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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행위로 똥별의 대명사로 남게 될 천하의 개쌍놈들


신일순 대장에 이어 창군 이래 2번째로 구속 수감된 현역 4성 장군


음력 1958년 9월 5일, 충청남도 천안시 출생으로 천안고등학교를 졸업했다(두 형에 남동생까지 4형제가 모두 동문이다). 1977년,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하여 1981년 졸업과 함께 기갑 소위로 임관했다. 동기로는 신원식·양종수·이재수·김영식·전인범·조보근·엄기학·박지만 등이 있다.


대령 시절 독일 육군청 교환 교관으로 다녀온 이색 경력이 있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친위 사조직으로 의심되고 있는 같은 독일 육군사관학교 유학파 인맥으로 구성된 '독사파'의 일원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참모장과 제9기계화보병여단장, 합동참모본부 군사전력과장, 합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행실무단장을 역임했다. 


2007년 10월에 진급한 후엔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권전환추진단장을 역임했고, 2010년 6월에 소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과 합동참모본부 상부지휘구조개편추진단장을 역임했다. 2013년 4월에 중장으로 진급 후 육군 제7기동군단장을 역임하고 육군참모차장을 지냈다.


박찬주 박근혜 김관진


  • 김관진 라인 인사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대장 진급자로 육사 37기 3명이 내정됐는데 그 중 한 명이 되었다. 보직은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첫 기갑 병과 출신 대장이라는 헛된 영예를 얻게 되었다. 육군 제7기동군단장을 거친 중장의 대장 진급 확률이 50%가 넘긴 하지만, 그 반이 기갑이 아닌 보병 출신들이 올라갔다는 걸 생각하면 보병 일색의 인사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 자체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적 승진에 대해, 당시에도 김관진 라인 인사라는 뒷말이 많았다고 한다.  


  • 문재인 정권 첫 대장급 인사에서 제2작전사령관에서 해임 경질

2017년 8월 8일 문재인 정권 첫 대장급 인사에서 제2작전사령관에서 해임 경질되었으나, 군인사법상 중장 이상 장군이 보직 해임되면 자동 전역되어 민간인이 되고 20년 이상 장기 근무한 군인에게 지원되는 군인 연금 및 기타 혜택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점 때문에 전역을 못 하도록 정책연수 파견 명령을 받아서 군인 신분으로 계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전역해서 군인 연금 및 기타 혜택을 잠깐이라도 얻어보자는 심산인지 박찬주가 무리한 전역 연기라며 소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2017년 9월 20일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2017년 12월 13일 대법원은 피고인 박찬주가 신청한 재판권 쟁의에 대한 재정 신청을 인용하였다. 법령에도 없는 직위에 임의로 앉힌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찬주는 현재 민간인 신분이며, 해당 사건도 수원지방법원 형사부로 이첩되었다. 국방부는 이에 따라 8월부터 12월까지 받은 월급에 대해 해당인을 상대로 반환 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8년 1월 30일 수원지법은 보증금 1천만원에 보석을 허가했다.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

  •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대한민국 국군의 수준이 어떠한가를 다시 한번 제대로 보여 준 사건


"남편이 투 스타면 자기도 투 스타야." 전 공관병 인터뷰


2017년 7월 31일 대한민국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과 그의 민간인 아내 전성숙이 '육군 대장과 그 부인'이라는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심각하게 악용해 공관병과 조리병들에게 갑질과 가혹행위를 저지르면서 악랄하게 괴롭혀 왔다는 사실을 군인권센터가 폭로했다.


그 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사유는 위의 갑질 사건이 아니라 뇌물수수 혐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구속 수감시키는 데에만 성공하면 된다. 구속 중에 여죄를 캐서 갑질 사건이라든가 다른 비리를 캐내기 훨씬 쉬워지고, 무엇보다도 구속 수감되면 도주 및 증거인멸이 불가능하다는 천혜의 장점이 있다. 다른 혐의라고 하여도 일단 구속을 시켜야 갑질 사건의 수사가 쉬워진다. 구속 이후라면 현역 대장 신분이 아닌 수감자 신분이기 때문에 박찬주의 편에 서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뇌물수수 의혹 

軍법원, 박찬주 대장 '뇌물수수 혐의' 구속영장 발부


군 검찰단은 공관병 갑질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을 통해 민간 고철업자 사이에서 수상한 돈거래와 향응 제공 정황을 포착했다. 실제로 이 고철업자는 박 대장이 재직했던 제2작전사령부의 입찰을 수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법원은 "주요 뇌물범죄 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으면 공범과의 증거인멸 염려가 크므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 며 구속영장을 발부, 대한민국 국방부 헌병대에 구속 수감되었다.


박찬주 공관 비품 절도 논란

  • 시대착오적 사고

2015년 대장 진급 후 모교인 천안고등학교에 방문 및 강연 시 과시를 위해 육군 헬리콥터로 이동하고, 운동장에 먼지 날리는 것이 싫어 살수차까지 동원 했으며, 강연 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타고 온 헬기를 보안 문제를 무시하고 구경시켜줬다는 기사 내용이 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는 건데, 2015년에 1960~70년대에나 있을 법한 금의환향류 퍼포먼스를 하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는 비판이 있는 행동이다.


  • 공관 비품 절도 논란

2014년 10월에 이사하면서 공관 비품을 절도해 사유화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 "박찬주 대장, 부대 재산인 공관 비품 사유화". 박찬주는 도벽까지 있어서 공관에 설치된 비품을 계속 챙겨갔고, 그렇게 누적된 비품은 냉장고만 9대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박찬주가 전자마트를 차리려고 한다라고 비꼬는 지경까지 갔다.


  • 종교 활동 방해 논란

2017년으로부터 수년 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법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날 테니스 대회를 열어 휘하 장병들을 못 가게 만들었다고 불교신문에서 전했다.


박찬주와 마찬가지로 기갑병과에 개신교 신자로 유명했던 장군으로는 나상웅이 있다. 박찬주와 다르게 병영 문화, 병사 복지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던 인물이다. 신교대 훈련병 수료식 때마다 수료한 훈련병들과 면회 온 부모님들에게 직접 인사를 청하기도 했으며, 사정이 있어 부모님이 면회를 못 온 훈련병이 있으면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고. 또한 20사단장 시절인 2011년 초임장교로 임관한 학군49기 소위들을 전입 온 이등병으로 변장시켜 예하 부대 내의 부조리를 파악하게 하며, 병사들의 고충을 헤아리려고 노력한 사례가 있다. 자기 병과인 기갑전에도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3사 출신임에도 중장까지 진급했으나, 육사 출신+독일 유학파인 박찬주에게 밀려 대장 진급이 좌절되면서 결국 2017년에 전역하였다. 


박찬주 대장 구속

  • 이등병 강등 서명운동 

2017년 8월 10일부터 시민단체 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박찬주의 계급을 이등병으로 강등시키는 청원 및 서명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2017년 8월 16일 00시 기준으로 850명 수준까지 서명을 받았다.


일단 군인사법 제57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강등은 어디까지나 1계급을 한정하여 이루어지며, 이전에 장태완 같은 부당한 강등 사례도 있어서 법 개정도 쉽지 않다고 보면 된다. 차라리 동법 제57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파면을 단행해서 연금을 못 받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훨씬 타격이 클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나향욱처럼 파면취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법률 위반 뿐만이 아니라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거나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게을리 한 경우에도 징계 대상이 된다. 장성급 장교의 징계 심의는 각 군 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에게 속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B%B0%95%EC%B0%AC%EC%A3%BC(%EA%B5%B0%EC%9D%B8)]

1942년생으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인 신격호 회장의 딸이다. 

현 직책은 롯데장학재단, 롯데복지재단,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이다.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의 핵심.


신격호 회장의 자녀 중 유일하게 정식적인 혼인관계를 통하여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 신격호는 신영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신영자의 어머니는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서 신영자는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손에 키워졌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 롯데를 창립한 신격호 회장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딸을 찾았는데 그때가 신영자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때이다. 장오식과 결혼해 1남 3녀를 두었으나, 1979년 이혼했다.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했다. 롯데백화점을 국내 최고의 백화점 반열에 올린 이력 때문에 신영자는 유통업계 대부로 불린다. 신영자는 면세점 사업에서도 영향력을 보여 롯데면세점을 국내 대표 면세점으로 일궈냈다. 


신동주-신동빈 경쟁구도에서 밀려난 것처럼 비춰지지만 알짜배기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제과 지분 2.25%와 롯데쇼핑 지분 0.74%, 롯데칠성음료 지분 2.66%, 롯데푸드 지분 1.09%를 가지고 있다.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후계 다툼을 하고 있는 두 동생 중 한쪽으로 지분을 넘길 경우 지분 보유 순위가 바뀔 수 있을 정도다. 이는 후계 다툼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가족관계

아버지: 신격호 (1922~)

어머니: 노순화 (1922~1951)

전 남편: 장오식

아들: 장재영

딸: 장선윤

딸: 장혜선

딸: 장정안

이복동생: 신동주

이복동생: 신동빈

이복동생: 신유미

기타 가족: 시게미쓰 하츠코, 서미경


  •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및 재판 과정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년 7월 26일, 검찰은 신영자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및 배임,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구체적으로는 롯데백화점 및 면세점 내 매장 입점과 관련해 초밥 관련 업체와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로부터 현금 및 수익금의 일부를 받은 혐의와 딸 3명을 모 업체의 이사나 감사로 등재한 뒤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총액 35억여 원의 급여를 준 혐의 등이 있다.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현용선)로 배정됐다. 


검찰은 배임수재 액수 35억 원에 대해서는 신영자 소유의 부동산을 대상으로 추징보전 명령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6년 8월 2일 이를 인용했다. 이어 신영자 측은 2016년 9월 12일 보석을 청구했다.



2016년 9월 29일 공판기일에서는 네이처 리퍼블릭 박평순 부사장과 직원·롯데면세점 직원 등 총 4명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핵심 공방 요소는 네이처 리퍼블릭의 면세점 입점 매장이 1.5평짜리 벽 안쪽 매장에서 엘리베이터 앞 6.4평짜리 매장으로 옮긴 것을 두고, 신 이사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였다. 


롯데면세점 직원 A씨는 이 자리에서 "임원이 '신영자 사장이 또 재촉하니, 네이처 리퍼블릭의 면세점 매장 이동을 빨리 진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네이처 리퍼블릭이 더 좋은 조건으로 매장을 옮겼음에도 수수료율도 오르지 않았고, 매출은 감소했다"고 공격했다. 이어 "신영자 이사장의 개인기업 BNF통상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네이처 리퍼블릭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겼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신영자 측은 "BNF통상은 네이처 리퍼블릭과의 에이전트 계약 후 실제로 여러 업무를 진행했으며, 면세점 매장 입지는 매출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진 보석 재판에서 신영자 측은 "신 이사장은 고령이며 흉선종양과 협심증 등의 질병이 있어 장시간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다시 입감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써 롯데 가에서 유일하게 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신영자 이사장이 롯데 내 영향력을 이용해 증거인멸을 할 우려가 있다"며 보석에 반대했다.



2016년 10월 7일, 재판부는 "증거 인멸 우려가 있고,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보석을 기각했다.


2016년 10월 14일, 네이처 리퍼블릭과 롯데면세점 사이에서 활동한 브로커 한영철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영철은 "내가 네이처 리퍼블릭의 면세점 입점 위치를 바꿔달라고 신영자에게 청탁을 했다"고 증언했다. 매장 위치가 달라진 후 한영철의 회사는 네이처 리퍼블릭과 롯데면세점 내 매출 3%를 수수료로 받는 계약을 체결했고, "신영자로부터 '수수료가 5천만 원이 넘으면 내 딸과 나눠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계약은 1년 뒤 해지됐고, 한영철은 이에 대해 "네이처 리퍼블릭으로부터 신영자의 BNF통상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신영자는 이에 대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반박하며, "나는 수수료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딸과 돈을 나누어 쓰라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한영철도 "나는 거짓 증언은 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2016년 10월 21일 열린 공판기일에는 BNF통상의 이모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대표는 "신 이사장이 '딸들이 돈이 없어 어려워하니 회사에서 신경 써달라'고 했느냐"는 검찰의 추궁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신영자 일가의 가족기업으로 알려진 부동산 회사 SNS 설립 당시 딸들이 설립 자본금을 내지 못해 BNF통상에서 가지급금을 사용해 대납한 것을 놓고 진행된 문답이다. 즉, 이 대표가 신영자에게 "BNF통상에서 가지급금으로 지급한 SNS인터내셔널의 설립자본금을 신영자의 딸들이 변제하지 않았다"고 보고하자, 신영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스스로에게 성과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그 차액으로 가지급금을 메꿨다고도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표는 "신 이사장에게 '(신영자의 딸들이) 일을 안하는데 월급을 받아가는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신 이사장은 딸들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단하면서 '딸들이 섭섭해 하니 좀 챙겨주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남겼다. 이 대표는 BNF통상이 네이처 리퍼블릭과 면세점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서도 "신 이사장에게 '한영철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으니 계약을 맺기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신 이사장은 화를 내며 '한영철은 나와의 친분을 이용해 네이처 리퍼블릭에서 돈을 받는 것 같은데, 나와 상관없으니 계약하라'고 말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2016년 11월 4일 공판기일에는 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 상무는 "BNF통상에서 실제로 업무를 진행했고, 대표도 나와 업무를 상의해 결정했다"며 '공짜급여'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 "한영철은 평소 황당한 사업 제안을 많이 해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며, 한영철을 공격했다. 


검찰은 "정운호와 한영철 등이 모두 검찰 조사에서 신 이사장을 언급했는데, 피고인만 이를 부인한다"며 서증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BNF통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전 롯데 정책본부와 이 대표 간 3분 간 통화를 한 바 있다"며, "직원들 간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증거인멸 및 자료 파기 등을 논의한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2월 22일 결심에서, 검찰은 징역 5년 형에 추징금 32억 3,200만 원을 구형했다. 


2017년 1월 19일, 재판부는 신영자에게 징역 3년 형에 추징금 14억 1,400만 원을 선고했다. 공소사실 중 면세점 입점 로비를 이유로 정운호에게 받은 돈 8억 원과 회전초밥집 운영권에 대해 6억 원을 받은 혐의는 유죄가 선고됐다. 아울러 BNF통상 관련 허위지급 및 횡령에 대해서도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한영철과 딸이 받은 돈은 "신영자가 받은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2017년 1월 25일, 신영자와 검찰은 항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서울고법 형사합의4부(부장판사 김문석)에 배당됐다. 2017년 3월 29일 진행된 첫 공판기일에서, 신영자는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며, "앞으로 재판을 성실히 받겠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19일, 재판부는 신영자에게 징역 2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롯데면세점 네 네이처 리퍼블릭의 매장을 좋은 곳으로 옮겨주는 대가로 BNF통상을 통해 8억 4천만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보기 어렵고, 신영자가 취득한 이익으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상고심 대법원

2017년 7월 25일, 검찰과 신영자 측은 각각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9월 12일 2부에 사건을 배당했다가, 11월 13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 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12월 7일을 선고기일로 예정했다.


그러나 갑자기 대법원 3부로 소부재판으로 바뀌었고[2] 3부(주심 대법관 권순일)는 2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했던 혐의까지 모두 유죄로 인정하라며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을 했다. 신영자가 부정한 청탁의 대가를 받는 창구였던 BNF통상은 신영자의 아들 장재영이 명의상 대표이사로 등재된 업체였지만, 장재영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신영자와 딸들이 실질적으로 경영에 개입했다. 따라서 신영자와 BNF통상을 과하게 분리해 신영자에 대한 대가성을 인정하지 않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신영자의 딸들이 지급받은 부정한 청탁의 대가도 신영자가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신영자의 배임수재 혐의들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현직 경상남도 사천시장으로 당적은 자유한국당이다.


1947년 경상남도 사천군 용현면 석계리에서 태어났다. 사천용현초등학교, 사천용남중학교, 경남자영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창원대학교에서 행정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송도근 사천시장,


경남자영고등학교 졸업 후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주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에서 근무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김수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만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새누리당 정만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7년 12월 26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더불어민주당 차상돈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사천시장 뇌물수수,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7일 뇌물수수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송 시장은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송 시장은 2016년 1~12월 관급공사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 등으로 공사업체 대표 등 3명으로 관급공사 수주 대가로 3600만원 상당의 고급 의료 등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뇌물 공여자 3명도 불구속 기소의견을 송치했다.


송도근 사천시장 압수수색


허위·과장 정보를 활용한 주가조작 혐의로 금융당국과 검찰 조사를 받아온 `줄기세포 신화`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가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결국 구속됐다.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는 지난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후 머무른 남부구치소에 그대로 수감됐다.


라정찬 네이처셀 대표


네이처셀 주식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퇴행성관절염 줄기세포치료제 후보물질인 `조인트스템`의 조건부 허가를 식약처에 신청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네이처셀은 조인트스템이 수술 없이 주사로 투약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해 허가를 받을 것이라 자신하였다. 그러나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다가 반려되었고 이후,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네이처셀의 시세조종 의혹을 살펴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긴급조치(Fast-Track·패스트트랙) 제도를 통해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달 7일 서울 영등포구 네이처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으나, 이후 라 대표는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저와 네이처셀을 포함한 바이오스타그룹은 양심과 법률에 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네이처셀

네이처셀  바이오스타그룹


그리고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에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네이처셀 주가는 개장 직후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네이처셀의 라정찬 대표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는 대한민국의 줄기세포 역사를 쓴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수의학 박사)한 뒤 (주)알앤엘바이오 대표이사, 회장, 베데스다 삼성병원 이사장, 서울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폴리텍 바이오대학 겸임교수, 미국 성체줄기세포 연구기관 ICMS (The International Cellular Medicine Society) 보드멤버, Febc 극동방송 감사 등을 역임했다. 2003 벤쳐기업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2007 대한민국 기술대상 수상, 2009 장영실 한국과학 기술대상 등의 굴지의 상을 받기도 했다.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  줄기세포

라 대표의 대표적인 업적은 알츠하이머 줄기세포 치료기술, 日서 세계 최초 상용화하였고, 세계 최초 지방 줄기세포 계대 배양 공정을 확립하고, 통합줄기세포은행을 구축하는 한편, 류마티스관절염, 자가면역성 난청 환자 치료에 성공하기도 했다. 자가 지방줄기세포의 정맥내 투여를 통해 항노화 및 난치병 치료기술 개발하고, 지방유래 줄기세포 치료제 「바스코스템」,「조인트스템」, 「아스트로스템」 개발하기도 했다.

 

한편 네이처셀은 “라정찬 대표가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중이나 회사는 대표이사 직무대행 체제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고 18일 공시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코스닥시장에서 네이처셀은 전날보다 27.63% 떨어진 1만1000원에 거래됐다. 


네이처셀 라정찬 줄기세포



어린이 집에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입학하더라도, 부모는 쉽사리 안심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대개 열악한 시설 환경과 식재료 현황, 그리고 일부 몰상식한 보육교사들의 아동학대 등이 원인이다. 국, 공립어린이집의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관리, 감독을 받아서 이런 경우가 조금 덜하다고는 하지만, 사립어린이집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유아폭력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심심찮게 사건이 벌어진다. 


필자가 글을 쓴 어제...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오늘 또 강서구 어린이 집에서 생후 11개월 된 남자 아이가 돌연사 하였다.. 



  • 2015년 1월에 인천광역시 연수구 어린이집 폭행 사건 

김치를 먹지 않고 뱉었다고 4살 어린이의 따귀를 대차게 날렸다. 주먹을 맞고 날아간 뒤에 떨어진 음식을 강제로 주워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치를 떠는 중이다. 이후 이 여자는 CCTV 영상 2개가 추가로 발견되어 상습범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얼굴과 실명, 연락처, 주소를 비롯한 신상이 모두 털렸다. 임산부라는데 임신 중이라 예민했다는 개소리 변명으로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진짜 문제는, 다른 어린이집이라고 해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


인천광역시 연수구 어린이집 폭행 사건


더욱 경악스러운 건, 이런 사건이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관리 소홀로 인해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어린이집도 적지 않은데다가, 자기가 입은 피해를 제대로 증언할 수조차 없는 어린 원아들을 겁박해서 그마저 막아버리는 등 사건 은폐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 자질이 부족한 보육교사

게다가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절차가 지나치게 쉽다 보니 그만큼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보육교사가 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도,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원인들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보육교사 2급을 기준으로하자면 취득이 얼마나 쉽냐면 사회복지 하나도 제대로 배우기가 힘든 2년제 전문대학 사회복지과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육교사반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그것도 아동복지과가 아닌 사회복지과에서 이렇게 운영하였다. 


정작 간판인 사회복지는 사회복지사 2급 취득이 가능한 정도로 최소한만 배운 이후 바로 보육교사 2급 취득이 가능한 아동뵤육 과목을 듣고 보육교사 2급을 취득한다. 먼 과거도 아닌 2016년도까지만 하더라도 학과간판은 사회복지과라고 달아두고 현실은 여학생 한정이긴 하지만 보육교사 2급 최득이 가능한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대충 공부시켜서 내버내는 전문대학이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았다. 


이들은 보육교사 2급 취득이 가능할 정도로 이론과 실습을 끝내고 분명 보육교사 2급을 취득하긴 하였지만 과연 충분한 자질을 갖췄는지 의문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각종 대책을 마련해서 이러한 사태를 막아보고자 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그리고 최근에는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유치원에서도 학대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어린이집 교사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봐주려고 열심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건사고들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불신들이 커지고만 있다. 


  • 그리고 각종 사건 사고들..

2016년에는 낮잠을 안 자는 아이에게 무서운 영상을 보여줘서 불안과 두려움 증세를 일으키게 한 보육교사(47세)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는데, 그 영상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고, 예능프로에서도 등장했던 도깨비 앱이란 것으로, 도깨비의 영상과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로 말을 안 듣거나 밥을 안 먹으면 잡아간다는 소리가 나오는 앱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생겼다.


어린이집 폭행

유치원 선생님 폭행

어린이집 성적 학대


2016년 7월에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200여차례나 때린 교사가 구속되었다.기사 그리고 원장 역시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서 불구속 입건되었다.


2016년 8월에는 세종청사 어린이집에서 22개월 된 남아가 성적 학대를 당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세종시내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피해 아동은 등, 허리, 어깨 부분에 타박상으로 추정되는 멍이 발견되었으며, 생식기와 항문에 성적 학대를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행동을 보였고, 진단서에는 상세불명의 항문점막 열창', '외부 생식기관 타박상', '엉덩이 근육 염증' 등의 의사 소견이 적혀 있다. 사실상 아동 성범죄에 준하는 학대행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경찰조사는 거의 끝났다고 하는데, 해당 어린이집은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뉴시스 보도, 대전MBC 보도


그리고 학대사건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기사도 나왔다.


어린이집 선생님

어린이집 교사들의 노예계약

  • 어린이집 교사들의 노예계약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나쁘다.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하며, 종일반의 경우에는 직장인 못지않은 철야근무를 해야한다.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이런 근무 스트레스가 원아 폭행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이런 근무 스트레스는 평가인증시 최고조에 달하여 경험에 따르면 평가인증이 실시되는 달 2개월 전부터 주말에 쉼없이 원에 출근하며, 1주일 전으로 다가오면 철야 작업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정도되면 사람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거기에다가 월급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따위는 무시하고 최저임금도 어겨버린다. 업무량이 많고 월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불만을 말할 수도 없고 일부 몰상식한 학부모에 대해 감정노동까지 해야 한다. 막말좀보태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훨씬 더 돋보일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린이집 교사들의 불만 제기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원장 네트워크가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생부에 가까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기입되는 순간, 그나마 있는 직장까지도 잃고 동종 직장으로의 취직도 막혀버리고 만다.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처우는 통상적인 비정규직보다 못하다. 전형적인 갑을관계의 형태.


또한 주말이나 공휴일, 심지어 방학 때도 아이를 맡아주길 요구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교사들이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게다가 개념없는 원장과 학부모들에 시달리기까지 하면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현 보육교사 사회의 현실이다. 또한 각종 일이 장난 아니다. 애들 보는건 물론 서류 교구 계획안 잡일 청소 등. 상상 그 이상이다. 돈도 제대로 안 주면서 많은 일을 하길 바라는 원장들도 많다. 게다가 가정 어린이집은 원장이 담임 겸직을 할 수 있어 이것 또한 큰 문제다.


게다가 출산율은 줄어들고 구직자는 많아지는 형국인데, 어린이집은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형태를 띠고 있어 전망이 더욱 암울하기까지 하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고용인-피고용인 관계를 떠올려도 별반 다를바가 없는 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보통합이 되어서 교사에 대한 대우가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부당한 대우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 반대로.. 교사가 "갑"이고 원장이 "을"

허나 요즘은 이 반대의 경우도 많은 편이다. 쉽게 말해 교사가 "갑"이고 원장이 "을"인 경우가 더 많다


구조는 이러한데, 원장 혹은 동료 교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무슨 이유든 간에 교사A가 그만둔다고 하고 갑자기 출근을 안 한다. 그러면 그 교사A가 맡은 반(=아이들)은 당장 대체교사가 없기 때문에 결국 원장이 그 반을 맡아야 한다. 결국 그만큼의 노동을 원장이 해야 하는 것이고, 대체교사를 구하지 못할 경우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또 되기에 최근에는 교사가 언제 그만둔다고 할지 몰라서 교사 처우를 잘해주는 원이 많다.


또한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맡는다"는 전제 하에 월차, 연차, 휴가, 생리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등이 있음에도 전혀 쓸 수 없다(.....).



상기 서술한대로 담임 A가 어떤 이유로든 구멍이 나면 대체교사를 지원 받거나 구해서 그 반을 임시로 맡아야 하는데, 영유아들의 특성상 낯선 사람이 기존 선생님 대신 왔다고 하면 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말을 안 들으면 다행이고, 낯설어서 울거나 오히려 피해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 그 아이 하나만을 돌보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 아이를 놔두자니 어수선해지고 시끄러워져서 이런 이유로 "대체교사" 자체를 안 하려는 "프리랜서 교사" 가 많다.


그렇다보니, 구 혹은 시에서 지원해주는 대체교사는 한정되어 있는데, 정작 선착순이니 우선순위 등으로 밀려서 연차, 월차는 꿈도 못 꾸고, 생리통은 기본인 근무환경 때문에(99%가 여성이기 때문에) 생리휴가는 사치를 넘어서서 눈총을 받는다.


휴가 또한 어린이집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쉴 수 없다. 휴가를 가더라도 원 규모나 근무교직원 수에 따라 다르지만 1주일에 1번 이상은 반드시 나와야 하다 보니[19] 교사들 사이에서 로테이션으로 나와야 하고, 보통 짬이 없거나 원 근속년수가 적은 교사는 애매하게 주 중간에 나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상기 이유들로 인해 보육교사는 노동법과 영유아보육법 사이에서 둘 다 보장을 못받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어린이집은 필수적으로 7시30분~19시30분이 법정 운영시간이다. 그렇지만 원 "행사"가 있게되면 "행사준비"로 인해 야근에 주말근무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수당지급에 애매한 곳에 걸쳐있어서 논란이 된다.


러시아 드미트리 돈스코이함 (Dmitrii Donskoi / Дмитрий Донской)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쓰시마 해전에서 패전한 발틱함대 소속의 함선 중 하나였다. 큰 손상을 입은 채 일본 해군의 추격을 받다가 1905년 5월 29일 6시 46분에 자침하였다. 함장 이하 생존 승조원들은 울릉도에 상륙 후 다음 날 이들을 붙잡으러 온 일본 해군들에게 무저항 항복했다.


진짜 보물선 돈스코이호?

1981년부터 50조 이상의 보물이 실려있을거라며 인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이 떡밥은 잊을만 하면 터져나와 외환위기 당시 동아건설, 이후 JU, 현재에는 신일그룹이라는데에서 인양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7월 17일. 신일 그룹(대표 류상미)에서 해당 선체를 발견, 탐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소유권 등기와 본체인양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금이 있다고 회자되는데, 어느 업체도 실제 인양이나 금의 유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현재 인양을 주도하는 업체는 금이 있다고 기정사실화하고(아직 끌어올리지도 않았는데!) 관련 가상화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금전적으로 엮이는 일은 없도록 주의하자. 


게다가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금이 실렸을 확률은 여러 모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1. 단순 금괴만 200톤에, 50~150조원 어치 금화 역시 고고학적 가치 뻥튀기를 감안해도 수십~수백톤에 이른다. 배수량 6천톤도 안 되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이렇게 많이 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2. 장거리 원정이라는 위험한 임무를 맡은 배에 그런 막대한 금을 실을 이유가 없다.(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발틱함대 소속으로서, 유럽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항해했다. 군자금이라고 쳐도, 시베리아 철도가 있는데 굳이 이런 배에?)

3. 러시아 제국 정부 공식 문서에 금 수송 관련 이야기가 없다. 

신일그룹


사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보물선을 이용한 주가 조작 사기가 있었다. (지금 주식에 투자하려는 당신.. 조심하세요!!) 

그리고 그 사기의 나비효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이 줄줄이 뇌물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기도 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B%93%9C%EB%AF%B8%ED%8A%B8%EB%A6%AC%20%EB%8F%88%EC%8A%A4%EC%BD%94%EC%9D%B4%ED%95%A8]

신일그룹이 발견한 보물선 드미트리 돈스코이함 (Dmitrii Donskoi / Дмитрий Донской)


  • 돈스코이함은 어떤 배?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쓰시마 해전에서 패전한 발틱함대 소속의 함선 중 하나였다. 큰 손상을 입은 채 일본 해군의 추격을 받다가 1905년 5월 29일 6시 46분에 자침하였다. 함장 이하 생존 승조원들은 울릉도에 상륙 후 다음 날 이들을 붙잡으러 온 일본 해군들에게 무저항 항복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 진짜 보물선 돈스코이호?

1981년부터 50조 이상의 보물이 실려있을거라며 인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이 떡밥은 잊을만 하면 터져나와 외환위기 당시 동아건설, 이후 JU, 현재에는 신일그룹이라는데에서 인양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7월 17일. 신일 그룹(대표 류상미)에서 해당 선체를 발견, "돈스코이호 관련 깜짝 놀랄 사실 공개하겠다"고 발표 한 이후, 덩달아 신일 그룹의 최대 주주인 제일제강 주가도 현재까지 30% 상승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추정 이유


지난 7월 6일 신일그룹은 류상미 대표는 제일제강 최대주주 최준석 씨와 주식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거래 체결 이후 신일그룹 류상미 대표는 제일제강 지분 17.33%를 확보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즉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신입그룹의 대표가 제일제강의 최대주주이기에 지난 17일 제일제강 주가가 상승한것이다.


하지만 신일그룹 측은 거래 당일 주식 거래 대금의 10%만 납부했고, 나머지 90%는 오는 9월 완납할 계획이라고 한다.


  • 인양까지 가능할까?

한편, 인양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았는데, 첫째로 정부로부터 발굴허가를 받아야 하고 소유권에 따른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 허가와 관련해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아직 명확한 견해를 나타내지는 않고 있으며, 관계자는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있고 회의가 끝나야 관련 내용을 언론 등에 공표할 수 있다"고 했다.


돈스코이호는 금도 수없이 많은 금이 있다고 회자되는데, 어느 업체도 실제 인양이나 금의 유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현재 인양을 주도하는 신일그룹은 금이 있다고 기정사실화하고(아직 끌어올리지도 않았는데!) 관련 가상화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금전적으로 안좋게 엮이는 일은 없도록 주의하자. 


울릉도 앞바다 보물선


  • 금은 거짓말?

신일그룹이 주장하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금이 실렸을 확률은 여러 모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


1. 단순 금괴만 200톤에, 50~150조원 어치 금화 역시 고고학적 가치 뻥튀기를 감안해도 수십~수백톤에 이른다. 배수량 6천톤도 안 되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이렇게 많이 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2. 장거리 원정이라는 위험한 임무를 맡은 배에 그런 막대한 금을 실을 이유가 없다.(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발틱함대 소속으로서, 유럽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항해했다. 군자금이라고 쳐도, 시베리아 철도가 있는데 굳이 이런 배에?)


3. 러시아 제국 정부 공식 문서에 금 수송 관련 이야기가 없다. 


신일그룹 보물선 발굴 사업


사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보물선을 이용한 주가 조작 사기가 있었다. (지금 주식에 투자하려는 당신.. 조심하세요!!) 그리고 그 사기의 나비효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이 줄줄이 뇌물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기도 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보물선


[출처 : https://namu.wiki/w/%EB%93%9C%EB%AF%B8%ED%8A%B8%EB%A6%AC%20%EB%8F%88%EC%8A%A4%EC%BD%94%EC%9D%B4%ED%95%A8]

대한민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 루보사태.


원래 루보라는 회사는 자동차 등 온갖 동체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작은 기업이었다. 본사는 경기도 파주시 소재.


2006년 3/4분기(7월 ~ 9월) 기준 매출액은 54억원, 영업이익은 2억 2천만원 적자를 기록했던 별 볼일 없는 회사였다. 회사의 주식 수는 990만주 수준으로 최대주주나 최대주주 가족의 지분이 40%를 넘고 나머지는 소액주주 지분이었다. 2006년 10월 1일 기준 주가는 1185원.


작전세력들은 이 회사에 주목하고 주식을 매집하기로 모의했다.


대한민국 주가조작 사건


  • 1차 부양기(2006년 10월 ~ 11월)

2006년 10월부터 작전세력들은 루보사의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작전세력엔 제이유 그룹 부회장 쪽과 몇몇 세력이 연합해서 3명이 총책을 맡고 3개의 상호저축은행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러명의 트레이더를 끌어들여 실무를 하기로 했다.


주식 매집이 시작되면서 루보사의 주가는 1185원에서 2000원까지 상한가를 딱 2번 치면서 거의 하락 없이 쭉 올라갔다. 매일 2~5%의 상승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이례적인 형태였다. 보통 주가조작은 연일 상한가를 치면서 올라가기 때문. 한국거래소에서는 이 때부터 수상한 조짐을 느끼고 루보사에 조회공시를 여러번 요구했으나, 그 때마다 루보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 없음이라고 답했다. 


  • 제이유 그룹 회원 동원(2006년 12월 ~ 2007년 1월) 

주가조작 작전의 총책 중 한 명인 제이유 부회장은 자신의 제이유 조직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제이유 회원들을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거기서 자신의 계좌 수익률을 보여주면서 회원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퍼뜨려서 제이유 회원들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여기서 골때리는 문제는 제이유 회원들의 주식계좌에 대해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를 지급하지 않아 돈을 찾을 수도 없고 주식을 팔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게다가 이 회원들의 주식계좌를 루보 주식을 매집하는 트레이더한테 맡겨버렸다. 따라서 주식시장에 루보사의 주식은 계속 말라갔다. 중간에 몇번씩 하락이 있기도 했지만(한국거래소에 대한 눈속임용이 나중에 밝혀진다.) 물량부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2000원 하던 주식은 6,600원까지 올라갔다. 이 제이유 자체가 일종의 다단계 사이비 종교의 형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주식을 팔 수 없음에도 제이유 회원들은 자체적으로 투자설명회를 열어서 다른 일반인의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작전 조직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 2차 부양기(2007년 2월 ~ 3월) 

이때부터 주가조작 총책 등 작전세력들은 통칭 모찌계좌라고 부르는 차명계좌를 만들어 가지고 있던 루보 주식을 이 차명계좌로 이체시켰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 주식을 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루보 주가가 1만원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작전세력들은 차명계좌 주식을 처분하고 있었다. 이 때부터 개미 투자자들이 루보 주식을 같이 사 주면서 거래량이 점증하기 시작했다. 3월 23일 18,488원까지 상승.


  • 주식 처분기(3월 ~ 4월 16일)

이 때에는 작전세력들이 제이유 회원계좌를 동원해서 샀던 주식까지 모두 처분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처분하면 작전이 드러나기 때문에 개미들이 주식을 사 줄 때 조금씩 팔아치우면서 차익을 챙겼다. 이미 개미[2]들도 이성을 잃고 주식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세력의 주식 처분에도 불구하고 4월 16일 주가가 51,400원(38,707원은 유상증자 이후 환산가)까지 치솟을 수 있었다. 하루평균 거래량은 100~200만주 수준. 시가총액이 5,200억원까지 올라가면서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주식으로 올라가기에 이른다. 언론은 이미 우려하고 있었다.


  • 2007년 4월 16일 오후

이 날 장 마감 후 결국 검찰에서 주가조작임을 한참 전에 알아서 세력들을 소환하고 주식계좌를 동결했음이 알려졌다. 잘 하는 짓이다 1,250원이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L사라는 문구에서 모든 개미투자자는 이 주식이 루보임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 대폭락

그 다음 날부터는 말할 필요 없다. 연일 하한가 직행(11거래일 연속 하한가). 단 한 달만에 3000원대로 내려가더니 2007년 10월 17일에는 2천원대로 돌아갔다. 오른만큼 떨어진 셈이다.


  • 주가조작 이후

2007년 6월 루보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국 이전부터 다단계 사기그룹으로 찍혔던 제이유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그룹 자체가 해체되었고, 개인투자자들의 눈덩이 손실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은 모든 돈을 다 잃고 나서야 이 회사가 이런 회사였구나 하는 걸 알았다고.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 루보사태. 루보사태.


  • 결과와 교훈

결국 주식시장에서 늘 있어 왔던 주가조작이나 사기, 협잡의 한 예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사태가 일으켰던 파장은 너무 컸다. 한국거래소에선 이 이후로 모든 종목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고, 이 주식에 낚여서 엄청난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 중 진짜로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많다. 


이 사태로 인한 교훈(?)은 결론적으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잘 아는 회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급등주에 올라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것이었다. 잠깐의 방심이 크나큰 손실로 이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재무제표 조작은 물론 회사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는 악질적인 경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출까지 동원해 욕심에 눈이 멀어 뛰어드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코스피건 코스닥이건, 지속적인 이윤을 내며 성장하고 장기간 존속할 수 있는 회사인가? 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함부로 투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 오늘날의 루보

회사 경영상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루보 자체는 계속 살아있었다. 주식 총수는 2배 가량 늘었지만 가격은 당연히 1,000원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으며, 대형 포탈의 증권 항목에선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종종 이어지고 있다. 간혹 가격에 혹하는 초짜들과 앞으로 오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정말로 예전 가격만큼 오르면 해외토픽.. 근데 요즘도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갑자기 폭등하기도 한다. 


2009년 3월 20일에는 "기업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해 상호를 "주식회사 제다"로 바꾸었다가 2년 만인 2011년 3월 30일에 "주식회사 루보"로 돌아왔다. 이때도 변경 사유는 "기업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가치 향상"이었다. 뭐지?


2015년 7월 3일에는 사명을 "썬코어"로 바꾸고 그 유명한 최규선 회장이 이를 인수하였다. 전기차 관련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최 회장은 취임 후 "기업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해 사명을 "썬코어"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2016년 후반에는 아랍의 왕자와 사업이야기를 계획을 진행중이라는 말로 주가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최 회장은 다른 회사의 자금을 430억원이나 횡령한 혐의로 법정 구속되며 썬코어는 나락으로 떨어져 하한가로 직행하고, 결국 거래정지를 촉발했다.


2017년 4월 , 최규선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병원에서 도주했다 15일 만에 붙잡히며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2017년 8월 14일 17년 상반기 반기보고서를 미제출 하였으며, 이후 회계법인으로 부터 반기보고서에 대해 의견거절 의견을 받으며, 상장폐지 통지를 받았다. 2018년에는 개선기간을 부여받고 거래정지 상태로 상장폐지를 대기하는 상태이다. 상장폐지가 되더라도 사실 썬코어(구 루보)는 상당히 오랜기간 주식시장에서 버티긴 한 회사이다. 중소기업 치고 상장해서 20년 동안 버티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 


'루보 사태' 때 그 주식 '썬코어' 결국 상장폐지, 연합뉴스 2018-03-06 기사에 따르면 2018년 3월 6일∼14일 정리매매 후 결국 15일 상장폐지될 듯 하다. 


각종 비리를 저지른 최 회장으로 인해 회사 내부가 사실상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노조와 계속 다툼이 심해서 결국 회사가 정리되고 말았다.


또 다른 한국의 주가조작 사건 : 보물선 발굴 사업 : 이용호 게이트


[출처 : https://namu.wiki/w/%EB%A3%A8%EB%B3%B4%20%EC%82%AC%ED%83%9C]


민주화 이후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깃발을 들고 대구에서 당선된,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이 된 정치인 


문재인 정부의 첫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16~18대, 20대 국회의원이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지역이다. 그리고 한 줄 요약에서 보듯이 민주당이 창당된 이래 처음으로 대구광역시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이해찬, 전해철, 이종걸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군으로 꼽히는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실제로 당대표 후보군 중 지지율이 1위로 올라갔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아버지 김영룡과 어머니 차숙희 사이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강경파 운동권이었고,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대학 제적과 수감을 반복했다. 신림동에서 서점을 열기도 하고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 농성장에도 있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겪은 사람답게,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과거 3당 합당 등, 정계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당적이 몇 차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열린우리당 창당 전까지는 보수 정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민주당계 정당으로 둥지를 옮겼고, 그 후에도 쭉 이쪽에서 활동해 왔으며 2018년 기준으로 여전히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TK 출신임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점,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정현 , 조경태 , 정운천, 홍의락 의원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곤 한다.


한겨레민주당에 입당하여 정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민주당에서 당직자를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왕·과천에 출마했지만 신한국당 안상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그리고 이듬해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김 타파를 명분으로 신한국당과의 합당으로 말미암아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으나, 대학교 선배이자, 멘토였던 제정구 의원이 사망하자 그의 지역구를 물려 받아 경기도 군포시로 지역구를 옮겼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처음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하였다.


분명히 한나라당 의원이지만, 출신이 출신이다보니 여러 현안에 대해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통합민주당 시절의 동지였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후인 2003년 8월,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부영, 이우재, 김영춘, 안영근 등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에도 군포시에서 연속으로 당선되어 3선 기록을 달성하였다. 따지고 보면 나름 군포시를 중심으로 하던 중진 의원이던 셈.



그러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누리당의 본거지인 대구로 내려가 수성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기는 패기파격적인 행보를 벌였다. 비록 선거에서는 이한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40.4%라는 고무적인 득표율을 받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김부겸은 일찌감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수성구 갑에 재도전할 것임을 밝히고 지역구 표밭 일구기에 돌입했다. 


대구광역시는 우리나라에서 새누리당 지지세가 제일 강력한 지역 이라 승리를 낙관할 수는 없었지만, 김부겸은 선거 시즌 내내 가상 대결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출마해 당선된 이정현 의원에 이어 이변을 연출할 기대주로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로 선출된 후 그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구광역시 출마를 준비하던 홍의락 의원이 컷오프를 당한 후 탈당하자, 홍 의원의 컷오프 철회와 당 복귀를 요구하며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중대한 결심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는 등 대구광역시에 도전장을 내민 민주당 정치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전부 김문수 후보에게 10%p 내외의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으며 특히 투표 8일 전인 4월 5일자 문화일보 - 포커스컴퍼니의 조사에서는 62.3%대를 얻어 김문수 후보를 무려 30%p 차이로 제쳤다.


대구광역시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하면 실제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 정도라면 김부겸의 당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 셈이라고 볼 수 있었다. 투표 당일 출구조사에서도 이 기세를 계속해서 이어가 62%라는 유력한 결과로 별다른 이변 없이 당선이 될 것으로 확실시되었다.



20대 총선 당일날 새누리당 후보군에 좌절한 대구광역시의 투표율이 54.8%로 전국 최저인 가운데 찍을 놈이 생긴 수성 갑 선거구는 전국 평균(58%)을 넘어선 68.2%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김문수 후보의 51,374표(37.7%)를 크게 웃도는 84,911표(62.3%) 를 얻으면서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오게 됐다.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자 대구광역시에서 당선된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서.


김부겸이 당선된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역 기반을 조용히 다졌기 때문이다. 2번의 낙선 뿐만 아니라, 원외 활동에서 권영진 대구시장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자신은 순천의 서갑원처럼 대구광역시 발전에 발목을 잡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약에도 민주당을 발목만 잡는 야당에서 협력하는 야당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하기도 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반감이 희석된 것도 영향이 컸다.


대구광역시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1988년 4월 26일 치뤄진 13대 총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담으로 이 20대 총선에서는 2003년 그와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의 창당 멤버로 활약했던 김영춘이 부산에서 당선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다. 김영춘 또한 비슷하게 19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자신의 출생지로 낙향해서 지역 기반을 조용히 다져 왔다. 


독수리 5형제 중 자신과 김영춘만 당선되서 아쉽다고 했다고.



이후 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크게 불거졌을 때는 민주당의 유일한 대구 지역구 의원으로서 밀양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공교롭게도 김부겸을 제외한 민주당의 영남권 지역구 의원들은 모두 부산 및 낙동강 벨트 지역이어서 자연스럽게 가덕도를 지지하였고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 김부겸 vs 낙동강 벨트 지역구 의원이란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신공항 문제는 당 전체가 쪼개질 위기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내분이 발생한 새누리당에게 여론의 포커스가 맞춰졌고, 또 민주당의 지지층이 대부분 부산 가덕도 쪽이 낫지 않겠냐는 방향으로 심리가 쏠려 김부겸은 상대적으로 이 문제에서 관심을 많이 못 받았다. 


김부겸 본인도 활발하게 밀양 지지 활동을 벌이긴 했지만 가덕도 지지 인사 및 민주당 전체에 대해 심한 비난을 가하지는 않아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지도 않았고. 그래서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그때 김부겸은 밀양을 지지했을 거 같은데 왜 뉴스가 없지?"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여당의 대구 국회의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행안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지역구에 있는 그의 사무소에는 대구광역시 각지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사무소 직원 말로는 "여기는 수성구 민원만 받으니까 다른 지역구 민원은 그 지역구 의원의 사무소에 문의하라"는 말이 입에 맴돌 정도로 민원이 몰린다고.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장재식(張在植)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의 2남 1녀 중 장남이다. 참고로 이 집안은 호남 최대 명문가중 하나다.


장하준 집안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이 그의 사촌 형, 1대 여성가족부 장관인 장하진 씨가 사촌 누나


종조부, 조부 대의 3명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으며 부친, 백부, 숙부 등 4명은 모두 6.25전쟁에 의용병으로 참전했다. 아버지 장재식은 16살의 어린 나이에 낙동강 전투에 직접 참전했다고 한다. 전남 신안 지방의 대지주이지만 이승만 정부때의 토지개혁법때 참여했고 솔선수범하여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한때 안철수의 정책 자문을 했다가 고려대 교수를 거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이 그의 사촌 형, 1대 여성가족부 장관인 장하진 씨가 사촌 누나이다.


  • 어린시절

1963년 10월 7일 태어나 어린 시절은 서울에서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근처에 있던 대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만 팠다고 하며 한 시간에 250페이지를 읽었다고 전해진다.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diploma를 거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991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기 1년 전인 1990년에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임용(전임강사)되어 2004년 조교수 급인 lecturer 자리에 올랐고, 이듬해 부교수 급인 reader로 승급하여 재직 중이다.


2018년 7월 10일, 지금의 한국의 경제는 혁신도 투자도 없는 비정상 상태이며, 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는 문재인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을 비판했다. 


  • 학문적 성향

역사적 제도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린다. 기존의 신고전파,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등을 위시한 주류경제학과 구별하여 간단하게 비주류 경제학자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역사적 제도주의 경제학은 말 그대로 경제학을 분석 할 때 한 나라의 제도나 역사를 중요시 여기는 관점이다. 즉 경제사나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경제적 발전에 있어서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수식 위주의 경제학과는 다르다. 실제로 장하준의 책을 보다 보면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나오는 수식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장하준이 경제학을 말빨로 때운다고 생각하진 말자. 그의 이런 성향은 영국 유학 시절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던 로버트 로손(Robert Rowthor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학문적 성향은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 장하준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선진국의 행태들은 위선이며 선진국들의 발전과정에서는 하나도 예외없이 보호무역주의와 높은 관세율. 국가 주도의 산업진흥책이 시행되었다고 하나 하나 사례를 들어 말한다. 말하자면 선진국들이 이제와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보호무역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간 다음. 개발 도상국들이 올라가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라는 것. 이것은 최근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도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학자다. 


장하준 문재인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이 그의 사촌 형, 1대 여성가족부 장관인 장하진 씨가 사촌 누나


  • 세계적인 석학 중 한명으로..

비주류 경제학자라는 특징 덕분인지 그의 주장에 대해 찬반 양론이 거셌다. 물론 그가 듣보잡 경제학자로 존재할 때는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인 사람이 없었으나 사다리 걷어차기 이후 여기 저기에서 많이 언급됐다.  위에서 언급한 뮈르달 상도 사다리 걷어차기로 받은 상이다. 


그러다가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존재감이 급상승하여 세계적인 석학 중에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그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와 동률 위치에 놓았고 영국의 가디언은 그가 펴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극찬하며 영국 노동당 당수가 된 밀리밴드는 장하준을 만나 점심식사라도 하면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보수 양측에서 공격당하는 인물이다.  

어떤 이들에겐 장하준이 복지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진보 경제학자로 오해를 사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주도 경제발전 기여를 적극 인정한다는 점에서, "한국 진보진영 주류와 매우 다르다. 혹은 한국 진보진영에 속하지 않는다."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반면 한국 보수들이 선호하는 시장 자유 확대와 부자 우선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를 강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보수측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사실 장하준이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재벌 용인과 신자유주의 반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 되기 때문이다. 재벌 용인은 진보가 학을 떼고 신자유주의 반대와 복지국가는 보수가 떼거지로 반대하니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발렌베리 가문을 중심으로 한 대자본과 노조 그리고 사회민주당의 대타협을 통해서 복지국가를 건설한 스웨덴을 이상적인 모델로 보고 있는듯 하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약간의 농담을 보태서)예전부터 진보·보수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해왔는데, 드디어 양쪽 지식인들이 ‘공통점’을 찾은 것 같다. 이것이 대타협의 기초가 된다면 기꺼이 욕을 먹겠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를 가리키며 이들의 고정관념을 부수라고 주장한다. 


장하준의 직접적인 의견을 들어보면 중앙은행 독립의 경우, 한국에서는 진보적 의제지만, 유럽에서는 보수의 정책이다. 


"‘산업정책’도 한국에서는 우파(박정희 전 대통령)가 주로 추진했지만, 유럽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이런 고정관념이야말로 군부독재가 남긴 가장 사악한 유산이다. 난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진보·보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맞는 이야기만 할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사촌이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교수가 과거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주주자본주의의 논리와 수단을 가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개혁을 한다는 장하성의 주장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깠다. 일반 대중의 반응은 괜찮아서 그가 펴낸 책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0년 12월 발매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치고 단숨에 판매 1위가 되었다. 12월 3째주 기준으로 2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장하준 경제학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학계에서의 평가가 심하게 엇갈리는 인물 중 한 명.


  •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학계에서의 평가가 심하게 엇갈리는 인물 중 한 명. 

경제학계에서 학자들의 업적은 오로지 논문으로 결정되는데, 장하준은 세계구급이라고 치기에는 논문 경력이 상당히 빈약하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임용경쟁 당시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실제 장하준이 몸담았던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은 국내의 한겨레 신문 등에선 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SSCI) 3위급이라고 기사를 써냈지만, 이는 원 출처인 정태인 쪽이 사실을 왜곡한 것이며 심지어 기사를 작성한 한겨레 기자도 문제점을 인정했다. 참고로 ideas.repec으로 들어가 검색해보면 해당 잡지는 순위가 한참 아래에 있다.  


이런 점들을 들어서 현재 국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중에는 학력, 논문 경력 등에서 장하준에 비해 전혀 꿇리지 않고 오히려 더 위인 교수들도 적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한마디로 학계에서의 업적에 비해서 대중적인 지명도나 평가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있다는 분석


장하준 본인은 2013년 11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에 대해 "동료 경제학자들은 나를 괴짜라고 무시하거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모욕인 '사회학자'라고 부른다"고 비꼬았다.


사실 노벨경제학상은 거의 예외없이 신고전파 혹은 합리적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업적은 차지하고라도 비주류 경제학에 속하는 장하준 한테는 사실상 기회가 없다고 봐도 된다. 2009년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학파이긴 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처음 올리버 윌리엄슨과 엘리너 오스트롬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 때도 의외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2002년에 행동경제학의 거두 대니얼 카너먼이 노벨상을 수상했을때도 역대급으로 이례적인 수상이라는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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