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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 사이비 종교, 신흥종교, 테러 단체 / 출가자 1700명, 총 신자 약 1만명 / 교주 :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일본의 사이비 종교 집단 및 테러리스트 범죄 집단이다.


옴진리교는 요가 수행자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본명은 마츠모토 치즈오)가 세운 교단으로 당시 일본에서 널리 퍼진 오컬트 붐이나 세기말에 만연한 흉흉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했다. 전성기에는 약 1만명의 신도가 있었다. 심지어 당시 공산주의 붕괴로 젊은이들이 아노미에 빠져있던 러시아에도 세력을 확장하여 상당한 규모의 교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러시아 지부도 일본에서의 테러 사건 이후 강제로 해체되었다.


이들이 벌인 대표적인 사건


-1989년의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 

-1990년의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사건

-1993년에 일어난 카메이도 악취사건

-1994년에 일어난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1995년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그리고 무엇보다도 

-1995년 3월 20일 에이단 지하철(현 도쿄 메트로)이 운영하는 지하철 3개 노선 5개 편성 전동차에 사린 가스를 살포해 13명의 사망자와 무려 6300명의 부상자를 냈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전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져 옴진리교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는데, 이들은 단순히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전복시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옴진리교의 그 희대의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보자면, 일본 정부를 전복시킨 다음 덴노를 폐위시키고, 아사하라 쇼코가 신성법황으로 군림하는 신정국가(가칭 진리국)를 세운다는 목표였다. 참고로 교주부터가 LSD 중독자다.


옴진리교의 생화학 무기는 테러때 사용했던 사린 가스가 가장 유명하지만, 사린 이외에도 VX 가스, 포스겐 등 여러 독가스를 제조하여 여러 암살 사건에 사용하였으며, 심지어 탄저균을 배양하여 이를 이용한 생물 테러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주변에 악취만 풍긴 카메이도 악취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3년 6월 27일과 7월 2일 2차례,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있던 옴진리교 지부가 (정확하게는) 탄저균의 배양에는 성공했지만, 정말 정말 다행스럽게도 살포하는 과정에서 고압 분무기를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탄저균이 모두 사멸해버리고 독성이 없는 악취만 남게 되었다 .


또 한 가지, 일본어 위키백과 카메이도 악취사건 문서를 보면, 옴진리교는 본래 사린 가스(Sarin Gas)가 아닌 탄저균을 배양 살포하는 생물테러를 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서의 탄저균 사멸 카메이도 악취사건으로 생물테러를 포기하고 사린 가스와 같은 화학테러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만든 사린 가스의 성능을 실험하고자 1994년 6월27일 저녁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에서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심지어 핵무기 제조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발표로는 계획으로 끝났다고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옴진리교 시설에서 핵실험 때 발생하는 지진파가 감지되고 어보리진 몇 명이 근처에서 강한 섬광을 목격했다는 비공식적인 정보가 있다.


러시아 지부를 통해 군용 헬리콥터를 구입했으며,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공중에서 사린을 살포할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옴진리교 신도들 중에는 군인 출신도 있어서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되자, 일본에 잠입해서 무력으로 구출할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돈이 썩어나는가보다..


1995년 3월의 일본 경찰의 강제수사에 의해 좌절되긴 했지만, 이들은 1995년 3월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후에 후속 테러로 11월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1995년 11월 국회회원식에 맞추어 교단이 소유한 군용 헬리콥터를 도쿄 상공에 띄워 사린 가스를 살포해, 덴노와 각료, 국회의원을 포함한 도쿄 시민을 무차별 대량학살하려고 했다. 


그 후 단기간에 전국을 돌면서 일본 주요 도시에도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그 혼란의 와중에 사린가스 살포로 국가 기능이 소멸된 수도권 포함 일본 전체를 자동소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하얀 사랑의 천사'들이 남은것까지 다 파괴한 후, 신정권(神政權)인 '진리국'을 수립하려고도 했다.


영화 스턴트 배우를 모집한다는 핑계로, 젊고 건강한 남성을 모아 집단 생활을 하게 해서 세뇌를 시킨 후,하얀 사랑의 전사들이라고 하는 교단의 군대를 조직하여 영화 촬영을 한다는 핑계로 야산에서 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자위대에 체험 입대하거나, 러시아에서 군사훈련 연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단의 사병단은 약 수십 명 정도의 규모로, 이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자동 소총 AK-74의 제조를 몰래 시도하기도 했다.


원래는 선거에서 패배한 후 무력 노선으로 전환했을 때에 무기를 구입하러 러시아에 갔으나 판매를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자 구입을 포기하고 대신에 총기를 분해하여 총기 구조를 암기한 내용을 토대로 제조를 시도한 것이다.


이들이 제조한 총기를 압수하여 조사한 결과, 기술 수준이 떨어져서 수백 발 정도를 발사하면 총기를 아예 폐기해야 하는 수준인 데다가 자동 사격 도 되지 않는 극악의 저질품이라 본격적인 군사 용도로 쓰기에는 부적합 그 자체인 물건이었지만, 만일 이들이 정말로 무장봉기를 시도하였다면 고작 이런 수준의 조잡한 총기를 썼다고 해도 심각한 사회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거나 경찰이나 자위대원을 불시에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하는 용도로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2006년 9월 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린 가스 테러를 할 정도로 흉악한 잔당들이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2018년 7월 6일 옴진리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형이 최초로 집행되었다. 관련 기사 그와 함께 사형을 언도받은 간부 12명 중 몇명도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강제로 해체되었고 일본 정부는 물론 러시아 정부도 불법조직으로 지정했지만, 잔존세력은 이름을 바꾸거나 분열하여 다른 단체를 세우거나 하여 아직도 남아있다. 잔존세력 중 대표적인 곳이 알레프(Aleph)다. 창설 당시엔 アレフ라고 썼지만, 그로 인해 동명(同名)의 회사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장음을 하나 넣어 アーレフ라고 바꿨다. 현재는 알파벳 표기인 Aleph로 이름을 바꿨다. 


옴진리교와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도 매스컴은 물론이고 경찰의 주시대상이며 교단의 지부가 있는 맨션 현관에는 사복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에서는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 또한 아레프로 이름을 바꾼 것은 사실 훼이크이며, 이름마저도 바꾸지 않고 옴진리교인 상태라는 보도가 떴다. 언론에도 '옴진리교 주류파'라는 설명을 담고 있으며, 2013년 12월 4일엔 지인을 알레프에 가입하도록 강요한 신자 가 체포되기도 했다. 


2012년 1월에 신도 납치살해 용의자로 지명수배된 뒤, 숨어살던 간부 중 한 명인 히라타 마코토가 결국 자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상도 못할 엄청난 병크가 터졌다.

[도쿄는 지금]17년만에 자수하러 갔더니 “바쁘다… 옆 경찰서 가라” 황당한 日 경찰 


사족으로 해당 교주의 딸은 아버지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며 자신의 회고록(Stopped Clock(가제, 멈춘 시계))을 낼 것이라 한다.


이 종교는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활동 중이다. 그래서 신도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하며 2016년 3월 30일에 몬테네그로에서는 옴진리교와 관련된 58명의 외국인들이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2016년 3월 6일에 러시아에서 옴진리교 조직이 발각되고 옴진리교 조직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7일에 옴진리교의 마지막 피의자도 일본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에까지 마수를 뻗으려는 중인지 돌아다니다 보면 자아수련 강의를 빙자한 포스터가 자주 발견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옴진리교의 마수가 뻗지 않아서 특별한 법률을 제정하지는 않았는데 한국에서 옴진리교에 가담할 미친놈이 나올리는 없겠으나 대한민국 정부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가담시 폭처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출처 : https://namu.wiki/w/%EC%98%B4%EC%A7%84%EB%A6%AC%EA%B5%90]

탈레반과 더불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 단체

현존하는 21세기 악의 축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테러 단체이다. 주로 이라크, 시리아를 중심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추종 세력을 받아들이며 예멘, 이집트(시나이 반도),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보코 하람),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튀니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니제르, 러시아, 소말리아, 필리핀, 프랑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벨기에, 이란, 터키 등에서 IS의 테러 활동과 공격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리아 근방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만을 추종하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 반국가단체로 인식되며, 국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잔인한 테러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알 카에다가 이들의 기원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하지만, 알 카에다는 '서구 문명을 중동에서 추방하고 이슬람 낙원을 건설하자'는 나름대로 호소력 있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알 카에다의 이상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소수 존재했기에, 알 카에다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집단은 알 카에다와 달리 이슬람의 입장에서 봐도 모독적인 이단 행위를 여럿 저지르고 다녀서 그 부분에서조차 옹호받지 못하게 되었다. 즉, 그 어떤 부분에서 단 하나도 좋게 봐줄 여지조차 없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륙 지역과 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이자 민간인 학살 및 성범죄, 거주지 방화를 일삼는 반란군 집단. 보통 줄여서 ISIL 혹은 IS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주로 이라크에서 발흥한 것과는 달리 실질적인 중심지는 자칭 수도인 시리아의 라카 지역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시리아를 넣어 ISIS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라크의 주요 도시 모술도 이들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이들의 지하드 전선 가입은 자신의 인생을 막장으로 끌고 가는 지름길로 사실상 그 위험성은 도박, 마약, 사채, 보증을 한 번에 하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이들이 한다고 설치는 지하드에 참여한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살아 돌아올 가능성조차 거의 없고, 겨우 살아서 돌아와도 호적에 빨간줄 그이고, 살인자라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죽어서도 고인능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재물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탕진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도자는 칼리프를 참칭하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즉 '바그다드의 아부 바크르' 라는 인물이다. 이들의 사상과 행동은 전근대적인 경전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며, 그를 전근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비판적인 환경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이슬람 교리는 여기에 안전장치가 최소 1~2개는 걸려있다. 현대적인 가치로 재해석한다든지, 절대권위자가 없든지...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산 증인. 전 세계의 공공의 적으로 20세기에 추축국이 있었다면 21세기 초에는 ISIL이 있다. 추축국은 정식적인 국가로 인정받기라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심지어 나치 독일에서 베를린 올림픽도 열렸다.


주요 구성원은 수니파 계열 아랍인들이며, 주된 활동 영역은 이라크와 시리아다.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에도 슬슬 나타나는 상황이었으나, 리비아에서는 2016년 리비아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시르테 등 거점지들을 잃고 붕괴되어버렸다.


이들은 국가로서 영토, 국민, 주권을 갖고 자기들이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누구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범이슬람주의 이슬람'을 국교로 내세우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앞에 '무릇 범(凡)'을 감히 붙일 수가 없다. 게다가 일단 기본 성향부터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브파 및 살라프파의 혼합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둘 다 아니다. 와하브파가 쿠란의 본분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자기네 멋대로 경전을 날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쿠란에 적혀 있지도 않은 내용을 진실인 양 위조하여 지하드를 합리화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 살라프파에서는 시아파 무슬림은 기본적으로 이단으로 취급해 적대하되 수니파 무슬림은 죽이지 않지만, 이 집단은 수니파 무슬림도 자신들에게 반발하면 서슴없이 공격하거나 학살했다.


시아파, 수니파 등 이슬람 양대 교파를 대상으로 살인 행각을 벌이고 있고, 같은 수니파여도 IS의 조직원들과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집단 외의 전부를 사냥감으로 보고 무조건 죽이는 이중잣대의 결정판이다. IS에 충성을 맹세한 살라피스트가 아니면 무조건 죽인다.



게다가 이들은 세계 역사를 둘러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폭력 조직으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오직 자신들이 왜곡한 샤리아가 아니면 죽음 뿐을 외치고, 다른 종교와의 공존과 원칙을 일체 거부한 채 무분별한 학살을 행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다. 자기파괴본능의 극을 달리면 종교가 얼마나 정신 나간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들 중 하나


규격과 글씨체를 제외하고 알샤바브의 상징기랑 같다.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의 깃발은 우상숭배를 배격한다는 차원에서 국기에서 보이는 복잡한 도안과 상징물이 없이 문자 뿐인 흑백의 도안을 채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단,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닌 게, 말레이시아의 파항 주나 트렝가누 주도 흑백으로 되어있다. 국기에 써있는 문장은 샤하다 구절인 'لا إله إلا الله'와 'محمد رسول الله'(원 안의 글씨)이며 글씨체도 현대 아랍어 서체가 아닌 무함마드 시절의 초기 글씨체를 '재현'하고 있다. IS와는 연관이 없어도 그냥 IS의 깃발을 내걸고 싸우는 집단도 무수하다.


난민 신청했던 시리아인, IS 포섭 활동 혐의 구속

한국에 입국한 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가입을 권유한 30대 시리아인이 경찰에 구속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6/2018070601020.html?utm_source=daum&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로 칭하며, 이들의 사상은 서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이슬람 질서(니잠 이슬라미)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SIL은 21세기에 1990-2000년대 탈레반이 했던 짓이 연상될 수준의 극단적인 사상을 문자 그대로 전 세계에 실현시키겠다고 하므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21세기의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 심지어 중동 주권국들도 형식적으로나마 따르는 개인의 종교 자유 보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고, 오로지 자기네 식의 이슬람만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 불과하다. 미군 중동 파병 이후 생겨났다. 


이들은 2003년부터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시작해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에 참여했으며, 2014년 6월 29일에 칼리파 국가 수립을 선포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반군 집단이자 미승인국. 실질적으로는 그냥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대한민국,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전 국가는 물론 대다수 이슬람 국가, 즉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모로코 등 치안 상태가 안전하고 국제 질서에 협조적인 국가조차 ISIL을 아예 국가로도 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 그 외에도 시나이 반도와 리비아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



자신들은 자기들을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미승인국과 유사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윤리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현실적으로 이들이 국가가 맞는지는 이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역대 유명한 막장 불량 국가들인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북한 등은 실제로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 수반이 존재하며, 국제적으로 일단 국가로 인정은 받고 있으나, ISIL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실상 하는 일들도 영역을 가진 약탈자 패거리에 불과하다. 좋게 봐줘야 군벌에 가까운 집단.


이 인간 쓰레기들이 "이슬람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ISIL이 테러리스트로 받아들인 외국인의 상당수가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이전에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한 경력이 있는 등 이슬람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고, ISIL도 이라크에 음란물을 밀수하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는 등 이슬람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 심지어는 칼로 쿠란을 훼손, 거기에 폭탄을 설치한 점 이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ISIL에게 이슬람은 단지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 및 '적대 국가'들로부터 조직원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 일 뿐이라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미국 대통령 공식 발표, 영국 총리 인터뷰 발언 등 서방 세계는 물론이고, 무슬림과 무슬림 지도자들도 이슬람적이지 않은 걸 넘어 반이슬람적이라고 규탄 하고 있다. 그러나 구성원 대다수가 무슬림인 점, 알라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쿠란을 믿으며 무함마드를 최후 예언자로 인정한다는 점, 과거 문제가 된 탈레반, 알 카에다 등의 변종들에 대해서도 이슬람으로 불러왔다는 점, 무엇보다 스스로 정한 명칭이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슬람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IS에 의한 대부분 희생자들이 수니파 무슬림들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이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이슬람 교리를 위반하고 신도들을 착취하기 위해 또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형태로 재해석된 게 IS라, 이들은 이슬람계 사이비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정통 이슬람 제국의 전면적 부활'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바스 왕조가 1258년에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 후 이집트로 망명한 아바스 왕조의 잔존 세력이 칼리파 칭호를 유지하였으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이집트의 아바스 칼리파 역시 소멸하였다. 이슬람 국가가 셀림 1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칼리프로 보고 있는지, 찬탈자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이 없다.


칼리파로 즉위할 수 있는 자격이 시아파에서는 알라와 그의 후손들만이 진정한 칼리파로 즉위할 수 있고 칼리파로 인정한다. 수니파는 무슬림 공동체에 의해서 선출된 칼리파면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라도 상관없고, 무함마드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칼리파로 즉위하는 것에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런 칼리파에 즉위하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주장에 의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칼리파 지위는 대체로 수니파가 독점했으나, 몽골의 바그다드 침공 당시 칼리파가 살해당하고 한동안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칼리파 자리를 겸임한 것을 수니파들은 인정했다. 그러므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을 칼리파로 인정을 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다.


ISIL은 이렇게 사실상 소멸한 아랍인 중심의 정통 칼리파 국가의 부활과 이슬람에 의한 세계정복을 명분으로 삼으며 자신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하드(성전)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절대 이슬람의 입장에서도 지하드가 될 수 없다. 그들이 하고 있는 테러, 학살, 폭정 등의 만행 전부가 이를 다 말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이후 최초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를 적으로 돌렸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전통의 앙숙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및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같이 적대하며 일대에서 사이가 좋을 리 없었던 동방 기독교도와 시아파, 쿠르드가 손을 잡을 정도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격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마저 무력 사용을 필요불가결하다 인정할 정도에다가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인격자인 달라이 라마도 이들을 비판했다. 


단, 아랍권 수니파 민간측에서는 과거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를 암묵적으로는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각국 지도부는 이 집단이 미친 걸 알아서 어떻게들 쫓아낼 방법을 찾고 있긴 하나 국민들이 따라가지를 않는 게 현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손아귀에 있던 기억이 있었으니 또 외세가 들어오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2월, 그들은 스스로 저지른 이단적인 분살 행위를 영상으로 공개해 그들을 지지하던 수니파 무슬림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안으로 굽어있던 팔들마저 밖으로 꺾이는 지경이 된 것이다. 결국 연대 및 협력 조직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렸다.


거기에 알 카에다 까지 칼리프 이브라힘의 목에 현상금 2500만 달러를 걸었다. 게다가 이슬람 최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메카를 테러하려고까지 했으니 모든 무슬림들이 격분할 수 밖에 없었다.


계엄령과 유사한 치안법으로 1950년에 대통령령으로 제정된(1970년에 전문개정) 위수령이 있다. 


위수령은 비상사태나 자연재해 등으로 군사시설 보호와 치안 유지를 위해 육군부대가 주둔하는 것을 뜻한다. 권력적 작용은 없고, 물리적 작용은 가능한 방식이다. 쉽게 말해 경찰로 치안유지가 불가능해진 상황에 위수지역의 육군 부대를 출동시키는 것. 계엄령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


위수령에 따른 병력출동 요청은 현재 서울시장, 부산시장 및 각 도지사만 가능하다. 광역시인 대구시장, 인천시장, 광주시장, 대전시장, 울산시장, 세종시장이 빠진 이유는 법령 제정 당시 이 도시들이 도 소속이었지 지금처럼 독립된 광역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정 이후 광역시 승격 및 특별자치시 설치 등 행정구역 변경이 있어왔지만 위수령 법은 개정되지 않아 현행법 상으론 서울, 부산 및 각 도의 장이 아니면 위수령 출동을 요청할 수 없다. 법리 해석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위수령을 요청하지 못할 수 있다.


위수령은 육군 부대에만 적용되며, 해병대를 포함한 해군 및 공군 부대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수사령부는 해군 및 해병대 지역에서도 육군이 맡는다.


계엄령은 모든 권력이 계엄사령부로 이관되고 대통령의 직접 통제를 받는 반면, '위수령'은 모든 권한이 행정당국에 남아있는 방식이다. 사실상 계엄령의 하위호환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독재정권에서 계엄령을 남발하기는 국내외에 애로사항이 엿보이는 관계로 위수령이란 치안령을 따로 만들어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데 썼던 것이다. 


이에따라 폐지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례 있어왔다. 합동참모본부 법무실마저 폐지 의견을 냈지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반대했다고 한다.



1971년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서울특별시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시켜 10개 대학에 강제휴교령과 함께 무장군인을 주둔시키고 주요 시위 가담자들을 체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위수령 선포는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강릉 지역에 선포된 것이었다. 


2018년 3월 8일 군인권센터에서는 탄핵정국 당시 국방부에서 탄핵기각에 의한 소요사태 발생 시 위수령을 통해 무력 진압(병력 동원)을 검토한 것을 폭로하였다. 그리고 3월 20일, 관련 문건이 실제로 발견되었다고 JTBC의 보도가 있었으나 국방부는 핵심 전제를 뺀 허위보도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방부에 따르면 위수령이라는 제도를 검토한 것은 민주당 소속 이철희 의원이 촛불집회 당시 두 차례 국방부에 위수령 제도 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이었고 이 요청에 따라 국방부는 위수령이라는 제도를 들여다봤을 뿐이었으며 JTBC의 보도는 이러한 전후맥락을 모두 은폐하고, 당시 정부가 촛불시회를 탄압하기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했었다고 허위보도라며 SBS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JTBC는 3월 24일 보도를 통해 이철희 의원 요청은 병력 검토가 아닌 위수령 폐지에 대한 부분이었으며 국방부 직무담당검찰관 역시 병력요청이 아니었음을 기자 브리핑을 통해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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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전 모의 의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의 일이다. 군 고위관계자가 밝혔고, MBC가 처음 보도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 인원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던 2016년 11월 12일, 당국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입할 경우에 대비해 특전사를 비롯한 군 병력을 투입하는 계획을 검토했었다고 군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실제로 집회 당일 오전부터 합동참모본부 상황실에는 군 수뇌부들이 모여 도심 상황을 예의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특전사를 시위 진압에 동원하려면, '계엄령'이나 '위수령'이 발동돼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안까지 검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후 모의 의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중이던 때의 일이다. 군인권센터가 복수의 제보를 받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2018년 3월 8일 군인권센터는 '군, 탄핵 정국 위수령 및 군대 투입 검토 폭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군인권센터는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국방부 내에선 탄핵 기각을 대비해 군 병력 투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국방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사령관들은 이 기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기각에 대비해 회의를 열고 ‘소요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 등 구체적인 병력 규모와 투입 논의를 했다고 한다.성명 전문


한편 군인권센터는 청와대가 이 모의에 개입되어 있다며, 청와대ㆍ군 지휘부ㆍ법무계통이 은밀히 모의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청와대 파견 법무관과 자주 연락하며 교감한 국방부 법무관리관 주도 하에 이뤄졌다”며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당시 군 관계자를 조사해 청와대와 의견을 주고받았는지 여부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관련하여 김종대 의원도 한 방송에 출연하여 무력진압 논의 주체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로 지목하였다.


아래에 설명하지만 위수령은 계엄령의 하위호환격이긴 하나, 어쨌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반대세력을 무력으로 저지하려 움직였다는 건 사실이 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위수령을 통해 무력진압을 시도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이던 구홍모 중장이 논의를 했다고 군인권센터는 폭로했다. 


다만 위수령 발동 검토의 전제가 '탄핵 기각 후 소요사태 발생'이기 때문에 이를 치안유지 활동으로 봐야할 지, 친위 쿠데타에 준하는 것으로 봐야할 지의 논쟁은 있을 수 있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문서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대다수는 만약 탄핵이 기각되었다면 소요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긴 하다.


그러나 위수령은 외관상 유사할 뿐이지, 헌법상의 비상조치로서 행정부에게 타 2부와 국민 등 정치주체들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하는 계엄령과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르다. 발동 근거도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 불과한 만큼, 실제로 일반적인 시위진압을 넘어선, 소위 광주에서 일어났던 '폭동적 시위진압'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었다면 군과 행정부는 국회와 법원의 제지를 피할 방법이 전무하다.



살인, 과실치사등 군형법으로 투입 병력과 현장 책임자들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다시 한번 당하게 될 뿐이다. 좋게 말해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쓸어내리는 것이고 나쁘게 말해 선동에 가까운 부정확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위의 폭동적 시위진압 명령을 받았을 경우, 군인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 하극상 항목에서 확인이 가능하듯 위의 유혈사태를 벌여버리라는 비정상적인 명령이 떨어지는 것에 반발하여 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이며 군사정권 이후 군법에서 "절대복종" 항목이 "복종"으로 바뀐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누가 누군가의 가족 혹은 친구에게 총부리를 겨눠 쏠 것이며, 누가 부패 정권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당시처럼 '빨갱이니까 죄다 쓸어버려라' 따위의 세뇌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결국에 국방부는 2018년 3월 21일 위수령 폐지 방침을 밝혔고, 7월 4일부터 8월 13일 위수령 폐지령안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관련 규정을 없앤다고 했다. 다만 이게 곧 위수지역의 폐지로 직접 이어진다고 단정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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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계엄령을 선포했더라면? 



실제로 계엄령을 선포했더라도, 촛불 든 시민을 화기를 동원해 학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당장 박근혜 게이트 몇십년 전, 훨씬 민주주의 의식이 낮았던 전두환 독재정권 당시에도 계엄령이 발동되자 5.18 민주화운동 등 국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하여 정권유지가 힘들어졌었다. 그리고 이때 일명 광주 학살이라 불리는 너무 끔찍한 대참사가 나고 그게 결국 다 들통나는 바람에, 군인은 국민에 발포할 능력이 사실상 완전히 없어졌고 사살도 불가능해졌다. 즉 치안권은 경찰에게 넘어갔으며 이후 사태로 갈수록 최루탄에서 살수차로, 총칼에서 곤봉, 후에는 방패진압으로 축소되었다. 이제는 봉기나 폭동 이상의 테러에 대응할 때만 경찰에게 발포를 허용하는 시점에서 더 심하게 강제진압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도 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충수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인들에 대한 정보 통제가 예전처럼 철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알 것 다 아는 사병들과, 김영삼 체제 이후 본격적으로 중용되기 시작한 야전 군인들이 고위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군에, 촛불 든 시민을 공격하라고 한다고 순순히 명령을 따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군의 입장에서도 대통령의 실책이 너무도 명백한 이 시점에 계엄령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위험이 큰 도박이다. 이승만 때처럼 군이 대놓고 명령 이행 거부를 선언하면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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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사단장이 청와대 쪽 라인 편이라고 해도, 연대장급 이하들이 진압을 거부하고 불법적인 명령을 내린 상급자들을 역으로 체포할 수 있다. 


심지어 병사들이 그러한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체포하거나 사살할 수도 있다. 병사들도 엄연히 시위에 나선 국민들의 가족들이다. 충분히 성숙한 인격체인데다가 학력도 낮지 않다. 물론 그렇더라도 일단 군인인 이상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긴 한데, 뭐 옛날처럼 정보 통제가 내려진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계엄령을 내린다한들 따라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을 거부하는 건 국제법상 정의된 권리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왜 민간인 학살 명령에 복종한 사병들까지 전범으로 처벌했는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또한 민주화된 군대는 명분을 잃으면 사기를 잃는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불법적인 명령을 시행하는 부대를 다른 부대가 오히려 역진압을 시도하면 그대로 끝이다. 내란죄로 하야나 탄핵을 할 필요도 없이 계엄령에 거역한 군인들이 그대로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계엄령 관련 인사들을 체포할 수 있는 건 덤.


공군 또한 만약 시위대를 폭격하라고 했어도,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투기를 몰고 해외 등지로 망명하는 집단 항명 사태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997년 알바니아 사태 당시 공군 조종사들은 시위대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등지로 망명한 전례가 있다. 그리고 알바니아 사태는 무력 시위였는데 이번 건은 평화 시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항명할 가능성이 높았다.



해군에 명령이 떨어졌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최후의 방책으로 시위 현장에 미사일과 함포를 발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도 당장 포템킨 전함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포기한 이유는 미국이 막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군이 거부했던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도 정규군이 등을 돌린 것이 결정타가 되어 독재가 끝났다. 이승만 대통령도 본인이 내린 계엄령에 대해 군이 거부하면서 정권이 끝났다.


게다가 이미 국회의원을 통해 가능성이 제시된 방안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수습, 그러니까 즉각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할 가능성이 100%다. 


제20대 국회에선 야 3당만으로도 반수가 넘는데, 무소속과 새누리당 비박계에서도 당연히 계엄령을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가 폐회 중이면 즉시 개회해야 하고,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체포 및 구금할 수 없으며, 국회의원 재적 의원 과반의 동의가 있으면 계엄은 즉각 해제해야 하므로, 계엄 선포가 즉각적인 국회 개회로 이어져 계엄 중지를 결의할 여건을 만들어주어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계엄 선포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설령 여대야소였더라도 계엄령을 내리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다수가 계엄령에 찬성하더라도 위에 설명한 것처럼 국민, 군이 반발하면 역풍을 맞을 게 뻔한데, 이렇게 되면 진짜 폭동이 일어나든가 해서 비록 국가적 손실은 크더라도 국회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여기 참여했던 국회의원들은 정치 이력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목숨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즉 진짜 야소여대였다면 계엄령을 내릴 지경이 되기 전에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수습하거나 묻으려 하지, 계엄령이 선포되어 버렸다면 무턱대고 대통령 따라 찬성하느니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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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한민국에 투자한 외국 자본들이 국내 정세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빠져나간다면 경제도 무사할 수 없다. 


주적인 북한을 대면하고 있다해도 긴 휴전 기간으로 인하여 휴전 상황을 불안 요소로 보지 않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계엄으로 인해 소비 시장이 왜곡되면 투자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 계엄 이후 군부의 통제로 인한 직접적 영업 방해와 매출 감소, 각종 검열로 인한 영업과 마케팅의 어려움, 까다로운 보안 절차와 검문 등으로 인한 비효율성, 수출입에 걸릴 제한과 자재 도입의 어려움 등 수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미국은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들이 입을 손해로 인해 한국의 피해를 무시하고 북한과 전쟁하는 것은 수지 맞는 장사가 아니므로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2016년은 90년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미국 기업들이 각 분야에서 깊숙히 한국으로 들어와 있다. 


물론 이제는 북한과의 전쟁도 진지하게 고려 중인 미국이지만, 자국이 핵에 노출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지 한국의 피해를 의식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전쟁 카드를 쓸 생각도 해보는 거지 쓰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당장 트럼프가 계속 군사 공격은 마지막 플랜이라고 강조하고 제재만 줄창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 계엄을 발령하는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더구나 미국 말고도 전세계 국가들의 다국적 기업들도 들어온 상태이며 계엄령이 떨어지면 이들도 막심한 손해를 본다. 결국 EU(유럽연합) 등은 물론 한국과 경제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중동,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일본 등 전세계 국가들의 반발과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는 자충수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내부의 자본 또한 계엄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2016년 4/4분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불경기로 치닫고 있고 서비스업 지수는 바닥을 쳤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목전에 두고 계엄을 선포한다면 내수는 그야말로 박살난다. 물리력으로 소비를 못하게 해서가 아닌 소비 심리의 위축이 문제가 된다. 계엄 상황에서 여행이나 각종 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리 없고 사람이 모이는 행사 등도 물리력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이 높다. 계엄으로 인해 내수가 망가지면 정치적으로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즉 박근혜정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등장하는 어떤 정부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국민들의 집회나 시위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고 무사할 수 없다. 계엄선포가 가능할 때는 오직 단 한가지 경우 뿐이다. 미국의 북폭 혹은 북한의 남침, 중국군의 남하로 인해 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위기가 초래되었고 외부문제라 정부 교체 등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없을 때이다.



미국 역시 일방적으로 발동되는 계엄령을 가만히 놓아둘 이유가 없다. 


한미연합사령부의 합의도 없이 대통령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도 문제이고, 계엄령을 내렸을 때 미군이 계엄을 인정하고 허락하느냐의 여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과거 5.16 군사정변 당시에도 미국이 진압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쿠데타 이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윤보선 대통령이 강력히 반대하여 결국 진압하지 못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허수아비 대통령보다 쿠데타 이후 본인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색깔론까지 쓰면서도 선거에 패했다.[10] 이후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게 된다.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계엄령에 대비하여 군 동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 이후 강한 반미 감정과 군부대 투입의 악영향을 경험한 미국은 한국군의 무력진압을 저지하기 위하여 CIA가 주한미군의 협조를 받아 전차 5대를 차출하여 수도방위사령부와 육군특수전사령부 등 한미연합사령부의 통제하에 있지 않고 한국이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대들의 정문에 전차를 보내 무력시위를 함으로써 한국군에게 압력을 넣었고, 이건 어떻게 무시한다 쳐도 일선 군 장교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하나회 장교들은 계엄선포와 국민 탄압이 실행에 옮겨지면 국민들 편을 들어 총구를 정권으로 돌릴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여기에 더해 주한미군만 협조를 거부한 게 아니라, 주한 미국대사까지 청와대를 방문하여 전두환 대통령에게 계엄령 선포시 한미동맹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내용의 미국 국무부 친서를 전달하면서 그렇잖아도 계엄령의 성사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던 전두환 정권은 기존에 남은 수개월 임기를 보장받고 대신 다음 대통령은 직선제로 뽑는 대국민 타협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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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만약 이 상황에서 계엄령이 떨어졌었다면, 

그동안 쌓아놓은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바닥 끝까지 실추되고 한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소 1세기 가량의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포했다면 온 국민과 대한민국 국군, UN 회원국 전원이 모두 적으로 돌아설 것이었다. 


그리고 국민과 군의 반대를 무시하고 계엄령을 밀어붙이기라도 한다면?


말 그대로 군대가 경복궁 밀어버리고 청와대로 전차 몰고 쳐들어가 박근혜를 끌어내는 꼴이나 아예 K9 자주포나, 주한미군을 등에 업은 폭격으로 청와대와 경복궁, 국회, 주요 수뇌부를 박살내 버리는 꼴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음? 장포스? 그리고 후손들은 역사책에서 이 사건을 절대 빼놓지 않고 쓰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계엄령을 선포하기보다는 그냥 버티거나 물러나서 동정론을 사는 것이 차라리 최악을 피하는 길이었다. 단, 특별히 계엄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분노한 시민들이 광화문과 청와대 사이에 있는 것을 마구 넘어 청와대에 억지로 진입했다면 청와대 주둔 특수부대와 무장경호원들에 의해 방어 위주로 발포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 당시 계엄령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측도 '물론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판사판격으로 일으킬 수는 있다.'라고 우려한 입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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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ㅣ https://namu.wiki/w/%EA%B3%84%EC%97%84%EB%A0%B9#s-1.1.1]

비상시에 치안 유지를 위해 발동되는 긴급권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군병력으로써 군사상에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해 대통령이 선포하는 조치이다. 경비계엄과 비상계엄으로 나눠지며 특히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이 해당 지역의 모든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게 되며 기본권조차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 요구가 있다면 대통령은 바로 계엄령을 해제해야 하며, 국회의 요구를 묵살할 경우 헌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단, 탄핵에 관련한 절차, 즉 국회 재적인원 과반수의 발의 및 2/3 이상의 찬성이 있은 후 헌재에서의 심판을 거쳐야 하며, 자동적으로 탄핵되는 것은 아니다.


기타 전염병 등 보건행정상의 이유로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도 계엄령이 발령될 가능성이 있는데 실제로 신종플루 유행 당시 미국은 최악의 경우 계엄령 선포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결국 신종플루는 평범한 독감보다 낮은 사망률을 보이고 끝났다. 미국의 경우 매년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2만명 이상인데 비해, 신종플루는 5천명정도의 사망자만 냈을 정도. 애초에 모든 독감은 매년 신종이다. 


대한민국은 총 10번의 사례가 있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 - 여수, 순천 일대


1948년 11월 17일 제주 4.3사건 - 제주도


1952년 5월 25일 부산정치파동 - 부산,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1960년 4월 10일 4.19 혁명 - 전국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 - 전국


1964년 6월 3일 6.3 항쟁 - 전국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 전국


1979년 10월 18일 부마 민주 항쟁 - 부산, 경남


1979년 10월 27일 10.26 사건 -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980년 5월 17일 5.17 내란 - 제주도를 포함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된 경우가 많아 지금도 계엄령이라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으로는 계엄 중 국회해산도 불가능하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도 유지되고 있으며,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가 가능하다. 이는 독재정권이나 군부의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발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으로, 87년 체제(제6공화국) 이래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더라도 국회에 보고가 되도록 되어있으며 국회가 해제를 결의하면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전방지역은 각 전방 군단이, 후방지역은 각 향토사단이 해당 위수지역의 계엄사령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56사단의 경우 서울 강북지구 계엄사령부가 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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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계엄 논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된 2016년 11월 18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1초라도 빨리 박근혜를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저 '그런 정보가 돌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이게 제1야당대표가 할 말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청와대는 즉시 반박했고, 박사모에서는 추미애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면서 계엄 선포하라고 난리를 쳤다.


다른 한편으로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중에 최악은 계엄령 선포라고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계엄령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고 했기 때문에,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이유로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썰전에서도 전원책 변호사가 11월 17일 방송에 박근혜의 예상시나리오에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5번째 시나리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유시민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거같다고 했는데, 이 시나리오가 계엄령을 의미한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계엄령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제3자의 추측에 불과하고 계엄령이 맞다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정도의 취지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을 뿐, 확실히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거란 정보가 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따라서 추미애 의원의 저 발언은 일종의 견제 목적의 발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추미애 대표는 근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단 당시 군 내의 정세를 보면, 어느 정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 대기는 다른 장관 및 수석 등 행정부 관료 및 청와대 직원들이 모두 대기하는 상황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군 외박 외출 통제는 출동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외박 또는 외출 인원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경찰의 진압 시도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계엄령을 준비하였다고 추측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확대 해석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12월 9일 발의된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되고 2017년 3월 10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어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결국 실제 계엄령은 일어나지 않고 끝났다.


군인권센터에서는 실제로 계엄령이 고려되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고려'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를 '계엄령 선포 준비'였다고 해야 할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러나 기무사에서는 당시 이미 광화문에 공수부대, 여의도에 기계화사단을 투입하는 등 계엄 대비 구체적인 작전까지 짜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촛불집회를 종북으로 규정하는 가관을 보여준다.(...) 해당 기사 만일 이것이 실행되었더라면 2016년 세계적인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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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amu.wiki/w/%EA%B3%84%EC%97%84%EB%A0%B9#s-1.1.1]

왼발의 달인,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전 축구감독. 별명은 왼발의 달인.
...한국 월드컵 사상 첫 선취골의 주인공. 그러나... 3분 뒤
...


아주대학교를 졸업했고 1990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대우에 지명되었다. 데뷔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활약. 비록 신인왕은 현대의 송주석에게 넘겨줬지만 1991 시즌에도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씹어먹는 활약으로 34경기에서 7골 5도움을 기록.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해에 처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하여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




1993~94 시즌 동안에는 국가대표팀 차출 관계로 클럽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 했지만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전국구급 유명세를 얻는다. 특히 1994 월드컵 1차예선 여덟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으며 대중들에게 하석주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석주 하면 왼쪽 윙백이 떠오르지만 월드컵 예선전만 해도 본업은 공격수였다. 데뷔한 대회인 대통령배국제대회에서 MVP와 득점왕도 차지할 정도였으며 이땐 등번호도 9번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황선홍이나 최용수처럼 키 크고 떡대 좋은 대형 스트라이커를 선호했기에, 하석주의 포지션은 자연스럽게 왼쪽 윙/윙백으로 전환되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최종예선에서도 이란, 북한을 상대로 각각 골을 넣었다.

그러나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는 두 경기 교체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볼리비아 전에 교체로 투입되어 후반 추가시간에 황선홍의 멋진 힐패스를 이어받아 1:1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으나 키퍼 선방으로 골을 넣지 못하였다. 비록 황선홍에 비난이 집중되어 묻힌 감이 있으나(...) 하석주도 만만찮게 개발이라는 욕을 먹었다. 그때 비난과 부담감을 못이겨 김호 감독에게 다음 경기인 독일전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고, 결국 독일전은 결장했다.




그러나 그때 찬스를 놓친 왼발슛이 한이 되어서 왼발킥을 매일 미친 듯이 연습했다고...그렇게 그는 왼발의 달인이 되었다. 이후 하석주의 기량은 만개하여 국가대표에서도 왼쪽 미드필더 자리를 꿰찼고, K리그에서는 1996 시즌 두자릿수 득점(...)까지 기록한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선수단에 감독인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강력한 요청으로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다. 당시 소속팀인 대우에서는 보내기 싫어서 기브스까지 하면서 선발을 물러주길 바랐으나 비쇼베츠가 지정병원에 보내서 재검사까지 시전하며(...) 끝끝내 올림픽에 데려갔다. 그정도로 큰 기대와 비중을 가지고 있었단 얘기. 





1997년을 맞아 기량이 절정기에 달해 97년에만 A매치 3골-8도움을 기록했고 대통령배의 후신인 코리아컵에 출전하여 도움 4개로 대회 MVP가 되었으며  소속팀 대우 로얄즈의 3관왕, 즉 트레블을 이끌었다. 개인적으로도 20-20 클럽을 달성했으며 프리킥으로만 4골을 넣었을 정도로 리그에서도 맹활약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UAE전에서 특유의 공격가담으로 선제골을 넣기도 한다. 이렇게 하석주는 차범근호 체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고 월드컵 본선에서도 활약이 기대되었는데...




멕시코전 초간단 요약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 첫번째 경기인 멕시코전 전반 27분, 하석주의 왼발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방향이 꺾이면서 절묘하게 반대편 골대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넣은 선제골이었다. 즉 한국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이기고' 있었다! 당시 조 편성상 한국은 첫 경기 멕시코를 반드시 이겨야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기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골이었다.



그러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전반전 30분, 그러니까 골을 넣고 3분여 지났을 무렵에 상대의 라몬 라미레스 선수에 백태클을 걸었다는 이유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결국 하석주의 퇴장 이후 한국은 급격한 체력저하로 후반전에만 3연속 실점하며 1-3 역전패했다. 「하나 넣고 석점이나 주다니!」 라는 삼행시를 만든 바로 그 경기. 

MBC보도 1분경 이 MBC뉴스 화면을 보면 확실히 고의적인, 그러나 당시까지는 많이들 하던 백태클이었다. 하석주 자신도 퇴장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레드카드를 보고 어이없어하고, 옆에 있던 고종수도 판정에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국내에선 한국이 약소국이라서 판정에서 피해를 봤다는 흔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FIFA 회장 선거에서 제프 블라터의 반대파로서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UEFA 회장을 지지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음모론도 나돌았고 여튼 이래저래 설들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차범근 당시 감독이 선제득점으로 고양된 선수들을 잘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석주도 나중에 인터뷰하기를 골을 넣고 너무 기쁘고 흥분되서 뭘 어째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지역에서 파울을 하고 맘을 좀 다스리려고 했다고 한다. 스스로 옐로카드까지는 각오했다고 했는데, 정작 심판이 빨간 카드를 꺼내자 처음엔 잘못 꺼낸 거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백태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고, 설명도 잠깐 들었을 뿐이라 그걸로 퇴장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고(...) 참고로 하석주 개인적으로도 축구를 시작한 이래 공식경기에서 퇴장 당한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자 유일한 경기였다. 





아무튼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하석주가 시범케이스로 재수없게 걸렸다는 것이다. 당시 FIFA에서는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비신사적인 백태클에 대한 제재에 중점을 두었고, 바로 퇴장까지 줄 수도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말은 뱉어놨지만 막상 1라운드가 절반이 지나도록 퇴장 사례가 하나도 없으니 엄포가 머쓱해질 수 있던 상황에서 하석주가 재수 없게도 그 엄격한 판정의 시범케이스에 걸려 퇴장당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 


그 증거(?)로 옐로카드 없이 바로 퇴장당한 경우에는 보통 2경기 출장정지인데 하석주는 고의성이 없었고 심판의 미숙함도 있다고 판단되어 1경기 출장 정지로 완화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하튼 하석주는 프랑스 월드컵 1호 퇴장 선수로 기록되었고, 한국 축구팬들은 이후 같은 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하석주보다 더 거친 백태클을 하고도 옐로카드나 구두경고 정도로 넘어가는 걸 보며 아쉬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석주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오스트리아의 귄터 벤쾨 주심은 2년 뒤 유로 2000의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4강전 연장전에서 고의라고 보기엔 애매한 포르투갈 수비수 아벨 사비에르의 핸들링을 보고 프랑스의 결승골이 된 페널티킥을 지시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칙대로 판정하는 심판이었다는 얘기.



최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나와서 밝힌 바로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백태클 사건 이후 미안한 마음에 차범근감독을 20년째 피해다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 후유증이 가시질 않아서 항상 죄인같은 기분으로 살고있다고 한다. 당시 백태클 퇴장 당한 이후 너무 충격이 커서 벨기에 전까지 훈련이 없으면 인근 낙시터에서 낚시를 하며 맘을 달랬다고 한다 한번은 큰 잉어가 잡혀서 기뻐해야 하는데 잉어의 맑은 눈을 보고 잉어를 안고 펑펑 울었다고...하석주의 고백은 이날 방송의 백미로 주위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어준 총수는 하석주같은 케이스가 있으니 함부로 국가대표에게 비난과 욕을 하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후에 제작진이 차범근 감독과 만남을 주선한다고..차 감독님...축구가..하고 싶어요.



그래도 1경기 출장정지로 완화된 덕분에 벨기에전에 다시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고 전매특허인 기가막힌 왼발 프리킥으로 유상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약간의 명예를 회복했다. 왼발로만 1골 1도움, 한국이 기록한 두 골에 모두 관여하며 사실상의 팀의 에이스 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그걸 모두 덮을만한 한 번의 실수로 비난을 받아야 했던 불운의 선수. 2번의 월드컵에서 이래저래 욕만 먹었다(...) 하석주는 퇴장 이후 팀이 지고 차범근까지 경질당하는 걸 보면서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국대은퇴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벨기에전에서 1어시도 하고 팀이 투혼을 보이면서 어느정도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고...





이후로 2000년 아시안컵까지 계속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 국대에서 맹활약했으며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무대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는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그 자리는 이영표가 물려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석주도 히딩크 사단에서 제법 오래, 많은 경기를 뛰었다. 물론 하석주가 경쟁을 이겨서 02월드컵에 나간다는 보장은 없었으나,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출장해 명예를 회복하길 바라는 팬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A매치 100경기 출장 기록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98월드컵 퇴장이 끝끝내 트라우마로 남아서 본인이 스스로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해 센츄리클럽 가입을 얼마 안 남겨두고 국대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퇴장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아직도 퇴장당하는 선수를 보면 자기일 같고 '나와 같은 상처를 입으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전직 법조인이자 정치인.


(박범계 의원이 공개한 화목한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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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대전광역시 서구 을 지역이다. 소속 국회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다. 참고로 이 상임위에는 그 유명한 어떤 막말러 친박 의원님도 소속되어 있어 맨날 티격태격 싸운다고(...) 민주당 계파 분류를 할 때에는 친문계 - 친노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1963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는데, 부친은 박범계가 고등학교 2학년때 행방불명이 된다. 남강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다가 군대를 전역한 후 검정고시로 고졸 획득하고 연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미 군대를 갔다온 후 대학에 입학한 것이라 85학번 동기들보다 4살 많은 고학생이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대학졸업 후 1990년 사법시험에 붙어 판사가 된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 잡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연수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으로 선정된 노무현을 인터뷰하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진보적인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고, 관료화되는 법원의 분위기에 질려 법원내부게시판에 과감한 글들을 게시하여 법원 내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하였다.


박범계를 정계로 직접적으로 인도한 사건은 2002년 10월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정치인)의 탈당 및 정몽준 진영 합류였다. 4월에 새천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은 6월 지방선거 참패 후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내의 중진의원들의 만든 후보 단일화 협의회 약칭 (후단협)의 후보 사퇴 권고로 코너에 몰려 있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은근히 지원하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는 김민석의 탈당을 보고 분노하여, 판사직을 사직하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오마이뉴스) 선대위 회의 때 인사하는 모습. 당시 법원장은 박범계가 당선가능성도 없는 후보를 돕기위해 사직한다며 기막혀했다고 한다.



이때가 2002년 10월 말 무렵인데,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였으나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애초에 판사였기 때문에 정 안 되면 변호사 생활이라도 하면 된다지만 


노무현이 당선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원 수뇌부는 당혹했다고 한다. 인수위원회에 줄을 댈 사람이라고는 판사 출신 박범계뿐이었고, 법무부 검사들까지 박범계를 찾을 정도였다고.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의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작고하면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하는 등의 시련이 있었고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후 대전에 둥지를 튼 노 前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결국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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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 - 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달렸으나 불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이 격전지가 되었다.


현재 수석대변인이다.


2016년 12월 15일 열린 청문회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려 박뿜계, 박두꺼비 라는 별명을 얻었다. 푸훕! 푸흐흐흐흐 장제원 국조특위원이 김경숙 前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경숙 증인이 교육부 감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동문서답을 하자, 장제원 위원은 박범계 위원장 대리에게 김경숙 증인의 답변태도에 대해 주의를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김경숙 증인, 잠깐만요, 장제원 위원, 불만이 무엇이죠?"라고 한 뒤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이후 "장제원 위원의 지적이 옳다"고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웃음만 놓고 보면 욕을 먹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발언시간이 1초 남은 상황에서 "시간을 멈추어 달라"고 한 장제원 의원과 김경숙 증인의 발뺌 상황, 또 비슷한 상황이 겹친 우연 등 총체적 난국 때문에 갑자기 빵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웃기다는 반응이다.  


장제원 의원이 한 번도 아니고 이런 모습을 2번째로 보였으니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해도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시당한 윤소하 의원도 그렇고, 웃긴 장면이 많은 청문회긴 했다 여담으로 썰전에 김경진 의원과 함께 출연했을 당시 김성태가 말하길, "판사 출신으로 한 성격 하는 법조계 출신 의원이라 웬만하면 웃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보고 정말 희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마리텔에서 합성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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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기로 급격히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가 된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


2016년 12월 22일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의 별명인 박뿜계를 직접 언급하였다.3분부터 또한 이후 민주당 팟캐스트 민주종편에서 1주일에 1번씩 본인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박뿜계 이미지로 가기로 한 건지, 초반에 1달간은 댓글창에 '뿜계형 뿜어주세요'가 많이 나오면 일부러 뿜기도 했으며, '뿜계형 손 흔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손을 흔들고 해서 진행이 늦어지기도 했다. 


의외로 신세대적 감각인지, 인기를 얻은 게 좋은 건지, 같이 진행하던 백혜련 의원이나 다른 기자와 달리 댓글창에 나오는 글들을 잘 읽고 소통을 추구하던 편이고, 이후 라디오나 다른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도 과거의 한 성격하는 이미지를 버리고, 웃고 친근한 모습으로 정치와 관계된 법정 사태에 대해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하곤 한다. 그래도 국회 내에서는 아직도 탱커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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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계, 친문계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 '실세 총리'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중 현역 최다선 의원


이해찬 당대표 출마이해찬 당대표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대한민국의 제13대~17대, 그리고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겼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낸 인물이다.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역대 국무총리 중 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며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무현계의 상징적인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투 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문계의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수장으로 존중해준다.


그리고 무려 7선 국회의원인데 이는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며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지만, 서청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선 의원이라고 봐야 한다. 즉, 이해찬은 공식적으로 서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다선 국회의원인 셈이다.


이해찬 의원이해찬 친노


이를 봤을 때 20대 국회의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나면 보통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거나 정부 관료를 역임하지 않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이지, 최고령 의원은 아닌데다 여전히 친노계와 친문계의 큰어른인 거물이기에 아직은 정계 은퇴를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 2018년 기준 65세로, 역대 대통령 중 그보다 많은 나이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만 넷이니 그리 많은 나이라 보기도 힘들다. 막말로 다음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나이로 공격 받을 소지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유력한 후보군 중 한 명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면(현 청양읍)에서 아버지 이인용과 어머니 박양순 슬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 참고로 이해찬의 조상은 덕흥대원군이다. 


이해찬 어린이이해찬 당대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절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해찬은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부친인 이인용 씨가 청양면 면장 출신이기 때문. 이인용 씨는 광복 후에 32살의 나이로 청양면장을 맡아 4.19 혁명 때까지 면장을 지냈을 정도로 마을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말기에 치러진 지방선거 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 면장에 당선 되었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의 신망이 투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덕수중학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입학한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를 다녔으나 적성에 맞지않아 자퇴하였고, 이듬해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 사건 후 무역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등 재야 인사로 지냈다. 1979년에는 돌배개출판사를 창업했다.


이해찬 과거이해찬 당대표


그러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는데,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 지 14년 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 말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학생 운동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해찬은, 여러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지역구로 공천을 받아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5회 연속으로 관악을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고 20대까지 합해서 현재 7선 의원을 기록 중이다.


이해찬 레전드이해찬 당대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 '찬들이형',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해골찬'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제20대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다. 현직은 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총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꾸 보여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여러 모로 고문 후유증이 아니냐는 염려가 있다.


운동권 출신이었던 데다 친노의 좌장인 만큼, 운동권, 친노계가 포진되어있는 정의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편이다. 6월 15일 tbs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개혁 우파, 진짜 진보는 정의당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그 호의를 보여주었다. 실현 가능한지는 묻지 말자 일단 지금은 민주당이 개혁 우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단체, 노동운동, 진보정당들과 함께 진보의 저변을 민주당쪽으로 확장시키는게 목표라고.


이해찬 문재인이해찬 당대표


선거의 귀재 해찬불패


지역구 7전 7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선거 득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주당 중진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역구 6전 6승에, 모두 50%를 넘긴 득표율로 승리한 걸 비교 대상으로 드는데, 정세균은 2012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는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던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으니 적당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서울 관악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에서 제일 강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호남만한 텃밭은 당연히 아님에도 연잇어 5선을 한 것은 대단한 결과이다. 


물론 항상 유리한 지역에 출마해온 것은 사실이다. 관악구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서울 내에서 가장 민주당 계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고, 세종시는 본인이 국무총리 시절 수도 이전을 전면에서 지휘한 곳인데다가 자기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다. 물론 이를 감안해봐도 7전 7승은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을만한 기록이기는 하다. 남경필이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이기는 했어도 수도권에서 6전 6승을 한 것이 대단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해찬 명언이해찬 당대표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의 경우, 두 차례의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06년 5.31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누가 봐도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해 보였던, 그것도 대통령으로서 이끌었던 20대 총선에서는 참패해 박근혜가 본인의 능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얻게 된 승리를 박근혜의 능력 덕택에 얻은 것처럼 포장이 된 건지 불투명하게되었다


반면, 이해찬은 소위 말하는 험지 출마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항상 유리한 지역을 출마해왔다는 점은 박근혜와 같을지 몰라도 13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의 김종인, 통일민주당의 거물 김수한을 꺾고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 정치권의 거물 심대평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큰 선거를 이끌어본 경험도 서울시장 두 명의 당선에 기여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37] 자신이 참여한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맛 보았으니 박근혜에게 크게 뒤쳐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8년 첫 출마부터 2012년 총선까지 소속 정당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이인제나 김한길처럼 탈당을 밥먹듯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몸 담고 있었던 민주당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문희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신민주연합당 시절과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인한 탈당 및 20대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 등 3번 탈당하긴 했다.


이해찬 문희상이해찬 당대표





강원랜드 채용과 관련해 부정 청탁한 혐의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기각한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덕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허 판사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4일 오전 10시30분부터 권 의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뒤 다음날 자정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허 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법리상 의문이 있다.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 등을 고려할 때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기각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권 의원은 2013년 11월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게 자신의 인턴 비서 등 10명 이상을 채용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전 사장은 청탁 대상자의 합격을 위해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됐다. 그러나 권 의원의 영장은 관련자들의 지위와 진술 내용, 증거 등에 비춰 볼 때 혐의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 같은 판결을 한 허 판사는 지난달 20일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 청구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부 네티즌은 ‘프로 기각러’라고 비난하며 과거 영장을 기각했던 사건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이명희씨의 영장을 기각했을 당시 허 판사는 “범죄 혐의의 내용과 현재까지 수사진행 경과에 비춰 구속수사 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5월30일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야권‧진보 인사 불법사찰 의혹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도 풀어줬다. 허 판사는 당시 기각사유에 대해 “관련 사건 재판의 진행 경과에 비춰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증거들이 수집돼 있어 증거 인멸 우려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허 판사는 또 4월18일 여검사 성추행 후 인사보복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에서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고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내용과 피의자의 주거 등에 비춰 구속 사유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한 허 판사는 “종전에 영장이 청구된 사실과 별개인 본 사건 범죄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의 내용을 볼 때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증거 인멸할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사유를 밝혔다.


한편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지난 2월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안미현 검사가 국회 법사위원장인 권 의원 조사를 검찰 윗선이 막으려 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 5월 권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6월 임시국회가 종료돼 ‘방탄국회’ 논란이 일었다.


이에 권 의원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고 영장심사를 받겠다”고 선언했고 7월 임시국회가 소집되지 않아 국회 동의 절차 없이 영장 심사를 받게 됐다. 영장 심사에 출석한 권 의원은 “수사단의 사실인정과 법리 구성에 무리한 구성이 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서울북부지검에 대기하던 권 의원은 영장이 기각되자 “특별수사단의 수사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사실확정과 법리적용에 있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꼭 입증해 나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집으로 향했다. 한편 수사단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2018/07/05 - [실시간 핫이슈/정치] - 권성동 영장 판사 기각 사유 + 정치 경력

2018/07/05 - [실시간 핫이슈/사회] - 권성동 염동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일지..

2018/07/02 - [실시간 핫이슈/정치] - 조양호 구속 영장 발부 !! 그가 저지른 각종 범법 행위들.. (탈세, 변칙증여, 브랜드 사용료...)

2018/07/05 - [실시간 핫이슈/사회] - 박삼구 : 세습 경영의 폐단을 보여주는 재벌가 최악의 경영자이자 악인(惡人)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농공단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트 레일, 리클라이너 등의 시트 부품과 시트를 생산하는 시트 제작회사. 현대자동차에 카시트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이다. 충청남도 아산시에도 공장이 있어 한국에는 2개의 공장이 있고 해외에는 15개의 공장을 가진 대규모 부품기업이다. 중국에는 9개의 공장(법인)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 공화국에 2개, 미국 알라바마에 1개, 체코, 브라질, 터키 등에도 공장을 가지고 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놀이의 실제 주체.


20여 년간 다스의 대주주였던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 초기 다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후지기공



공식적으로는 1987년에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주식회사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부인 김윤옥의 동생)과 일본의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인 후지기공, 이명박의 친형 이상은이 동업하여 당시 기준으로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읍 구어동에 공장을 차리면서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후지기공의 기술지원에 의존하던 회사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대주주 후지기공과의 기술원조 계약이 끝나가자,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상은이 후지기공 법인 소유의 다스 주식을 매입하다가 1990년대 말에 다 사면서 최대주주 김재정과 2대 주주 이상은의 투톱 주주가 지배하던 회사로 변했다. 2003년 DAS로 사명을 바꾸었다. DAS는 Daebu Automotive Seat의 약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승용차 용으로 대량의 비중을 갖고 납품하고 있으며 요새는 현대자동차에서 거래처 다변화 차원에서 다스의 비중을 줄이고 있으며, 다스 또한 현대차의 경쟁사인 르노삼성은 물론 폭스바겐, 포드 같은 외국 회사로 납품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취재한 과거 소문으로는 현대그룹의 회장 정주영의 지시로 현대자동차 부품사업부가 별도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에게 정주영이 부품 사업부 운영을 넘겨주려던 과정이 생기고 이 와중에 모종의 이유가 발생하여, 현대가에서 운영하는 계열사가 아니게 되면서 경영권이 이명박의 가족 측으로 넘어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해외 사업법인(공장) 중 다스의 주식이 하나도 없는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이 중국 베이징 시에 있는 북경 다스, 저장 성의 항구도시인 닝보 시에 있는 닝보 다스, 장쑤 성 옌청시에 있는 강소 다스, 산둥성의 웨이하이 시 원덩 구에 있는 문등 다스까지 총 4곳의 중국 법인의 대표가 되었다. 이 4곳은 모두 다스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완벽한 다스 소속 법인이다. 강소 다스와 문등 다스의 경우 다스의 회장 이상은과 그 아들 이동형이 대표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모두 이시형으로 대표가 바뀌었다. 


나머지 공장은 중국자본과 합작 법인인 '북경 BAI 다스' 것이라서 중국인이 대표지만, 역시 이곳에서도 이시형은 이사로 소속되어 있다. 사실상 중국 내 다스 대부분에 다스 주식도 없는 이시형이, 다스의 대주주이자 큰 삼촌인 이상은과 그의 아들 이동형의 위치를 점점 가져오며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


게다가 2017년 10월 14일 일요신문의 보도로 다스의 소규모 하청업체 중 하나인 에스비글로벌로지스(주)에서 다스로 1,48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다. 금감원 기업 공시 사이트인 DART에서 발견한 것인데, 무려 다스 미국법인에서 다스로 들어간 1,540억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러나 에스비글로벌로지스는 자산총액 120억도 안 되는 회사라, DART에 회계감사 공시도 하지 않는 회사다. 그리고 그 회사의 최대주주는 상술된 이상은의 아들(=이명박의 조카) 이동형이다. 



그러니까 이상은의 아들이 큰 지분을 가진 작은 하청회사가 자신에게 하청을 주는 원청업체이자 거대기업인 다스에 거액을 준 것. 받은 게 아니다 근데 사실 너무 거금이라 받아도 이상하다 이것이 보도가 되자 다스를 감사한 회계법인(신한회계법인)은 급하게 3일 뒤 이 1,485억을 7천 5백만 원으로 바꿔버린다. 실수치고는 너무 큰 실수. 저게 진짜 순수한 회계사 실수면, 고소해야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거 없다. 왜일까? 실제로는 누구의 잘못일까? 이를 통해 다스 내부의 부적절한 자금흐름의 가능성이나 이상은의 아들이 다스 내 실권에서 점점 밀려나는 듯한 흐름의 낌새를 챌 수 있다.


코레일의 사장 출신인 다스의 사장 강경호. 다스는 2013년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4억 불 수출탑을 받았다.


대표는 상술된 이상은 회장 및 강경호 사장 공동 대표이사 체제이다. 이상은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큰형이며, 강경호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메트로 사장으로 대통령 재직 시절에는 코레일 사장을 역임했으나, 코레일 재직시절 특정범죄처벌법상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어 5개월 만에 사장직을 상실하였다. 최종적으로 2년 집행유예가 나왔다.



서류상으로 이 전 대통령은 대부기공 설립부터 지금까지 다스와 무관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등기이사로 오른 적도 없고 주식을 한 주도 가진 적이 없다.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거의 모든 의혹과 연결되어 있다. BBK 투자 자금도,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도 다스와 연관되어 있다. 다스의 실소유주가 밝혀지면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다른 비리 의혹도 자연스레 풀리는 구조다.


17대 대선을 마지막으로 수면 아래로 사라졌지만,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떠올라버린 이명박의 아킬레스건.


여기서 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데 다스에서 BBK에 투자할 당시 다스는 '유동자산 480억, 유동부채 790억, 순 자산 127억'으로 190억을 투자할 여력이 전혀 없던 회사였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의 가족인 이상은과 김재정이 1995년에 도곡동 땅 1,900여 평을 팔았던 돈 중 157억을 출자금으로 투입했는데, 문제는 이 도곡동 땅은 1993년 이명박의 차명재산이라고 대대적인 폭로가 있었던 곳이었다는 것. 


즉, 이명박이 차명재산으로 갖고 있던 157억 원이 이명박 본인이 회장이던 BBK로 흘러들어갔고 이 돈은 다시 LKe 뱅크와 옵셔널 벤처스로 흘러들어가 주가조작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은 다스-BBK-LKe뱅크의 실소유주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은 덤.



2010년 초까지 최대주주였던 김재정(이명박의 처남이자, 김윤옥의 남동생)의 사망 후 상속세 문제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사망한 김재정의 부인 권영미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일단 청계재단에 일부 주식을 기부한 후, 일반적으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인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물납)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정부(기획재정부)와 청계재단에게 상당량의 주식이 넘어갔다. 청계재단은 참고로 이명박이 출자하여 만든 재단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기획재정부는 김재정의 상속세 416억 원 대신 받은 다스의 주식 19.7%를 공매로 팔아서 ] 현금을 받아 국고에 넣을 예정이었으나, 한국자산공사 캠코(kamco)와 기획재정부가 2011년 말에 처음 공매에 내놓을 때, 비상장주식인 다스의 58,800주를 주당 143만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총 843억 2,572만 7,000원에 내놓아서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도대체 캠코와 기획재정부가 가격 책정을 왜 그렇게 말도 안 되게 하도록 정한 건지  알려지지 않으며 , 당시 언론이 취재한 바로 경제전문가에게 다스의 정보를 토대로 책정해 달라고 한 가격에 비해 약 2.5배 나 비싼 가격이 나왔다. 


거기다가 처음 나온 게 유찰이 되면서 가격이 점점 떨어져 갔음에도 낙찰이 안 된 이유가 있는데, 유찰이 6번 되면 ] 50%로 공매를 진행하지 않고, 다시 가격을 재평가해서 원래 가격보다 약간 비싼 가격이나 약간 싼 가격, 즉 실질적으로 원래 가격에 가깝게 돌려 버렸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다스 공매는 팔리지 않게 가격이 계속 원상복귀가 되어버렸다는 뜻.


상세 사항을 보면 2011년 11월 처음 143만 원대로 나온 뒤, 5회 유찰이 반복되자 84만 원대가 되었는데 6번째 유찰이 되자, 2013년 1월에 재평가해서 133만 원대로 만들고 그래도 이때는 143만 원보다 좀 줄였었다, 6번째 공매에서 78만 원대로 나온 주식이 안 팔려 또 6번 유찰되자, 2014년 1월 20일에 재평가로 되돌릴 때는 무려 152만 원대로 나와서 말도 안 되게 뛰어버리니 아무도 살 수 없었다. 


이런 게 계속 반복되고 2015년 10월 재평가 때는 무려 주당 200만 원(정확히는 200만 21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나와서 주식의 왕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다스다 최소가격도 120만 원이라 역시 유찰이 반복되었다. 간단히 말해, 캠코는 공매를 143만 원에서 시작해서 80만 원대가 되면 130만 원대로 올리고, 다시 80만 원대로 떨어지면 152만 원대로 올리고, 나중에는 아예 주당 200만 원대로 올리며, 시간이 갈수록 더 팔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안 팔리는 바람에 김재정의 상속세로 국고에 들어가야 할 돈을 7년 넘게 국고에 못 넣고 있으니 복잡한 이야기를 한마디로 하면, 정부는 부적절한 공매운영으로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의 상속세를 아직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더 이상한 포인트는 김재정이 사망하고 2년 뒤, 2012년 김재정의 부인 권영미가 다스 주식을 유상감자할 때는 주당 68만 1천 원으로 했다는 점이다. 다스측에서도 68만 원으로 정해서 하는 걸, 기획재정부와 캠코는 계속 그 이상으로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망 당시 김재정 명의의 부동산들이 무려 67만 평이나 있었으나, 거의 다 근저당이나 채무문제, 혹은 공동명의 가 걸려 있어서 부동산으로 상속세 물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땅마다 채무문제를 걸어놨지?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7년 9월 11일 방송분을 보면 주진우와 안원구(전 대구국세청장)가 이 상속건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팟빵 영상은 이쪽에서



BBK사건과 관련사건을 수년간 조사했던 주진우와 김어준은 꾸준히 도대체 다스의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의 외동아들인 이시형이 다스 입사 7년 만에 전무이사로 승진했고, 여기에 다스의 해외 법인 여러 곳의 대표로 선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질적인 소유주가 맞는다는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JTBC에선 다스는 MB 거라고 증언하는 다스의 전직 경리팀장과의 인터뷰를 단독 보도했다. 여기에 다스 비자금 120억여 원을 정호영 특검이 파악하고도 다스에 다시 입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폭로까지 나와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국내 다스의 고의부도를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가 언론에 포착되었다. 


관련 혐의와 관련자들을 조사하던중 검찰은 또 다른 폭탄을 찾아낸다.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그리고 2018년 2월 21일, 검찰은 다스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결론을 사실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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