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No. 1 공부법 공신닷컴 CEO.


2001학년도 수능 상위 0.18%의 점수인 396점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에 입학해 ‘공부를 신나게’라는 이름으로 교육봉사 동아리 ‘공신’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부의 신"이라고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정작 본인은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뜻풀이하든 개의치 않는다.


2006년, '공신'은 서울대학교 출신 자신의 남동생 그리고 서울대 동기, 후배들과 함께 입시공부법을 알려주는 멘토링 서비스로 시작했다. 강성태는 공신을 2008년 11월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공신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기에 이른다.


MBC 공부의 제왕에 출연했고, KBS 드라마 공부의 신을 자문하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일선 학교들과 청소년 기관에서 멘토링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신혼여행 시절의 에피소드가 기가 막힌다(?). 처음엔 정기를 흡수하자라는 이유로 백두산 등정을 하자고 했다가 당연히 아내의 반대로 취소하고 대신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독일에서 간 방문지가 쾰른 대성당이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같은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독일 자동차 공장과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학살 수용소였고 신혼여행 이후로 일주일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유대인 학살 수용소만 간 건 아니고 본인 학과에 맞게 독일차를 타보기도 하고 즐긴 건 즐겼다.



상북도 문경시(前 점촌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왔다. 


시골 촌놈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 때는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일진이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차마 화장실을 가겠다는 한마디를 할 용기가 없어서 그대로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힘도 없고 공부도 별로 못해서 따돌림을 받았다고.


그런데 자기랑 똑같이 약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도 건들지를 못했다. 바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었고 공부를 잘 하면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실 이점을 몇몇 사람들이 "공부 못하는 사람은 왕따 탈출 못해?"라고 오해하고 블로그나 유튜브 댓글에서 강성태를 비판하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나 강성태가 공부하게 된 계기이지 왕따당하는 이유를 피해자에게 돌리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걸러듣자.


원래는 공부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으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고교 입학시험 점수는 전교 꼴찌에 가까웠고, 고2 때까지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를 몰라 하루에 18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강행군을 했음에도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에 전교 380명 중 307등을 할 정도로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일산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시절 이었으며, 백석고등학교는 평준화 전 매년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 이상의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명문 고등학교였으니 일반 고등학교 수준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2002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 15명, 연세대 71명, 고려대 62명 등 졸업생 341명 중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SKY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동시합격 포함)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내기도 했다. 


그러니 전교 꼴찌에 가까웠다고 하더라도 평준화된 현재 일반고 기준 상위 2~30%안에는 들었을, 최상위권 대학 수준이 아니었을뿐, 어지간한 서울 중상위권 대학은 충분히 노려볼만 한 성적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후에 자신이 공부하는 모든 교재의 표지에 바를 정(正)자를 2개씩 쓸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해서 성적을 올렸지만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피부병을 앓아 자퇴를 고민했을 정도로 힘들게 공부했다고 한다.


민감한 피부 때문에 겨울에 교실에 히터를 틀어놓으면 몸에 반점이 돋고 피부가 찢어질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그가 시험을 보던 2001년 수능 당일날, 고사장에서는 히터를 거의 틀지 않았고 만점에 수렴하는 점수인 396점을 받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에 합격했다. 다만 대학생활은 그렇게 성실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꿈이 없어 입학하자마자 학사경고를 2번이나 먹었다고. 


그러나 해병대 전역후 교육봉사 활동을 통해 본인의 뜻을 찾게 되었고, 이후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 서울대 학점 4.0에 달하는 높은 성적을 받음은 물론, 교육봉사를 위한 교육학과 전공 수업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심각한 음치로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양파의 '다 알아요' 란 곡을 불렀었는데 음정도 안 맞고 박자도 이상해서 모든 출연진들을 충공깽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자신도 음치인 걸 인정했다.



여러 차례 고액과외, 강남 학원가의 스타강사 제의, 공신사이트를 넘기면 10억을 주겠다는 제의, 새누리당의 청년비례대표 제안 등 엄청난 러브콜을 받았지만,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계속 가기 위해 거절해왔다. 자신의 꿈은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공부 멘토 1명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이미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능에 응시하고 있는데, 수능의 경향성을 파악하거나 멘토링을 위해 응시한다고 한다. 시험을 보고, 답안을 마킹할 때, 일부러 틀린 답을 적어내서 다른 수험생들에게 일부러 성적을 깔아준다고 한다. 


2018학년도 수능은 처음으로 아예 안보고 그냥 시험장만 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바람에 강연회 일정이랑 겹쳐져서 국어영역만 풀고 올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또 뒷사람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지장을 줄 수 있어서 아예 안봤다고 한다.


2014년 5월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 아프리카 방송 영상을 업로드 하고 있으며, 그 외 공부 쓴소리 영상이나 공부법, 방송출연 영상 등이 업로드되어 있다. ASMR도 올리는데 일부 영상의 경우 여러분들은 공부를 안 해요 사운드가 에코까지 입혀진 채로 2시간 20분마다 한 번씩 광고마냥 나온다. 잠 깨라는 뜻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이 나라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며 자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7년 8월 "더 이상 수시 입시상담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흔히 말하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자기소설서 쓰는' 세태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결국 사기쳐서 대학가는 꼴인데 이게 무슨 교육이냐며 자괴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7년 9월 [택배왔다!!!] 청와대에서 선물을 보내왔ㄷ...읍읍...!!! 어떤 이유에선지 청와대에서 온 선물을 받았다. 선물 내용은 평창 잣, 영동 호두, 예천 참깨, 진도 흑미로 견과류 및 곡물류를 포장한 선물세트다. 청와대 선물 포장지를 뜯을 때 평생 간직하고 싶었으나 먹는 물건이다 보니 슬퍼하면서 뜯을 정도였다고.


2017년 10월 66일 습관의 기적 강성태가 세바시라는 15분 강연 프로그램에서 66일에 대한 강연을 했다. 66일동안 무언가를 하면 그 무언가가 습관이 된다는 내용.


2014년 영단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하여 말을 지어내 연상하여 외우는 암기법을 강도높게 비판한 적이 있었고 해당 방법으로 강의를 하는 경선식 쪽에서 2016년 반박 영상을 올리며 10억을 걸고 단어 암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 


자신은 공부법 알려주는 사람으로 좋은 공부법과 나쁜 공부법을 이야기한 것 뿐 특정 업체를 거론한 적은 없으며 연상법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다 해명했으나 경선식은 계속해서 반박 영상을 올렸고 강성태는 이후로 경선식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먹었는데 그 때 본인 이름으로 광고까지 단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강성태는 그럼 내가 연상법을 알려주겠다며 영단어 강의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강의가 반응이 좋아 단어장도 내게 됐고 단어장은 출시 이후 3일 만에 매진. 출간 이후 지금까지 단어장 1위를 지키며 경선식은 역관광 으로 보내 버린다.



그 후에 강성태 역시 경선식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보였고 한 시청자가 경선식의 공부 방법을 저격했는데 이 때 2년동안 공부를 안했다는 내용을편집해서 올렸다. 이에 분노한 경선식은 계속해서 강성태에 대한 저격 영상을 올리고 강성태를 키워드로 광고를 돌리는 중이다.


출간 이후 대한민국 영단어 분야 전체 1위를 놓친 적이 없다고 함


[노란리본 물결]

세월호 사고 직후 최초로 노란리본 운동을 시작한 사람. 사람들의 단체를 만든 사람. 공신의 멘토 멘티들이 노란리본을 시작했다. 강성태가 만든 공신이 없었다면 세월호 노란 리본은 세상에 없었단 이야기. 덕분에 강성태 노란리본 운동 직후 청와대로부터 사찰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부지런한 분이 7시간 동안 뭘한거지 


EBS 대학입시의 진실에 출연하여 본인이 지금 수험생이었다면 서울대는 못갔을 거라고 셀프 팩폭 날림. 수시와 학종이 대세인 상황에선 학생과 학부모가 챙길 것이 너무 많다는 이유. 자신의 어머니는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시는 분이었다고 함.


[출처: https://namu.wiki/w/%EA%B0%95%EC%84%B1%ED%8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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