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9월 30일 출생. 옛 마산 출신.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고등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낸 후 변호사가 되었다. 이 동네 정치인치고는 드물게 마산고등학교나 마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다.




2018/07/13 - [Hot issue/정치] - [주승용 국회부의장] 만렙 철새의 금의환향?

2018/07/13 - [Hot issue/정치] - [문희상 프로필]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이때부터 시작된 특이한 인연이 있는데 판사 시절 1984년 청주지방법원 형사단독재판장으로 있을 당시 공판검사가 초임 홍판표 검사였다. 그때 이주영은 성명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마침 홍판표 검사 이름 가운데 한자가 ‘판단할 판(判)’인데 칼도변이 들어간다. 이름 한자에 칼이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고, 판표라는 발음도 어려워 내가 ‘판’을 ‘준’으로 바꾸라고 권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개명이 어려웠는데 이주영이 법원장에게 부탁해 개명 허가를 얻어주어 홍판표가 홍준표가 되었다고 한다. 이주영 전 장관 "팽목항 200일, 죄인 된 심정으로 임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황낙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김태호 경상남도지사 밑에서 정무부지사를 역임하였다.


2006년 김정부 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유독 구설수가 많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2014년 2월 12일 장관에 지명되어 3월 6일 취임. 사실 아주 뜬금없는 인사는 아닌데, 정치인 이주영의 주요 후원처 중 하나가 바로 마산 어시장 상인회이기 때문. (사무실부터가 시내 쪽이 아닌 해안도로변 어시장 바로 옆에 있다.) 여기까지는 흔한 지역유지 출신 정치인의 이력에 불과한지라 이 문서가 비교적 세세하게 작성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불과 1달여 뒤에 터진 이 사건만 아니었다면…


이주영 장관이 전국구급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사고가 터진 날 이후부터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아서 흡사 도인 같은 외모로 변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처럼 이후 면도는 했지만 장발은 사표를 제출하고 수리하는 그해 연말까지 계속 유지했다. 수염을 정리한 이유는, 국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에 장관 자격으로 출석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이런 대형사고가 터지면 문책성 인사로 책임자가 사의를 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주영 장관은 사고를 수습한 후 사의를 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고 기간 동안 사고대책본부가 있던 진도 팽목항에 계속 붙어살다시피했으며, 유가족들과 자주 접촉하며 사고를 수습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본인의 보수적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정부 및 정권을 거세게 비판하는 측에서조차 정작 주무부처 장관인 이주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적었다. 초기엔 곧 사표가 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그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유가족회의서 오히려 그의 유임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2015년 초,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 도전했지만 유승민에게 아쉽게 패배한 이후로 중앙언론 헤드라인에는 잘 등장하지 않고 있다. 여담으로 이 원내대표 경선 패배는 3번째 패배다(…). 안습. 그나마 한 번 이긴 적이 있기는 한데, 이건 원내대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서서 이긴 것.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선거구에서 무난하게(?) 여당 단독후보로 공천되었다. 그리하여 본선에서 당선되었다.


2016년 7월 3일 당대표에 출마했다. 그러나 이정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약 4개월 후를 생각하면 낙선된 게 행운


언론에서는 친박계(신박)으로 보나, 나라 망신이 터진 후 대통령 탄핵이 필요성이 있으면 제기하면 된다든가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목록엔 없는 점으로 보아 게이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탈박인 것으로 추정. 신의 한 수 친홍계로도 분류되기도 하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과거부터 인연이 있었고, 19대 대선 때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하고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낙선 후 홍준표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서 독선적이라며 가장 나서서 비판하기도 하여서 완전히 친홍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러면서도 친홍과 비홍 사이의 중재에도 힘썼다. 협조할 것은 하면서도 비판할 건 하는 사이인 듯. 초, 재선 의원들이 계파색이 다소 옅은 의원으로 지목하였음으로 당내에서는 무계파로 보는 듯하다. 실제로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 때는 본래 독고다이인 나경원, 친박에서 탈박한 한선교와 같이 중립진영을 표방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12일, 원구성 협상에 따라 자유한국당 몫으로 돌아간 국회부의장 자리를 두고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의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13일 본회의 투표를 거쳐서 정식으로 국회부의장으로 취임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미디어워치가 신뢰성 있는 논문 표절 심사 기관이라는 발언 때문에 빈축을 샀다. 미디어워치는 논문표절 심사기관도 아니다(...)



2018/07/13 - [Hot issue/정치] - [주승용 국회부의장] 만렙 철새의 금의환향?

2018/07/13 - [Hot issue/정치] - [문희상 프로필]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출처 : https://namu.wiki/w/%EC%9D%B4%EC%A3%BC%EC%98%81(195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