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히드 할릴호지치 Vahid Halilhodžić


2018년 4월 8일, 일본의 언론을 통해 할릴호지치 감독의 전격 경질이 보도됐고, 9일 일본축구협회의 공식발표를 통해 월드컵을 2달여 앞두고 경질되었다. 경질 이유로는 축구협회 및 언론을 비롯한 일부 선수단과의 갈등과 최근 동아시안컵 한국전 참패 및 월드컵을 앞두고 잇따른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본 축구협회 회장인 다지마가 직접 해임 통보를 하자, 할릴호지치 전 감독은 "납득할 수 없다. 왜 이 시기에 그런 결정을 했느냐."며 화를 냈다. 그 후, 취재를 하기 위해 온 일본 취재진에게 "괘씸하다", "수치다"라는 표현으로 현재의 자신의 심정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곧 일본에 돌아가서 모두의 앞에서 진실을 말할 예정이라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상황에 대해서 혼다 게이스케는 SNS로 "절대 늦지 않았다(It's never too late)"라는 글을 게재하며 협회의 결정에 찬성했다. 자신을 탐탁찮게 여긴 할릴호지치에게 불만이 많았던 듯. 이후 혼다는 "할릴호지치 감독의 축구에 복종하는 것이 부끄럽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다. 나의 신념은 불변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정말 강하게 전임 감독에게 비판을 가했다. 


아무리 할 말 하는 성격의 혼다라곤 해도 선수가 전임 감독을 이렇게까지 비난하는 일은 흔치 않다. 선수단과 감독 사이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도저히 월드컵까지 갈 수 없었던 상황으로 추측된다. 할릴호지치가 대다수의 팀에서 성격으로 불화를 일으키고 경질된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비슷한 문제가 터진 듯.


5월 10일, 할릴호지치가 직접 일본 축구협회에 대한 민사소송 제기 의사를 밝혔다. 5월 안에 지방법원에 정식 제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할릴호지치의 주장에 따르자면 협회 담당자와 만났을 땐 제대로 된 협상 단계까지 가지도 못해 법적 수단을 강구할 수 밖에 없었으며,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제대로 된 사과와 해임 이유에 대한 설명을 원한다고 한다. 월드컵을 한 달 앞두고 전 감독(그것도 외국인)이 축협을 고소하는 건 전례가 없는 사태다. 한국의 경우엔 2차 예선 도중에 모가지 당한 감독이 협회에 덤빈 사례가 있지만, 폭로전과 비난에 그쳤을 뿐 고소까지 가진 않았다.



표면 상 가장 큰 경질 원인은 불화로 보인다. 선수들이 팀의 발전을 위해 고심 끝에 털어놓은 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배제하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평. 감독과 면담을 해서 직접 대화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A매치에서 배제되며 불화를 만들었고, 다른 선수들과도 의견 충돌이 심했다는 말들이 있다. 이전에도 할릴호지치는 지속적으로 일본 축구계와 선수 개개인에 쓴소리를 가했는데,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독선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 협회도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에게 힘을 강제로 실어줄지, 늦었지만 감독을 경질하고 선수들을 화합시킬지 선택을 해야 했고 협회는 후자를 택했다는 것. 


다만 이런 불화의 조짐이 동아시안컵 전후로도 계속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협회의 경질 타이밍이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늦은 셈이다. 결국 독단적인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심각한 불화, 그리고 협회의 늦은 결단으로 인해 이 사단이 난 것.



사실, 할릴호지치는 직선적인 성격 탓에 언론과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에 전임 감독이던 자케 로니나 아기레와는 달리 대중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인 반응을 얻진 못했다.


할릴호지치가 일본 대표팀 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알제리 대표팀이 6/1일 피파랭킹 58위의 카보베르데와의 친선전에서 리야드 마레즈, 야신 브라히미 등 주전선수들을 대거 기용했음에도 2 : 3으로 역전패 당하는 수모를 겪었는데, 이에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알제리 관중들이 기립해 '위대한 할릴호지치'라고 합창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2018년 7월 6일, 알제리축구연맹(FAF)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양쪽 다 아쉽고 실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할릴호지치를 다시금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26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 다음날인 7월 7일에는 알제리의 일간지 'DZ FOOT'에서 대한축구협회가 할릴호지치와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신태용의 계약 종료가 다가오면서 명성 높은 감독을 선임하길 바라던 축구팬들에게는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는 평. 찬성하는 측에서는 일본식의 점유율 축구보다는 빠른 역습과 피지컬을 중시하는 할릴호지치의 전술 스타일이 한국의 색깔과 맞다며 그가 태극전사들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역시나 그의 독선적이고 고집 강한 성격. 선수 장악력과 소통력, 협회 내에서의 정치력 등도 감독의 주요 소양인데 할릴호지치는 이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 다음 월드컵까지 장기적으로 갈 감독으로 보기에는 이 부분이 항상 발목을 잡는데, 단적으로 할릴호지치가 한 팀에서 4년 이상 버틴 것은 클럽과 국가대표를 포함해도 릴밖에 없다. 


직전에 일본이 쓰다 버렸다는 단순한 감정적인 불만을 떠나서 그가 그렇게나 대표팀에서 배제하려고 했던 혼다나 오카자키 등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니 선수 보는 안목이 본인의 고집때문에 흐려지는 점도 문제다. 그리고 커리어를 잘 보면 알겠지만 저니맨에 가깝지 명성이 높고 경력이 풍부한 세계적 명장이라고 보기에는 그렇게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감독은 아니다. 


7월 8일 같은 신문에서 이미 할릴호지치와 알제리축구협회 간에 합의가 이뤄졌고 7월 말에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며 대한축구협회의 접촉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으나기사, 이후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할릴호지치와의 접촉 자체 없었다고 밝혔고 할릴호지치도 알제리와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문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이라며 강한 부정을 하며 묘한 상황이 되었다.


허나, 한국국대가 선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는 눈과 뛰어난 전술 능력. 또한 현재 한국 국가대표 시니어팀에 어울리는 전술을 활용하는 감독이 할릴호지치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루머가 나는 스콜라리는 너무 수비적이고 공격전술이 아쉽다면, 반 할은 가능성도 적고 전술쪽으로 요구하는 것이 한국 선수들로서는 감당하기 벅찰 확률이 높다. 여러요소를 고려하더라도, 독선적인 그만한 감독매물이 없는게 현실이다.



[출처 : https://namu.wiki/w/%EB%B0%94%ED%9E%88%EB%93%9C%20%ED%95%A0%EB%A6%B4%ED%98%B8%EC%A7%80%EC%B9%98]

김병준 (金秉準)/1954년 3월 26일/경상북도 고령군/델라웨어 대학교 정치학 박사/무소속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남경필 현 경기도지사를 비판하며 새로운 인물을 경기도지사 선거로 내보내겠다고 했는데, 김병준이 언급되고 있었다. 


다만 남경필 도지사가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고 홍준표 대표도 막상 바른정당을 탈당하자마자 연락을 취하는 태도를 보면 사실상 경기지사 후보는 남 지사로 확정된 분위기이다. 김병준 교수는 그 대신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리고 2018년 3월 21일자로 홍문표 사무총장이 라디오에 출연하여 늦어도 서울시장 후보를 다음주에 공개할 것이라며 "언론에도 언급된 적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사실상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많은 언론과 정계 그리고 네티즌들이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가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허나, 그 또한 불출마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면서 또다시 불투명해진 상태. 결국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또다시 유야무야되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면서 또 다시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다가 2018년 7월 12일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의 최종 후보 가운데 하나로 압축되었다.이쯤되면 후보왕..



김병준 교수 과거 정치 이력...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실질적인 '브레인' 역할을 해온 자문학자 그룹의 리더로 노 대통령과는 국민대 교수로 재직 당시부터 1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고 전해진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을 위해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기도 했던 의리파로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력과 함께 보스 기질을 인정받았다. 


다만 주로 관료로 활동했지 국회 정치권에서 활동한 적은 없다.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 발전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어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4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는 대통령 정책실장으로서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근저에서 보좌했다.


2006년 7월에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곧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캐낸 제자의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였고 드러난 것도 '논문 중복보고·중복게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두 딸이 각각 최고 명문고인 대원외고와 대일외고에 편법으로 편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받아, 정운찬 서울대학교 총장과 김대용 대일외고 교감 등이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취임한 지 14일 만에 사퇴하였다. 추가로 논문 관련 사기혐의로 한나라당이 김병준 부총리를 고발까지 했었다. 그런데 10년 후엔 그 새누리당이 빨리 총리에 앉히자고 야당에 읍소를 하니 참 사람 앞 일은 모른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유권자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시민운동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으며, 학계에서도 지방분권 문제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평.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를 맡았다.


그리고 친박 함승희가 만든 ‘포럼 오늘과 내일’의 정책연구원을 맡아왔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실상, 박근혜 싱크탱크를 운영해 온 셈. 그래서 총리 지명자로 임명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빠지고 거국중립내각안이 떠오르자 김종인, 손학규 등과 함께 차기 총리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2016년 11월 2일 기어코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되었다. 세간엔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노무현카드를 꺼낸 것 아니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일 수락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 반발과 고민 때문인지 다음 날에 발표하겠다고 회견을 미뤘다. 총리 내정에 관해 여야는 물론 황교안 총리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당일 문자통보)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다 쉬운 해고의 당사자가 된 황교안 책임총리제의 일환으로 그가 참여정부 당시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박승주씨를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비박들은 대통령의 총리 지명 과정에 국회와의 어떠한 협의가 없었다며 인사청문회 거부 입장을 취했다. 야당은 인물 문제가 아닌 임명 절차에 대한 문제라며 인준을 거부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김병준 총리내정자에 대해 언급했다. 유시민 작가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해 정치감각이 많이 무뎌진것 같아서 이런 자리를 받아들인거 같아서 상당히 안타깝고, 차라리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나한테라도 물어봤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밝히며 안타깝게 생각했다.


11월 3일, 오후 2시경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정국 구상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미리 작성해온 글을 읽던 중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말하던 부분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본인도 성향상 박근혜정부와 상당부분 맞지 않는건 인정했지만, 국정마비사태만큼은 막고 싶어서 총리직을 수락했다고. 또 편가르지 않고 나라 걱정하는게 노무현정신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임명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고, 국회에서 인준해주지 않으면 군말없이 떠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박근혜정부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짤리기 전 마지막으로 꽂은 인물 아니냔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2008년에 사망한 경북 고령군 향우회장 이상달(우병우의 장인)의 5주기 추모식이 2013년 열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참석해서 "2003년 당시 서슬 퍼렇던 정권초기 민원조사 과정에서 부당하다며 비서관에게 호통치던 회장님의 기개를 잊을 수 없다. 



이는 청렴결백하고 투명한 경영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항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챙기셨다" 라며 고인 이상달을 추모했기 때문...


다만 본인은 고령군 향우회 소속으로 이상달 회장과만 친분이 있을 뿐, 우병우랑은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다. 언론에선 친노 인사 중 그래도 중립적 성향이 강하고 현재 주류랑은 거리가 좀 먼 관료, TK 출신인 김병준 교수를 뽑았다는 시각이 많다.


그 외 사실 10월 26일까지만 해도 안철수 전 대표의 추천으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입당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 왈 호남중진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괜히 분란을 키우는 것 같아 29일 총리내정을 수락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뒤통수 맞은 격이 된 국민의당 일부 당원들은 언짢은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이 직후 대통령 하야론을 내세우며 강경론을 펼친 것도 이런 사정이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병준 교수가 과연 총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당장 과거 10년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김병준 부총리 임용에 강하게 반발하며 논문 표절 문제에서 논문 중복보고, 중복게제, 두 딸들의 대원외고, 대일외고 편법 편입 의혹 등을 지적하며 이런 사람이기에 부총리라는 공직에 임명될 자격이 없음을 비판하였으며 김병준 본인도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기보다 스스로 사퇴를 해버렸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병준 내정자 둘 다 의지를 굽히지 않고 청문회를 강행할 시 자칫하면 새누리당에서 자신들이 10년전에 저격했던 공직 자격 미달의 이유들을 오히려 본인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실제 생길수도 있다. 다만 상술했듯 표절 문제는 2016년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했다.


일단 본인은 최대한 야당을 설득해보겠단 입장이긴 한데, 언론 인터뷰를 보면 총리 내정자직을 자진사퇴할 의사는 없어보인다. 과거 부총리직을 14일만에 사퇴한 것이 본인에겐 크나큰 충격이였기에 이번 총리직에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병준이 교수로 재직했던 국민대의 일부학생들은 2016년 11월 3일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자리입니다라고 주장하며 김병준 교수의 총리후보직 자진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내각구성추천권을 사용해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추천한 박승주씨도 논란이 되었는데, 그가 90년대 토속신앙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도심에서 '구국 천제'라는 이름의 굿판을 벌이는가 하면 2013년 펴낸 자서전에는 47번이나 전생을 체험했으며,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 장군이 자신에게 왕의 일기 '일성록'을 건냈다는 내용도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안 모 씨'를 자신의 큰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안 씨는 '구국천제'를 주도하기도 했고, 무속신앙과 관련 된 종교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예지력과 심령치료에 능하다고 한다.(...) 물론 개인의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자유야 보장되어야 한다지만, 해필 샤머니즘 논란이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시점에, 과연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장관으로 이런 인물이 적절한가, 이런 인물을 추천한 책임총리 내정자가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11월 7일 저녁 JTBC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여야청 합의가 되면 없어지는 존재, 20일이 지나면 자연적 지위 소멸"의 논리로 논란의 "지명 철회여부, 사퇴여부 문제"를 비켜갔다. 그런데..


11월 8일 오전, 결국 김병준 교수는 사실상 청와대에 의해 총리 내정자 자리를 소멸지명 철회당했다. 쉬운 해고로 들어왔다가 쉬운 해고의 당사자가 된 김병준 애초 청문회를 강행했어도 야당의 동의가 없는 한 총리로 인준될 가능성이 0%에 수렴했기 때문에 뻔한 결말이긴 했다. 심지어 여당측에서도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상당했기에 더더욱...


어쨌든 이로서 김병준 교수의 정치 활동은 사실상 끝난 셈. 다만 직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정식적으로 지명철회를 당한건 아니라면서, 여야청이 합의할 때까지 압박용으로라도 남아있겠다며 스스로 자진 사퇴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또 국회가 날 다시 지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면서 총리 지명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러한 행적을 두고, 여러모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직 요청을 수락한 상태에서 야당이 동의해줄 리가 없는 대통령의 총리 내정을 받아들여서 안철수의 당내 입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고 이는 안철수가 당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서 지지율 하락에도 기여했다. 



국민의당 소속인 이상돈 의원이 그를 인간이 아니다라는 엄청난 비난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김병준 자신이 무슨 이득을 본 것도 없고 체면만 깎인 채로 자연인으로 돌아갔으니...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대통령의 권위 실추로 인한 국정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파를 불문한 나름 '선의'에 입각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실제 총리 인준을 받아 그동안 비판을 받아온 박근혜 정부의 주요 내치 정책들을 앞장서 시정하거나, 설령 총리 인준을 못받더라도 이를 계기로 여야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합의를 앞당기도록 유도하여, 거국 중립내각을 통한 국정 수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발상이었던 것.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짓은 거국 중립내각 정도로 수습되기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잘못이었고, 이러한 민심의 분노를 확인한 정치권도 거부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무산되었다. 좋게 말해 순진한 거고, 나쁘게 말해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였던 셈.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B%B3%91%EC%A4%80]


은골로 캉테 (N’Golo Kanté) / 1991년 3월 29일 / 165cm-68kg / 수비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


유로 2016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월드컵 최고의 선수 중 한명, 러시아의 땅을 진동시킨 작은 거인


조별리그 1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미드필더를 혼자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역삼각형 미드필더의 수미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였고, 포그바가 평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톨리소가 죽을 쓴 경기였기 때문에 캉테에게 많은 수비적 부담감이 생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클, 인터셉트 후 패스, 드리블 등 뭐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조별리그 2차전 페루와의 경기에도 선발출전하여 실질적 M.O.M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록면에서 보자면 태클성공 4/5, 드리블 2/3 , 인터셉션 4회, 클리어런스 4회 패스성공률 88%를 기록하며 미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공식 MOM은 지루의 슈팅을 그대로 받아먹으며 데뷔골을 기록한 킬리안 음바페로 선정되었다.


조별리그 3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는 양쪽 선수들이 눈을 썩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역대급으로 최악의 경기를 펼친 가운데 중원에서 홀로 분연한 캉테가 드디어 M.O.M을 받아먹었다.




이후 16강 아르헨티나 전에서 선발출전하였고, 2골 1pk유도를 하면서 폭발한 음바페가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엑조디아를 완성시켰다는 평을 듣고있는 캉테 또한 중원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팀도 결국 4대3 승리를 거두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우루과이와의 8강에서도 홀딩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태클/인터셉트/커버/대인수비 다 보여주며 중원을 캐리한 덕에 프랑스를 4강으로 안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4강 벨기에전에서도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아자르를 막는데는 조금 난색을 표했으나 애매한 조합의 벨기에 중원을 탈탈 털어먹었고 팀의 결승행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결승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드디어 방전이 되었는지 애매한 모습만을 보였고 결국 이른 시간 옐로카드 수집과 더불어 은존지와 교체되어 벤치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4-2로 우승컵을 거머쥐며 커리어에 월드컵 우승을 추가시켰다. 


결승전에서의 폼이 매우 아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쟁에서 밀렸던 유로와 달리 이번에는 결승까지 중원에서 한 축을 이루며 팀을 전진시킨 모습을 감안하면 프랑스의 20년만에 두번째 월드컵 우승에 큰 기여를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즈만,음바페, 포그바와 더불어 프랑스의 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선수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플레이 스타일 : 비에이라 + 마켈렐레.  현시점 수비형 미드필더의 끝판왕 



165cm라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힘이 상당히 좋아 자기보다 큰 선수들에게도 잘 밀리지 않는 점 에서 마켈렐레와 비슷하고, 스피드가 매우 빨라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를 웬만해선 허용하지 않아 대인 수비에서도 굉장한 장점을 보인다. 마켈렐레가 의도적으로 수비적인 롤을 전담했던 것과 달리, 레스터의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캉테는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매우 자주 보여준다.


캉테가 역습 찬스에서 속공을 지향하는 레스터에 아주 적합한 것이, 빠른 스피드를 이용하여 치달로 직접 치고 올라가거나 중원에서 볼을 커트하는 등의 활약을 해내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공을 좀 오래 가지고 있다 싶으면 슬며시 다가와 딱 공만 빼가는 게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패스의 길목을 정확히 알고 순간적으로 끊어내는 것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거기에 전방 볼 전개 능력도 괜찮은 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 하나인 포그바와 비교하면 포그바는 캉테와 달리 본인이 직접 득점을 하러 들어간다는 점이 더 부각되고, 반면에 캉테는 포그바에 비해 빠른 공격 전개나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상대 진영을 흔드는 쪽으로 좀 더 두드러지는데, 그런 점에서 캉테는 포그바보다는 과거 전설적인 프랑스 미드필더이자 박투박의 대명사였던 패트릭 비에이라와 닮은 점이 더 많다. 


즉 마켈렐레의 안정감 있는 태클, 홀딩+비에이라의 폭발적인 힘과 활동량이 합쳐진 키가 작은 선수이다.


첼시에 있었던 미드필더들과 비교하자면 에시앙, 하미레스와 비슷하다. 세 선수가 비슷한 점은 모두 스피드가 있고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공수 양면에서 기여하는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다만 하미레스보다는 훨씬 간결한 플레이를 하고,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좋으며 에시앙이 조금 더 투박하고 힘 있는 플레이를 한다면 캉테는 빌드업 같은 부분에서 에시앙과는 다른 형태로 공격에 기여한다. 


이런 그도 단점이 있는데, 사실 킥력이 별로 좋진 않다. 실제 그가 자신의 진영에서 밀고 올라올 때 띄우는 롱 패스는 거의 주지 않고 땅볼로 낮게 까는데도 인터셉트를 의외로 많이 당하고, 2선에서 시도하는 중거리 슛은 정확도가 영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 포인트가 적다. 다만 첼시 이적 이후 다비드 루이스의 말에 의하면 훈련에서만큼은 득점력이 출중하다고 하는데 슛의 강도는 약할 지 몰라도 패스하듯이 정확한 슛은 자주 하는 듯하다. 그리고 경기를 거처갈수록 골도 넣고 점점 킥력이 나아지고 있다. 단점까지 마켈렐레와 닮았다. 


자신도 위의 단점들을 자각한건지 첼시와선 기술적인 부분이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다. 콘테는 "캉테의 플레이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 운영 및 기술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고 점점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편으로 돌려주는 패스의 정확도가 증가했으며 패스의 판단이 빨라졌다.


그리고 바카요코와 파브레가스를 비롯한 첼시의 중원이 시망하면서 캉테의 플레이 메이킹 능력까지 발전하는 중이다. 실제로 1718 시즌은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때 플메 수치가 경기 당 1개 이상으로 올라왔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혼자 축구한다.



그리고 키가 작으므로 제공권이 좋지 않다는 것 역시 단점이다. 90분 뛰면서 공중볼 경합을 한 번도 안 한 경기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중원에서 캉테의 안습한 제공권을 보완하기 위해 제공권이 어느정도 있는 선수를 파트너로 기용해야 한다. 


레스터시티의 경우 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177cm의 드링크워터가 캉테와 호흡을 맞추었고 첼시에서는 194cm의 마티치가 캉테와 함께 중원을 맡았었다. 그래도 캉테 방향으로 날아오는 공중볼을 다 커버해줄 수 없기에 상대가 롱볼 위주로 경기하면 키 큰 파트너가 있어도 공중볼 경합에서 고전하고 세컨볼을 내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특히 첼시가 수비할 때 오른쪽에 위치하는 선수들이 전부 제공권이 좋지 않아 발밑으로 수비할 때는 안정적이지만 공중볼에 약점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단점때문에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상대로 좋은 퍼포먼스를 못 보여준다. 토트넘에서는 완야마에게, 아스날에게는 자카에게 취약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키가 10cm만 컸으면 완벽, 20cm컸으면 역대 최고도 노려볼만 했을듯


아러한 헌신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굳은 일도 마다 않는 하드워커 기질 때문에 어떤 감독이라도 좋아할 수 밖에 없고, 캉테도 어느 팀 에서든지 조건없이 풀핏을 발휘한다. 무시무시한 적응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 호흡이 맞지 않는 파트너를 찾는게 더 빠를거 같다. 어?


성실함의 끝판왕이다. 일단 멘탈이 훌륭하며, 동료들의 의하면 경기장과 훈련장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이다. 


캉테의 자동차가 화제가 되었다. 주급이 11만 파운드나 되는데 동료들은 화려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데 캉테는 미니를 타고 다닌다. 자기는 미니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레스터에 있었을 때 구입했는데 아직도 타고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고로 사이드미러가 뿌러지고차가 부서졌는데도 사이드미러는 테이프와 붕대로 붙여놓고 그걸 계속 타고 다닌다.(......) 


다른 탑 축구선수들과 달리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캉테는 팬들이 이런면을 보고 호감을 느낀다.작은 체구와 미니라는 이름이 캉테와 묘하게 어울리긴 하다 캉테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 같은 물건에 욕심이 없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국내 첼시팬들 사이에서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일단 실력이 좋으니까 좋은 평가를 받는게 당연하겠지만, 멘탈도 출중하고 궂은 일을 마다않는데다 다른 선수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이 호감형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특히 작은 체구와 그 순진무구한 외모가 귀엽다는 의견이 많다. 웃을때 해맑은 표정이 매우 귀엽다. 체구도 작아서 동료들과 있을 때 더 작아보이는 점이 귀요미 이미지에 크게 한 몫 한듯..






.게다가 하드워커 스타일이면서도 더티 플레이를 남발하는 선수도 아니기에 더욱 호감을 많이 보이는 편. 이 때문에 일부 열혈팬들 사이에는 생일까지도 같은 동갑내기 아이린보다 귀엽게 보인다고도 할 정도이다. 캉요미. 


목소리가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독특하게 굵다.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 대표팀의 전설 지네딘 지단이 레알마드리드 감독 시절 군침을 흘렸던 선수이다. 굉장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인터뷰나 기타 언론 활동을 보면 겸손하고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선수이다. 멘탈 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선수. 최고 선수 대접을 받는데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 움직임 또한 굉장히 뛰어난 축구 지능과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위대한 미드필더 클로드 마켈렐레의 아들인지 의심될 정도로 정말 똑 닮은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포지션, 플레이스타일, 역할, 팀까지... 이제 등번호만....번호만!


첼시 이적 후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17년 발롱도르 8위, FIFA 올해의 선수 9위에 올랐다. 첼시가 2016-17 시즌에는 유럽 대항전에도 나가지 않았고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기 힘든 수비적인 포지션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성과다.


이상하게 아스날을 상대로 전적이 매우 나쁘다. 15-16시즌부터 3시즌동안 10전 1승 4무 5패. 물론 본인은 괜찮은 활약을 펼치긴 하지만, 이정도면 징크스.



레스터 시티 이적 후 상당히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레스터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그 뒤 유로 2016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그 후, 첼시로 이적하자마자 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시즌인 17/18 시즌에도 리그의 불안한 성적과는 별개로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시즌이 끝난 뒤에는 월드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우승 청부사 캉테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직후 동료들 뒤에서 말없이 월드컵 트로피를 바라보던 중 은존지와 프랑스 선수들이 독사진을 권유해서 그제서야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D%80%EA%B3%A8%EB%A1%9C%20%EC%BA%89%ED%85%8C?from=%EC%BA%89%ED%85%8C#s-3.2]



2018년 2월 28일에 선임된 김학범의 U-23 감독생활을 다룬다. 23세 이하 대표팀이기 때문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과 2020 도쿄 올림픽이 이 선수들의 출전 무대다. 전임 김봉길 감독이 경질된 후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 하에서 후임 감독을 물색하게 되었다. 이래서 후보로 거론된 자가 김학범과 최용수였다. 결국 2월 28일에 김학범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코칭스태프 명단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코칭스태프, 출전 선수 명단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코칭스태프, 출전 선수 명단


첫 소집명단 발표는 3월 12일에 이루어졌다. 매치 기간이 아니여서 29명이 전원 국내파로 구성되었다. 




제로베이스를 선언한만큼 본인의 전략에 걸맞는 선수들을 차출하기 위해 선수들의 기량을 테스트해보는 것이 주 목적일 것으로 예상되며, 시간이 부족할 경우 그동안 호흡을 많이 맞춰온 u-20멤버들 중심으로 명단을 구성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으므로 파격적인 선택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마냥 배재할 수는 없어보인다. 


기자회견에서 이번 3월 소집된 멤버 중 생존하지 못한 멤버는 경쟁력이 없는 걸로 판단하여 차출하지 않을 것임을 거듭 강조(...)했고, 해당 연령대 해외파 선수들의 차출 가능성도 언급했다. 


본인이 직접 4월 중 해외로 나서서 J리거 2~3명과 유럽파 선수 6~7명 등 총 10명 정도 체크할 계획임을 밝혔으며, 이 중 유럽파는 직접 실명을 언급했다. 본명이 언급된 선수는 최경록(FC 장크트 파울리), 서영재(함부르크 SV), 황문기(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백승호(CF 페랄라다-지로나 B), 이진현(FK 아우스트리아 빈), 이승우(엘라스 베로나 FC), 김정민(FC 리퍼링), 이강인(발렌시아 CF) 등이다.


첫 소집명단에 포함된 선수들은 19일부터 파주 NFC 훈련센터에서 1주일간 소집훈련에 나서며, 소집 멤버는 아래와 같다.


GK(3명) : 강현무(포항 스틸러스), 송범근(전북 현대 모터스), 박대한(전남 드래곤즈)

DF(11명) : 윤종규, 김한길(이상 FC 서울), 이유현(전남 드래곤즈), 김진야, 김정호(이상 인천 유나이티드)[3], 이상민, (울산 현대), 김우석(대구 FC), 정태욱(제주 유나이티드), 강지훈(강원 FC), 조유민(수원 FC), 김문환(부산 아이파크) 

MF(11명) : 황기욱(FC 서울), 윤용호, 전세진(이상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장윤호(전북 현대 모터스), 이광혁(포항 스틸러스), 김건웅, 한승규(이상 울산 현대), 나상호, 김동현(광주 FC), 황인범(아산 무궁화), 김진규(부산 아이파크) 

FW(2명) : 이근호(포항 스틸러스), 이은범(제주 유나이티드)

김학범호김학범호


부상으로 인해 한찬희와 박인혁을 제외, 총 27명이 소집되어 24일, 26일에 각각 FC서울, 부천FC와 연습경기를 한 결과 FC서울전에서 4-1로 승리를 챙겼고, 부천 FC전에서는 이근호의 해트트릭으로 6:0으로 대파했다.


5월 28일에 소집되어 파주 NFC 훈련센터에서 2주간 훈련 뒤에 인도네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GK(3명) : 강현무(포항 스틸러스), 송범근(전북 현대), 박대한(전남 드래곤즈)

DF(9명) : 황현수(FC 서울), 이상민(울산현대), 정태욱(제주 유나이티드), 김정호, 김진야(이상 인천 유나이티드), 김문환(부산아이파크), 이시영(성남 FC), 조유민(수원 FC), 서영재(함부르크 SV)

MF(10명) : 황기욱(FC 서울), 장윤호(전북 현대), 이승모(포항 스틸러스), 김현욱(제주 유나이티드), 한승규, 김건웅, 이동경(울산 현대), 황인범(아산 무궁화), 백승호(지로나), 이진현(아우스트리아 빈),

FW(3명) : 이근호(포항 스틸러스), 이은범(제주 유나이티드), 나상호(광주 FC)


6월 23일 인도네시아 U-23과의 평가전에서 2-1로 진땀승을 거뒀다.


손흥민이 와일드 카드로 확정됐다. 남은 두자리는 황의조와 조현우가 유력한 상황이다. 가장 약하다 평가받는 풀백이 아니라 가장 안정적이다 평가받는 골키퍼 자원이 뽑혀서 의외라는 평. 하지만 병역미필인 풀백 중에 뽑을 수준이 되는 선수가 없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드컵 멤버였던 홍철은 이미 상무 병장이라 혜택이 거의 없어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의 초기 와일드카드 예측과 정반대로 흘러가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일단은 김학범 본인이 황의조와 조현우를 원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두 명이 차출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조편성


2018년 7월 5일 조추첨이 이뤄져 E조에서 키르키스스탄, 말레이시아, 바레인과 맞붙게 되었다. 바레인과 키르기스스탄이 그럭저럭 하는 편이지만 16강 진입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편성 도중 두 팀이 누락되는 실수로 인해 다시 조추첨을 해야 한다.


2018년 7월 16일(월), 선수 명단이 최종 확정되었다. 네티즌들이 강력히 원하던 석현준, 이강인, 백승호가 탈락하면서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황의조는 인맥선발이라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거기에 대표팀 골리를 맡던 강현무가 탈락하고 서브 골키퍼였던 송범근이 최종적으로 합류한 것도 말이 많다.관련 기사 일단 김학범 감독은 "황의조 선발, 학연-지연 결코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으면서, 백승호, 이강인 탈락과 황의조 발탁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해외파 손흥민, 황희찬, 이승우의 합류 시기가 불분명하다. 잘못하면 나상호 한 명으로 예선을 치를 수도 있다. 그래서 와일드카드를 공격에 두 장 활용했다.


백승호는 부상을 입었고, 이강인은 구단에 공문을 보냈으나 유소년 정책상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황의조는 석현준과 비교가 되지만 현재 컨디션이 좋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코칭스태프, 출전 선수 명단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코칭스태프, 출전 선수 명단




김학범(金鶴範, Kim Hak-Bum) / 1960년 3월 1일 (58세) /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前 축구 선수 및 前 성남 FC, 강원 FC, 광주 FC 감독. 현직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명지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까지 마쳐 '축구박사'로 불린다. 전통의 축구 명문 명지대의 전성기를 이끌며 수차례 우승컵을 거머쥐었지만, 국민은행에서 뛰었던 선수 시절에는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국민은행의 과장까지 승진하였다. 그러다 다시 축구판의 매력에 빠져 직장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축구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은행원으로도 성실해서 국내 최초로 운동선수로 활동하는 도중에 대리 시험에 합격하고 진급하였다고 한다. 또한, 1992년 34세의 나이로 은퇴했는데, 당시에는 나이가 30세 정도가 되면 운동을 거의가 관두던 것과 비교한다면 대단히 운동을 오랫동안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과장까지 승진했다.


'항상 공부하는 감독', '연구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속칭 '레알성남'의 최전성기라 불리던 2번째 3연패 코치시절, 선수선발과 용병술은 차경복 감독 그리고 실질적인 전략, 전술은 김학범 코치가 모두 실행했을 정도로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지도자였다. 코치 때 영상분석을 위해 기기를 구입해달라고 해 혼자서 밤을 새워가며 상대를 연구하고 그 계책을 내놓았으며, 밤잠을 줄여가며 이길 비책을 궁리했다.


대한민국에 4백을 최초로 도입한 지략가이다. 또한 2006년 월드컵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4-2-3-1 포메이션을 세계축구의 흐름보다 1년 앞선 2005년부터 K리그 최초로 성남에 도입해 2006년 K리그 정상에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K리그 최고의 지략가 불리며 축구계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몇 가지 예로 김학범 감독의 성남 전성기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데얀은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성남을 K리그에서 유일하게 전술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 말했으며 피스컵 당시 PSV의 히딩크 감독도 성남의 전술에 대해 칭찬한 적 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비슷하다고 하여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K리그에서 손꼽히는 지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광주 FC 남기일 감독과 함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학구파 감독이다.


특히 영상분석 분야의 선구자로, 성남 코치 시절부터 팀에 최신 영상기기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기기를 다룰 줄 아는 직원의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고 거절하자 내가 할 테니 그냥 사달라고 졸라서 구단에서 기기를 구입한 후, 새벽 3, 4시까지라도 밤을 새면서 영상 분석하고 편집에 매진했다. 


그만큼 영상분석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거의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며 선수들 말에 따르면 경기 중에 김학범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고 한다.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 비교하자면 학첼로티 카를로 안첼로티와 가장 비슷한 편이다.  


주전술인 4-2-3-1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며, 이 것이 제대로 돌아간 것이 06~07년의 성남이었다. 일화 시절에는 선수들의 개인 플레이를 상당히 제한하였는데, 이는 꽤 나아졌다. 


단점도 안첼로티와 비슷한데 로테이션을 잘 활용하지 않고 베스트일레븐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화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좀 줄어든 편이지만 아직도 로테이션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U-23 의무출전 규정에 가장 부정적인 감독이다.하지만 본인이 u-23대표팀 감독에 부임하며 이 의무출전 규정에 기대하게 생겼다.


체력훈련 매니아다. 항상 체력과 정신력을 강조하고 비시즌 전지훈련때마다 엄청난 강훈으로 선수들을 굴리는걸로 유명하다. 그러다가 2015 시즌이 끝나고 유럽으로 자비 연수를 받으러 갔는데 그 유럽리그 구단들의 훈련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고 변하..... 기는 개뿔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빡센 체력훈련 스케줄을 들고나와서 선수들을 작살냈다. 왜냐하면 그 연수를 받은 구단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고 감독이 디에고 시메오네였다 


김학범 감독은 AT 마드리드의 훈련장면을 보고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훈련과 다른 한국 구단에서 빡센훈련이라고 했던건 여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라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그런데 문제는 시즌 중에도 체력 훈련을 빡세게 시켰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성남 1기 시절 들은 우승컵은 2006년 K리그 트로피 하나밖에 없다. 로테이션도 잘 안돌리는 것과 겹쳐 그가 맡은 팀은 중요한 경기들이 있는 시즌 후반기마다 방전되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2016년 9월 초에마저도 체력 훈련을 시켰다. 앞 문단에 나오지만 체력 훈련은 심지어 더 빡세졌다... 그는 얼마 안 가 잘렸지만 결국 팀은 회생하지 못했다. 서술이 사실이라면 문제다. 시즌 중 회복 훈련 위주로 상위리그의 팀들이 운영되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다.


지독한 헤비 스모커로 알려져 있다. 하루에 3갑 이상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경기 전 상대 팀의 비디오 분석을 하면서 많은 양을 태운다고. 팬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 어느 인터뷰에서 어차피 못끊을 담배는 계속 피우는게 스트레스 안 받고 좋겠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하셨다. 


빛나는 이마 덕에 일화시절부터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1960년생이다! K리그에선 최강희보다 1살 어리며, 유럽에선 라파엘 베니테즈, 요아킴 뢰브와 동갑이고 주제 무리뉴보다 3살밖에 많지 않다. 비슷한 처지의 얼굴 나이대를 가진 카를로 안첼로티보다는 1살 어리다. 


2015년 개막전 때 상대 팀인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과 기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데, 김학범 감독이 '개막전은 우리 성남의 놀이터다'라고 도발하자 최강희는 '도발하지 말고 머리부터 심고 와라. 도발 노. 가발 이식!'이라고 받아쳤다.


일화 시절에는 경기 내적인 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외골수적인 면이 강했다. 언론플레이와 팬 서비스에도 인색한 감독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경기력에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선수나 프런트 차원의 팬서비스도 제한을 가했다. 후임이었던 신태용은 이런 면에서 김학범과 아예 정반대였다. 


다만, 본인도 야인이 된 후에는 꽤나 유해졌다. 하지만 성남 FC 감독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그리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성남FC의 검은 유니폼은 경기력에 지장을 준다는 김학범 감독의 반대로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D%95%99%EB%B2%94#s-4]

황의조 (黃義助,  Hwang Ui-Jo) / 1992년 8월 28일 (만 25세) / 경기도 성남시 / 스트라이커 / 184cm-73kg / 용인초등학교 -풍생중학교-풍생고등학교-연세대학교 / 성남 FC (2013~2017)-감바 오사카 (2017~ ) / 국가대표 : 11경기 1골


시민구단으로 재창단하고 허우적대던 성남에 한 줄기 빛이 된, 성남 일화가 아닌 성남 FC로서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감바 오사카의 폭격기. 쉬운 골은 시시해서 안 넣는 슈퍼골 성애자 


前 성남 FC, 現 감바 오사카 소속 축구선수. 성남시 출신에다, 풍생중학교-풍생고등학교-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성남 FC의 유스 시스템을 모두 거친 로컬 보이다. 그래서 '성남의 아들'이라는 별칭도 있다. 


별명은 잘할 때는 의조오빠, 못할 때는 황의족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의 유력한 와일드 카드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오늘 와일드카드로 발탁!)



김학범 감독이 손흥민, 조현우와 함께 직접 발탁하고 싶은 후보로 지목했다고. 물론 황의조가 감바의 주력 공격수인 것은 리그에서의 활약상을 통해 일찌감치 검증되었고,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을 만나게 된다면 J리거인 황의조 또한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발탁할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현재 김학범호의 단점은 수비력인데 와일드 카드로 굳이 공격수를 뽑을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있고, 거기에 김학범과 황의조는 과거 성남 FC에서 사제지간이었던 적도 있는지라 인맥 을 보고 선수를 뽑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 아직 미래는 확실치 않은 상황. 


그래도 성남 시절 황의조-티아고 라인으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기억을 되살려 손흥민이 티아고와 같은 플레이를 하면서 황의조와 좋은 조합을 보이리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결국 이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황의조의 실력 문제보단, 대표팀의 고질적인 풀백 품귀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을 듯 하다. 


결국 와일드 카드에 뽑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풀백을 뽑았어야 하지 않냐는 여론의 조현우처럼 석현준을 뽑았어야 되지 않냐는 여론이 돌아 다니는 중(...). 확실한 건 와일드카드의 한 자리에 뽑힌 만큼, 본인을 뽑아준 김학범 감독을 욕먹이지 않으려면 무조건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좋은 모습을 펼치면 이번 월드컵에서 김영권처럼 여론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반면, 나쁜 모습을 보이면 김신욱이나 장현수처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빠질 것이며, 연세대학교는 축협 인맥이라는 꼬리딱지가 계속 붙은 것이고, 과거 중국화 논란과 비슷하게 J리그에 대한 위상 또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또한 국내 감독에 대한 여론 또한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경기당 슈팅 비율이 매우 높아서 2015 K리그 클래식 득점 순위의 다른 상위권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슈팅당 득점 비율을 보이고 있다.


샤빠가 황의조가 슈팅이 빗나간 후 내지르는 탄식을 황탄식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경기당 슈팅 비율이 높다는 것은 황의조가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 특히 공을 받자마자 때려넣는 논스톱 인사이드 슈팅 능력이 탁월하다.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넣은 골에서 볼 수 있듯이, 제 2의 안정환을 떠올리게 하는 접어차기와 슈팅력을 지녔다. 



슈팅 자세가 상당히 큰 편인데 그래서인지 축구 만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링크의 사진이 상기한 감바 오사카 전 득점 장면. 이 문서에 '원더골'이라는 단어가 2015년 10월 14일 대체 누가 17일에 사는 건가 기준 6번 나온다. 득점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체로 어려운 자세에서 때린 슛팅이 득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편.


오죽하면 알싸에서는 황의조에게는 패스를 어렵게 줘야 득점이 나온다고 할 정도. 


그렇지만 스트라이커로서 184라는 나쁘지 않은 피지컬을 적당히 잘 써먹을 줄 안다. 게다가 연계력은 매우 좋은 편이고 지공시 2선이나 측면까지 내려와서 연계플레이를 하는 등 활동력이나 활동범위도 좋은 편이며 측면이나 2선으로 빠지는 타이밍, 슬쩍 빠졌다가 다시 침투하는 타이밍도 매서운 편이다. 이렇게 스트라이커로서 기본적인 플레이 자체가 괜찮은 편이라 슈팅을 많이 시도할 수 있다. 결정력 문제는 있지만.


인스타그램에 여자친구를 공개하면서 잘 지내는듯 싶었지만 사실 작년부터 수 명의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며 문란한 사생활을 즐겼고, 그것을 교제해 왔던 여자에겐 숨기면서 지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참고자료


2016 시즌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판받던 차에 사생활 논란까지 겹치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 다시 가입한듯하다. 일본 여자팬들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푸시 라이엇(Pussy Riot)은 러시아의 여성주의 펑크록 집단이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현재 정치상황에 대해 도발적인 내용의 즉석 공연을 갖곤 한다.




반푸틴 성당 시위

푸시 라이엇 멤버 3명(마리아 알료키나,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 예카테리나 사무체비치)은 2012년 러시아 대선 직전인 2012년 2월 21일에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성당 측의 허가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내용의 즉석 공연을 벌였다. 이들은 성당으로 들어와 십자성호를 긋고. 제단에 절을 올린 뒤 한 곡을 연주했다. 연주가 채 1분도 지속되기 전에 이들은 경비원들에 의해 성당에서 쫓겨났다. 푸시 라이엇은 이 때 촬영한 필름을 토대로 뮤직 비디오를 제작했다.


이들은 성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테오토코스(마리아의 그리스어 명칭)에게 "푸틴을 내쫓아달라"고 청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곡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을 신보다 푸틴을 믿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후 성당 측의 고발로 이들 3명은 체포됐고, 러시아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세계적 구명 운동

이들의 체포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구명 운동이 일어났다. 아이슬란드, 영국, 스페인, 미국 등지의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은 푸시 라이엇 멤버들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릴 2012년 8월 17일 러시아 당국에 대한 항의집회를 개최했다.


유명 음악가들도 푸시 라이엇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선고 전날인 8월 16일에는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푸시 라이엇 멤버들을 격려하는 편지를 올렸다. 이 편지에서 매카트니는 "러시아 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당신들을 처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적었다.


이에 앞서 마돈나는 8월 7일, 9일 러시아에서 열린 자신의 공연에서 푸시 라이엇 멤버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를 "용감한 행동"이라고 격려했다. 이 외에 푸시 라이엇의 석방을 촉구한 음악가로는 비요크, 스팅,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이 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D%91%B8%EC%8B%9C_%EB%9D%BC%EC%9D%B4%EC%97%87]


폴 라빌 포그바 (Paul Labile Pogba) / 1993년 3월 15일 (25세) / 191cm, 84kg / 중앙 미드필더


21살의 나이에 FIFA/FIFPro 월드 XI에 이름을 올린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프랑스 국적의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스 출신으로 플라티니, 지단, 앙리, 데샹, 트레제게, 튀랑, 비에이라 등 걸출한 프랑스 선수들이 많이 활약했던 유벤투스 FC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활약했고, 2016년 여름 맨유가 약 1300억원의 이적료로 재영입 하였다.


우수한 신체조건과 화려한 탈압박, 창의적인 패스가 돋보이는 온 더 볼 스페셜리스트

하지만 공격 전권을 맡기기에는 플레이 메이킹 능력 및 수비 가담의 부족으로 활용폭에 제한이 큰 미드필더


거대한 몸집에 걸맞지 않게 매우 민첩하고 빠르며 개인기도 유연하고 드리블도 잘하고 패스도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안다. 개인기를 남발하기보다는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경기를 유연하게 풀어나갈 줄 아는 축구 지능을 지녔다. 유연하고 탄력있는 몸, 큰 키, 창조적인 패스, 스태미너, 종종 강하게 꽂히는 중거리와, 치명적인 침투 능력, 위치 선정 등, 상당히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보인다. 



팬들이 농담 삼아 흑인 지단이라며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지단과 유사한 볼을 오랫동안 소유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단 같은 조율이나 깔끔한 탈압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위에 서술된 장점들이 폭발하면서 시너지를 이루면 상대팀을 관광 보내고 자신의 스페셜을 찍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지단처럼 압도적인 키핑 능력으로 볼을 지키면서 2선과 3선 사이에서 볼을 운반하고 연결해주는데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보면 포그바가 못하는 거 없는 만능 미드필더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뒤에 서술하는 치명적인 단점들이 포그바의 성장을 막고 전술을 타는 선수로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


단점은 수비 가담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는 등 수비 자체를 못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정작 경기 중에는 수비에 소홀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유베 시절에는 비달과 마르키시오가 포그바의 뒤에서 수비적으로 보조를 해 주었다. 


상대팀이 공을 탈취하고 역습을 진행하려 들면 비달과 마르키시오가 귀신 같이 달려와서 기가 막힌 포지셔닝을 해주니 포그바가 설렁설렁 뛰면서 수비 진영을 갖추어도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수비로 인한 체력 소모를 줄여 공격시에 더 활발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비달의 이적 후 팀에 새롭게 합류한 케디라가 바로 부상을 당하고, 마르키시오 역시 거듭되는 부상에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 두 선수가 없는 틈을 타, 포그바와 에르나네스가 쌍으로 미드필더 진을 말아 먹기 시작. 



없는 줄 알았던 포그바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실 유벤투스 초기엔 수비 가담도 곧잘 하던 선수였지만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면서 드리블도 길어지고 수비 상황에서 몸싸움도 피하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결국 수비 가담 시도 자체가 확 줄어든 상태. 또한 자신의 선배였던 지네딘 지단도 그랬듯,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팀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선 경기에서 지워지는 약점이 있다.


사실, 포그바가 다른 톱클래스 미드필더들에 비해 전술적 스펙트럼이 좁은 선수가 된 이유는 무리뉴가 말한대로 유벤투스의 전술이 3-5-2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수비수 3명과 중앙에서 피를로와 마르키시오, 비달, 그리고 케디라가 궂은 일이나 경기 조율을 담당한 덕분에, 포그바는 2선과 3선의 경계에서 테크닉과 볼 운반능력을 활용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성장하게 되었다. 문제는 4-2-3-1의 투 미들 체제에선 이런 역할이 사실상 어렵다. 맨유가 4-3-3으로 전술을 변경해서 메짤라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면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포그바의 활용폭이 좁은 또 다른 이유는 포그바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왜 무리뉴가 공격에 특화된 포그바를 공미로 쓰지 않겠는가? 데샹 역시? 그것은 포그바의 경기 조율 능력이 소위 월드클래스가 아니라, 그 바로 밑 티어 레벨에 끼기도 애매한 경기 조율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예 포그바에 맞춰서 판을 짜야하는데 아직까지는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발재간과 피지컬, 슛 능력 때문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맨유 이적 후의 플레이를 보면,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즉 활용에 제한이 있는 선수다. 일단 포그바를 제외한 빌드업을 주도해줄 플레이메이커가 하나 필요하며, 포그바의 부족한 수비 가담을 덜어줄 활동량과 수비력을 겸비한 미드필더도 필요하다. 여기에 포그바의 특성상 앞의 공간이 어느 정도 보장된 2선보다 조금 더 아래에서 플레이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점에서 역삼각형의 왼쪽 메짤라로의 기용이 가장 포그바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위치다. 


실제로 2016-17 시즌 에레라, 캐릭과 함께 3미들을 형성하면서 포그바의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2017-18 시즌엔 첼시에서 이적해온 네마냐 마티치가 완벽한 활약을 보여주고 포그바가 스스로 활동량과 수비 가담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투 볼란테로 구성된 중원에서도 이전 시즌보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주고 잇다.



사실 포그바 자체는 늘 나올 때마다 평타는 쳐준다. 현재 맨유 중원에서 포그바는 핵심이며 꼭 3미들의 메짤라 롤로 쓰지 않는다고 해도 공격진과 수비진을 이어주는 링커로서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준다. 상대 팀에게도 포그바는 1순위 경계 대상이며 포그바가 지워지면 맨유의 플레이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 맨유의 중원에서 포그바의 공헌도를 알 수 있다. 


다만 유벤투스 시절 포그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수수한 링커 역할을 맡는 포그바를 보면 거액의 이적료가 아깝다고 볼 수도 있다. 즉, 포그바가 기대 이하라고 평가 받는 이유는 무리뉴가 4-2-3-1을 선호하기 때문이고 포그바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롤에서 최선의 활약을 하고 있는 것. 포그바가 팬들이 기대하는 월클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면 무리뉴가 다시 4-3-3을 꺼내들 수밖에 없는데 현재 맨유의 중미와 수미진은 마티치를 제외하면 펠라이니, 폼이 작살난 에레라,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캐릭뿐인지라 영입을 하지 않는 이상 4-3-3을 기대하긴 어렵고 그렇기에 여름 이적시장에 앞서서 수많은 미드필더들과 링크가 꾸준히 걸리는 것이다.


비매너 플레이도 즐겨한다
. 피지컬적 장점이 그렇게 부각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일단 신장이 큰 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합상황에서 우위를 점할때가 많은데, 문제는 그렇지 않을때에 다짜고짜 격투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2017년 8월 24일 포그바가 ESPN과의 인터뷰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에서는 인종차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한편, 선수는 피치 위에서 플레이로 표현한다며 네 명의 축구선수를 예시로 들었는데 그 네 명은 바로 호나우지뉴, 메시, 호날두, 그리고 박지성이다. 역시 갓지성 초코파이가 먹고싶은 포그바. 포그바는 저 네 명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현재 포그바는 박지성 발언으로 한국 해축팬 선정 세계 3대 미드필더로 불리고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D%8F%B4%20%ED%8F%AC%EA%B7%B8%EB%B0%94]


마리오 만주키치 (Mario Mandžukić) / 1986년 5월 21일 (만 32세) / 191cm, 85kg / 공격수


2012-13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공격수 , 2018년 현재 유벤투스 최고의 전술카드, 크로아티아 출신의 공격수이며, 2015-2016시즌부터 유벤투스에서 활약하고있다.


슈퍼 마리오, 투혼의 전사 그 자체, 다보르 슈케르 이후 크로아티아 최고의 스트라이커임을 입증하다.



16강전, 8강전, 4강전 모두 연장 승부를 치르면서 크로아티아는 살인적인 체력 부담을 안게 되었는데, 만주키치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6강전과 8강전에서 모두 120분 풀타임을 채웠으며 4강전에서도 연장 후반까지 죽어라 뛰어다녔다. 8강전과 4강전에서는 다리 경련이 와서 주저앉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압박을 했고 4강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만들었다. 


전설의 경지에 오르고 있는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의 활약에 가려 만주키치의 활약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만주키치의 이번 월드컵에서의 역할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16강 덴마크전에서는 전반 1분 스로인 상황에서 덴마크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분위기가 넘어가고 있던 찰나 전반 4분 동점골을 넣음으로서 이번 월드컵에서 본인의 첫 골과 더불어 크로아티아의 8강 진출에 역할을 하였다.


4강 잉글랜드전에서 연장 후반 잉글랜드 키퍼 픽포드의 왼쪽을 빠져나가는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박스 안으로 투입된 볼을 잉글랜드 수비진이 밖으로 걷어내자 만주키치는 탄식하며 고개를 숙이고 걸어나오다가... 


이반 페리시치가 재차 볼을 헤딩으로 박스 안으로 우겨넣자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잉글랜드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볼을 차 넣었다! 대회 내내 스트라이커로서 폼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정적인 순간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만큼은 어디 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원톱부터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윙어로도 뛸 수 있는 만능 자원이다.  또, 피지컬도 괜찮고 헤딩 능력도 매우 우수한 편. 다만 크고 아름다운 체격에 비해서 몸싸움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드리블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여태까지 클럽이나 국가대표팀이 약해서 기회를 잘 못받아서 그렇지 뛰어난 지원이 받쳐준다면 골 넣는 기계가 되는걸 볼 수 있다. 



12/13시즌 국대와 클럽을 합쳐 33경기 17골을 기록했다.


바이에른 뮌헨 이후 이 선수의 다른 장점이 더더욱 부각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수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 그리고 중앙과 측면을 왕성하게 오가는 움직임이다. 강력한 2선의 공격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였는데, 덕분에 프랑크 리베리,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뮐러등의 강력한 2선 라인을 보유한 바이에른의 공격력이 날개를 달았다.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을 만든 것도 대부분 바이에른의 2선이며, 특히 뮐러의 득점력이 매우 좋았다. 물론 이것은 만주키치의 높은 팀 공헌도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수비 가담과 활동량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매우 빛을 발했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경기가 바로 12/13 시즌 8강 유벤투스와의 경기다. 만주키치는 세계 최강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말 그대로 담가 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라 불리는 키엘리니를 경기 내내 고생하게 만들었다. 


이 덕분에 유벤투스는 빌드업이 완전히 막혀버리고, 마르키시오마저 바이에른의 하비 마르티네즈-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중원에 지워지자 아르투로 비달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 경기는 바이에른의 2:0 승리로 돌아갔다. 2차전에서는 비달이 출전 불가능해져 결국 이도저도 못해보고 탈락했다. 이 경기에서 만주키치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특히 가장 손꼽히는 장점으로 여타 스트라이커와는 다른 연계력이 호평을 듣고 있다. 실제로 만주키치의 패스 능력과 탈압박 능력은 11/12시즌의 연계왕 벤제마급으로 어느 팀에가도 어울릴만한 스트라이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장점이라 뽑히는 것은 역시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위치선정과 창의적인 골넣기 만주키치의 스페셜 영상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 초 뒤를 내다보는 듯한 깔끔한 위치선정이 매우 눈에 띈다. 동료들의 크로스나 패스를 빠르게 읽고 어느새 나타나선 골을 넣는다. 다만, 30대에 진입하면서, 만주키치의 결정력은 극단적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유로 2016에서는 거의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유벤투스에서도 그를 전술적인 윙어 옵션으로 활용하지 스트라이커로는 활용을 하지 않는다. 


또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생각나게 할 정도로 훌륭한 헤딩골을 많이 넣어준다. 다만, 공중불이 올 때 발로가는 공에대한 대응은 좀 구린 편. 발로는 대응을 아예 못 하는 경우도 흔치않게 보이는 편이며, 발을 갖다대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머리를 들이미는 경우가 잦다. 공의 높이가 애매한 경우 발을 들어올리면서 머리를 같이 들이밀 때도 있다... 


허나,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득점 능력이다. 그래도 젊었거나, 전성기 시절엔는 두자릿수 골은 확실히 보장은 해주는 선수였다. 허나, 아틀레티코 시절부터 폼이 이상해지더니 유벤투스에 와서는 득점능력이 스트라이커로 보기 힘들정도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알레그리가 그를 윙어로 기용하는 것이 신의 한 수기는 하지만 애초에 만주키치가 스트라이커로서 쓸 매력이 줄어들어서 이런 변칙적인 시도를 하는것에 가깝다.





[출처 : https://namu.wiki/w/%EB%A7%88%EB%A6%AC%EC%98%A4%20%EB%A7%8C%EC%A3%BC%ED%82%A4%EC%B9%98?from=%EB%A7%8C%EC%A3%BC%ED%82%A4%EC%B9%98#s-4.4]

전성기 시절의 호나우두는 알고도 못 막았지만, 호나우지뉴는 정말 몰라서 못 막았다.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드리블러.


볼을 다루는 능력과 돌파하는 드리블, 시야, 패스와 연계능력, 마무리능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드리블러형 공격수이자 플레이메이커이자 크랙.  압박 전술이 발달한 현대 축구에서는 (측면이 압박을 덜 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측면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선수들이 생겼는데, 리오넬 메시와 프랑크 리베리 등과 더불어 호나우지뉴가 대표적이다. 


누구도 구사하지 못하는 탈지구급의 드리블과 개인기와 함께 킬패스에 능한 선수였고, 또 그게 매우 효과적이라서 적팀 수비수들은 호나우지뉴를 막다가 패스 한방에 골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에 정점을 찍는 것이 바로 육체능력이다. 상대 수비수들과 거뜬히 경합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그들을 휙휙 제끼고 나갈 스피드까지 갖췄다. 여기에 탄력과 유연함까지 겸비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주로 수비벽을 허무는 돌파에 초점을 두고 빠른 드리블과 개인기를 사용해 적팀 수비수를 깨부순뒤, 동료에게 마무리를 양보하는식의 플레이를 많이 하였다. 하지만 절대 슛능력이 나쁜것이 아니다. 틈틈히 기회가 날 때마다 골대를 가르는 매서운 중거리 슈팅과 키퍼가 손 쓸수없는 절묘한 각도로 차는 섬세한 슈팅은 기립박수가 절로 나온다. 


물론, 지뉴가 그리 골욕심이 많은 선수도 아니고, 주 포지션이 처진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윙어로 뛰다보니 마무리보다는 공격의 중심을 잡고있는 경우가 많다. 넓은 시야와 축구지능까지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볼을 어떻게 움직이고 누구에게 패스해야 공격이 쉬워지는지 잘 알고 있는 선수이다.


또한, 가장 역대급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게, 공을 감지하는 몸의 감각인데, 등, 뒤꿈치, 어깨 등 다른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도 잘 쓰지 않는 신체부위를 가지고도 기가 막힌 패스를 해냈다. 게다가 그는 원터치로 전달하는 웬만한 패스에 시선을 잘 두지 않았다. 물론 공이 오는 각도와 튕겨나갈 방향을 잘 예측한 플레이긴 했지만 신통방통한 움직임은 그가 외계인으로 불리는데 큰 일조를 했다. 


또한 전성기 시절엔 공을 위로 띄워 트래핑을 하든 드리블을 하든 속도가 줄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다. 거기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탁월해 템포를 잡아먹지 않으면서 패싱력까지 갖춰 빠른 역습중에 킬패스까지 뿌릴 수 있는 선수였다.


그 감각을 가장 잘 설명할 영상



프리킥도 굉장히 잘찼고 코너킥을 전담할만큼 킥능력이 뛰어났다.


지뉴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볼에 대한 집념인데 잇몸을 드러내고 루즈볼을 차지하려는 열띤 모습이 거기서 비롯된다. 전성기 시절에는 왕성한 활동량까지 붙어 말 그대로 축구공을 몸에 붙이고 다니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야말로 결점 자체가 없었던 화려한 선수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고 자기관리에 실패하며 바디 밸런스가 붕괴하면서, 예전같은 화려한 드리블 돌파는 자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외계인은 외계인이라 깔끔한 슈팅과 수비수 한두 명정도는 이제 걸어다니면서(...) 지나가는 정신나간 드리블은 여전하다. 게다가 특유의 패싱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 돌파보단 패스와 크로스로 플레이하는 미드필더에 가깝게 스타일이 변화했다.



침대에서 운동또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2002 월드컵 당시 호나우지뉴와 잠자리를 했다는 영국 랩 댄서인 리사 콜린스는 인터뷰에서 "그는 마치 드릴 같았다.(like a pneumatic drill)"고 말하는 바람에 호나우드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그의 전 애인이었던 알렉산드라 파레상은 침대 위에서의 호나우지뉴를 이렇게 표현했다.


'호나우지뉴는 축구 뿐만 아니라 침대위에서도 예술가다. 8번째 그가 힘을 주었을때는 마치 드릴로 몸을 파고 드는것 같았으며 그 순간 나는 기절했다, 처음에는 베컴을 원했지만 호나우지뉴와 사랑을 나누고 나서는 그런 맘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06년 폭스스포츠에서 선정한 역대 플레이보이 축구인 7위에 오르기도 했다.(...)


본인의 바로 다음 세대에서 슈퍼스타로 떠오르게 된 리오넬 메시와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클럽 내부에서는 메시파와 호나우지뉴파로 여론이 갈리어 내부적인 다툼이 발생했지만 호나우지뉴 본인은, 성격도 내성적이고 나이도 가장 어렸던 메시의 1군 적응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줬다고 한다.


메시가 1군 훈련에 처음 합류했을 때 첫만남을 가졌는데, 당시 실빙요나 챠비등 1군 선수들이 메시의 재능에 깜짝 놀랐었고 특히 호나우지뉴는 메시는 자기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가 될거라며 극찬을 퍼부었다고 한다. 중요한건 이당시 메시의 나이가 16살, 말그대로 상꼬맹이 시절이었다는 것. 


덕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선수들이 팔불출이 심하다며 웃었다고 한다. 훈련을 마치고 호나우지뉴 본인이 평소 잘 알던 기자에게도 방금 나를 뛰어넘을 만한 선수를 만나고 왔다고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이 기자도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진지했던 모양인지 자신의 절친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만나는 자리에도 리오넬 메시를 대동하고 나가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녀석을 소개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해서 브라이언트도 속으로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나우지뉴는 이때부터 메시를 눈여겨보고 거의 가족처럼 대해주었다고 하는데, 조국인 브라질과 불구대천의 라이벌인 아르헨티나 출신에, 성격도 전혀 달랐던 어린 유망주 메시와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호나우지뉴의 우정은 상당히 주목 받았었다. 


단순히 립서비스 뿐이 아니었던 것이, 이당시 메시가 B팀으로 차출되며 더이상 1군 훈련에 합류하지 않게되자 1군 선수들과 호나우지뉴가 당시 감독 레이카르트를 찾아가서 B팀에 있을 재목이 아니라며 메시의 1군 승격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메시는 어릴때부터 바르셀로나 내부에서도 유명한 미래의 스타였지만 외국인인데다 허약한 피지컬이란 제약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어린 나이의 실전경험도 없는 선수를 성인팀에 넣는다는 것은 지금으로 봐도 대단한 도박이었다. 메시의 월반 속도는 그 실력을 감안하고 봐도 비정상적으로 빠른 구석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메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봤던 클럽 내부 인물들과 호나우지뉴 등 1군 멤버들의 강력한 푸쉬도 한몫했다. 



이후 호나우지뉴는 메시의 데뷔골까지 어시스트하며 그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호나우지뉴는 이 장면을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고 메시라는 선수의 시작을 알린 장면이라며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난 뒤에는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유일한 후회는 메시가 커가는 모습을 좀더 오래도록 지켜보지 못했단 것 하나 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가 메시에게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수 있는 일화. 메시 역시 호나우지뉴를 친형처럼 따랐기 때문인지 그의 이적을 반대했었다. 


호나우지뉴가 떠나고 본인이 원탑 에이스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꽃피웠음에도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 이젠 메시가 새로운 리더라며 그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내 친형과 같던 사람을 떠나보냈다며 몹시 원망했다고 한다.


2015년 당시 카탈루냐 방송사에서 등번호 10번의 전임자이던 호나우지뉴에게 싸인한 져지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메시는 인터뷰 영상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팀이 (호나우지뉴를) 그런 식으로 대접하면 안되는 거였고 그의 명성에 걸맞는 대우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호나우지뉴는 자신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거고 팀과 자신 사이에 갈등이 없었으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은퇴 발표 직후에 메시 역시 다음의 글을 본인의 SNS에 올리면서, 선대 바르셀로나 에이스이자 조력자였던 그의 은퇴를 기념하였다.


"항상 말했듯이, 나는 너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 나는 내가 드레싱 룸에 처음 입성했을 때, 너가 나에게 해준 모든 것들이 얼마나 쉽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할 거야. 너와 함께 많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던 건 행운이었어. 또, 너는 경기장에서는 공으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천재(fenómeno)였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은 친구였고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일 거야. 너가 비록 은퇴하게 되었지만, 축구는 절대 너의 미소를 잊지 못하겠지.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길, 로니."


[출처 : https://namu.wiki/w/%ED%98%B8%EB%82%98%EC%9A%B0%EC%A7%80%EB%89%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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