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운동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해찬은, 여러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지역구로 공천을 받아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5회 연속으로 관악을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고 20대까지 합해서 현재 7선 의원을 기록 중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5공 청문회의 일원으로 참석해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사건과 녹화사업 등을 추궁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주로 야당이었지만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했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공을 세웠다.


88년 등원 직후부터 5공청문회에서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이인제 의원과 함께 송곳 질의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스타가 되었지만, 당내 활동에서는 DJP연합 당시 정책 공조 협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선거 전략가로 더 알려지게 된다.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에 따르면 선거 운동 들어가기 직전에 이긴다고 말하며 예측한 백분율이 소수점까지 딱 맞아떨어져, 한동안 '선거의 제왕'이라 덕담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 및 국무총리 시절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여당의 일원이 된 이후로는 48세에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 교육 정책을 주도하고 공무원 성과급 제도를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들로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특기-적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을 딴 이해찬 세대를 양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의 정부가 저물 때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을 지지하였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얼마 안 가 국무총리에서 사임하자 후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총리 시절 국회 질의에서 야당 측과의 공개 설전을 마다하지 않은 파이터 기질을 발휘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더불어 내각을 이끄는 막중한 자리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에 눌려 제대로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고, 그냥 얼굴마담이나 대통령의 방패막이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면서 참여정부의 국무총리들은 비교적 강력한 권한을 휘둘렀다.


이해찬 총리도 그 혜택을 본 인물로서 '대표적인 책임총리(또는 실세 총리)'라는 타이틀이 생겼고,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지휘하는 등 현실 정치에서도 실세 총리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지금도 책임총리나 실세 총리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이해찬 총리다.


그러나, 강원도 양양군에 산불이 번지는 와중에도 골프를 친 사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고, 이후로도 이런 행적은 정치적 부담이 되어버려 평생까임권 공격의 주요 소재가 되어버렸다. 이후 골프와 관련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국무총리에서 사퇴했다.


사실 이해찬 총리가 재직 시절 골프로 구설에 오른 것은 양양 낙산사 산불건 외에도 몇 차례 더 있었다. 가장 먼저 구설에 오른 포천 포사격 훈련 사고는 당시 골프를 치다가 사건 보고를 받고 즉각 조문을 가서 별 문제가 안 됐지만, 양양 낙산사 산불 사건으로 상당한 논란이 되었고, 같은 해 남부 지역에 홍수로 수해를 입고 있었는데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는 바람에 빈축을 샀다. 결정적으로 2006년 3.1절 기념식에 불참하고 부산에 골프치러 갔던 것이 밝혀지자 청와대에서도 쉴드를 포기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10년 만의 정권 교체로 다시 야당이 된 이후 유시민 등 친노 세력을 모아 탈당한 뒤 기존의 열린우리당의 부활을 염두로 신당 창당에 박차를 기울였다. 바쁜 일정 때문인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연임 기록은 일단 5선으로 마감했다. 



그러다 대선이 임박해오자 친노 및 진보 NGO 인사들과 함께 가칭 '시민통합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 민주당과 합당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에 복당하였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의 호남이라고 불릴 만큼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제일 막강했고 자신이 내리 5선을 지내기도 했던 서울특별시 관악을 지역을 떠나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했다.


이해찬 후보는 자유선진당의 심대평을 무려 14%P차로 밀어내고 4년 만에 국회로 복귀했다. 당초에는 지역 거물 정치인이던 심대평의 당선이 점쳐졌지만 이해찬 후보는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 하나만으로도 전국적인 인지도가 월등한 데다 국무총리 시절 세종특별자치시 설립에 앞장선 경력도 있고 여기에 지역적 연고까지 있어서 생각보다 큰 7,000여 표 차로 이겼다. 


설마 이해찬... 그 4년 사이에 세종으로 아예 옮긴 건가...여담으로 2년 뒤 치뤄진 6.4 지방선거에서도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의 첫 지도부였던 한명숙 지도부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그 뒤를 이을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경선에 출마해 김한길 의원 등을 쓰러뜨리고 당선되기도 했었지만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인적쇄신론이 나오면서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당대표 대행을 맡기고 사퇴했다.


대선 이후에 한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내리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임금의 70%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가 야당이 '이명박 정부부터 지금까지 약 5억 2,000만 달러가 개성공단에 들어갔는데, 이 돈이 무기 개발에 쓰여진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방치했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반론하자 급히 말을 바꾼 것을 두고 한 차례 비판한 뒤, 현역 통일부 장관도 모르고 있었던 개성공단의 임금 흐름을 설명하며 홍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자후를 보여주기도 했다. 




난항 끝의 재등원(再登院)

2016년 3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지도부가 그의 지역구인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해 이 의원을 쫓아내면서 다시 그의 존재감이 되살아났다.


공천관리위원회는 이해찬 후보에겐 부적격 사유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를 공천하려고 했지만 김종인 대표가 차일피일 결재를 미뤘다고 한다. 이 행동을 놓고 모두들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에게 '내 손으로 잘라내기 전에 본인이 명예롭게 물러나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해찬 의원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결국 더민주 지도부는 이해찬 의원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김종인 대표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찬 후보를 컷오프한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선 주로 당내 다선 의원 물갈이의 연장선상에서, 또는 실체없다는 말도 많지만, 어쨌든 많이 비판받는 '친노 패권주의'를 표면적으로나마 청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을 제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부수적인 이유로는 과거 서울 관악 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찬과 맞붙었다 패했던 김종인 대표의 사적인 감정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고, 세종시에서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결과가 형편없어서 탈락시켰다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는 문재인 전 대표가 친문계 세력으로 친노계를 재편하려고 배후에서 조종해 친노계의 2인자인 이해찬 의원을 김종인 대표를 통하여 쫓아낸 거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다 나왔다.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면, 문재인 전 대표 쪽은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을 잘라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해찬 의원 컷오프가 확정되기 전날,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여기서 김 대표는 '전체 선거 구도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내게 맡겨달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김 대표 본인도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일반 대중의 시각을 생각해 이해찬 의원을 일찌감치 잘라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 같다.


어찌되었든, 탈당은 없을 거라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는 달리 이해찬 후보는 3월 15일, "어떠한 결격 사유도 없는데 모욕을 주고 강제로 쫓아내면서 친노를 척결한다고까지 말하는 객관적이지 않은 공천 방식은 인정할 수 없으므로 무소속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종인 대표는 이해찬 후보의 상대로 다른 곳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인지도 낮은 후보를 보냈다 다만 자길 따라 동반 탈당하겠다는 세종시 당원들과 시장, 시의원들은 당에 남아 있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고, 본인도 당선될 경우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결과는 새누리당 박종준 후보, 더민주 문흥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된 직후 인터뷰에서 이해찬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컷오프'에 대해 엄중히 항의해 사과를 받아낼 것이며 복당이 된다면 당을 바로잡겠다'며 복당하면 차기 당대표 선거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를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당선으로 그는 7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지지않고 전승한 국회의원이 됐는데, 이는 윗 당선 수를 따져봐도 9선 의원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외에는 없다. 허나 그 JP조차 비례대표 1번을 받고도 떨어지는 굴욕을 겪은 바가 있다.


참고로 JP와 같은 9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4대 총선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3대 총선과 4대 총선에서 낙선한 흑역사가 있다. 8선 의원 중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경우 2번의 낙선, 정일형 전 의원의 경우 한 번의 2위가[22] 있으며, 새누리당의 서청원 전 최고위원의 경우 1번의 낙선이 있어 김재광 전 의원만 8선 모두 당선(!)되는 진기록을 가졌다.


같은 7선 의원인 정몽준 전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는 7회 모두 당선되었으나, 2014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패배하여 1번의 낙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찬 의원은 농담 삼아 "좀 교만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왜 선거에서 지는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함으로써 선거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이어가게 되었다.




당선되는 즉시 복당하겠다며 복당을 일찍이 천명했지만, 탈당한 인물들을 복당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우고 있는 새누리당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이해찬, 홍의락 두 의원의 복당 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홍의락 의원이야 본인이 복당할 뜻이 없다고 말했으니 그렇다고 친다지만, 이미 본인 스스로도 복당을 천명한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튼튼한 지지층인 친노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한 이해찬 의원의 복당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 것은 이해찬 의원이 복당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아마도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가 될 것이고, 그럼 김종인 대표는 자기가 갖고 있었던 당 지휘권을 앙숙(?)인 이해찬 의원 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원치 않아서라고들 보고 있다. 


그래서 이해찬 의원의 복당은 빨라도 아마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공식 지도부가 선출된 다음인 2016년 가을 즈음, 늦으면 대선 직후에나 이뤄질 듯하다. 이해찬 의원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마도 2016년 9월 쯤에 복당할 수 있을 거라 내다보는 중이라고.


일단 일여다야 구도에서 무소속으로 나갔는데도 무난히 당선돼 '컷오프는 잘못됐다는 걸 세종시민들이 입증해 주었다'는 등의 명분도 생겼고 전당대회에서 친문 성향 최고위원들이 다수 당선되고 친문 진영에서 밀었던 추미애 대표가 압도적 득표율로 새로 당선되면서, 복당은 시간 문제일 듯.



2016년 8월 18일, 세종시 전동면에 있는 자신의 전원주택 근처에서 퇴비 냄새가 난다고 해서 민원을 넣었다. 


이에 세종시청에서부터 심지어 세종시 행정부시장까지 나서서 이웃 농민의 퇴비를 15톤이나 수거해 가는 바람에 갑질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악취의 농도도 허용치 안이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자 이해찬 의원실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문제의 퇴비는 일반적인 퇴비가 아닌 돼지 분변을 바탕으로 한 퇴비로, 악취가 심해 그 주변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찜통 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이해찬 의원도 세종시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피해를 보고 있었던 인근 주민이었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을 대표해 민원을 넣었다는 거였다. 


세종시청에서는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땅 주인에게 수거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 지지자들이나 반노/반문 성향의 야권 지지층의 반응들은 대체로 '전원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며 갑질이라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세종시당도 '이해찬 의원의 민원은 황제 민원이다'라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의 해당 비료를 조사한 결과 중금속인 아연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해 부적합 결과가 나왔으며 설상가상으로 해당 마을은 상수도를 쓰지 않고 지하수를 쓰는데, 비료가 뿌려진 땅이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중금속인 아연이 마을의 상수원으로 흘러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발행인은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 쪽과 가까웠던 당직자를 몰아내고 더민주 세종시당 사무처장에 앉힌 사람이라 중립적인 시각에서 나온 보도인지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6년 9월 3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의에서 이해찬 의원과 징계를 받았던 세종시당 당원들의 일괄 복당을 의결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했다.  그리고 1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이 당 국정자문회의를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와 국가경제 자문회의로 이원화한 뒤 이해찬 의원을 외교안보통일 의장에 선임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선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선거 캠프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중립을 지켰다. 몇 차례 경선 과정을 비판하는 의견을 낸 적은 있지만 특정 후보를 겨냥하지는 않은 원론적인 의견에 가깝다. 이후 문재인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 선대위원장이 되었다.





기기기본래 송범근은 상주 상무의 유스팀으로 지정된 용운고등학교의 선수였다. 용운고를 졸업한 뒤 우선지명을 받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상주에 프로 팀이 창단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어디든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 용운고 3학년 시절이던 2015년부터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기 시작했고, 고려대학교에서도 주전으로 꾸준히 뛰던 선수인지라 수많은 프로 팀들과 연결되는 루머의 대상이기도 했다. 결국 송범근은 골키퍼 보강을 원하던 전북 현대 모터스로 2018년 합류했다.

 

전북이 명실상부 현 K리그 최강의 스쿼드를 자랑하는 팀인 것은 사실이지만, 골키퍼 포지션만큼은 K리그 내에서도 하위로 평가받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홍정남, 황병근과의 경쟁을 송범근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고, 전북의 마지막 퍼즐로 기능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즌 초에 홍정남이 먼저 경기를 치렀으나, 황당한 실책을 벌이면서 바로 주전 경쟁에서 위기를 맞았다. 이 틈 사이 송범근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 킷치 SC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선발 데뷔전을 가졌고, 안정적인 경기력과 선방으로 6-0으로 승리하여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어서 3월 1일, 2018시즌 K리그 1 울산과의 개막전에 선발로 나서 프로 데뷔 1년 차의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과 함께 클린시트를 선보였다.


3월 10일 2R 인천과의 경기에서는 벤치멤버로 있었지만, 경쟁자인 황병근이 공의 낙하지점을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범해 문선민에게 결승 골을 내주면서 인천과의 경기에서 패배했다. 홍정남과 황병근이 큰 실수로 정병남근 형제로 묶여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오히려 송범근에겐 주전경쟁의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송범근 본인도 14일에 벌어진 중국 톈진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톈진 취안젠과 전북 현대 모터스의 2018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E조 4차전에서 아쉬운 상황판단을 보여주며 4점을 실점했고, 주전 경쟁은 다시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둘과 달리 큰 실수를 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많은 케이스라 비교우위에 섰고, 18일 서울 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다. 90분내내 무실점을 기록하다가 로스타임에서 프리킥에 1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실점도 골대를 맞고 들어온 골이라 키퍼 실수라고 할 수는 없는 편이라 전망은 나쁘지 않은 편. 이후 리그 경기인 상주 전, 아챔 경기인 가시와 전에서도 선발 출장해 연속 무실점 방어를 선보였다.



18라운드까지 17경기에 출전하여 8실점 13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17경기에서 총 67개의 유효슈팅이 전북의 골대를 향했으니 단순 선방률을 따지면 88%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청대 시절부터 유망주였던 만큼, 전북 입단시 치열한 골키퍼라는 포지션에서 기회 부여와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란 우려가 있었지만, 시즌 첫 경기부터 기회를 받으며 선발로 나서고 있다. 


프로 초년생인만큼 아쉬운 판단을 보여준 경우도 있지만, 포지션 경쟁자들의 자폭과 함께 본인 스스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쟁자 레이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걸그룹도 아닌데, 막내 온 탑... 사실 송범근이 클린시트 기록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갖춘 골키퍼는 아직 아니다. 미숙한 부분이 눈에 보이고는 있지만, 경쟁자들보다는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인 덕분에 경험치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국가대표 경력 - 청소년 국가대표 


2015년 발렌틴 그라나트킨 U-18 친선대회부터 20세 이하 대표팀에 소집되었고, 이후 자리를 잡아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7년 U-20 월드컵에서 안준수, 이준과 함께 골키퍼로 발탁되어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까지 4경기에 전부 선발로 출장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후반에 아르헨티나가 반코트 경기를 펼치며 맹공을 펼칠 때마다 안정감 있는 활약과 수많은 슈퍼 세이브를 펼치며 한국 축구팬들에게 왜 본인이 주전 골키퍼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U-20 기록은 31경기 24실점.


이후 U-23 대표팀에 소집되기 시작했고,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엔트리에도 강현무, 이태희와 함께 들어갔다. 다만 이미 프로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은 강현무에 밀려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 김학범호에도 꾸준히 소집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태희가 탈락하고 전남 드래곤즈의 박대한 골키퍼가 새롭게 경쟁자로 합류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을 볼 때 강현무와 송범근이 최종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명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조현우가 월드컵에서 미친 활약을 보인 뒤 와일드카드로 거론되면서 강현무에 비해서 열세로 보이던 송범근의 탈락 가능성이 높아졌다.그러나 정작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자, 송범근은 강현무를 밀어내고 조현우와 함께 선발되었다. 



최근 보여준 선방능력이 김학범 감독의 마음에 든 듯하다. 리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던 강현무를 밀어낸 것에 대해 논란도 있었지만, 강현무에 비해 장신인 점과 기행이 다소 적어 안정적인 점, 청소년 대표 경력이 많은 점을 인정받아 엔트리에 든 것으로 보인다.


8월 17일 아시안게임 E조 2차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중앙수비와 어이없이 충돌하며 캐칭한 공을 놓쳐 전혀 예상치 못한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같은 경기에서 국가대표가 맞는지 의심되는 슈팅각 조절과 반사신경으로 두번째 골도 내줬다. 




8월 23일 아시안게임 16강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골은 넣은 직후인 54분경에 선발 골키퍼였던 조현우가 부상을 당하면서 조현우를 대신해 경기를 뛰었다. 말레이시아전의 모습과 다르게 다행히 실점은 내주지 않았고 오히려 선방을 기록했다.


조현우의 부상으로 출전이 어쩔 수 없으니, 그래도 마음의 부담감보다는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뿐...


[출처 : 송범근]


이승우(李昇祐 / Lee Seung-woo)/1998년 1월 6일/경기도 수원시 출생

학력 : 대동초등학교 - 광성중학교(중퇴)

포지션 : 스트라이커,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타고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면서, 센스있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겸하는 실로 한국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타입의 선수다. 



드리블 할 때 아무리 속도가 붙어도 공이 거의 발에 붙어 있는 수준이며 이를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드리블 속도를 늦췄다가 빠르게 계속 변화해가며 돌파해 나가는 타입이다. 


이 덕분에 좁은 공간에서도 탈압박 능력이 좋으며, 특히 앞에 공간이 비어있을 경우 무서운 모습을 보인다. 민첩성, 스피드와 가속 면에서는 이미 동 나이 때 최고 수준으로, AFC U-16 대회에서는 가레스 베일마냥 치달만으로도 거의 모든 수비수들을 발라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게다가 플레이 자체가 창의적이라서 별 위험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도 예측하기 힘든 킬패스를 찔러넣는 등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질도 꽤 보이는 편이다. 


성인이된 현재도 패스시야와 함께 패스미스가 있긴 하지만 패스의 질 자체도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탈압박또한 피지컬 논란이 무색하게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하는것을 즐기는 편이며 무게중심이 아래로 잡혀있어 체격에 비해 상당히 잘 버티는 편이다.



슈팅템포를 한국 공격수들과 다르게 반박자 빠르게 가져가 골기퍼의 타이밍을 속이는 능력 역시 장점.  슛 능력은 이에 비해 파워나 예리함의 면에서 딱히 타고나 보이지는 않으나 대체로 정교한 편이고 특히 골문 앞에서의 침착함이 돋보인다. 프리킥으로도 가끔 골을 넣을 때도 있을 정도로 킥 능력도 다른 능력들에 비해 돋보이지가 않을 뿐 절대로 나쁘지 않다. 


단점은 아직 성인 대표 레벨에서 통하기는 한참 모자라 보이는 왜소한 피지컬. 피지컬로 대놓고 밀어붙이는 수비 상대로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당연히 공중볼을 따내는 능력도 떨어지는 편. 그리고 수비가담이나 활동량 면에서도 그다지 왕성한 편은 아니다.


다만 이후 U-20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부분이 발전하였다. 2016년 수원컵부터 자신보다 장신인 흑인이나 백인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으며 상대 수비수 두세명을 달고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고, 2017년 아디다스컵에서도 건장한 흑인선수들과 무리 없이 볼 경합과 볼 간수를 해내었으며 두 세명의 수비수들을 돌파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주기도 하였다. 체력문제 또한 상당히 해결되어 이승우의 장점인 투지와 함께 경기가 끝날때까지 수비가담과 공격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서술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유스 시절의 모습이다. 성인 프로 무대와 유스 무대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격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결국 본무대인 성인 프로 리그에서 보여준 실상은 위의 서술에서 말하는 그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가와 축구팬들이 꼽는 이승우의 최대 단점은 만장일치로 피지컬이다. 패스미스나 골결정력 같은 요소는 데뷔 시즌이고 아직 어린 선수라는 이유로 일시적인 슬럼프로 볼수 있을지 몰라도 피지컬 만큼은 유소년 시절부터 꾸준히 지적받아온 약점이었고 결국 본인과 팬들은 애써 부정하려고 했지만 성인 무대에 데뷔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피지컬이 약하지 않다는 위의 주장은 걸러 들어야 할것이, 이승우가 피지컬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위의 수원컵과 아디다스컵은 상대하는 선수들도 어디까지나 19세 혹은 20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 뿐인 청소년 대회였다. 



흔히 '피지컬이 약하다' 하면 '키'가 작다는 것만을 언급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선수 본인 역시 주로 키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들을 반박하고 있지만, 이승우의 경우 단순히 키만 작은 게 아니라 마르고 빈약한 체형덕에 몸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단신이라도 축구 선수로 성공한 선수들의 대다수는, 피지컬에서 밀리더라도 속도나 볼 컨트롤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테크니션들인데 이승우는 성인 무대에서는 그런 테크닉들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이를 만회할 만큼 속도가 빠른 선수도 아니다. 


아직까지도 이승우가 피지컬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경기 안본 팬들도 있고 본인도 가족도 피지컬을 약점으로 보는 시선을 부정하려고만 하는듯 하지만, 적어도 현재 이승우가 뛰고 있는, 체격이 큰 장신 수비수들이 많은 세리에 리그에서는 몸싸움으로는 상대조차 안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패스도 위에 나온거처럼 창의적이긴 하지만 아직 질적으로는 섬세함이 부족하고 같은 스타일의 플레이를 즐기지 않는 선수들과는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리그 경기에서의 모습을 보면 패스미스를 자주 하면서 마무리가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네이마르나 아르옌 로벤과 비슷하게 태클을 당할때 과장되고 불필요한 다이빙을 자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드리블과 돌파를 즐기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약한 피지컬 때문에 태클에 의한 부상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축구팬으로서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습관이긴 하다. 처음부터 상대 수비수의 파울을 유도한 면도 있기 때문에 만약 상대의 태클이 닿기도 전에 다이빙을 하면 헐리우드 액션이 되는 위험이 있다. 


[출처 : 이승우(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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