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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교역자 문제

갑작스러운 새노래명성교회 설립 

강력한 경상도 사투리카리스마를 가진 당회장 김삼환 목사의 나이가 상당해서, 은퇴 후에 누가 교회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세습이 이루어진다는 게 교계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런데 2013년 9월 12일 명성교회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서 세습 금지가 결의되면서 사실상 세습이 불가능해졌다. 이를 친 목사 세력 신자들이 폭력행사까지 하면서 막았지만 이런 미친 영상 결국 세습금지가 통과되자 10분 거리에 수백 억을 들여 개척해놓았던 새노래명성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부목사 4명, 교육전도사 2명 그리고 600명의 교인과 함께 그대로 선물해줬다. 주변 교회에서는 "상도 좀 지키라"며 아우성이(...)


수백억 상당의 교회 부지와 건물은 물론 소속 목사, 심지어 교인까지 담임목사의 아들에게 별다른 의결 없이 줬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 근데 더 큰 문제는 김하나 목사의 새노래명성교회 부임으로 명성교회 세습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총회에서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면서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직접 물려주는 형태의 세습은 불가능해졌지만, 외부 인사를 추대하는 형태의 임명은 가능하고, 새노래명성교회는 외부 교회다... 창의력 대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에 대해 김하나 목사가 강사로 참여한 한 세미나에서 교회 세습과 관련한 논의가 나오자 “총회에서 이루어진 세습 금지를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요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그 발언 직후 “명성교회 담임목사는 큰 희생의 자리인데,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서도 “개신교회 상황에 따라 세습이 불가피한 경우는 존중해야 한다”라는 말꼬리를 덧붙였다고...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다"




김삼환 목사의 은퇴와 편법 세습 

일단, 지난 2015년 12월 마지막주 주일저녁에 공회를 열어 김삼환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퇴직금이 약 30억원 정도 되었는데 전액 기부했고, 당분간 교회 행정은 명성교회가 속해있는 노회에서 파견된 목사가 담당한다. 그러나 김삼환목사가 이 교회의 상징적인 존재임을 감안한 것인지, 설교는 그대로 김삼환 목사가 진행한다. 그런데...


2017년 2월 현재 설교를 계속 김삼환 원로목사가 진행하고 있다. 본디 2015년 은퇴 당시 1년 안에 새 담임목사를 초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별 논의가 없어 유야무야 된 듯... 보였으나, 2017년 3월 11일탄핵 다음날 새벽기도회 직후 열린 당회에서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시무하는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하는 결의를 진행했다고 뉴스앤조이에서 보도했다.


물론, 교회 내 세례 및 입교 교인들이 참석한 공동의회에서 통과해야 하지만 직접세습을 금지한 교회헌법을 개무시한 채 자신의 아들을 외부인으로 만든 다음 다시 교회를 합쳐 물려주려는쓰리쿠션 편법 세습이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합병제의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목소리[19]가 있다. 즉, 새노래명성교회가 거절하면 그만이라는 것. 그러나... 거절할까?


이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인 동년 3월 12일, 명성교회는 3월 19일 주일 저녁예배가 끝난 후 새노래명성교회 합병 및 위임목사 청빙 관련 공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기사 이후 3월 12일 저녁 찬양예배 종료 직전 광고로 공시가 되었는데, 광고 직전 김삼환 원로목사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후임 선정과 관련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는 내용과 함께 '후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장로들은 물론 가족과도 의논하지 않았다', '중요한 시기에 교회를 비우고 에티오피아에 온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장로들과 교인들을 믿어서'라는 내용이었다.


위에 대하여 새노래명성교회 담임목사이자 김삼환 원로목사의 장남인 김하나 목사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고, 마침 3월 12일이 새노래명성교회 설립 3주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수를 세는 지혜'라는 제목의 주일 예배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교회가 크면 클수록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에게 적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적은 것이, 작은 것이 때로는 힘이 있을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근데 어째 분위기는 세습으로 가는 거 같아 보이는데... 



이에 대하여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선 동년 3월 14일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기독교사회연구원에서 교회 합병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합병 결의 

결국, 명성교회는 2017년 3월 19일 저녁예배 이후 열린 공동의회에서 김하나 목사가 시무하는 새노래명성교회와의 합병과 김하나 목사를 새 담임목사로 청빙키로 의결하였다.


문제는 새노래명성교회에서 어떻게 결정하는 지에 따라 달려 있는데......


서울 동남노회는 노회가 파행으로 치달음에도 김하나 목사의 청빙건을 통과시켰다. 


동년 11월 12일 김하나 목사가 새노래 명성교회를 사임하고 명성교회에 부임했다. 명성교회 세습 강행…"불법" 외치자 끌어내 


명성교회 장로 및 신자들이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민주적인 절차로 이루어진 청빙이다. 세습이라는 단어는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장로회 신학대학의 반대 기도회 피켓 '세습하나, 합병하나'라는 문구들이 의미 심장하다. 명성교회 교인들의 조언을 받아 "세습"이라는 단어 대신 "세습하나"라고 단어를 길게 쓰면 기억에도 잘 남고 참 볼만하겠다. 세습하나? 합병하나? 


급기야 2018년 7월 29일에는 예배를 집례한 고세진 목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까지 끌어 들여 세습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내가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하고 예수님하고 승계했더라고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하는 일을 예수님이 받아서 하시고 예수님이 과업을 다 이뤄서 둘이 동역하고 있어 만약 하나님하고 예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 어떻게 해요. 기독교가 꽝이 되는 거야. 기독교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왜 원로목사님하고 담임목사님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거예요. 뭣 때문에."


"우리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다. 우리 자손 대대로 이어질 교회다. 우리에게 잔소리하지 마라. 우리는 알아서 한다."


세습 완료... 그 의미 

한국의 개신교 장로회에서 신자 수로만 보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이 양대 산맥인 교파이다. 온갖 논란을 생산하는 오정현 목사의 사랑의교회가 합동 쪽에서 1위라면, 명성교회가 통합에서는 1위인 교회이다. 워낙에 넘사벽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어서 그렇지, 명성교회도 그런 신자 수 사기캐인 순복음을 제외한다면 1위라고 해도 딱히 반박이 없을 정도로 초 대형교회이다. 



횡령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불법건축의 사랑의교회보다는 가끔 김삼환 목사가 설교 중에 논란을 만들 소리를 하긴 했어도 그럭저럭 욕을 덜 먹긴 했었다. 그러나 착실하게 교회법을 악용해서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할 준비를 해왔으며, 결국에는 그 뜻을 이루어냈다. 더불어 다시 한번 "초대형교회는 건전한 교회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교회 세습이 사실 매우 익숙한 용어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개신교 주류 교파인 장로교 대형교회 사이에서도 세습은 암묵적 금기이다. 이명박 장로의 교회로 유명한 소망교회의 온갖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신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곽선희 전임 목사조차 교회 돈을 멋대로 써서 교회를 손수 만들어서 아들에게 줬을 뿐이지, 직접 자기가 있던 교회에 아들을 후임으로 내세우진 못했을 정도다. 이로써 한국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큰 교파 내에서 각각 1위라고 역시나 자부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명성교회는 각각 교파를 대표하여 한국 교회사에 씻을 수 없을 오점을 남기는 데에 모두 성공하였다.


마침 이 사건이 이루어진 2017년은 바로 개신교가 등장한 종교개혁 500주년(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공개한 해)이 된 해이다. 


상대적으로 소수 교파인 감리교여서 주목을 덜 받긴 했지만 아버지 세대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킨 김선도, 김국도, 김홍도 감리교 삼형제처럼 대형교회를 목회하며 사이좋게 아들에게 세습한 경우도 있다.


과거 명성교회 논란들 


[출처 : 명성교회]


스페인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2018년까지 RCD 에스파뇰 감독을 맡았다.


다수의 프리메라 리가 팀들을 지휘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춘 과감한 전술적 변화와 탁월한 분석력, 부드러운 리더쉽으로 인정받는 지장이다. 

 

현역시절 발렌시아에서 10년간 뛰면서 국가대표팀도 경험해본 선수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었다.


 

현역 은퇴 후 레알 마드리드 CF의 유소년 코치를 하다가 헤타페의 감독을 맡아 시즌을 13위로 끝냈고, 발렌시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성적은 선두 레알 마드리드 CF와 4점차로 나쁘지 않았으나 않았으나 세비야전과 UCL 로젠보리전 패배 이후 발렌시아에서 경질되었다.그리고 그 이후에 온 감독은...


이후 포르투갈의 SL 벤피카에서 타사 다 리가를 들어올렷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창단 이후 최초의 유로파 리그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1년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인 디에고 시메오네 체제의 핵심인 필리페 루이스와 디에고 고딘, 가비를 영입한 것도 키케.


이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로 떠나며 잠시 유럽에서 자취를 감췄으나 2015년 헤타페에 다시 부임, 라리가로 컴백했다. 상승세를 이끌엇으나 7주 만에 사임했다.



2015년 6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 팀인 왓포드 FC에 부임했다. 계약기간은 2년. 


그리고 레스터 시티 FC에게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 수비진의 불안과 공격진의 페이스 하락이 겹치며 순위가 급락해 버렸다. 주포 오디온 이갈로의 부진이 뼈아픈 상황.


그러다 자신의 의사로 사임 기사가 떴다. 승격 팀치고 13위의 리그 순위에 FA컵 준결승 진출이면 잘 한 것인데 떠나니 아쉽다는게 여론이다.  


2016년 6월 9일, RCD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스페인 무대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11경기에서 6무를 거두는 성과를 달성하였다.



2018년 4월 21일 에스파뇰 감독직을 사임했다.


2018년 7월 페르난도 이에로의 후임으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키케 플로레스는 감독직을 거절하면서 루이스 엔리케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올랐으나 이집트에서는 하비에르 아기레를 선임했다. 


2018년 8월 10일 대한축구협회가 그를 마드리드서 만나 협상 테이블을 차려 협상 중이라고 한다. 


[출처 : 키케 플로레스]


클라이밍을 즐기시는 부모님 사이에서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있는 두 명의 오빠도 모두 산악인.
'자인' 이란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줬는데, 자일(클라이밍 로프)에서 '자'를 따오고 인수봉에서 '인'을 따왔다고 한다. 한자 이름은 없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미 일반부에 출전할 실력을 갖추게 되어 일반부로 참가하기 시작했으며, 1, 2위를 놓치지 않았다. 김자인은 국제 대회 참가 최소 연령인 16세에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UIAA 월드컵에 처음으로 도전했으나 41등으로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그 후 악착같이 훈련에 매달려 같은 해인 2004년, 전라남도에서 열린 UIAA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16살의 나이로 아시아 최고 선수의 자리에 올랐다.

아시아선수권을 5연패 할 정도로 월등한 실력을 보여주던 김자인은 2009년 일본 가조(Kazo)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대회 볼더링 경기에서 첫 준우승을 거두며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준우승을 거둔 후, 4번의 준우승을 추가하며 각종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 진입에 성공한 김자인은 2009년 6월 중국 칭하이(Qinghai)에서 열린 IFSC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09년 11월 6일, 체코 부르노(Brno)에서 열린 IFSC 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자신의 첫 국제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2009년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김자인은 2010년 출전한 12개의 대회에서 10번을 3위 안에 진입하고 그중 7번을 우승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이탈리아 아르코(Arco)에서 열린 록 마스터(Rock Master) 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두며 명실상부 2010년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2011년에는 출전한 15개 대회에서 6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2010년 8월 중국 시닝(Xining) 월드컵부터 2011년 7월 프랑스 샤모니(Chamonix) 월드컵까지 IFSC 리드 월드컵 6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나, 안타깝게도 간발의 차이로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김자인은 2007년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하여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12년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스포츠 심리학을 '클라이밍 몰입의 구조적 접근'이라는 논문으로 졸업하였다.


스포츠 클라이밍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김자인은 스포츠 클라이밍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기 위해 논현동 두산 빌딩 및 대학로 환타지움 빌딩, 부산 KNN 타워,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등반하는 등, 스포츠 클라이밍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2년 9월 김자인은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종합(Overall) 우승, 대한민국 최초로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이어진 벨기에 퓌르스 월드컵, 미국 애틀랜타 월드컵을 2연패, 잠시 내주었던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았고 2015년 중국 우장 월드컵 우승으로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인 25회 우승으로 앙갤라아이터 선수의 기록과 동률이며 2016년 스위스 빌라즈 월드컵 이후 2015년 미나마르코비치 선수에게 내주었던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에는 리드, 볼더링, 스피드 세 부문이 있는데 김자인은 이 중 리드 부문에서 세계 최정상에 올랐으며 오스트리아의 앙겔라 아이터 선수가 은퇴한 이후 슬로베니아의 미나 마르코비치와 매년 1~2위를 다투는 라이벌 관계다. 볼더링 종목은 부상 우려로 몇 년간 쉬었지만 2017년 다시 시작해 월드컵 결승과 준결승에 차례로 진출하고 있다.

김자인은 클라이밍 선수 중 키가 작은 편(152cm)이다. 근육의 힘과 점프력을 이용해 역동적으로 암벽을 뛰어 올라가는 '다이내믹' 스타일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작은 자세를 차근차근 찾아가면서 흔들림 없이 암벽을 타는 '스태틱' 스타일의 플레이어다. 그래서 볼더링과 스피드보다는 안정감과 자세, 창조적 루트파인딩이 중요한 리드 종목에서 특히 뛰어난 활약을 펼쳐왔다(물론 상대적으로 리드를 더 잘한다는 것이고, 볼더링 종목도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다). ​김자인의 경기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클라이밍의 교과서처럼 쓰인다. 신장과 근력이 프로 선수만큼 좋지 않은 아마추어 동호인들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모범적인 움직임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TMI
2015년 12월 소방공무원 오영환과 결혼했다.

2017년 5월 20일에는 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 123층을 기구 없이 맨손으로 등반하였다. '김자인챌린지 555'라는 이름으로 방송에도 생중계되었으며 2시간 29분 38초의 기록으로 등반에 성공했다. 이 등반 성공으로 김자인은 여성 최고 빌더링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8년 tvN 예능 프로그램 달팽이 호텔에 부부가 함께 투숙출연했다.

우선 사형수에게 기절할 정도로 모진 채찍질을 가한다. 비르짓다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가 밝히길 예수는 5,480대의 채찍을 맞았다고 한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쓰던 형벌용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속에는 쇠 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의 치명적인 흉기 등이 박혀 있었으며, 거기다가 이 가죽을 하룻동안 물에 담가 불려놓아 무게를 무겁게 만든다.



이를 맞게 된다면 멍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상처난 곳이 벌어지고, 살이 찢겨져 나갔다. 이런 채찍질부터 군 형벌처럼 단순히 몇 대 맞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할 정도로 혹독하게, 어깨에서 시작하여 등, 팔, 가슴, 복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까지 전신을 무자비하게 구타한다.

이렇게 얻어 맞으면 사형수는 피부 밑의 골격 근육까지 찢어져서, 살은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의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네로 황제가 폐위된 후 이 채찍형을 당할거란 말을 듣고 자살할 정도로 무서운 형벌이었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사형수에게 자기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처형장까지 이동시킨다. 그리고 이때도 넘어지거나 하면 채찍질을 당한다.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겪는 고통도 엄청난데,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당하면 그만큼 빨리 상처의 괴저가 일어나 전신이 불로 달구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중도사망하는 죄수도 많았는데, 이때 사형수의 가족들은 채찍질하는 집행인에게 뇌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채찍질을 살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찍질 더 심하게 해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덜 고통스럽게 채찍질로 미리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렇게 불행한 사형수가 십자가를 들고 사형장으로 오면 십자가에 매달 준비를 한다. 우선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든다.

이후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에 7인치에서 5인치 정도에 사람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대못을 박는다.

이 못은 우리 체내의 중추 신경계를 완전히 부숴버리는데, 그 고통은 정신이 완전히 파괴될 정도이다.

팔꿈치를 벽에 세게 부딪칠 때 혹은 척골신경을 펜치로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고통과 비슷해서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걸 보고 몇몇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익히 알려진 손과 발등에 못을 박는 방식이라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팔을 십자가에 묶는 식으로 그런 형태를 재현한다 해봤자 결국 별 차이는 없다.

일단 팔과 어깨에 가해지는 압박감이야 그대로이고, 손이란 부위 자체가 촉감이 가장 크게 발달한 곳이라 손바닥에 대못을 박으면 역시 상당한 고통이 따르고, 무게로 인해 상처가 점차 찢어져갈 테니 더욱 고통스럽다.

특히 발등의 경우 뼈가 밀집한 곳이라 여기에 대못을 박는 것 자체가 뼈를 상하게 만드는 탓에, 발목에 못을 박는 것에 상응하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그리고 사형수가 박힌 십자가를 세워서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방치한다. 얼핏 보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자체는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최악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못박힌 상처에 몸무게와 같은 힘이 가해져 상술한 고통이 극대화되며, 상처 자체의 괴저와 함께 못에 잔뜩 끼었을 이물질로 인한 감염 때문에 파상풍이 일어난다.

여기에 못 박힌 팔이 몸무게 때문에 팔이 늘어나다 결국 양쪽 어깨가 탈골된다. 탈골도 고통스럽지만 팔이 고정되어 있어 가슴을 압박, 폐와 횡격막을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때문에 사형수는 생존본능상 몸을 올려서 숨을 내쉬려고 하는데, 이때 몸을 세우려고 무릎을 뻗게 되며 이 과정에서 못으로 고정한 발목에 힘을 줘야 하니 다시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숨을 내쉰 후에는 체력상 쉬기 위해 다시 세운 무릎을 굽히면 또 숨을 못 쉬게 된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의 수형자들은 못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이 과정은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라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지치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 수가 줄어들면서 질식사하거나 혹은 호흡 산독증(酸毒症)에 빠져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되면서 심장이 터지거나, 심장마비로 쇼크사한다.

그 외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이전에 당했던 채찍질과 못 박힐 때의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올리지 않게 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한다.

그리고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며,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 액체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보통 십자가에 못 박히면 하루 안에 사망한다고 하지만, 그 위에 매달린 죄수가 사흘간 생존했다는 기록도 일부 보인다. 심지어 사흘을 버티면 '너는 죄값을 다 치렀다'며 살려 주었다고 한다.

처형자가 오래 버티면 다리뼈를 부러뜨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 다리가 버티는 힘이 사라지면서 몸이 순간적으로 아래로 쳐져서 가슴을 압박한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발을 세워야 하는데 뼈가 부서졌으므로 몸을 들 수 없어 곧 질식사하게 된다.

[출처 :https://namu.wiki/w/%EC%8B%AD%EC%9E%90%EA%B0%80%ED%98%95]

은산분리란 금(은행), 산(산업)을 분리한다는 법이며 한마디로 일반(제조업 또는 서비스업)회사가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금융-산업 분리법 정도로 생각하면 좋다. 1995년에 도입하였다. 


다만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4%의 상한을 두고 은행주식을 소유할 수 있다.


이는 회사의 은행 사유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예금자인 개인과 중소기업등의 고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국가에서 만들어진 법안이다.


몇몇 대기업들은 금산분리법의 제한을 받는 은행 대신 저축은행을 계열사로 둬 수신/여신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기업이 교보생명. 교보문고 자체가 신용호의 역점사업이자 유훈이라 현 회장인 신창재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포기할 수 없는 게 교보문고인데 하필 금산분리에 걸려 교보생명마저 기업공개를 못한다. 



기업인들과 독대해 주고 기업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분 시절이었으면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교보생명/교보문고 자체가 보수정권과 갈등을 겪은 적이 있던 터라.. 그리고 그 천하의 박근혜와 순Siri조차도 금산분리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우기술그룹은 교묘하게 이 은산분리 규제를 빠져나가 키움증권과 IT, 영화 배급사, 연예 기획사를 한 그룹 안에 집어넣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 그리고 주력 계열사들이 모조리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에 기업공개를 마치면서 교보그룹을 비웃는 중. 


관점에 따라 평가의 편차가 꽤 큰 제도이므로 판단은 다른 문헌도 많이 참고하고 하도록 하자.


은산분리 완화 논란이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유는 바로 금산분리가 행정편의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도 예시를 들었지만, 다우기술그룹과 교보생명그룹이 제일 극명한 대조사례이다. 


2015년에 핀테크 규제를 완화한다고 금융회사가 IT회사까지 계열사에 추가할 수 있게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다우기술그룹은 전혀 문제가 다른 케이스이다. 


교보생명그룹은 금산법 문제때문에 교보문고, 교보핫트랙스를 회사에서 매각하거나, 신창재 회장 개인재산으로 인수하여 계열분리를 하지 않으면 한국거래소에 기업공개를 못하게 막았다. 교보생명은 교보문고를 세웠던 1980년에는 당시에는 아예 금산법이 없었으므로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이후 1995년 금산분리가 생기면서 상장 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다우기술그룹은 키움증권 코스닥 기업공개가 이미 2004년에 진행되어 이른바 2015년 핀테크 규제 완화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우기술이 1997년 상장하고, 다우데이타는 1999년 상장, 키움증권은 2000년 설립으로, 애당초 다우기술의 키움증권 설립 허가 자체가 금산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당시가 외환위기 중이라 한국 정부에 경제권이 없고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라서 IMF에 의해 다우기술의 키움증권 설립 허가가 난 것이다. 또한 핀테크 규제 완화와 전혀 상관없는(핀테크 규제 완화한답시고 연예 기획사를 허가해주지는 않았다.) 


연예 기획사 키다리스튜디오도 1998년 외환위기 중에 상장했으며, 영화 배급사인 키다리이엔티는 2016년 1월 1일 다우기술한테서 물적분할로 계열사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저축은행을 다우기술과 키움증권이 2012년 인수하는데, 이 때도 이른바 저축은행 단체도산 상황이라며 금융위원회에서 다우기술에 대해 대주주 적격 판정(인수 승인)을 내려주었다. 


이 때문에 다우기술 그룹은 금산법 문제가 이슈가 되면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대체 다우기술은 뭐고 교보그룹은 뭐란 말인가. 사실 정부의 이른바 금산법 문제 자체가 행정편의적인 고무줄 잣대이다. 


경제력 집중과 같은 소리는 그냥 정부에서 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정말로 경제력 집중이니 대기업 사금고니 하는 문제를 들려면 다우기술 그룹부터 처리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정부에서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한테 토마토저축은행(후에 도산)과 합작한다는 이유로 대주주 적격 판정으로 애플투자증권 설립허가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애플투자증권은 몇년 못가서 영업허가를 자진철회하고 자진폐업하였다. 그리고 토마토저축은행은 2012년 도산해버렸다. 


게다가 당시에 셀트리온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2017년에 와서야 셀트리온이 분식회계 의혹을 해결하고 토마토저축은행은 경영부실이 있는 상태에서, 애플투자증권 설립허가를 내줬다는 건 금산법 취지 자체를 깨버리는 짓이었다. 


부실한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이 서로를 인수하지 못하게 하자라는게 금산법인데, 셀트리온과 토마토저축은행 둘 다 논란이 있는 상태에서 증권사 설립허가를 내준 것이니까 말이다. 


은산분리 완화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금산분리법으로 인한 산업자본의 금융참여 제한으로 인해, 외국계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 현상이 심화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해서 국내자본으로 자국의 은행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국제화 시대가 되면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헤지펀드와 같은 국제투기자본들은 많은 국가들에게 굉장한 위협이 되었고 그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은산분리 정책을 점진적으로 포기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은산분리법에 따른 산업자본의 금융 자본 보유율은 10퍼센트이며(원래는 4퍼센트였다.)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이 비율이 적은 나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미국밖에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제쳐두더라도 미국 내에서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도 불구하고 은산분리정책을 완화할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2009년도에 은산분리 완화법이 통과가 되었다. 은산분리 완화정책 제2단계에 해당하는 연기금과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이미 통과가 되었다. 현재 금산분리 완화 정책 단계는 2단계 상황이며, 최종으로는 3단계인 완전철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은산분리 완화법의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제시하고 있다.


은산분리법이 완전히 철폐될 경우 A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B그룹이 경영악화 등의 이유로 자금흐름이 악화되면 그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A은행의 돈을 긴급수혈 받게 되는데 당연히 한두 푼도 아니고 수천억에서 수조 원을 조달 받게 된다. 


물론 여기서 수혈을 잘 받아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수혈을 통한 회생에 실패를 하게 될 경우 그 기업이 망하는 것과 동시에 그 기업에 다니고 있던 사람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정말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다면 국가도 무너지고 그 기업에 자금을 수혈한 A은행도 치명적인 경영상의 위기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또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이 은산분리법이 누구에게 이익을 주느냐는 것이다. 


대략적인 설명 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익이 되는 기업은 당연히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집단들이다. 


은산분리정책의 완화가 대기업의 조세포탈이나 각종 금융범죄들을 용이하게 만들고 경쟁사에 자금지원을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등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2011년 금산분리법 개정안 : 쓸모없는 이야기와 허울만의 규제를 제외하면 다음과 같다.


총액출자제한제도의 전면 폐지 : 이에 대한 후속책은 공시제도.호갱님 공시는 너님이 볼 수 없는 24시간 주말에도 쭈욱~계속 됩니다.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문어발식 확장의 문제는 기본이고 기업의 순자산에 다른 회사의 주식이 있으면, 그 다른 회사의 경영상태에 따라 기업의 재정상태가 춤을 추게 된다. 만약 서로 주식을 사서 이런 짓을 벌이면 어느 한쪽이 삐끗하면 바로 사이좋게 망하게 된다. 즉 회사자본의 충실성이 지켜지지 않게 된다. 


이 역시 외국기업이나 경영권 쟁탈전 따위의 일이 벌어지면 회사가 어떤 꼴이 날지는 뻔한 일. 공시제도 따위로 어찌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제한 200%도 폐지 : 지주회사는 주식의 보유를 통한 회사의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삼성처럼 복잡하게 지분소유를 꼬아놔서 법적 문제와 출자 구조의 문제를 야기할 바에 차라리 깔끔하게 정리해서 계열회사 간의 지분소유를 명료하게 만들면 법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취지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200% 제한을 둔 이유는 남의 돈으로 회사 지배하는 짓거리를 하지 말라고 해놓은 것이다. 


사실 지주회사를 만든 것이 거대 기업집단인 재벌들에 대한 일종의 규제 목적인데 부채비율 제한을 높여서 채무로 주식을 사들이다 파산하면 회사 하나의 경영권 이전만 가지고 수십 개 회사의 경영권이 오락가락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주회사 아래 피지배 회사가 4단계, 즉 증손회사까지 인정되기 때문이다. 


비계열사 주식보유제한 5% 폐지 : 지주회사는 재벌들의 기업집단의 구조를 명료하게 정리하면서 규모의 확대를 막기 위한 제도다. 


지주회사 자체는 비계열회사의 주식보유에 제한이 없지만 자기 자본의 한도와 부채제한 때문에 주식보유를 통한 비계열회사의 지배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계열회사의 자본을 동원해 비계열회사의 주식을 사들인다면 엄청난 속도로 규모가 확대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주회사의 지배하에 있는 계열회사의 자본을 끌어들여 비계열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고 회사 재정의 건전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 주식보유제한이 풀리게 되면 과거처럼 무차별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해진다.


동의명령제 도입

불공정 거래를 한 기업이 당국과 협의를 마치면 그 자리에서 불기소하면서 종료. 전 세계적으로 친기업 정책으로 많이 도입되고 있는 제도이지만, 정부가 위법판단을 내린다는 점, 기업과 정부의 합의로 결정되기 때문에 공정한 법적 처벌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현행 형법체제와는 안드로메다라는 점에서 특히 법조계의 비판을 많이 받은 제도이다. 금산분리에 비하면 약해보이지만 국가의 영향력이 강한 경우에는 기업들을 이행강제금을 통해서 쥐고 흔드는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봐주는 물방망이가 될 수도 있다.


2013년 경제민주화 바람에 따라 10%로 늘렸던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제한선을 도로 4%로 낮추는 원상복귀법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금산분리 정책은 2008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2013년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내부 거래로 5천여 명의 피해자가 양산되자, 금산분리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탄력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대놓고 금산분리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출처 : 금산분리]


1969년 서울특별시 출생 남성, 실명 김동원, 닉네임 드루킹으로, 명지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에서 근무하며 2000년대 초중반 친노 커뮤니티 서프라이즈에서 쁘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친여권성향 논객인 동시에 정치자영업자이다. 



참고로 그 유명한 변희재도 여기 출신이다. 여기에서 탈퇴해서 지금의 극우 성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본명은 김동원, 페이스 북에서는 Sj KIM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2018년,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여론 조작을 하다가 구속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문 정부를 공격하는 댓글 공작을 통해 역으로 보수 세력의 댓글 부대에 대한 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행동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국내 정치 동향, 국제 정세를 분석한 글들을 주로 올리고 2009년부터 닉네임을 드루킹, 블로그 이름을 드루킹의 자료창고로 바꾸고 활동했다. 2009, 2010년 2년 연속 네이버에서 파워 블로거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부터 2018년 2월까지 유령 회사이지만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507-7에 위치한 유령 회사 느릅나무 출판사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경제적 공진화 모임이라는 사이비 종교 수준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드루킹 본인이 직접 강연을 하거나 국내외 인사(노회찬, 유시민, 다마키 타다시 등)들을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강연을 개최하였다. 또한 파주시 출판단지 인근에 '산채'라고 하는 사무실이 존재한다고 한다.


'경인선', '경공모', '세이맘'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당 경선 대선 그리고 현정부 초기까지 때부터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과 연관되어 네이버 댓글 및 기사순위조작과 대형커뮤니티에 여론조작 그리고 인사청탁을 한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드루킹은 일본 침몰을 예언하였는데, 이를 대비하여 일본 침몰 후 일본의 이재민들을 개성으로 피난 시켜서 자신이 운영하는 특별지구를 만들 목적으로 김경수 의원에게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하였다. 



김경수 의원이 청와대에 추천했지만 청와대에서 이를 거절하자 문재인 정부를 프리메이슨과 연관된 제수이트 같은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주장하며 공격하였다. 그는 음모론이나 예언들을 섞어 황당한 주장을 경공모 회원들에게 주입하고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드루킹을 잘 안다고 주장한 사람이 드루킹의 실체라며 드루킹에 관한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려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특검의 수사결과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이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김경수 의원이 재벌개혁의 자문까지 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드루킹이 일방적으로 여권 정치인들에게 접근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드루킹은 정치 경제 파워블로거로 활동하여 네티즌들에게 인지도가 있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국내 정치에 관한 예측과 관련해선 파격적이면서도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의 제공과 함께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을 보면 역사, 인물 및 철학에 관한 인용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일관된 경향이 있다. 오랜 과거의 것들을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으로 다루는 이들과 다르게, 아주 간단한 언어로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서 전달하고 있다.


미디어펜에 따르면 드루킹은 육아정보 카페 '세이맘'(세상을 이끄는 맘들) 등에서 회원들에게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하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가입 방법을 자세히 공지하기도 했다. 세이맘은 주부들이 육아와 요리 정보 등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온라인 카페이지만 정치 색이 뚜렷한 게시 글로 가득하며 현재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밖에도 드루킹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팬 카페인 '우경수'(우윳빛깔 김경수), 블로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 등의 가입과 접속을 권유하는 등 홍보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드루킹 일당이 조직적으로 댓글 조작을 관리한 기사의 종류가 일부 드러났다.


같은 날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의 매크로 구입 시기는 2018년 1월 15일이고 첫 사용 날은 이틀 뒤인 17일이다. 그 외에도 현 청와대 인사와 접촉 정황 및 김경수 후원정황 기사가 보도되었다.


안철수 후보를 비난하고 안희정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 조작,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를 이용해 네이버 보안망을 뚫고 댓글을 조작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2018년 4월 1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가장 곤경에 처하게 했던 네거티브 선거 전인 MB 아바타 공격은 드루킹과 그 지지자 세력들의 댓글 조작으로 인한 프레임이라고 한다.


2018년 4월 19일 문화일보 보도에서는 드루킹이 자신의 조직을 활용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경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보도하였다.기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은 구속되기 직전까지 실시간으로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고 한다.기사


2018년 4월 19일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드루킹이 김경수와 어떻게접촉하고 댓글을 썼는지 일부 공개되었다. 



이같이 '경인선', '경공모', '세이맘'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당의 경선, 대선, 그리고 현 정부 초기까지 때부터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과 연관되어 네이버 댓글 및 기사 순위 조작과 대형 커뮤니티에 여론조작, 그리고 인사 청탁을 한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특검을 계속 해 봐야 알겠지만 어찌되었든 가장 핵심 쟁점사항인 김경수와 민주당 인사가 금품을 주며 댓글조작을 사주한 정황이 드러난다면, 정부와 여당에게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문 대통령이 현재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명박근혜에 비해 인격적으로 낫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이런 핵심측근과 당의 행동을 인지했고 지시했는지에 대한 여부로 수사방향이 확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여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대통령직 퇴임 후 구속수사까지 받을 수 있는 사항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핵심측근 혹은 민주당 인사가 이런 위법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인지조차 못한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민주당도 댓글조작 범죄를 방조한 파렴치한 정당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드루킹이라는 존재는 정치인 커넥션보다, 정치인으로도 언론인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개인"이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여 그룹을 만들고, 세력을 형성해 가면서 "언론인"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적용할 수 없는 애매한 신분을 유지하며, 개인의 명예, 개인의 만족, 혹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오가면서 어떤 여론조작과 비슷한 행위를 할때.. 과연 어떤 처분이 내려지고, 어떤 선례를 만들지에 대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0% 단정할 수 없는 애매한 증거로 김경수-드루킹 커넥션으로 김경수를 처벌한다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그야말로 온라인 전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으로 걸어서 똥물을 뒤집어 씌우기 쉬워질 수도 있고.. 


한편 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김진표 의원의 페이스 북 글이 화재가 되고 있다. 



김진표 의원은 허익범 특검은 지금 이미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 것처럼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망신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논두렁시계'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지방선거 때 야당이 드루킹으로 정치공세를 펼칠 때 김경수 본인이 특검을 가장 먼저 요구했다...지난 지선에 경남에 선거운동을 하러 갔을 때 저는 당당하게 우리당의 김경수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특검은 구시대적인 마녀사냥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경수 도지사 역시 8월 2일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한 의견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조재현은 1995년에 MBC 카메라맨이던 형의 사고사 이후 연기자 생활을 접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갈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김기덕 감독의 첫 작품인 <악어>(1996) 시나리오를 접하고 신선함을 느껴 출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기덕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의 연기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몇 편의 드라마에 역시 조연으로 간간이 출연하면서 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섬>(2000), <수취인 불명>(2001)에 출연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그 친구 연기 쩔던데… 누군지 모르겠네."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2001년작 드라마 <피아노>가 대박을 치며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 김기덕의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쁜남자>에서 측은한 면도 있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 될 '천하의 개쌍놈'인 '한기' 역할로 등장해서 충격과 공포 레벨의 임팩트를 사람들에게 주게 된다.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조재현이라는 이름만큼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정작 김기덕하고는 그 이후로 영화를 찍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이 몇 번 러브콜을 보내긴 했지만 출연료나 스케줄 문제 등으로 엇갈리면서 작품작업 쪽으로는 소원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뫼비우스라는 영화로 다시 뭉치게 됐다.


조재현은 방송에서 김기덕에 대해 묘사할 때

 "강한 내용의 영화를 찍기 때문에 성격이 폭력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누구보다 여리고 섬세한 사람이다. 나쁜남자 촬영 당시에 끔찍한 내용의 장면을 찍다가 중간에 김기덕 감독님이 더 이상 못 보고 스태프들에게 컷을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눈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려버렸으나, 내 촬영분량이 아니라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이를 말리면서 스태프들에게 계속 촬영을 하도록 신호한 적도 있을 정도다. 전혀 그런(폭력적인) 분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약할 때가 많은 인간적인 분이다."

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간 김기덕에게 인간적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하여 "나홀로 휴가" 라는 영화로 감독으로서 첫 영화를 제작했는데 김기덕의 영향을 받았는지 불륜이 주제이면서 묘사라든가 표현의 수위가 굉장히 강하다. 특히 결혼계약의 날이라는 특이한 대사 로 남성 관객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얻었지만 여성 관객의 경우 조금 보기 애매했다는 의견이 있다. 



불륜 여성을 잊지 못해 10년동안 스토킹하는 남성이라는 소재에 대해 불쾌함 혹은 공포까지 느꼈다는 후문도 있다. 연기자 선배라는 위치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를 지도했으며, 초보자인 만큼 다른 감독들의 코멘트를 받으면서 영화를 준비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즉흥적인 컷을 많이 넣는다고 밝혔다.


영화의 논란에 대해 조재현은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는 SNS 등지에서 꽤 논란이 된 모양이다.


[팝인터뷰]조재현 "결혼계약제? 아내가 자기 욕하지 말라더라"


대한민국의 식품 전문 기업. SPC삼립,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파스쿠찌 등), 비알코리아(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31)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기업규모는 중견기업이다.


국내 제빵업계의 선두주자이긴 하나, 그만큼 많은 문제점을 가진 이중적 면모가 돋보이는 기업이다.


SPC는 Samlip&Shany, Paris Croissant, Compaines의 약자이며, 이를 풀어서 A Superb company with Passionate and Creative people Secure, Contain, Protect라는 뜻을 부여한 적도 있다.


spc 가계도


SPC의 역사는 을지로에 있었던 상미당이라는 제과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고 허창성 명예회장이 세운 상미당은 평범한 제과점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성장을 거듭해 공장 설비를 갖춘 뒤 1964년 지금도 판매 중인 크림빵을 양산해 내면서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1968년 삼립제빵공사라는 이름을 달고 가리봉동에 공장을 세우며 삼립식품(현 SPC삼립)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고 허창성 회장은 크림빵 이후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일본에서 찐빵을 보고 영감을 얻어 1970년 가을 삼립 호빵을 출시하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1976년 보름달을 출시하면서 양산빵 시장을 제패했다.


1977년 허창성 회장은 장남 허영선에게 삼립식품의 경영권을 넘겼고, 차남 허영인에게는 샤니의 경영권을 넘겨 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큰 규모의 삼립식품을 물려받은 허영선 회장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들어 회사의 주력 분야인 제빵 분야의 매출이 점차 줄어들자, 리조트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으며 삼립식품은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그 후 1999년에 국찐이빵이 대 히트를 치기도 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누리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1동에 있는 조그마한 공장 하나뿐인 샤니를 물려받은 허영인 회장은 식품 분야에 올인하여 파리크라상과 배스킨라빈스 31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 등을 설립하며 고급 식품 시장에 손을 대기 시작하게 되고, 1990년대 중반 파리바게뜨의 큰 성공으로 회사의 규모를 더욱 크게 불려 가며 양산빵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SPC  그룹


SPC 계열사


SPC 계열사 하위 브랜드 (이 항목에서 브랜드는 제품 브랜드가 아닌 SPC 계열사 아래 있는 사업체임.)


SPC  허희수


체인점 문제 

과거 샤니와 SPC삼립 시절 양산빵 생산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던 SPC가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데는 파리바게뜨나 배스킨라빈스 31같은 브랜드를 통한 고급 식품 시장으로의 진출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파리바게뜨나 배스킨같은 브랜드의 제품의 판매는 기존 양산빵 판매과 같이 소매점, 대형 마트를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체인점을 통해서 판매되는데, 샤니는 체인점 관리에 있어서 불합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배스킨라빈스 31은 890여개 매장, 던킨도너츠는 600여개 이상, 파리바게뜨는 2700여개 매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체인점 매장에 대해 SPC의 관리는 너무 가혹하고, 한편으론 너무 허술하다. 이는 비단 SPC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사업 자체가 가진 문제다. 허나 SPC가 제너시스와 더불어 이런 점으로 까이는 이유는 그만큼 요식업 프랜차이즈의 대표적 기업이기도 하고 눈에 띄게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우선 체인점에 대한 상권 보호가 문제되고 있다. 보통 체인점의 경우 같은 계열일 경우 각 점포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는 새로운 체인점을 내주지 않는게 관행이다. 그러나 SPC는 요즘은 체인점간 거리는 상권 보호랑 별 상관이 없다고 밝히며 가까운 거리에 같은 계열의 체인을 마구 내주고 있다. 기사보기


다음으론 상권 뺏기, 리모델링 강제 계약 문제가 있다. 통상 SPC 계열의 체인들은 기본 3년 계약에 3년부턴 1년씩 재계약 5년째부턴 3개월마다 재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SPC 본사는 이 계약 규정을 악용해 업주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SPC 회장


특히 개점 3년 이후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한 리모델링 명목으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점주들로부터 받고 있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심하면 해당 체인에 대한 폐점까지 시키고 있다. 또한 기계를 새로 바꾸라하면서 통상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에 본사의 기계를 파는 등 체인 점주들에 대한 횡포를 일삼고 있다.


그리고 핵심 상권에 있는 체인점에 대해서 재계약 시기가 오면 점포 자리 이전을 강요하며, 이전하지 않을 경우 폐점 시키고...만약 이전하면 핵심 상권에 있던 체인점 자리에 같은 계열의 새로운 체인을 세우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높은 분들답게 혹여 이러한 불만에 대해 항의 및 단체 행동을 한다면, 가차없는 응징이 가해진다. 즉 다음 계약시 여지없이 잘려 나간다. 사원이 아니라 노동 쟁의에 의한 보호를 법적으로 못 받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듯하다.


모든걸 돌아보면, 프랜차이즈 사업부의 고객, 즉 돈을 바치는 이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가맹점 점주이고 그 점주들 덕에 현재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이지만 배은망덕하게도 가맹점 점주를 무시하는 처사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얌체 가격인상

2013년 2월 21일에는 밀가루와 여타 식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소매점에 납품하는 빵값을 일괄 인상시켰는데, 포장지 디자인이나 상표명 등을 바꿔 리뉴얼한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며 은근슬쩍 올린 페이크성 방식이라 포풍까임 당한 뒤 3월 5일에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매점에서 이 발표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올려받은 가격 그대로 판매했고, 가격 인상 방침 철회 후 재출시된 상품이 시중에 풀릴 때까지는 계속 혼선이 빚어졌다.


SPC 허희수 마약


베스킨라빈스 변호사 사건

이와 더불어 SPC 본사가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체인 사업에서, 개인 점주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본사가 돈 몇 푼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먹는 사건도 있었다. 바로 경품 지급 거부 사건 때문이었다. 


배스킨라빈스 31에서 일본 2박 3일 여행권을 걸고 이벤트를 했는데, 그 이벤트에 당첨된 당첨자가 여행권을 요구하자 비알코리아에서는 1박 2일 여행권만 제공하겠다며...배째라 식으로 나왔다.


보통 이럴 경우 당첨자들은 그냥 똥밟았다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바로 이 당첨자 최모 씨가 변호사였다는 것. 결국 변호사 최모 씨는 이 사건에 대해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최모 씨의 손을 들어 비알코리아가 108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병크가 한 번 더 터졌다. 바로 비알코리아 본사가 108만원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결국 그 108만원을 내지 않아 사무실에 있던 에어컨 4대를 압류당하고... 인터넷에 기사가 뜨고 나서야 그 사건이 종료되었다. 


조직적 달걀 사재기

2016년 12월 경 2016년 대한민국 AI 유행으로 인해 빵을 만드는데 필요한 달걀 수급이 어려워지자 자사 직원들에게 달걀 한판씩 사 올 것을 지시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이에대해 SPC측에서는 '직원들이 애사심에서 한 행동이다', '교육 및 연구개발에만 쓰였다.'고 주장하였다. 


[출처 : SPC그룹]


대한민국의 금융인. 전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MB정부 '금융권 4대 천왕'  


1944년 2월 2일 경남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1963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1967년 졸업했다.


1967년 한일은행에 입행한 뒤, 1999년 한빛증권 사장, 2002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맡으며, 38년간 우리은행, 우리금융 등에 몸담아왔다.



2004년 9월에는 금융계를 떠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제의로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2년 반 정도 맡았다가,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2008년 초에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공모에 나섰지만 ‘MB맨’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낙하산 논란 속에 탈락했다


당시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이 된 이정환 씨는 검찰 수사와 함께 지속적인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거듭된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8년 6월에 제4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다. 말단 행원으로 입사해 회장까지 한 직장에서 40년 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입지전적 인물로 불렸다.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고강도 긴축경영을 실시했다. 계열사 임원 급여를 10%씩 반납했고 2009년에도 임원 급여 10%를 추가 반납했다. 



2008년 4분기 예산의 10%를 절감했고 2009년에도 변동성 경비의 20%를 깎았다. 우리금융의 실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순이익이 4545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2009년에는 1조 260억 원으로 회복하며 가장 빨리 금융위기의 후유증을 털어낸 금융회사로 평가받았다. 


특히 2009년 3분기에는 ‘어닝 서프라이즈’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2009년 3분기 순이익은 4838억 원으로 KB, 신한, 하나 등을 포함한 국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단연 최대였다. 


2009년 9월 경에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66층짜리 AIG그룹 빌딩을 계열사를 통해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영화는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다.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 정부지분 17%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차에 걸쳐 완전 민영화를 최초로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2011년에는 당시 최고 실세로 꼽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두고 경쟁하여 승리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이명박 정부가 강만수 전 장관에게 산업은행금융지주 회장을 권해 강만수 전 장관이 상당히 불쾌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이 여러 차례 사퇴를 종용하였으나 사퇴를 거부하였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토대를 직접 쌓고 싶었기 때문이라나...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 측근을 자회사 대표에 앉히고 해외 골프와 고가 선물 구입으로 회삿돈을 낭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2013년 4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출처 : 이팔성]


2018년 2월 7일 김사랑 강제납치 감금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이하 김사랑 진상규명위)는 성남시의회 세미나실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성남시 무차별 고소·고발 및 성남경찰 납치, 정신병원 감금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사랑 강제납치 감금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이하 김사랑 진상규명위)는 2018년 2월 7일 오후 성남시의회 세미나실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성남시 무차별 고소·고발 및 성남경찰 납치, 정신병원 감금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단체들은 ‘정부 기관은 강제 납치한 경찰과 강제 강금한 정신병원 배후 밝히라“면서”서울지방경찰청은 김사랑 사건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김사랑 진상규명위는 “2017년 11월 14일 성남에서 대낮에 일반 시민이 경찰 공권력에 의해 강제 납치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실신하였으며 지인들과 어머니에 의해서 구출 되는 사건이 발생해다”면서“아직도 일부 공권력은 힘없는 시민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7년 8월 19일 경기도 성남시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네티즌 B씨를 경찰에 형사 고발한 가운데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추가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시장은 1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성남시정에 대한 허위사실을 상습적으로 유포한 B씨를 형사고발했다”며 “앞서 허위사실 유포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고도 계속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추가로 제기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시에 따르면 ‘개인에게 특혜를 줬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이 담긴 동영상을 온라인상에 퍼뜨린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상 명예훼손)로 네티즌 B씨에 대한 고발장을 지난 18일 성남분당경찰서에 접수시켰다.


B씨는 한 보수단체의 소셜미디어 방송에서 "성남시가 열악한 상권을 위해 지원받은 자금을 특정 개인이 소유한 건물에 지원해 특혜를 줬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고발장에서 “시와 시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하고 해당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는 동영상을 6차례에 걸쳐 유튜브 및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고 주장했다. 



또 “허위사실이 담긴 동영상 조회수가 26만건에 달해 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형성 등 공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악의를 가진 상습적 허위사실 유포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범죄”라며 “세상이 거짓말에 놀아날 만큼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8월 5일 이재명은 자신의 블로그에 또 다시 입장을 밝혔다.

○ 김사랑은 이재명 전)성남시장이 성남시 산하재단 등을 통해 A씨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주장을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유포하다가 A씨에게 고발되어 2018년 4월12일 대법원 2부(사건번호 2017도20076)에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300만원 벌금형을 확정 받았습니다. 


○ 김사랑은 유죄 판결을 받고도 이재명 전)성남시장이 성남시 산하재단 등을 통해 A씨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주장을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지속해서 유포하다가 성남시와 이재명 시장에게도 명예훼손 협의로 2017년 8월 고발되었습니다.


17년 11월14일 OO경찰서에서는 김사랑에 대한 고소사건의 조사를 위해 출석할 것을 통지하였으나 김사랑은 본인 페이스북에 수차례(약 20건) 자살 암시글을 게재하며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담당 경찰은 OO경찰서에 김사랑 신병 확보 요청을 하였고 OO경찰서는 김사랑 신병확보 후 정신병원에 보호조치 되었습니다. 


OO경찰서는 경찰청장의 지휘계통에 있으며 지자체인 성남시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김사랑은 경찰에 의해 강제 입원이 된 것이 진실이며 이재명 지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 마치 이재명 지사가 김사랑을 강제 입원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비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악의적인 음해에 대해서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예정이오니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출처 :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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