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범죄조직/영어로 해석하면 '섹스 지하드' 라고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소위 이슬람적인 정결의 상징인 차도르, 히잡이나 니캅도 안 쓰는 모든 세속주의 무슬림 여성, 비이슬람 여성 및 서구 여성도 포함하는 불신자 여성들은 문란하고 퇴폐적인 치녀로 본다. 


따라서 그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거나 심한 경우엔 아예 같은 인간 취급조차 하질 않아, 무슬리마가 아니므로 이슬람의 확산을 위해서 무슬림 남성이 나서서 자유롭게 죽이거나 성적 쾌락을 위해 즐기며 이용 착취하고, 밭에 이슬람의 씨를 뿌려 무슬림의 아이를 임신시켜 낳게 해줘야 하는 성노예이자 하등 존재로 보기까지 한다. 


또한 이슬람 세계관에서 비이슬람 지역은 이슬람 우위 지역과 대비되는 '전쟁의 지역'(Dar-al-harb)으로 분류되며, 비이슬람 지역의 비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 포교 지하드를 위한 전쟁 상태이므로 포로·성노예와 동급으로 취급해 무슬림 남자가 지하드를 위해서 비신자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착취해도 된다는 개막장 교리도 가지고 있는데,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떠나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사고방식은 말도 안되는 걸 알겠지만 문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무슬림들은 인간의 논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즉 무슬림들은 지하드 알 니카 논리를 가지고 이런 성범죄 행위를 이슬람 종교 레벨에서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이슬람 설교자들이 서구 사회를 까대는 주요한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성적 방종', '성범죄', '동성애', '소아성애'이다. 그런데 오히려 서구 기준으로 조사하면 성범죄자 및 성도착증 환자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집단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이다. 


극단주의 이슬람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라고 주장하며 부르카로 여성의 몸 전체를 둘러싸고 남성 동행 없이 통행을 금지시키며, 마네킹에게도 부르카를 씌우는 극단적인 제재를 했는데도 오히려 이 법의 집행자들에 의해 이러한 행태가 판을 치니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라 함과 동시에 성범죄의 근원은 보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성범죄자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비무슬림 지역으로 건너온 무슬림들이 영국 내에 파키스탄계 커뮤니티에서 무려 로더럼의 1,400명의 소녀들을 윤간하고 인신매매로 팔아넘겨 매춘을 시켜 임신시킨 성범죄를 저지른 집단이 발각된 것과 더해서, 독일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무슬림들이 현지 여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 여자 성노예


한국에서도 남아시아, 중동, 비서양계 이슬람 백인종들이 서양인을 사칭하여 한국 여인들을 농락하여 임신시켜 태어난 혼혈아 등 한국판 코피노 사건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일례로 비정상회담에서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유부남 무슬림 터키인이 총각 행세를 하며 여러 미혼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가, 물의를 빚고 하차한 바 있다. 


남성은 지하드를 통해 천국에 가서 72명의 처녀를 취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이게 불가능하니 전쟁터에 와서 지하디스트들의 아내가 되어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라는 논리인데, 논리 자체도 지금 현재 윗동네에서 많이 써먹던 논리고, 그 내용도 자원이며 아내가 되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성노예를 만드는 일이다. 


섹스 지하드 자체는 2013년에 튀니지 여성들이 시리아에 가서 반정부군에게 지하드랍시고 자발적으로 성접대를 한다며 튀니지 종교계에서 문제가 제기되었고, 아사드 일당이 반정부군의 정당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선동 소재로 사용한 사건이다. 근데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문제 제기를 한 작자들부터가 문제인지라 프로파간다에 도시전설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모든 시리아 반군이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다에쉬만큼은 진짜로 그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2015년부터 국가를 자칭하는 테러리스트 다에시는 여타 집단들보다 더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지하디스트들에 대한 성관계 제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홍보하며 때로는 세뇌한다. 여성들이 외로이 싸우는 지하드 전사들에게 성관계를 해주어야 이들의 사기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지하드에 공헌한다는 것.


이슬람 성범죄



7월에는 독신 남성 지하디스트를 위하여 결혼 전담 사무소를 열었다. 물론 그 실상은 무력으로 여성을 강탈하는 납치혼이다. 8월에는 신자르 대학살과 엮여 야지디 교도 여성들을 납치해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결혼시키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이 혼전순결을 강조하니 총칼을 앞세워 억지로 결혼을 시키며, 유부녀는 강제로 이혼시키고 이교도는 개종시킨 뒤 지하디스트와 결혼을 시키고는 새 아내니까 율법상 문제가 없다며 강간하는 눈가리고 아웅에 가깝다. 


애당초 상호 간의 동의조차 없거늘,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결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좀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칭 이맘들이 혼인신고와 이혼을 반복하여 형식적으로만 '결혼' 절차가 들어가는 사실상 윤간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다. 자칭 종교인이 멋대로 극단주의적 교리와 막장짓을 지하드랍시고 권장하고 있는 꼴이다.


또한, "전사들과 결혼하고 앞으로 전사가 될 아이를 낳게 하자"는 황당한 목적으로 서구 여성에게도 적극적으로 지하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가는 여성도 있다는 거다. 이런 여성들이 '섹스 지하드'라는, 실질적인 매춘을 쓴다는 뉴스도 있다. 


이런 황당한 주장들이 어떻게 먹히는지 예시를 들자면 프랑스에서 한 소녀를 상대로 지하드주의자가 최소 2년에 걸쳐 세뇌를 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공격적이고 강간을 당한다는 강박 관념을 주입하며,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이상화 하는 방법으로 세뇌를 하는 것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 용맹한 이슬람 전사와의 로맨스와 모험 등의 웃기지도 않는 떡밥...


이 여성들은 몸치장과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동년배 서구 여성들을 경멸하며, 종교적 열정으로 충만한 자신은 이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다에쉬에 지원한다고 한다나. 실제로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탄생 과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을 접하면서 이전의 자신을 서구 문명의 쾌락에 물들어 살던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로 여기다가, 이슬람 교리에 따른 엄격한 삶을 실천하면서 여기에서 '도덕적 성취감'을 얻는 것. 이런 선전으로 1,000명 중 1명씩만 낚아도 다에쉬는 남자건 여자건 꾸준히 새 인력을 보충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은 마약을 맞고 사실상의 성노예가 되어 지하디스트들의 변태적인 성착취에 시달리게 된다. 


다에시 조직원들은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아내들과 어린 성노예들을 성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극도로 보수주의적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다에쉬의 이념과는 달리, 실제로 많은 수의 다에시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급여의 상당치를 자신들이 납치한 어린 아내들을 위한 변태적인 의상을 구입하는데 지출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물론 이러한 결혼 후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들은 잡히면 그 즉시 돌로 쳐 죽이는 투석형에 처해진다. 


의사 이스마일 오스만(Dr. Ismail Othman)과 그 아들 왈리드(Walid)의 사례도 있다. 


이 사람은 모술에서 거주하며 후세인과 바트당의 열성 지지자였다. 바트당 이라크군 군의관이었으며, 말리키 정권에 대한 수니파의 공격도 지지하고, 모술 점령에 참여한 바트당 구 이라크군 장교와도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반면 와하비였던 아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뒤로 모술 지부에 가담했으며, 자기 아버지에게도 가담하여 지역 유지가 되라고 종용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름 아버지를 고위 간부로 만들고 싶은 사이비 종교인의 비뚤어진 효심이겠지만 9월 14일, 왈리드가 한 외국인 지하디스트 친구인 오마르(Omar)와 함께 찾아와서 "시아파 불신자들과 싸우는 영웅들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을 성상납해야 한다"는 패륜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하고 한술 더 떠서 "유부녀를 지하디스트들에게 바칠 수 없으니 어머니와 이혼하라"는 패드립까지 거리낌 없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트만의 딸은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이스마일은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지만 이미 아들은 구제불능. 이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아내와 딸을 지하로 피신시키고 자기 아들과 그의 친구를 쏴 죽였다. 


그 후, 그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망명했고, 이 경우는 진짜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법원은 변호사의 요청을 거부하고 1급 살인죄를 적용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아마도 시아파 정권에 대한 테러와 봉기를 옹호하던 골수 바트당 지지자였다는 점이 문제로 작용한 듯.


그나마 이 '섹스 지하드' 라는 나름의 절차도 "무슬리마"에게 한정된 것. 다에쉬는 자신들의 홍보지 다비크에서 그야말로 대놓고 '이교도는 남자는 노예로 삼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참고로 이들의 이론은 '아내'는 4명으로 제약되지만, 성노예와 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는 아예 기독교인과 야지디인 여성들을 공적으로 가격을 매겨 성노예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하드 알 니카


더 정신 나간 것은 이게 나이가 어릴수록 가격이 올라가며 나이에 하한선조차도 존재하지 않아, 0~9세 여아들이 172$ 가량에 성노예로 팔려간다는 것. 물론 주 구매층은 종교를 빙자해 자신의 정신병을 합리화하는 소아성애자와 성도착증, 지배 성향의 성욕을 가진 막장 변태 작자들.


10월 말, 노예가 될 뻔하다 가까스로 탈출한 D.A.라는 약명의 15살 야지디 소녀가 인터뷰에 응하였다. 


조카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 중, 노예사냥꾼으로 추정되는 다에시 군벌들에게 포위되어 남녀로 흩어지고 팔려나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각각 19살, 12살의 자매들과 함께 능욕당해 헤어졌다고 한다. 


시리아의 알레포까지 끌려와 수많은 인질들과 함께 노예로 팔려나가길 기다리는 과정에서 본인을 포함한 5명의 또다른 여자들과 창문 사이로 탈출 시도를 하여 가까스로 건물 밖으로 나왔고, 운 좋게도 쿠르드인과 접촉하여 오빠와의 통화가 닿았고 이를 통해 탈출을 위한 몸값 거래를 성사받아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혹자에 따르면 나머지 둘까지 추가로 구출하던 쿠르드 남성은 돈을 원했던 것 같다고. 아니나 다를까, 같이 탈출한 야지디인 경찰의 딸인 19살 소녀에게도 역시 몸값 15,000달러를 받아내는 등,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이용해 영리를 추구하는 구조를 빙자한 몸값사냥꾼이 성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봤자 다에쉬 군벌들은 더하면 더했다. 


D.A.가 끌려갔던 행렬 중엔 11살쯤 되는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일부 인질들에겐 심지어 윤간을 포함한 성적 학대도 만연하였으며, 몇몇이 탈출을 시도하던 과정 중 발각되어 군벌들로부터 상습적인 구타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강제결혼을 걱정하여 자살을 고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지 한 명의 주장에 의하면 해당 인터뷰 주인공 일행의 경우는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여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이들의 부모와 남은 자매들은 여전히 다에시 세력에 억류 중인 걸로 추정된다. 


야지디교도들은 악마숭배자 취급 당하여 민간인조차도 적지 않게 살해당하는데, 그 중에서도 D.A.의 아버지를 포함한 남성과 소년들의 목숨은 노예나 병사로 팔려나갔을 경우를 감안해도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노예시장' 동영상도 가관인데, '노예상'과 '고객'들이 마치 장날이라도 되는 마냥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서로 제시 가격을 올리는 낙찰 경쟁부터 시작해, '매물'이 벽안이면 돈을 더 쳐주겠다거나, 이빨이 빠져있는지를 확인하여 진짜로 15살인지 따져보겠다는 모습이나,심지어 글록 한 자루에 소녀를 '물물교환'을 하겠다는 등, 단순히 인간말종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형용하기 힘든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고대의 총력적인 약탈 전쟁이나 중세-근현대 전쟁의 군소 약탈 범죄로 나올 법한 수준을 뛰어넘어서 야지디, 크리스천 같은 이교도들을 대대적으로 죽이거나 매매하는 건 물론 심지어 같은 수니파까지 노예로 취급하는, 인류 역사에 유래 없을 희대의 약탈 군벌이 지구에 건재하는 이상 다음과 같은 비극들은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계속 반복될지도 모른다.


2014년 12월 4일, 지하드 및 테러리즘 감시단체인 중동보도연구기관(MEMRI)에서는 다에시의 출판 기능을 맡은 알 힘마 도서관(Al-Himma Library)에서 배포한, 여성 노예에 대한 문답을 담은 전단지를 입수하여 영어로 번역해 공개하였다. 


이 전단의 내용에 따르면, 포로로 잡은 이교도 여성을 노예로 만들고, 완전히 재산으로 취급하여 14살이 지난 아이는 부모에게 떼어내 사고 팔 수 있고, 증여하거나 상속하고 소유자가 허가한다면 타인의 노예와 성관계가 가능하며, 징계 목적으로 얼굴을 제외한 신체 부위를 때리는 것이 모두 허용된다.


이제는 쿠란 암송 대회를 시행해서 우승자에게는 성노예를 상품으로 제공하는 짓거리까지 하고 있다. 하는 짓거리가 이미 악마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기사. 참고로 이 짓거리를 하는 집단은 이슬람권 내에서 다에시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점령지에서 에이즈 등의 성병과 악성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이외의 것은 다 말살하는 바람에 의료 지원은 커녕 전문인력과 물자조차 부족하고, 지하디스트들의 무분별한 성적 방종 때문에 성병이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위에도 쓰여져 있지만 이미 자발적인 지하드 알-니카는 약과에다 성노예와의 난교는 기본이고, 근친상간에 남아 강간에 수간을 한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상황인데, 보통 이슬람을 포함한 일반적인 종교적 시각에서 봤을 때조차도 가히 소돔과 고모라의 재림이라고 봐도 될 상황. 


물론 이들의 피해자들은 자의가 아니라 이들에게 포로로 잡히거나 납치당해 약탈당하는 상황이라 소돔하고의 비교도 실례일 정도.


물론 이 악당들이 성병에 걸려 고통받다가 죽는 것은 마땅히 인과응보를 받는 것이지만, 이 사악한 테러리스트가 토벌되고 난 뒤에도 피해자들이 이들이 옮긴 성병에도 고통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 성범죄 성노예

예맨 난민이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예맨, 무슬림? 도대체 뭐야? 한국인에겐 너무나 생소한 국가이고 종교입니다.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예맨...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 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부터 부유한 예맨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위낙에 중간에서 빼돌리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축복받은 아라비아의 칭호는 한낱 동쪽 어촌들이었던 곳들에게 물려주고 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예맨 으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주 고대에는 사바 왕국이 존재했으며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이후에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지고 한동안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되는 등의 역사를 겪었다. 7세기에 예맨은 이슬람화가 이루어졌으며, 1517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 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


1918년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 예멘이 먼저 독립했다. 북 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은데,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참여하는 아랍 연합 공화국에 준가맹했다가 1961년에 예맨은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살레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


한편 남 예멘은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후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아덴은 제외),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독립하여 공산화되었다.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2년 전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1달도 안 되어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1973년과 1979년에도 전쟁이 일어났다.한국으로 치면 한국 전쟁이 3번이나 터진 셈.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둘 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 좋은 개도국이었던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 결국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하에 1990년 5월 남북 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그냥 문서에 사인하고 '통합 좋지~' 하는 분위기가 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루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력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을 했지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내전이 발발하면서 북부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남부는 정부군이 장악한다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활개치는 한편,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무장봉기를 일으킨 상황. 여기에 외세의 개입(사우디는 정부군,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UAE)은 덤.


이런 배경 탓인지 냉전 시절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북한학이나 통일 관련 정치외교학 쪽에서는 베트남 분단이나 독일 분단에 비해 남북 분단의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적다. 다만 통일 후 내전이나 갈등 폭발 가능성 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예멘은 국민의 38%가 절대빈곤에 처한, 아랍 국가 중 최빈국가이다. 


이는 내전과 테러리스트들로 인한 치안 불안도 있고, 석유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족장들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쓰이는 까트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어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보다 압도적으로 잘 산다는 점과 많은 예멘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잘사는 나라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감을 생각하면 사실 까트만이 예멘이 가난한 원인은 아니다.

또한 통일을 하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 경제 지원을 해서 둘의 경제가 대등한 수준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하지만 예멘은 통일만 했다뿐이지 그런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아 빈부의 상황이 기형적이었고(공산주의국가였던 남예멘만 기형적으로 못살았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경제는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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