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장자연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의경 내부부조리를 척결한 일등 공신.

그러나 편향된 이념으로 경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부정부패로 자신도 감옥에 들어간 범죄자.


대한민국의 전직 경찰관. 1955년 5월 15일 생.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16대 경찰청장을 지냈다. 전임자는 강희락, 후임자는 김기용이다. 청장 재직 당시 전의경의 내무부조리를 척결해 공을 인정받았으나, 정치적 행보와 후술된 노무현 대통령 명예훼손 건으로 논란을 낳아 징역을 살았다. 게다가 퇴임 이후엔 뇌물죄 혐의로 처벌까지 받으면서 결국 불명예 인사가 되었다.



  • 생애, 경찰 경력

1955년 5월 15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정치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1981년 제15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 기획예산담당관실 외무사무관시보로 근무했고,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기본병과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예비역 중위. 장교로 군복무를 한 이유는, 조현오는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5급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미필자가 5급 공무원이 되면 학위와 상관 없이 무조건 장교로 군대에 가게 된다.


그 후 외무부 국제법규과, 영국 연수(케임브리지 대학교 법학과), 외무부 동구과(동유럽과) 등을 거쳐서 국토통일원 통일정책실에서 근무했다. 1990년에는 고시 출신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입직해서 바로 경정이 되었다.


1998년에 총경으로 승진했고 경남지방경찰청 경비과장, 울산남부경찰서장,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서울 종암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2005년에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외사관리관, 감사관으로 근무했고 2006년에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청 경비국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당시에는 치안정감이 아니라 치안감이 보임됐다. 


이 과정에서 인사청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9년에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이 때 유명했던 사건이 쌍용자동차 노조 시위진압이었다. 그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2010년 8월 치안총감으로 승진해 경찰청장이 되었다.



  • '부패 경찰 척결'의 사명!

09년 경기경찰청장 임기 시절부터 내건 슬로건은 '부패 경찰 척결'로, 청장 직속TF를 설립하여 부패ㆍ비리에 연루된 경찰관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파면 혹은 해임 등의 조치를 행했다. 사실 그보다 유명한 것은 성과주의의 표명으로, 이에 대해서 양천서 고문사건의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되었다. 이때문에 인사청문회장에서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


조현오 청장의 정책에 대한 반론으로, 기존 경찰평가에도 실적평가 기준에 의존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 조현오 청장은 독단적으로 자기 관할에 대해서 이중평가 기준으로 적용한 것에, 일선 경찰들은 죽어나갔다라는 논란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서장 재직시기부터 수사비도 실적에 따라서 분배라는 독단적인 정책도 시행했다는 논란도 있다.



  •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말들

경찰청장 선임 후에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임 당시 양천경찰서에서 발생한 고문 사건이 조청장의 실적주의 탓에 일어났다는 논란이 있었고, 2010년 3월에 경찰관 기동대 특강에서 조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명색이 고위 공직자란 사람이 공개적인 특강 자리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자기 확신범적으로 저런 소리를 대놓고 했으니...  


당시 야당은 청문회 자체를 거부하려고 했고, 여당에서도 근거 없는 소리라면 빨리 사과하라는 비판이 나왔고, 심지어 조갑제닷컴에서도 "증거가 있으면 내놓고, 증거 못 내놓을 소리라면 그냥 사퇴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인사청문회 당시에 이를 부정하지 않아 2012년 5월에 차명계좌 발언 관련 수사가 들어갔는데,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나온 증거라는 것이 2013년 4월에 언급된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임경묵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은커녕 조현오와 단둘이 만난 적도 없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그외에 언급된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 역시 그런 말 한 적 없고 오히려 그런 거 없다고 했다면서 "조현오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또한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해서 "유족들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라고 비판하면서 또 한 비판을 받았다. 그외에 자잘한 것으로는 위장전입 문제가 나왔고, 경비구장시절 모친상 부조금으로 1억 7,000만원이 들어온 것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청문회 통과가 어려운 인물로 손꼽혔던 인물.



  • 유일한 업적, 내부부조리 해결

경찰청장에 취임한 지 5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23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307 전경대에서 6명의 이경들이 집단 탈영 후 PC방에서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가혹행위를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접한 조 청장은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말로 엄청난 분노를 에둘러 표현했으며, 그 자리에서 "307 전경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307 전경대는 해체되었으며, 이 여파로 전국 지방청이 실태조사를 벌여 가혹행위 전경들과 이를 방조한 경찰관들까지 줄줄이 사법처리되었다. 이렇듯 조 청장의 내무부조리 근절 방법은 꽤나 무시무시했는데, 사고가 터진 부대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부대해체, 해당 부대 지휘관들은 무조건 해직 후 구속수사가 원칙이었다. 사실 부대 운영을 책임지는 간부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리는 것은, 내무부조리를 해결하는 방안 중에서도 정석이다. 


덕분에 전의경에 만연하던 내무부조리를 대거 뿌리 뽑았다. 조현오가 모두에게 인정받은 업적이 바로 저것이다. 


지금은 의경 경쟁률이 수십대 일이라서 체감하기 어렵지만, 2010년만 해도 의경지원자가 미달인 곳이 넘쳐났다. 이때 전의경은 해병대와 육군보다 부조리가 심각했기 때문에, 이것을 척결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의경의 경쟁률이 이렇게 올라간 까닭은 바로, 조현오가 내무부조리를 뿌리 뽑고, 근무환경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대책이 많았는데도 내무부조리가 사라지지 않는 대한민국 육군, 아예 근절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해병대는 반드시 전의경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

 

MB정권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경찰청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꾸준히 언급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사건부터가 MB정권하에서 경찰청장이 되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12년 4월, 수원 토막 살인 사건시 112신고센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장직에서 사임하였다.



  • 퇴임 후, 계속 드러나는 범죄

사임 이후에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야당 중진들과 관련해서 말싸움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총선출마는 없었다. 총선출마를 준비했다는 평은 많았지만, 여당 쪽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평이 많아서 주저앉혔다는 평이 많다.


그리고 상술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진행된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으나, 2013년 2월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결국 법정 구속되었고, 2014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5년 8월 11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음이 보도되었다. 혐의 내용은 청장 임기 중인 2010년 8월 집무실에서 청탁 목적의 금품수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치러진 2016년 2월 17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뇌물 제공자 진술에 따르면 5만원권 지폐로 5천만원을 제공했다고 하나, 이땐 5만원권 발행 이전이라고. 하지만 1년 후인 2017년 2월 16일 항소심에선 "정황이 분명하고 친분관계도 인정된다"며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3천만원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PD수첩 고 장자연 특집 예고편에 조선일보 측이 자신에게 협박과 압력을 가했다는 폭로를 터뜨리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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