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민주당

 부천시 원미구 을 선거구에서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동교동계로도 분류되며 우상호 의원과 같이 민주평화당 통합 우호파로 분류된다.

 

1953년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독립유공자 설철수 옹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마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신계륜 및 홍의락과 동기다. 고대 재학 도중 유신 반대 시위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정치 활동 

이때부터 어린 나이에 김대중계 정치인이 되었고, 일명 동교동계의 막내로 불렸다. 당시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는 원칙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탈레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알려진 별명이다. 팟캐스트에서는 현대화한다고 ISIL(...)로 부르려고도 했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이철 국회의원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유인태 국회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최규선에게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되어 2005년에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피선거권이 10년동안 제한되는 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되었다. 


한편 2003년말 범노무현계가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분당해 나갈때도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자, 탄핵소추안에 반발하여 삭발시위를 하였고, 같은 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였다. 


이후 손학규계 정치인이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원래 지역구였던 도봉구 을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상기한 최규선게이트에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 때문에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은 범죄 경력이 있는 후보자들은 모두 배제하는 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단에 서술된 단식 투쟁 등의 방법으로 저항했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 공천 탈락을 수용하고 당에 잔류하면서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때 민주당에서 이 사람과 추미애 만이 탄핵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손숙미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지역구를 서울에서 부천으로 옮긴 것은 동교동계 선배인 배기선 전 의원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2008년 공천에서 탈락한 다음부터 원미구 을에서 준비를 해 왔다고 한다. 


같은 해 김황식 국무총리로부터 1977년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하여 사과를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 때 코미디언 자니 윤(본명 윤종승)의 한국관광공사 사장 임명에 대해 나이를 문제삼았다가 논란이 되었다. 


2015년 위원장직을 사임하였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이 분당 사태를 맞게 되었고, 계파나 성향을 감안하면 국민의당을 택할 의원으로 지목됬으나, 동교동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가운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였다. 동교동계라 불리는 의원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잔류파 의원이었다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이사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4선에 성공하였다.


더민주 내 대표적인 대 국민의당 우호파로, 2017년부터 일관되게 협력 내지 합당을 주장해왔다.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진 현재는 민주평화당과 합당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더민주 지지자들의 반응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물론 정치공학적으로는 물론 좀더 당색이 비슷한 민평당 의원들과 연계하여 국정운영 동력에 힘을 싣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새민련 분열의 전례에 비추어 민평당 의원의 합류가 곧 자리보신과 영향력 다툼, 계파싸움에나 몰두하던 무능하고 한심한 과거의 민주당계로 퇴보하는 길에 불과할 거라고 보고 있다.


그가 당원들의 질타에도 지속적으로 통합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과거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때도 원래의 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선택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 때도 동교동계 대부분이 국민의당으로 떠났지만 역시 원래의 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남았던 경력이 있으며, 2008년에는 공천 배제를 당해 무소속 출마도 가능했으나 순응하고 총선에 불출마한 적도 있다. 


그의 행보를 보면 민주당계 정당에서 벌어지는 거듭된 분열과 탈당을 매우 기피하는 성향인 것으로 보이며, 예전부터 줄곧 야권통합을 주장해 온 인물이었다는 것이 보인다. 일단 본인의 확고한 소신이라 어쩔 수는 없지만 그만큼 비판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교육정책 전문가

대한민국 19대 국회 후반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1년 뒤 사임하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워장 직을 사임한 점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막이 다음과 같다. 본래 같은 당 소속이었던 박주선 의원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직을 하반기 국회 임기 2년을 1년씩 나누기로 하였다. 하반기 국회 초반기 설훈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후 박주선 의원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나 박주선 의원은 탈당(...) 이 때문에 설훈 의원이 강하게 반발 하기도 했다.


독서교육을 중요시한다. 그 때문에 EBS에 출연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설훈 의원은 엄청난 다독가이다.




  • 기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병풍 문제를 제기하여 이회창의 낙선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나, 나중에 아들들의 신체검사를 한 결과 군 면제가 정당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7년 3월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입건되었는데 측정수치를 신빙할 수 없다며 인근 병원에서 채혈을 하는 등 시간끌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면허취소를 당했다. 


2014년 자니 윤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자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 드느냐"고 발언하여 노인 폄하 발언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한노인회가 크게 반발하며 해명할 것을 요구하자 막상 대한노인회를 방문하기는 했는데 "뭘 잘못했길래 사과를 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2015년에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발언으로 큰 반발을 샀고 새누리당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주는 바람에 문재인 당 대표를 난처하게 했다.


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며 지역구는 전남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이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20대 총선 때 전남에서 당선된 단 한 명 뿐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으나 서삼석 의원이 2018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유일'딱지를 떼었다...


1959년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다. 광주효동국민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금호고등학교, 전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81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전라남도청과 행정자치부에서 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관, 전라남도 목포시·여수시·광양시 부시장, 전라남도 자치행정국장·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냈고, 제35대 전라남도 행정부지사를 마지막으로 역임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때 담양·곡성·구례 지역구를 노리고, 당내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지역구가 통폐합되며 공중분해 되었다. 이후,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로 출마를 했지만 이낙연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경선에서 완주했고, 패배 이후에도 이낙연 후보의 당선을 도와서 지역 유권자의 호응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낙연 의원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전라남도지사로 나가게 되면서 생긴 공석에 출마하여,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으로 당선되며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출구조사 2위라는 결과도 뒤엎고 당선되었다.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총선 직후 더민주 당선자 대회에서 당선 인사 중 광주∙전남 유일한 생존자라고 소개 후 당선 소감을 말하던 중 “우선 죄송하는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될 것 같다.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 다 잃고 혼자 왔다”라고 말하며 갑자기 울먹이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남지역 유일한 당선자라는 타이틀로 인해 2016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제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다. 김영춘 위원장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각에 입성하면서, 현재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2017년 9월 현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낙연 전남도지사의 내각 입성으로 인해 공석이 된, 전라남도지사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만약 당선된다면 의원직에 이어 또 다시 이낙연의 뒤를 잇게 된다. 


이낙연 지사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직후 장성과 담양 등에서는 자생적인 '이개호 지지모임'이 결성됐고 이런 움직임은 전남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내부적으로는 아예, 이개호의 도지사 출마를 전제로 두고, 공석이 될 국회의원직을 누가 출마할지 이야기가 오간다고. 당내 경선을 한다면 노관규 전 순천시장과 장만채 현 전남교육감이 유력한 경쟁 후보이며, 본선 진출 시 민주평화당의 박지원 의원과 경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에서 원내 제1당 수성을 위해 현역 의원 출마 자제령을 내려 출마가 불확실해졌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전남 지사 선호도 1위를 달리며 우수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도부에서 공개적으로 출마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요청하고 있어 이 의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 김영록 농림축산부 장관의 차출이 거론되고 있어, 이 의원이 차기 농림축산부 장관으로 지명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춘석 사무총장이 현역 국무위원 차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만약 이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민주당에서는 노관규 시장과 장만채 교육감의 경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의원 출마에 기대감이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지도부의 태도가 '잡은 고기 먹이 안준다.'로 지방 주민들에게 읽힌다면 역풍이 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18년 3월 12일, 결국 전남지사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은 자신을 지지한 도민과 당원들에게 사죄하며, 자신의 불출마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임을 알아달라고 밝혔다. 대체로 지지자들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위로와 감사를 보냈다. 


이어서 다시 전라남도 도당위원장과 최고위원직에도 복귀했다. 이개호 의원이 불출마 조건으로자신이 내려놓았던 도당위원장과 최고위원장직을 복원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당 지도부 측에서도 사퇴 사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개호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서 밝혔다.


2018년 4월에는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의 지역위원장에도 복귀했다. 


제7회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개편이 예상되는 가운데 김영록 전 농림부 장관을 이어 문재인 정부 제2기 농림부 장관 유력설이 돌고 있다. 본인은 제의받은 적이 없다고 현재 답변한 상태이다. 허나 농수위 회의 때 동물비하 발언을 한 것이 드러나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거센 반대를 받고 있다. 


2018년 7월 26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평과 함께 업계에서는 전문성 있고 힘있는 장관이 온다며 반기는 목소리가 나오고있다.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 & 경남지사라는 자리에까지 오른 극적인 경력의 소유자로, 참여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보인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구는 경기도 김포시 갑 지역이며 소속 정당은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친노성향의 정치인인데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생긴 앙금으로 인하여 문재인 대통령과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2017년 19대 대선 때 문재인 대선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고,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기도 했다.




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남해군수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만 36세로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선거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연소 기록이 깨지지 않는 중이다. 이어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여 재선 남해군수를 지냈다.





남해군수 재임 시절인 1998년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 무소속에 젊은 나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군수로 당선된 그의 이력이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 방송으로 그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민선 2기 남해군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인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상태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났고 결국 17%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의 김혁규가 넘사벽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당시 김혁규는 무려 74% 이상의 득표율로 김두관을 개박살냈다.

이후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문재인 당대표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당시 장관직 수행평가에서 1위를 여러차례 차지할 만큼 장관직 수행을 잘 했다고.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그의 장관직 수행에 대해 크게 부정적이었으며, 한총련이 미군기지에 침투하여 불법시위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결국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거부하고 그의 장관직을 지킬 것이라고 했으나, 계속 논란이 되자 그는 스스로 사의를 제출하면서 결국 장관직에서 퇴임하였다. 


사실, 그동안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경우는 여야를 불문하고 스스로 사임해야되는 것이 관례다. 승복하지 않으면 역풍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셈이 되었으나, 민주당계에서는 그는 한나라당의 딴지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라는 시각이 강해지면서 차츰 민주당계에서는 떠오르는 정치인으로 올라섰고, 열린우리당이 생기자 바로 합류했다. 


그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남해군-하동군 지역구로 출마하였고, 당시 탄핵 논란으로 열린우리당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평이 있어 어느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에서도 20% 가까운 우위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박희태후보가 워낙 막강하다보니 박희태에게 7000표 차이로 석패했다. 2년 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다시 도전했으나, 한나라당의 김태호도지사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며 낙선. 2년 뒤에는 지역주의를 의식했는지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지역구로 출마했지만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여상규 후보에게 밀리며 40%의 득표율로 낙선하였다.




이로서 2년 주기로 걸친 4번의 선거에서 연속으로 2위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상남도지사에 도전했고, 무소속 신분이었던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와 단일화되어 대통합 야권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53%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에 이달곤후보를 꺾고 성공했다. 본인으로선 도지사 선거만 3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이달곤에 비해 오랫동안 PK에 몸담아온 김두관이었기에 지역밀착형 후보라는 태그가 승리의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2006년을 기점으로 세를 보이기 시작한 PK의 진보층도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이로서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 되면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경남내 공사를 일시 중지 시켰는데, 이에 따라 중장정부가 사업권을 회수해 완전 중단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본인은 경남이 불의에 대해 저항했음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도지사 취임 후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무난히 도정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재임 2년차인 2012년 경남지사직을 돌연 사퇴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였다. 이로 인해 경상남도 진보층 사이에서는 배신감(?)이 쌓이게 되었다.

경선 결과, 손학규에게도 밀리며 14%의 득표율로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자세한 경선 과정은 이곳을 참조. 같은 PK를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후보가 월등히 지지율이 높은 상태라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애초에 높지 않았는데, 도지사직을 뛰쳐나와 무리하게 경선에 참여하여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꼴이 되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대선과 병행하여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어렵게 얻은 경남지사 자리를 다시 새누리당쪽에 헌납한 꼴이 되어버려, 야권 지지자들에서까지 평생까임권을 얻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거꾸로 발음한 '관두김' 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생긴 것은 덤이다. 경선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고 왜 경남지사직을 사퇴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사실 안철수의 국회의원 사퇴도 그렇고 대선후보 또는 경선후보 역할과 국회의원, 도지사직을 동시에 수행하면 한쪽에 소홀하게 된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실제로 안희정, 남경필 등이 대권도전으로 인한 도정소홀 문제로 약간 논란이 있기도 했다.


문제는 그러한 명분보다 도지사를 다시 뽑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자신을 뽑아준 도민들에 대한 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출마를 이유로 지사직을 사퇴하는 사례는 없다.


졸지에 다시 재야가 되어버린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1년 간 연수를 받은 뒤, 경남지사 사퇴에 대해서 사과하고 나서 2014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구는 당초 활동했던 PK가 아닌 경기도 김포시로 정해졌다. 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나서자 낙하산이나 뜨내기라는 비판이 생겨났지만, 본인으로선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힘을 뻗어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수였다.




거주지도 김포로 완전히 옮기고 본인은 분투를 했지만, 지역 토박이들은 PK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고 그나마 지역 정체성이 덜한 신도시 지역에 승부수를 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승리여부에 의문을 둬야 했다. 결국 경쟁상대인 새누리당의 홍철호후보에게 밀리며 4년만에 낙선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예상대로 농촌지역에선 홍철호에게 몰표가 쏟아졌고, 신도시에서도 패배하여40% 득표율로 선거를 마감했다. 


경남지사 당선 배경에는 PK 지역밀착형 후보였던 점이 상당히 먹혔던 것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는 오히려 그 점이 낙선의 큰 요인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로도 경남으로 주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김포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마침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포시 선거구가 갑/을로 분리되면서 자리가 하나 더 늘었고, 김포시 갑 선거구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새누리당측의 상대는 김동식 전 김포시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PK 출마를 기대했지만, 본인은 대권도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김두관 본인 말로는 경남지사 자리에서 중도 하차해 다시 보수정당의 홍준표에게 헌납한 그 원죄 때문에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현재까지 나온 관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새누리당의 김동식 후보보다 5~10% 안팎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포시(갑)이 도시 인구가 많아 야권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 결과를 두고볼 일이지만, 일단 2014년 재보궐 선거때보다는 해볼만한 승부로 여겨진다. 


김동식 후보는 김두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김포시장 시절 권력형 비리(!)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

여담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지역 출마자 중 91년 이후 역대 공직선거 출마횟수가 8회로 가장 많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포함하면 9회이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 10회가 된다. 승률이 3할대라는 게 함정

결국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59.3%를 받아 前 김포시장인 김동식 후보를 완전히 KO 시킴으로써 국회의원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기간에 경남에 내려가서 똑같은 내용으로 고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충의 내용은 '죄송하다 내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중도사퇴는 잘못됐다' → '내가 관둬서 홍이 됐다' → '나는 준비가 미흡했다' 이 순으로 간 다음 그 다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하며 여기에 홍준표를 벌해달라는 말은 덤.

대한민국의 제18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는 인천 부평구 을 지역이다. 


대표적인 친노무현계-친문재인계로 분류되어온 정치인으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뒷얘기를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 기술한 저서 '비망록(2013년)', 지난 2016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홍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당내 '친노' 진영이 뒷선으로 물러났다는 말까지 나왔으며, 2017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7표 차이로 우원식 의원에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후 2018년 원내대표에 재도전하여 총 116표 중 78표를 득표하며 노웅래 의원을 40표 차이로 꺾고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친일파의 후손이지만 조부의 친일 행적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반성과 속죄의 차원에서 독립운동가 유공 단체들을 돕는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57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익산 이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다가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2001년부터는 시민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 무렵에 유시민을 만나 개혁국민정당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아 당시 노무현 후보 당선에 일조를 하게 된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때, 같이 입당,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평구 갑 지역 출마를 노렸지만, 문병호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출마를 접었다. 


이후, 이해찬 총리 임명 당시 총리실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총리실 비서관으로 임용되었고, 이해찬 총리가 사퇴한 후에는 한미 FTA 지원단장으로 임명되어 참여정부에서 계속 활동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인 홍미영 의원을 제치고 부평구 을 지역의 공천장을 받아 출마했으며 낙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구본철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에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을 맡아 인천 지역에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20대 총선 후에 돌연 사임했다. 친노계 3선 중진 의원으로써 원내대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친노 세력의 당 장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며 오히려 20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3일 제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참고로 같은 전북 출신 후배 의원인 김성주 의원의 간청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로서 "탄소소재 융·복합 기술개발 및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의 상임위 안건 상정과 통과에 힘썼고,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함께 이보다 더 우선적인 법안보다 본회의 통과가 되도록 노력했다. 수구초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듯.


2017년 5월에는 우상호 의원의 뒤를 이을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우원식 의원과 양자 대결을 하였으나 7표 차이로 아깝게 우원식 의원에게 승리를 내줘 친문 지지층들의 아쉬움을 샀다.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정 자본금을 2조 원에서 3조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지원법 개정안’에 대해 표결에 앞서 홍 의원은 반대토론을 통해 멕시코 볼레오 광산 등 연이은 투자실패로 부채 덩어리가 된 광물공사는 더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결국 부결되었다. 이 경우는 같은 집권 여당(소속 송기헌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가 자당 의원의 반대토론 후 표결에서 부결된 꽤 특이한 사례이다.


2018년 4월에는 전북 군산에 있는 한국 GM 공장 폐쇄로 촉발된 노사 간 대립을 놓고 민주당의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GM 본사와 노조 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중재하였고, 폐쇄된 군산공장에 남은 근로자 680명에 대해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시행하고, 무급휴직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임금 및 단체 협약은 데드라인을 57분 남겨둔 가운데 노조가 법정휴가, 상여금 지급방법, 귀성여비 및 휴가비, 학자금 등 일부 복리후생 항목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동의하면서 타결되었다고 한다. 


2018년 5월 4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칙을 지키면서도 통 큰 타협을 하는 역지사지의 정치를 하겠다"며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의 한국 GM 대책특별위 위원장으로서 정부와 노사 간 협의와 중재를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서, 여야가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입법과 정책, 예산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해서, 여당인 민주당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원내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노웅래 의원과의 경쟁 끝에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3대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116명이 출석한 가운데 78표를 얻어 38표에 그친 노 의원을 2배 이상 앞섰다. 이번 원내대표 투표에 민주당 소속 의원 121명 중 116명, 그러니깐 현재 장관직을 수행 중인 5명을 제외하고 모든 의원들이 모였다. 그만큼 신임 원내대표에 거는 민주당 내부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취임 첫 행보로 단식 투쟁 중인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았다. 둘 다 노동계 출신이고, 19대 국회 환노위에서 각각 여당 간사, 야당 간사를 맡아 노동 관련 법안과 정책을 조율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김 원내대표가 홍 신임 원내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홍 원내대표는 건강 챙기라며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오후에 바로 협상하자고 말하자 아직 업무 파악이 안되었다고 협상을 뒤로 미루었다. 


5월 14일, 추경안 동시 통과 등을 조건으로 드루킹 특검을 수용했다. 민주당이 특검 수용으로 지방선거에 참가하는 의원 4명의 사직서가 본회의에서 처리되었고, 국회는 40여일 만에 정상화 되었다. 비록 야당의 요구대로 특검을 수용했지만 민주당은 사직서 처리와 체포 동의안, 그리고 추경안 처리의 실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특검법 처리에 소비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는 지방 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야당 입장에서는 특검을 관철했다는 명분 말고는 얻은 것이 없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특검 수용 사실이 알려진 초기에는 친문계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여론이 거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응하는 인원이 늘고 있다. 결국 한 차례 진통을 더 겪고, 5월 21일 정부 추경안과 드루킹 특검법이 동시에 국회를 통과했다. 


2018년 7월 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여성경제포럼에서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된 건 1, 2, 3차 협력업체들을 쥐어짠 결과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임금 소득 기여도가 굉장히 낮은데도 조세 부담은 오히려 가계에 비해 낮다. 삼성이 작년 순이익 60조 원 가운데 20조 원만 풀면 2백만 명에게 천만 원씩 더 줄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친재벌 성향의 보수 언론들과 수구-보수 성향의 누리꾼들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선동적인 발언이며, 특히나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데 신경 쓰라"는 당부를 한 직후 나온 발언으로 적절치 않다"며 홍영표 원내대표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사 사장들이 장충기에게 보낸 충성 문자가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7월 10일 법사위, 예결위, 산자위, 정보위, 국토위, 환노위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한 것 때문에 대노한 범진보계 누리꾼들에게 페이스북에서 큰 수난을 당하고 있는데다 한국당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극언까지 듣고 있다. 친문계 핵심 멤버인데 한국당 스파이라니 이들은 원내대표의 타이틀은 물론 6.13 선거 압승 업적, 자기 자신의 업적을 통 크게 말아 먹었다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합종연횡 면에서 연대해야 할 바른미래당과 평화와 정의의 모임을 홀대하여 장기적 이익을 갉아먹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 일 때문에 하반기 국회에도 공전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안 그래도 여전히 계류 중인 법안들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한국당에게 실질적인 이익과 명분을 준 셈이 되어, 훗날에 대통령하고 여당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싸움을 두려워하다 장기적 이익을 놓친 셈이라는 얘기로, 범진보 연합 과반으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될 일이었고 적어도 이 카드로 협박은 시도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민평당과 정의당은 표결 강행에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바미당도 뚜렷한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없으므로 반란표 나올까봐 불안하면 바미당까지 끼워주면 됐다. 바미당까지 꼈으면 자유당 포위 모양새가 되어 "몰아줬더니 오만하게 군다"는 역풍도 맞을 일이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의석수대로 배분하더라도 농해수위 등 인기 상임위를 자유당에게 주고 의정활동에 중요한 상임위는 뺏기지 말았어야 한다.



한편  이번 원 구성 협상 결과에 '야당 의석이 더 많으니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누리꾼이나 민주당 지지층은 툭하면 지지 철회하겠다는 강경파를 향하여 "민주당이 국회를 마음대로 이끄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다면 다음 총선 때 민주당을 최소 18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 만들면 된다. 180석을 먹었는데도 민주당이 머뭇거리면 그때 촛불로 뒤집으면 그만이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히려 이 협상 결과는 '표면상으로는 한국당이 가장 실익을 많이 챙겨간 거 같은데 실제로는 민주당의 압승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한국당이 가져간 상임위들은 법사위를 빼고 거의 다 지역구 관리에 용이한 곳이지,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문제가 될 만한 곳은 한 곳도 없으며,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영향을 끼칠 만한 상임위는 죄다 민주당이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법사위는 (야당 의원이 맡는다는 국회 전통상 야당에게) 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민주당이 80석이었고 한나라당 의석은 170석 이상을 넘나들던 18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의원이 맡았었다. 뼈는 민주당, 살은 한국당으로 완벽하게 나눠졌다. 이 정도로 확실하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은 결과는 어느 정도 청와대와 교감한 게 아니냐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출처 : https://namu.wiki/w/%ED%99%8D%EC%98%81%ED%91%9C]

문재인 대통령 화환 외 모두 거절!


결혼식장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결혼식 한 시간 전인 11시께 이미 100여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전체 하객은 어림잡아 400명은 넘어보였습니다. 당 대표실에서는 “경북여고 동기들과 한양대 동문들, 그리고 측근 의원들과 고문 등 아주 소수에게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결혼식을 모르고 있던 의원들도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들 역시 “우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우리에겐 ‘고용주’ 입장인데, 아무래도 부담 가질까봐 알리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당직자나 일부 의원은 오히려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결혼소식을 전해줘서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영선·유승희·박범계·백혜련·김정우·김영진·임종성·박경미·고용진·이훈·서영교 의원 등이 참석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 11인의 얼굴도 보였다.


정부 측 인사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이 찾았다. 청와대에서는 한병도 정무수석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이 자리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날 결혼식에서 하객이 아닌 ‘기자’로서 유심히 본 것은 일반인들의 결혼식과 여당 대표 결혼식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였습니다. 통상 결혼식장 옆에 줄지어 서있는 화환은 이번 결혼식에선 눈에띄지 않았습니다. 추 대표 쪽이 ‘화환을 사양하겠다’고 미리 알린데다, 그럼에도 결혼식장으로 도착하는 화환들은 모두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만 하객들을 맞는 추 대표 뒤로 유일한 화환이 놓여있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었습니다. 추 대표에게도 대통령의 화환은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의금 접수를 받는 테이블이 북적인 건 다른 결혼식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축의금 내려는 이들이 몰리다보니 많다보니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빈틈’이 생기면 축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여러 개의 축의금 봉투를 내는 것 역시 일반 결혼식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추 대표의 한 측근은 '추 대표가 젊었을 때부터 판사·정치인의 길을 걸으면서 딸들이 어릴 적에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늘 안고 있어 더 애틋해 한다'고 귀띔했다. 추 대표는 지난해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딸 서씨와 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보인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51356.html#csidx2efdaa14fa207a6ad0a0e356356f671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