 달성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2017년 7월 11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2017년 8월 27일에 열리는 국민의당 전당대회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8월 27일, 국민의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내내 안철수 후보의 가장 강력한 당권 경쟁자로 거론되었으나 안철수 후보가 약 700여표 차이로 가까스로 결선투표 없이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28.4%(2위)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광주에 지역구를 둔 천정배 후보(16.6%, 3위)에게 거의 더블 스코어에 달하는 표차를 냈고, 국민의당의 지지 기반인 호남권, 특히 전북을 싹쓸이했다고 한다. 노선이 유사했던 천정배 후보의 득표율까지 합하면 45.0%에 달해 당내 非안철수 성향의 호남계의 새로운 얼굴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중이다.


10월에는 안철수 대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어그러지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안 대표를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과 더불어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걸로 알려진 정동영 의원은 10월 26일 오전 가톨릭평화방송의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합당과 국민의당 소속 시도당 지역위원장들의 일괄 사퇴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여기에 대해서는 (안철수 대표가)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철수 대표가 혹시 사퇴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일각에서는 이런 리더십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느냐. 대표직을 물러나고 비상대책위를 꾸리라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애초부터 안 대표가 등장한 것이 무리한 등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안철수 대표의 사퇴를 우회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11월 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뽑은 '2017 국정감사' 우수의원 20인에 선정됐다. 

경실련은 선정이유로 정동영 의원은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후분양제 도입과 공공택지 매각 금지, 부영 특혜, 인천공항 헐값 매각 문제 등을 집중 제기했다"면서 "정책국감 속 빛난 우수의원 20인에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국정감사기간 중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 문제를 밝히고, 적폐청산을 요구하는데 앞장서며 최근 부실시공으로 논란이 된 부영주택이 박근혜 정부 시절 주택도시기금을 독식한 것과 이명박 정부의 인천국제공항 헐값 매각 시도 등을 밝히며 언론과 국민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2월 6일, 통합신당의 합류를 거부하며 국민의당을 탈당, 막무가내식 합당을 추진하는 안철수를 뒤로하고 국민의당 개혁파가 추진하는 민주평화당에 합류했다. 



이날 공식 출범한 민평당은 창당선언을 통해 최저임금 ·비정규직·청년실업과 노인빈곤 등 민생현안 해결에 집중, 햇볕정책 계승·발전을 통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실현, 다당제 민주주의 실현 및 분권형 개헌 추진, 철저한 적폐청산과 국가대개혁으로 촛불시민혁명 완성, 지역·세대·성별·인종 등 차별없는 평등 사회 구현 등을 약속했다. 


초대 지도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민주평화당의 대표급 간판인사로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7일,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인터넷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의원이 정치적 희생양이 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 2012년 총선 때 ‘정동영 죽이기’ 댓글 공작. 가 권력으로부터 정동영 죽이기 작업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둔 지난 2012년 총선 때 진행됐다. 


실제 정동영 의원은 8일 국회에서 전북기자 간담회에서 “MB 정부 당시 국군 기무사령부가 선거에 개입하고 노골적인 ‘정동영 죽이기’를 한 사실이 어제 한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며 “국민 세금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은 참으로 경악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정 의원은 “2012년 기무사 요원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계정에서 나를 비롯한 야권 정치인사들을 비난하는 댓글 3만 개가 확인됐다.”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2018년 6월 13일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는 정의당과 교섭단체를 유지해야 하는 당의 사정상 자신이 직접 출마하는 대신,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렇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그의 명성에 흠집이 났다. 지원 유세와 직접 출마의 정도는 감안해야겠지만 전북 전주시 병 선거구에서만 4선을 지낸 '전북의 맹주'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었던 데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그가 지원 유세에 나섰음에도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인 게 증명됐기 때문. 


다만 지역구인 전주 덕진구에서의 민주평화당 광역비례득표율(10.11%)이 전주 완산구 광역비례득표율(8.93%), 전북 광역비례득표율(9.34%)를 모두 상회해 체면치례는 했다는 평이다.


민주평화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평화당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표적인 민주평화당 간판인사로 손꼽히는 현역 의원이고, 안철수 때문에 지난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당권도전에 실패했지만 건실한 2위 득표를 기록했으며, 제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를 역임해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번에 선출되는 대표의 임기가 21대 총선에 걸쳐져 있고, 민주평화당의 인지도가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정동영처럼 무게감 있고 대중 인지도가 높은 거물급 인사가 당 대표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A0%95%EB%8F%99%EC%98%81]


박근혜나 박근혜정부를 두고 정계와 국민들이 쏟아낸 '고조선 제정일치', '샤머니즘 정권' 등의 비판들은 전부 이 논란에서 비롯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주요 문제점에서 나온 것처럼, 이번 사태에서 이전까지 박근혜를 지지했던 보수 성향의 시민들조차도 등을 돌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이 사이비 종교 논란이다. 


박근혜가 이런 논란에 휩싸인 까닭은 이렇다. 

-대통령이 국가의 기밀 문서를 일개 민간인에게 거리낌 없이 넘기고, 정치적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데 하나하나 점검 받았으며,

-온갖 특권과 특혜를 안겨주는가 하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유가 

-고작 '친밀감'이나 '우정'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대중과 여론은 납득하지 못했다. 


이것은 탄핵이 이뤄진 2017년 3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순은 누구인가..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 최순실은 대기업 총수처럼 막대한 자본이 있거나 재계 인맥이 있다는 증거를 보이지도 못했다. 

- 탄탄한 정치 기반과 능력도, 활동 경험도 없다. 

- 박근혜에게 정치외교학, 경제학, 법학을 비롯해 국정을 조언할 능력이 있다고 검증 받은 지식인도 아니다. - 하다못해 같은 피를 나눈 형제도, 혼맥으로 엮인 친인척도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는 동복/이복 형제 남매이자 사촌 자매인 박근령, 박지만, 박재옥, 박영옥, 박계옥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거나 교류조차도 거의 없다. 


박지만은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를 언급할 때, '피보다 진한 물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 뿐만 아니라 박근혜는 각각 이들의 배우자들인 이복형부 고(故) 한병기(박재옥의 남편)와 제부 신동욱(박근령의 남편), 올케 서향희(박지만의 부인), 사촌형부 김종필(박영옥의 남편), 사촌형부 고(故) 김용태(박계옥의 남편)등과는 왕래와 협력이 매우 적었다. 


심지어 신동욱과 김종필은 박근혜와는 견원지간이었는데 신동욱의 경우 여동생 박근령이 신동욱과 재혼하려는 것을 박근혜 본인이 결사 반대했었고 이후에 신동욱은 박근혜가 박근령과의 결혼 과정에서 보인 그녀의 행태를 맹비난했다. 


김종필과는 박정희 사망 이후에 각각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면서 사이가 나빠졌고 특히 김종필은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나쁜 점만을 골라 닯았다고 박근혜와 그녀의 여동생인 박근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는 등 신동욱과 박근혜만큼이나 극악은 아니었지만 인간관계가 매우 안 좋았다. 


그리고 박근혜는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5년에 사촌 언니이자 김종필의 부인이었던 박영옥이 노환으로 사망했을 당시 박영옥의 장례식에 잠깐 참석하고 청와대로 돌아갔다. 




따라서 시민들로선 도대체 뭘 보고 박근혜와 최순실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단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문이 생길 뿐이다.


만약 박근혜가 광신도 수준으로 기성 종교의 열렬한 신자라서 이 종교의 성직자, 가령 기독교의 사제나 목사, 불교의 승려 등과 유착 관계를 맺고 이들에게 국정을 맡겼다고 해도 이것은 엄청난 국기 문란이다. 그런데 그조차도 아닌 사이비 종교라는 건 더욱 큰 문제가 된다.


게다가 일반적인 추측이나 설과 달리, 집권 기간 동안 제기되었던 온갖 의혹들에 이 사이비 종교란 요소만 대입하면 모든 어색함이 깔끔하게 풀린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가설이 설득력을 얻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화법 문서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주의 기운', '혼', 국정화 교과서 논란 당시 썼던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와 같은 발언이다.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무종교인임에도 무속인이나 점쟁이가 써먹을 법한 단어를 썼는지 모두 의아해 했는데, 이 가설 하나로 설명이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집권 기간 내내 언론은 물론이고 정계 인사들과 관료들, 심지어 가족들(여동생 박근령, 남동생 박지만 등)과도 교류를 거부하여 소통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박근혜가, 왜 유독 최순실에게는 국정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적인 문제까지 모두 위임하고 청와대 행정관들에게 시다바리 노릇까지 시켰는지, 그리고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를 위해 관료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거나 측근 인사들을 동원하는 등,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경우 심각한 정치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는지 그러한 의문들 역시 간단히 풀린다. 


한때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들으며 비판적인 정치 평론가들에게도 권력 획득 능력에 탁월하다는 점을 인정받은 인물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앞뒤도 맞지 않고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사이비 종교의 신도여서 그런 것이라면 설명이 정말 잘 된다.


정황 문제로 넘어가면 더욱 심각하다. 


현재 각 언론사들은 최순실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전횡만이 아니라, 최순실 이전에 사실상 측근 역할을 해왔던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인인 최태민과 대통령의 관계 또한 끊임없이 조명하고 있다. 또한 특정 종교 단체들과 정권 사이의 연관성 또한 거론되고 있으며, 각 인물들과 종교 단체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통일교는 아무도 종적을 모른다고 하던 최순실과 극비리에 단독 인터뷰를 세계일보를 통해 게시하는 등,세교와 더불어 사이비설을 더욱더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기독교계에서 대표적인 이단이자, 사이비로 손꼽히고 있는 악질적인 종교 단체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 대통령 사이의 연관설 또한 대두되는 등, 사실상 대통령과 사이비 종교단체들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기는커녕 더욱 더 증폭되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어처구니 없는 일루미나티류의 음모론, 여당을 비난하기 위한 삼류 흑색선전 정도로 겨우 취급되었을 이야기였을 것이다. 사실 그렇기에 지금껏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더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신자 설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루머나 가십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아니라 검증된 언론인, (만약 사실이 아니었을 경우 후폭풍이 가볍지 않을) 여·야권의 거물 정치인, 평론가들까지 다수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음모론 나부랭이와 격이 다르다.


심지어 AP통신, BBC, 가디언, 미국 공영방송 NPR, 워싱턴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즈 등 한국을 비롯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대 언론사들 역시 이 사이비 종교 논란을 대서특필했다.

 


알다시피 이들은 아무 가십이나 마구 싣는 찌라시 혹은 황색언론지가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종류의 가십을 함부로 실었다가는 자기네 명성을 깎을까 두려워하여 최대한 꺼리는 언론사들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G20 멤버씩이나 한다는 나라의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 손아귀에 놀아나고 온 나라가 거기에 지배 당하고 있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는 것은 이들이 보기에도 가십 수준을 넘어서서 엄청나게 사실적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덕분에 각종 커뮤니티부터 심지어 박근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일베저장소까지 박근혜가 어머니 육영수와 아버지 박정희의 연이은 비명횡사로 영세교 혹은 무당 최태민 & 최순실 부녀(父女)에게 빠져든 사이비 신자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것을 비꼬는 쪽이든 진지하게 비난하는 쪽이든, 이 사이비 신도 설을 박근혜의 멍청함을 웃음거리로 삼고 즐기려는 목적이든지 박근혜 정권의 답 안 나오는 무능과 추태를 비난하기 위해서 끄집어내기 위해 만든 조롱거리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무섭다. 


원래 이와 같은 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거나, 저격과 주작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의 극소수의 인지 부조화 집단을 제외한 대다수의 커뮤니티가 이 설에 대해서는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추가로 이 아래의 사항들을 볼 때 참고해 봐야 할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여동생인 박근령과 제부인 신동욱의 발언들이다. 먼저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이 

- 첫 번째로, 육영수는 이미 최태민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3남매(근혜, 근령, 지만)에게 조심할 것을 생전에 신신당부했다는 점.  

- 두 번째는 뉴스앤조이에서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9월경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했던 발언을 재확인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가 알아낸 것. 이때, 신동욱은 박근혜의 대통령 선거 지원을 위해서 신천지와 통일교 측을 방문했다고 발언했고, 이 내용을 뉴스엔조이 측에서 다시 한번 확인차 질의했을 때 "맞는다"라고 재확인하면서 벌어진 것, 

- 그리고 이때 추가로, "그 당시 신천지 외에도 대순진리회, 증산도,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붓다필드, 라엘리안 무브먼트, 사이언톨로지교, JMS, 하나님의교회 등 기타 여러 국내외의 사이비종교나 이단 종파 등에서 다 찾아갔다."고 하면서 이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87년에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 산 210에 위치한 (주)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 사건. 일각에서는 자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집단 변사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한다(사이비 종교의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박순자는 자신의 병을 고친 게 신이라고 믿어서였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문했고, 다시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 신도가 되었다. 


이후 박순자는 구원파를 이탈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떨어져 나와서 시한부 종말론을 숭상하는 사이비 종교를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양이었다. 오대양이라는 명칭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데서 나왔다고 한다.


오대양 교단은 유치원과 양로원과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사업을 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고, 겉으로는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 속내는 신도들의 자녀를 세뇌하게 해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유도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단다.


더불어 신도들과 신도들의 자녀들을 모아 집단으로 생활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람답지 않게 통제했다. 부부들에게는 각방을 쓰고 금욕생활을 강요했고 외출도 금지했다. 


2주에 한 번씩 그것도 많은 사람들끼리 단체로 외출하는 것만 허용했고 외출 후에는 반드시 외출 시에 같이 나간 상대방이 밖에서 했던 모든 행적을 일일히 보고하도록 했한다. 그리고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이란 것을 가졌는데 이때 신도들은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토해야 했고 규율을 어긴 것이 드러나면, 벌받는다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집단 구타당했다. 


딸이 어머니가 잘못한 것을 처벌한다면서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어머니는 이것을 감사해 하는 황당한 일까지 있었단다. 


교주 박순자는 갑자기 오대양을 기업으로 운영하기 시작 1984년 공예품 제조회사를 만들면서 회사명도 오대양으로 짓는다. 처음 오대양은 대전에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86년 4월, 일본의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거액이라고 할 7억원을 투자해 전자 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사기당한 것으로 드러나 사업은 실패했다.



이 손실을 매꾸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라고 명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갖다 바친 결과,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서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 


당연히 채무자들에게 독촉과 사채이자가 쌓여 갔고 가운데 박순자에게 7억원을 빌려 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려고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당하자 이상배는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채권자들도 박순자와 오대양을 고소하면서 경찰은 사기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됐다.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은 열성 신도와 자신의 가족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의 식당 천장에 4일간 숨었다.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 모 씨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장에서 죽어 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렸다. 박순자의 남편이 경찰에 오후 4시경 신고해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 현장에서는 사망한 사람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이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다"라거나 "xx도 지금 매우 고통을 받고 있다", "xx가 꿈을 꿨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더라", "남자는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등등의 내용이었단다. 


메모 내용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음독하고 죽은게 아닌가 했지만, 경찰의 부검 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은 대신 하이드라민이라는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다. 직접 사인은 목졸려 죽은 것으로 나왔기에 경찰은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목이 졸려 죽은 것으로 보았다.


경찰 당국은,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인 이경수에게 자신을 목졸라 죽이게 한 뒤 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목졸라 죽이고서 여자들이 모두 죽은 것이 확인되자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한 뒤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했다.


이경수의 시신이 무릎을 구부린 채 매달려 있던 탓에 이것을 타살의 증거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발받침이 없거나 목을 매단 곳이 낮을 때 무릎을 꿇는 등으로 자살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믿기지는 않겠지만) 엎드린 자세로 목매달아 죽는 때도 있다. 


사망자들의 사망 정황은 드러났다지만,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왜 자살했는지는 명확히 드러난 바가 없이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경찰 당국은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보이는 오대양 직원 11명을 공개 수배했지만, 이 사람들은 그때는 잡히지 않았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건 1991년 7월, 사건 당시 수배되었던 오대양 직원들 중 6명이 자수하면서 의문점들이 일부 밝혀졌다. 자수한 사람들의 진술로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주목받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이 이미 사건 발생 전에 반성의 시간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된 뒤 암매장당한 것이 밝혀졌다.


이 사람들의 자수로 사건이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되었지만, 검찰 당국도 1987년 경찰의 수사처럼 32명은 집단 자살로 결론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일부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모처에서 살해당하고서 공장 식당의 천장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을 감식했던 경관은 현장의 상황상 다른 곳에서 살해되었다는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사망자들 중 여자들을 부검하니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기에 죽기 전에 강간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부검의는 국과수의 정액 양성 반응은 오류라고 반박했다.


1987년 경찰이 결론한 대로 32명 중 박순자를 포함한 29명은 목이 졸려 살해당했고 박순자의 두 아들과 공장장 이경수는 목을 매 죽은 것으로 검찰도 결론했다. 그러나 과연 이 사람들이 자의에 의해서 죽었는지면 타의에 의해 죽음을 강요받았는지는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채 미스테리로 남았다. 


당시 사건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와중에 터져나와서 사회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무려 270여 명에 달했고 이 사람들은 이후 5공 특위에 오대양 사건도 조사해 달라고 요구해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딱히 새로운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당시 박순자가 빌린 돈(사채 80억 + 나머지 = 약 170억)이 전 세모그룹 회장인 유병언이 목사로 있던 기독교 복음 침례교회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를 했지만, 결국 유병언 회장은 무혐의 처리로 풀려났고, 당시 세모그룹은 오대양 사건으로 부도를 맞게 되었다.


가이아나에서 벌어진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과 두루 유사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언론에선 사이비 종교에의 관심을 환기하게 하기도 했다.


1998년에 개봉된 퇴마록 영화판의 초반에서 오대양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 특공대가 사교 집단의 아지트에 출동했는데 건물에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경찰 특공대원의 보안경 위로 핏방울이 하나 떨어지고 천장을 수색하니 집단 자살한 사교 신도들의 시체들이 발견되는 대목이 그것인데 천장 위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오대양 사건에서 모티브를 삼은 듯하다.


월간조선, SBS 그것이 알고싶다, 시사정경 등 일부 언론에서는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언론의 지나친 보도 경쟁과 이권에 관련된 제보자들의 편파스러운 제보, 일부 정치인의 정치상 이용 등이 어우러져 근거 없는 추측과 오보의 대표 사례라는 주장도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8%A4%EB%8C%80%EC%96%91%20%EC%A7%91%EB%8B%A8%20%EC%9E%90%EC%82%B4%EC%82%AC%EA%B1%B4#s-5]



은수미 특정 기업의 차량/운전기사 제공 논란 



20대 총선 이후인 2016년 6월부터 1년간 특정 기업으로부터 차량과 기사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기업은 중국 유명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한국총판이며 대표는 해외에서 불법 사이트를 운영해 수백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때 운전기사로 일했던 A씨는 26일에 중국 유명 스마트폰 한국총판인 K사 법인이사를 통해 은수미 후보를 소개받아 1년간 운전기사로 일했고, 차량과 급여 200만 원, 유류비, 통행료 등은 모두 회사에서 지급해줬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2016년 12월부터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생계가 곤란하게 되어서 그만두었고, 또 급여를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은수미 후보의 운전 기사로 일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벌금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해당 내용을 밝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추가로 A씨는 자신은 가장이며 아이까지 있기에 생업을 마다하고 자원봉사를 할 수 없었으며 몇 만 원씩 주차요금이 나와도 은수미 측은 한 번도 물어보지도, 지불하지 않았다며 이는 자원봉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이 한 것은 생업이며 업체에서 월급과 기타 비용을 지급받았다고 말했다.


은수미 후보 측에서는 A씨가 그저 자원봉사 차원에서 은 후보를 도운 것으로 알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콘서트는 의전은 보좌관이 담당했으며 안내는 자원봉사자가 담당한 것이기에 자신과 직접 관련된 사항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후 은수미 성남시장 후보자는 SNS에 입장문을 올리고 운전기사 최모 씨는 순수한 자원봉사자였으며 또 연루 의혹이 불거진 조폭 출신 사업가로부터 "한 푼의 불법 정치자금도 받지 않았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해명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의견은 삭제하고 그러한 의견을 남기는 사용자는 차단하는 등, 제대로 된 소통을 하려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선 한때 네이버 실검 1위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화제가 됐으나, 어째서인지 04월 26일에 네이버에 검색을 해봐도 관련 기사가 네이버에 업데이트되지 않았기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의 검증에 허술하게 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기업과 관련된 조폭(설마... 성남 마피아파?)은 이재명 전 성남시장과도 업무협약을 맺었고, 거기에 성남 주빌리은행에도 후원하였다고 한다.




성남에서 이름을 날리는 조폭이었으며 정관계에 로비를 하며 온갖 이권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있기 때문에, 이 사안이 본격적으로 터진다면 20대 국회 성남시 소속 국회의원들은 몰라도 18, 19대 국회 당시 성남시 소속 국회의원-도의원-시의원까지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 성남시 정치권 전체에 파급력을 미칠 사항 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논란에 대해 아직 수사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됐으며 검찰 수사에서 해당 사항에 대해 고의성과 대가성을 확실하게 검증하고 나서 다뤄야 할 논란들이라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몰랐다면 은수미 본인에게 운전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뽑았다는 논란은 생길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책임 추궁은 무리라는 것. 즉 은수미가 대상 운전사가 해당 기업의 지원을 받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며 다른 후원에 대해서도 대가성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운전기사 본인부터가 자신이 해당 업체/조폭에게서 돈을 받고 운전수를 해줬다는 것을 은수미 본인도 알고 있었다는 진술" 을 해주지를 않는 상황이다. 



추가로 성남시장인 이재명이 성남시와 업무 협약을 맺었을 때 대상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 그리고 해당 협약등을 통해 서로 주고 받은 대가성, 청탁이 있었는지도 확인부터 하라는 논란도 추가되었다. 왜냐하면 당사자인 인물이 조폭출신이지만 검찰에서 문제 인물로 확인되어 조사를 통해 구속된 시기가 2017년 말이었고 정작 문제삼은 성남시가 해당 계약을 체결하던 시기는 2015년 말이었다. 


이전에 있었던 북콘서트에서 하였던 의전을 해당 기업/조폭이 지원했다는 언론의 보도들도 추가로 나오고 있다.


2018년 4월 26일 은수미가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되자, 이 사건을 거론하며 바른미래당에서는 논평을 통해 "은 후보 측은 운전기사가 자원봉사자인 줄 알았다고 변명하는데 기름값과 주차료 등 유지비는 어떤 명목으로 알고 있었느냐"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은 후보는 후보를 사퇴하고 검찰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 은 후보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오 한국당 성남시장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은 후보는 성남소재 기업으로부터 무상으로 협찬 받은 의혹을 적극 사죄하고, 성남시장 후보에서 즉각 사퇴하라"며 "본격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선거판을 흐리는 은 후보의 의혹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은수미의 운전기사란 얘기는 맞지 않다는 말도 있다. 멀리 갈 때에 도움을 받았던 운전을 해주던 자원봉사자였다고 은수미 의원은 해명했으며 그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도 한 명이었고 그 비중조차도 그 중에 10%도 안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운전을 전담했던 운전기사란 표현은 맞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자원봉사자에 대해 수고비나 식비를 지급하여서 선관위에 고발당한 사례들이 있는 만큼 선거운동에 관련하여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 수당, 실비 이외에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자원봉사자등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검찰의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이 필요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아예 운전비서관은 자원봉사를 할 수 없는 직책으로 묶여 있다. 운전기사(운전비서관)은 경비를 지출해야하는데, 그 경비를 누가 지출할 것인지를 놓고 분쟁이 생기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아예 운전비서관은 정식 채용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오로지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다. 은수미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천된 이후 정치인이긴 했지만 현직을 맡는 것이 없었으므로 이 채용 의무 규제를 빠져나간 것이고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더불어민주당 측에도 불똥이 튀게 생겼는데, 19대 대선때 안철수 후보가 조폭논란에 휩싸일 때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비판했는데 오히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성남시장 후보가 조폭논란에 연루되자 내로남불이라며 민주당을 비판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은수미와 이재명을 같이 언급하며 '더불어민주당은 조폭정당인가? 아니면 조폭을 하수인으로 둔 정당인가?'란 논평을 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이미 증권가 찌라시처럼 3월 말 ~ 4월 초엔 이미 문서화되어 여야가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란 소문도 있어 더민주측의 후보검증이 부실하지 않았냐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조폭논란에 연루된 은수미 성남시장후보에 대한 공천 재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직자는 1일 “어제 최고위에서 은 후보 관련 의혹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은 후보 관련 의혹은 민주당 경기도당의 자격심사위원회 등에서 심사를 거친 뒤 재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은수미 조폭지원 의혹 제기한 운전기사가 현직 성남시청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2일 성남시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7월 7일 대중교통과에서 모집한 지방선택제 임기제 마급 공무원(9급 상당) 공개모집에 응시(서류접수 2016년 7월 19∼21일),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 등을 거쳐 9월 3일 채용됐다. A 씨는 지난달 30일 사표를 냈는데 아직 수리되지 않아 아직 현직 공무원 신분이다. 당시는 이재명 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이였다. 이에 당시 시장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측 관계자는 "은 전 의원의 취업청탁 등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씨가 은 후보의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임기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채용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위 의혹에 대하여 뜬금 없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80%의 시대라 답한 적이 있다. 이는, 해석에 따라서는 문재인정부의 지지율이 높으므로 입을 다물라는 파시스트 적인 의도로 비칠 수 있어 문제시 되고 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BMW족이다. 버스(Bus), 메트로(Metro), 워킹(Walking), 그래서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걸어서 일 보고 출퇴근한다”며 “저의 생활습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원칙이다. 운전을 못하기 때문”이라며 주장했다.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선 작전세력의 모략 제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BMW족 발언이 오히려 더욱 논란을 낳고 있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은 후보에게 A씨를 소개한 사업가 배모 씨의 친동생도 성남시 관할 구청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헤럴드경제는 은수미 후보가 조폭 지원설 터지기 전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나왔다고 단독보도 하였다. 은수미 후보의 운전기사로 일한 A씨를 소개해준 배 모씨는 11일 헤럴드경제에 “최 씨가 사건을 폭로하기 전인 4월 12일 은수미 측 관계자가 최 씨를 찾아와 ‘자원봉사 맞죠. 자원봉사 맞잖아요’라고 추궁했다”고 밝혔다. 은수미 측이 실제 폭로가 있기 전부터 최 씨를 자원봉사자로 몰아 모든 책임을 최 씨에게 덮어씌우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은수미 후보 측은 이런 사실에 대해 “모르는 일” 이라고 부인하였지만 계속 나오고 있는 논란에 여론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D%80%EC%88%98%EB%AF%B8#s-3.5]


그것이 알고싶다(1085회 / 7월 22일 / 청춘의 덫 - 파타야 살인사건 미스터리)는 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의 고급 리조트에서 불법 도박업체 사장에게 살해당한채로 발견된 25살 청년 임동준씨의 죽음과 함께 기업화된 불법 도박 업체들이 취업난과 저임금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불법의 세계에 노예로 이끄는 현실에 대해 다뤘다.




임동준을 표현한 대역이 숲을 지나가다가 노트북에 뱀이 돌아다니는,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게되는 과정을 은유한 연출과 함께 시작된다. 


피해자인 임동준씨는 의경 제대후 경찰이 되리라는 꿈을 가졌고, 어렸을때부터 컴퓨터를 접한뒤로 IT쪽에 유능함을 보여서 판교의 어느 중소 IT기업에 취직하는 경찰지망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는 항상 쪼들려서 식사는 편의점이나 컵라면으로 때워야했던 상황이었으며, 어느날 주범 김형진(성남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 의 주선을 받고 김형진이 선심을 통해 거금을 미끼로 일을 제안했고 몇몇 동료와 함께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태국으로 출국하게된다. 


말이 출국이지 이하 서술될 내용들을 보면 사실상 납치감금에 가까웠다. 동창 증언에 따르면 그가 범인과 연락할때 뭔가 시달렸다고 하며 멀쩡하게 다녔던 직업을 돌연 나오지 않았다는것이다. 컴퓨터 학원도 등록만 해놓고 사실상 다니지 않았으며, 태국 출국시기에 겹쳐서 출석조차 끊겼다는 기록이 있다.


태국으로 출국이후에 SNS의 프로필 상태도 '전화기 부서졌음'이라고 써져있으며 연락을 회피했다고 피해자의 부친은 증언한다.


그가 얼마나 혹사당했냐면, 너무 피해를 당하다보니 평소와 어조나 어투가 달라져버려서 부모가 통화를 듣고도 혹시 다른 사람이 사칭하는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의심까지도 했을 정도였다.


사건은 2015년 11월경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 파타야의 한 전통 태국풍 고급리조트 단지내의 밴 안에서 임동준이 시신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시신은 여러차례 폭행을 당한 상태였고, 부검결과 사실상 치사수준으로까지 폭행당해서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그것도 실제로는 하루밤새 여러번 치다가 억하고 죽은게 아니라, 며칠간 폭행이 누적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라는 결과가 나온것이다. 실제로 범인 김씨가 자주 이용했다고 하는 마사지샵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임동준이 붕대를 감거나 폭행당한 상흔이 심한채로 범인들과 들어왔다는걸 자주 목격했다 한다.


 제작진이 어렵게 입수한 오피스텔 등지의 CCTV에서 그가 사망하기 며칠전 엘리베이터 CCTV로 임동준의 상태를 유추할수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임동준은 계속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폭행의 사유는 직접적으로 알려져있지 않으나 불법자금 운용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화풀이를 하기 위해 임동준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어느날 임동준과 같이 부려먹히던 이들이 탈출하려다 잡힌뒤로, 또 계속 맞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피해자가 맞아죽어가는 과정에서, 범인들은 피해자에게 고통을 느끼지 못하라고 모르핀주사까지 놓는 능수능란함까지 보여주었다.


여튼 시신이 발견되자 김형진(성남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 과 공범 윤명균은 수사기관에 자진신고했지만,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홍석동 납치 사건의 범인들이 쓰던 수법인) 이른바 블레임 게임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취재진이 현지 교도소의 윤명균을 면회했을때도 윤씨는 책임을 김씨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검거과정에서 공범 윤명균의 몸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를 체포한 현지경찰의 검거사유에는 마약사범이라는 점도 포함되어있었다. 범인들은 실제로 윤씨를 폭행하는 순간 마약에 꽤 취해있었던걸로 보인다.


여튼 서로 신고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다가 윤씨가 태국 현지 교도소에 수감되는 한편, 김형진은 이미 신고한 순간 베트남으로 출국해버렸다. 


김형진을 비롯한 범인들은 상당수가 외국인들이라는 고급 오피스텔에 거주하면서, 한인타운의 식당이나 인근 마사지샵, 세차장 등을 자주 이용하였기의 그들의 행적을 현지 주민들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웃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세차장 주인에 따르면 애인을 끼고 오기도 했다는것도 같고. 한인타운의 특히 어떤식당에서는 수년 단골이었으며, 식당주인이 증언하기로 태국에만 머무르는게 아니라 중국(혹은 그외 제3국)에도 오랜기간 체류하고, 한국에서도 스포츠카를 몰고다닐정도로 잘나간다고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김씨 일당이 일용했다는 맛사지샵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가 마사지샵에 올때면 다른 주변의 한국인들이 김씨 일당에게 90도로 굽혀서 인사했다는 말도 한다. 맛사지샵 주인은 그가 수중에 돈이 많아서 무슨일을 하는지 짐작되지만 무서워서 얘기하기를 꺼렸고, 아예 그가 이용했던 어떤 호텔의 호텔보이 증언으로는 대놓고 그가 도박산업에 몸담아왔음을 시사하는 증언도 한다. 한술 더떠서 현지인들은 한국인들이 관광객이 아닌 이상 오래 머물거나 여기저기 알고 다니면 도박산업에 종사하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할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태국 언론상에서는 현지 공권력이 한국의 불법 해외도박조직을 검거했다는 뉴스가 간헐적으로 나오는 판이었다. 


그중에서도 김형진 일당은 상당한 악질로 추정되는게, 이미 김윤 콤비는 한국에서부터 윤○○씨가 전과 15범, 김씨가 전과 14범이 누적된 악질 범죄자였으며, 김형진의 경우 조폭 '성남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혹은 해외 불법운영 총책)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는 제3의 목격자도 있었는데, 남모씨가 바로 현장에 있던 사람이다. 남씨도 사건이후 경찰에 자수했지만 석연치 않았다.


남씨 역시 경찰에서 수사를 받을때 자기도 피해자라면서 눈에 맞은 상처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남씨 역시 피해자인지는 석연치 않다. 여튼 남씨는 불법도박 관련 혐의로 체포되어서 1년형을 살다가 만기 출소(?)한뒤 아무래도 후환이 두려운 이유인건지 절같은데에 은둔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취재진의 이후 연락도 그의 부친을 간접 인터뷰하는식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임동준이 탈출할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바로 임동준과 비슷하게 웹디자인 노예로 착취당하던 익명의 동업자가 대한민국 영사관으로 탈출해서 도움을 청한것이었다. 그는 임동준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을 빨리 개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습 구타를 당했다. 얼마나 급하게 탈출했는지 옷은 헝클어져있었고 신발 한쪽도 날아간지 모른 채로 뛰어왔다고 한다. 자신은 탈출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도 있을것이라고 언질을 했다. 



문제는 얼마나 급하게 택시를 잡고 탈출한 탓에 자신이 잡히던곳이 어디있는지 미처 기억을 못한것이었다. 


그리고 동업자가 언급했던 동료는 바로 윤씨였다. 그리고 또다른 탈출시도도 있었지만,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출국하려고 했지만 여권을 빼았긴 관계로 김씨 일당에게 도로 잡혀서 돌아온것이다. 김씨 일당은 뻔뻔하게도 단골 한인식당에서 피해자들을 데리고 식사를 사줬다. 물론 그러면서 식당 주인에게는 '도망가려던거 잡았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범인이 피해자들에게 밥을 사주는동안 '너 한번만 더 탈출하려면 죽인다'라는 협박까지 피해자들에게 했다고 식당주인은 증언한다.


취재진은 한국에 있는 임동준 동료를 어렵게 취재했다. 그도 처음에는 평범하게 페이를 받으며 일하던 사람이었지만 김형진이 씀씀이 과시를 하면서 자신의 일에 끌어들이도록 유인을 했다는것이었다. 태국으로 끌고 들어올때에도 비행기값 역시 범인측에서 끊어줬다고도 한다. 이후 과정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증언하려고했지만, 귀국하고나서도 PTSD가 가라앉지 않아서 더이상 인터뷰를 속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돌아가버렸다.


임동준씨도 어떻게든 연락할수 있는 사람에게 연락은 해보려던것 같다. 친구에게 자신의 근황을 보내주었는데, 친구가 본 임동준의 근황은 양눈에 멍이 들은등 상당히 비참한 모습이어서 친구가 걱정을 했지만 임동준은 (두려웠던건지)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고 연락했다고 친구가 증언했다.


그리고 또다시 CCTV 장면이 나오는데 더 충격적이었던건 제3의 목격자로 알려진 남씨가 임동준씨를 툭툭치는 장면이 포착된것이다. 남씨도 피해자로 알려져있었지만, 최소한 피해를 받았음에도 주범들에게 동조된 상태 혹은 아예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관해서 제작진은 남씨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청하는데 아버지가 전해들었다는 남씨 본인의 말로는 '나는 잘못이 없다. 임동준은 오히려 도망갈수 있었는데 도망가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그가 잘못한게 아니냐'고 남씨가 오히려 임동준씨를 비난하고 앉아있었다.


CCTV의 장면을 심리학 교수에게 분석해본결과, 그들의 행동에서 서열을 읽을수 있었다는데, 당연히 임씨는 맨 바닥이었고, 서로 비난하던 김형진과 윤명균의 서열은 실질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윤명균이 태국내에서의 자원을 쓰는 상황임에도 김씨가 윤씨에게 그정도 예우를 하지 않는다.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김형진≥윤명균>남씨>>>임동준으로 되어있다는것이다. 또한 임동준이 계속 두려워하던건 자신이 탈출해도 그로 인해 가족, 지인들이 피해를 받을까봐라는점도 한몫했다고 시사한다. 실제로 친구나 동창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가 임동준의 휴대폰을 강탈했고 이를 통해서 임동준의 가족, 지인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그들에게 협박전화를 여러번 했다고 한다. 친구의 경우도 '한국에 자기랑 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네놈들 집 알아내는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협박전화를 받았었다. 


동창의 증언으로는 임동준의 여자친구도 이런식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략 '임동준 휴대전화에 임동준과 너의 성관계 영상을 확보했으니 뿌리겠다'는 식으로. 오히려 임동주 여자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동창이 증언하는데도 그런식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협박전화를 한 범인들은 유독 임동준이 한국에 거주했을때 사용했던 컴퓨터의 행방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임동준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태국 출국시에 미처 두고가버린 자기 자취방의 컴퓨터 사진이 있었다. 거기다 더 의미심장한건 임동준이 사망한 시점 이후, 임동준의 부친이 임동준이 마지막으로 거주하던 한국 자취방을 방문해보니, 임동준이 쓰던 컴퓨터 본체만 쏙 사라져있던걸 본것이었다.


이후 취재진은 전직 불법 도박사이트 관련자들을 취재했다. 그들이 따르면 도박관계자들이 노예 프로그래머를 유인하는 수법은 유령회사를 등록후, '주5일근무, 200이상, 해외근무가능 근무자'라고 써놓으면 대부분 혹해서 넘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어리거나 사정이 궁한 이들을 타겟으로 삼고있다고도 한다. 또한 어떤 전직 관계자는 자신의 업장에 심지어 등록금을 벌기 위해 끌려온 연대 경영학과 학부생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알바모집 사이트를 조회해보니, '스포츠중계영상사이트 관리및 홍보'라면서 간접적으로 맞대기를 시사하는 문구가 있으며, 취재진은 면접자로 위장해 중개자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후는 관련 중개자의 실시간 검거 과정. 중개자는 불법같지만 그래도 합법의 경계에는 있다는식으로 불법성에 대해 두루뭉실하게 말하다가 수입에 관해서는 '어지간한 대기업 수준 연봉'을 보장하는 식으로 약을 팔기까지한다. 결국 보다못한 취재진이 SBS에서 취재나왔음을 밝히자 중개자는 탄식하면서 여태까지 말했던 내용에 관해서는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취재진은 그에게 배후가 있냐며 추궁을 했는데, 중개자 말로는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다 관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본사라고 칭하는 이들을 알수는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이름은 술술 불어놓으며 그런 조직의 총판 비스무리하다고 한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중개자의 가택을 수색한 결과 여러대의 컴퓨터와 도박사이트 화면이 있었으며, 어딘가로 유출된 ID/비밀번호들이 판매목적으로 굴러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기에, 경찰은 현행범으로 해당 중개자를 체포해버린다. 


그리고, 해외도박단 적발 자료화면을 보여주면서, 해외도박의 지하경제 규모는 83조원이며, 이는 외식시장(84조원)에 맞먹는 수준의 경제규모라는 자료를 보여준다. 전직 관계자들을 토대로 조직도까지 보여주면서, 프로그래머 노예들을 관리하는건 보통 사장님 혹은 총책보다 윗급이라는 언질을 한다.


또한 보안솔루션 관계 대표자가 압수한 프로그램을 분석하여 인터뷰 했는데, 실제 경기 결과가 어떻던간에 운영측이 수익을 얻도록 배당률을 조정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한데, 초급 프로그래머인 임동준이 단기간에 이를 완성했을리 없고, 돈을 잃은 일당이 화풀이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사라진 임동준의 자취방컴퓨터 행적에 대해서도, 조직의 꼬리를 잡을 단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후 제보 모집이후로 또 다른 제보들이 나오는데, 한 익명 제보자에 따르면 더 충격적인것은 김형진이 살해한 사람이 임동준 하나뿐이 아니라는것이다. 그 죽은 사람도 임동준과 마찬가지로 때리다보니 죽은것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제보자 역시 태국에 갔던 친구가 맞아죽어가는 프로그래머 노예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한다.


박지선 심리교수의 프로파일링에 따르면 이 사건은 서로가 최소 대여섯명에게 책임분산을 시키는 규모의 블레임 게임을 하고 있으며, 범인들 진술을 분석한 결과 '폭행을 안했다'라는 이야기는 한번도 안하고 있다. 특히 윤씨의 경우 굳이 '임씨 상태가 예전부터 안좋았다' 식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강조한것도 수상쩍다고 지적한다. "결정적으로 둘다 한국에 안오는 이유는, 둘다 임씨를 때렸으니까"라고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게다가 윤씨의 경우 책임을 분산하면서 모범수 생활을 통해서 조기 석방까지 노리고 있다는 윤씨 지인의 증언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국내에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이다. (한국 형법에서) 불법도박 (관련 사건)은 피해자가 없어도 모두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범죄자로 규정되어있기 때문. 


가산을 탕진하거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르바이트에 이끌린 젊은이들이 노예로 전락해버리는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보고있어야합니까. 모두가 범죄자라서 아무도 신고하지못하고 근절하지못하는 83조라는 지하경제가 되어버린 불법도박은 더이상 무시할수 업는 암세포가 되었습니다. 


25세 청년 임동준씨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타고다니는 청년들의 SOS입니다."라는 클로징과 함께, 본 방송편을 제작할수 있도록 감사를 표한 수사기관들과 함께 월남으로 도피한 범죄자 검거와 조직 일망타진을 위한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린다는 말과 김형진 공개수배와 함께 방송이 끝난다.


한편, 베트남 공안당국은 2018년 03월 14일 베트남에서 김형진(성남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을 체포하였으며, 

동년 03월 28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여 04월 05일에 한국에 송환되었다.




[출처 : https://namu.wiki/w/%EA%B7%B8%EA%B2%83%EC%9D%B4%20%EC%95%8C%EA%B3%A0%EC%8B%B6%EB%8B%A4/2017%EB%85%84%20%EB%B0%A9%EC%98%81%20%EB%AA%A9%EB%A1%9D#s-3.4]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 직후 청해진 해운측은 전자산을 매각해서라도 배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


검찰은 이를 수용, 실질적인 소유자로 알려진 유병언에 대한 소환조사를 간단히 신청한 후 자진 출석을 유도했다. 하지만 유병언 측이 2014년 5월 16일, 2차 소환조사까지 거부하며 자신이 세운 이단종교인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에서 농성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별도의 사전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수배를 할 것이라 향후 방침을 예고하게 된다.


별도의 대면조사 없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것에, 유병언을 옹호하는 구원파는 "높으신 분들이 우릴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언론플레이를 펼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전 구속영장 청구 절차에 대해 법조계 인사들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며, 수배 절차 또한 공개수배 절차와 지명수배 절차가 혼용되어 있어 이를 걱정하는 의사를 내비추었다.


검찰이 영장 발부에 집착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청해진 해운의 불법선박 개조를 필두로 한 인재라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 소재 구분과 세월호 승무원들의 처벌 과정에서 총책임자를 실질 소유자인 유병언으로 확정하기 위해 절차를 밟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구속수사에 집착 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병언이 통수를 친 전력이 있는 만큼 확실하게 보내버리려고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법처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유병언의 신병 확보가 최우선 조건이었으며, 언론이 도주 우려를 표방했으나 검찰은 유병언측의 검찰소환지시를 충실히 따르겠다는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철썩같이 믿고 유병언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식으로 멍때리며 유병언측을 무조건 신뢰하다 제대로 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이 총력전을 선언 한 것에 대해 세월호 참사의 소재 규명이란 공익적인 목적보다 검찰의 구겨진 체면을 다시 세우려는 사익적인 목적이 우선되고 있는 것이란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2014년 6월 21일 밤, 6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발견되었던 변사체가 유병언으로 추정된다는 통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게서 받은 대한민국 경찰청이 대한민국 검찰청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검찰은 22일 새벽에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아래에 적혀 있는 내용 대부분은 21일이 아니라 22일에 알려진 것.


6월 12일에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2.5km 가량 떨어진 매실밭에서 부패된 남성의 시신을 한 구 발견했는데, 당시 경찰은 이를 무연고자로 보고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분석을 의뢰했다. 변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를 분석한 결과, 유병언의 친형으로 구속기소된 유병일(75·구속기소)의 DNA와 상당 부분 일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유병언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지만 시신이 유병언인지 최종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경이 확보한 DNA와 대조작업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체가 유병언이라는 것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온 국민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전례없는 6개월짜리 영장을 발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사실 유병언은 죽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송치재 근처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거 자체를 이 때까지 검찰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협조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제까지의 수사는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전락할 위기이며, 유병언이 사망한 경우 뇌물에 관련된 혐의에 대한 수사방식이 대폭 줄어들어 세월호 참사의 수습에 들어갈 돈을 유병언 일가에게 청구하는 것이 어려워질수도 있다. 결국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배상도 어려워지고 검찰 역시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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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12일 발견된 사체가 이미 부패가 심각해 발견 당시 유병언임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해당 시신의 사망 시점은 최소한 일주일 이전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상식적 견해가 대두되었다. 결국 시체 상태를 고려해서 18일만에 부패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6월 12일 발견시점에서 18일 전이면, 구원파에서 유병언이 공식언급된 마지막 날이자, 금수원에서 도피 조력자들이 이제 막 체포된 시점이다.


그러나, 구원파 측에서는 나온 정보가 유병언의 신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파 대변인은 "잘못된 정보를 흘려서 유병언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것 같다"라고...구원파에서는 5월 25일까지 유병언이 측근과 같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대체...


또 경찰은 DNA 감식 전 채취한 오른쪽 지문이 유병언 회장의 것과 일치한다고 밝혀 사태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문제인 것이, 한국은 의무적으로 지문을 등록하게 되어 있어 지문이 발견되면 바로 본인확인이 가능한데 왜 지문을 얻어놓고 한달 이상 지나서야 발표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경찰에서는 시신 발견 시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을 얻지 못했다가 고온습열처리법을 통해 한 손가락의 지문을 얻어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후 18일만에 백골이 되었다는 점, 지문 대조 결과를 늦게 발표한 점, 매실밭에서 시체가 20일 가까이 있었다는 점, 유병언의 도주 시점은 초여름인데 시신은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 등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유병언을 숨겨주려고 쇼한다는 극단적인 음모론이 뉴스 기사 댓글 대부분을 채울 지경. '





국과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유병언의 시신으로 확정하였나? 


DNA : 시신의 여러 부위를 채취하여 DNA를 검사하였고 이를 별장에서 발견한 유병언의 DNA, 친인척들의 DNA와 비교한 결과 유병언으로 확정되었다. 25일 체포한 유대균의 DNA도 채취해 비교한 결과 부자관계임이 명확해졌다.


지문 : 오른손에 채취한 지문 하나가 유병언의 지문과 일치하였다.


키 : 다리뼈로 키를 추정해본 결과 159cm에서 ±2cm, 즉 유병언의 키와 맞아떨어진다.


치아배열 : 치아, 특히 금니의 위치가 유병언의 것과 동일하였다.


신체특징 : 왼쪽 손의 끝이 잘려나간 집게 손가락과 굽은 넷째 손가락이 일치하였다.


측근들의 증언이 맞다면, 검찰에 쫓기던 측근들이 급히 유병언 만을 숲에 내려놓고 피신했으며 흩어질 때 유병언에게 대충 어디어디서 만나자고 서로 선약들은 했지만, 정작 검경의 감시망 때문에 다시 유병언과 접촉하러 갈 수 없게 되었다. 숲 속의 유병언은 수배중인 몸이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조난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이런 추정 정황으로 보아, 사망 원인은 몇가지로 볼 수 있다. 일단 유병언은 고령이라 오래 버티기에는 체력이 부족하고, 사망 당시 소지품으로 보아 너무 급히 도망치느라 충분한 식량이나 야숙에 필요한 용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주머니에 먹을 것이 있기는 했으나, 스쿠알렌과 검은콩 20알, 육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늙은 몸에 변변히 먹을 것도 없이 오래 숨어있다보니 체력이 다한 나머지 급사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밤중에 담요도 없이 숲 속에서 잠을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시되는데, 브리핑에 참여한 가톨릭대 강신홍 교수는 저체온증에 무게를 두었으며 시신이 신발을 벗고 상의를 반쯤 벗은 것에 이상탈의 현상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시체 주변에 있던 소주병과 막걸리병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일단 수거는 했는데 유병언이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다만 병의 제조일자가 좀 많이 옛날 거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병언의 시체가 빨리 부패해서 알아보기 힘들 것을 예상하고 노숙자로 위장하려는, 타살의혹을 뒷받침하는 견해가 있다. 참고로 술병이 발견된것은 유병언 시체 옆이 아니라. 유병언이 들고 있던 가방이었고, 술병에는 흙이 묻어져 있었다. 다만, 유병언이 무언가에 쓸려고 술병을 주웠을수도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C%A0%EB%B3%91%EC%96%B8%20%EB%8F%84%ED%94%BC%EA%B8%B0%EB%A1%9D#s-2]

원어명은 University of Tennessee Anthropological Research Facility로, 통칭 Body Farm(시체농장)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 연구소를 설립한 배경은 설립자인 윌리엄 배스 교수의 경험담에서 비롯한다. 경찰 등 사법당국의 의뢰로 시신의 상태를 조사하는 일을 자주 맡고있던 베스 교수는 1977년 어느 무덤에서 발견된 한 시신을 조사하게 된다.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된 시체가 얼마전에 죽은 사람처럼 피부에 생기가 돈다는걸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조언을 구한건데, 베스 교수는 부패 상태를 보고 죽은 지 1년 정도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후 정밀 조사결과 그 시신은 1864년 남북전쟁 때 사망한 군인으로 밝혀졌다. 자그마치 100년이 넘게 틀린건데, 알고보니 관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밀봉&살균되며 군인의 시체가 미라가 된 것. 이로 인해 배스 교수는 시신의 부패 및 사망 시간을 연구하는 시설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이 연구 시설을 설립하였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사람이 죽어서 부패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조국의 위엄 즉 죽은 사람을 들판에 가만 놔두고 얼마나 지나야 부패가 완전히 진행되는지, 자연환경이나 사체의 조건(몸무게, 나이 등)에 따라 부패의 속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부패 과정에서 어떤 벌레가 꼬이는지 등을 알아보는 곳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체를 공구리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토막토막 내서 부패가 얼마나 빨리 진척되는지, 가방 안에 구겨넣었을 때(...) 시체 및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 시체가 특수한 환경에 놓이거나 혹은 처리를 받았을때의 결과 & 세부적인 진행과정을 연구하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이 연구의 목적은 단순히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사망 시간 추정이 더 정확해졌고 이덕에 엄청나게 많은 범죄들이 해결되고 있다. 요즘은 시체 주변에 돌아다니는 벌레의 성장 상태로 시체의 사망 시간까지 추정이 가능할 정도로 연구가 진척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체 수색견을 훈련하기 위해 곳곳에 시체를 숨겨놓고 보물찾기(...) 하도록 시키기도 하고 법의관 지망생들을 불러모아 널부러진 그냥 시체의 사망 추정 시각을 알아맞출 수 있게 교육시키기도 한다.




부패가 끝난 시체들은 뼈를 추려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에 아무 뼈나 골라서 길이를 입력하면 사망자의 키와 건강상태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입력하고 남은 뼈는 다시 법의관 지망생이나 의대생들을 가르치는 데 쓴다고 한다. 시체 한 구로 정말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임하며 시체 기증자의 가족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족에게 시체를 다시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한다.




『시체』라는 민감한 주제로 연구를 하다 보니 보안이 상당히 엄격하게 잘 되어 있다. 주변 경찰이나 보안요원이 항시 감시하고 있고 CCTV도 설치되어 있으며 본인인증이 없으면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다. 여기에 들어가서 연구하거나 교육받는 사람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므로 괜한 호기심으로 가보려 해도 갈 수 없다. 


언론 취재 또한 사전 허가 후 매우 엄격한 절차에 따라 행할 수 있다.

시신의 기증은 신원과 사망 원인, 그리고 생전에 시신 본인이 기증 의사를 문서로 밝힌 경우에만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소 서글픈 현실도 작용한다. 경제가 어려워 장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유가족들이 시신을 기증하려는 사례가 제법 많아서 시신을 모두 수용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자 연구소 측에선 기증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걸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설이 인류학 연구소가 아닌 시체농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원인은 아래 2번 항목 때문이다. 원래는 듣보잡이라서 연구 지원비도 잘 안 내려오고 시체 기증자도 거의 없었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이 쓰여지게 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관리자는 '시체농장'이라는 무서운 이름에 내심 고마워 하고 있다고...별명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별명이 오히려 연구소에 이득이 되는지라 그냥 자기들도 여기를 시체농장이라고 일컫는다.




요즘은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소가 몇 군데 더 생겼는데, 아무래도 테네시 대학교 정도의 스케일을 보유한 곳이 없는지라 그냥 '시체농장'이라고만 말하면 테네시에 있는 걸 말하는 줄 안다.




2006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이곳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국내에는 '주검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서 부패 과정을 편집하고 다소 순화시키긴 했지만 고어물 같은 화면도 나온다. 구더기가 눈알을 파먹는 장면이나 부패하면서 피부 색깔이 초록, 주황, 검정 등등 온갖 색으로 변하는 과정이나 부패 가스로 인해 배가 터지는 묘사도 있으니 감상에 주의할 것. 


시체농장 자체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실제 시체는 전체 상영시간 중 절반도 안 나온다. 근데 그 절반이 너무나도 고어하다.




2014년 6월 22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Extreme Surprise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과학동아 2016년 4~5월호에서 이 시체농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기자의 후기에 따르면 이곳의 특성상 잡지에 올릴 수 있는 사진을 골라내느라 대단히 애를 먹었다고. 




아래의 동명 드라마 외에도 CSI 등의 수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이다. 특히 CSI 라스베가스 중 한 회(시즌2 15회)에서는 범인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한 사건의 배경 자체로 나온다. 물론 허구인데 시체 농장은 애초에 매우 엄격한 보안 체계가 구축되어 있고 이쪽 분야에선 최고 전문 기관인지라.....위의 과학동아에서도 기자가 이 드라마를 언급하면서 '만에 하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24시간 안에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자신이 있다.'라고 소감을 나타냈다.



[출처 : https://namu.wiki/w/%EC%8B%9C%EC%B2%B4%EB%86%8D%EC%9E%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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