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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정계에 입문해 두 차례에 걸친 선거 패배를 딛고 2016년 20대 총선 때 경남 김해시 을 선거구에서 62.4%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어 52.8%의 득표율로 당선돼 제37대 경남도지사가 되었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장 대표적인 친문계 정치인으로 손꼽히며, 친문계의 새로운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이전부터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하였고, 그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해 왔다. 대통령 취임식 직전과 직후 김정숙 여사와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문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탄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데다 친노계 - 친문계의 정신적 고향인 PK 태생이기에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는 노무현-문재인의 가계를 이을 정치 지도자 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4년 신계륜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서 경험을 쌓고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스카웃되는 것을 계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걸치며 2006년 1년 동안 노 전 대통령의 수행 비서를 맡았다.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수행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사실을 문재인에게 알린 사람도 김경수 비서관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는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2011년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으나, 현직 의원인 김태호에게 밀려 떨어지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홍준표 현직 지사에게 밀려 또 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연이은 낙선에도 포기하지 않고 밑바닥 민심을 다지면서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김해시 을에 도전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거두며 승리했다.


이후 친문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전념하며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했다. 원내에 진입한 뒤 패권주의 논란으로 20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최재성, 노영민 전 의원 등을 대신해 친문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해 왔다. 이를 증명하듯 유튜브 등지에서 문재인 당시 대표의 행보를 담은 동영상을 보면 문재인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김경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 험지 중 험지인 경상남도 탈환을 위해 당 지도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4년만에 다시 한번 경상남도지사에 도전,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난관을 맞았으나 해당 의혹을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도리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하고 7회 지방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표를 얻으며 경상남도에 최초로 민주당 깃발을 꽂는 것을 성공했다.


김경수의 학창시절, 세차례 옥살이 그리고 동성동본의 결혼

1967년 12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에서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4남 1녀 중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났다. 교육열 강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괜찮은 중학교에 보내기를 위해 초등학교 6학년인 김경수만 인근 대도시인 진주시로 전학시켰다. 김경수는 친척 집에서 기거하면서 진주천전국민학교, 진주남중학교, 진주동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년 재수하여 87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입학하였다.


80년대 후반은 반독재 학생운동이 가장 극렬했던 때로, 먼저 대학생이 된 동창들과 만나면 가끔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재수 생활 동안에는 공부하기 바빠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교정에 학생들이 던진 짱돌이 날고, 경찰이 쏜 최루탄이 난무하는 현실을 알게되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강렬한 고민을 품게 되었다. 집안의 기대와 공무원인 아버지에 대한 걱정 등으로 많은 번민과 방황을 했지만 나만 출세하자고 조용히 공부만 하는 것은 시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2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인 1989년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가을 축제 때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만들었다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는 등 모두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6월 항쟁이 끝난 뒤에는 그해 여름 방학에는 ‘공장활동’(공활)에 참가했다. 수원의 와우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를 택했는데 일이 익숙지 않은 그는 입사한 지 며칠 안 돼 쇠로 된 부품의 구멍을 다듬는 작업을 하다가 왼손 검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나중에 군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한겨레


1996년 대학교 후배이자 동성동본인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사귀던 시절 결혼을 생각할 때 여자친구와는 동성동본인데다 본인은 영남, 여자친구는 호남(전남 신안) 출신이라 집안 어른들께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는데, 막상 부모님은 여자친구를 만나 본 뒤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할 때 조건이 정치 일은 해도 절대 출마는 안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남편이 민주당 국회의원에 경상남도지사까지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정치 입문

대학 졸업 후 지금은 사라진 3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리더스 비젼>)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으나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신계륜 의원실에 일하던 학교 선배의 국정감사 기간에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어떻게 보면 단기 아르바이트로 정치에 입문한 셈이다. 이후 국정감사 기간 동안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신계륜 의원이 정책비서로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했고, 국정감사 동안 보람을 느낀 김경수는 이를 승낙하면서 본격적인 보좌관 생활이 시작하게 되었다.


15대 총선에서 신 의원이 낙선하자 일종의 프리랜서가 되었고, 15대 국회에서는 유선호 의원실에서, 16대 국회에서는 임채정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2001년 말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된 유선호 의원의 요청에 따라 임채정 방을 그만두고 청와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태어나기도 전에 휴전선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던 외삼촌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3개월만에 청와대에서 보따리를 싸고 나갔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청와대의 해고는 그를 새로운 만남으로 이끌었다. 김 의원이 쉬고 있다는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광재 전 도지사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전략기획팀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준 김경수 보좌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거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청와대 입성 때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과 안면도 트지 못했지만 참여정부 집권 중반기에는 어느새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되어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가족들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정착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인 운명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날 새벽, 자고 있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김경수 당시 비서관에게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났다가 부엉이바위로 떨어져 상태가 엄중하다는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봉하를 떠나지 않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이자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김 의원은 회고했다.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해왔지만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혼 전에 아내에게 약속까지 했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는 '바보' 노무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


두 번의 낙선, 그리고 20대 총선

2011년 야권 통합을 추진한 시민운동모임 ‘혁신과 통합’ 때부터 문재인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시작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당시 주변에서 2011년 4·27 경남 김해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강했지만 고심 끝에 “꽃이 되기보다는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다. 김태호 의원과의 인연, 혹은 악역의 시작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본인이 직접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태호 후보와 맞붙어 47.88%의 적지 않은 득표율을 얻었으나 아깝게 떨어졌다. 


이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후보 수행팀을 전두지휘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지만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의 사이가 딱히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과 통합'을 시작으로 18대 대선에 이르러서 문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대선 후보 수행팀장을 맡을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다. 


첫 대선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은 어딜가나 김 의원과 함께 움직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와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꽤 큰 표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보수세가 강했던 경남이었고 보수계 중견 정치인인 김태호와 홍준표의 전국적인 지명도 등의 차이를 감안하면 선출직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에 가까운 김경수 입장에서는 선전한 편이었고, 김해시와 창원시 성산구에서는 오히려 홍준표를 앞섰다. 


또 이 선거가 이후 김경수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도지사 선거 전부터 "미소천사"라는 전국적 팬클럽이 조직되었는데,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노사모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이미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그후 절치부심 끝에 밑바닥부터 김해시 을 지역구에서 활동을 했고 민심을 얻어가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선거 때는 사실상 본인도 김해를 잘 알지 못했을 때 출마했다면 2016년 선거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서 선거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만기 후보를 꺾고 무려 62.4%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민주당 후보들 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김해시 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민홍철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고, 함께 실시된 김해시장 재보궐선거 및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김해시에서 완승하기도 했다.


당선되고 난 뒤 민홍철 김해 갑 국회의원 당선자, 허성곤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 동시에 낙동강 벨트에서 살아남은 양산시 을의 서형수 당선자와 함께 봉하마을로 가서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봉하마을은 20대 국회부터 김해 갑에 속해있지만 원래 김해 을 지역구였고, 김경수 의원의 뿌리 깊은 연고 때문에 아직도 다양한 행사 때 김경수 의원이 주최측의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하고 인수위원회를 대신할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기획분과를 맡았다.


분명히 경고합니다. 사람 잘못 봤습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 경남도지사 후보 캠프 개소식 中


6.13 지방선거의 진 주인공/ 친노계의 막내, 노무현의 숙원을 이뤄내다.


여당 최강의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계 초선 의원이 배지를 버리고 험지로 가서 전임 경남도지사와 정치 생명을 건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일은 정말 찾기 힘들 뿐더러, 야권과 보수 언론이 드루킹 사건을 과도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도리어 김경수의 이름을 전국구로 알리는 이득(?)만 가져다 줬다. 


결국 대세론을 끝까지 유지해 경남 선거에서 패배해본 적이 없었던 김태호 후보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경남도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명실상부한 20대 대선의 잠룡이자 문재인의 진짜후계자로 불리게 되었다.


2018년 4월 2일,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경남도지사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2012년 총선 때 김해시 을에서 맞붙었던 김태호 전 지사가 출마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6년 만에 리턴 매치가 성사되었다.


4월 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했는데, 원래는 오전에 경남 진주에서 출마 선언을 하기로 예정되었지만 드루킹 의혹으로 오후로 미룬 뒤 4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선언을 하였다. 


현역 의원이라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5월 3일 부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14일 본회의에서 처리되었다. 참고로 본인도 본회의에 참석해 사퇴서를 가결시켰다.


5월 17일 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개소식에도 참석하였다. 드루킹 특검이 빨라도 6월 25일 이후에 시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전에 완료되는 선거 운동 기간 중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걸로 보인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5월 31일부터 시작했다.


유세 기간 동안 상당한 인파를 몰고 다니면서 당선이 확실해 보였으나 정작 6월 14일 오전 12시 32분이 되서야 '유력'으로 경남도지사 당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출구조사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16%나 앞서는 것으로 나왔음에도 개표 초중반에는 김태호 후보가 5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앞서면서 이변이 연출되나 싶었지만, 김경수 후보의 득표율이 치고 올라 밤 11시를 기점으로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개표율이 20% 넘긴 시점에서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 김태호 후보가 앞섰던 것은 경남에서도 특히나 보수세가 강한 서부 지역을 먼저 개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민주당계로서는 최초로 배출한 경남도지사이며, 친문계 핵심 인사로서 당원들의 지지도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드루킹 사건이나 경남도정에서 이렇다 할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계속 언급될 걸로 전망된다. 김경수 본인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더 큰 정치에 도전할 뜻이 있냐는 질문에 "더 큰 정치 부분은 제가 져야 할 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남도민들께서 저한테 주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드루킹 사태부터 시작된 과정에서의 주목도, 박빙으로 비쳐진 드라마틱한 개표 과정 등으로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로써 실로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하였음이 명백해졌고, 친문계 지지층을 이어받을 차기 대선 주자로 명백히 떠오르기까지 했다. 


무소속의 깃발을 들고 경남도지사에 도전해 성공한 후보가 있었고, 그것 만으로도 엄청난 주목을 받은 바가 있었지만, 김경수는 아예 민주당 깃발을 들고 지역 기반 하나 제대로 없는 사지에 나가서 한국당이 경남에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를 상대로 예전의 패배를 설욕하면서 승리하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성과를 낸 것.이로 인해 그도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한 것이다.


당선 다음 날인 15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민주당 광역단체장 당선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거제, 통영, 고성, 사천, 남해, 하동, 진주, 의령, 함안 9개 시군을 돌며 민생 현안을 재점검하였다. 법률상 공식 임기가 시작하는 2018년 7월 1일에 재난안전대책회의를 열었다. 본래 7월 2일 공식 취임식을 행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에 접근하자 취임식을 취소하고 국립 3·15민주묘지와 창원 충혼탑을 참배하고 경남도청에서 취임 선서를 하며 약식으로 취임 행사를 진행했다.



제38대 충청남도지사.


1959년 충청남도 천안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7기 수료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통합21에서 정몽준 대표최고위원의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전용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충청남도당 위원장, 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원내부대표, 충청남도당 위원장,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손학규 계파로 분류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3년 12월 9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하여 새누리당의 반발을 샀다. 근데 매우 틀린말도 아니여서 자유한국당이 들추지 않고 있다. 


2014년 3월 다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5년 2월부터 6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천안시 지역구 신설로 인한 지역구 조정으로 인해 천안시 병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49.7%의 득표율로 당선 4선 의원이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최초로 충남 지역에서 내리 4선을한 의원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칭찬과 논란

2017년 8월 3일 수해피해지역인 천안에서는 묵묵히 수해현장복구를 자발적으로 나서서 피해주민들을 도와 이 시대에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호평이 자자하다. 기사 수해기간에 유럽으로 놀러가 반성은커녕 국민들을 싸잡아서 레밍으로 비하한 이분하고는 정말 비교가 된다.



2017년8월 22일 해경 경비함을 타고 독도를 탐방해서 비판을 받고있다. 양승조는 '국민안전 공감 캠프' 참가자 80여 명과 함께 1박 2일로 독도를 탐방하고 왔다. 함장을 제외한 나머지 승조원(해경)들은 지시에 따라 캠프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침실을 내주고 쪽잠을 자는 등 해경을 대상으로 한 갑질논란이 일어났다. 


경비함으로 독도를 다녀온 것이므로 이 기름값이든 인건비든 국민 혈세에 해당되기도 하여 비판받고 있다. 동해해양경찰서장은 민간단체를 지원할 수도 있으며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어서 결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의에서 한 것도 다른 사람에겐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



충청남도지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남 출신으로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최초로 충남 내리 4선에 성공한 인물인 만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복기왕 아산 시장과 함께 차기 충남지사로 후보군으로 오르내렸다. 결국 1월 4일, 충남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마 이후 YTN과의 인터뷰에서 친문 - 비문 구분은 너무나 도식적이고 형식적 구분이라고 말하면서도 강력한 경선 경쟁자 박수현 대변인은 당내 대통령 경선 당시 문 대통령을 위해 힘쓰지 않았고 탕평의 일환으로 대변인에 임명되었다고 견제하면서,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사무총장에 임명 되었다며 자신을 비문으로 보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3월 5일,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의 성폭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악재가 발생하는 듯 싶었고, 이에 따라 민생탐방 결과 보고 기자회견을 취소했다고 한다.


정치공작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수현 충남도지사 후보의 내연녀 논란을 주장했던 민주당 당원인 오영환 씨가 지지를 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3월 14일 박수현 충남도지사 후보가 위의 내연녀 논란으로 자진사퇴하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3월 20일 충남지사 전략공천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4월 13일 복기왕 예비후보와의 경선 끝에 승리를 거두고 충남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었다. 현역의원이므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며, 5월 1일 사퇴를 선언했다. 양승조 의원을 포함하여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의원들의 사퇴동의안는 5월 14일에 통과되었다.


자유한국당측의 충남지사 후보로 불사조이인제가 추대되면서 그와 선거전을 치르게 되었다. 전임 안희정 지사의 성폭행 스캔들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디버프가 있긴 하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야당의 지지율이나 상대 후보의 화려한 행적을 생각해보면 무난히 당선될 듯하다. 해당 문서를 살펴보면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양승조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차지했다.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현재 63.7%로 이인제 후보를 넉넉히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 62.6%로 출구조사와 큰 차이 없이 승리했다.



TMI

2002년 선거 이후 공석이 된 천안 갑 선거구를 차지하기 위해 4개월간 한나라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3김 정치 타파에 매력을 느꼈지만, 돈 문제와 원칙과 정의가 없는 정당이라고 생각해 탈당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현대 에쿠스를 탄 적이 있었으며, 주행거리가 화제가 되었던 원혜영 의원의 그랜저 XG보다 1만 km 더 달렸다고 한다. 참고로 원혜영 의원은 2013년에 그랜저를 체어맨 리스로 바꿨다.


마라톤을 취미로 삼고 자주 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법고시에 번번이 탈락한 이유가 약한 체력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기 위해 22일간 단식과 삭발 투쟁을 하기도 했다. 사진은 21일째 휠체어 투혼을 하는 장면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구본영이라는 국무총리실 관리관을 박상돈 의원과 함께 영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구본영은 2014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더불어민주당계의 천안시장을 맡게 되었다. 단, 선거 당시 돈을 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후 다시 천안시장에 출마해 박상돈 후보와 대결하여 당선되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던 11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범죄조직/영어로 해석하면 '섹스 지하드' 라고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소위 이슬람적인 정결의 상징인 차도르, 히잡이나 니캅도 안 쓰는 모든 세속주의 무슬림 여성, 비이슬람 여성 및 서구 여성도 포함하는 불신자 여성들은 문란하고 퇴폐적인 치녀로 본다. 


따라서 그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거나 심한 경우엔 아예 같은 인간 취급조차 하질 않아, 무슬리마가 아니므로 이슬람의 확산을 위해서 무슬림 남성이 나서서 자유롭게 죽이거나 성적 쾌락을 위해 즐기며 이용 착취하고, 밭에 이슬람의 씨를 뿌려 무슬림의 아이를 임신시켜 낳게 해줘야 하는 성노예이자 하등 존재로 보기까지 한다. 


또한 이슬람 세계관에서 비이슬람 지역은 이슬람 우위 지역과 대비되는 '전쟁의 지역'(Dar-al-harb)으로 분류되며, 비이슬람 지역의 비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 포교 지하드를 위한 전쟁 상태이므로 포로·성노예와 동급으로 취급해 무슬림 남자가 지하드를 위해서 비신자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착취해도 된다는 개막장 교리도 가지고 있는데,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떠나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사고방식은 말도 안되는 걸 알겠지만 문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무슬림들은 인간의 논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즉 무슬림들은 지하드 알 니카 논리를 가지고 이런 성범죄 행위를 이슬람 종교 레벨에서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이슬람 설교자들이 서구 사회를 까대는 주요한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성적 방종', '성범죄', '동성애', '소아성애'이다. 그런데 오히려 서구 기준으로 조사하면 성범죄자 및 성도착증 환자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집단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이다. 


극단주의 이슬람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라고 주장하며 부르카로 여성의 몸 전체를 둘러싸고 남성 동행 없이 통행을 금지시키며, 마네킹에게도 부르카를 씌우는 극단적인 제재를 했는데도 오히려 이 법의 집행자들에 의해 이러한 행태가 판을 치니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라 함과 동시에 성범죄의 근원은 보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성범죄자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비무슬림 지역으로 건너온 무슬림들이 영국 내에 파키스탄계 커뮤니티에서 무려 로더럼의 1,400명의 소녀들을 윤간하고 인신매매로 팔아넘겨 매춘을 시켜 임신시킨 성범죄를 저지른 집단이 발각된 것과 더해서, 독일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무슬림들이 현지 여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 여자 성노예


한국에서도 남아시아, 중동, 비서양계 이슬람 백인종들이 서양인을 사칭하여 한국 여인들을 농락하여 임신시켜 태어난 혼혈아 등 한국판 코피노 사건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일례로 비정상회담에서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유부남 무슬림 터키인이 총각 행세를 하며 여러 미혼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가, 물의를 빚고 하차한 바 있다. 


남성은 지하드를 통해 천국에 가서 72명의 처녀를 취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이게 불가능하니 전쟁터에 와서 지하디스트들의 아내가 되어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라는 논리인데, 논리 자체도 지금 현재 윗동네에서 많이 써먹던 논리고, 그 내용도 자원이며 아내가 되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성노예를 만드는 일이다. 


섹스 지하드 자체는 2013년에 튀니지 여성들이 시리아에 가서 반정부군에게 지하드랍시고 자발적으로 성접대를 한다며 튀니지 종교계에서 문제가 제기되었고, 아사드 일당이 반정부군의 정당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선동 소재로 사용한 사건이다. 근데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문제 제기를 한 작자들부터가 문제인지라 프로파간다에 도시전설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모든 시리아 반군이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다에쉬만큼은 진짜로 그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2015년부터 국가를 자칭하는 테러리스트 다에시는 여타 집단들보다 더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지하디스트들에 대한 성관계 제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홍보하며 때로는 세뇌한다. 여성들이 외로이 싸우는 지하드 전사들에게 성관계를 해주어야 이들의 사기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지하드에 공헌한다는 것.


이슬람 성범죄



7월에는 독신 남성 지하디스트를 위하여 결혼 전담 사무소를 열었다. 물론 그 실상은 무력으로 여성을 강탈하는 납치혼이다. 8월에는 신자르 대학살과 엮여 야지디 교도 여성들을 납치해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결혼시키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이 혼전순결을 강조하니 총칼을 앞세워 억지로 결혼을 시키며, 유부녀는 강제로 이혼시키고 이교도는 개종시킨 뒤 지하디스트와 결혼을 시키고는 새 아내니까 율법상 문제가 없다며 강간하는 눈가리고 아웅에 가깝다. 


애당초 상호 간의 동의조차 없거늘,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결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좀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칭 이맘들이 혼인신고와 이혼을 반복하여 형식적으로만 '결혼' 절차가 들어가는 사실상 윤간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다. 자칭 종교인이 멋대로 극단주의적 교리와 막장짓을 지하드랍시고 권장하고 있는 꼴이다.


또한, "전사들과 결혼하고 앞으로 전사가 될 아이를 낳게 하자"는 황당한 목적으로 서구 여성에게도 적극적으로 지하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가는 여성도 있다는 거다. 이런 여성들이 '섹스 지하드'라는, 실질적인 매춘을 쓴다는 뉴스도 있다. 


이런 황당한 주장들이 어떻게 먹히는지 예시를 들자면 프랑스에서 한 소녀를 상대로 지하드주의자가 최소 2년에 걸쳐 세뇌를 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공격적이고 강간을 당한다는 강박 관념을 주입하며,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이상화 하는 방법으로 세뇌를 하는 것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 용맹한 이슬람 전사와의 로맨스와 모험 등의 웃기지도 않는 떡밥...


이 여성들은 몸치장과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동년배 서구 여성들을 경멸하며, 종교적 열정으로 충만한 자신은 이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다에쉬에 지원한다고 한다나. 실제로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탄생 과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을 접하면서 이전의 자신을 서구 문명의 쾌락에 물들어 살던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로 여기다가, 이슬람 교리에 따른 엄격한 삶을 실천하면서 여기에서 '도덕적 성취감'을 얻는 것. 이런 선전으로 1,000명 중 1명씩만 낚아도 다에쉬는 남자건 여자건 꾸준히 새 인력을 보충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은 마약을 맞고 사실상의 성노예가 되어 지하디스트들의 변태적인 성착취에 시달리게 된다. 


다에시 조직원들은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아내들과 어린 성노예들을 성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극도로 보수주의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다에쉬의 이념과는 달리, 실제로 많은 수의 다에시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급여의 상당치를 자신들이 납치한 어린 아내들을 위한 변태적인 의상을 구입하는데 지출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물론 이러한 결혼 후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들은 잡히면 그 즉시 돌로 쳐 죽이는 투석형에 처해진다. 


의사 이스마일 오스만(Dr. Ismail Othman)과 그 아들 왈리드(Walid)의 사례도 있다. 


이 사람은 모술에서 거주하며 후세인과 바트당의 열성 지지자였다. 바트당 이라크군 군의관이었으며, 말리키 정권에 대한 수니파의 공격도 지지하고, 모술 점령에 참여한 바트당 구 이라크군 장교와도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반면 와하비였던 아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뒤로 모술 지부에 가담했으며, 자기 아버지에게도 가담하여 지역 유지가 되라고 종용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름 아버지를 고위 간부로 만들고 싶은 사이비 종교인의 비뚤어진 효심이겠지만 9월 14일, 왈리드가 한 외국인 지하디스트 친구인 오마르(Omar)와 함께 찾아와서 "시아파 불신자들과 싸우는 영웅들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을 성상납해야 한다"는 패륜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하고 한술 더 떠서 "유부녀를 지하디스트들에게 바칠 수 없으니 어머니와 이혼하라"는 패드립까지 거리낌 없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트만의 딸은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이스마일은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지만 이미 아들은 구제불능. 이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아내와 딸을 지하로 피신시키고 자기 아들과 그의 친구를 쏴 죽였다. 


그 후, 그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망명했고, 이 경우는 진짜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법원은 변호사의 요청을 거부하고 1급 살인죄를 적용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아마도 시아파 정권에 대한 테러와 봉기를 옹호하던 골수 바트당 지지자였다는 점이 문제로 작용한 듯.


그나마 이 '섹스 지하드' 라는 나름의 절차도 "무슬리마"에게 한정된 것. 다에쉬는 자신들의 홍보지 다비크에서 그야말로 대놓고 '이교도는 남자는 노예로 삼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참고로 이들의 이론은 '아내'는 4명으로 제약되지만, 성노예와 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는 아예 기독교인과 야지디인 여성들을 공적으로 가격을 매겨 성노예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하드 알 니카


더 정신 나간 것은 이게 나이가 어릴수록 가격이 올라가며 나이에 하한선조차도 존재하지 않아, 0~9세 여아들이 172$ 가량에 성노예로 팔려간다는 것. 물론 주 구매층은 종교를 빙자해 자신의 정신병을 합리화하는 소아성애자와 성도착증, 지배 성향의 성욕을 가진 막장 변태 작자들.


10월 말, 노예가 될 뻔하다 가까스로 탈출한 D.A.라는 약명의 15살 야지디 소녀가 인터뷰에 응하였다. 


조카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 중, 노예사냥꾼으로 추정되는 다에시 군벌들에게 포위되어 남녀로 흩어지고 팔려나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각각 19살, 12살의 자매들과 함께 능욕당해 헤어졌다고 한다. 


시리아의 알레포까지 끌려와 수많은 인질들과 함께 노예로 팔려나가길 기다리는 과정에서 본인을 포함한 5명의 또다른 여자들과 창문 사이로 탈출 시도를 하여 가까스로 건물 밖으로 나왔고, 운 좋게도 쿠르드인과 접촉하여 오빠와의 통화가 닿았고 이를 통해 탈출을 위한 몸값 거래를 성사받아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혹자에 따르면 나머지 둘까지 추가로 구출하던 쿠르드 남성은 돈을 원했던 것 같다고. 아니나 다를까, 같이 탈출한 야지디인 경찰의 딸인 19살 소녀에게도 역시 몸값 15,000달러를 받아내는 등,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이용해 영리를 추구하는 구조를 빙자한 몸값사냥꾼이 성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봤자 다에쉬 군벌들은 더하면 더했다. 


D.A.가 끌려갔던 행렬 중엔 11살쯤 되는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일부 인질들에겐 심지어 윤간을 포함한 성적 학대도 만연하였으며, 몇몇이 탈출을 시도하던 과정 중 발각되어 군벌들로부터 상습적인 구타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강제결혼을 걱정하여 자살을 고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지 한 명의 주장에 의하면 해당 인터뷰 주인공 일행의 경우는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여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이들의 부모와 남은 자매들은 여전히 다에시 세력에 억류 중인 걸로 추정된다. 


야지디교도들은 악마숭배자 취급 당하여 민간인조차도 적지 않게 살해당하는데, 그 중에서도 D.A.의 아버지를 포함한 남성과 소년들의 목숨은 노예나 병사로 팔려나갔을 경우를 감안해도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노예시장' 동영상도 가관인데, '노예상'과 '고객'들이 마치 장날이라도 되는 마냥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서로 제시 가격을 올리는 낙찰 경쟁부터 시작해, '매물'이 벽안이면 돈을 더 쳐주겠다거나, 이빨이 빠져있는지를 확인하여 진짜로 15살인지 따져보겠다는 모습이나,심지어 글록 한 자루에 소녀를 '물물교환'을 하겠다는 등, 단순히 인간말종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형용하기 힘든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고대의 총력적인 약탈 전쟁이나 중세-근현대 전쟁의 군소 약탈 범죄로 나올 법한 수준을 뛰어넘어서 야지디, 크리스천 같은 이교도들을 대대적으로 죽이거나 매매하는 건 물론 심지어 같은 수니파까지 노예로 취급하는, 인류 역사에 유래 없을 희대의 약탈 군벌이 지구에 건재하는 이상 다음과 같은 비극들은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계속 반복될지도 모른다.


2014년 12월 4일, 지하드 및 테러리즘 감시단체인 중동보도연구기관(MEMRI)에서는 다에시의 출판 기능을 맡은 알 힘마 도서관(Al-Himma Library)에서 배포한, 여성 노예에 대한 문답을 담은 전단지를 입수하여 영어로 번역해 공개하였다. 


이 전단의 내용에 따르면, 포로로 잡은 이교도 여성을 노예로 만들고, 완전히 재산으로 취급하여 14살이 지난 아이는 부모에게 떼어내 사고 팔 수 있고, 증여하거나 상속하고 소유자가 허가한다면 타인의 노예와 성관계가 가능하며, 징계 목적으로 얼굴을 제외한 신체 부위를 때리는 것이 모두 허용된다.


이제는 쿠란 암송 대회를 시행해서 우승자에게는 성노예를 상품으로 제공하는 짓거리까지 하고 있다. 하는 짓거리가 이미 악마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기사. 참고로 이 짓거리를 하는 집단은 이슬람권 내에서 다에시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점령지에서 에이즈 등의 성병과 악성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이외의 것은 다 말살하는 바람에 의료 지원은 커녕 전문인력과 물자조차 부족하고, 지하디스트들의 무분별한 성적 방종 때문에 성병이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위에도 쓰여져 있지만 이미 자발적인 지하드 알-니카는 약과에다 성노예와의 난교는 기본이고, 근친상간에 남아 강간에 수간을 한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상황인데, 보통 이슬람을 포함한 일반적인 종교적 시각에서 봤을 때조차도 가히 소돔과 고모라의 재림이라고 봐도 될 상황. 


물론 이들의 피해자들은 자의가 아니라 이들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납치당해 약탈당하는 상황이라 소돔하고의 비교도 실례일 정도.


물론 이 악당들이 성병에 걸려 고통받다가 죽는 것은 마땅히 인과응보를 받는 것이지만, 이 사악한 테러리스트가 토벌되고 난 뒤에도 피해자들이 이들이 옮긴 성병에도 고통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 성범죄 성노예

글 읽기 전에... 난민에 찬성하는 분들은 마음에 손을 얹고,, 본인의 딸, 혹은 여형제 또는 부인을 지금 제주도에 있는 난민들을 함께 집안에 둘 수 있고, 본인이 집앞 슈퍼에 10분이라도 다녀올 수 있다면 인정! 




2016년과 2018년 사이에 예멘 출신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대한민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사건..


대한민국은 많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입국하기 위해 비자가 필요하지만 예외적으로 제주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별다른 조건 없이 30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해 예민 난민들은 이 제도를 이용해 제주도에 합법적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예멘이 이슬람 강세 국가인 만큼 이번 난민 거의 전원이 무슬림이다.


한국이 이전에 난민이 유입되지 않았다거나 난민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특수한 이유는 한국에서 '통제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낮은 난민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대규모 유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거의 전원이 무슬림인 탓에 한국에서도 유럽 난민 사태와 엮여 한국에서 본격적인 반이슬람, 반난민 여론을 일으켰다.


예멘에서 내전이 길어지면서 난민들 중에는 무비자를 통해서 제주도로 입국하는 경우가 2018년에 늘어났다. 2015년까지는 예멘인들의 제주도 입국은 없었지만, 2016년에 7명, 그러다가 2017년에 42명으로 늘어나다가 2018년에는 500여 명까지 늘어났다.


예멘에서 제주도로 온 난민들의 수가 500여 명까지 늘어나자 제주도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원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난민들을 반대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난민들의 제주도 입국 사실이 보도되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예멘 난민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들이 올라왔고, 그 중 하나가 청와대 측에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이유로 삭제하였다. 


한편,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은 예멘 내전이 길어지면서 제주도에 살고 싶다는 것을 밝혔다. 


르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를 경유한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상황이 낫긴 하지만, 말레이시아 역시 자국민 우대 정책이 심하고 급료가 짜서 한국으로 다시 넘어온다고. 말레이시아 측이 예멘 난민들의 체류 기간 연장도 불허하자 제주 노선을 이용했다. 그리고 일본 노선을 이용한 예멘인들 중에는 일본도 예멘인들의 입국을 거부하자 제주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2017년에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예멘 출신 입국자들 7명이 사우디 국왕 암살 테러 모의를 하다가 검거된 이력이 확인됐다. 현재 제주 난민 500여명이 모두 그러한 부류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안 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불안만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난민 신청자들 중에는 20~3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소수 10대 청소년도 있다. 561명 중 남성이 대다수이고 여성은 45명, 성인과 미성년자로 따지면 미성년자는 26명이고 나머지는 성인이라고. 예멘에서 대학을 졸업했거나 호텔 지배인, 기자, 택시기사, 교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소수의 고학력자들도 있다. 


난민의 입국은 필연적으로 브로커를 거쳐야 하기에, 브로커를 끼고 입국했다고 해서 예멘 난민들이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는 인터넷에서의 시각은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난민비자를 악용해 불법 취업한 여러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적발도 힘들기에, 불법취업에 목적을 둔 신청인지에 대한 심사를 엄격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 무장한 난민들 "900달러면 한국간다"


예멘을 떠난 난민들은 ①예멘→수단 ②예멘→사우디아라비아 ③예멘→지부티 등 크게 3가지의 이동 경로를 택한다.


하지만 이후 말레이시아→제주의 경로를 택한다. 말레이시아는 예멘인에게 비자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이슬람 국가라서 그렇다고 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제주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것이다.


예멘에서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가는 데 약 300달러, 다시 말레이시아까지 이동하는 데 비용이 350~400달러, 말레이시아에서 제주까지는 약 300달러가 든다고 했다. 


예멘에서 제주까지 900달러(한화로 약 100만원)정도면 된다는 이야기다.


예멘인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비행기 티켓을 조회해 비행기로 이동했다. 이들은 이미 제주도에 오기 전부터 페이스북과 왓츠앱,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어왔고 한다. 한 예멘인은 "제주의 무사증 제도와 난민 신청 방법들을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배웠다"며 "항공권 구입처와 숙소 추천까지도 있다"고 했다.


위 기사에서 예멘 난민들은 난민 전문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은 "우리 난민을 두고 '브로커가 있다', '가짜난민이다' 등 한국인 사이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며 "페이스북과 왓츠앱 등 SNS가 우리에게는 브로커다. 솔직히 브로커를 쓸 만큼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 난민들 중 브로커를 통해 들어온 자들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예멘 난민으로 가장한 기자와 난민 브로커와의 대화 / [조선일보]난민 브로커 "134만원 보내면 서울 취업 보장"


위 대화에 나온 난민 브로커는 페이스북에 "서울 가서 취업도 할 수 있다. 100% 보장한다", "한국에서 하루 10~11시간 정도 일하면 한 달에 10만~12만 5,000루피(163만~204만원)를 벌 수 있다", "최근 20대 인도인 두 사람을 제주도에 보냈다"라고 최근까지 광고하고 다녔다고한다. 무비자 입국 이후 특별한 갱신이 있지 않는한 제주도를 벗어나는 건 불법행위이므로 브로커들도 처벌받아야 한다.


아무튼 경찰에 따르면 한국행을 알선하는 난민 브로커들은 국가에 따라 150만~500만원을 받고 한국행을 알선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전쟁을 피해 해외로 나가는 '진짜 난민'들도 브로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최근 한국에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 가운데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온 '경제적 이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제적 이주를 부추기는 사람이 난민 브로커들이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중국인들이 제주도로 무비자 입국한 후 '모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하고 일감을 찾아 육지로 간 경우가 많았다"며 "이 과정에 개입했던 브로커들이 중국인 대신 예멘인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의 난민 신청을 알선한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즉.. 제주도에 체류하는 난민은..  브로커에게 돈도 지불하고 스마트폰으로 쾌적한 숙소도 알아보는 20~30대 남성 




[출처 : https://namu.wiki/w/2018%EB%85%84%20%EC%A0%9C%EC%A3%BC%20%EB%82%9C%EB%AF%BC%20%EC%82%AC%ED%83%9C]

제1조(목적) 이 법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이하 "난민협약"이라 한다)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67년 의정서」(이하 "난민의정서"라 한다) 등에 따라 난민의 지위와 처우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다른 법률의 적용) 난민인정자와 인도적체류자 및 난민신청자의 지위와 처우에 관하여 이 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출입국관리법」을 적용한다.


제45조(난민지원시설의 운영 등) ① 법무부장관은 제34조, 제41조 및 제42조에서 정하는 업무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난민지원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

② 법무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제1항에 따른 업무의 일부를 민간에게 위탁할 수 있다.

③ 난민지원시설의 이용대상, 운영 및 관리, 민간위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46조(권한의 위임) 법무부장관은 이 법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


부칙(제11298호)

제2조(적용례) 이 법은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난민인정 신청을 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


난민인정절차와 처우 등을 규율하는 법률. 2012년 2월 10일 법률 제11298호로 제정되어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92년 12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동 협약 의정서에 가입하고, 출입국관리법에서 난민에 관한 인정절차를 규율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법 규정이 없어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난민인정절차 및 난민 등의 처우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등 국제법과 국내법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 이 법률이 제정되었다.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외국인 :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증명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


제주도 이슬람 난민

제주도 난민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국가(이하 "상주국"이라 한다)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말한다(제2조 제1호).


"외국인"이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같은 조 제6호).


난민 인정의 요건이 되는 ‘박해’라 함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7두19539 판결) 


한국 난민법난민 문제


난민은 국적국을 떠난 후 거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같은 행동의 결과로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발생한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는 것이고, 난민으로 보호받기 위해 박해의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같은 판결).


그러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인정의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할 것이나, 난민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그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입국 경로, 입국 후 난민신청까지의 기간, 난민 신청 경위, 국적국의 상황,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정도, 신청인이 거주하던 지역의 정치·사회·문화적 환경, 그 지역의 통상인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등에 비추어 전체적인 진술의 신빙성에 의하여 그 주장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할 것이다(같은 판결).


난민 대우


거지처럼 입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생명이 위협받는 공포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고국에 두고 온 난민 신청자들의 모습에서 왠지모를 여유와 자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난민 인정자와 난민 신청자 둘 다, 강제송환이 금지된다.

난민인정자와 인도적체류자 및 난민신청자는 난민협약 제33조 및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 제3조에 따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송환되지 아니한다(제3조).


"난민인정자"란 이 법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외국인을 말한다(제2조 제2호).


"인도적체류자"란 난민에는 해당하지 아니하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인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을 말한다(같은 조 제3호). 


인도적체류자도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체류자격을 받거나 체류자격에 대한 변경허가 또는 체류기간의 연장허가를 받아야 하며(영 제2조 제3항), 인도적 체류허가의 권한은 관할 사무소장등에게 위임되어 있다(영 제24조 제1호).


"난민신청자"란 대한민국에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제2조 제4호).

  •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
  • 난민불인정결정이나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을 받고 이의신청의 제기기간이나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의 제기기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


지금부터 "난민신청자"에게 부여되는 지위와 처우를 주의 깊게 볼것!!!! 


난민인정 신청과 심사 과정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 및 관할 출입국항에 난민인정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비치하고 이 법에 따른 접수방법 및 난민신청자의 권리 등 필요한 사항을 게시(인터넷 등 전자적 방법을 통한 게시를 포함한다)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제7조 제1항).


출입국관리직공무원은 난민인정 신청에 관하여 문의하거나 신청 의사를 밝히는 외국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제5조 제4항, 제6조 제5항, 영 제3조 제4항).


법무부장관은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에 면접과 사실조사 등을 전담하는 난민심사관을 둔다(제8조 제4항 전문). 


법무부장관은 난민의 인정 또는 난민인정의 취소·철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법무부 내 난민전담공무원 또는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난민심사관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조사하게 할 수 있다(제10조 제1항)


이러한 조사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난민신청자, 그 밖에 관계인을 출석하게 하여 질문을 하거나 문서 등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법무부 내 난민전담부서의 장 또는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난민전담공무원 또는 난민심사관이 난민의 인정 또는 난민인정의 취소나 철회 등에 관한 사실조사를 마친 때에는 지체 없이 그 내용을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같은 조 제3항). 



난민신청자의 지위 및 처우 

난민신청자는 난민인정 여부에 관한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그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대한민국에 체류할 수 있다(제5조 제6항).


법무부장관은 난민신청자에게 다음과 같은 처우를 할 수 있다.


생계비 등 지원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신청자에게 생계비 등을 지원할 수 있으며(제40조 제1항), 난민인정 신청일부터 6개월이 지난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신청자에게 취업을 허가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다만, 취업허가의 권한은 관할 사무소장등에게 위임되어 있다(영 제24조 제9호).


주거시설의 지원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신청자가 거주할 주거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제41조 제1항)


의료지원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신청자에게 의료지원을 할 수 있다(제42조). 다만, 의료지원의 권한은 관할 사무소장등에게 위임되어 있다(영 제24조 제9호).


또한, 난민신청자 및 그 가족 중 미성년자인 외국인은 국민과 같은 수준의 초등교육 및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제43조).


다만, 다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난민신청자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위와 같은 처우(취업허가 제외)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제44조).

  •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
  • 난민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 또는 난민인정이 취소된 사람이 중대한 사정의 변경 없이 다시 난민인정을 신청한 경우
  • 대한민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체류기간 만료일에 임박하여 난민인정 신청을 하거나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이 그 집행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난민인정 신청을 한 경우


일단 직접 찾아본 봐에 의하면 일단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 접수만 하더라도 한국에 머물 수 있고, 최대한 지지부진하게 절차를 질질 끌고 가면 얼마든지 머물 수 있고, 난민인정 "신청일"만 6개월을 넘기면 취업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됨..




난민인정 심사 



[출처: https://namu.wiki/w/%EB%82%9C%EB%AF%BC%EB%B2%95]

우선 리비아는 어떤 나라인가? 


같은 이슬람 문화권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에 비하면 개방적인데 카다피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럽 유학을 하여 개혁. 개방적 사고를 갖추었다는 평. 카다피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2008년 정계은퇴를 발표하긴 했지만 그 후로도 외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후계자가 유력하다는 평이었는데 2011년 8월 21일 리비아 내전 와중에 시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지만 아버지가 사살당하고 해외로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기에 정권을 잡기엔 어려워보인다.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아랍계 셈족이며 통용언어는 아랍어. 그리고 국토의 90% 이상이 사하라 사막이고 동쪽 이집트와의 접경지역은 리비아 사막이라 농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구 밀도도 대단히 낮은 편.


석유 덕분에 국가가 돈이 엄청나게 남아 도는 관계로 2006년에는 전 초등학생들에게 전자민주주의 확대라면서 120만대 노트북을 무상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넘치는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 내전에 지원했다. 


대한민국과는 1978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했다가 2년 후인 1980년에 대사급으로 격상되었으며, 북한과는 1974년에 수교했다. 과연 유유상종. 아래의 사건들로 인해 빡 돈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 의해 대사관이 대표부로 격하됐으나, 리비아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끝난 뒤 다시 대사관으로 격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우리나라 건설 회사인 동아건설이 1983년 리비아 대수로 건설에 나서면서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후 다시 잊혔다. 200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아프리카 무역에 있어서 6위의 수출 대상국이었다.(4억 6,000만 달러 수출)


의외로 한류 열풍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빅뱅은 거기서도 유명하다고... 심지어 스피드왕 번개까지도 방송되었다고 한다.


대수로 건설 붐 당시엔 대한항공이 트리폴리에 취항했었다. 대한항공이 리비아 취항 당시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가 났었는데, 현대건설 전무 김윤규(이후 현대아산 부회장까지 오른다.) 씨가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눈을 파르르 떠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 대한민국에도 리비아인들이 꽤 거주하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인 아미라가 있다.


리비아 한국 스파이 사건

앞서 말한대로 한류 열풍도 있었지만, 자원은 많으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이 2가지는 절대적인 골칫거리였다. 


그런 골칫거리 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 1980년대 한국 동아건설이 공사하여 이뤄낸 지하수 공사였다. 아주 물이 넘쳐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시간과 공사 끝에 꽤 해낸 이 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많았다. 당시 리비아 여론도 환호했고, 오죽하면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냈으며, 카다피가 서투른 한국어로 동아건설 회장을 "헤잔님"(회장님)이라고도 불렀을 정도였다.



이렇게 한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여론은 2010년 7월경에 한국의 개신교 목사가 선교하다가 잡히는 사건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국 대사관 상주직원 3명도 철수하고 현지 공사에 필요한 인원도 보내지 못하는 등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


일개 목사 1명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거치고는 리비아의 대응이 너무 과한지라 외교계 일각에서는 무언가 더 큰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줄곧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알고보니 한국 외교관의 간첩행위로 인해 국교가 파탄난 것이었고 외교당국이 이것을 은폐, 축소했다가 때마침 불법선교의혹을 사던 목사가 추방당한 것을 언론에서 아무 의심없이 불법선교행위로 국교가 파탄난 것으로 보도해버린 것(...). 


이미 아랍 측 언론에는 이 일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현재는 이 간첩행위가 단지 한국의 국익을 위한 정보수집행위였나 아니면 다른 나라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조사중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체포된 목사가 불법선교를 한 적 없으며 그저 리비아 대학에서 아랍관련 학문을 공부하던 중 외교적 구실 마련을 위해 체포당했다는 주장도 있고, 실은 목사가 국정원 스파이라는 설까지 있다.


리비아 측에서는 국정원이 카다피의 차기 후계자 정보를 수집하다 체포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선 그저 기업활동을 위한 통상적 업무수행이었다고 해명하자 이제는 한국 국적의 기업인들도 첩보 작전에 참여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는 이 사건 이후 한국과 외교를 끊는 것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라서 리비아에 나가 있는 건설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참여한 건 맞긴 한데 참 입장이 애매하다. 왜냐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왜 통역했냐면 국정원 요원이 아랍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랍어 수요는 대폭발인데 가르치는 곳은 한손에도 안 들어가고, 아랍어 능력자들은 상대적으로 연봉 적고 이런저런 조건에 시달리는 직업들을 기피하기 때문.


게다가 리비아는 한국의 외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 리비아와의 교류로 얻는 경제적 이득도 큰 편이며 전체적인 영향력에서 북아프리카에서 리비아를 능가할 만한 나라는 이집트 정도를 제외하면 없기 때문. 게다가 리비아는 미국이나 한국이 적대하는 나라들과도 꽤 친하게 노는 편이라 이곳에서 정보를 얻어가는 게 많았다. 국정원 니들이 코렁탕 마셔라.


그런 가운데 리비아 주간지의 기사를 바탕으로 내보낸 KBS의 보도가 또 파문을 일으켰다. KBS는 리비아 주간지를 인용해서 한국 정부가 스파이 행위를 했음을 시인했으며 사죄의 의미로 리비아가 한국에게 10억 달러(1조 2천억원)에 해당되는 것을 내놓지 않을 경우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는 것. 


일부에서는 10억 달러짜리 공사를 공짜로 해주라고 요구한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에 외교부는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외교부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 그리고 10억 달러에 대한 것을 부정한 바로 다음날, 리비아에게 10억달러치의 경제 지원을 검토중이란 말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차피 카다피 정권이 작살났으니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계속된 내전과 정치적인 혼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2017년)에 일어난 맨체스터 테러를 일으킨 리비아출신의 아베디와 동생이 다에쉬와 연계되고 심지어는 다에쉬에 가담한 튀니지인들이 리비아를 통해서 시리아와 이라크로 건너가는 등 국제테러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내전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 되어서 2017년에 한국에 온 리비아 정부 대표단은 국회일정으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 국토부 차관에게 간곡하게 면담을 요청 하였다.


[출처 : https://namu.wiki/w/%EB%A6%AC%EB%B9%84%EC%95%84]

유성엽(柳成葉) / 1960년 1월 25일 (58세)/ 전라북도 정읍시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가족관계 : 배우자 나수영, 3녀

민주평화당 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



안민석과 같이 박근혜와 최순실을 탄핵과 구속시킨 공신 중 한 명.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정읍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3년 10월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2006년 초 열린우리당 전북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패배하였다.


2008년에는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하여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읍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으나 민주당에서 복당을 불허, 4년 내내 무소속으로 있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되었고 이후 복당되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북도당위원장이었으나 탈당하여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정읍/고창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농어촌 특별 선거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선거구의 면적이 대한민국 선거구의 평균보다 5배 이상인 경우 인구가 부족해도 하나의 선거구로 설정하자는 것. 



각종 논란들

아청법 발의에 동참한 전력이 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 수석비서관이었던 이정현의 보도개입 발언을 옹호하는 뉘앙스로 말하다가 논란이 되었다. 나중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였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수사에 대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구속수사 재판 반대합니다. 경제도 매우 안 좋은데 깊이 숙고합시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자신의 지역구 구민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받았다. 




유성엽 안철수 저격 

모바일 메신저 '바이버'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드린다. 저는 안철수가 당 대표에 출마했을 때 몇몇 의원들과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당대회 직후 제 방을 방문한 안철수에게 대선패배 후 당 대표에 출마한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비정상적으로 출마했는데도 당선된 것은 당이 비정상이라는 것과 앞으로 이 비정상을 어떻게 정상으로 돌려놓느냐가 매우 중요한, 어려운 과제라고 말씀드렸다. 대선에 패배한 사람은 죄인이다. 반성하고 자숙해야 정상인데 같이 경쟁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해서 개인적으로나 당으로서나 얻을 게 뭐가 있겠나. 특히 다른 정책들은 몰라도 적폐청산은 당연히 철저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안철수를 디스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C%A0%EC%84%B1%EC%97%BD]

서기호 / 1970년 3월 9일 (48살) / 전라남도 목포시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소속 정당 : 정의당

경력

제주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통합진보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

정의당 원내대변인


1970년 목포시에서 출생하여, 목포이로초등학교 - 목포홍일중학교 -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학내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전국 가톨릭 대학생 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이 조직은 전국 각 대학의 가톨릭학생회가 모인 연합체로, 한때 명맥이 끊겼다가 되살아나서 현재 ‘한국 가톨릭 대학생 연합(약칭 한가대연)’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후술할 판사 재임용 탈락 사건 때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동문들이 모여 ‘서기호 분도 형제와 사법정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 바 있다.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000년부터 판사로 재직하였다. 재직 중 SNS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가카의 빅엿 그 후 2012년 2월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외압 의혹이 있다 카더라) 통합진보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와중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으며, 김제남, 박원석, 정진후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에 합류했다. 경력이 경력이니만큼 소속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11번째 주자로 참여했다. 발언시간은 5시간 16분.



발언을 마치고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초 목포시 지역구에 출마하고자 하였으나, "목포에서의 출마를 고민하고부터는 ‘목포를 책임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준비는 되었는지’에 대해 제 스스로에게 물어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불출마의 이유를 밝혔다. 


목포시의 현역 박지원 의원이 고령인 만큼 박 의원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4년 뒤를 기약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윤소하 의원이 목포시를 차기 총선 지역구로 정했기 때문에, 정의당 후보로 출마하기는 쉽지 않을 듯. 경선은 해봐야 안다.



2016년 7월 서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수임이 잘 되는지 변호사 2명을 추가로 채용하였으며, 당분간 변호사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https://namu.wiki/w/%EC%84%9C%EA%B8%B0%ED%98%B8]



1961년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17기로 수료했다. 1988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판사를 시작하였다. 서울지법 판사·대법원 재판연구관·청주지법 수원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으로 근무했다. 


청주지방법원 시절 판결..


수원지방법원 시절 판결..



서울행정법원 시절 판결..



서울고등법원 시절 판결..

2013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고합1046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아 "원심이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한만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두 사람의 친분 관계나 한만호가 한명숙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시점, 자금 공여 장소, 채권 회수 목록 등을 봤을 때 한만호가 한명숙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에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점이 오히려 진술을 믿을 만한 이유라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


서울고등법원2011노3260 판결했고 2014년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2013노1028 서울지방변호사회의 2015년 법관 평가에서 95점 이상을 받은 우수 법관으로 선정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1심에서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 등의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재용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심에서 증거로 인정한 부분을 대거 파기하고 국정농단의 주범은 박근혜와 최순실이라고 하면서, 이재용은 이들에 의한 피해자라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것. 


이로 인해 판결 직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적폐 판사'라고 하면서 파면과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쏟아졌다.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개 사료를 뿌린 사람도 있었을 정도.


그러한 가운데 정형식은 조선일보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런 비난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고 말하였다. 한편 판결에 대하여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석방 여부였다. 뇌물로 인정된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금액 36억 원도 거액이지만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 재판을 하면서 없던 머리카락이 더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명숙 총리 뇌물수수 판결

당시 서울고법 형사6부 부장판사였던, 정형식 판사는 2013년 한명숙 국무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항소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해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000여만 원"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후술된 이재용 재판 집행유예 선고와 비교되면서 정형식 판사의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한 요인이 되었다. 특히 주5일 근무제 실시 이전이기 때문에 토요일도 평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재용 삼성부회장 집행유예 판결

“개인적으로 법원 판결 가운데 역대급을 2개 꼽는다. 한명숙 전 총리 판결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판결이다. 두 판결을 지금까지 ‘역대급 쓰레기 판결’로 꼽아왔는데 이번 (이재용) 판결은 이를 능가한다” -이정렬 전(前) 부장판사


"겉으론 단호해보여도 곧 '봐주기'…악순환 반복" -월스트리트저널


"2년 동안의 큰 변화에도…정경유착은 바뀌지 않았다는 징조" -워싱턴포스트


삼성의 후손 이재용을 위한 행운의 극적 전환' 이재용 부회장 석방 시나리오, -영국 BBC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 항소심에서, 

2018년 2월 5일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핵심 혐의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로 인정했으나,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 원과 최 씨 측에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로 인정했으며 삼성이 마필 소유권을 최 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만큼 마필 구매 대금 등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


이와 더불어 뇌물공여와 함께 적용됐던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 역시 이재용 부회장 측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 원은 뇌물로 준 돈일 뿐 이 부회장이 차후 사용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게 아니라며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판결이 난 후 대부분의 국민여론은 싸늘했는데 "사법부가 불리할 때만 삼권분립을 외치면서 본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가 주된 평. 박영수 특검 또한 "소가 웃을 판결"이라고 이례적으로 매우 신랄하게 법원을 비난했다. 특히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서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역사가 있는 현실에서 독재정권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자본권력에 무릎을 꿇은 판결을 계속하다가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기야 정형식 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고,개중에서 특별감사 요구 청원은 3일 만에 동의하는 인원이 20만 명을 넘었다.


"그런 비난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 결국은 사회가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중략)... 법리(法理)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 -정형식 부장판사


그러나 정형식 판사는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휴가를 썼다. 빤쓰런 청원한 20만 명은 졸지에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위의 이재용 판결 이후 그가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과 혼맥 관계에 있는 것이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다. 


우선 그의 아내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종사촌 간이고,자유선진당 박선영 전 국회의원과는 자매 간이다. 다시 말해 그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처사촌 간이 되고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과는 처형-제부 간이 된다. 한편 이명박근혜 시절에 대법관을 지냈던 민일영은 박선영 의원의 남편이므로, 정형식 판사는 민일영 전 대법관과 동서지간이 된다.


그의 이러한 엄청난 혼맥 관계가 알려지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논란에 둘러쌓여있는 정 판사를 형사 13부에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법원행정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형사 13부는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의심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재용 1심 재판 무렵 신설한 것으로써 집유를 주기 위해 짜여진 재판이 아니었냐하는 의혹이 일고있다.



총 101명, 97명의 승객과 4명의 승무원을 태운 비행기가 멕시코 북부의 공항 근처에서 추락했다.


멕시코 항공사인 아에로 멕시코는 2일(현지 시간) 2431편의 추락 했으며, 이 비행기는 북부 도시인 듀랑고와 수도인 멕시코 시티 사이를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에로 멕시코는 두랑고 국제 공항 근처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세부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아에로 멕시코 측의 공식 트위터로만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에로 멕시코는 트위터에 "아에로 멕시코 항공 2431편 사고,  사망자는 없다. 현 시점에서 부상자들을 돌보고, 사고 현장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 주 및 관계 부처에 요청했다. 부상 승객 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고 썼다.


현재 생존자들이 지역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고, 일부 생존자들은 추락 사고에서 인근 도로까지 걸어갈 수 있는 정보의 가벼운 부상으로 보인다. 


비행기가 추락한 후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 중 아무도 화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화재는 진압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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