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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MBC를 한 때 친박과 자유한국당의 사유물로 만들었던 장본인

대한민국의 공기업인, 전 공안검사, 법무법인 KCL 전 대표변호사.


1949년 2월 21일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공안통으로 부림사건 담당 검사이고 前 방송문화진흥회(MBC의 대주주) 이사장을 지냈으나 2017년 11월 2일 불신임안 가결로 해임됐다. 이후 방통위로부터 일반 이사직 해임 통보까지 받았고 결국 해임되었다.




  • 경력

서울 공대 화공과 출신이지만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군에서 사법시험을 보면 휴가 보내 준다고 해서 봤는데 붙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합격 한 것은 제대 후인 28세 때였다. 78년 청주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후 부산지검 공안과 검사가 됐다.


81년 9월 희대의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 담당 공안검사였다. 변호인(영화)의 바로 그 사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악연에 대해 몇몇 언론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부림사건 외에도 기타 수사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계속 공안검사로 승승장구하다가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5년 정치권과 학생운동, 시민사회운동 세력의 요구로 5.18특별법이 제정되자, 이번엔 거꾸로 대검공안부 공안기획관으로서 전두환, 노태우 수사를 맡았다. 이미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게다가 전직 통수권자에 대한 기소가 행정법상 통치행위 개념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검찰 내 논란(소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노태우를 기소해 사형을 구형 했다. 사실 이건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딱히 고영주의 정치성향과는 관계가 없긴 한데 한편으로는 권력친화적인 그의 인생관을 짐작케 한다.


1998년에는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수사 지휘를 하면서 무고한 여러 통조림 업체들도 도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06년 참여정부 시기에 남부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는데, 평소 그를 기억하는 후배 검사 말로는 원래 얌전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옷을 벗자마자 극우 단체를 조직해 신문광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2006년 초 검찰 인트라넷 'e-프로스'에 '소신에 반해 행동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아도 27년간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검찰 조직에 감사합니다. 큰 허물 없이 떠날 수 있는 걸 축하해 주면 고맙겠습니다.'란 담담한 인사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식에서 이랬다고. “노무현 정권이 저에게 보복을 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핍박을 받다가 더럽다고 하고 검사를 그만뒀다. 그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나에게 비토권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청와대 있으면서 나를 계속 비토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는 국민의 정부 때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지냈고 참여정부 땐 대검찰청 감찰부장(2004년), 그리고 서울남부지검장(2005년)을 지냄) 바로 그 신년회 자리에는 그 분도 같이 있었다. 


2010년 친북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하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각종 극우단체에서 맹활약했으며, 정홍원, 황교안과 함께 공안검사 선배 김기춘을 도와 박근혜 정부를 견인했다. 2012년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를 거쳐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위원장을 역임하며 정당 해산 심판 청원서도 직접 작성했다. 황교안의 말과는 다르긴 한데 어쨌든 이후 2015년부터 2017년 11월 2일까지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5년 임명 당시 국감에서 '문재인 의원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게 아니라 확신한다고 했을 뿐'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우상호 의원의 추궁에 머뭇거리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향한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노무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한 게 이 때. 후술) 공산주의자를 병아리 감별하듯 척척 해내는 센스에 대해 '공산주의 전문 감별사'란 별명 비아냥이 붙기도.


 

  • 매카시즘적인 발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노무현은 변질된 공산주의자"


2015년 10월 2일과 6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와 같은 매카시즘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2013년 1월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 에서 부림 사건을 공산주의 운동으로 폄하했고 더 나아가 당시 변호사로 있었던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 확신한다는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고영주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지검 형사 1부에 배당한 상태.


한편 새정치연합 당 지도부들은 이 사태에 대해 본질적인 해결방법에서는 무기력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해도 싸우지도 못한다. 순한 양이다"고 비판했다. 야권신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보다 본질적이고 빠른 해결을 위해, "비상대책 회의"를 촉구했다.  


이런 식으로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었기 때문에, 이후 국정감사장은, 이 사람도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어떻느냐라는 질문으로 가득찼고, 이와중에 김문수 지사, 이재오 의원,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전향한 공산주의자라고 불렀으며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재화 변호사의 수기를 한겨레 기자가 기사화한 자료. 이전부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발언으로 고영주 이사장은 일베저장소의 슈퍼스타(...)가 되는 등 일부 집단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새누리당에서도 열심히 쉴드를 쳐주고 있다.


결국 2016년 9월 28일 1심 재판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을 한 것으로 인정되어 문 대표에게 3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일어난지 1년 8개월이 지나, 언론이 이 사실을 공개한 다음이었다.


검찰의 해당사건 기소 이후 2017년 8월 31일 열린 1차 공판에서 고영주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가 맞다면서 허위 사실 적시 혐의로 자신을 기소한 검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사람은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의 반대로 알고 있는것 같다. 이런 사람한텐 프랑스, 이탈리아를 예시로 들면 된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 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이다.



  • 촛불집회 폄하 "모두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에서 동원된 사람들"

2016년 11월 17일 고영주는 방송문화진흥회 정기 이사회 자리에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해 "시민의 참여는 몇 명 없었다.", "모두 민주노총이나 전교조에서 동원된 사람들."이라는 발언을 해 누리꾼의 반발을 불렀다. 기사 야권 측 이사진이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 3~4% 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안건을 제출하자 자신을 포함 5인의 여권측 이사진의 힘으로 부결시키면서 발언한 내용이었다. 


아울러 MBC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성실히 보도하지 않아 촛불 시민들로부터 현장 취재진이 쫓겨나는 실정이라는 야권 측 이사회 발언에 대해서도, '만약 매국애국 시민 집회에 JTBC 취재진이 간다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시세를 따라가기보다 선정적 보도가 있지는 않은지 늘 반성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정감사에서의 태도

"문재인 대통령께서 평소 소신대로 했으면 적화되는 길을 갔겠지요."


2017년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장 신분으로 감사 도중 점심시간에 자유한국당 의총에 참석해 신경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대행과 현피 직전까지 갔으며, 다른 국회의원들로부터 매서운 질타와 함께 "당신이 그렇게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한 인물이 지금 대통령이 되어서 마음 고생이 참 심하겠다."는 조롱을 받았다. 심지어는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조롱도 받았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 보이콧 중이었다.


이 와중에도 망언이 지속됐는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으니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과정이냐?"는 질문을 받자, (문재인의) 원래 소신대로면 적화가 됐을텐데, 북한을 먼저 가겠다는 발언과 사드 배치하지 않겠다 는 말이 달라졌기에 그렇지 않은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 어쨌든 지금 문재인은 '애국시민'이란 건가?


그리고 MBC 라디오에서 음악만 나와서 좋다는 이야기에 대해선 '좌편향적인 발언들이 없어서 좋다는(...) 이야기로 안다'라는 아전인수의 정석을 보여줬다. 제일 오른쪽에서 보면 모든게 좌편향으로 보이겠지실제로는 이미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국정원의 계획 아래 '좌편향'으로 찍힌 출연자들과 간부들는 싹다 갈려 나갔다. 특히 간판 프로인 시선집중을 진행하는 신동호가 어떤 인물인지 알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 김기춘과 골프 접대?

2017년 10월 17일 MBC노조는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대동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난 2016년 10월 iMBC(MBC의 자회사 중 하나) 허연회 사장으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김영란 법(2016년 9월 28일부터 발효) 위반으로 실정법 위반이 될 수 있어 화제다.  MBC노조는 허 사장이 MBC 지사 중 가장 큰 부산 MBC 사장으로 영전된 배경에 접대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영상을 공개했다.


당일 MBC 노조본부가 공개한 영상에 등장한 허사장은 노조원들의 추궁에 대해 '잠깐 돈을 빌려주는 개념으로 대납했다', '업무 연관성에 따른 편의 제공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는데, 같이 영상에 나온 고영주 이사장도 50만원 가량 나중에 돌려줬다고 말했다가 자신이 원래 카드로 계산하려 했는데 (허사장)이 접대를 하려 했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10월 17일은 고영주 이사장이 당시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고발돼 2차 공판을 위해 불려가던 날이었다.(1차 공판은 8월이었음)


[출처 : https://namu.wiki/w/%EA%B3%A0%EC%98%81%EC%A3%BC]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업인. 한글과컴퓨터 창립자 및 초대 사장.

인천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여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 졸업했다.




  • '한글과컴퓨터'를 창립

1990년 11월 우원식(현 엔씨소프트 상무), 김택진(현 엔씨소프트 사장), 김형집 3인과 함께 '한글과컴퓨터'를 창립하고 순 한국식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자는 일념 하에 '아래아 한글' 로 불리는 HWP 시리즈를 만들었다. 


한컴이 한창 잘나가던 1996년 당시 인기 탤런트 김희애와 결혼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당시 성공한 공돌이의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는 농담도 있었다. 자기 회사를 세우고, 직접 만든 킬러 타이틀이 있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 김희애의 형부가 이찬진의 서울대 선배였는데, 형부의 주선으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망한 드림위즈를 다시 일으켜서 드림위즈 대표이사 자리에 있었다. 근데 다시 몰락...




  • 신한국당 정치인 이찬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1996년 신한국당 전국구 20번(오늘날로 치자면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20번 후보)으로 출마, 1997년 11월 말 의원직을 승계했다가 6개월도 안되어 1998년 5월 사퇴한 적이 있다. 사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내에는 반 DJ 성향의 진보적 인사들이 제법 있었고 (반대로 새천년민주당에도 친DJ 성향 보수 인사들이 있었다.), 1996년 총선 당시의 신한국당은 아예 개혁 공천을 표방하고 신인들을 대거 영입했는데 이찬진 또한 미래가 촉망한 벤처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영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서 신한국당에서 활동한건 아닐 공산이 크다는 소리.


이후 2018년 7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 이후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정의당에 입당했다. 성향과는 별개로 한나라당 출신이 대척점의 성향을 가진 정의당에 입당한 것만 생각하면 흠좀무. PC통신 시절 어떤 RPG게임을 두고 키배를 벌였던 어떤 의사양반 또한 먼 훗날 정계에 진출한다. 정치선배 이찬진?? 현재의 정치 성향이 어떤지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페이스북에 구글세를 거둬서 보편적 복지에 쓰자'는 등의 상당히 진보적인 주장을 자주 쓰는 편.  




  • 얼리 어답터 이찬진

상당한 얼리 어답터. 애플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팟 터치 1세대부터 사용해온 경력이 있고, 그와 관련한 상품 출시도 꽤 활발했다. 최근 아이폰 관련 포스팅이 많은데, 국내 휴대전화 단말의 WIPI 의무탑재를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최근 출시된 KT 와이브로의 단말 Egg도 이찬진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다만 아이폰 출시와 관련해서 "언제쯤 나오겠다"라는 발언 후에 아이폰이 나오지 않자 까인 흑역사가 있다. 하지만 어쨌건 이후의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예측했었다.



  • 포티스는 어떤 기업? 

이찬진이 대표이사로 있는 포티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주)포티스는 2006년 9월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기업으로 2007년 디지털 셋톱박스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기술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했다. 2008년 무역의 날에는 '1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고, 2009년 '경기중소기업경영대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무역의 날에 '3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 2012년 '2012 벤처창업대전'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2013년 1월 코스닥시장에 주식을 상장했고, 4월에는 디지털방송장비 판매를 목적으로 독일 현지법인(FORTIS EUROPE GmbH)을 설립했다. 


2015년 6월 (주)메디컴바인의 지분 83.33%를 취득하고 자회사로 편입했다. 같은 해 9월 에스엠티(주)를 흡수합병하고, 전자상거래 사업부문을 신설했다.


에스엠티는 2003년 7월에 설립되어 삼성몰, 삼성가족구매센터 운영대행, 삼성플라자 물류센터 운영대행을 비롯해 제일모직 패션브랜드에 대한 온라인 총판 사업 등을 해온 업체였다. 2015년 10월 B2E(기업내 임직원간 거래) 사업을 목적으로 원활한 상품 공급을 위해 포티스몰(www.fortismall.com)을 개설했다.


2016년 1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 전자상거래 플랫폼 공급업자로 선정되었다. (주)포티스의 주력 분야는 디지털 셋톱박스 사업과 전자상거래 사업인데,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제품 생산은 외주가공업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포티스의 전자상거래 사업부문이 제휴하고 있는 쇼핑몰은 총 20개로, H몰, 롯데닷컴, 신세계몰, 롯데I몰, 엘롯데, AK몰을 비롯한 백화점 계열의 쇼핑몰, GS샵, CJ몰 및 인터파크를 비롯한 종합몰, 오픈마켓인 11번가, 옥션, 지마켓, 임직원 대상 복지몰인 SFC(삼성가족구매센터), S블루베리몰, 이지웰페어, 웰스토리 등이다.


2015년 12월 말 기준 포티스의 최대주주는 이찬진 대표이사이며, 보유 지분은 6.28%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85466&cid=43167&categoryId=43167 / https://namu.wiki/w/%EC%9D%B4%EC%B0%AC%EC%A7%84]

최민희(崔敏姬)/ 1960년 12월 3일 (만 57세)/ 이화여자대학교 사학 학사 / 더불어민주당  


  • 생애, 경력 

종교는 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바울라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나서 해직 언론인의 지하단체였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가입하고 월간 말지의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에 언론 민주화 운동에 나서며 민언련 사무총장를 지낸 후에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에 재직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언론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전설적인 활동가였다.


그 덕택에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고, 또 일명 'JYJ법' 이나 아청법의 문제를 제거한 개정된 아청법 발의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면도 있지만, 부업으로 육아 강의를 하면서 여러 자연건강법에 대한 저서를 쓰면서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란 책에서 '100분 나체요법' 등의 유사과학에 기반한 육아법도 소개하는 등 비판을 받을 만한 면도 있다.


196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혜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1985년에 월간 <말>의 1호 기자가 된다. 


2006년 7월 14일부터 2008년 2월 29일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개편되어 사라질 때까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대(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남양주시 병에 출마하여 2위로 낙선하였다. 원외 정치인이 된 뒤에는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과 '민*정*당'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했으며 2016년 11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3의 패널로 출연하게 됐다.


EBS 다큐멘터리인 리얼극장 - 행복 - 에 딸과 함께 출연했다.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며 딸과의 관계가 악화된 듯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인은 SNS 프로필 사진을 오랜 기간 동안 딸과 찍은 셀피로 설정해놓을 정도로 딸에 대한 애정이 많았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의정활동으로 인해 가정에 소홀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많이 쌓인 듯.





  •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2016년 2월 25일 3시 41분부터 9시 02분까지 5시간 21분 동안 발언하였다. 당시 준비한 자료가 A4용지 박스에 하나 가득 찰 정도로 많은 분량이었는데, 발언을 마치고 퇴장할 때는 할머니들이 쓰는 장보기용 손수레에 실어서 끌고 나갈 정도였다.


또한, 동영상이나 음성 자료, 피켓, 소설 등의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해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좋은 예시가 되었다.



  • 유사과학에 기반한 육아법?

과거 19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에 아기를 100분 동안 천 한장만 덮은 채 놔두는 요법을 소개했다. 신생아 심장의 좌심방과 우심방 사이에는 난원공이라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구멍은 자연스럽게 막히지만, 자연스럽게 막히는 동안 생기는 문제를 막기 위해 고안된 요법이라 한다. 난원공 자체는 존재하지만, 자연스럽게 막히는 동안 생기는 문제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정설. 


하지만 '한 겨울에 이 요법을 하면 처음에 아이는 새파랗게 질리다가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므로 놀라지 않도록 한다.'라고 하는데 이건 신생아가 저체온증에 걸리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소리다! 여담이지만 책에 설명되어있는 다른 요법들도 가관이라 한다.



  • 이모저모 

2014년 9월 22일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 사건을 단순한 폭행사건이라며 김현 의원을 적극적으로 감싸줬다.


2017년 12월 15일 한국 기자단 폭행사건 다음 날 본인의 SNS에 중국을 강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렸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고 굴복, 사과문과 함께 트윗을 삭제했다.


2018년 4월 10일 다산신도시 택배 사건에 대해 신도시 입주민 옹호성 트윗을 올려 논란이 일어났다.


한편 민주당 남양주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지난 20대 총선에서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경기북부테크노밸리 유치를 약속받았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2심에서 벌금 150만 원이 선고되었다. 형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2심에서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자 그녀를 남양주시장 공천에서 배제했다. 2018년 7월 26일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던 원심이 확정됨에 따라 5년간(2023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B%AF%BC%ED%9D%AC]

전라북도 익산시 출신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남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환은행에 입사했다가, 1977년 현대그룹 계열 금융 회사인 국제종합금융으로 이직하며, 같은 고려대 출신인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을 알게 됐고, 이후 이명박과 친하게 지내며, 사적으로도 최측근이었고,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 퇴임 직후 정계에 입문할 때도 이명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후, 이명박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한 직후에도, 청와대에 그대로 입성해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으로 계속 중용됐고, 이명박의 가신(家臣)을 넘어 집사라고 불리던 이명박의 최측근이다.


정권 교체 직후, 문재인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수사가 시작돼면서 김백준을 수사하기 시작했고,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 중이다.


구속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 이명박 정부도 연루돼 있다고 자백하면서, 이명박 또한 김백준에 이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었다.



BBK 주가조작 사건 의혹에서, B:이명박, B:김백준, K:김경준으로 BBK에 관련돼 있다는 언급이 오가고 있어 예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었지만, 현재는 더더욱 논란이 돼고 있다.


BBK 주가 조작 사건 뿐만 아니라, 다스 실소유주 논란 등 이명박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을 풀 키맨으로 정봉주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실제로 김백준 구속 직후 다음날 오후에 이명박은 사무실에서 겁먹은 듯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에 대한 수사가 정치공작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백준 구속을 기점으로 이명박에 대한 수사가 급진전돼다가,그 직후 10일만에 이명박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두뇌회전과 상황판단이 매우 영민한 인물이라고 한다. 외부자들에서 전여옥도 이명박의 지근거리에 있는 김백준과 다소 인연이 생겼었는데, 두뇌회전이나 상황판단력에서 이명박의 최측근 정도로 머무르기 아까울 정도로 영리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B%B0%B1%EC%A4%80]


주진우 기자의 주장을 나노 단위로 파훼 하자면,


1. 어떻게 일면식도 없다는 사람이 230페이지나 글을 쓸 수 있는가?

이후 수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편지에는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고 발표 하였다. 230페이지라는 것이 대부분 "오빠! 나 조선일보 사장에게 당했어. 나 힘들어. 오빠가 복수해줘." 같은 내용이다.


2. 교도소에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쓴다는 게 가능한가?

평생을 교도소에만 갇혀 있는 사람이 시간이 얼마나 많겠는가? 수용자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편지를 쓴다. 일반인들이 거의 카톡을 사용하는 수준으로 많이 쓴다. 하루에 10통씩 편지 쓰는 게 일도 아닌데 겨우 50통 230페이지 쓴 것이 뭐가 많다는 것인가? 이 때문에 출소자들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박스에 담아서 나가는데 라면 박스 한상자 다채우고도 몇 상자 더 가져 가는 사람들도 있다.


3. "편지 봉투에 우표와 소인이 없어서 위작이라고 하는데, 수용자들이 돈이 없어 재벌 2세라며? 한번 썼던 우표를 떼어내서 다시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표를 붙인 우편물을 주고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잘 알 것이다. 우편날짜도장(소인[6])은 우표 재사용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우표를 첩부한 우편물에는 반드시 찍으며, 유성잉크를 묻혀 스트레스 해소 겸 강하게 내리찍어서 지울 수 없다.[7] 소인 날인을 빼먹을 수도 있겠지만 우편 물량이 지금보다 많던 시절에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기념우편날짜도장/관광우편날짜도장을 찍었는데 거기다 또 소인을 찍어 우취인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소인을 위조하려 해봤자 교도소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는 금방 들킬 수밖에 없다. 즉, 전준주의 주장은 "장자연에게 편지 받았다. 그러나 증거인 우표 소인은 내가 없앴다."라는 뜻밖에 안 된다.


2018/06/29 - [실시간 핫이슈] - 장자연 동료, 목격자 진술..

2018/06/29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장자연] 장자연 리스트 ~ 조선일보 압력..?



즉, 주진우 기자의 이번 취재는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어거지였다. 평상시 주기자가 조선일보에 불만이 많았다는 것이, 전준주의 현란한 거짓말과 맞물려 제대로 속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주기자는 추가적으로 설명이나 취재가 있을 법 했었지만, 나꼼수를 포함하여 어디에도 이 사건을 다시는 다루지 않았다.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 사건을 일으킨 전준주는 이후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에게 '주진우 기자가 자신에게 다시 면회 오겠다고 하는데, 안 온다고. 연락해서 빨리 오게 해달라'며 징징~거렸다.


전준주의 거짓 주장의 결정적인 증거로 "장자연이 자신에게 12번이나 면회를 왔다."고 주장 했으나 이후 검찰의 수사 발표에 의하면 장자연이 온 면회 기록 같은 것은 없었다.



참고로 2011년 당시 언론에는 전준주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왕첸첸 또는 왕진진 이라는 가명으로만 기재 하였기 때문에 기사 검색을 하려면 가명으로만 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서는 전준주에 대해서는 정학한 죄명 등은 나오지 않고 "성인이 된 이후 사회 생활 한 것이 도합 1년이 안 되어 평생 교도소에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장자연을 만날 수 있겠는가." 정도의 기사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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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7년 12월 27일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위한컬렉션 왕진진 회장이라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틀 후 디스패치에서 왕진진이, 2011년 장자연 편지 위작 사건의 왕첸첸과 같은 인물이라고 폭로 하였다. 이 과정에 처음으로 실명이 '전준주'라는 것도 밝혀 졌다. 또한 2011년 장자연 편지 위작 사건 때 밝혀지지 않았던 전준주의 죄명이나 자세한 행적이 쏟아지듯 보도 되었다. 

 


2012년 1월 5일 국정원 개입설이 손바닥TV 이상호 기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제보자 왈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생각에 증언을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1월 18일 전 대표 김 씨가 배우 송선미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송선미가 김 씨와의 소송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기재해 기사화되도록 했다'며 '장자연을 끌어들여 허위 사실을 기재한 진술서를 작성해 장자연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  


이어서 2월 10일 김 대표는 송선미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는 이어 25일에는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 씨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고 3억 원 배상을 요구했다. 김 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고소장에 '장자연 문건을 유서로 포장함과 동시에 그 존재를 언론에 고의적으로 유출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 씨의 허위 폭로로 원고의 인격과 명예 신용은 극도로 훼손됐고 이 사건으로 연예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속사 여배우를 죽인 공공의 적으로 찍혔다'고 주장.


또한 김 씨는 "유 씨는 원고와 소송 중이던 탤런트 송선미와 소송을 앞두고 있었던 탤런트 이미숙을 도와 원고를 압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장자연에게 문서를 작성하게 했다"며 "특히 유 씨는 장자연의 죽음을 사적으로 이용했고 이 탓에 원고는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그 활동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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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0일 법원이 장자연의 문건은 조작이 아니라고 하였다. 


2014년 1월 17일 법원이 폭행 사실은 인정하지만, 성상납 강요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4년 10월 12일 서울 고법 민사 재판부는 술 접대 강요가 형사상으로 인정되진 않았으나 이같은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배상 판결을 내렸다. 


2016년 2월 27일,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순옥 의원이 "이 사건은 국정원이 개입된 사건이다."라고 발언했다.


2016년 10월 20일인 배우 이미숙의 전속 계약 위반 소송에서 허위 증언 혐의를 받았던 장자연 前 매니저 유 씨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2017년 12월 25일 검찰의 부적절한 사건을 조사하는 검찰 과거사 위원회의 검토 대상 사건에 올랐다.


실제로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지만 2017년 12월 27일. 낸시랭이 상위 항목의 '전준주'와 결혼 했다. 같은 달 29일 디스패치가 전준주가 2011년 장자연 편지 위조사건을 일으킨 완첸첸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폭로하여 해당 사건은 2017년 말 최대의 화제+2018년 초 최대의 사건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물론 장자연과는 0.1%도 관계 없는 일이지만 자연스럽게 장자연 자살 사건이 크게 화제 되었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검찰 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가운데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꾸려 과거에 검찰이 흐지부지하게 처리한 사건들을 재조사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목록에 장자연 사건이 포함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검찰은 25일 과거사위원회 발족과 더불어 사건목록을 발표하면서 대검찰청 주도로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를 언급하여 더욱 가능성이 높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약 한 달이 다되어가는 시점에 20만 명 달성을 완료했다. 


그리고 2018년 6월5일 서울중앙지검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재수사를 권고한 장자연의 강제추행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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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꽃보다 남자>한국판 드라마에 3인조 중 한 명으로 나온 신인 배우 장자연이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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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3일, 고인이 죽기 전 남긴 문건 내용이 공개되며 룸살롱 술 접대, 성상납을 강요받으며 방에 갇혀 폭행을 당해 오던 것이 드러나며 논란은 시작된다. 그동안 쉬쉬하며 추측만 나돌던 연예계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유족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예 이 문서를 태워 은폐하려 했고 경찰도 악플과 우울증으로 단정 짓고 수사를 중지하려다 문건 내용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다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결국 관련자 9명이 기소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설이 퍼지게 된다.



연관자 중 언론사 관계자나 스포츠신문 쪽 사람이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참고로 언론사가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를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했다. 하지만 2009년 8월 19일, 검찰은 술 접대 강요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장 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와 전 매니저 유모 씨 두 명만 기소했다.

장자연을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전 대표 김 씨는 2011년 11월 항소심에서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유 씨는 모욕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받았다.


경찰의 수사가 한창일 때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조선일보 사주의 접대의혹을 제기했고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오해라는 반응을 내놓으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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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의 미흡한 수사로 달아오른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되려 '너희들도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 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유명 배우인 문성근이 조선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어나자 해당 사건에 대해 조선일보와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고소를 걸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 30일, 조선일보 사주 성접대 의혹을 제기한 이종걸, 이정희 의원과 이를 보도한 MBC 신경민 앵커, 송재종 보도본부장을 상대로 건 민사소송 재판에서 조선일보 측이 패소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종걸, 이정희 의원 상대로 패소 판결을 내린 곳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14부였고 MBC 상대로는 민사 25부였다. 각각 다른 재판부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온지라 항소를 해도 뒤집기는 힘들 거라는 예측이 많다. 결과적으로 2013년 조선일보 측이 소송을 모두 취하하며 일단락났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2년이 지난 2011년 3월 6일, SBS가 단독보도로 장자연이 직접 쓴 편지 50통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날리며 사건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SBS 측은 필적감정을 마친 것이며 분명한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SBS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날조된 것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편지를 제공한 제공자와 장자연의 연관점이 없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날조설이 힘을 얻게 되었다. 편지를 제공한 사람은 왕첸첸(왕진진)이라는 사람이며 중국 재벌의 아들 또는 2004년에 타계한 카지노계의 대부 전 모씨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16일, 국과수는 교도소에 복역 중으로 전모 씨의 위작이라고 판정했다. 글씨체가 너무 다른 데다 세세하게는 종이에 남은 필압부터 우체국 소인에 이르기까지 진품으로 판정할 요소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故 장자연 편지는 교도소 수감자의 위작"


해당 수용자는 전준주라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 갇혀 있다가 형기가 끝나고 출소되자마자 다시 강간을 저질러 감옥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으로, 성인이 된 이후 사회에 있던 시절이 다 합쳐서 1년이 안 된다는 전과 10범의 특수강도강간범이다. 교도소에서는 적응장애, 우울증을 겪고 있어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교도관들을 수시로 괴롭히는 전형적인 문제수이다. 


즉, 평생을 교도소에만 같혀 있던 강간범이 자신의 본명은 왕첸첸이며 중국 재벌의 아들 또는 2004년에 타계한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이자 카지노계의 대부인 전낙원 회장의 아들이며, 전엔 왕 씨라며? 돈 많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식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09년 스포츠칸에 제보하여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장자연을 잘 알고 있으며 그녀가 자신을 의지하며 지금 힘들고 괴롭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때는 스포츠칸의 자매지인 경향신문에서 즉시 사실 확인이 안 된다며 잘못했다고 사과 기사를 내서 금방 끝났다.


그런데 2011년 3월 6일에 갑자기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어떻게 230페이지나 되는 위작을 만들 수 있냐며 사실이라고 주장하여 다시 일이 커진 것이다.


심지어 수사 기관 쪽에서 위작이라는 결론이 슬슬 나오고 있을 때,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가 '자신이 직접 만나 봤는데 이것은 사실이 맞는다. 정황상 편지에 나온 대로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 씨를 성폭행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일면식도 없다는 사람이 230페이지나 글을 쓸 수 있는가? 교도소에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쓴다는 게 가능한가? 편지 봉투에 우표와 소인이 없어서 위작이라고 하는데, 수용자들이 돈이 없어 재벌 2세라며? 한번 썼던 우표를 떼어내서 다시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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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의경 내부부조리를 척결한 일등 공신.

그러나 편향된 이념으로 경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부정부패로 자신도 감옥에 들어간 범죄자.


대한민국의 전직 경찰관. 1955년 5월 15일 생.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16대 경찰청장을 지냈다. 전임자는 강희락, 후임자는 김기용이다. 청장 재직 당시 전의경의 내무부조리를 척결해 공을 인정받았으나, 정치적 행보와 후술된 노무현 대통령 명예훼손 건으로 논란을 낳아 징역을 살았다. 게다가 퇴임 이후엔 뇌물죄 혐의로 처벌까지 받으면서 결국 불명예 인사가 되었다.



  • 생애, 경찰 경력

1955년 5월 15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정치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1981년 제15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 기획예산담당관실 외무사무관시보로 근무했고,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기본병과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예비역 중위. 장교로 군복무를 한 이유는, 조현오는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5급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미필자가 5급 공무원이 되면 학위와 상관 없이 무조건 장교로 군대에 가게 된다.


그 후 외무부 국제법규과, 영국 연수(케임브리지 대학교 법학과), 외무부 동구과(동유럽과) 등을 거쳐서 국토통일원 통일정책실에서 근무했다. 1990년에는 고시 출신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입직해서 바로 경정이 되었다.


1998년에 총경으로 승진했고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 울산남부경찰서장,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서울 종암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2005년에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외사관리관, 감사관으로 근무했고 2006년에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경비국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당시에는 치안정감이 아니라 치안감이 보임됐다. 


이 과정에서 인사청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9년에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때 유명했던 사건이 쌍용자동차 노조 시위진압이었다. 그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2010년 8월 치안총감으로 승진해 경찰청장이 되었다.



  • '부패 경찰 척결'의 사명!

09년 경기경찰청장 임기 시절부터 내건 슬로건은 '부패 경찰 척결'로, 청장 직속TF를 설립하여 부패ㆍ비리에 연루된 경찰관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파면 혹은 해임 등의 조치를 행했다. 사실 그보다 유명한 것은 성과주의의 표명으로, 이에 대해서 양천서 고문사건의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되었다. 이때문에 인사청문회장에서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


조현오 청장의 정책에 대한 반론으로, 기존 경찰평가에도 실적평가 기준에 의존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 조현오 청장은 독단적으로 자기 관할에 대해서 이중평가 기준으로 적용한 것에, 일선 경찰들은 죽어나갔다라는 논란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서장 재직시기부터 수사비도 실적에 따라서 분배라는 독단적인 정책도 시행했다는 논란도 있다.



  •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말들

경찰청장 선임 후에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임 당시 양천경찰서에서 발생한 고문 사건이 조청장의 실적주의 탓에 일어났다는 논란이 있었고, 2010년 3월에 경찰관 기동대 특강에서 조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명색이 고위 공직자란 사람이 공개적인 특강 자리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자기 확신범적으로 저런 소리를 대놓고 했으니...  


당시 야당은 청문회 자체를 거부하려고 했고, 여당에서도 근거 없는 소리라면 빨리 사과하라는 비판이 나왔고, 심지어 조갑제닷컴에서도 "증거가 있으면 내놓고, 증거 못 내놓을 소리라면 그냥 사퇴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인사청문회 당시에 이를 부정하지 않아 2012년 5월에 차명계좌 발언 관련 수사가 들어갔는데,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나온 증거라는 것이 2013년 4월에 언급된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임경묵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은커녕 조현오와 단둘이 만난 적도 없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그외에 언급된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 역시 그런 말 한 적 없고 오히려 그런 거 없다고 했다면서 "조현오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또한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해서 "유족들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라고 비판하면서 또 한 비판을 받았다. 그외에 자잘한 것으로는 위장전입 문제가 나왔고, 경비구장시절 모친상 부조금으로 1억 7,000만원이 들어온 것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청문회 통과가 어려운 인물로 손꼽혔던 인물.



  • 유일한 업적, 내부부조리 해결

경찰청장에 취임한 지 5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23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307 전경대에서 6명의 이경들이 집단 탈영 후 PC방에서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가혹행위를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접한 조 청장은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말로 엄청난 분노를 에둘러 표현했으며, 그 자리에서 "307 전경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307 전경대는 해체되었으며, 이 여파로 전국 지방청이 실태조사를 벌여 가혹행위 전경들과 이를 방조한 경찰관들까지 줄줄이 사법처리되었다. 이렇듯 조 청장의 내무부조리 근절 방법은 꽤나 무시무시했는데, 사고가 터진 부대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부대해체, 해당 부대 지휘관들은 무조건 해직 후 구속수사가 원칙이었다. 사실 부대 운영을 책임지는 간부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리는 것은, 내무부조리를 해결하는 방안 중에서도 정석이다. 


덕분에 전의경에 만연하던 내무부조리를 대거 뿌리 뽑았다. 조현오가 모두에게 인정받은 업적이 바로 저것이다. 


지금은 의경 경쟁률이 수십대 일이라서 체감하기 어렵지만, 2010년만 해도 의경지원자가 미달인 곳이 넘쳐났다. 이때 전의경은 해병대와 육군보다 부조리가 심각했기 때문에, 이것을 척결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의경의 경쟁률이 이렇게 올라간 까닭은 바로, 조현오가 내무부조리를 뿌리 뽑고, 근무환경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대책이 많았는데도 내무부조리가 사라지지 않는 대한민국 육군, 아예 근절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해병대는 반드시 전의경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

 

MB정권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경찰청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꾸준히 언급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사건부터가 MB정권하에서 경찰청장이 되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12년 4월, 수원 토막 살인 사건시 112신고센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장직에서 사임하였다.



  • 퇴임 후, 계속 드러나는 범죄

사임 이후에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야당 중진들과 관련해서 말싸움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총선출마는 없었다. 총선출마를 준비했다는 평은 많았지만, 여당 쪽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평이 많아서 주저앉혔다는 평이 많다.


그리고 상술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진행된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으나, 2013년 2월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결국 법정 구속되었고, 2014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5년 8월 11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음이 보도되었다. 혐의 내용은 청장 임기 중인 2010년 8월 집무실에서 청탁 목적의 금품수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치러진 2016년 2월 17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뇌물 제공자 진술에 따르면 5만원권 지폐로 5천만원을 제공했다고 하나, 이땐 5만원권 발행 이전이라고. 하지만 1년 후인 2017년 2월 16일 항소심에선 "정황이 분명하고 친분관계도 인정된다"며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3천만원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PD수첩 고 장자연 특집 예고편에 조선일보 측이 자신에게 협박과 압력을 가했다는 폭로를 터뜨리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7년에도 성민이 사건이 있었다. 성민이 아버지는 이혼하고 혼자 2살인 성민이를 키웠는데, 일하느라 평일에는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찾아가려 했지만 원장 부부는 성민이를 내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성민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다시 아빠와 만나게 되었다. 원장 부부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해서 사실상 살해당한 거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상처를 보면 누가 봐도 학대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상처 이외에 CCTV등의 다른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상해치사죄조차도 인정되지 않고 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되었다. 


그리고 당시 재판부는 원장 부부에게 고작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라는 무개념 판결을 내려서 사람들의 어이를 먼 우주로 보내버렸다. 변호사들도 이 판결을 매우 비판하며, "증거가 부족해도 성민이의 몸 상태를 근거로 5년 이상의 징역판결을 내릴 수가 있었다"고 하며 그게 옳다고 말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다. 


이렇듯 막장판사를 접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2차적으로 피해를 받기도 한다. 참고로 성민이 아버지는 원장 부부는 물론 당시 재판부로부터도 배상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7월 22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3개월 아기가 폭행에 장이 끊어져 죽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다시 한번 관심을 받게 되었다. 



  • 사건 정황  

울산 현대어린이집 성민이사건


성민이 사건은 두돌도 안된 23개월 영아가 어린이집 원장남편에 폭행에 의해서 장이 끊어져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성민이의 아버지는 경제 형편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였고, 지방을 전전하며 일을 다니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혼 후, 두 아들을 돌봐줄만한 가족, 친척도 없고, 혼자 키우기 어려워 울산시 공무원의 소개로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게 되었다. 평일에는 어쩔수 없이 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겼지만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곳에 맡겨진 지 3개월만에 아기는 처참한 모습의 주검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여러 정황을 보니 3개월동안 아이는 너무나 잔인하고 잔혹하게 학대를 받았으며 숨을 거두기 마지막 2~3일에는 차라리 즉사하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생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을 것이라고 소아과 전문의들과 부검의는 입을 모아 말했다. 


원장부부의 집에서 24시간을 먹고 자고 했던 그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학대해서 죽였으며 다른 보육교사에게는 ‘성민이가 전염병이 있으니 안아주지 말고 곁에 두지 마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부검결과 성민이는 전염병이 없었다.


원장부부는 성민이가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던 보육교사의 손길을 그렇게 차단해버렸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식판에 정상적인 식사를 주며 성민이 형제에겐 냉면 대접에 이것저것 섞어서 먹였는데 이것마저 아가는 굶은 나머지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학대받지 않는 시간인 보육교사의 근무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려고 하면 그 어린 아이들은 소리도 못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고 한다. 


잠은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 혹은 거실 피아노 밑에서 형제가 부둥켜 앉고 잤으며 원장남편은 인형을 빙빙 돌리다가 성민이의 얼굴을 가격하고 수막대(교구, 철제재질)로 수시로 폭행했다. 밝혀진 것이 이정도인데 아무도 없이 성민이 형제와 그 원장부부만 있는 오후 6시이후부터 그 다음날 보육교사가 출근하는 아침이 올 때까지 성민이 형제는 어떤 폭행과 어떤 학대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지냈을지..


아기가 사망하던 그 마지막 날은 원장이 부부싸움 중에 아기가 변을 봤다고 원장의 남편이 아기의 팔을 양쪽으로 벌려잡고 배를 발로 걷어찼으며 울음을 멈추지 않자 잔인하게 발과 주먹으로 아이의 배를 짓이기고 얼굴을 가격하였다. 장이 끊어진 아이가 죽도록 우는데도 병원을 데려가지 않고 마트로 데려가서 또 구타 했으며 그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진 정확하 밝혀진바가 없다.



부검의는 아기가 장이 끊어진 후 사망까지는 최소 2~3일 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웃도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장이 끊어졌을 때는 물만 먹어도 토할것이며, 약을 먹였다면 극한의 고통은 몇배가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한다. 장이 끊어진 후 바로 병원에 왔다면, 아이를 살릴수 있었을거라고 한다. 오죽하면 의사가 차라리 즉사하는 것이 훨씬 나을 정도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6살난 성민이의 형이 할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게 숨이 끊어질 듯 우는 동생을 원장부부가 운다고 또다시 폭행할까봐 식탁밑으로 기어들어가 동생을 부둥켜앉고 입을 틀어막고 울음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동생을,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생을 달래는 것. 그것 뿐이었다. 



  • 원장 부부의 처벌

원장(여) 징역 1년, 원장남편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그러나 성민이를 직접적으로 죽인 원장 남편은 실제론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1953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현 청주시 청원구)에서 태어났다. 내수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보병 소위로 지냈다. 참고로 육군사관학교 제31기 출신이다. 위탁교육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들어갔고, 1979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관급 장교이던 1992년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군 경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戰史)학과 교수를 지냈고 국방부 정책기획관, 육군본부 비서실장과 전략기획처장, 53사단장 등을 지냈다. 국방부에서 근무하다가 중장 시절에 수방사령관을 지냈고 육군 참모차장을 지내다가 바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2010년에는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에 군문을 나섰다. 야전군사령관을 지내지 않았는데 그동안 맡았던 보직 등을 보면 야전군 지휘관보다는 정책 등을 다루는 관료에 가깝다.


육군 대장 진급을 위한 커리어에서 제일 중요한 두 개의 보직이 사단장과 군단장인데, 대장 진급자들을 보면 사단장이나 군단장 중에서 최소 1개는 전방 야전부대 지휘관 경력이 있는데, 한민구의 경우 사단장과 군단장 모두 전방 야전부대 경력이 없다. 군장장급 직위를 수방사령관 으로 보직 받긴 했지만 이 역시 전방 야전부대는 아니다. 육군 출신 합동참모의장은 야전군사령관 경력이 필수나 다름 없을 정도로 야전군사령관을 거치고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하는데 한민구의 경우 야전군사령관 경력 없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 어찌보면 관운이 매우 좋은 모양.


전역 후 국회의원 출마(충북 청주)가 예상되었으나, 새누리당의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박근혜 정권 출범 후 국방부장관으로의 취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2014년 6월 30일에 김관진에 이어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직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어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한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며, 그가 취임하기 전에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으므로 한 장관보다는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관진 한민구


다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달이 지났고 전 정부 주요 인사들이 떠나는 동안 후임 내정자의 임명이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여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임명이 확정되며드디어 7월 13일에 국방부 장관 직에서 물러났다.


가족으로는 부인 곽정임 여사와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할아버지가 의병장이었던 한봉수이다.


의병장 한봉수

의병장 한봉수 한민구



  • "방산비리는 생계형비리다." -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5년 6월 16일 불거진 방산비리를 두고 "예전엔 방산비리가 대형 비리였지만, 요즘은 생계형이다."라는 너무나도 황당한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물론, 과거에는 권력 남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비리가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는 납품업체의 이권을 봐주고 대신 금품이나 전역 이후 일자리 알선 등 이루어 지는 양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방산비리의 양상의 변화를 그런데로 맥락을 잘 짚은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부적절한 용어의 선정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급여와 연금을 받는 고위직 군인들의 비리를 단순한 생계형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방산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가?"는 의문을 낳고 있다. 결국 6월 19일에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는 중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방위사업청에 파견되는 군인들이 이후 진급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이유로 업체들이 전역 후 일자리 알선이나 금품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하는 만큼 생계형 비리라는 말이 마냥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는 측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입장 가진 사람들도 비리를 옹호하는건 아니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냥 일반인 회사원들은 중간관리직 단계에서 퇴직 당하면 군인들 이상으로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걸 생각하면 결코 옹호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


문민통제가 없었던 시절에도 방산비리는 참수형 이상으로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생계형 국방장관 한민구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했던것은 사실이다.


  • THAAD 허위 보고 논란

이 후 2017년 5월 30일엔 사드 추가반입을 한 것을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고 국방부가 이를 숨겼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임자였던 김관진 실장과 공모하고 대통령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항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해당 사실을 밝혔는데, 6월 말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사드 '배치'에 대하여 별도보고를 지시했다. 한민구는 보고시에 사드 2기 배치만을 보고 했다. 그날 저녁 사드 배치 관련 장성에게서 청와대 관계자가 전화로 추가 4기 반입에 대한 정보를 전달 받았고 익일 오찬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은 한민구에게 사드 추가 배치 (반입말고) 확인을 요청하였다. 


한민구는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직통 전화에서 사드 발사대 4기 반입(배치아님)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6월 2일엔 '사드 배치에 대해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을 것'이란 의견을 한미국방장관 회담에 시사할 것임을 밝혀, '민주적 절차를 밟고 국민들을 설득할 과정이 필요하다.'란 뜻을 전날에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대놓고 무시했다.

 

한민구 명령 불복종


  • 그 외 각종 논란들 

2016년 7월 5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두고 그런 작은 것을 가지고 전체를 문제시라는 발언을 했다. 다른 데는 다 멀쩡해서 그때 국방부 자체 조사만으로 가혹행위가 4천 건이나 적발되었나 '그런 사람을 패서 죽이는 일은 거의 안 일어나는데 군대가면 맞아 죽는 것처럼 그런다'는 의도로 말한 것 같지만, 맞아 죽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군대에서 부조리를 당하거나,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고, 군사법원의 문제점도 저 사건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 논점 일탈이다. 또한 이 발언을 할 때 피해자 故 윤일병의 어머니를 비롯해 군 피해자의 가족이 방청하고 있었다. 


2016년 11월 11일 최순실 게이트로 국회에서 질의를 받는 중 록히드 마틴과의 계약으로 인해 집행될 예산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었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록히드 마틴의 애치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한민구 박근혜


2016년 11월 14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추진해 가서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되었던 협정을 한 달도 채 안 되어 시국이 혼란한 틈을 타 속전속결로 끝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보지 않았을 뿐 4년 전 중단되었을 때부터 재추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말이 나왔고 홈페이지에 공고까지 띄웠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금은 안보가 중요할 때이며, 북한의 SLBM을 막고 북핵에 대한 정보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임기 도중 군 내부 전산망이 북한으로 추정된 세력에게 해킹당한 적이 있는데, 12월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에서 "그렇게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보고한 적이 있는데, 해킹 당시의 군 작계 중 일부인 작전계획 5027이 유출된 걸로 확인되었다. 엄연한 군의 작계가 적으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넘어갔는데 이런 망발을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하는 자가 과연 국방부 장관에 적합한 자질을 가졌는 지부터가 의문이다. 더불어 군의 가장 최신 작계인 5015도 털린 게 드러나. 충격과 공포를 주고있다.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선임 국방부장관인 김관진이 구속 수감됨에 따라 한민구도 수사 대상이 되었으며 구속 수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대상 중 최선임자가 다름아닌...


그리고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으로 인해 또 수사대상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기각될 경우 바로 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을 병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김관진과 모의하여 각 부대 병력들을 준비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SBS에서는 한민구 장관의 지시로 기무사가 해당 문건을 작성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이로 인해 한민구는 김관진과 같이 군인권센터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고발당했다. 안그래도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까지 같이 받게 되었다. 


한민구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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