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정의당의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진보정당 소속 유일 3선 국회의원. 

진보정당 역사에서 대통령선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인물이자 진보 맏언니 


심상정 (沈相奵)/1959년 2월 20일/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출생

학력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전공 학사

가족관계 : 남편 이승배/자녀 이우균

소속 정당 : 정의당/지역구 : 경기 고양시 갑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으로서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싸워왔다.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예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 되기 전부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의정활동을 해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를 득표하여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득표율을 얻었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사태로 보수층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진보층 유권자가 증가한 유리한 상황에서 겨우 6% 득표율을 올린 것을 유의미한 성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호통 사건이나, 살찐고양이법 발의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유도하는 스타성이나 주목을 유도하는 실력은 뛰어나다는 평가. 


물론 살찐고양이법은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다는 것은 본인부터 잘 알고 있겠지만 시민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고 의식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과가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선거구지역 활동에도 성실히 참여해 진보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지 기반을 안정화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다.


소통은 미흡하다는 게 중론. 그래도 다른 정당이나 같은 당내의 중진급 인물들에 비해서 소통력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당명을 정할 때 당원투표를 하거나 당대표 자리에 미련을 갖지 않고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등 독재자 스타일은 아니다.


주로 '소통은 미흡하다'라고 제시되는 것은 당의 노선과 대치되는 입장들에 대한 것이다. 


메갈리아 사태 때 노회찬 원내대표를 제외한 당내의 중진들과 단체로 귀막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식의 덮어가기 언행을 보인 것 등이다. 후에 사과를 하긴 했지만 후술하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사과는 아니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에서도 초동진화를 하지 않았다. 전임자였던 천호선 대표 시절에는 당직자를 공채로 뽑았지만 심상정 대표 체제에 들어와서는 그런 거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당직자의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릴 수 있는 개고기 식용 문제에 대해 당대표 직함으로 반대 집회에 참석했으면서 정작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통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담으로 불도저같으면서도 독단적인 면이 있는 데다, 이명박 前 대통령과 이목구비가 닮은 면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여자 이명박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2016년 8월 16일,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있는 한미연합 훈련을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내부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고 변명하였지만, 내부 내용을 모르고 국회의원 서명을 해준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나 당내 일부 참여계를 제대로 자극했던, '야당에는 친노 vs 비노가 싸우지만 정의당엔 친국민뿐이다!'라며 전형적인 양비론 문구를 써 붙였던 현수막 건이나 당원 게시판 무더기 징계 건에서 대처도 매우 늦었고, 특히 무더기 징계 건에서 면담 요청에 응하지도 않았다. "문재인을 찍을 바에는 유승민을 찍어라"라는 식의 발언도 논란이 되었다.



2017년 5.18 추모 행사에서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선거 유세나 영화제가 아닌, 추모 행사인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었다는 주장. 하지만 당일 5.18 추모식 입장 영상을 보면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모두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2017년 9월 중순에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관련으로 생리대에 대한 1차 성분검사가 가까워지자 이낙연 총리에게 다시 검사를 부탁한다는 트위터를 올렸다. 일각에서는 물타기를 하는거냔 비난을 들었다. 


개헌 관련해서 국회의 총리 추천을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경우 대통령이 문재인인데 국회 추천 총리가 홍준표이면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는지 이름만 다른 내각제 주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중. 국회총리제 관련하여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고 개헌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비난 받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례적으로 정의당의 심상정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기도 


한편 시의원 선거제를 4인 선거구제를 2인 선거구제로 바꿨다고 민주당이 홍준표의 행동대장이라는 비판을 했다. 사실상 시의원 등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뽑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실상 4인 선거구제이든 2인 선거구제이든 해당 지자체 의원수에는 변화가 없다. 선거구를 얼마나 쪼개는 지에 따라서 4인, 3인, 2인 선거구의 숫자가 달라질 뿐이다. 2인 선거구의 경우 사실상 민주당, 자유한국당 양대정당이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민의를 왜곡하는 부작용이 있다. #


진보정당 역사상 대선 최다 득표자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19대 대선 1년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다시 19대 대선을 치르면 뽑을 인물"로 심상정은 겨우 1%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 



7차 지방선거에선 아무래도 당적과 위치 상 정의당 유세를 돕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광주 유세에서 민주당 일당독점을 논했지만 정작 광주광역시 국회의원엔 민주당 소속 의원이 없는 상황이라 잘못되었단 지적을 받고 있다. 이분 설마 예언하신건가? 


입지가 입지인 만큼 정의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당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노회찬 사후에 정의당 의원들은 집무실이나 당대표인 이정미도 아닌 심상정의 의원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기도 했다.


심상정 TMI

고양시와 수도권에서 유일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학생 시절 학생 야구기자로도 활동했고 야구 때문에(?) 재수를 결심했다는 말도 있다.  



운동권에 발을 들인 계기는 입학 후 연애 좀 하려고 하니 괜찮은 남자애들이 거기에 많아서라고. 배우자도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쓸신잡 7회에서 유시민이 생각하길 원래 그냥 운동권이라고.


SNS에 심블리를 밀고 있는 것 같다. 노회찬 의원과는 다르게 유머 감각이 좀 떨어지지만, 보좌진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심상정과 정의당을 엮어서 심상정의당이라고 한다. 심상정이 정의당 그 자체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종친이며 사석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둘 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놀라울 것도 없는 일.


PD 계열의 대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지역구의 기초 의원들은 모두 정의당에서 석권하고 있고 이들은 당 내외에서 심상정의 행보를 지원하고 있다. 다른 지역구에서는 국회의원은커녕, 기초의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정의당의 당연한 현실에 비하면 이례적인 모습. 반대로 노회찬과 조승수는 조직과는 담을 쌓고 개인기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PD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사람 안 키우는 행보가 두 정치인, 특히 NL과 척을 진 조승수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무조건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가는 바람에 '8대2'(...)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해진다. 본인도 알지만 잘 안 고쳐진다고.


유시민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서울대학교 동문이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였던 데다 통합진보당 시절 당권파와 대립하며 정의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PD계열의 얼굴 마담인 심상정과 참여계의 유시민이 교류를 안 할 수가 없었는 데다 아메리카노도 같이 마신 사이다 정의당 창당 이후 정의당 입장에서 홍보수단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20대 총선에서 정도로 매우 도움이 됐던 만큼 당대표였던 심상정이 유시민과의 친분이 유지됐을 것이다. 썰전(2017년 3월 9일 방송)에 출연한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티격태격대며 알고 지낸 사이라 2초 김고은 정도는 용서해줄게 라고 너스레 떨 정도로는 서로 허물없는 친한 사이이며, 심상정 의원이 유시민 작가의 여동생이나 아내와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날 유시민 작가는 드물게도, 앞서 나온 대선주자들을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치 외적인 부분에서 디스를 걸거나 중간중간 말을 놓는 모습도 보였다.


이명박 前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 먼저 찾아와서 심상정에게 직접 인사했다. 더구나 이명박의 옛 이름이 이상정이었다고. 거기다가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랑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때,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심상정의 지역구이자 심상정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고양시 갑 선거구 지역은 유시민이 재선한 적이 있는 지역구다. 유시민은 고양시 덕양구 화정1동 은빛마을에 살다가 2013년 정계은퇴 선언 후 성사동(원당)으로 이사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자살한 이유가 차명계좌 때문이 아닌가라고 발언한 경찰청장 조현오를 인사 청문회에서 만나서 꾸짖으면서 일갈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심상정이 이명박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 출마 예정 일정을 밝힌 후, 이명박을 4대강 관련 문제로 국정조사에 세우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이명박이 엄청나게 투덜댔다고 한다. 그러자 심상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임기 말 인기도가 가장 낮은 대통령 중 한 명이 됐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맞받아쳤다고.(...)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가 국회의장인 정세균을 만나서 의견을 전달하던 날에 왕복하는 도중, 심상정과 마주쳤는데, 심상정이 박근혜를 보고 면전에서 "퇴진하세요." 하고 대놓고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근데 박근혜는 이런 말을 듣고도 웃으면서 지나갔던 듯.


TVN 행복 난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덴마크에 갔는데, 여러 시민들이 알아보며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무수히 부탁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사람들은 조작이 너무 심하다는 반응.



[출처 : 심상정]



먼저 보면 좋은 참고글 이석기는 누구인가? 


 

당초 이석기가 지하혁명조직인 소위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을 만들어 무장투쟁을 일으키려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란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조직을 구성하는 것에 더불어 실행을 위한 자금 등 현실적 준비를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1심에서는 지하조직 RO가 실존한다고 판단하고 내란음모죄에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2심에서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 판결은 뒤집혔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내란선동죄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선동 목적인 내란 행위의 시기나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 선동 상대방이 가까운 장래에 내란 범죄를 결의, 실행할 개연성이 있다면 충분히 내란선동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히며 내란선동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내란을 구체적으로 모의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는 것. 그리고 법원에서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지었다. 



여기서 논란이 터진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과연 이석기의 발언이 '내란선동'이 될만한 것이긴 한 것인가 하는 논란이고, 둘째로 애초에 증거도 부족한 내란음모죄를 적용한 것은 정치적인 이슈몰이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논란이다. 


첫 번째 논란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다루도록 하고 두 번째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이석기 사건이 터지기 이전, 정부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논란으로 궁지에 몰려있었으며,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국내 진보정당으로서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성과를 거두었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석기 사건이 터지며 국정원 논란이 종심됨과 더불어 결국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까지 이어지는데,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이유가 결국 RO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위헌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란음모는 무죄, RO는 실체없는 조직으로 판단됨에 따라 통합진보당 해산은 그 근거가 상당히 미약해지게 되었다. 당시에도 이 해산명령 결정에 반대하던 야당들의 주된 근거는 '아직 대법원 판결도 안 나왔는데 좀 기다려보지?'였다.결국 내란음모 혐의가 법적 조치 자체가 아닌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혐의라는 주장이 나왔다.


어쨌든 위에서 말했듯 RO의 실체나 북한과의 연계성을 증명할만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고, 그 와중에 다른 혐의인 내란선동과 국보법 위반에 대한 증거는 이성윤이라는 사람이 녹음한 내용을 바탕으로 검찰이 작성한 녹취록밖에 없다. 


이성윤은 통합진보당 당원이었으며 그 전부터 진보세력에서 활동해왔던 사람이다. 본인과 국정원의 주장에 따르면 2010년에 처음 국정원에 이석기와 RO에 대한 사실을 내부고발하기 시작하여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헌데 이 녹취록의 450여곳의 워딩이 실제 발언과 비교했을 때 심각하게 날조되어 있다고 변호인단이 주장하였다.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부분 중 몇 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왼쪽이 검찰 녹취록, 오른쪽이 변호인단 주장.

전쟁에 관한 주제를 호소하고 → 전쟁 반대 투쟁을 호소하고

전쟁을 준비하자 → 구체적으로 준비하자

성전(星戰) → 선전(宣傳)

결전성지 → (천주교)절두산 성지



그 외에 기간시설 타격이나 총기 준비 등의 발언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5월 12일의 강연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어떻게 활동해야 하나에 대한 정세 강연이었을 뿐 내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녹취록을 왜곡하거나 날조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허나 녹취록 중 일부는 원본 녹음파일이 남아있지 않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변호인단이 검증작성하고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한 5월 12일 강연록이다. 판단은 알아서 하자. 읽어본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어휘와 표현, 사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 NL 운동권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있다는 평가가 굉장히 많으나, 어찌 되었든 '내란'으로 엮는 건 무리라는 평가가 많다.


이것 외에도, 애초에 녹음 자체가 불법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이성윤이 2010년부터 사실상의 프락치 활동을 하며 모은 증거, 즉 위법수집증거이므로 애초에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문영심의 책 '이카로스의 감옥'에는 당시 이석기와 함께 RO조직 수뇌부로 지목된 9명의 수사 당시 국정원 수사관들이 불법적인 일들을 다수 수행했다는 가족들의 증언이 실려있다. 당시 국정원 수사관들이 영장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사유를 말하지 않고 뺑소니 사고 관련 조사 등을 핑계로 문을 열게하였고 압수수사 와중에 가족들에게도 자신들이 가족들의 신상을 잘 알고 있음을 암시하며 은근히 협박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사건을 대하는 언론들의 태도가 문제가 되었는데, 



검찰이나 국정원의 피의사실공표죄 여부야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지켜지는 적이 전무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검찰이 제시하는 혐의 내용을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받아쓰기 하듯 찍어냈는데 후에 결국 내란음모 무죄를 받고 RO나 북한과의 연계성 등도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나오면서 대부분 거짓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석기의 집에서 1억 4000만원 상당의 루블화와 달러가 나왔다는 보도가 뜨면서 북한 공작금이니 뭐니 모든 언론이 난리가 나서 퍼날랐는데, 알고 보니 1억 4000만원 중 100만원 만이 달러와 루블화가 섞인 외화인데 이는 국회 상임위원회(미방위) 소속 의원으로서 동료 의원들과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환전했다가 남은 돈이라고 한다. 나머지 금액은 재산신고에도 포함된 출처가 확실한 금액이라고. 


아무튼 이런 기사들은 이석기에 대한 여론을 풍비박산 냈다. 검찰로서는 저것들 덕분에 재판이 더욱 쉽게 굴러갔다.


국내 일부세력들의 구명 운동 지지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이재봉, 인권운동가 박래군, 성공회대학교 교수 한홍구 등은 재판 과정에서 직접 증인으로 참석해 각자의 전공 분야의 지식을 동원해 이석기의 사상이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상이 아니며 이석기에 대한 처벌은 표현/사상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했다. 한홍구는 그 후로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국가정보원 당국의 정치에 관계된 위기를 덮어 감추려는 조작이라면서 이석기를 향한 지지를 여러 강연/글에서 계속 표현하고 있다.


2015년 6월 24일에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이하 구명위)가출범했다. 

고문으로는 권오헌, 김상근, 박순경, 이창복, 정동익, 조영건, 함세웅

공동대표로는 강병기, 김성근, 김한성, 박래군, 유시경, 정진우, 조순덕, 최재철, 퇴휴, 한충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6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본격으로 다룬 작가 문영심의 『이카로스의 감옥』이 출간된 후, 이석기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의견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의 거목인 신부 함세웅과 복사 김상근은 이카로스의 감옥에 추천사를 썼으며, 장정일과 박노자를 위시해 진보계 저명한 인사들이 책의 내용을 지지하고 나섰다.


2015년 2월, 국제 인권 단체 국제엠네스티는 박근혜 정부 2년 간 한국 인권이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며, 예시 중 하나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들었다.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법 조항의 자의적 해석으로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 지식인 57명이 2013년 당시 이석기에 대한 의혹의 증거가 불충분함을 지적하며 그를 석방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한 일베 회원이 촘스키에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신을 근거로 이 성명서의 내용이 조작이라는 주장 있었으나 이후 촘스키가 다시 본인이 성명에 참여한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올해 6월에는 빈곤의세계화 의 저자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가 방한하여 양심수석방 추진위에 참석하기도 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박근혜 정권이 어떤 행위를 하였는가를 잊어선 안 된다”며 “문재인 정부의 광범위한 개혁의 일환으로서 양심수 석방이 단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6년 이카로스의 감옥이 출판되었다. 녹취록 조작 의혹을 비롯,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쟁점을 다루며 결과적으로 이석기가 부당하게 처벌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함세웅, 장정일, 박노자를 비롯한 저명 인사들이 이 책의 내용을 지지하고 나서며,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탄핵 정국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이석기에 대한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자신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물들을 석방하고자하는 움직임도 곳곳에 일어나고 있으며, 이석기도 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보수는 물론 온건파에게 까지 이석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할 정도로 그에 대한 여론이 워낙 나빠서, 일부 단체를 제외하곤 탄핵 정국에서 역풍을 맞을 우려때문에 대다수의 집회에서는 자중하고 있는 분위기. 



8차 촛불집회에서 민중연합당 소속 사람들이 앞면에는 '황교안은 퇴진하라' 와 뒷면에는 이석기, 한상균을 석방하라 라고 적힌 양산형 시위 종이를 대놓고 나눠주고 이석기 석방 서명운동을 벌이며 위의 이카로스의 감옥을 홍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석기를 석방하라'라는 애드벌룬도 관찰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집회에서도 이러한 행보는 이어졌다. 


한편, 박사모는 이러한 움직임을 보고 촛불집회를 종북세력의 선동이라고 주장하였고,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촛불집회의 순수성이 훼손되었다'는 논조의 기사를 내고 있다. 진보 세력 내에서는 이석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부와는 관계없이, 소수의 통진당 잔당을 명분으로 촛불집회에 또다시 낡은 순수성 프레임을 들이대는 보수언론에게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중.

대표적인 거물급 여성 정치인이자 민주당의 한 축이었던 인물

한국의 前 정치인.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여성운동 1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환경부, 여성부 장관 및 국회의원을 거쳐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됐다. 하지만 2015년 국회의원 재직 중 과거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됨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점을 남겼다.



1944년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출생했다. 6.25 전쟁 때 부모를 따라 월남해 서울에서 자랐다. 


정신여자중학교, 정신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다. 




1967년 박성준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바로 감옥으로 끌려갔다. 소위 통혁당 사건 때문이었다. 10년 여 동안 옥바라지를 하며, 1977년 한신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를 받은뒤 한신대 강사가 되었다. 



민주화 및 재야 여성 운동가로도 활동하다 1979년 광주교도소에 투옥됐다. 2년 6개월여 만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같은 해 남편도 크리스마스 특사로 출소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엄마가 된 한명숙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도 받는 등, 가사와 학업을 병행했다. 이후 남편은 일본 릿쿄대학에서, 한명숙은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 중단하고, 부부가 함께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명숙은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을 받았다. 



  • 여성운동

호주제 폐지, 군가산점 폐지, 여성쿼터제 도입, 출산-육아 휴가제, 성매매특별법 제정, 여성부 창설 등에 참여했다. 


1989년부터 5년간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이었다. 2000년 전국여성대회에도 참석하는 등 여성부 신설에 힘을 보탰고 2011년 당개혁특별위원회 때 유승희 전국여성위원장을 통해 당시 여성 공천 15% 의무화 실시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되며, 2015년 12월 당적을 스스로 던질 때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 내 전국여성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당내 여성 운동을 주도했다.




이미경 의원, 유승희 의원, 서영교 의원 등과 조현옥 현 청와대 인사수석이 그녀의 인맥이다. 또한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국무총리 때도 의전비서관을 역임한 조한기(현재 충남개발공사 감사)도 한명숙 계로 분류된다.



  • 정계활동

1999년 김대중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시작으로, 이듬해 신설된 여성부 초대 장관을 역임했다. 


DJ정권의 주요 업적 중 하나인 호주제 폐지 및 여성쿼터제 역시 한명숙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며, 모성보호법 차원으로 생긴 출산휴가, 최대 5년간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등이 이때 생겨난 것이다.





2003년 노무현정권 당시 환경부 장관이 됐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땐 지역구 도전에 나서 고양시 일산구 갑으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경륜은 물론 여성으로서 갖는 상징성 덕분에 국무총리 물망에 오르내렸고, 이해찬에 이어 총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 여성 국무총리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2002년 장상이 서리직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임명된 최초의 여성 총리는 한명숙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후, 2차례의 정치자금수수 혐의로 2009년 기소되면서 수년간 곤혹을 치렀고 이명박 정부 내내 언론과 여당의 정치 공세를 견뎌야 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대한통운 건은 무죄를 받았으나, 한신건영 건은 유죄 판결이 확정돼 실형이 선고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 과정의 당내 잡음 및 패배 후유증으로 친노와 비노로 갈라졌고, 이해찬과 유시민이 한명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에 남은 한명숙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를 공천받았으나 낙선했다. 초반 여론 조사로는 무명에 가까운 한나라당 백성운 후보에 10% 가량 앞서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불과 투표 사흘 전 캠프 소속 선거운동원이 지역 대표들에게 밥을 산 것이 드러나 불구속 입건됐고 결과는 3.3%차의 패배.




2010년 대한통운 정치자금수수 혐의에서 벗어난 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경선(100% 여론조사 방식)에서 이계안 후보를 누르고 서울특별시장 후보에 선출됐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압승이 될 것으로 예측됐고 더구나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터져 언론 보도와 여론은 야당에게 불리했다. 


선거 2주 전 여론 조사로도 적게는 11.9%포인트(조선일보), 많게는 22.8%포인트(중앙일보) 오세훈의 리드였다. 그렇지만 서울만은 광우병 논란, 용산 참사 등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노무현에 대한 동정 및 향수가 있어 한명숙이 해볼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왠걸 투표 당일이 되자 자체 조사상 한명숙의 근소한 역전이 점쳐졌다. 서울시청 앞에서 지지자들과 승리 예감을 만끽할 정도였다. 그러나 막판 강남 3구의 오세훈 지지표에 덜미를 잡혀 다시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불과 0.6% 차의 선전이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명숙은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으로서 선거를 지휘했고 본인 역시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그러나 야권단일화, 여성 15% 할당 공천 강행 과정의 당내 갈등, 비례대표 공천문제,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 등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이명박 정부에 불리한 여론 결과가 이어졌음에도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에게 단독 과반을 내주고 완패하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뇌물죄로 실형을 산 것에는 판결이 과하다 정당하다를 놓고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때 당시 총선의 대 참패가지고는 모두가 위아더월드로 무능하다고 까는 편. 오죽하면 실형판결을 받은 것보다 총선때 보인 무능함이 더 용서가 안 된다할 정도(...)



  • 정치자금수수혐의

전술한 경선 과정에서 대한통운에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2009년 기소되었고 한신건영에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010년 추가 기소되었다. 


먼저 대한통운 건은 4천 5백만 원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공방 끝에 3심까지 전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한신건영 9억 원 관련 건은 기소된 이듬해 재판이 시작되어 1심에서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여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하여 2013년 진행된 2심에서 유죄로 판결받아 징역 2년, 추징금 8억 8천 3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5년 3심이 진행되었는데 결과는 뒤집지 못한 채 유죄로 판결받아(13명 중 유죄 8명, 일부 유죄 5명) 2심과 같은 형량을 받았다.





추징금 중 3억 원의 소재를 대상으로 해서는 파악되어 모두 일치한 의견을 보였지만, 남은 6억 원의 증거 여부를 대상으로 해 의견이 갈린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주요한 증거와 수사 기록을 검토하는 것이 아닌 1심과 2심 판결을 대상으로 한 법리를 심의하여 판결을 확정한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1심보다는 2심의 법리가 합당하다 하여 형을 확정한 것이다. 그것과 반대로 법리에 맞지 않는다. 판결하였을 때는 원심을 파기하여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 합의부에 돌려보내 다시 재판을 받게 한다.




결국 한명숙은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국무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5년 8월 24일부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것을 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정치권력이 개입된 정치 보복성 판결이라며 목멘 소리로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수성향 네티즌들은 '첫 번째 3억 원에 한해서는 대법관 전원 일치 유죄판결이 나왔으므로, 야당 추천 대법관도 유죄라고 본 것이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이라는 견해도 있다. 


전 국무총리 한명숙을 대상으로 한 이런 판결을 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선 격론이 오갔다. 이것을 억울한 정치 탄압으로 간주하고 쟁점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처지였던 혁신 위원 이동학의 일부 발언이 당내 반대 세력에게 꼬투리가 잡혀 혁신 위원 이동학이 사과하는가 하면, 당시 대표 문재인은 당 최고위에서 전 국무총리 한명숙의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당 차원에서 대납하자고 제안했다가 빈축을 사고 취소하는 등 여러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작 한명숙 변호인단에서는 "추징금을 모금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또한 대납하더라도 선처받는 것이 아니다. 형벌은 민사상 배상이나 범죄로 얻은 수익을 대상으로 한 추징과는 별도로 국가가 내리는 제재 겸 재사회화 조치이기에 피해자에게 제대로 배상했을지라도 국가는 그것과 무관하게 제재한다.

 


2015년 12월 11일, 결국 한명숙은 당시 대표 문재인에게서 당적 정리를 요구받았고, 본인도 이것을 받아들여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 되었다.




2017년 8월 23일, 징역 2년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이해찬, 문희상 의원과 지지자 100여 명이 모였으며 추미애 대표는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며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에 대해 김진애 전 의원은 "그 맑음이 감동이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은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고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 성향의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하여 검찰이 표적수사를 했지만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와 유죄를 받은 건 사실인데 한명숙을 영웅시한다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한명숙이 추징금을 내지않고 버티자 검찰은 환수팀을 구성하여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을 환수하였다. 검찰은 나머지 추징금 7억3000여만원도 환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 트리비아

과거 넷상에서는 "한명숙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때가 잦다"면서 한명숙의 별명으로 한명숙청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한명숙이 현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터라 지금은 크게 쓰이진 않는다. 또 실상을 파고 보면, 이름값 높은 정치인으로서 이런저런 사람과 접촉하고 사진 찍히는 일이 잦았을 텐데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훗날 몰락하는 때가 생기면 예전에 한명숙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재발굴되어 한명숙청 어쩌고 몰아갔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이게 반대 진영인 박근혜까지 이 숙청 목록에 거론되었을 정도로 억지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사실이었나 싶긴 하지만 그런 식이면 접점이 안 닿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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