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계, 친문계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 '실세 총리'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중 현역 최다선 의원


이해찬 당대표 출마이해찬 당대표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대한민국의 제13대~17대, 그리고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겼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낸 인물이다.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역대 국무총리 중 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며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무현계의 상징적인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투 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문계의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수장으로 존중해준다.


그리고 무려 7선 국회의원인데 이는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며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지만, 서청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선 의원이라고 봐야 한다. 즉, 이해찬은 공식적으로 서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다선 국회의원인 셈이다.


이해찬 의원이해찬 친노


이를 봤을 때 20대 국회의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나면 보통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거나 정부 관료를 역임하지 않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이지, 최고령 의원은 아닌데다 여전히 친노계와 친문계의 큰어른인 거물이기에 아직은 정계 은퇴를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 2018년 기준 65세로, 역대 대통령 중 그보다 많은 나이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만 넷이니 그리 많은 나이라 보기도 힘들다. 막말로 다음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나이로 공격 받을 소지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유력한 후보군 중 한 명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면(현 청양읍)에서 아버지 이인용과 어머니 박양순 슬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 참고로 이해찬의 조상은 덕흥대원군이다. 


이해찬 어린이이해찬 당대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절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해찬은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부친인 이인용 씨가 청양면 면장 출신이기 때문. 이인용 씨는 광복 후에 32살의 나이로 청양면장을 맡아 4.19 혁명 때까지 면장을 지냈을 정도로 마을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말기에 치러진 지방선거 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 면장에 당선 되었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의 신망이 투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덕수중학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입학한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를 다녔으나 적성에 맞지않아 자퇴하였고, 이듬해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 사건 후 무역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등 재야 인사로 지냈다. 1979년에는 돌배개출판사를 창업했다.


이해찬 과거이해찬 당대표


그러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는데,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 지 14년 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 말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학생 운동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해찬은, 여러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지역구로 공천을 받아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5회 연속으로 관악을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고 20대까지 합해서 현재 7선 의원을 기록 중이다.


이해찬 레전드이해찬 당대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 '찬들이형',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해골찬'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제20대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다. 현직은 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총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꾸 보여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여러 모로 고문 후유증이 아니냐는 염려가 있다.


운동권 출신이었던 데다 친노의 좌장인 만큼, 운동권, 친노계가 포진되어있는 정의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편이다. 6월 15일 tbs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개혁 우파, 진짜 진보는 정의당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그 호의를 보여주었다. 실현 가능한지는 묻지 말자 일단 지금은 민주당이 개혁 우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단체, 노동운동, 진보정당들과 함께 진보의 저변을 민주당쪽으로 확장시키는게 목표라고.


이해찬 문재인이해찬 당대표


선거의 귀재 해찬불패


지역구 7전 7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선거 득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주당 중진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역구 6전 6승에, 모두 50%를 넘긴 득표율로 승리한 걸 비교 대상으로 드는데, 정세균은 2012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는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던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으니 적당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서울 관악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에서 제일 강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호남만한 텃밭은 당연히 아님에도 연잇어 5선을 한 것은 대단한 결과이다. 


물론 항상 유리한 지역에 출마해온 것은 사실이다. 관악구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서울 내에서 가장 민주당 계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고, 세종시는 본인이 국무총리 시절 수도 이전을 전면에서 지휘한 곳인데다가 자기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다. 물론 이를 감안해봐도 7전 7승은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을만한 기록이기는 하다. 남경필이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이기는 했어도 수도권에서 6전 6승을 한 것이 대단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해찬 명언이해찬 당대표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의 경우, 두 차례의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06년 5.31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누가 봐도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해 보였던, 그것도 대통령으로서 이끌었던 20대 총선에서는 참패해 박근혜가 본인의 능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얻게 된 승리를 박근혜의 능력 덕택에 얻은 것처럼 포장이 된 건지 불투명하게되었다


반면, 이해찬은 소위 말하는 험지 출마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항상 유리한 지역을 출마해왔다는 점은 박근혜와 같을지 몰라도 13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의 김종인, 통일민주당의 거물 김수한을 꺾고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 정치권의 거물 심대평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큰 선거를 이끌어본 경험도 서울시장 두 명의 당선에 기여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37] 자신이 참여한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맛 보았으니 박근혜에게 크게 뒤쳐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8년 첫 출마부터 2012년 총선까지 소속 정당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이인제나 김한길처럼 탈당을 밥먹듯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몸 담고 있었던 민주당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문희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신민주연합당 시절과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인한 탈당 및 20대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 등 3번 탈당하긴 했다.


이해찬 문희상이해찬 당대표





강원랜드 채용과 관련해 부정 청탁한 혐의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기각한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덕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허 판사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4일 오전 10시30분부터 권 의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뒤 다음날 자정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허 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법리상 의문이 있다.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 등을 고려할 때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기각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권 의원은 2013년 11월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게 자신의 인턴 비서 등 10명 이상을 채용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전 사장은 청탁 대상자의 합격을 위해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됐다. 그러나 권 의원의 영장은 관련자들의 지위와 진술 내용, 증거 등에 비춰 볼 때 혐의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 같은 판결을 한 허 판사는 지난달 20일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 청구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부 네티즌은 ‘프로 기각러’라고 비난하며 과거 영장을 기각했던 사건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이명희씨의 영장을 기각했을 당시 허 판사는 “범죄 혐의의 내용과 현재까지 수사진행 경과에 비춰 구속수사 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5월30일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야권‧진보 인사 불법사찰 의혹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도 풀어줬다. 허 판사는 당시 기각사유에 대해 “관련 사건 재판의 진행 경과에 비춰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증거들이 수집돼 있어 증거 인멸 우려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허 판사는 또 4월18일 여검사 성추행 후 인사보복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에서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고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내용과 피의자의 주거 등에 비춰 구속 사유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한 허 판사는 “종전에 영장이 청구된 사실과 별개인 본 사건 범죄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의 내용을 볼 때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증거 인멸할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사유를 밝혔다.


한편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지난 2월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안미현 검사가 국회 법사위원장인 권 의원 조사를 검찰 윗선이 막으려 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지난 5월 권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6월 임시국회가 종료돼 ‘방탄국회’ 논란이 일었다.


이에 권 의원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고 영장심사를 받겠다”고 선언했고 7월 임시국회가 소집되지 않아 국회 동의 절차 없이 영장 심사를 받게 됐다. 영장 심사에 출석한 권 의원은 “수사단의 사실인정과 법리 구성에 무리한 구성이 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서울북부지검에 대기하던 권 의원은 영장이 기각되자 “특별수사단의 수사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사실확정과 법리적용에 있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꼭 입증해 나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집으로 향했다. 한편 수사단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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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 [실시간 핫이슈/정치] - 조양호 구속 영장 발부 !! 그가 저지른 각종 범법 행위들.. (탈세, 변칙증여, 브랜드 사용료...)

2018/07/05 - [실시간 핫이슈/사회] - 박삼구 : 세습 경영의 폐단을 보여주는 재벌가 최악의 경영자이자 악인(惡人)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농공단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트 레일, 리클라이너 등의 시트 부품과 시트를 생산하는 시트 제작회사. 현대자동차에 카시트를 납품하는 협력업체이다. 충청남도 아산시에도 공장이 있어 한국에는 2개의 공장이 있고 해외에는 15개의 공장을 가진 대규모 부품기업이다. 중국에는 9개의 공장(법인)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 공화국에 2개, 미국 알라바마에 1개, 체코, 브라질, 터키 등에도 공장을 가지고 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 놀이의 실제 주체.


20여 년간 다스의 대주주였던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 초기 다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후지기공



공식적으로는 1987년에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주식회사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부인 김윤옥의 동생)과 일본의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인 후지기공, 이명박의 친형 이상은이 동업하여 당시 기준으로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읍 구어동에 공장을 차리면서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후지기공의 기술지원에 의존하던 회사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대주주 후지기공과의 기술원조 계약이 끝나가자,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상은이 후지기공 법인 소유의 다스 주식을 매입하다가 1990년대 말에 다 사면서 최대주주 김재정과 2대 주주 이상은의 투톱 주주가 지배하던 회사로 변했다. 2003년 DAS로 사명을 바꾸었다. DAS는 Daebu Automotive Seat의 약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승용차 용으로 대량의 비중을 갖고 납품하고 있으며 요새는 현대자동차에서 거래처 다변화 차원에서 다스의 비중을 줄이고 있으며, 다스 또한 현대차의 경쟁사인 르노삼성은 물론 폭스바겐, 포드 같은 외국 회사로 납품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취재한 과거 소문으로는 현대그룹의 회장 정주영의 지시로 현대자동차 부품사업부가 별도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에게 정주영이 부품 사업부 운영을 넘겨주려던 과정이 생기고 이 와중에 모종의 이유가 발생하여, 현대가에서 운영하는 계열사가 아니게 되면서 경영권이 이명박의 가족 측으로 넘어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해외 사업법인(공장) 중 다스의 주식이 하나도 없는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이 중국 베이징 시에 있는 북경 다스, 저장 성의 항구도시인 닝보 시에 있는 닝보 다스, 장쑤 성 옌청시에 있는 강소 다스, 산둥성의 웨이하이 시 원덩 구에 있는 문등 다스까지 총 4곳의 중국 법인의 대표가 되었다. 이 4곳은 모두 다스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완벽한 다스 소속 법인이다. 강소 다스와 문등 다스의 경우 다스의 회장 이상은과 그 아들 이동형이 대표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모두 이시형으로 대표가 바뀌었다. 


나머지 공장은 중국자본과 합작 법인인 '북경 BAI 다스' 것이라서 중국인이 대표지만, 역시 이곳에서도 이시형은 이사로 소속되어 있다. 사실상 중국 내 다스 대부분에 다스 주식도 없는 이시형이, 다스의 대주주이자 큰 삼촌인 이상은과 그의 아들 이동형의 위치를 점점 가져오며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


게다가 2017년 10월 14일 일요신문의 보도로 다스의 소규모 하청업체 중 하나인 에스비글로벌로지스(주)에서 다스로 1,48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다. 금감원 기업 공시 사이트인 DART에서 발견한 것인데, 무려 다스 미국법인에서 다스로 들어간 1,540억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러나 에스비글로벌로지스는 자산총액 120억도 안 되는 회사라, DART에 회계감사 공시도 하지 않는 회사다. 그리고 그 회사의 최대주주는 상술된 이상은의 아들(=이명박의 조카) 이동형이다. 



그러니까 이상은의 아들이 큰 지분을 가진 작은 하청회사가 자신에게 하청을 주는 원청업체이자 거대기업인 다스에 거액을 준 것. 받은 게 아니다 근데 사실 너무 거금이라 받아도 이상하다 이것이 보도가 되자 다스를 감사한 회계법인(신한회계법인)은 급하게 3일 뒤 이 1,485억을 7천 5백만 원으로 바꿔버린다. 실수치고는 너무 큰 실수. 저게 진짜 순수한 회계사 실수면, 고소해야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거 없다. 왜일까? 실제로는 누구의 잘못일까? 이를 통해 다스 내부의 부적절한 자금흐름의 가능성이나 이상은의 아들이 다스 내 실권에서 점점 밀려나는 듯한 흐름의 낌새를 챌 수 있다.


코레일의 사장 출신인 다스의 사장 강경호. 다스는 2013년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4억 불 수출탑을 받았다.


대표는 상술된 이상은 회장 및 강경호 사장 공동 대표이사 체제이다. 이상은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큰형이며, 강경호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메트로 사장으로 대통령 재직 시절에는 코레일 사장을 역임했으나, 코레일 재직시절 특정범죄처벌법상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어 5개월 만에 사장직을 상실하였다. 최종적으로 2년 집행유예가 나왔다.



서류상으로 이 전 대통령은 대부기공 설립부터 지금까지 다스와 무관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등기이사로 오른 적도 없고 주식을 한 주도 가진 적이 없다.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거의 모든 의혹과 연결되어 있다. BBK 투자 자금도,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도 다스와 연관되어 있다. 다스의 실소유주가 밝혀지면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다른 비리 의혹도 자연스레 풀리는 구조다.


17대 대선을 마지막으로 수면 아래로 사라졌지만,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떠올라버린 이명박의 아킬레스건.


여기서 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데 다스에서 BBK에 투자할 당시 다스는 '유동자산 480억, 유동부채 790억, 순 자산 127억'으로 190억을 투자할 여력이 전혀 없던 회사였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의 가족인 이상은과 김재정이 1995년에 도곡동 땅 1,900여 평을 팔았던 돈 중 157억을 출자금으로 투입했는데, 문제는 이 도곡동 땅은 1993년 이명박의 차명재산이라고 대대적인 폭로가 있었던 곳이었다는 것. 


즉, 이명박이 차명재산으로 갖고 있던 157억 원이 이명박 본인이 회장이던 BBK로 흘러들어갔고 이 돈은 다시 LKe 뱅크와 옵셔널 벤처스로 흘러들어가 주가조작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은 다스-BBK-LKe뱅크의 실소유주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은 덤.



2010년 초까지 최대주주였던 김재정(이명박의 처남이자, 김윤옥의 남동생)의 사망 후 상속세 문제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사망한 김재정의 부인 권영미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일단 청계재단에 일부 주식을 기부한 후, 일반적으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인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물납)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정부(기획재정부)와 청계재단에게 상당량의 주식이 넘어갔다. 청계재단은 참고로 이명박이 출자하여 만든 재단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기획재정부는 김재정의 상속세 416억 원 대신 받은 다스의 주식 19.7%를 공매로 팔아서 ] 현금을 받아 국고에 넣을 예정이었으나, 한국자산공사 캠코(kamco)와 기획재정부가 2011년 말에 처음 공매에 내놓을 때, 비상장주식인 다스의 58,800주를 주당 143만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총 843억 2,572만 7,000원에 내놓아서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도대체 캠코와 기획재정부가 가격 책정을 왜 그렇게 말도 안 되게 하도록 정한 건지  알려지지 않으며 , 당시 언론이 취재한 바로 경제전문가에게 다스의 정보를 토대로 책정해 달라고 한 가격에 비해 약 2.5배 나 비싼 가격이 나왔다. 


거기다가 처음 나온 게 유찰이 되면서 가격이 점점 떨어져 갔음에도 낙찰이 안 된 이유가 있는데, 유찰이 6번 되면 ] 50%로 공매를 진행하지 않고, 다시 가격을 재평가해서 원래 가격보다 약간 비싼 가격이나 약간 싼 가격, 즉 실질적으로 원래 가격에 가깝게 돌려 버렸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다스 공매는 팔리지 않게 가격이 계속 원상복귀가 되어버렸다는 뜻.


상세 사항을 보면 2011년 11월 처음 143만 원대로 나온 뒤, 5회 유찰이 반복되자 84만 원대가 되었는데 6번째 유찰이 되자, 2013년 1월에 재평가해서 133만 원대로 만들고 그래도 이때는 143만 원보다 좀 줄였었다, 6번째 공매에서 78만 원대로 나온 주식이 안 팔려 또 6번 유찰되자, 2014년 1월 20일에 재평가로 되돌릴 때는 무려 152만 원대로 나와서 말도 안 되게 뛰어버리니 아무도 살 수 없었다. 


이런 게 계속 반복되고 2015년 10월 재평가 때는 무려 주당 200만 원(정확히는 200만 21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나와서 주식의 왕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다스다 최소가격도 120만 원이라 역시 유찰이 반복되었다. 간단히 말해, 캠코는 공매를 143만 원에서 시작해서 80만 원대가 되면 130만 원대로 올리고, 다시 80만 원대로 떨어지면 152만 원대로 올리고, 나중에는 아예 주당 200만 원대로 올리며, 시간이 갈수록 더 팔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안 팔리는 바람에 김재정의 상속세로 국고에 들어가야 할 돈을 7년 넘게 국고에 못 넣고 있으니 복잡한 이야기를 한마디로 하면, 정부는 부적절한 공매운영으로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의 상속세를 아직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더 이상한 포인트는 김재정이 사망하고 2년 뒤, 2012년 김재정의 부인 권영미가 다스 주식을 유상감자할 때는 주당 68만 1천 원으로 했다는 점이다. 다스측에서도 68만 원으로 정해서 하는 걸, 기획재정부와 캠코는 계속 그 이상으로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망 당시 김재정 명의의 부동산들이 무려 67만 평이나 있었으나, 거의 다 근저당이나 채무문제, 혹은 공동명의 가 걸려 있어서 부동산으로 상속세 물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땅마다 채무문제를 걸어놨지?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7년 9월 11일 방송분을 보면 주진우와 안원구(전 대구국세청장)가 이 상속건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팟빵 영상은 이쪽에서



BBK사건과 관련사건을 수년간 조사했던 주진우와 김어준은 꾸준히 도대체 다스의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의 외동아들인 이시형이 다스 입사 7년 만에 전무이사로 승진했고, 여기에 다스의 해외 법인 여러 곳의 대표로 선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질적인 소유주가 맞는다는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JTBC에선 다스는 MB 거라고 증언하는 다스의 전직 경리팀장과의 인터뷰를 단독 보도했다. 여기에 다스 비자금 120억여 원을 정호영 특검이 파악하고도 다스에 다시 입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폭로까지 나와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국내 다스의 고의부도를 시도하고 있다는 첩보가 언론에 포착되었다. 


관련 혐의와 관련자들을 조사하던중 검찰은 또 다른 폭탄을 찾아낸다.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그리고 2018년 2월 21일, 검찰은 다스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결론을 사실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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