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앞에서는 애국을 외치며, 뒤에서는 사익을 추구했던 가짜 보수의 표본. 골수 박근혜 신봉자이자 시대와 동떨어진 색깔론, 그리고 개인감정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던 범죄자.


논란 1. 강남구 분리독립 발언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박원순과는 해당 임기 내에서는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에 박원순이 재선된 후로는 강남구 분리독립 발언 등 여러가지 일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큰 갈등을 빚고 있다.


2015년 강남구의회 회의 도중 강남구에 편파적인 덧글들만 가져와 자료를 배포하려고[2] 하자 의장이 이를 제지했고 이에 "똑바로 해라, 강남구민 아니냐?" 등의 말을 해 이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논란 2. 민방위 대원에게 막말 

2015년 11월 13일 민방위 교육 도중 한전부지에 관한 사항등 서울시에 대해 비판을 하자 한 민방위 대원이 이에 항의했는데, 그러자 "듣기 싫으면 나가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에 민방위 대원이 "민방위 교육을 하라" 며 항의하자 "그 분 나가세요.", "귀를 막으세요"라고 하는 등 말싸움 끝에 민방위 훈련이 잠시 파행되는 일이 있었다. 


2016년 7월 20일 다시 한 번 민방위 교육도중 사드배치 찬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배치에 대한 찬성의견을 보이며 반대세력에 안보적 위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민방위 교육에 관련된 안보 외 강남구에 새로운 고속철도가 생겼다며 개인치적을 알리는 발언은 했다. 이에 반발한 민방위 교육자이자 래퍼 김디지가 '그만하라, 민방위 교육과는 상관 없는 내용이다'라고 하였으나 '귀 막고 있으라'라고 대꾸하였다고 한다.


논란 3. 강남스타일 말춤 손목 동상 논란 

싸이도 손사래 친 ‘말춤 손목 동상’이 만들어진 까닭은? 


2016년 4월 예산 4억여원을 들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에 세웠던 높이 5.3m, 폭 8.3m 청동소재의 대형 동상인 ‘강남스타일 말춤 손목’ 동상에 대해 가수 싸이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상에 대해 “과하다”는 반응을 내놓자, 이 동상 설치 전말을 알고 있는 여선웅 강남구의원이 동상제작 뒷이야기를 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선웅 강남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싸이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면서 “당시 싸이 쪽에서 동상 제작에 부정적이어서 말춤 동상을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뒷이야기를 올렸다. 


여 의원은 “이제야 나왔네요. 속사정은 더 황당합니다. 싸이가 본인 동상을 반대하니 의미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싸이 말춤 동상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었죠. 정상적이면 포기해야 되는데 기어코 손목이라도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저 손목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상징하게 되는 황당한 일이 된 것입니다. 대부분 손목만 있으니 무섭다고 했죠. 주인공도, 강남구의회도, 주민도 반대했는데 신연희 구청장이 밀어붙였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라며 글을 마쳤다.


동상의 모양이 묘하게 수갑 찬 손 모양과 비슷하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미래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동상이다"라는 것이 해당 기사 댓글에 있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수갑차고 감방가게 생겼다.




논란 4. 김영란법 수사대상 1호 

2016년 9월 28일 관내 노인정 회장들을 접대한 혐의로 경찰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수사대상 1호가 됐다. 이에 강남구 관계자는 "해당 행사는 올해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 연례로 해 온 행사"라며 "노인 1명 당 점심값 예산이 2만2000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 5. 박근혜 파면 후 선거법 위반 논란 

박근혜가 파면된 후 2017년 3월 12일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할 때 신 구청장이 마중을 나간데 이어 14일에는 화환을 보냈는데, 이로 인해 선거관리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논란 6. 노부부 특혜지원 논란 

2017년 3월 22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당시 진돗개를 선물했던 노부부 일가에게 구의 관광행정력을 동원하여 특혜를 지원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있음이 보도되었다.  


해당 노부부는 강남구 관내에서 아트홀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의 딸은 해당 공연장에서 창작발레 공연 '어허둥둥 내사랑 춘향'을 총연출하고 있는데, 강남구청이 해당 공연에 대해 연예기획사나 영화상영관을 통한 홍보 추진, 여행사와 협약을 맺고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여행상품 마케팅을 추진해 해당 노부부 일가에 특혜성 지원을 하도록 신연희 구청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논란 7.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 

사건번호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고합810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후 대선 정국에서 단톡방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놈현·문죄인의 엄청난 비자금" 등의 글을 올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검찰은 신연희를 비롯한 단톡방 멤버들이 조직적으로 문재인에 대한 비방글을 작성 및 유포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신연희의 휴대폰 2개를 압수하여 분석하였다.


2017년 4월 소환 조사가 임박했다는 뉴스가 떴다. 해당 단톡방 글을 전직 국정원 직원이 만들었고 이를 신 구청장이 퍼나르기를 했다는 내용이 특종으로 뜨면서 심층적인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이와 함께 신연희 구청장의 배임/횡령건도 경찰이 내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2017년 4월 11일에 예정된 검찰조사에서 신연희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6월 21일에 불구속 기소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게 되었다. 


8월 9일 재판에 넘겨졌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증거인멸 현장에 나타난 것이 CCTV에 포착되면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적발되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 증거인멸 직접 지시하고 서명까지 7월 21일 김청호 강남구청 전산정보과장(5급)이 서버실에서 전산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던 것은 신 구청장이 직접 문서를 써 자료삭제를 지시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전산자료 증거 인멸한 강남구청 직원 구속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전산정보과 자료를 삭제한 혐의(증거인멸)를 받는 구청 직원 A씨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전날 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10월 17일에 진행된 1차 공판에서 신연희는 범행동기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문 대통령이 앞장섰기 때문이며, 탄핵 정국때 일어난 촛불집회와 부당한 방법으로 끌어내린 사람들이 미웠다’고 밝혔다. 


결국 12월 4일 검사측은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논란  8. 현수막 철거 논란 

‘문 대통령 현수막’철거했다 다시 내 건 강남구청


강남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 현수막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 현수막을 7시간 만에 철거했다가 더불어민주당 전현희(서울 강남을) 의원 등의 항의를 받고 현수막을 다시 설치하는 일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실과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낮 12시쯤 강남 수서역 사거리에 이들 현수막을 설치했다. 현직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기념하고, 전직 대통령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서울 전역에 개시한 것이다.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님의 취임 100일을 기념과 김대중 대통령님의 추모 현수막이 어제 오전 강남에 걸렸다. 그러나 하루도 못 가 어제 저녁 강남구청에 의해 철거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 의원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불과 7시간도 안 돼 해당 현수막들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전 의원실 측은 “동일한 장소에 설치된 강남구 홍보 현수막은 몇 달째 철거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통상적인 정책 활동에 관한 현수막은 설치 직후, 계속해서 곧바로 철거해와 행정적 일관성이 없고, 정치 편향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 관계자는 “특별히 철거해달라는 민원도 없었고 정당 현수막은 통상 유예를 하고는 했다. 광고물 정비팀 인사가 14일에 났는데 유예 등이 숙지가 안 돼서 철거한 것 같다”고 밝혔다.


논란 9. 일가족 비리 의혹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의 일가족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매장이 현대백화점 계열사에 특혜 입점한 정황이 새롭게 포착돼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신 구청장의 제부 A씨가 대표로 있었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매장이 현대백화점 계열인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에 수년간 특혜입점 한 의혹을 내사 중이다. 경찰은 수개월 전 이 같은 내용의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A씨의 베이커리 매장이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에 가맹점으로 입점하는 과정에 신 구청장이 영향력을 행사 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외식업종을 포함해 입점업체 선정 시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브랜드 본사와 직영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현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에 입점한 31개 외식업 브랜드 매장 가운데 29개 매장이 본사 직영점이었고, 가맹점은 2곳에 불과했다. 가맹점 2곳은 각각 전국에 매장 290여개, 37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프랜차이즈다.



반면, A씨의 베이커리는 전국에 매장 6개를 운영하고 있는 영세 프랜차이즈인데다 업계 인지도도 높지 않아 가맹점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 의문이 일고 있다. 특히 A씨의 베이커리 매장은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1층 전면부 노른자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A씨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이 문을 연 2015년 2월부터 지난 7월31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가맹점을 운영하다 본사에 매장을 처분했다. 이에 따라 이 베이커리 매장은 현재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찰은 강남구청과 현대백화점과의 '특수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사는 1985년 개점부터 현재까지 30년이 넘도록 강남구청 소유의 지상주차장을 사실상 전용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특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외식업종 입점은 특정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것이지 본사 직영인지, 가맹점인지는 중요한 팩트가 아니다"라며 "특혜는 없었다"고 말했다.


논란 10. 횡령과 취업청탁 그리고 증거인멸교사 사건 

신연희는 2010년 7월~2015년 10월 강남구청 각 부서에 지급되는 격려금과 포상금 등을 총무팀장을 통해 현금화한 뒤 비서실장으로부터 전달받아 총 9300만 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업무상횡령)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횡령 자금을 동문회비나 당비, 지인 경조사비, 지역인사 명절 선물비, 정치인 후원회비, 화장품 비용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또 2012년 10월 강남구청이 요양병원 운영을 위탁한 A 재단 대표에게 박 씨를 취업시켜 달라고 강요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전술한 신연희 구청장의 각종 의혹을 조사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며, 2018년 2월 28일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 강요 혐의를 받는 신연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3월 6일, 신연희는 구속영장 발부에 불복해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3월 22일, 검찰은 신연희를 횡령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하였다.


또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추가로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했다. 신연희 구청장은 2017년 7월 20∼21일 자신에 대한 업무상 횡령 혐의에 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자 자신의 부하직원인 강남구청 과장에게 압수수색에 대비하여 구청 전산 서버의 업무추진비에 관련된 데이터 자료들 지우도록 지시한 혐의이다. 


현재 이를 시행한 강남구청 과장은 증거 인멸 혐의로 구속 조사중이였으며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이다. 때문에 이미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신 구청장은 기존 사건에 강남구청 과장이 연관된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추가하여 재판을 받게 될 예정이다.


'횡령·증거인멸교사' 신연희, 징역 3년

2018년 8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현덕 판사는 업무상횡령·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 전 구청장에게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출처 : 신연희/사건사고 및 논란]


검찰 출신의 법마(法魔) 


유신정권 때부터 박근혜정부까지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신헌법 설계, 공안사건 조작, 여론 공작, 지역감정 조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비롯한 온갖 정치적 비행을 저질렀으며, 위기 때마다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난국을 돌파하였다...


1939년 11월 25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거제도) 장목면에서 아버지 김석윤과 어머니 강신방 사이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외포초등학교, 마산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부친은 태평양 전쟁, 6.25 전쟁에서 활약한 군인이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서민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어린 시절을 가난했다고 묘사하듯이, 김기춘도 집안이 가난하여 가정교사 일을 하면서 고학했다고 한다.


가정환경이나 출신이 어떻든 아무튼 그는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195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서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거기다 재학시절 5.16 군사정변에 공을 세운 부친 덕에 5.16 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아서 학업을 했고, 입대 전 합격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 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친다. 군복무 시절 대학원에 재학했고, 대위로 전역하였다.


이후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하여, 광주지검 근무 시절 지금의 부인 박화자와 결혼했다. 이어 부산지검,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고 대구고검의 검사장을 지냈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그는 출세지향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기질을 보였는데, 


심재륜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검사 때 법무부 장관 신직수의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집 앞 언덕을 오르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출세를 위해 상관을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유신헌법 저작


체육관 선거로 국민의 참정권을 차단하는 새 헌법을 만들려고 했고, 신참 검사이던 김기춘에게 개헌을 맡겼다. 이미 김기춘이 만든 뼈대를 헌법학자들이 손도 대지 못하도록 했다고. 즉, 김기춘이 유신 헌법을 만든 셈이다. 


박정희는 김기춘을 김똘똘이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전해진다.


법률비서관 시절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부터 최태민-박근혜와 김기춘이 밀착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즉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이런 부적절한 관계를 근절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편승하여 출세를 도모한 것.


제5공화국 시절, 70년대에는 엄청 잘나갔지만, 80년대 들어서는 된통 깨졌다. 그것은 김기춘이 중정에서 근무하던 1970년대 후반, 대통령의 명령으로 보안사를 크게 손보았다가 보안사를 권력기반으로 하는 전두환 일당, 즉,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보복을 받기 때문이다.


그 발단은 1977년 20사단 예하 62연대 1대대장 월북 사건이었다. 보안대 관계자는 유운학에게 진급심사에 관련된 뇌물을 요구했으나, FM적인 성격의 유운학은 이를 거부헀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보안대 소속 장교들이 유운학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보안대가 전방 대대장 유운학 중령을 과도하게 갈구는 바람에 유 중령이 참다못해 월북한 사건이다. 


6.25 전쟁 이후 최고 계급의 현역 군인이 월북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진상을 듣고 격노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으로 있던 김기춘에게 그 처리를 지시하였다.


김기춘은 보안사 조직 축소안을 마련했고, 관련된 보안사-보안대 간부들을 여럿 중정에 끌고와서 혼을 내주기도 했다. 이 사건은 명백하게 보안사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사실 김기춘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재국가에서 필연적인 정보기관 사이의 암투 때문에 김기춘은 보안사 간부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가 중앙정보부를 접수했을 때, 중정에 들이닥친 보안사의 요원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이 "김기춘 어딨어!"였다. 하지만 김기춘은 몇 달 전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전직한 상태여서 보안사로 체포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김기춘이 만약 중앙정보부에 계속 있었다면 보복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운빨은 기가 막히게 터진다.


그나마 검찰에서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한때 검찰에서 부하로 두고 있었던 노태우의 처조카 박철언에게 줄을 댔고, 당시 보안사 비서실장이던 대령 허화평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편지를 써 보냈기 때문다.  



김기춘은 1980년 대검찰청 특수1과장·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역임했고, 1981년에는 출입국관리국장을 지내다가 12월 17일 검찰국장으로 임명된다. 이후 김기춘은 법무연수원 검찰연수부장으로 좌천된다. 그나마 법무연수원 좌천도, 박철언이 무마해줘서 옷을 벗지 않고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찾아오는 손님이나 이전에는 여럿 거느렸던 부하들도 거의 없이 밥도 항상 혼자 먹는 등 갖은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검찰의 고위직은 당시 안기부 요원들에 의해 근황이 일거수일투족 체크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기피인물이라는 뜻이다. 즉, 김기춘과 얽히면 5공 정권의 요주의 인물이 된다는 뜻이었다. 유신시절 무소불위를 저지르던 과거를 감안하면 몰락의 극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한직에 있을 때도 육영재단 등, 최태민-박근혜의 전횡에 개입했다고 한다. 


최태민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5공 시절의 1980년대 남매-자매간 갖은 분쟁때문에 바람잘날이 없던 육영재단 일에 현직 검사였던 김기춘이 최태민-박근혜를 위해서 자주 나타났다던 증언이 나왔다.


어쨌든, 공안검사들의 전성시대였던 제5공화국 때 1970년대까지 고시 선두주자였던 김기춘은 요직이 아니라 계속 한직으로 돌았다. 1982년부터 1985년 2월까지는 내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했고, 1985년 3월부터 제6공화국 출범까지는 대구지검장·대구고검장·법무연수원장을 지냈다.


전두환이 물러나자 그는 다시 출세가도를 달린다. 박철언이 6공의 황태자 노릇을 하면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김기춘을 적극 밀었기 때문이다. 


5공 때 먹은 찬밥은 6공에서 전화위복이 되는데, 그는 5공 때 한직으로 돈 사실을 가지고 깨끗하고 강직한 검사로 연극했다. 1988년에 검찰총장이 되는데, 이는 박정희의 또 다른 가신이었던 신직수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최연소 취임 기록이다. 이때 5공화국 세력을 개박살 내려고 5공비리 사범 50여 명을 구속시키는 등, 5공청산에 앞장선다. 정작 6공세력까지 얽힌 비리, 5.18을 비롯한 중요 사안은 냅둔다.


13대 국회 때 여소야대로 정권이 수세에 몰리자 적절한 시기에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을 터뜨려 정권의 위기를 해결해주는 구원자 역을 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서경원 의원 간첩사건 의혹인데, 이때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가 연루되어 있다는 언플을 하면서 김대중의 이미지에 흠집을 냈으나, 결과적으로 김대중은 결백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 5월 27일부터 이듬해 10월 8일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이때 노태우 정부는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과 힘을 합친 후 6월 항쟁 이후 국민의 요구로 이루어졌던 많은 개혁조치를 되돌리는 반동정책을 행하면서 학생운동권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여기에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386세대 최후의 항쟁이라는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이 벌어져 정권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때 매주 분신자가 나오면서 전국민 항쟁으로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김지하는 5월 5일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우라"라는 글을 기고해 운동권이 기획분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와 동시에 서강대 총장이던 박홍 루카 신부가 "분신을 부추키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5월 27일 막 법무부 장관으로 등판한 김기춘은 주작 솜씨를 발휘, "김지하와 박홍 신부의 말이 근거 있다"며 검찰에 특별 수사를 지시하여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일으킨다.


즉, 재야단체 전민련에 소속되어 있던 운동권 강기훈이 운동권 동지였던 김기설씨의 분신자살(1991년 5월 8일)을 부추기고 유서를 대필해 줬다는 플롯을 짠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분신정국은 급속히 공안정국으로 반전되었으며, 그 직후인 91년 6월 4일 국무총리로 지명된 정원식 한국외대 교수 퇴임식에서 운동권 학생들에게 계란세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전세가 역전된다.


김기춘은 자신의 솜씨를 발휘해 정권의 위기를 찬스로 전환시켰고, 운동권은 치명타를 입었으며 이 사건기점으로 공안검사 출신들이 승승장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강기훈은 무려 24년 만에 2015년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를 지휘한 김기춘이나 관련 공안 검사들은 전혀 사과나 반성을 한 바가 없다.


강기훈 씨는 출소 후, 전민련 운동권 선배였던 정봉주 전 의원의 주선으로 정봉주가 운영하던 학원에 1990년대 잠시 전산담당으로 취직하지만, 정봉주가 정계로 입문하면서 학원 경영을 그만두자 이후 (전과자 전력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번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실제로 재심에 들어간 것은 2007년이었고, 재판과정에서 홧병으로 간암이 발병하였다고 한다. 결국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안정을 위해 언론접촉도 피했다. JTBC 정봉주는 자신이 진행하는 한 팟캐스트에서 2016년 말 현재 강씨의 병세가 위중하다고 밝힌 바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내세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당연히 청산 대상이 되어야 정상이었는데,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운빨이 터진다. 어처구니없게도 김영삼과 동향 및 동문이라는 이유였다. 


5공, 6공 시절 김기춘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박철언은 김영삼과의 불화로 정치보복을 받아 소위 "슬롯머신 비리"사건으로 감방에 갔다. 이때 박철언과 같이 얽혀서 감옥에 간 사람이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과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 이건개는 사시 1회로서 김기춘보다 2살 어리고, 고시로는 1회 후배로서 여러모로 김기춘과 비교될 만 하지만 김기춘만한 운빨은 없었던지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에게 줄을 댔어도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가 되어 관직으로는 끝나고 말았다. 


김영삼을 적극 지지하여 따낸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는 정치적 방탄복이 되었고, 그는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진 유신-5공시절의 여러 조작사건에서 검사나 수사관으로 활약했음에도 아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주된 역활을 하였다. 


과거 공안 조작사건 기획과 지역감정 유발, 공작정치의 전력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총선 낙선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3선 국회의원이 되었고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선출되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탄핵심판 청구인이 되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기각했다.


이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싸이코라고 지칭하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 캠프의 좌장노릇을 했으며, 원로 친박 정치인으로 구성된 7인회의 일원이었다. 



2008년에 공천권을 쥔 이명박 측이 친박 대숙청을 할 때 너무 고령이다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윤영에 밀려 탈락해서 야인이 되었다.


이후 2009년부터 2013년 8월 박근혜정부 비서실장이 되기까지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 당시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최순실 일당과 가까이 지낸 것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서실장 재임하면서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고 불렸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왔다고,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시절에 저질렀거나 관련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2013년 9월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며 사퇴를 결정하자, 이의 배후에 김기춘 실장이 거론되며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당시 야권에서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덮기위해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흘려 수사 중이던 검찰총장을 찍어내려고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 2013년 11월 5일에 시작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을 황교안 총리와 함께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13년 12월 31일에 외아들인 김성원(당시 47세) 씨가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자식의 사고에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하였다고 찬사를 보내는 언론이 있기도 했지만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말도 많았다. 특히나 당시에 무슨 업무를 하고 있었겠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 2014년 4월 청와대 7시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행방에 관해 모른다고 답변하면서 대정부질의 중이던 박영선 의원조차 어이를 상실해 몇번이나 추궁했고, 이로 인해 세월호 7시간이 급속도로 확대된 빌미를 제공했다. 
  • 2014년 7월 7일에는 박관천의 조사로 밝혀진 최태민 일가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서, "맹세코 비선라인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해명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거짓말로 밝혀졌다.
  • 2016년 12월 6일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이 공개되었는데, 이 중 세월호 유가족인 김영오씨의 단식을 두고 김기춘의 지시기록이 논란이 되었다. 김영오씨의 단식을 두고 언론지도를 지시한 기록이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통제를 시도한 것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이 자칭 언론지도를 통해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게하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두고 유가족 김영오씬지 단식을 부추기는 라고 김기춘이 생각하는 집단인지는 이 문장만으로는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김기춘의 해당 언론지시가 있은 뒤 2014년 7~8월무렵 조중동 등 언론매체에서 주도적으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에 대한 인신공격성 보도 연달아 대서특필로 써갈긴 것과 9월 초 생긴 광화문 폭식농성 사건등으로 추정컨데 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출처 : 김기춘/생애]


1972년생. 2018년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35회)에 합격했다. 1998년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2005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군 법무관과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서울지법 판사, 창원지법 판사, 창원지법 통영지원 판사, 수원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등을 거쳐 2016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업무를 맡았고, 2018년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부장판사를 맡고 있다. 


특히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과 인사심의관, 대법원장 비서실 판사 등으로 세 차례 핵심보직을 거치는 등 법원 내 엘리트로 꼽힌다. 


성창호 판사 프로필


  • 사건 판결 논란

백남기 농민의 부검영장을 발부하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9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의 구속영장도 기각한 적이 있다.


2016년 11월 24일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비판했다


성창호 부장판사


2017년 1월 18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춘과 조윤선의 영장 실질심사를 맡았다. 19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의연 부장판사와 함께 인기 검색 순위 상위에 올랐다. 다행히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둘 모두에게 나란히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7년 1월 20일,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의 당사자인 김경숙 교수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쳤고 신광렬 수석부장판사에 의해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2018년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부장판사로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과 관련해 남재준·이병기·이병호·이헌수·이원종의 제1심 재판과 박근혜의 제1심 재판을 맡았다. 하지만 박근혜는 2017고합184와 마찬가지로 출석하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에, 2017고합184에서처럼 궐석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 성창호 판사가 "세월호 책임 대통령이라는 사람들 뇌구조 한번 보고 싶다"는 글을 썼다고 하는데, 진짜인가요?

♦ 성 판사가 작성했다고 알려진 글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부 언론에서 팩트 체크 없이 내보낸 오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박사모' 등에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도 사실이 아닙니다.


성창호 판사가 세월호 사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한 글을 올렸다거나, 박사모 게시판에 글을 썼다거나 하는 기사와 말이 나왔다. 이에 일부에서 성창호가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던가, 일베 판사라거나 하면서 비난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을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한 것이라고 한다.


성창호 프로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