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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문래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지만 고등학교 때 유럽으로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느라고 프로 팀과 대학 어느 곳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나이키에서 실시한 2011 더 찬스 오디션 의 최종 11인에 들어서 나이키 아카데미에 입단한 후 2012년 1월, 당시 스웨덴 3부 리그 소속이었던 외스테르순드 FK에 입단했다. 이때 국내에 소개가 되기도 했으나 사람들은 "스웨덴 3부면 K리그보다 못하지 않냐" 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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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스테르순드 FK


2012 시즌 부터 팀에 합류해 그 시즌 16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고, 팀은 2부 리그인 수페레탄으로 승격을 확정짓는다.


2013 시즌에는 25경기에 출전해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1부 리그 승격을 하지 못하고 중위권을 유지했다.


2014 시즌에는 시즌 초반 1군 명단에서 빠져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U-21 팀에서 뛰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인터넷에서는 "유럽 하부 리그라도 가야 한다는 의견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말해 준다며 문선민을 비판했으나, 이 시즌에 25경기 5골 6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리고 2015 시즌이 시작되기 전, 나이키 아카데미 후배인 윤수용과 함께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공개 테스트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선택을 받지 못하고  에스터슌스에 합류하였고, 2015 시즌 전반기에 16경기 1골 4도움을 기록하던 중 윤수용이 뛰는 스웨덴 1부 리그의 유르고덴스 IF 풋볼로 남은 시즌 동안 임대된다. 스웨덴 현지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지냈는지 당시 현지로 취재를 갔던 한국 기자의 회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르고덴스 IF 풋볼 시절.


임대 종료 후 완전 이적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상태로 임대되었고, 등번호는 7번을 부여받았다. 


임대 후 첫 경기인 7월 20일 경기는 참가하지 못했으나, 이후 4경기를 소화하며 빠르게 팀에 적응하였고, 2015년 8월 29일 하름스타스와 경기에서 전반 추가 시간에 귀중한 동점골을 넣어 시즌 1호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경기를 끝으로 11월 중순까지 한 경기도 뛰지 못하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면서 복귀 루머가 나오고 있었는데... 6개월 단기 임대가 끝난 후 유르고덴스와 무려 3년간의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식 계약 체결 후에는 부상에 시달렸고, 거기에 향수병까지 겹치면서 계약을 해지하고 퇴단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잠시 귀국한 후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고 하며, 귀국 사유가 향수병인 만큼 다음 시즌부터는 K리그에서 보낼 확률이 높아 보인다. 12월 5일자 히든풋볼에 따르면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이 유력하다고 한다.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처음으로 월드컵에 참여하게 된 선수


그리고 12월 8일, 인천의 문선민 영입 오피셜이 떴다. 2017 시즌 인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건. 스웨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로 복귀한 건 상술한 향수병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입단 인터뷰에서 첫 K리그 도전을 좋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현재 문선민의 장단점은 뚜렷한데 우선 장점은 리그 최상위권의 순간 스피드, 공간 침투 능력, 압박 능력과 상대 한두명 정도는 쉽게 돌파할 수 있는 개인기와 패싱 센스이고 


단점은 그다지 좋지 않은 판단 능력과 심각한 수준의 골결정력이다. 



경기를 보다보면 문선민이 수비 한두명을 끌고 들어가거나 돌파해서 골을 넣거나 볼을 잡아 끌면서 수비수를 끌고 들어가고 스트라이커에게 센스있게 패스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스피드가 굉장히 빠른데 사실 문선민의 100m 스피드는 12초 중후반대로 빠르지 않지만 순간 가속력이 발군이라고 한다. 


리그의 대표적인 준족 박용지가 100m 스피드는 11초 초반대로 문선민보다 훨씬 빠르지만 10m 스피드는 문선민이 더 빠르다고. 그 특유의 스피드로 길게 차준 공을 뒷공간을 파고들어 위협적인 장면을 종종 만들어내고 압박도 잘 해줘서 압박으로 공을 뺏어내 순식간에 1대1 찬스를 만들어 내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활발한 움직임으로 주워먹기를 하는 경우도 많고 센스도 상당해서 수비수 둘을 제치고 칩샷을 시도해 골을 넣는다거나 아웃프런트 패스로 수비수 3명을 바보로 만드는 장면도 제법 볼 수 있다.


하지만 결정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돌파가 성공하거나 킬패스를 받거나 압박이 성공해서 1대1 찬스를 만들어내도 칩샷이나 소녀슛을 날려서 막히는 경우가 많고, 중거리 슛 능력도 꽤 괜찮지만 판단력이 안 좋아서 옆에 더 좋은 찬스가 있음에도 중거리슛을 난사하는 경기도 볼 수 있다. 


즉, 기회창출은 끝내주게 잘하는데 그걸 결정하는 능력이 부족한것. 8R 수원과의 경기에서 해설위원들이 '문선민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7골은 넣었다.' 라고 말할 정도. 7골은 이 날 기준으로 득점 선두이다! 한편 테크닉은 분명 준수하지만, 압박감을 크게 받는 경기에서는 그 장점이 많이 반감되는 아쉬움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볼 키핑같은 경우에는 등지는 플레이가 다소 부족한지 은근히 소유권 상실이 잦은 편. 그 외에 본인 옆에 풀백이 와도 잘 활용하지를 못하는데 이는 판단력의 문제로 보인다.


그래도 상기했던 수비 가담 문제는 수비가 중요한 인천에서 뛰면서 활동량이 늘어남에 따라 많이 해결되었고, 오히려 장점으로 언급될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보이고 있다. 점점 상대 수비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슬라이딩 태클을 시전하여 공 소유권을 뺏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고, 국가대표 경기에서까지 그런 모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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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amu.wiki/w/%EB%AC%B8%EC%84%A0%EB%AF%BC]



FC 서울의 서포터에서 선수로까지, 서울의 성공한 덕후 FC 서울 소속 축구선수 주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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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국가대표를 거친 엘리트 출신으로 2012년 훈훈한 외모로 아이돌 파크라는 별명이 있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 임상협, 한지호와 함께 부산의 미남라인으로 유명했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별명은 세종대왕, 킹세종.


FC 서울의 안양 LG 시절부터 팬이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3학년 때(대략 1999년) 안양 LG 유스팀에 입단하여 축구를 배웠고 중, 고등학교 때 FC 서울 서포터석에 와서 경기를 관람하며 FC 서울에 입단하는 것을 꿈꿨었다고 밝혔다. N석에 앉아 응원가 다 부르고 나오곤 했다고. 


제일 좋아했던 선수는 의외로 서울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김동석. 선수가 된 후 만나서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부산은 부진했지만 주세종의 활약은 인정받아 2015년 6월 8일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2015년 6월 11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15년 동아시안컵에도 차출되어 일본전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서울로 이적한 뒤인 2016년 3월 부상으로 빠진 지동원을 대신해 슈틸리케호에 합류, 3월 27일 태국 원정경기에서 후반 20분 기성용과 교체되어 투입되었다. 2016년 6월 평가전을 앞두고도 고명진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를 대신해 슈틸리케호에 합류했다.


2016년 6월 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만회골을 기록하면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로 대한민국이 알바로 모라타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하며 6골을 실점하긴 했으나 주세종이 기록한 만회골 덕분에 영패는 겨우 면할 수 있었다.




2018년 5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컷팅, 전진패스 등 여러부분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 경기로 인해 러시아 월드컵 23인 명단에 이름을 올려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할수 있게 됐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미드필드 진영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부산에서도 서울에서도 체력과 활동량은 최상위권. 거기에 정교한 킥력까지 갖췄기 때문에 세트피스와 데드볼 상황에서 위협적이다. 


단 슈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데 파워는 강력한 편이지만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져 거의 대부분 홈런이 되기 때문. 또한 플레이 메이킹과 수비가담 양쪽에서 애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엔 공수공간 조절이나 마킹 능력이 떨어지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엔 템포조절이나 패스선택에서 아쉽다.  16시즌 초 신진호와 오스마르가 앞뒤로 받쳐줄 때는 티가 안났지만 신진호가 입대하고 오스마르가 포백의 센터백이 된 후부터 이점이 드러나 지적을 많이 받았다. 전임자가 하대성과 신진호인 만큼 보다 스텝업할 필요가 있다.




2016 FC 서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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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첫 경기인 2월 23일 ACL 조별리그 1라운드 부리람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선발 출장해 수비 뒷공간을 노린 환상적인 패스로 아드리아노의 골을 도왔다.


3월 1일 ACL 조별리그 2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 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이며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탰다.


3월 16일 ACL 조별리그 3라운드 산둥 루넝 원정에서 선발 출장했고 시종일관 좋은 패스를 뿌리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4:1이 되고 후반 말미 두번의 찬스상황에서 아드리아노에게 내주지 않고 연속으로 슈팅을 가져가면서 아드리아노가 삐친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월 2일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였고 후반 45+1분에 아드리아노의 득점을 돕는 크로스를 성공시켰다.


5월 14일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성남 FC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였고 전반 3분멋진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26분 아드리아노의 완벽한 패스를 받아 넣으며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팀은 주세종의 멀티골에 힘입어 3:2 승리를 거두었고 주세종은 경기 MOM에 선정되며 최용수 감독의 리그 100승 달성에 크게 일조하였다. 주세종은 이전 경기들에서도 경기당 중거리 슈팅 1개 정도는 때려왔으나 힘이 너무 들어가서 허무하게 날려버렸었는데 이 날 경기에서 드디어 멋지게 성공시켰다. 경기 전 슈팅에 힘을 빼라는 최용수 감독의 조언이 들어맞은 셈.



성남전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MVP에 선정되었다.


5월 25일 ACL 16강 2차전 우라와 레즈전에 선발 출장하여 116분 동안 활약했다. 팀의 승부차기 승리가 확정되자 가슴팍에 있는 팀의 엠블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라와 서포터들을 도발했다.


그러나 이후 경기력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팬들에게 비판을 받게된다. 플레이에 겉멋이 들었고 패스미스를 남발하는데다가 탈압박까지 안된다 라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경기력을 보여준다.

9월28일 ACL 4강 2차전 전북 현대전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전에는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호러쇼를 펼쳤으나

후반전 포지션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하고서 바로 추격골까지 터트리는 등 대활약을 펼쳤다. FC 서울팬들은 이것을 보고 주세종은 역시 공미가 어울리는거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 날 부터 서울의 에이스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10월 2일,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혼자 하프라인에서 드리블을 친 뒤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이후 후반 추가시간, 좋은 크로스를 넣어주고 윤주태가 뒤로 빼주며, 윤일록이 결정 지으며 극장승리.


그리고 다음 경기 10월 15일,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습 상황에서 박스 안 쪽에서 아드리아노의 패스를 받아 매우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며 왼발 슈팅으로 선취 골. 그리고 이후 정승현의 팔목에 맞아서 피가 흘렀고, 이걸로 인해 20바늘을 넘게 이마를 꿰맸다. 


10월 19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 출전하여 미드필더진에서 엄청난 투지와 헌신, 좋은 실력을 보여주며 탈락은 면하지 못했으나 올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두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붕대 투혼 또한 서울 팬들의 눈물을 흘리게했다.


시즌 종료 후 아산 무궁화에 입대할 예정이다.


[출처 : https://namu.wiki/w/%EC%A3%BC%EC%84%B8%EC%A2%85]



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1920년대 태어나 1960년대(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정치를 한 시대다. 


사실상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 1960년대부터의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삼김을 빼 놓고서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김종필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3김이 완전히 정계를 떠난 2004년 뒤에도 정치가들은 삼김과 반드시 엮인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양김 산하의 정치인들이다


현재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고, 민주화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두 계파 모두 보수/진보진영 양측으로 알아서 갈라지거나 제 갈길을 찾아갔다. 현재의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은 김영삼의 영향이, 더불어민주당 / 민주평화당은 김대중의 영향이 크게 미쳤던 당들이다. 현재는 이 두 당은 YS가밀어준 이명박 대통령과, DJ가 밀어준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그 색이 많이 옅어져 YS와 DJ 시절 성향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명박(과 이회창)과 노무현은 자신을 키워준 김영삼, 김대중의 계파들을 쳐내고 권력을 장악하며 양김과 갈등을 쌓았다. 


김종필의 경우는 민주화 운동가였던 DJ와 YS에 비해 유명세가 딸렸고, DJ가 가진전라도, YS가 가진 경상남도 기반에 비해 JP의 충청도 기반 위력은 작은 편이었다. 결국 JP는 충청도 지역을 김대중에게 넘겨, 충청도 지역은 당시 민주당의 지역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을 겪으며 충청도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다소 잃었고, 한때 충청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부와 강원일대에서도 선전했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그 세가 크게 약화된 후신인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은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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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의 16대 대선, 17대 대선 역시 YS와 DJ의 부하들끼리의 양자구도 싸움 양상을 이뤘기에 18대 대선이 되어서야 양김의 영향력이 약해지게 된다.


삼김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정권을 휘어잡은 건 90년대부터인,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취임한 후부터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경력으로 주목받는 부분은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 맞서던 시기다. 당시 민중운동도 꽤 활발했지만 사실상 정치계에서의 민주화 투쟁이 절대적이었으며, 양김은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야당(민주당, 신민당 등)은 지리멸렬한 상황이었기에 야당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다며 온몸을 다 바치던 YS나 DJ가 유명할 수밖에 없긴 했다. 이 김씨들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게 항상 눈엣가시였다.


2000년대 들어서야 이회창과 노무현이 삼김에서 벗어나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에게 반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각각 신한국당,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을 자기 마음대로 꾸리고 공천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체제였기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 때문에 구시대적 관습을 없애자는 이회창/노무현 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일명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로 불렸으며, 김종필은 박정희 밑에서 사실상 넘버투로 일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신민당을 이끌며 테러/납치/감금/투옥을 비롯한 고초까지 겪으며 박정희에게 항거했다. 정부에게 항거한 양김, 박정희 밑에 있던 김종필은 대한민국 내에서 입지가 무척 탄탄했다. 물론 전두환 정부는 정적인 셋을 또 탄압했다. 알다시피 DJ와 YS는 목숨을 걸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에게 항거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건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이 있지만, 그 외에도 흉기 든 깡패, 폭발물 등등...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계에 등장한 세 사람은 1970년대 제7대 대통령 선거와 유신 정권에서 전면에 나섰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대에는 신군부에 고초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계속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결국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신한민주당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으로 부활한 세 사람은 각각 PK, 호남, 충청(충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연횡했으며, 제14대 대통령 선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대통령은 각각 1998년, 2003년 퇴임하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선 의원에 실패한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하는 것을 끝으로 3김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로 김대중 前 대통령은 2009년 8월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2015년 11월엔 김영삼 前 대통령도 사망하였다. 김종필 前 총리 역시 2018년 6월[11] 결국 사망함으로써 3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셋 다 성향과는 별개로 젊을 때의 인물이 워낙 좋아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JP, DJ, YS 이 사진들의 시기는 무려 김대중은 60년대, 김영삼/김종필은 50년대로, 사실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령의 할아버지들인 셈이다. 이 세 사람은 제1공화국때부터도 주요 요직이나 정치인 자리에 있었으니 정치에 관해선 수십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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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도 대한민국 정치권의 거물 대다수는 삼김 덕택에 정치를 시작하거나, 삶이 바뀌었다. 여야중진 대다수는 삼김에게 직접 영향을 받으면서 정치를 했다. 말하자면 삼김은 친 이승만, 즉 자유당 계열 정당 정치인들과 조병옥 등의 과거 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받았으며 박정희 때의 민주공화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정의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있었고 신민당-신한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는 보수정당의 민정계, 공화계, 민주계, 그리고 민주당계 정당의 동교동계가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민자당 정치인들과 신한국당 개혁성향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받았고 한나라당 대다수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친노 정치인들과 386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은 물론, 친박계, 친이계 등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삼김은 군부세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군부 쿠데타 핵심세력들과 신군부, 하나회는 물론, 군 장성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또 육,해,공군과 해병대, 야전군, 특전사 등의 군부 인사나 군 간부들도 삼김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았고 마찬가지로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인사나 원로 법조인 및 원로 변호사, 판사나 검사 등에도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친 곳이 없다. 또한 대형 로펌 대표를 비롯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에게도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그리고 또 언론계에도 마찬가지로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데가 없는데, 조중동, 한경오 등을 막론하고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그리고 지상파 및 종편의 방송에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특무대-방첩대-육군보안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로 이어지는 군 정보기관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에도 삼김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을 정도다. 


또한 대한민국의 거대 재벌 총수들과 재벌 오너 및 대기업 CEO, 재벌 기업인들과 대기업 임원들과 중소기업 CEO, 중소기업 임원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많이 미칠 정도다.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과 아예 무관한 정치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려면 적어도 20년은 더 필요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김종필의 계파는 청구동계라고 칭하는데, 3김 중에 제일 미약하고 인지도가 낮다. 2018년 6월 23일 김종필이 향년 92세로 사망하면서 삼김시대는 결국 반세기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6경기의 킥오프 시간을 변경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한국-멕시코전도 킥오프 시간이 변경됐다. 


당초 한국 멕시코전은 2018년 6월 24일 오전 3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번 킥오프 시간 변동으로 6월 23일 자정으로 3시간이 앞당겨졌다. 


토요일 밤 12시의 황금 시간대로 국내 축구 팬들에게 희소식이다. 장소는 여전히 러시아 로스토프로 동일하다.


2018/06/19 - [스포츠/2018 러시아 월드컵] - [러시아 월드컵]멕시코전 - 한국과의 역대전, 징크스는?

2018/06/18 - [스포츠/2018 러시아 월드컵] - 멕시코전 준비!! 한국과 역대 전적 그리고, 징크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 예로, 김종필이 미국에 가있는 동안 박정희의 조카딸이기도 한 김종필 부인이 첫아이를 낳고 쌀이 없어서 굶고 있었는데, 육영수가 자기 식구들에게만 밥을 먹이고 산모에게는 밥을 먹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는 것. 


기사 내용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봤을 때 당시 김종필 부인이 육영수와 한 집에 살거나 바로 옆집과 같이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종필이 귀국했을 때 부인이 김종필을 붙잡고 서러움에 울면서 그 이야기를 했고, 분노한 김종필이 육영수에게 남도 아니고 조카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다는 것. 


심지어 김종필의 부인이 계속 굶는 것을 보다 못한 박종규(당시는 군인으로 김종필의 부하였는데 훗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된다.)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상경하는 김에 쌀을 잔뜩 사서 김종필의 집에 가져왔다고 한다.


"육 여사가 애를 낳은 산모더러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저쪽에선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벽에 걸린 부인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날 붙들고 울고불고하더라"


그런데 정작 이 시사저널의 기사가 여러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된 후, 김종필은 같은 고향 사람인 시사저널측 경영자가 찾아와서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 주고 받았을 뿐인데, 몰래 녹음까지 해서 왜곡·과장해 비열한 기사를 만들어 기사로 냈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영철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왜곡이나 과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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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향 사람에게 뒤통수 맞은 것이지만, 일단 법적으로 녹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불법행위지만 대화 당사자 중 하나가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화내용을 허위 또는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고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고 넉달이 지나 헌재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부 언론이 추측했던대로 김종필 쪽에서 의도적으로 육영수 이야기를 시사저널측에 흘린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뿐 아니라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렇게 실수했다 또는 속았다는 핑계를 대며 언론에 기사거리 던져주는 행동을 한다.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고의로 그런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종필은 수십년 동안의 정치 경험을 통해서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이런 베테랑이 잘 알려지지 않고 그 파장도 클게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박근혜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론사인 시사저널 측 인사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순진하게 말해 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담 삼아 했다'고 말한 것 자체도 매우 의심스럽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필 본인의 조강지처인 박영옥을 소재로 농담을 했다는 의미인데, 김종필은 정치적 행보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가족관계, 특히 부부간의 금슬은 대단히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평생 금슬 좋게 지냈고 이미 고인이 되기까지한 아내를 두고, 밝고 유쾌한 내용도 아닌 매우 비극적인 내용으로 농담을 나눴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건 김종필이 거짓말(그러니까 '농담이었다'는게 거짓)을 말하거나, 아니면 김종필 본인이 지독한 위선자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앞뒤 사정을 고려하면 전자가 훨씬 가능성이 크다. 물론 김종필이 처음부터 육영수를 비난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관련 증언와 같은 증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김종필과 박근혜가 비록 사촌 형부-처제 관계이기는 하지만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가령 박근혜가 대선 직전 김종필을 만났을 때 호칭이 총재님이었다고 한다. 박근혜가 어렸을때부터 서로 자주 봐온 사촌형부-처제 사이인데도 굳이 '총재님'으로 말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하다. 또한 육영수의 좋은 이미지를 깨는 이런 이야기가 하필이면 박근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시점에 나왔다는 점 등도 의미심장하다. 처음부터 김종필이 이야기를 창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 의도가 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김종필이 이 시점에서 굳이 언급한 것이라면 역시 그 의도를 추측할 만 하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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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친인척과 가족들은 의외로 서로 사이가 나쁘다. 


육영수 이전 김호남 사이에서 얻은 첫딸인 박재옥과 육영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박근혜와 박근령, 아들 박지만, 처제 육예수, 처형 육인순, 처남 육인수, 조카사위 김종필, 조카딸 박영옥, 박계옥 자매, 사위 신동욱, 며느리 서향희, 이종사촌조카 홍세표, 홍소자 남매 등 가족 친인척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견원지간이거나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 닭 보듯이 여기는 사이다. 


오죽하면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가 박근혜를 망치고 있다며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박지만과 박근령이 노태우에게 보냈을 정도였고 김종필 본인조차도 말년에 박정희-육영수 소생의 딸들인 박근혜와 박근령에 대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 좋은 점들만을 배웠다고 일갈했을 정도였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신드롬이 불었지만 정작 박정희의 친인척들은 같이 기념행사를 주최하거나 일치단결해서 선거에 임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박정희 추모식 때마다 누가 행사를 주도하느냐에 따라서 누군 오고 누군 안 오고, 설사 오더라도 서로를 마치 적대하듯이 대하는 등 볼썽 사나운 광경이 매번 연출되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것이다.



김종필은 충남 온양(지금의 아산시)의 육군 제13연대에 사병으로 배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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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방정국의 혼란 때문에 당시 군대는 악폐습, 똥군기라는 설명으론 가히 표현이 부족할 만큼 개판이었고 결국 가혹행위를 못이겨 불침번을 서던 와중에 탈영해버렸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 동기생의 자취방에 얹혀 살게 됐다. 한심한 처지의 울분을 억누르며 지내던 중, 해방이후 국도극장(國都劇場) 으로 이름을 바꾼 옛 황금좌 극장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와 마주쳤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극장 매점에 있던 교도대 중대장을 찾아가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재입대를 부탁했다(????????). 워낙에 탈영이 흔하던, 전쟁 이전 시절이라 중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국 육사 교도대에서 다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김종필을 눈여겨 보던 중대장이 그에게 육사 입학을 권유했고 그렇게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리고 8기생 졸업식에서 우등상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때 1,300여명의 8기 졸업생들 중, 단 32명만이 육군본부로 배속됐는데 김종필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김종필은 정보장교로 배정 되어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북한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여기서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던 장도영, 전투정보과장 이후락, 정보국 선임하사 박종규, 전투정보과 상황실장 박정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박정희는 육사 2기로 임관하여 현역 소령으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재직 중 남로당 입당 전력이 들통나서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으로 파면당한 후 장도영의 전임 정보국장 백선엽의 도움을 받아 문관 신분으로 직제에도 없던 정보국 상황실장 직을 맡고 있었다. 정보국으로 배치된 육사 8기생들에게 전투정보과장 이후락이 상황실장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했는데 박정희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나한테는 인사할 필요 없다"라며 자리를 피해 버렸지만, 이후 박정희와 육사 8기생들은 서로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고 결국 이들은 쿠데타의 주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정희의 중매(?)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 박영옥과 결혼한다.



김종필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던 박영옥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친척이자 작은 아버지인 박정희를 자주 찾아오며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김종필도 안면을 익히게 됐고, 어느날 불쑥 "자네, 내 조카딸 어떤가?"하고 박정희가 말을 던졌다. 당시로서도 나름 미인이던 박영옥을 김종필이 싫다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김종필은 박정희와 처삼촌-조카사위라는 인척 관계로 묶이게 되었고 이후 박정희는 김종필을 조카사위 입장에서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거의 항상 임자라고 불러댔다


[데일리한국] JP(김종필 전 총리)와 박영옥 여사의 '잉꼬부부' 이야기



한국전쟁 무렵, 당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유양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정보국장 장도영에게 찍히는 바람에 6사단 정보참모로 떨려났고 전투정보과 북한반장 백모 대위는 북한과의 무역거래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나면서 처벌받기 직전 권총으로 자살하는 등, 전쟁을 앞두고 김종필이 소속된 전투정보과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반의 선임 장교가 된 김종필은 이미 전선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북으로 정찰요원을 급파했지만 전원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개전 당일(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의 당직장교로 근무하던 김종필은 북한군이 38선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전면전임을 직감하고 육본의 각 국장 들을 호출했다. 아울러 채병덕 총참모장 및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전파하는 등 당직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당시 상황은 일개 중위였던 김종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후 1951년, 대위로 진급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장교단에 뽑혀, 조지아 포트 베닝(미 육군 보병학교)에서 연수를 수료했다. 김종필은 한국전쟁 후반부인 1952년 8월부터 53년 5월까지, 6사단 19연대의 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계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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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거물인 3김 중 하나.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인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직 군인. 약칭은 JP.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이며 안경공 김영정의 증손인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희철(金希哲)의 방계 후손이다. 1926년 1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정(雲庭)이다. 40년 이상 정치가로 활동하며 여러 정부에서 국무총리만 6년 반을 지냈다. 굳이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정치가.


한고제에게는 소하, 장량이, 유비한테는 제갈량이, 조조에게는 순욱이, 태종에게는 하륜이, 세조에게는 한명회가 있다면 박정희에게는 김종필이 있었다. 이른바 삼김시대의 삼김 중 한 명으로, 김대중이 2009년, 김영삼이 2015년에 숨을 거두면서 유일한 생존자였으나, 2018년 6월 23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만 92세)


둘째 형 김종익도 3선 국회의원을 역임, 셋째 형 김종락은 한일은행 지점장, 전무를 거쳐 무려 14년에 걸쳐 대한야구협회장을 지냈다. 


이른바 3김(金)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는데 2009년 김대중, 2015년 김영삼에 이어서 2018년 가장 고령이었던 김종필마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서 이들의 정치 데뷔 반세기만에 3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김 시대라 불렸던 이들도 결국은 사람이라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도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을 버리고 안락한 2인자를 선택해 9선의원과 2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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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재임하는 모습에 대해 아예 대위를 사단장에 임명시킨 꼴이라며 혹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말에 젊은 혈기가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2004년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행정수도 이전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외에는 인간미가 있고, 순진한 모습이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이나 이인제 등을 저격하며 중립을 지켜서 '음지에서 노무현을 지원사격했다' 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평소 받았던 평가 그대로, 노무현의 다혈질을 두고 우려를 많이 표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 자질을 키우지 못하고 적만 만들다 일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비평했다. 김대중은 그 선을 잘 지키는 정치 프로였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 4월 이재오가 김종필을 예방했을 때와 5월 홍준표가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문안인사를 왔을 때 문재인에 대해서 인신공격적인 언행을 남겼는데 베라먹을 자식(빌어먹을 자식), 그깟놈은 대통령 될 자격도 없어라고 말하여 문재인에 대한 증오와 배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물론 이재오와 홍준표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던 것이었지만 이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문재인의 정치적 성향을 증오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어보이나 본인이 군부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편이기 때문에 문재인 같은 성향의 인사를 싫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종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노무현 등의 정치인에게도 좋게 평가한 전례가 있어서 저렇게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오와 홍준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각각 자네같은 각오로 정치를 해야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통 책임감이 없어.(이재오에게 한 말) 자네는 정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관상이야, 자네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지, 나는 (홍준표 자네를)지지하겠다(홍준표에게 한 말)고 공개적으로 홍준표 지지를 표하였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인지 투표는 하지 않았다(!?) 또한 19대 대선에 출마한 늘푸른한국당의 대선후보이자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도 김종필을 예방했는데, 이재오 앞에서도 문재인에 대해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더 말하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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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뜻과 멋을 모두 갖춘 절묘한 사자성어로 덕담을 해줬을 JP가, 육두문자 수준의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김영삼, 이명박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내리며 덕담까지 했었기 때문.  실제로 JP는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 특별히 험담하지 않았고, 상당히 차분한 어조로 평해왔던 편이다. 당장에 YS와 DJ가 사이가 좋지 않지만, JP는 YS와 DJ와 모두 가까웠고 두 정치인에 대해서 호평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그리고 과거의 정적들에 대해서도 본인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적개심들이 모두 씻어내려졌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리 총리를 지낸 분이자 정치 원로라지만 특정 대통령 후보를 향해서 원색적인 비방을 하고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언행이야말로 선거법 위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홍준표가 낙선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매스컴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총성적 5승 3무 10패 승점 18점으로 월드컵 랭킹 32위에 올라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카메룬과 불과 승점 1점 차이로, 실제 순위도 31위와 32위로 각각 한 계단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를 기점으로 아프리카 1위를 탈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나이지리아가 승점을 1점만 더 얹어도 평균 점수 에서 카메룬을 앞서기 때문에 순위를 역전할 수 있는데, 나이지리아가 본선에 진출한 반면 카메룬은 예선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나이지리아가 3전 3패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월드컵 랭킹 아프리카 1위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2014~2018년 기준으로는 월드컵 전적으로만 진출국을 뽑으면 맨 마지막에 딸려올 국가가 나이지리아다.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은 진출, 일본은 탈락!! 90년대 아프리카 돌풍의 포문을 카메룬이 열었다면, 아프리카의 상징과도 같은 팀은 나이지리아였다. 


카메룬이 90년 월드컵 이후 국제무대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 반면 나이지리아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활약했기 때문이다. 2006년을 제외하곤 94년 이래 개근이며, 곧 있을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도 성공했다.


2018/06/23 - [스포츠/2018 러시아 월드컵] -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 아메드 무사에 대해 알아보자! + 메시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이탈리아 1패(1994), 아르헨티나 4패(1994, 2002, 2010, 2014), 스페인 1승(1998), 잉글랜드 1무(2002), 프랑스 1패(2014), 스웨덴 1패(2002), 파라과이 1패(1998), 덴마크 1패(1998), 대한민국 1무(2010), 불가리아 2승(1994, 1998), 그리스 1승 1패(1994, 2010), 이란 1무(2014),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1승(2014), 크로아티아 1패(2018)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5승 1무 6패, 남미 5패, 아시아 2무를 기록중이다. 우승 후보권인 스페인과 당 대회 4강에 진출했던 불가리아를 누르는 등 상대적으로 유럽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반면, 남미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와는 최근 두 대회에서 각각 한국에 2:2, 이란에 0:0으로 비기며 무승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패배를 기록한 적이 있는 나라는 아르헨티나(4패), 이탈리아(1패), 파라과이(1패), 덴마크(1패), 스웨덴(1패), 그리스(1패), 크로아티아(1패)로 총 7개국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승점을 얻어간 팀은 불가리아로 2경기 6점을 획득했는데, 전성기 시절의 불가리아를 2회 연속 이기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94년 조별리그 불가리아전 3:0 승, 1998년 조별리그 스페인전 3:2 승으로 총 3득점이다.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98년 16강 덴마크전 1:4 패로 무려 네 골을 허용한 적이 있다.


94년 아프리카 티켓이 3장으로 늘어나면서 동시에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했는데,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그리스와 한 조였다. 그리스도 처녀 진출국이고 불가리아도 월드컵에서 단 1승을 못한 팀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쉬운 조이긴 했지만, 일단 나이지리아부터가 첫 진출국. 전 대회 카메룬처럼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을 뿐, 알려진게 없는 팀이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로 바뀌어 첫 경기부터 불가리아를 3:0으로 잡는 파란을 일으킨다. 아르헨티나에게 1:2로 잡히긴 했지만, 마지막 그리스전마저 2:0으로 잡으며 조 1위로 16강행 확정. 16강에서도 조에서 빌빌대며 올라온 이탈리아를 상대로 고춧가루를 뿌리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따냈고, 2년 뒤 월드컵에선 스페인, 불가리아, 파라과이라는 죽음의 조를 만났는데 스페인을 3:2로 잡아내며(!) 또다시 일을 낸다. 


전대회 4강팀 불가리아마저 잡고 또다시 1위로 16강행 확정, 아프리카 최초 2연속 16강을 일궈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에 속해 조4위 1무2패로 광탈한다. 이전 두 대회에서 폭발했던 골도 여기선 한 골밖에 안 나왔다. 그 유일한 골을 스웨덴 전에서 넣은 아가호와의 7연속 공중제비 세레모니는 월드컵 역대급 세레모니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2006년에 4회연속 진출에 실패하며 크게 흔들리고 8년만에 올라온 월드컵에선 상대적으로 쉬운 조(아르헨티나, 대한민국, 그리스)에 속했음에도 1무 2패 꼴지로 탈락했다. 물론 경기내용만 봐서는 1무 2패 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팽팽하게 맞섰으며 그리스에도 전반에 선제골 넣고 앞서가다 퇴장당한 후에 역전패를 당했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대한민국의 수비실책으로 선제골을 넣고 내리 두 골을 내주며 역전당했지만 오히려 그 때부터 시종일관 우리나라 수비진을 벗겨내며 농락하다시피 했다. 


2018/06/23 - [스포츠/2018 러시아 월드컵] -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 아메드 무사에 대해 알아보자! + 메시


그 와중에 김남일의 백태클로 PK를 넣고 동점으로 추격. 니가가라 16강슛만 서너 번은 나왔던 경기였는데 이 중 하나만 들어갔어도 나이지리아가 16강에 올라가는 거였다. 결국 저주받은 골결정력을 이기지 못하고 대한민국에 16강 티켓을 내줬는데.... 4년 뒤 브라질에서 마침내 16년만의 16강행에 성공했다. 이란과의 역대급 수면제경기를 펼치고 보스니아에 오심에 의한 승리로 인해 논란이 많은 16강이긴 하지만. 아르헨티나와의 마지막 경기와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수준급 경기력을 보여줌으로서 어느 정도 살아났음을 확인시켜줬다.


한동안 빼앗겼던 아프리카 최강의 이미지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앞으로의 국제 대회 성적이 관건이겠지만, 2016년 현재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은 편이다.


2017년 10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아프리카 국가들 중 가장 먼저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월드컵에서 유독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놀랍도록 자주 편성된다. 나이지리아는 1994년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포함, 출전권을 획득한 6번의 월드컵에서 98년도를 제외하고 무려 5번이나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월드컵 상대 전적은 4패로 안습이지만 먼저 득점한 후 역전골을 먹혀서 지거나, 오심논란이 있는 골을 먹혀서 패배하는 등 4번의 경기 모두 1골차로 지며 아쉽게 패배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비록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했지만, 첫 월드컵 출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조3위로 밀어내고 조1위로 16강에 진출하며 전대회 카메룬에 이어 검은돌풍을 보여주기도 했다.







Iceland made a statement in its first World Cup game ever, but now presented with a golden opportunity, it can make an even louder one.



After drawing Argentina, Iceland turns its attention to Nigeria in Volgograd, Russia, in a pivotal match for both sides and their knockout-stage aspirations. If Iceland can come up with a win, it will put itself in fine position to reach the knockout stage. The same goes for Nigeria, though it would still have work to do in its final match of group play against Argentina.



The two sides will consider the scenarios after their matchup, which pits the resolute-defending Iceland against a Nigeria side that didn't offer as much as it is capable of going forward in its group-opening loss to Croatia.


Iceland looked to strike early, and it nearly did through its superstar, Gylfi Sigurdsson. His long-range free kick was earmarked for the upper left-hand corner of the goal, but Nigeria's 19-year-old goalkeeper Francis Uzoho made an acrobatic save to keep it out in the third minute.


Sigurdsson had another clean look from 18 yards in the run of play, with Game 1 goalscorer Alfred Finnbogason playing him into space before he took aim at goal, only to hit it right at Uzoho in the sixth minute.



The first half unfolded with a dearth of chances on both sides, though Iceland tried to break through in audacious fashion. With the ball looping in his direction, Birkir Bjarnason swung his right foot through it for a powerful volley, but it was one that was overhit and sailed over the bar in the 33rd minute.


Iceland was always the team that looked most likely to score, and it came close again just before halftime. Sigurdsson's free kick met Finnbogason in front of the goal mouth, but he wasn't able to get a clear hit on it, and the ball trickle harmlessly by the far post.


Nigeria flipped the script and came out firing seconds into the second half, testing Game 1 hero Hannes Thor Halldorsson right off the bat through Oghenekaro Etebo, whose low shot was saved well by the goalkeeper.



Nigeria's pressure paid off soon after. On a clinical counter, Victor Moses got free down the right before sending in a cross. Ahmed Musa kicked high to settle the cross and volley it to himself before blasting a right-footed shot by Halldrosson to secure the 1-0 lead.







아메드 무사 




빠른발이 장기인 선수.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 포워드로 출전하며 소속팀인 CSKA 모스크바에서는 중앙 공격수나 왼쪽 윙어로 자주 기용된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즐겨하며 수비 가담도 꽤 하는 편이다. 다만 패스 성공률이나 감각이 안습....


리그에서의 대활약으로 2010년 만 17세의 나이로 아메드 무사는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그 기세로 남아공 월드컵까지 참가하나 싶었으나 대회 직전 부상을 당해 월드컵 기회는 4년 뒤로 미루어졌다. 


2018/06/23 - [스포츠/2018 러시아 월드컵] - 나이지리아 vs 아이슬란드 2:0 골장면!!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무사는 첫 2경기는 주전이었으나 연속으로 무승부를 거두자 벤치로 밀려났다. 아메드 무사가 벤치로 가자 나이지리아는 이기기 시작했다.(...) 4강전 말리를 상대로 교체투입되어 팀의 4번째 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고 나이지리아는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전경기 선발 출장했다.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리오넬 메시와 일기토를 벌이며 메시가 골을 넣는 족족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 대회를 통해 무사는 한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골 이상을 기록한 나이지리아 선수가 되었다.




2018년 월드컵의 D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결승골과 추가골을 기록하며 팀의 2대 0 승리를 이끌었다. 두 골 모두 쉽지 않은 골이었다 ! 그리고 이어지는 아르헨티나와의 단두대 매치 3차전에서는 4년만에 리오넬 메시와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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