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오늘(26) 오후 1시 20분쯤 세종시 새롬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아직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119에 시민들의 신고 전화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26일 오후 1시 10분경에 세종시 새롬동 신도심에 위치한 신축 건물 건설 현장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지하 1층에서부터 폭발음과 함께 불이 급속하게 번졌다고 소식이 들려왔는데,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것을 확인했다고 전했고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난 건물은 현재 짓고있는 세종 트리쉐이드 리젠시 주상복합단지라고 합니다.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최순실이 꽂은 인물?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누구? : 광주 촛불집회 관련 경찰 SNS 압박 의혹


1993년 11월 휴무일 점심,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개인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당시 혈중알코올 농도 0.09%로 면허 취소와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을 뿐 내부 징계는 받지 않았다. 청문회에서는 이 청장에게 교통사고 관련 수사·징계 기록을 제출하라고 따졌다.  그러나 “당시 조사를 받는데 너무 정신이 없고 부끄러워서, 직원에게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 그로 인해 징계 기록은 없다”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결국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었으나, 박근혜는 임명을 강행했다. 이후 이철성 청장에 대한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음주에 대한 비아냥이 대부분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시위 및 집회에 대한 법원의 판결 무시발언

12월 5일, 경찰청장 이철성은 청와대 반경 100미터까지 행진을 허용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법원의 입장(...)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라고 논평하고, 앞으로도 율곡로까지만 행진을 허용하겠다는, 가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의사를 밝혔다. 법을 관할하는 법원의 판결을 사법경찰관이, 그것도 경찰의 수장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위법은 물론이거니와 법정신에있어서 사실상 항명이다. 경찰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범죄자를 검찰에 송치하려고 하자 범죄자 왈 "경찰의 입장과 내 입장은 다르다!"라며 거부하는 것과 같다.


헌법상 시민의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원의 판단보다 교통소통 등 다른 공익이 중요하다며 법원의 판결에 정면적으로 배치된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거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경찰의 입장도 그렇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법에 근거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들의 수장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재수사 거부

수많은 의혹과 부실수사논란으로 둘러싸인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거부하는 의사를 16년 12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것과 같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는데 검찰과 대립하지 않고 협의를 거쳐 이루어낼 것이며 이를 위해서 경찰의 내부역량을 더욱 더 키워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위의 기사를 접한 국민들이 느끼길 저런 의혹투성이의 사건에 대한 수사의지도 없으면서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니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경찰을 옹호하는 이들은 검찰에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며 경찰에게 수사권이 있었다면 수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에게는 수사개시권이 있다. 물론 수사지휘권 등 전적인 수사권이 검찰에게 있으니 하나마나겠지만 하다 못해 검찰과 협의해서 수사를 개시하겠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 등 수사의지를 내비치지도 않으니 국민들은 경찰이 수사권을 핑계로 하여 5촌 살인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싶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해당 사건의 재수사 의지를 피력했다. 참 처세술 하나는 끝내준다 누가 대한민국 고위공무원 아니랄까 봐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최순실이 꽂은 인물?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누구? : 광주 촛불집회 관련 경찰 SNS 압박 의혹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음주운전 부터 최순실 인사 의혹 까지..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누구? : 광주 촛불집회 관련 경찰 SNS 압박 의혹

이철성 경찰청장 등 고위 경찰인사에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장시호의 내부고발이 나왔다.장시호, "우병우에게 보내라는 최순실 청탁 파일 있다" 특검이 최순실/우병우의 고위직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내부조력자였던 장시호의 증언에 따라 확보 된 자료로 취득경위에 대한 상세진술이 맞아들어갔기 때문에 진술과 증거의 신빙성이 굉장히 높다. 


우병우에게 확보한 자료는 '우병우 민정수석 청탁용 인사파일‘이란 제목의 파일로,여기엔 경찰청장·우리은행장·KT&G사장 후보의 인사파일과 함께 '민정수석실로 보내라‘는 최 씨의 자필이 적힌 포스트 잇이 포함됐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철성 청장이 옷 벗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박건찬 치안감의 인사개입의혹과 맞물려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물론 어디까지나 사실이라는 가정이 있어야한다


이철성 청장은 이 의혹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밝혔다.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음주운전 부터 최순실 인사 의혹 까지..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누구? : 광주 촛불집회 관련 경찰 SNS 압박 의혹


이와 더불어 특검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특검이 종료되는 그날까지 이 사항에 대해 특검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제 검찰에게 수사권이 넘겨졌으니 어찌 될지는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 아울려 요즘 검찰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고위경찰을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 관련해서 경찰의 군기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특히 조사 중인 모 총경이 이철성 청장의 측근이라고 하니 이 사건과 더불어 최순실의 경찰청장 인사개입의혹도 같이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의혹으로 그칠확률이 높다. 현재 경찰청장 임명은 총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7인으로 이루어진 경찰위원회가 치안정감 중 1명의 후보를 '단독으로' 추천해주면 행정자치부장관이 제청을 한 뒤 총리를 거쳐서 인사청문회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현행체제이다. 


거기에 경찰청장후보라고 볼 수 있는 치안정감은 전국에 6명뿐이고 전 경찰청장의 입직경로, 경찰위원회위원의 성향, 경찰내부, 외부평가 등을 보고 후보를 압축하는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다르게 보면 그 치안정감 6명중 남은 5명이 평가에서 현재 경찰청장에게 밀렸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최순실이 이철성 청장을 청장 후보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포스트잇과 이철성 청장의 내정자시절 청장 채택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한 측근의 발언에 최순실이 화를 내며 밀어붙이라고 말한 것을 장시호가 들어 특검에 진술하였으니 어찌 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조국 민정수석이 민정수석실 조사를 통해 정윤회 문건 유출을 포함한 박근혜게이트에 대해 새로운 정황이 발견될 경우 검찰에게 재수사를 맞기겠다고 하였으니 겸사겸사 해당 의혹도 같이 조사할 가능성이 생겼다.


문재인 정부가 7월 말 치안정감 인사이동 관련해서 이철성 청장의 유임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아 민정수석실 자체 조사과정에서 최순실이 이철성 경찰청장의 인사개입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오진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음주운전 부터 최순실 인사 의혹 까지..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누구? : 광주 촛불집회 관련 경찰 SNS 압박 의혹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경찰청장 이철성!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음주운전 부터 최순실 인사 의혹 까지..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최순실이 꽂은 인물?



국정농단 촛불시위 과정에서 호남을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글을 트집잡아 광주청장을 호되게 질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주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질서의식을 높이 평가한 광주경찰청의 글을 보고 당시 강인철 광주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는 등 비아냥 섞인 막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장의 호된 질책을 받은 광주청은 하루 만에 해당 글을 없애고 촛불집회 예고와 교통 통제 안내 글로 대체했고, 강 전 청장은 논란 발생 10여 일 뒤인 같은 달 28일 단행된 인사에서 지휘관에서 물러나 치안감 승진자가 주로 받는 경기남부경찰청 1차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해당 의혹이 SNS 등에서 화제가 되자 이철성 경찰청장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런데 강인철 치안감은 추가로 8월 8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이 "촛불가지고 정권 무너질것 같냐..내가 있는 한 안 된다" 고 말했다면서 촛불집회에 동조하지 말 것을 강압적으로 지시하겠다고 주장했다.


강인철 치안감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필요하다면 수사도 받겠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은 이철성은 수사하지 않고, 강인철 치안감의 수사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오랜 숙원을 앞두고 수뇌부들의 전례가 없는 폭로전에, 국민들이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일선경찰들도 혀를 차면서 천금 같은 시기에 이럴 거면 그냥 둘 다 옷보고 나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심지에 경찰 내부 인트라넷에 한 경위가 실명 게시판에 두 분 다 용단을 내리라(=나가라)고 글을 올릴 정도이다.


결국 13일, 상위 기관장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경찰청을 방문해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일천 치안감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회의를 진행하기 앞서 김부겸 장관은 대통령이 지휘권 행사를 고민했는데, 경찰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받았다며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 부터 자기 주장 및 상호 비방을 멈출 것을 지시하면서, 억울한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장관 권한 내에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반복되면 대통령과 국민이 준 권한으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 즉 누구든지 자르겠다는 최후 통첩을 경찰 수뇌부에 던졌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일선 경찰들에게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며 사과의 서한문을 돌렸다. 다만, 이미 수뇌부 다툼이 장관의 개입으로 멈춘 것이 어린애 싸움이 커지니 선생이 혼내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일선 경찰들도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김부겸 장관은 수사권 조정 등의 경찰개혁이 매우 시급하고, 또한 이번 경찰들의 갈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화가 극에 달했기에 좀 진정이 된 후에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음주운전 부터 최순실 인사 의혹 까지..

2018/06/26 - [실시간 핫이슈] - 이철성 경찰청장 : 최순실이 꽂은 인물?


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1920년대 태어나 1960년대(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정치를 한 시대다. 


사실상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 1960년대부터의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삼김을 빼 놓고서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김종필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3김이 완전히 정계를 떠난 2004년 뒤에도 정치가들은 삼김과 반드시 엮인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양김 산하의 정치인들이다


현재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고, 민주화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두 계파 모두 보수/진보진영 양측으로 알아서 갈라지거나 제 갈길을 찾아갔다. 현재의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은 김영삼의 영향이, 더불어민주당 / 민주평화당은 김대중의 영향이 크게 미쳤던 당들이다. 현재는 이 두 당은 YS가밀어준 이명박 대통령과, DJ가 밀어준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그 색이 많이 옅어져 YS와 DJ 시절 성향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명박(과 이회창)과 노무현은 자신을 키워준 김영삼, 김대중의 계파들을 쳐내고 권력을 장악하며 양김과 갈등을 쌓았다. 


김종필의 경우는 민주화 운동가였던 DJ와 YS에 비해 유명세가 딸렸고, DJ가 가진전라도, YS가 가진 경상남도 기반에 비해 JP의 충청도 기반 위력은 작은 편이었다. 결국 JP는 충청도 지역을 김대중에게 넘겨, 충청도 지역은 당시 민주당의 지역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을 겪으며 충청도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다소 잃었고, 한때 충청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부와 강원일대에서도 선전했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그 세가 크게 약화된 후신인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은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이들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의 16대 대선, 17대 대선 역시 YS와 DJ의 부하들끼리의 양자구도 싸움 양상을 이뤘기에 18대 대선이 되어서야 양김의 영향력이 약해지게 된다.


삼김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정권을 휘어잡은 건 90년대부터인,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취임한 후부터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경력으로 주목받는 부분은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 맞서던 시기다. 당시 민중운동도 꽤 활발했지만 사실상 정치계에서의 민주화 투쟁이 절대적이었으며, 양김은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야당(민주당, 신민당 등)은 지리멸렬한 상황이었기에 야당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다며 온몸을 다 바치던 YS나 DJ가 유명할 수밖에 없긴 했다. 이 김씨들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게 항상 눈엣가시였다.


2000년대 들어서야 이회창과 노무현이 삼김에서 벗어나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에게 반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각각 신한국당,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을 자기 마음대로 꾸리고 공천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체제였기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 때문에 구시대적 관습을 없애자는 이회창/노무현 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일명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로 불렸으며, 김종필은 박정희 밑에서 사실상 넘버투로 일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신민당을 이끌며 테러/납치/감금/투옥을 비롯한 고초까지 겪으며 박정희에게 항거했다. 정부에게 항거한 양김, 박정희 밑에 있던 김종필은 대한민국 내에서 입지가 무척 탄탄했다. 물론 전두환 정부는 정적인 셋을 또 탄압했다. 알다시피 DJ와 YS는 목숨을 걸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에게 항거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건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이 있지만, 그 외에도 흉기 든 깡패, 폭발물 등등...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계에 등장한 세 사람은 1970년대 제7대 대통령 선거와 유신 정권에서 전면에 나섰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대에는 신군부에 고초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계속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결국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신한민주당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으로 부활한 세 사람은 각각 PK, 호남, 충청(충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연횡했으며, 제14대 대통령 선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대통령은 각각 1998년, 2003년 퇴임하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선 의원에 실패한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하는 것을 끝으로 3김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로 김대중 前 대통령은 2009년 8월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2015년 11월엔 김영삼 前 대통령도 사망하였다. 김종필 前 총리 역시 2018년 6월[11] 결국 사망함으로써 3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셋 다 성향과는 별개로 젊을 때의 인물이 워낙 좋아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JP, DJ, YS 이 사진들의 시기는 무려 김대중은 60년대, 김영삼/김종필은 50년대로, 사실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령의 할아버지들인 셈이다. 이 세 사람은 제1공화국때부터도 주요 요직이나 정치인 자리에 있었으니 정치에 관해선 수십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인 것이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2017년 현재도 대한민국 정치권의 거물 대다수는 삼김 덕택에 정치를 시작하거나, 삶이 바뀌었다. 여야중진 대다수는 삼김에게 직접 영향을 받으면서 정치를 했다. 말하자면 삼김은 친 이승만, 즉 자유당 계열 정당 정치인들과 조병옥 등의 과거 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받았으며 박정희 때의 민주공화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정의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있었고 신민당-신한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는 보수정당의 민정계, 공화계, 민주계, 그리고 민주당계 정당의 동교동계가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민자당 정치인들과 신한국당 개혁성향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받았고 한나라당 대다수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친노 정치인들과 386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은 물론, 친박계, 친이계 등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삼김은 군부세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군부 쿠데타 핵심세력들과 신군부, 하나회는 물론, 군 장성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또 육,해,공군과 해병대, 야전군, 특전사 등의 군부 인사나 군 간부들도 삼김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았고 마찬가지로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인사나 원로 법조인 및 원로 변호사, 판사나 검사 등에도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친 곳이 없다. 또한 대형 로펌 대표를 비롯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에게도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그리고 또 언론계에도 마찬가지로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데가 없는데, 조중동, 한경오 등을 막론하고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그리고 지상파 및 종편의 방송에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특무대-방첩대-육군보안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로 이어지는 군 정보기관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에도 삼김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을 정도다. 


또한 대한민국의 거대 재벌 총수들과 재벌 오너 및 대기업 CEO, 재벌 기업인들과 대기업 임원들과 중소기업 CEO, 중소기업 임원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많이 미칠 정도다.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과 아예 무관한 정치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려면 적어도 20년은 더 필요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김종필의 계파는 청구동계라고 칭하는데, 3김 중에 제일 미약하고 인지도가 낮다. 2018년 6월 23일 김종필이 향년 92세로 사망하면서 삼김시대는 결국 반세기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 예로, 김종필이 미국에 가있는 동안 박정희의 조카딸이기도 한 김종필 부인이 첫아이를 낳고 쌀이 없어서 굶고 있었는데, 육영수가 자기 식구들에게만 밥을 먹이고 산모에게는 밥을 먹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는 것. 


기사 내용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봤을 때 당시 김종필 부인이 육영수와 한 집에 살거나 바로 옆집과 같이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종필이 귀국했을 때 부인이 김종필을 붙잡고 서러움에 울면서 그 이야기를 했고, 분노한 김종필이 육영수에게 남도 아니고 조카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다는 것. 


심지어 김종필의 부인이 계속 굶는 것을 보다 못한 박종규(당시는 군인으로 김종필의 부하였는데 훗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된다.)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상경하는 김에 쌀을 잔뜩 사서 김종필의 집에 가져왔다고 한다.


"육 여사가 애를 낳은 산모더러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저쪽에선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벽에 걸린 부인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날 붙들고 울고불고하더라"


그런데 정작 이 시사저널의 기사가 여러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된 후, 김종필은 같은 고향 사람인 시사저널측 경영자가 찾아와서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 주고 받았을 뿐인데, 몰래 녹음까지 해서 왜곡·과장해 비열한 기사를 만들어 기사로 냈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영철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왜곡이나 과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김종필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향 사람에게 뒤통수 맞은 것이지만, 일단 법적으로 녹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불법행위지만 대화 당사자 중 하나가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화내용을 허위 또는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고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고 넉달이 지나 헌재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부 언론이 추측했던대로 김종필 쪽에서 의도적으로 육영수 이야기를 시사저널측에 흘린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뿐 아니라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렇게 실수했다 또는 속았다는 핑계를 대며 언론에 기사거리 던져주는 행동을 한다.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고의로 그런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종필은 수십년 동안의 정치 경험을 통해서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이런 베테랑이 잘 알려지지 않고 그 파장도 클게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박근혜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론사인 시사저널 측 인사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순진하게 말해 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담 삼아 했다'고 말한 것 자체도 매우 의심스럽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필 본인의 조강지처인 박영옥을 소재로 농담을 했다는 의미인데, 김종필은 정치적 행보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가족관계, 특히 부부간의 금슬은 대단히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평생 금슬 좋게 지냈고 이미 고인이 되기까지한 아내를 두고, 밝고 유쾌한 내용도 아닌 매우 비극적인 내용으로 농담을 나눴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건 김종필이 거짓말(그러니까 '농담이었다'는게 거짓)을 말하거나, 아니면 김종필 본인이 지독한 위선자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앞뒤 사정을 고려하면 전자가 훨씬 가능성이 크다. 물론 김종필이 처음부터 육영수를 비난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관련 증언와 같은 증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김종필과 박근혜가 비록 사촌 형부-처제 관계이기는 하지만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가령 박근혜가 대선 직전 김종필을 만났을 때 호칭이 총재님이었다고 한다. 박근혜가 어렸을때부터 서로 자주 봐온 사촌형부-처제 사이인데도 굳이 '총재님'으로 말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하다. 또한 육영수의 좋은 이미지를 깨는 이런 이야기가 하필이면 박근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시점에 나왔다는 점 등도 의미심장하다. 처음부터 김종필이 이야기를 창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 의도가 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김종필이 이 시점에서 굳이 언급한 것이라면 역시 그 의도를 추측할 만 하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친인척과 가족들은 의외로 서로 사이가 나쁘다. 


육영수 이전 김호남 사이에서 얻은 첫딸인 박재옥과 육영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박근혜와 박근령, 아들 박지만, 처제 육예수, 처형 육인순, 처남 육인수, 조카사위 김종필, 조카딸 박영옥, 박계옥 자매, 사위 신동욱, 며느리 서향희, 이종사촌조카 홍세표, 홍소자 남매 등 가족 친인척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견원지간이거나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 닭 보듯이 여기는 사이다. 


오죽하면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가 박근혜를 망치고 있다며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박지만과 박근령이 노태우에게 보냈을 정도였고 김종필 본인조차도 말년에 박정희-육영수 소생의 딸들인 박근혜와 박근령에 대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 좋은 점들만을 배웠다고 일갈했을 정도였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신드롬이 불었지만 정작 박정희의 친인척들은 같이 기념행사를 주최하거나 일치단결해서 선거에 임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박정희 추모식 때마다 누가 행사를 주도하느냐에 따라서 누군 오고 누군 안 오고, 설사 오더라도 서로를 마치 적대하듯이 대하는 등 볼썽 사나운 광경이 매번 연출되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것이다.



김종필은 충남 온양(지금의 아산시)의 육군 제13연대에 사병으로 배속되었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그러나 해방정국의 혼란 때문에 당시 군대는 악폐습, 똥군기라는 설명으론 가히 표현이 부족할 만큼 개판이었고 결국 가혹행위를 못이겨 불침번을 서던 와중에 탈영해버렸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 동기생의 자취방에 얹혀 살게 됐다. 한심한 처지의 울분을 억누르며 지내던 중, 해방이후 국도극장(國都劇場) 으로 이름을 바꾼 옛 황금좌 극장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와 마주쳤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극장 매점에 있던 교도대 중대장을 찾아가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재입대를 부탁했다(????????). 워낙에 탈영이 흔하던, 전쟁 이전 시절이라 중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국 육사 교도대에서 다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김종필을 눈여겨 보던 중대장이 그에게 육사 입학을 권유했고 그렇게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리고 8기생 졸업식에서 우등상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때 1,300여명의 8기 졸업생들 중, 단 32명만이 육군본부로 배속됐는데 김종필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김종필은 정보장교로 배정 되어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북한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여기서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던 장도영, 전투정보과장 이후락, 정보국 선임하사 박종규, 전투정보과 상황실장 박정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박정희는 육사 2기로 임관하여 현역 소령으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재직 중 남로당 입당 전력이 들통나서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으로 파면당한 후 장도영의 전임 정보국장 백선엽의 도움을 받아 문관 신분으로 직제에도 없던 정보국 상황실장 직을 맡고 있었다. 정보국으로 배치된 육사 8기생들에게 전투정보과장 이후락이 상황실장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했는데 박정희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나한테는 인사할 필요 없다"라며 자리를 피해 버렸지만, 이후 박정희와 육사 8기생들은 서로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고 결국 이들은 쿠데타의 주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정희의 중매(?)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 박영옥과 결혼한다.



김종필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던 박영옥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친척이자 작은 아버지인 박정희를 자주 찾아오며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김종필도 안면을 익히게 됐고, 어느날 불쑥 "자네, 내 조카딸 어떤가?"하고 박정희가 말을 던졌다. 당시로서도 나름 미인이던 박영옥을 김종필이 싫다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김종필은 박정희와 처삼촌-조카사위라는 인척 관계로 묶이게 되었고 이후 박정희는 김종필을 조카사위 입장에서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거의 항상 임자라고 불러댔다


[데일리한국] JP(김종필 전 총리)와 박영옥 여사의 '잉꼬부부' 이야기



한국전쟁 무렵, 당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유양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정보국장 장도영에게 찍히는 바람에 6사단 정보참모로 떨려났고 전투정보과 북한반장 백모 대위는 북한과의 무역거래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나면서 처벌받기 직전 권총으로 자살하는 등, 전쟁을 앞두고 김종필이 소속된 전투정보과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반의 선임 장교가 된 김종필은 이미 전선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북으로 정찰요원을 급파했지만 전원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개전 당일(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의 당직장교로 근무하던 김종필은 북한군이 38선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전면전임을 직감하고 육본의 각 국장 들을 호출했다. 아울러 채병덕 총참모장 및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전파하는 등 당직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당시 상황은 일개 중위였던 김종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후 1951년, 대위로 진급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장교단에 뽑혀, 조지아 포트 베닝(미 육군 보병학교)에서 연수를 수료했다. 김종필은 한국전쟁 후반부인 1952년 8월부터 53년 5월까지, 6사단 19연대의 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계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은 누구인가?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문재인 대통령에게 악담 영상)


한국 정치사의 거물인 3김 중 하나.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인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직 군인. 약칭은 JP.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이며 안경공 김영정의 증손인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희철(金希哲)의 방계 후손이다. 1926년 1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정(雲庭)이다. 40년 이상 정치가로 활동하며 여러 정부에서 국무총리만 6년 반을 지냈다. 굳이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정치가.


한고제에게는 소하, 장량이, 유비한테는 제갈량이, 조조에게는 순욱이, 태종에게는 하륜이, 세조에게는 한명회가 있다면 박정희에게는 김종필이 있었다. 이른바 삼김시대의 삼김 중 한 명으로, 김대중이 2009년, 김영삼이 2015년에 숨을 거두면서 유일한 생존자였으나, 2018년 6월 23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만 92세)


둘째 형 김종익도 3선 국회의원을 역임, 셋째 형 김종락은 한일은행 지점장, 전무를 거쳐 무려 14년에 걸쳐 대한야구협회장을 지냈다. 


이른바 3김(金)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는데 2009년 김대중, 2015년 김영삼에 이어서 2018년 가장 고령이었던 김종필마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서 이들의 정치 데뷔 반세기만에 3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김 시대라 불렸던 이들도 결국은 사람이라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도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을 버리고 안락한 2인자를 선택해 9선의원과 2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재임하는 모습에 대해 아예 대위를 사단장에 임명시킨 꼴이라며 혹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말에 젊은 혈기가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2004년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행정수도 이전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외에는 인간미가 있고, 순진한 모습이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이나 이인제 등을 저격하며 중립을 지켜서 '음지에서 노무현을 지원사격했다' 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평소 받았던 평가 그대로, 노무현의 다혈질을 두고 우려를 많이 표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 자질을 키우지 못하고 적만 만들다 일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비평했다. 김대중은 그 선을 잘 지키는 정치 프로였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 4월 이재오가 김종필을 예방했을 때와 5월 홍준표가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문안인사를 왔을 때 문재인에 대해서 인신공격적인 언행을 남겼는데 베라먹을 자식(빌어먹을 자식), 그깟놈은 대통령 될 자격도 없어라고 말하여 문재인에 대한 증오와 배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물론 이재오와 홍준표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던 것이었지만 이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문재인의 정치적 성향을 증오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어보이나 본인이 군부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편이기 때문에 문재인 같은 성향의 인사를 싫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종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노무현 등의 정치인에게도 좋게 평가한 전례가 있어서 저렇게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오와 홍준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각각 자네같은 각오로 정치를 해야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통 책임감이 없어.(이재오에게 한 말) 자네는 정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관상이야, 자네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지, 나는 (홍준표 자네를)지지하겠다(홍준표에게 한 말)고 공개적으로 홍준표 지지를 표하였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인지 투표는 하지 않았다(!?) 또한 19대 대선에 출마한 늘푸른한국당의 대선후보이자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도 김종필을 예방했는데, 이재오 앞에서도 문재인에 대해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더 말하지 않겠음...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결혼생활 : 박영옥(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과 결혼

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예전 같으면, 뜻과 멋을 모두 갖춘 절묘한 사자성어로 덕담을 해줬을 JP가, 육두문자 수준의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김영삼, 이명박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내리며 덕담까지 했었기 때문.  실제로 JP는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 특별히 험담하지 않았고, 상당히 차분한 어조로 평해왔던 편이다. 당장에 YS와 DJ가 사이가 좋지 않지만, JP는 YS와 DJ와 모두 가까웠고 두 정치인에 대해서 호평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그리고 과거의 정적들에 대해서도 본인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적개심들이 모두 씻어내려졌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리 총리를 지낸 분이자 정치 원로라지만 특정 대통령 후보를 향해서 원색적인 비방을 하고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언행이야말로 선거법 위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홍준표가 낙선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매스컴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다. (짙은 녹색은 시아파, 연두색은 수니파)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으며,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쫓겨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도 알카에다(AQAP)(흰색)가 통제하고 있다.




예멘 수니파와 종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후티 반군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


2015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 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 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관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현 대통령이 반군에 의해 관저에 '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전면적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는데, 후티가 정권을 쥐면 알 카에다와 수니파 무장 조직들이 반시아파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가망이 매우 크다. 더욱이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참혹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거기다 남예멘 사회주의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도 있으니(...)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 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


2018/06/22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및 종파 갈등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멘 난민] 예멘 풍습 : 조혼이 잦은 나라..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 1인당 4정의 총기 보유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난민]도대체 예맨이 무슨 문제야..?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허핑턴 포스트 기사. 후티 반군이 예멘의 의회,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회를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혼란상이 극심해지고 치안이 갈수록 악화되자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와 사우디 아라비아까지도 대사관을 폐쇄하고 철수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사직서를 내고 연금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지지 기반인 남부로 달아난 듯 했으나 이내 사퇴를 번복하고 남부 6개 주의 지지를 받은 뒤, 아덴을 임시수도로 선포하고 합법 정부로서의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 후티 시위도 일어나는 중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예멘이 눈 앞에서 붕괴되고 있다'라며 경고하였다.



2015년 3월 20일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까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같은 날, 예멘에 주둔하던 미군(규모 100여명)이 완전 철수했다. 22일에는 후티 반군이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점령했다.


26일부터 사우디군이 예멘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5만명 규모의 병력과 100여 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였으며, 아랍 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습 전날 백악관에서는 사우디에 정보와 군수 지원 명령을 내렸다. 물론 미국도 군수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보자산(드론) 등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인 만큼 개입이라고 봐도 타당할 듯하다. #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군사작전은 하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전투는 예멘 수니파 정부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 지상군 병력의 80%가 예멘에 투입된 가운데, 이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생지옥의 참극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시아파 종파갈등 성격의 중동 국제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은 4월 1일에는 하디 행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까지 점령했다. 하디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망명.



5월말, 오만의 중재로 미국과 후티반군이 협상을 했으며, 6월 14일 제네바에서 정부 측과 후티 반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개시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선 남북 재분할 얘기도 나온다. 완전 재분할은 아니고 상징적 대통령을 두는 느슨한 연방제라는 전망. 


사우디군이 병력을 계속 예멘에 투입하고 있으나, 게릴라전을 하는 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역으로 사우디 지잔 주를 공격해 사우디 AMX-30을 노획하는 후티 반군


후티의 게릴라 전술에 크게 데인 사우디군은 공격 헬기까지 투입하여 반군의 기갑부대를 격파하고 마리브 주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은 결국 사우디 내륙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처음엔 지잔 주 가 돌파당하고 뒤이어 반군이 아시르 주로 진군 중이라 한다.


게다가 아시르 주의 군사기지 한 곳을 사실상 무저항으로 후티 반군에게 내줬다고 한다. 교전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죄다 도망을 쳤다는데 마치 ISIL에 맞서 졸전을 면치 못하던 무능한 이라크군을 보는 듯하다. 만약 이들을 몰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내전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역시 이슬람 국가들의 군대는 선전만 잘하지 실제론 당나라 군대다.


2016년에도 내전은 지속되고 있고, 예멘은 완전히 실패국가가 되어버린 상태다. 국민들은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도 없이 고통받고 있으며, 지긋지긋한 종파 간 갈등과 내전은 1년 넘게 끝나지 않고 있다. 내전에서의 사망자는 6400명이 넘어가고,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은 70%에 달한다.


내전에 휩싸여 비참한 처지에 놓인 예멘을 취재한 미니다큐.


이런 상황 속에 2016년 4월부터 정부군과 후티 반군간의 평화협상이 쿠웨이트에서 논의되고 합의되었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져 가는 와중에도 2016년 5월 29일, 샤브와 주에 주둔한 정부군을 반군이 기습해 정부군 20명과 반군 28명이 전사하는 등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2016년 5월에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세력이 움츠러들고 있는 ISIL이 시리아와 예멘에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아덴에서 사망자가 최소 45명이 발생했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신병훈련소를 겨냥해서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민 시아파 반군 후티의 고위급 인사의 부친상이 열리던 사나의 알쿠브라홀을 두 차례 공습하였는데, 장례식 폭격으로 인한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크게 일어나자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어서 사우디가 이를 예멘 장례식장 폭격을 오폭으로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죄없는 어린이들은 37만 명 영양실조·아사 위기라고 말했다. 5세 이하는 무려 31%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예멘은 2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 부상자가 4만 명에 달했다 게다가 콜레라까지 번지면서 115명이 죽고 8,500여 명의 감염자가 발생되었고 한 달여 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600명에 달하고 감염자도 7만 명에 달했다. 결국 예멘은 콜레라가 확산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예멘에서 콜레라가 확산되자 다른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예멘에서는 한달반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1천 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2달 만에는 사망자가 1,500명에 달했고 이 중 25%가 어린이들이었다. 게다가 콜레라 의심 환자가 30만 명을 넘으면서 점점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치닿고 있다. 그리고 2017년 8월 30일에 폭우와 홍수로 15명이 사망하면서 콜레라확산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7월 27일에 예멘 반군이 쏜 미사일이 메카(!)인근에 떨어졌다. 


그리고 2018년 1월 30일에는 예멘 반군 후티가 리야드의 공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2월 1일에 사우디군은 부인했다. 


최근(2017년)에 예멘을 통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부유한 걸프국가들로 이주하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 중에 민간인 10,000명 이상이 숨졌고 이 중 1,000명은 어린이였다. 


 예멘 타이즈에서 반군의 포격으로 어린이 4명이 숨졌다.


 예멘군이 알카에다의 거점도시 마파드를 점령했다.



2017년 11월 6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동맹군이 예멘의 육해공을 봉쇄하였다.# 이 봉쇄조치로 가뜩이나 열악한 예멘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후티 반군은 봉쇄에 반발하며 사우디와 UAE에게 보복하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유엔의 예멘 민간인 구제는 허용하여 유엔이 사우디군의 통제하에 있는 예멘의 사나 공항을 이용하도록 허가해주었다. 물론 그외에는 전부 봉쇄했다.#


그리고 12월 4일, 후티 반군은 사나에 머물고 있던 '''살레 전 대통령에게 헤드샷을 날려 처형했다. 살레 전 대통령과 후티는 한때 한 배를 탔었으나, 이후 결별했다. # 후티 반군이 살레 전 대통령을 처형한 이유는 후티의 적국을 도와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동맹을 제안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줄타기를 시전했다는 것이었고, 결국 후티의 화를 자초하여 자신이 이끄는 무장단체, 지지자들과 함께 사이좋게 처형 당했다. 꼴 좋다!


예멘은 내전중에 콜레라에 이어 디프테리아(!)까지 확산중이라서 10명중에 1명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보건시설은 55%가 파괴되면서 의약품공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1월 28일에는 예멘 정부를 돕던 분리주의 세력이 임시정부청사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되었고, 예멘 정부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아덴전역에서는 분리주의진영의 시위가 일어났다.# 거기에다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은 1월 28일에 아덴의 정부청사를 정부군과의 전투끝에 점령했고 1월 29일에는 병력을 증파하는 등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덴에서 정부지지자들과 남부분리주의자들이 충돌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예멘 정부군과 남부 분리주의세력간에 교전이 일어나자 아흐메드 빈다게르 총리는 사우디로 도피할려고 하고 있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로 피신했다.# 결국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중재를 위해 대표단을 아덴으로 파견했다.#


2018/06/22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및 종파 갈등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멘 난민] 예멘 풍습 : 조혼이 잦은 나라..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 1인당 4정의 총기 보유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난민]도대체 예맨이 무슨 문제야..?



2018년 2월 3일에 사우디주도의 아랍동맹군이 예멘 반군을 폭격하면서 군사시설, 학교, 민가 등을 표적으로 삼아 어린이까지 대거 희생되었다.#

2018년 4월 11일에 후티 반군은 전투용 드론으로 사우디 남부 국경지대의 공항과 석유시설을 공격했다.# 그리고 사우디군은 2018년 5월 7일에 예멘의 사나에 위치한 옛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2018년 5월 3일 아랍에미리트가 뜬금없이 자국 군대를 파견하여 소코트라 섬을 점령했다.# 시아파 반군 후티에 맞서 원 정부인 하디 정부 편을 들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온 아랍에미리트는 2017년 말부터 하디 정부에서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으로 편을 갈아탔고 이 분리주의 조직은 2018년 초 하디 정부를 몰아내고 임시 수도였던 아덴을 장악했다. 아랍에미리트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공항, 항구, 정부 관공서 등 주요 시설에 게양되고 있던 예멘 국기를 내리고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내걸었으며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정부에게 소코트라 섬의 99년 기한의 조차를 주장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을 지원하여 예멘 정부가 자국군의 행동에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든 후 소코트라 섬을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로 영구히 합병할 속셈인 듯하다.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의 소코트라 섬 점령이 예멘의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비난했으나 본토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신경쓰느라 바쁜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는 이런 행각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2018년 6월 13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연합군과 예멘 정부군은 후티의 물류 요충지인 호데이다 항구를 탈환하기 위한 대공세에 들어갔다.# 그래서 하루만인 6월 14일에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 남부의 나킬라 마을을 탈환하였고#, 6월 16일에 호데이다의 공항을 완전히 포위하고 공항의 후티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6월 19일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군과 호데이다에서 격전을 벌였지만,# 결국 예멘 정부군과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항구를 탈환했다.# 하지만 호데이다 전투가 확장되면서 시민들중에는 피난을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멘 내전이 길어지면서 미국은 내전에 개입(!)을 시사했다.# 예멘은 의료기관 등의 붕괴로 콜레라가 확산되었는데 새로운 콜레라(!)가 확산될려는 조짐을 보이자 사나 정부는 살충제를 살포했다.## 그리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예멘내 직원들의 안전문제와 위협때문에 결국 직원들을 철수시키기로 밝혔다.# 그리고 프랑스도 6월 16일에 예멘에 특수부대를 파견돼있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내 주변에는 외국인 친구들이 많고 직업 특성상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 친구들이 많다.


동남아시아에는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친구들이 많이 와있어서 대화할 기회가 많다,


예맨 난민 제주도...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많은 아프리카 중동 친구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예맨난민과 여성인권 차별을 조장하네.. 이런 기사를 쓰기 전에.. 


제발 예맨이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무슬림이 어떤 종교이고, 

그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나가서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고? 사는지를 좀.. 봤으면 좋겠다


직접적인 무슬림에 대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말했다.


그사람들은 돈 금방 모아. 길에서 자고, 음식 주워서 먹고 하면서 돈 금방 모아서 집 한칸 마련하고, 

작은 비지니스 시작하고, 서로 같은 종교인 사람들 도와주고,

애도 엄청 많이 낳아. 진짜 많이 낳아.. 


숨어 있는것 처럼 보이고, 불쌍한것 처럼 보이지만 정신 차려보면 어느 순간 그사람들은 너네 나라 곳곳에서 

아주 잘 살고 있어. 그리고 때가 되면 자기들 종교와 문화를 강요할거야.


그리고 그게 안먹이하면.... 어떻게 될지 주변을 잘 돌아봐.


무슬림이 위험한건 자기들 종교와 생각이 다르면 죽여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고

종교는 단순 종교가 아니고 문화와 생활 습관 등등이 다 포함되어 있어.


그 사람들 맨날 라디오 들고 다니면서 들을꺼야.


너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들 끼리 한순간 어느 지역에 몰력 가서 테러 시작할지도 몰라.


한번 발들이면 절대로 안없어져.. 


우리나라 XX지역도 그사람들이 와서 다 사람들 죽이고 있어... 

 



기사 쓴 분들.. 무슬림 사는 지역, 한국에 무슬림 모여사는 지역이라도 상관 없음.

거기에 본인 딸 자식, 없으면 누나, 여동생, 아니면 여자 조카라도 보내서 살게 하실 수 있으면 인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