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에 치안 유지를 위해 발동되는 긴급권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군병력으로써 군사상에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해 대통령이 선포하는 조치이다. 경비계엄과 비상계엄으로 나눠지며 특히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이 해당 지역의 모든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게 되며 기본권조차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 요구가 있다면 대통령은 바로 계엄령을 해제해야 하며, 국회의 요구를 묵살할 경우 헌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단, 탄핵에 관련한 절차, 즉 국회 재적인원 과반수의 발의 및 2/3 이상의 찬성이 있은 후 헌재에서의 심판을 거쳐야 하며, 자동적으로 탄핵되는 것은 아니다.


기타 전염병 등 보건행정상의 이유로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도 계엄령이 발령될 가능성이 있는데 실제로 신종플루 유행 당시 미국은 최악의 경우 계엄령 선포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결국 신종플루는 평범한 독감보다 낮은 사망률을 보이고 끝났다. 미국의 경우 매년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2만명 이상인데 비해, 신종플루는 5천명정도의 사망자만 냈을 정도. 애초에 모든 독감은 매년 신종이다. 


대한민국은 총 10번의 사례가 있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 - 여수, 순천 일대


1948년 11월 17일 제주 4.3사건 - 제주도


1952년 5월 25일 부산정치파동 - 부산,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1960년 4월 10일 4.19 혁명 - 전국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 - 전국


1964년 6월 3일 6.3 항쟁 - 전국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 전국


1979년 10월 18일 부마 민주 항쟁 - 부산, 경남


1979년 10월 27일 10.26 사건 -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980년 5월 17일 5.17 내란 - 제주도를 포함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된 경우가 많아 지금도 계엄령이라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으로는 계엄 중 국회해산도 불가능하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도 유지되고 있으며,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가 가능하다. 이는 독재정권이나 군부의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발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으로, 87년 체제(제6공화국) 이래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더라도 국회에 보고가 되도록 되어있으며 국회가 해제를 결의하면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전방지역은 각 전방 군단이, 후방지역은 각 향토사단이 해당 위수지역의 계엄사령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56사단의 경우 서울 강북지구 계엄사령부가 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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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계엄 논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된 2016년 11월 18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1초라도 빨리 박근혜를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저 '그런 정보가 돌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이게 제1야당대표가 할 말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청와대는 즉시 반박했고, 박사모에서는 추미애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면서 계엄 선포하라고 난리를 쳤다.


다른 한편으로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중에 최악은 계엄령 선포라고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계엄령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고 했기 때문에,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이유로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예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썰전에서도 전원책 변호사가 11월 17일 방송에 박근혜의 예상시나리오에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5번째 시나리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유시민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거같다고 했는데, 이 시나리오가 계엄령을 의미한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계엄령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제3자의 추측에 불과하고 계엄령이 맞다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정도의 취지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을 뿐, 확실히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거란 정보가 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따라서 추미애 의원의 저 발언은 일종의 견제 목적의 발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추미애 대표는 근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단 당시 군 내의 정세를 보면, 어느 정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 대기는 다른 장관 및 수석 등 행정부 관료 및 청와대 직원들이 모두 대기하는 상황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군 외박 외출 통제는 출동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외박 또는 외출 인원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경찰의 진압 시도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계엄령을 준비하였다고 추측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확대 해석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12월 9일 발의된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되고 2017년 3월 10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어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결국 실제 계엄령은 일어나지 않고 끝났다.


군인권센터에서는 실제로 계엄령이 고려되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고려'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를 '계엄령 선포 준비'였다고 해야 할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러나 기무사에서는 당시 이미 광화문에 공수부대, 여의도에 기계화사단을 투입하는 등 계엄 대비 구체적인 작전까지 짜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촛불집회를 종북으로 규정하는 가관을 보여준다.(...) 해당 기사 만일 이것이 실행되었더라면 2016년 세계적인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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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amu.wiki/w/%EA%B3%84%EC%97%84%EB%A0%B9#s-1.1.1]

왼발의 달인,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전 축구감독. 별명은 왼발의 달인.
...한국 월드컵 사상 첫 선취골의 주인공. 그러나... 3분 뒤
...


아주대학교를 졸업했고 1990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대우에 지명되었다. 데뷔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활약. 비록 신인왕은 현대의 송주석에게 넘겨줬지만 1991 시즌에도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 씹어먹는 활약으로 34경기에서 7골 5도움을 기록.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해에 처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하여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




1993~94 시즌 동안에는 국가대표팀 차출 관계로 클럽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 했지만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전국구급 유명세를 얻는다. 특히 1994 월드컵 1차예선 여덟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으며 대중들에게 하석주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하석주 하면 왼쪽 윙백이 떠오르지만 월드컵 예선전만 해도 본업은 공격수였다. 데뷔한 대회인 대통령배국제대회에서 MVP와 득점왕도 차지할 정도였으며 이땐 등번호도 9번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황선홍이나 최용수처럼 키 크고 떡대 좋은 대형 스트라이커를 선호했기에, 하석주의 포지션은 자연스럽게 왼쪽 윙/윙백으로 전환되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최종예선에서도 이란, 북한을 상대로 각각 골을 넣었다.

그러나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는 두 경기 교체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볼리비아 전에 교체로 투입되어 후반 추가시간에 황선홍의 멋진 힐패스를 이어받아 1:1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으나 키퍼 선방으로 골을 넣지 못하였다. 비록 황선홍에 비난이 집중되어 묻힌 감이 있으나(...) 하석주도 만만찮게 개발이라는 욕을 먹었다. 그때 비난과 부담감을 못이겨 김호 감독에게 다음 경기인 독일전은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고, 결국 독일전은 결장했다.




그러나 그때 찬스를 놓친 왼발슛이 한이 되어서 왼발킥을 매일 미친 듯이 연습했다고...그렇게 그는 왼발의 달인이 되었다. 이후 하석주의 기량은 만개하여 국가대표에서도 왼쪽 미드필더 자리를 꿰찼고, K리그에서는 1996 시즌 두자릿수 득점(...)까지 기록한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선수단에 감독인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강력한 요청으로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다. 당시 소속팀인 대우에서는 보내기 싫어서 기브스까지 하면서 선발을 물러주길 바랐으나 비쇼베츠가 지정병원에 보내서 재검사까지 시전하며(...) 끝끝내 올림픽에 데려갔다. 그정도로 큰 기대와 비중을 가지고 있었단 얘기. 





1997년을 맞아 기량이 절정기에 달해 97년에만 A매치 3골-8도움을 기록했고 대통령배의 후신인 코리아컵에 출전하여 도움 4개로 대회 MVP가 되었으며  소속팀 대우 로얄즈의 3관왕, 즉 트레블을 이끌었다. 개인적으로도 20-20 클럽을 달성했으며 프리킥으로만 4골을 넣었을 정도로 리그에서도 맹활약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UAE전에서 특유의 공격가담으로 선제골을 넣기도 한다. 이렇게 하석주는 차범근호 체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고 월드컵 본선에서도 활약이 기대되었는데...




멕시코전 초간단 요약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 첫번째 경기인 멕시코전 전반 27분, 하석주의 왼발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방향이 꺾이면서 절묘하게 반대편 골대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넣은 선제골이었다. 즉 한국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이기고' 있었다! 당시 조 편성상 한국은 첫 경기 멕시코를 반드시 이겨야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기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골이었다.



그러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전반전 30분, 그러니까 골을 넣고 3분여 지났을 무렵에 상대의 라몬 라미레스 선수에 백태클을 걸었다는 이유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결국 하석주의 퇴장 이후 한국은 급격한 체력저하로 후반전에만 3연속 실점하며 1-3 역전패했다. 「하나 넣고 석점이나 주다니!」 라는 삼행시를 만든 바로 그 경기. 

MBC보도 1분경 이 MBC뉴스 화면을 보면 확실히 고의적인, 그러나 당시까지는 많이들 하던 백태클이었다. 하석주 자신도 퇴장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레드카드를 보고 어이없어하고, 옆에 있던 고종수도 판정에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국내에선 한국이 약소국이라서 판정에서 피해를 봤다는 흔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FIFA 회장 선거에서 제프 블라터의 반대파로서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UEFA 회장을 지지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음모론도 나돌았고 여튼 이래저래 설들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차범근 당시 감독이 선제득점으로 고양된 선수들을 잘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석주도 나중에 인터뷰하기를 골을 넣고 너무 기쁘고 흥분되서 뭘 어째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지역에서 파울을 하고 맘을 좀 다스리려고 했다고 한다. 스스로 옐로카드까지는 각오했다고 했는데, 정작 심판이 빨간 카드를 꺼내자 처음엔 잘못 꺼낸 거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백태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고, 설명도 잠깐 들었을 뿐이라 그걸로 퇴장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고(...) 참고로 하석주 개인적으로도 축구를 시작한 이래 공식경기에서 퇴장 당한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자 유일한 경기였다. 





아무튼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하석주가 시범케이스로 재수없게 걸렸다는 것이다. 당시 FIFA에서는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비신사적인 백태클에 대한 제재에 중점을 두었고, 바로 퇴장까지 줄 수도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말은 뱉어놨지만 막상 1라운드가 절반이 지나도록 퇴장 사례가 하나도 없으니 엄포가 머쓱해질 수 있던 상황에서 하석주가 재수 없게도 그 엄격한 판정의 시범케이스에 걸려 퇴장당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 


그 증거(?)로 옐로카드 없이 바로 퇴장당한 경우에는 보통 2경기 출장정지인데 하석주는 고의성이 없었고 심판의 미숙함도 있다고 판단되어 1경기 출장 정지로 완화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하튼 하석주는 프랑스 월드컵 1호 퇴장 선수로 기록되었고, 한국 축구팬들은 이후 같은 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하석주보다 더 거친 백태클을 하고도 옐로카드나 구두경고 정도로 넘어가는 걸 보며 아쉬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석주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오스트리아의 귄터 벤쾨 주심은 2년 뒤 유로 2000의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4강전 연장전에서 고의라고 보기엔 애매한 포르투갈 수비수 아벨 사비에르의 핸들링을 보고 프랑스의 결승골이 된 페널티킥을 지시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칙대로 판정하는 심판이었다는 얘기.



최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나와서 밝힌 바로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백태클 사건 이후 미안한 마음에 차범근감독을 20년째 피해다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 후유증이 가시질 않아서 항상 죄인같은 기분으로 살고있다고 한다. 당시 백태클 퇴장 당한 이후 너무 충격이 커서 벨기에 전까지 훈련이 없으면 인근 낙시터에서 낚시를 하며 맘을 달랬다고 한다 한번은 큰 잉어가 잡혀서 기뻐해야 하는데 잉어의 맑은 눈을 보고 잉어를 안고 펑펑 울었다고...하석주의 고백은 이날 방송의 백미로 주위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어준 총수는 하석주같은 케이스가 있으니 함부로 국가대표에게 비난과 욕을 하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후에 제작진이 차범근 감독과 만남을 주선한다고..차 감독님...축구가..하고 싶어요.



그래도 1경기 출장정지로 완화된 덕분에 벨기에전에 다시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고 전매특허인 기가막힌 왼발 프리킥으로 유상철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약간의 명예를 회복했다. 왼발로만 1골 1도움, 한국이 기록한 두 골에 모두 관여하며 사실상의 팀의 에이스 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그걸 모두 덮을만한 한 번의 실수로 비난을 받아야 했던 불운의 선수. 2번의 월드컵에서 이래저래 욕만 먹었다(...) 하석주는 퇴장 이후 팀이 지고 차범근까지 경질당하는 걸 보면서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국대은퇴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벨기에전에서 1어시도 하고 팀이 투혼을 보이면서 어느정도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고...





이후로 2000년 아시안컵까지 계속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 국대에서 맹활약했으며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무대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는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그 자리는 이영표가 물려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석주도 히딩크 사단에서 제법 오래, 많은 경기를 뛰었다. 물론 하석주가 경쟁을 이겨서 02월드컵에 나간다는 보장은 없었으나,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출장해 명예를 회복하길 바라는 팬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A매치 100경기 출장 기록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98월드컵 퇴장이 끝끝내 트라우마로 남아서 본인이 스스로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해 센츄리클럽 가입을 얼마 안 남겨두고 국대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퇴장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아직도 퇴장당하는 선수를 보면 자기일 같고 '나와 같은 상처를 입으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전직 법조인이자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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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대전광역시 서구 을 지역이다. 소속 국회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다. 참고로 이 상임위에는 그 유명한 어떤 막말러 친박 의원님도 소속되어 있어 맨날 티격태격 싸운다고(...) 민주당 계파 분류를 할 때에는 친문계 - 친노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1963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는데, 부친은 박범계가 고등학교 2학년때 행방불명이 된다. 남강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다가 군대를 전역한 후 검정고시로 고졸 획득하고 연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미 군대를 갔다온 후 대학에 입학한 것이라 85학번 동기들보다 4살 많은 고학생이었다.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대학졸업 후 1990년 사법시험에 붙어 판사가 된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 잡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연수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으로 선정된 노무현을 인터뷰하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진보적인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고, 관료화되는 법원의 분위기에 질려 법원내부게시판에 과감한 글들을 게시하여 법원 내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하였다.


박범계를 정계로 직접적으로 인도한 사건은 2002년 10월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정치인)의 탈당 및 정몽준 진영 합류였다. 4월에 새천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은 6월 지방선거 참패 후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내의 중진의원들의 만든 후보 단일화 협의회 약칭 (후단협)의 후보 사퇴 권고로 코너에 몰려 있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은근히 지원하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는 김민석의 탈당을 보고 분노하여, 판사직을 사직하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오마이뉴스) 선대위 회의 때 인사하는 모습. 당시 법원장은 박범계가 당선가능성도 없는 후보를 돕기위해 사직한다며 기막혀했다고 한다.



이때가 2002년 10월 말 무렵인데,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였으나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애초에 판사였기 때문에 정 안 되면 변호사 생활이라도 하면 된다지만 


노무현이 당선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원 수뇌부는 당혹했다고 한다. 인수위원회에 줄을 댈 사람이라고는 판사 출신 박범계뿐이었고, 법무부 검사들까지 박범계를 찾을 정도였다고.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의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작고하면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하는 등의 시련이 있었고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후 대전에 둥지를 튼 노 前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결국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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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 - 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달렸으나 불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이 격전지가 되었다.


현재 수석대변인이다.


2016년 12월 15일 열린 청문회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려 박뿜계, 박두꺼비 라는 별명을 얻었다. 푸훕! 푸흐흐흐흐 장제원 국조특위원이 김경숙 前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장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경숙 증인이 교육부 감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고 동문서답을 하자, 장제원 위원은 박범계 위원장 대리에게 김경숙 증인의 답변태도에 대해 주의를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김경숙 증인, 잠깐만요, 장제원 위원, 불만이 무엇이죠?"라고 한 뒤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박범계 위원장 대리는 이후 "장제원 위원의 지적이 옳다"고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웃음만 놓고 보면 욕을 먹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발언시간이 1초 남은 상황에서 "시간을 멈추어 달라"고 한 장제원 의원과 김경숙 증인의 발뺌 상황, 또 비슷한 상황이 겹친 우연 등 총체적 난국 때문에 갑자기 빵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웃기다는 반응이다.  


장제원 의원이 한 번도 아니고 이런 모습을 2번째로 보였으니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해도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시당한 윤소하 의원도 그렇고, 웃긴 장면이 많은 청문회긴 했다 여담으로 썰전에 김경진 의원과 함께 출연했을 당시 김성태가 말하길, "판사 출신으로 한 성격 하는 법조계 출신 의원이라 웬만하면 웃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보고 정말 희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마리텔에서 합성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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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기로 급격히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가 된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


2016년 12월 22일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의 별명인 박뿜계를 직접 언급하였다.3분부터 또한 이후 민주당 팟캐스트 민주종편에서 1주일에 1번씩 본인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박뿜계 이미지로 가기로 한 건지, 초반에 1달간은 댓글창에 '뿜계형 뿜어주세요'가 많이 나오면 일부러 뿜기도 했으며, '뿜계형 손 흔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손을 흔들고 해서 진행이 늦어지기도 했다. 


의외로 신세대적 감각인지, 인기를 얻은 게 좋은 건지, 같이 진행하던 백혜련 의원이나 다른 기자와 달리 댓글창에 나오는 글들을 잘 읽고 소통을 추구하던 편이고, 이후 라디오나 다른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도 과거의 한 성격하는 이미지를 버리고, 웃고 친근한 모습으로 정치와 관계된 법정 사태에 대해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하곤 한다. 그래도 국회 내에서는 아직도 탱커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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