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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대 충청남도지사.


1959년 충청남도 천안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7기 수료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통합21에서 정몽준 대표최고위원의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전용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충청남도당 위원장, 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원내부대표, 충청남도당 위원장,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손학규 계파로 분류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13년 12월 9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하여 새누리당의 반발을 샀다. 근데 매우 틀린말도 아니여서 자유한국당이 들추지 않고 있다. 


2014년 3월 다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5년 2월부터 6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천안시 지역구 신설로 인한 지역구 조정으로 인해 천안시 병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49.7%의 득표율로 당선 4선 의원이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최초로 충남 지역에서 내리 4선을한 의원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칭찬과 논란

2017년 8월 3일 수해피해지역인 천안에서는 묵묵히 수해현장복구를 자발적으로 나서서 피해주민들을 도와 이 시대에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호평이 자자하다. 기사 수해기간에 유럽으로 놀러가 반성은커녕 국민들을 싸잡아서 레밍으로 비하한 이분하고는 정말 비교가 된다.



2017년8월 22일 해경 경비함을 타고 독도를 탐방해서 비판을 받고있다. 양승조는 '국민안전 공감 캠프' 참가자 80여 명과 함께 1박 2일로 독도를 탐방하고 왔다. 함장을 제외한 나머지 승조원(해경)들은 지시에 따라 캠프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침실을 내주고 쪽잠을 자는 등 해경을 대상으로 한 갑질논란이 일어났다. 


경비함으로 독도를 다녀온 것이므로 이 기름값이든 인건비든 국민 혈세에 해당되기도 하여 비판받고 있다. 동해해양경찰서장은 민간단체를 지원할 수도 있으며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어서 결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의에서 한 것도 다른 사람에겐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



충청남도지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남 출신으로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최초로 충남 내리 4선에 성공한 인물인 만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복기왕 아산 시장과 함께 차기 충남지사로 후보군으로 오르내렸다. 결국 1월 4일, 충남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마 이후 YTN과의 인터뷰에서 친문 - 비문 구분은 너무나 도식적이고 형식적 구분이라고 말하면서도 강력한 경선 경쟁자 박수현 대변인은 당내 대통령 경선 당시 문 대통령을 위해 힘쓰지 않았고 탕평의 일환으로 대변인에 임명되었다고 견제하면서,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사무총장에 임명 되었다며 자신을 비문으로 보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3월 5일,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의 성폭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악재가 발생하는 듯 싶었고, 이에 따라 민생탐방 결과 보고 기자회견을 취소했다고 한다.


정치공작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수현 충남도지사 후보의 내연녀 논란을 주장했던 민주당 당원인 오영환 씨가 지지를 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3월 14일 박수현 충남도지사 후보가 위의 내연녀 논란으로 자진사퇴하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3월 20일 충남지사 전략공천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4월 13일 복기왕 예비후보와의 경선 끝에 승리를 거두고 충남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었다. 현역의원이므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며, 5월 1일 사퇴를 선언했다. 양승조 의원을 포함하여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의원들의 사퇴동의안는 5월 14일에 통과되었다.


자유한국당측의 충남지사 후보로 불사조이인제가 추대되면서 그와 선거전을 치르게 되었다. 전임 안희정 지사의 성폭행 스캔들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디버프가 있긴 하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야당의 지지율이나 상대 후보의 화려한 행적을 생각해보면 무난히 당선될 듯하다. 해당 문서를 살펴보면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양승조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차지했다.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현재 63.7%로 이인제 후보를 넉넉히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 62.6%로 출구조사와 큰 차이 없이 승리했다.



TMI

2002년 선거 이후 공석이 된 천안 갑 선거구를 차지하기 위해 4개월간 한나라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3김 정치 타파에 매력을 느꼈지만, 돈 문제와 원칙과 정의가 없는 정당이라고 생각해 탈당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현대 에쿠스를 탄 적이 있었으며, 주행거리가 화제가 되었던 원혜영 의원의 그랜저 XG보다 1만 km 더 달렸다고 한다. 참고로 원혜영 의원은 2013년에 그랜저를 체어맨 리스로 바꿨다.


마라톤을 취미로 삼고 자주 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법고시에 번번이 탈락한 이유가 약한 체력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기 위해 22일간 단식과 삭발 투쟁을 하기도 했다. 사진은 21일째 휠체어 투혼을 하는 장면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구본영이라는 국무총리실 관리관을 박상돈 의원과 함께 영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구본영은 2014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더불어민주당계의 천안시장을 맡게 되었다. 단, 선거 당시 돈을 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후 다시 천안시장에 출마해 박상돈 후보와 대결하여 당선되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던 11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유성엽(柳成葉) / 1960년 1월 25일 (58세)/ 전라북도 정읍시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가족관계 : 배우자 나수영, 3녀

민주평화당 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



안민석과 같이 박근혜와 최순실을 탄핵과 구속시킨 공신 중 한 명.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정읍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3년 10월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2006년 초 열린우리당 전북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패배하였다.


2008년에는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하여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읍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으나 민주당에서 복당을 불허, 4년 내내 무소속으로 있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되었고 이후 복당되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북도당위원장이었으나 탈당하여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정읍/고창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농어촌 특별 선거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선거구의 면적이 대한민국 선거구의 평균보다 5배 이상인 경우 인구가 부족해도 하나의 선거구로 설정하자는 것. 



각종 논란들

아청법 발의에 동참한 전력이 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홍보 수석비서관이었던 이정현의 보도개입 발언을 옹호하는 뉘앙스로 말하다가 논란이 되었다. 나중에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였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수사에 대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구속수사 재판 반대합니다. 경제도 매우 안 좋은데 깊이 숙고합시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자신의 지역구 구민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받았다. 




유성엽 안철수 저격 

모바일 메신저 '바이버'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드린다. 저는 안철수가 당 대표에 출마했을 때 몇몇 의원들과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당대회 직후 제 방을 방문한 안철수에게 대선패배 후 당 대표에 출마한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비정상적으로 출마했는데도 당선된 것은 당이 비정상이라는 것과 앞으로 이 비정상을 어떻게 정상으로 돌려놓느냐가 매우 중요한, 어려운 과제라고 말씀드렸다. 대선에 패배한 사람은 죄인이다. 반성하고 자숙해야 정상인데 같이 경쟁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해서 개인적으로나 당으로서나 얻을 게 뭐가 있겠나. 특히 다른 정책들은 몰라도 적폐청산은 당연히 철저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안철수를 디스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C%A0%EC%84%B1%EC%97%BD]

서기호 / 1970년 3월 9일 (48살) / 전라남도 목포시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소속 정당 : 정의당

경력

제주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통합진보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

정의당 원내대변인


1970년 목포시에서 출생하여, 목포이로초등학교 - 목포홍일중학교 -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학내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전국 가톨릭 대학생 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이 조직은 전국 각 대학의 가톨릭학생회가 모인 연합체로, 한때 명맥이 끊겼다가 되살아나서 현재 ‘한국 가톨릭 대학생 연합(약칭 한가대연)’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후술할 판사 재임용 탈락 사건 때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동문들이 모여 ‘서기호 분도 형제와 사법정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 바 있다.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000년부터 판사로 재직하였다. 재직 중 SNS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가카의 빅엿 그 후 2012년 2월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외압 의혹이 있다 카더라) 통합진보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와중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으며, 김제남, 박원석, 정진후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에 합류했다. 경력이 경력이니만큼 소속 상임위는 법제사법위원회.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11번째 주자로 참여했다. 발언시간은 5시간 16분.



발언을 마치고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초 목포시 지역구에 출마하고자 하였으나, "목포에서의 출마를 고민하고부터는 ‘목포를 책임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준비는 되었는지’에 대해 제 스스로에게 물어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불출마의 이유를 밝혔다. 


목포시의 현역 박지원 의원이 고령인 만큼 박 의원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4년 뒤를 기약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윤소하 의원이 목포시를 차기 총선 지역구로 정했기 때문에, 정의당 후보로 출마하기는 쉽지 않을 듯. 경선은 해봐야 안다.



2016년 7월 서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수임이 잘 되는지 변호사 2명을 추가로 채용하였으며, 당분간 변호사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https://namu.wiki/w/%EC%84%9C%EA%B8%B0%ED%98%B8]



1961년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17기로 수료했다. 1988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판사를 시작하였다. 서울지법 판사·대법원 재판연구관·청주지법 수원지법 서울고법 부장판사·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으로 근무했다. 


청주지방법원 시절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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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시절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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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시절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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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시절 판결..

2013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고합1046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아 "원심이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한만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두 사람의 친분 관계나 한만호가 한명숙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시점, 자금 공여 장소, 채권 회수 목록 등을 봤을 때 한만호가 한명숙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에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점이 오히려 진술을 믿을 만한 이유라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


서울고등법원2011노3260 판결했고 2014년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2013노1028 서울지방변호사회의 2015년 법관 평가에서 95점 이상을 받은 우수 법관으로 선정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1심에서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 등의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재용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심에서 증거로 인정한 부분을 대거 파기하고 국정농단의 주범은 박근혜와 최순실이라고 하면서, 이재용은 이들에 의한 피해자라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것. 


이로 인해 판결 직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하루 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적폐 판사'라고 하면서 파면과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쏟아졌다. 서울고등법원 정문에 개 사료를 뿌린 사람도 있었을 정도.


그러한 가운데 정형식은 조선일보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런 비난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고 말하였다. 한편 판결에 대하여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석방 여부였다. 뇌물로 인정된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금액 36억 원도 거액이지만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 재판을 하면서 없던 머리카락이 더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명숙 총리 뇌물수수 판결

당시 서울고법 형사6부 부장판사였던, 정형식 판사는 2013년 한명숙 국무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항소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해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000여만 원"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후술된 이재용 재판 집행유예 선고와 비교되면서 정형식 판사의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한 요인이 되었다. 특히 주5일 근무제 실시 이전이기 때문에 토요일도 평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재용 삼성부회장 집행유예 판결

“개인적으로 법원 판결 가운데 역대급을 2개 꼽는다. 한명숙 전 총리 판결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판결이다. 두 판결을 지금까지 ‘역대급 쓰레기 판결’로 꼽아왔는데 이번 (이재용) 판결은 이를 능가한다” -이정렬 전(前) 부장판사


"겉으론 단호해보여도 곧 '봐주기'…악순환 반복" -월스트리트저널


"2년 동안의 큰 변화에도…정경유착은 바뀌지 않았다는 징조" -워싱턴포스트


삼성의 후손 이재용을 위한 행운의 극적 전환' 이재용 부회장 석방 시나리오, -영국 BBC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 항소심에서, 

2018년 2월 5일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핵심 혐의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로 인정했으나,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 원과 최 씨 측에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로 인정했으며 삼성이 마필 소유권을 최 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만큼 마필 구매 대금 등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


이와 더불어 뇌물공여와 함께 적용됐던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 역시 이재용 부회장 측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 원은 뇌물로 준 돈일 뿐 이 부회장이 차후 사용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게 아니라며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


판결이 난 후 대부분의 국민여론은 싸늘했는데 "사법부가 불리할 때만 삼권분립을 외치면서 본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가 주된 평. 박영수 특검 또한 "소가 웃을 판결"이라고 이례적으로 매우 신랄하게 법원을 비난했다. 특히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서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역사가 있는 현실에서 독재정권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자본권력에 무릎을 꿇은 판결을 계속하다가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기야 정형식 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고,개중에서 특별감사 요구 청원은 3일 만에 동의하는 인원이 20만 명을 넘었다.


"그런 비난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믿는다. 결국은 사회가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중략)... 법리(法理)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 -정형식 부장판사


그러나 정형식 판사는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휴가를 썼다. 빤쓰런 청원한 20만 명은 졸지에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위의 이재용 판결 이후 그가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과 혼맥 관계에 있는 것이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다. 


우선 그의 아내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종사촌 간이고,자유선진당 박선영 전 국회의원과는 자매 간이다. 다시 말해 그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처사촌 간이 되고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과는 처형-제부 간이 된다. 한편 이명박근혜 시절에 대법관을 지냈던 민일영은 박선영 의원의 남편이므로, 정형식 판사는 민일영 전 대법관과 동서지간이 된다.


그의 이러한 엄청난 혼맥 관계가 알려지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논란에 둘러쌓여있는 정 판사를 형사 13부에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법원행정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형사 13부는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의심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재용 1심 재판 무렵 신설한 것으로써 집유를 주기 위해 짜여진 재판이 아니었냐하는 의혹이 일고있다.


대표적인 거물급 여성 정치인이자 민주당의 한 축이었던 인물

한국의 前 정치인.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여성운동 1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환경부, 여성부 장관 및 국회의원을 거쳐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됐다. 하지만 2015년 국회의원 재직 중 과거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됨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점을 남겼다.



1944년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출생했다. 6.25 전쟁 때 부모를 따라 월남해 서울에서 자랐다. 


정신여자중학교, 정신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다. 




1967년 박성준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바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소위 통혁당 사건 때문이었다. 10년 여 동안 옥바라지를 하며, 1977년 한신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받은뒤 한신대 강사가 되었다. 



민주화 및 재야 여성 운동가로도 활동하다 1979년 광주교도소에 투옥됐다. 2년 6개월여 만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같은 해 남편도 크리스마스 특사로 출소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엄마가 된 한명숙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도 받는 등, 가사와 학업을 병행했다. 이후 남편은 일본 릿쿄대학에서, 한명숙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 중단하고, 부부가 함께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명숙은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을 받았다. 



  •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 군가산점 폐지, 여성쿼터제 도입, 출산-육아 휴가제, 성매매특별법 제정, 여성부 창설 등에 참여했다. 


1989년부터 5년간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이었다. 2000년 전국여성대회에도 참석하는 등 여성부 신설에 힘을 보탰고 2011년 당개혁특별위원회 때 유승희 전국여성위원장을 통해 당시 여성 공천 15% 의무화 실시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되며, 2015년 12월 당적을 스스로 던질 때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 내 전국여성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당내 여성 운동을 주도했다.




이미경 의원, 유승희 의원, 서영교 의원 등과 조현옥 현 청와대 인사수석이 그녀의 인맥이다. 또한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국무총리 때도 의전비서관을 역임한 조한기(현재 충남개발공사 감사)도 한명숙 계로 분류된다.



  • 정계활동

1999년 김대중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시작으로, 이듬해 신설된 여성부 초대 장관을 역임했다. 


DJ정권의 주요 업적 중 하나인 호주제 폐지 및 여성쿼터제 역시 한명숙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며, 모성보호법 차원으로 생긴 출산휴가, 최대 5년간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등이 이때 생겨난 것이다.





2003년 노무현정권 당시 환경부 장관이 됐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땐 지역구 도전에 나서 고양시 일산구 갑으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경륜은 물론 여성으로서 갖는 상징성 덕분에 국무총리 물망에 오르내렸고, 이해찬에 이어 총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 여성 국무총리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2002년 장상이 서리직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임명된 최초의 여성 총리는 한명숙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후, 2차례의 정치자금수수 혐의로 2009년 기소되면서 수년간 곤혹을 치렀고 이명박 정부 내내 언론과 여당의 정치 공세를 견뎌야 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대한통운 건은 무죄를 받았으나, 한신건영 건은 유죄 판결이 확정돼 실형이 선고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 과정의 당내 잡음 및 패배 후유증으로 친노와 비노로 갈라졌고, 이해찬과 유시민이 한명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에 남은 한명숙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를 공천받았으나 낙선했다. 초반 여론 조사로는 무명에 가까운 한나라당 백성운 후보에 10% 가량 앞서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불과 투표 사흘 전 캠프 소속 선거운동원이 지역 대표들에게 밥을 산 것이 드러나 불구속 입건됐고 결과는 3.3%차의 패배.




2010년 대한통운 정치자금수수 혐의에서 벗어난 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경선(100% 여론조사 방식)에서 이계안 후보를 누르고 서울특별시장 후보에 선출됐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압승이 될 것으로 예측됐고 더구나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터져 언론 보도와 여론은 야당에게 불리했다. 


선거 2주 전 여론 조사로도 적게는 11.9%포인트(조선일보), 많게는 22.8%포인트(중앙일보) 오세훈의 리드였다. 그렇지만 서울만은 광우병 논란, 용산 참사 등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노무현에 대한 동정 및 향수가 있어 한명숙이 해볼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왠걸 투표 당일이 되자 자체 조사상 한명숙의 근소한 역전이 점쳐졌다. 서울시청 앞에서 지지자들과 승리 예감을 만끽할 정도였다. 그러나 막판 강남 3구의 오세훈 지지표에 덜미를 잡혀 다시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불과 0.6% 차의 선전이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으로서 선거를 지휘했고 본인 역시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그러나 야권단일화, 여성 15% 할당 공천 강행 과정의 당내 갈등, 비례대표 공천문제,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 등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여론 결과가 이어졌음에도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에게 단독 과반을 내주고 완패하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뇌물죄로 실형을 산 것에는 판결이 과하다 정당하다를 놓고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때 당시 총선의 대 참패가지고는 모두가 위아더월드로 무능하다고 까는 편. 오죽하면 실형판결을 받은 것보다 총선때 보인 무능함이 더 용서가 안 된다할 정도(...)



  • 정치자금수수혐의

전술한 경선 과정에서 대한통운에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2009년 기소되었고 한신건영에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010년 추가 기소되었다. 


먼저 대한통운 건은 4천 5백만 원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공방 끝에 3심까지 전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한신건영 9억 원 관련 건은 기소된 이듬해 재판이 시작되어 1심에서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여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하여 2013년 진행된 2심에서 유죄로 판결받아 징역 2년, 추징금 8억 8천 3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5년 3심이 진행되었는데 결과는 뒤집지 못한 채 유죄로 판결받아(13명 중 유죄 8명, 일부 유죄 5명) 2심과 같은 형량을 받았다.





추징금 중 3억 원의 소재를 대상으로 해서는 파악되어 모두 일치한 의견을 보였지만, 남은 6억 원의 증거 여부를 대상으로 해 의견이 갈린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주요한 증거와 수사 기록을 검토하는 것이 아닌 1심과 2심 판결을 대상으로 한 법리를 심의하여 판결을 확정한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1심보다는 2심의 법리가 합당하다 하여 형을 확정한 것이다. 그것과 반대로 법리에 맞지 않는다. 판결하였을 때는 원심을 파기하여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합의부에 돌려보내 다시 재판을 받게 한다.




결국 한명숙은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국무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5년 8월 24일부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것을 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정치권력이 개입된 정치 보복성 판결이라며 목멘 소리로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수성향 네티즌들은 '첫 번째 3억 원에 한해서는 대법관 전원 일치 유죄판결이 나왔으므로, 야당 추천 대법관도 유죄라고 본 것이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이라는 견해도 있다. 


전 국무총리 한명숙을 대상으로 한 이런 판결을 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선 격론이 오갔다. 이것을 억울한 정치 탄압으로 간주하고 쟁점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처지였던 혁신 위원 이동학의 일부 발언이 당내 반대 세력에게 꼬투리가 잡혀 혁신 위원 이동학이 사과하는가 하면, 당시 대표 문재인은 당 최고위에서 전 국무총리 한명숙의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당 차원에서 대납하자고 제안했다가 빈축을 사고 취소하는 등 여러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작 한명숙 변호인단에서는 "추징금을 모금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또한 대납하더라도 선처받는 것이 아니다. 형벌은 민사상 배상이나 범죄로 얻은 수익을 대상으로 한 추징과는 별도로 국가가 내리는 제재 겸 재사회화 조치이기에 피해자에게 제대로 배상했을지라도 국가는 그것과 무관하게 제재한다.

 


2015년 12월 11일, 결국 한명숙은 당시 대표 문재인에게서 당적 정리를 요구받았고, 본인도 이것을 받아들여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 되었다.




2017년 8월 23일, 징역 2년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이해찬, 문희상 의원과 지지자 100여 명이 모였으며 추미애 대표는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며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에 대해 김진애 전 의원은 "그 맑음이 감동이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은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고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 성향의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하여 검찰이 표적수사를 했지만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와 유죄를 받은 건 사실인데 한명숙을 영웅시한다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한명숙이 추징금을 내지않고 버티자 검찰은 환수팀을 구성하여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을 환수하였다. 검찰은 나머지 추징금 7억3000여만원도 환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 트리비아

과거 넷상에서는 "한명숙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때가 잦다"면서 한명숙의 별명으로 한명숙청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한명숙이 현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터라 지금은 크게 쓰이진 않는다. 또 실상을 파고 보면, 이름값 높은 정치인으로서 이런저런 사람과 접촉하고 사진 찍히는 일이 잦았을 텐데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훗날 몰락하는 때가 생기면 예전에 한명숙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재발굴되어 한명숙청 어쩌고 몰아갔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이게 반대 진영인 박근혜까지 이 숙청 목록에 거론되었을 정도로 억지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사실이었나 싶긴 하지만 그런 식이면 접점이 안 닿을 사람이 없다.




조희연(曺喜昖 )/ 1956년 10월 6일 (60세) / 전라북도 정읍시 

학력 :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 /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사회학자로 현재 서울특별시 교육감이다. 성공회대학교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상임의장,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를 역임했다.



  • 생애 

1956년 10월 전라북도 정읍에서 지방공무원으로 재직하는 조일환(曺日煥)의 5남 2녀 중 막내으로 태어났다. 그가 5살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시고 어린 그에게는 생모나 다름없는 새어머니였지만, 다 자란 형님들과는 크고 작은 갈등이 적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는 그때부터 감정적 충돌로부터 거리를 두는 법, 무심해지는 법을 스스로 깨쳤다. 심리적 상처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생존법이었다.아버지 시대의 삶의 애환은 《뜻밖의 개인사》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북중학교를 졸업한 후, 1972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75년에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사회학과)에 입학했다. 1978년 유신헌법 및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죄로 구속되어 징역 3년을 받았으며, 1979년 8월 15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90년부터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NGO대학원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 일반대학원장, 기획처장, 교무처장, 민주자료관장, 민주주의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5월부터는 《월간 사회평론》의 편집기획주간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USC(남가주대학교)에 초청되어 한국 관련 과목을 가르쳤다. 1994년 박원순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으며, 사무처장, 집행위원장, 정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중화민국의 국립교통대학교의 '사회조사 및 문화연구대학원'에 초청되어 1학기 동안 가르쳤으며, 2011년에는 일본 도쿄의 게이센 여학원 대학에서 1학기 동안 가르쳤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2004-06년), 비판사회학회 회장(2006년)을 지냈다.


조희연은 진보 성향의 시민·교육단체로 구성된 ‘2014 좋은 서울교육감 시민추진위원회’가 추진한 단일화 경선(여론조사+시민투표)에서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결정되어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되었다. 여론조사 기간 동안에는 보수 성향의 고승덕, 문용린 후보에게 밀렸으나, 6월 4일 대한민국 제6회 지방선거에서 39.08%의 득표율로 교육감에 당선됐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재선 도전을 선언하였다. 진보 진영 교육감들과의 단일화 경선에도 참여하겠다고 한다.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 사회 활동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하라’는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년·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그로부터 34년 후인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같은 해 7월,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조희연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조희연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국가배상금을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아시아 인권기금)’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 외고 자사고 폐지 관련 내로남불 논란

평소 특목고, 자사고의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폐지를 주장해왔으나, 정작 두 아들을 모두 외국어 고등학교로 보내어 파문이 일었다.


당시 논란이 되지 조희연은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건 외고가 아니라 자사고”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해당 논란이 수그럴 때가 되자, 외고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내로남불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 허위사실 공표 선고유예 

2014년 지방선거에서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15년 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2016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사건 처리를 놓고 충돌해 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을 빚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농약급식-조희연 교육감-수사/선거법 위반 부분이 메모된 사실이 드러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공작으로 검찰이 압력에 굴복해 불구속 기소까지 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고발을 접수해 수사하던 경찰은 "혐의 없음"이라는 의견을 검찰에 넘겼었다. 결국 2016년 12월 27일 대법원에서 선고유예가 최종 확정되었다. 선고유예를 한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1차 공표행위는 무죄, 2차 공표행위는 유죄로 보아 250만 원의 벌금형을 확정한 한편 선고유예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판단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를 들어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따라서 남은 1년 6개월의 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직은 유지하였으나, 직선제 이후 서울특별시교육감이 전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정택[3](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150만원/뇌물수수, 징역 4년 및 벌금 1억 추징금 1억 4천600 만원), 곽노현(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 징역 1년), 조희연(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250만원 선고유예).




  • 서울시교육청 문서 소프트웨어 일괄구매 의혹제기 사건

2016년 10월 6일,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 도중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이 서울특별시교육감 조희연에게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워드프로세서(Microsoft Office와 한글과컴퓨터 한컴오피스) 일괄구매에 대한 비리 의혹을 제기했으나,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만인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사건. 일명 MS 오피스 사건이라고 불린다.


다음날인 10월 7일부터 10월 8일까지 '이은재'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하 '교육청')은 Microsoft Office(이하 'MS 오피스')의 구매에 대해서는 공개 경쟁 입찰을 진행했으며, 그 중 예상 가격 기준으로 87.685% 수준의 가격을 제시한 '㈜필라테크'라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 한컴오피스(이하 '한컴오피스')는 2번의 단독 입찰에 의한 유찰 이후 구매계약(이른바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분에서 이은재 측이 질의하고 싶었던 내용은 '왜 한컴오피스는 예상가격의 99.99% 수준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는가', 즉 '한컴오피스에 대해서 경쟁 입찰을 진행하지 않았는가'로 보인다.


이은재는 조희연에게 "워드프로세서 구매 계약을 왜 교육청이 직접 했는가"라고 물었다. 이는 '교육청이 월권 행위를 저질렀다' 혹은 '교육청이 특정 업체에 이득을 주려 했다'로 유도하기 위함이었다(이어진 질문들에서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조희연은 '비용 절감을 위함이었고, 29억 원 가량을 절감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문답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은재는 "예상 가격의 99.99% 수준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왜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했느냐"고 질의를 했다. 이은재의 의도는 '교육청이 수의계약을 통해 특정 업체(의 총판사)에 이득을 주려 했다는 것으로 유도하는 것'이었으나, 질문에서 그 대상이 MS 오피스인지 한컴오피스인지 조희연에게 환기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대상을 혼동한 조희연은 이은재의 질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MS 오피스를 MS에서 구입해야지 그럼 어디서 구입하느냐고 핵심에서 벗어난 답을 했던 것이다. 이에 이은재는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가 꺼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기가 어딘데 거짓말을 하느냐', '조희연은 사퇴하라'며 목청을 높였다. 



[출처 : https://namu.wiki/w/%EC%A1%B0%ED%9D%AC%EC%97%B0(%EA%B5%90%EC%9C%A1%EA%B0%90) / 2]


 부천시 원미구 을 선거구에서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동교동계로도 분류되며 우상호 의원과 같이 민주평화당 통합 우호파로 분류된다.

 

1953년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독립유공자 설철수 옹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마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신계륜 및 홍의락과 동기다. 고대 재학 도중 유신 반대 시위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정치 활동 

이때부터 어린 나이에 김대중계 정치인이 되었고, 일명 동교동계의 막내로 불렸다. 당시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는 원칙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탈레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알려진 별명이다. 팟캐스트에서는 현대화한다고 ISIL(...)로 부르려고도 했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이철 국회의원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유인태 국회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최규선에게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되어 2005년에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피선거권이 10년동안 제한되는 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복권되었다. 


한편 2003년말 범노무현계가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분당해 나갈때도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자, 탄핵소추안에 반발하여 삭발시위를 하였고, 같은 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였다. 


이후 손학규계 정치인이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원래 지역구였던 도봉구 을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상기한 최규선게이트에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 때문에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은 범죄 경력이 있는 후보자들은 모두 배제하는 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단에 서술된 단식 투쟁 등의 방법으로 저항했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 공천 탈락을 수용하고 당에 잔류하면서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때 민주당에서 이 사람과 추미애 만이 탄핵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손숙미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지역구를 서울에서 부천으로 옮긴 것은 동교동계 선배인 배기선 전 의원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2008년 공천에서 탈락한 다음부터 원미구 을에서 준비를 해 왔다고 한다. 


같은 해 김황식 국무총리로부터 1977년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하여 사과를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 때 코미디언 자니 윤(본명 윤종승)의 한국관광공사 사장 임명에 대해 나이를 문제삼았다가 논란이 되었다. 


2015년 위원장직을 사임하였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이 분당 사태를 맞게 되었고, 계파나 성향을 감안하면 국민의당을 택할 의원으로 지목됬으나, 동교동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가운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였다. 동교동계라 불리는 의원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잔류파 의원이었다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이사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4선에 성공하였다.


더민주 내 대표적인 대 국민의당 우호파로, 2017년부터 일관되게 협력 내지 합당을 주장해왔다.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진 현재는 민주평화당과 합당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더민주 지지자들의 반응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물론 정치공학적으로는 물론 좀더 당색이 비슷한 민평당 의원들과 연계하여 국정운영 동력에 힘을 싣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새민련 분열의 전례에 비추어 민평당 의원의 합류가 곧 자리보신과 영향력 다툼, 계파싸움에나 몰두하던 무능하고 한심한 과거의 민주당계로 퇴보하는 길에 불과할 거라고 보고 있다.


그가 당원들의 질타에도 지속적으로 통합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과거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때도 원래의 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선택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 때도 동교동계 대부분이 국민의당으로 떠났지만 역시 원래의 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남았던 경력이 있으며, 2008년에는 공천 배제를 당해 무소속 출마도 가능했으나 순응하고 총선에 불출마한 적도 있다. 


그의 행보를 보면 민주당계 정당에서 벌어지는 거듭된 분열과 탈당을 매우 기피하는 성향인 것으로 보이며, 예전부터 줄곧 야권통합을 주장해 온 인물이었다는 것이 보인다. 일단 본인의 확고한 소신이라 어쩔 수는 없지만 그만큼 비판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교육정책 전문가

대한민국 19대 국회 후반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1년 뒤 사임하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워장 직을 사임한 점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막이 다음과 같다. 본래 같은 당 소속이었던 박주선 의원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직을 하반기 국회 임기 2년을 1년씩 나누기로 하였다. 하반기 국회 초반기 설훈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후 박주선 의원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으나 박주선 의원은 탈당(...) 이 때문에 설훈 의원이 강하게 반발 하기도 했다.


독서교육을 중요시한다. 그 때문에 EBS에 출연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설훈 의원은 엄청난 다독가이다.




  • 기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병풍 문제를 제기하여 이회창의 낙선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나, 나중에 아들들의 신체검사를 한 결과 군 면제가 정당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7년 3월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입건되었는데 측정수치를 신빙할 수 없다며 인근 병원에서 채혈을 하는 등 시간끌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면허취소를 당했다. 


2014년 자니 윤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자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 드느냐"고 발언하여 노인 폄하 발언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한노인회가 크게 반발하며 해명할 것을 요구하자 막상 대한노인회를 방문하기는 했는데 "뭘 잘못했길래 사과를 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2015년에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발언으로 큰 반발을 샀고 새누리당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주는 바람에 문재인 당 대표를 난처하게 했다.


대한민국의 제19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안산시 상록구 갑 지역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적이 있다. 2016년 8월 22일에는 민주당의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돼 민주당의 인천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남춘 의원과 함께 추미애 지도부의 경기도 & 인천광역시 권역 대표 최고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해찬, 이종걸과 같이 차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대표적인 친문 핵심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 생애 정치입문 전 

1962년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6.25. 때 평양에서 월남하여 목포에 정착하였다. 목포에서 대성초등학교와 영흥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때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마산에서 직장생활하던 형에게 맡겨졌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경상남도 마산[3]에서 자랐다. 한 학년에 600여명이었던 고등학교에 호남 출신 학생은 그를 포함해 단 2명이었다. 원래 혼자인줄만 알았는데 2학년에 올라가보니 한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고 놀림을 받았던 그는 그때부터 지역감정이 정말 근거가 없으며 폐해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1981년 마산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85년에 고대법대를 졸업하였고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육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병역을 마친 뒤 1993년부터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때부터 안산에서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생활하며 안산에서 터를 닦았다. 법무법인 해마루는 노무현과 천정배가 1993년에 함께 설립했던 법무법인. 


1996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대외협력위원장, 노동위원회 대외협력부장, 언론위원회 위원장 등을 하며 민변의 대표 변호사로 떠올랐다. 민변에서 맡은 사건의 70~80%는 노동법이나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었다. 


변협인권위원으로 재직 중이던 2000년 봄,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의 형사고소를 대리하여, 살인죄 공소시효 완성 직전 주범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를 이끌어냈다. 이때 유가족에 대한 법원의 42억 원 배상판결이 나오자, 형식적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건일지라도 기관에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소멸시효이론이 정립되었다. 이로써 법조계에 '전해철'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 정치 입문

2002년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위기를 맞이하자, 전해철은 법조계 내에서 노무현 지지선언을 주도하였다. 이때 법률지원단을 만들고 이후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의 간사를 하면서 대선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2003년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을 때에는 문재인과 함께 노무현 변호 준비를 실질적으로 다 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결국 2004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2004년부터 청와대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어 1년 7개월 가량 민정수석을 지냈다. 당시 44세의 나이로, 전현직 통틀어 최연소 민정수석이다. 이렇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인사청문회 등의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해, 참여정부 역대 민정수석들 가운데 전해철 시절에 청문회 통과가 가장 잘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과정에서도 실무작업은 전해철이 총괄했다고 한다. 그때 유능한 전해철이 빈틈없이 추진하지 않았다면, 로스쿨 도입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후문이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산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런데 김영환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표를 갈라먹는 바람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후 법무법인 해마루의 대표 변호사가 되었고, 민주통합당 안산 상록구갑 지역위원장직도 계속 수행하였다. 


2009년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할 때에는 노무현의 많은 측근들이 무서워서 도망간 와중에도 문재인과 둘이서 실질적으로 변호 준비를 다 했다.




  • 제19대 국회의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60.76%의 득표율을 기록, 새누리당 박선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 후 문재인 대선 캠프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다. 당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내부 분란이 끊이지 않아 캠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와중에서도 그 많은 정책 다 정리하고 정책발표서 발간까지 완료했다. 당시 문재인의 공약 가운데 상당부분이 전해철의 손길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당내에서 친노 비선 실세 논란에 휘말려, 논란이 커지자 양정철, 이호철 등과 함께 대선 캠프에서 일괄 사퇴하였다. 겨우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긴 시점이었다. 


이렇듯 '비선 실세'로 욕을 먹었지만 권력을 휘두르긴커녕 국회에서 고생을 많이 한 편이었다. '면이 서는' 당직보다는 일하는 위원직을 주로 많이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BBK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정봉주 구명위원회 위원, 국회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특위 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위원, 민주당 대통령 기록물 열람위원, 국정원법 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이상 2013년), 새정치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위원,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2014~2015년)으로 활약하며 세월호 관련 입법을 모두 주도하였고, 결국 2014년 10월 세월호 관련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2015년 1월 세월호 배보상 특별법 등을 통과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외에 법사위에서는 야당 간사로서 여당의 공격에 맞서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다. 야당 간사에게는 관행상 마지막에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때마다 동료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정리하면서 핵심을 한 번 더 찌르는 마지막 공격수의 역할을 해냈다.


그가 법사위 야당 간사 시절 효과적으로 막아낸 법안이 바로 사시존치 법안이다. 2015년 19대 정기 국회 당시 총 6개의 사시존치 법안이 발의되어 있었으나(이 중 5개는 새누리당의 함진규, 노철래, 김용남, 김학용, 오신환 의원이, 나머지 1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조경태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서, 이후 조경태 의원 역시 자유한국당으로 옮겼다.) 


이들 법안이 법사위 회의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데 전해철 의원은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은 상임위 간사들에게 법안 심의 순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 여당 간사였던 이한성 의원은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으므로, 양당 간사 중 사시존치 법안 심의 순서를 뒤쪽으로 두기를 주장한 측은 전해철 의원으로 보는 게 보다 타당할 듯하다.  


사법시험 폐지문제와는 별도로, 선거 때의 공약이었던 반월 시화공단 스마트허브 조성을 꾸준히 추진해가고 있다. 그 외에도 수인선 완전지하화 계획에 성공하였고, 늘푸른아파트 소송 등 여러 소송 문제도 잘 해결하여,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상당히 비토하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내에서의 평판은 좋은 편이다. 


머니투데이가 평가한 제19대 국회의원 의정활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내 9위를 마크했다. 



  •  제20대 국회의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상록 갑에 출마해 1여 다야의 환경 속에서도 35,481표, 38.8%를 득표하며 새누리당 이화수 후보를 9,000표 차이로 따돌리며 비교적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국무조정실, 국무총리 비서실, 국가보훈처,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소관 기관으로 하고 금융정책수립 및 집행, 공정거래질서 유지, 국정 조정 및 규제 개혁, 국가유공자관련 보훈사업, 국민권익지키기, 경제 인문 사회분야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로 선임되었다.


2016년 8월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격차로 당선되었다. 권리당원 ARS 투표와 대의원 현장 투표를 합산한 결과, 63.3%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경쟁자였던 이언주 의원을 상대로 압승했다. 이언주 의원이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코어 지지층에서 인심을 잃고 전해철 의원이 노무현재단 운영위원을 맡은 경력으로 반사 이익을 톡톡히 본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고위원 제도를 당의 각 시도당 위원장들이 호선하는 권역별 대표위원제로 바꾸면서 전해철 의원은 경기도 & 인천 권역 대표위원으로서 당 최고위원이 됐다. 전해철 의원이 1년, 더민주 인천시당위원장인 박남춘 의원이 나머지 1년을 맡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민주당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김경수, 조국, 임종석, 조응천과 함께 전해철 의원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오히려 보수 야당에서 삼철이라고 공격 했던 것이 이득이 된 셈. 보수 야당에서 대통령 측근이라고 공언한 셈이니.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 - 6.13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정치권의 관심은 추미애 지도부의 뒤를 이을 민주당 제3기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될 것이냐로 모아졌다. 특히 제3기 지도부는 2020년 4월에 치러질 21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도부가 될 것이므로, 이번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을 통해 개인적인 인지도와 더불어 자타공인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사실을 나름 크게 알린 전 의원이 출마할 것이냐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당내 친문계 핵심 인사로 분류돼 왔던 최재성 의원과, 친노계의 좌장이라고 불리어왔던 이해찬 의원도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당내 친문 표가 분산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래서 최재성 의원과는 동반 출마하지 않기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그럼 둘 중 최재성이 양보할 것이냐, 전해철이 양보할 것이냐는 쪽으로 관심이 기울여졌는데, 7월 15일 전해철 의원이 전당대회에 불출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 정치 성향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들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이른바 '3철'로 불렸다. 이 세 사람 모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문 대통령의 휘하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 정치권 일선에서 활동하는 3철은 전해철 의원 한 명 뿐이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19대 대선이 끝난 뒤 해외로 아예 떠났고,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정치권을 떠나 여행사를 운영하는 걸로 알려져 있던 중, 2018년 6.13 지방선거에 가까워 와서는 부산시장 선거 출마설이 나왔지만,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이 세 사람은 나중에 전해철 의원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기로 한 뒤에 열었던 북 콘서트에서 오랜만에 다시 모이게 된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러 왔을 때의 사진을 보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김경수 의원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전해철 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각별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18대 대선 때 3철 논란이 잠깐 불거진 적 빼고는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덜 받았다. 특히 친노계를 시종일관 저격해 왔던 박근혜 정부 시절의 보수 언론들조차도 전 의원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한 적이 없었다. 조중동 등 주류 보수 언론이 연일 '친노 패권주의'를 외치며 부지런히 친노 & 친문 인사들을 저격하던 2015년 즈음을 돌이켜보면 문재인 당시 대표의 최측근 인사였는데도 언론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는 특이점이 있다. 


본인 스스로도 혹여나 보수 언론에게 빌미를 줄 일이 생길까봐 침묵을 지켰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뒤부터야 전해철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오래된 최측근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위에 상당히 길게 서술되어 있듯이 본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래서인지 적극적인 로스쿨 도입론자였다고 하며, 실제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로스쿨 도입에 가장 앞장섰다고 한다. 지난 제19대 국회 시절에는 법사위에서 야당 간사로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심의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 끌기를 하였다. 그 때문에 전직 서울변협회장이던 나승철이 그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덕수상고에 진학했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졸업 후 바로 은행에서 일해야 했었다. 1977년 병역판정 당시 고졸 신분과 중등도 근시를 사유로 보충역으로 판정받아 일과 함께 국제대학(서경대학교 전신) 야간학부를 진학했다. 같은 해 보충역으로 입대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소재 태평2동사무소에 배치, 공익근무요원 복무와 대학 학업을 병행했다.


야간학부를 다니며 주변에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고 관심이 생겨 직장과 병행하여 입법고시와 행정고시를 동시에 준비해서 1982년 제6회 입법고시와 제26회 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하는 영예를 얻었다. 입법고시 합격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시작했다. 행정고시 합격 후 총무처(현 행정안전부)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일했다. 


사무관으로 발령받은 뒤 주변에서 자기의 학력을 두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미시간 대학교 유학의 길에 올랐다고 한다.[1] 이후, 미시간 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고 경제부처 요직을 거쳤다. 참여정부에서는 국정마스터플랜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으며,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에서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정부 성향과 관계 없이 두루 인정받았다.




  • 아주대학교 15대 총장 

국무조정실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2015년 아주대학교 제15대 총장직을 맡았다. 기존에 교수들 사이에서 총장이 선출된 것에 비해 처음으로 추천에 의해 외부인사로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영입되었다. 본인도 고졸-야간대를 다니면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자수성가한 케이스로서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으며, 아주대학교에 여러 파격적인 시스템과 이벤트를 진행하였기에 학생들의 지지가 남다르고, 여러 언론에도 여러번 등장하였다. 


당장 네이버에 김동연이라고만 검색해도 취임식부터 총장재임시절 했던 업적들, 경제부총리로 내정되어 떠날때까지 좋은 기사가 수두룩하게 쌓여 나온다.


취임식 당시부터 대학서열, 화려한 캠퍼스 이런 것이 아닌 학생들의 꿈과 도전정신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하였고, 학교를 지금까지와 와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보겠다는 Ajou Greart Turning을 제시하고 제2의 창학, 유쾌한 반란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취임 이후에는 후술되겠지만 아래와 같은 이벤트들을 시행하였다. 



김동연 총장이 실시한 이벤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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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누리당에서 "양심적이고 맑은 사람"이라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기획재정부 장관, 즉 경제부총리로 임명되면서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학생들의 반응은 축하한다와 더 오래하길 바라셨는데 너무 안타깝다는 반응이 대세이다. 아주대학교 역사상 가장 지지를 많이 받은 총장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취임 첫 해 대동제에서 저녁 늦게 술에 취하신 채로 학생들은 아무도 모르는 교가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많은 학생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신 것은 덤




  •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 장악력 등의 점을 사서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용된다는 여러 하마평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을 지냈다는 점에서 불가능하지 않냐는 시각이 있었다.


2017년 5월 21일, 예상을 깨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인선 배경으로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 능력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이며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사령탑"이므로 "위기의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경제수장으로서 최적임자로 평가"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2017년 6월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었다.


2017년 7월 25일 열린 경제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눈이 붉게 충혈되고 입술에 물집이 잡힌 모습으로 참석하였다. 결막염에 걸렸다고. 피로가 누적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인지라 얼마나 장관을 갈아넣었으면 저렇게 되느냐는 반응이 꽤 있다. 취임 직후부터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토요일 업무관련 카톡 금지 지시 등을 내리며 휴식 시간을 보장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듯. 


8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제 개편과 예산 편성 때문에 매일 야근하는 세제실, 예산실 직원들에게는 9월 초 국회에 법안과 예산안을 제출한 뒤에 휴가를 꼭 가라고 당부했다. 본인부터 휴가 중에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데...


8월 9일, 성과미흡 부처 사업에 들어가는 11조 예산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진행 중인 사업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부처는 없는 만큼 기재부와 각 부처 사이의 기싸움이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정부 정책 집행을 위한 예산확보를 위해서는 거의 전 부처가 구조조정의 아픔을 함께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년 예산안을 물적 투자를 축소하고 복지와 일자리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 정책 수립면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동안과 달리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듯하다.


8월 14일, 경제 현안 간담회에서 북한 때문에 요동치는 금융 시장 불안에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할 경우 시장 안정화 정책을 취할 것 이냐는 질문에 급격한 변동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 전 까지는 시장에 맡겨두며 모니터링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24시간 국내 시장뿐 아니라 국제, 외한 시장 상황을 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롭게 발표한 건강보험 개편안을 언급하면서 관계부처와 재정당국 협의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기초생활보장 확충안에 대한 재원 대책이 마련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013년에 백혈병으로 아들이 사망했는데, 이때도 평소처럼 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 때문에 '아들이 죽어도 열심히 일하는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퍼졌다. 이에 대해 김동연은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서 도저히 일을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하며 워커홀릭이라고 불리는 게 칭찬이라고 해도 죽은 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8월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금리 문제는 금융통화위원회, 한국 은행의 고유 권한이며 정부 당국자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한국 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최근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가계 부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현 금리를 지적하면서, 채권 금리 급등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정기적 만날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정책 공조의 의지를 강조했다.


8월 17일, 세무관서장 회의에 참석해 한승희 국세청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경제 부총리는 국정 과제 수행을 위한 재정수입 확보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조세 정의 구현을 위해 지능적 탈세나 대기업 세금 탈루에 철저히 대응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역외탈세와 고액·상습체납에 대한 대응도 강화해 '성실납세가 최고의 절세(節稅)'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라고 당부 했다.


8월 23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 “법인세를 올렸을 때 기업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잘 유념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규제완화 등에 신경을 써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8월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며 회의 끝난 후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 앞 날을 밝게 보기 힘들다고 말하며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통신비 등 강제성 있는 생계비를 낮춰 실질적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도록 하는 대응 방안을 소개했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재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전담하는 '인구구조과'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 25일, 경제 정책 수립에 경제부총리가 소외됐다는 지적을 신경 쓴 듯,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부처 업무보고에서 "오랫동안 다닌 익숙한 길을 버리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데도 김 부총리 지휘 아래 잘 해주고 있어 매우 고맙다"고 말하며 김동연 부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올 하반기 핵심 정책으로 혁신 성장으로 꼽으며 그 일환으로 신 기술과 서비스에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규제 샌드박스' 를 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9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성장 경제정책 포럼에 참석해 우리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부총리는 이번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대와 상황에 패러다임이 전환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채식주의자 소설의 '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표현할까.' 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꼬집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격적인 종교인 과세 실행에 앞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며 우려를 달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종교 단체들은 납세는 당연한 의무라며 적극 협력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10월 15일, 한중 사드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국으로 날아가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을 성사 시키는 쾌거를 이루면서,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미 재무부를 설득해 환율 조작국 지정을 막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김 부총리가 워싱턴 출장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들과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등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인사들이 만나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악재들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데 주력 한 것이 IMF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 상향 조절 한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분석도 나와 그동안 존재감 없다는 지적을 불식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무디스는 북핵 도발 속에서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를 유지하는 등 해외 기관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경제 전략에 민간 기업 위주의 혁신 성장을 주요 축으로 설정하면서 혁신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김 부총리에 입지가 더욱 커졌다.


12월, 취임 6개월 맞았다. 취임 초기 장하성 실장, 김상조 위원장 등 흔히 말하는 정권 실세에게 이래저래 밀려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17년 경제 성장률 3% 달성이 확실시 되고 본 문서에서 적혀 있는 것처럼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 중국의 사드 보복과 통화스와프 연장 등 난제도 뛰어넘었고, 수출 호조로 경제상황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내년 예산안에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는 대신 일자리와 복지 등 인적 투자를 확대하는 소신을 확실히 담아내면서 서서히 경제부총리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18년 1월 1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부총리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라디오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출연해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이슈인 암호화폐, 최저임금 인상, 보유세 인상 관련에 대해서 답했고, 현재 논란 중인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지분을 19.91% 보유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서 관련한 질문에 답했다. 부총리님. 따라해보세요. 라디오는 뉴스공장. 시사는 김어준. 손석희보다 김어준. 부총리 : 이거 완전 독재... 반응이 좋았는지 이후 격월 간격으로 뉴스공장에 출연하고 있다.




18년 2월 9일, 캐나다에 이어 스위스와 통화 스와프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스위스는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기축통화국을 분류되며, 스위스가 기축통화국인 아닌 국가와 통화 스와프 체결은 맺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계약 성공의 공과 함께, 김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합의 사실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거시경제정책의 중추인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시장안정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5월 10일,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1년을 평가했다. 지난 1년간의 경제 성과로 ‘3%대 성장률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기업’에서 ‘사람’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경제 성과가 국민의 피부에 와닿지 않은 점을 반성했다. 특히 일자리의 경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나 혁신인력 양성 측면에서 갈 길이 많이 멀다고 본다”고 말했다.*


5월 17일, 썰전에 출연해 지난 1년간 경제부총리로 일하면서 느낀 소감과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아쉬운 점들에 대해 설명했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B%8F%99%EC%97%B0]




“2007년 대선 직전, 변호사 출신의 피부 깨끗한 동갑내기 총각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구애해 인천 앞바다에서 같이 사진을 찍으며 데이트를 하다가 며칠 만에 잠자리를 가졌는데 다음날 아침도 안 먹고 급히 나가더라”며 “그래서 농담조로 ‘처자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답이 없었고… 결국 유부남으로 밝혀졌다” 


뭐 하는 짓이냐. 이재명씨 자중자애하시라. 하늘이 다 알고 있다. 거짓으로 사는 게 좋으냐. 미안하고 부끄럽진 않으냐. 아들도 둘씩이나 있다면서 자중자애해라. 수치감도 모르고 고마운 것도 모르고 오직 오리발이다. 영화 〈내부자들〉 이경영과 너무 오버랩 되더라. 사기꾼이다.  [기사]김부선 잠자리한 남자가 이재명? ”간통법 없어졌는데 생까긴"




나중에 유부남인 줄 안 거처럼 말했지만 15개월을 만났다는데 본인도 외도인 줄 알고 응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의 외도만 공격하고 있지만 본인도 마찬가지 도덕적인 허물이 있을 수 있다. 아침도 안 먹고 급히 나가는 것과 처자식이 있는냐는 질문은 관련이 없는 걸로 보이며 본인은 유부남인 줄 몰랐다는 면죄부를 받기 위한 밑밥으로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다.




이재명이랑 15개월을 외로우니까 만났다” “2007년 12월 말부터 2009년 5월까지 꽤 오랫동안 이 아파트(‘난방열사’ 파동 당시 거주했던 성동구 옥수동 소재 아파트로 추정됨)에 드나들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나한테 인간적 사과 한마디 없이 15개월을 정말 단돈 10원도 안들이고 즐겼으면서 나는 자기를 두 차례나 보호해줬는데 허언증 환자라고 했다”며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할 거 같지 않다는 공포가 왔다. 그게 이재명과 저와의 사실이다. 실체다”


”자기가 살기 위해 이 불쌍한 김부선을 겁주고 협박해서 끝내 대통령 후보까지 하는데 이 바닥 민심이 장난이 아니다”라며 ”이걸 떠벌리기도 두렵고, 얘가 대통령이 되는 건 더 두렵다”



출처 : "이재명과 15개월 만났다"는 김부선의 육성 증언이 공개됐다



상황이 복잡한데 김부선은 의혹을 주장 > 의혹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의혹을 부인한 이후 다시 의혹을 주장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기사에서는 녹취시점을 2017년 3월로 특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진 '의혹을 부인하였다가 다시 뒤집은 입장표명이 유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해당 녹취가 당사자의 동의를 얻었는지를 알 수 없고 아직까지 김부선 본인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이렇다할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9일 오후3시경 김부선은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이 논란이 지선을 통해 다시 불거진 후 직접 그리고 공개적으로 하는 첫번째 입장표명이라 눈길을 끈다. 스캔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 하고 있진 않지만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는 쪽에서 주로 공격하는 혜경궁 김씨를 언급 한 걸로 봐서 이재명 후보와의 공방을 예고 하는듯 하다.


2018년 6월 10일 김부선은 kbs저녁뉴스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한편 이재명 후보측은 외도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2018년 6월 10일에는 이재명은 본인의 외도 의혹에 대해 100% 가짜 뉴스라며 반박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100%가짜뉴스] 김부선, 이용하는 정치공작세력들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도 김부선은 합당한 증거나 증언이 없이 계속 이재명과의 불륜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반응이 엇갈리는데 이재명 지지자들은 네거티브성 의혹일 뿐이며 김부선의 의혹이 사실이면 이재명을 고소/고발 하거나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희정 사태에서 봤듯이 김부선 본인이 공포를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


반대파들은 해당 의혹들이 설득력이 있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의혹에 휩싸인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후보직을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김부선 본인도 이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하여 사건의 증거들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2018년 5월 30일과 6월 2일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본인의 입장을 밝혔던것이 2018년 6월 9일 기사를 통해 공개 되었다. 김부선 최초 심경 고백 “어느 여배우가 이런 거짓말하겠나”


김부선 본인은 전화통화를 통해 현재 TV토론회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가 문제 제기를 하는 걸 보고 굉장히 통쾌했으며 김부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식적인 사람은 다 알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고, 배우의 길을 걷는 딸(이미소)의 장래 걱정과 소송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재명과의 관계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제시는 없어서 해당 논란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이번 입장 발표에서도 이재명의 스캔들이 맞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기대하던 이재명과 개인적인 연락을 한 문자들, 카톡 등 SNS 채팅 내용, 그것도 아니면 이재명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남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동 경로, 숙박 일정 등이 전혀 없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지금까지 9개월동안 옥수동에서 밀회를 했다고 언급했지만 의혹 제기자들도 이것조차도 확실한지 뒷받침해줄 증거가 없는 상황.


선거기간 동안 내내 이슈화가 됐으면서도 정작 나온 것은 이재명이 찍어줬다고 하는 사진 한장에 옥수동 9개월 밀회 주장이였다.


현재 증거라고 보기도 민망한 증거들이 그것도 소수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세하게 해당 의혹의 당사지이며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김부선 본인인데 김부선 본인이 줄곧 의혹만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정작 이를 제대로 설명을 하거나 증거를 제시하고 있질 않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김부선의 본인의 일부 발언들도 논란이 되었는데 이재명이 두렵다고 하지만 정작 이재명이 김부선에게 압박을 가했다든지 협박을 했다든지에 대한 증거 제시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김부선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김부선 본인이 관련 증거들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내놓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증거 제시도 거의 하지도 않으면서 김부선 자신은 거짓말쟁이나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달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김부선 본인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싶어도 그럴려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제시해야 하지 않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


당연히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증거를 내놓지 않는 것은 상대를 낙인찍기를 하고 여론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이재명이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는 것 + 지방선거로 인한 이슈화가 있어서 스캔들이 됐지만 보수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리지만 현재 나온 증거들로는 택도 없다고 보고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A%B9%80%EB%B6%80%EC%84%A0/%EB%85%BC%EB%9E%80%20%EB%B0%8F%20%EC%82%AC%EA%B1%B4%EC%82%AC%EA%B3%A0#s-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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