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

그알 방송 이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스캔들 의혹


  • 스캔들 의혹의 시작

2010년 10월 배우 김부선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남성 정치인과 연애담을 공개했는데, 이 남성에 대해 덧붙인 내용이 'ㅇㅈㅁ'이란 이니셜, 변호사 출신, 2010년 지방선거에 당선 등 이재명의 신상정보와 유사하여 이 남성이 이재명이라는 추측이 떠돌았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진 않아 소문으로만 남게 되었다.


2016년 이재명이 트위터를 통해 이 스캔들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는데, 이재명이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김부선과 양육비 관련 의뢰로 만났는데 상담결과 이미 양육비를 받은것으로 드러나 포기를 시켰는데 이후로도 계속 자신의 탓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김부선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설전을 벌였고, 결국 이재명이 소송을 하기로 하자 김부선이 사과글을 올리며 일단락 되는듯 했다.


김부선 페북

김부선 이재명


  •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 이후 다시..

그런데 2018년 5월 28일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 이후로 이 의혹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이재명의 사생활 관련 의혹에 대한 검증을 했는데, 이때 이 의혹을 제기하며 이재명에게 주진우 기자가 '여배우'에게 보낸 메일을 봤다'며, '이재명 아니라고 페이스북에 쓰라'고 써있었다며 누군지 아냐, 만난적 있냐고 물었고 이재명은 옛날에 만난 적 있다, 여기는 청문회장이 아니다 라며 답변을 피했다. 

거기다 때마침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사과 글을 올리라고 조언하는 녹취록이 공개되자 김부선이 올린 사과문이 억지로 쓴 것이 아니냐, 배후에 이재명이 있는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재명은 5월 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하여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해명을 했고, 주진우 녹취록에 대해선 자신은 주진우에게 그런 부탁한 적이 없으며, 주진우가 김부선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 녹취록 유포는 정치공작이라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히고 김부선과 김영환, 왜곡 보도한 언론등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리고 6월 2일 중앙일보에 실린 글에서 "저 역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고 있지만, 다시 이 일로 상처받을 김씨와 주 기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 주진우, 김부선의 관계

주진우와 김부선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실제로 김부선은 주진우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했고, 주진우에 대한 긍정적인 글을 수차례 올렸다. 그런데 2016년 4월 이재명과 설전이 벌어졌을때 주진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글을 올렸고,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10월 4일부턴 주진우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여배우 김부선 스캔들과 관련해 바른미래당 등의 공격을 받고있는 이재명이 정면돌파 의지를 밝히며 흑색선전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배우 스캔들’ 이재명 “저는 굴복하는 사람 아니다” 주간 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김부선이 심경을 고백하며 김부선 최초 심경 고백 “어느 여배우가 이런 거짓말하겠나” 지금까지 침묵을 지켰던 이유로 딸의 장래와 소송 부담감을 말했다. 


그리고 6월 10일 KBS 9시뉴스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황증거(2007년 12월 12일, 인천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이재명의 카드로 식사비를 계산함)를 밝히고 또한 이재명에게서 (대마초 전과 등을 거론하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게 세번째라며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언급했다. 


이재명은 ‘정치인은 억울한게 있더라도 감수하고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견뎌야할 부분이 있다’고 논평했는데, 이는 지난 5월 31일 라디오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책임을 물으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인상을 주었다.


6월16일 김부선은 더이상 자신의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네티즌은 선거내내 이재명과 불륜설을 주장하다가 선거가 6월 13일로 종료되자마자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고 있다. 그리고 6월 14일 혜경궁닷컴에서 김부선에게 2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 이재명측의 반박

김부선, 이용하는 정치공작세력들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김부선 본인을 포함하여 이재명의 외도 의혹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을 향해 이재명이 공인이라고 해도 정치공작세력들에 의한 근거없는 음해와 인신공격과 배우자인 김혜경씨에 대한 인격살인은 이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2018년 6월 10일 외도 의혹에 대한 반박 자료를 발표했다.


이재명 김부선 트위터

이재명 페북 김부선

  • 주진우의 입장

2018년 6월 11일 과거 나꼼수의 멤버였던 김용민이 주진우를 대신하여 주진우의 입장을 전했다. 김용민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와 여배우 김부선씨 스캔들 의혹과 관련해 주진우 시시인 기자가 “‘모른다. 진실을 모른다가 진실이다’라고 말했다”고 ‘김용민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김용민은 이어 "그래도 남들보다는 잘 알지 않겠냐’고 재차 물었지만 (주 기자는) "나는 기자다. 신이 아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부연했다.


김용민은 주 기자가 ‘덮어줬다’고 한 발언데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후 미디어오늘 보도에는 구속될 것을 두려워한 김부선씨가 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주 기자는 김부선씨에게 자문해 주는 형식으로 도와준 일이 소개됐다”며 “그렇다면 주 기자가 했다는 ‘덮어줬다’는 발언 혹여 있었다면, 이 문제가 소송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갈등을 덮어줬다는 뜻은 아니었을까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에게 불륜이 있었지만 그걸 덮어줬다라고 해석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 공지영의 가세

2018 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나온 이재명(1964)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로 시작된 의혹에 지인에게 들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6월 7일 오후에 페이스북으로 작성하며 잦아드는가 싶던 논란에 불을 지핀다.


공지영은 페북에서 이재명 스캔들논란에 대한 글을 읽고 2년 전에 주진우와 이재명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린다. '주진우는 안 좋은 뉘앙스로 이야길 했다. 그리고 곧 김부선과 통화를 했다. 기억은 전혀 나지 않지만 이제와서 이창윤 글을 읽으니 당시 통화가 주진우가 김부선을 무마시킨 모양이다'라고 기억해낸다.


2018년 6월 7일 공지영은 추가로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주기자에게 미안한가? 어 열받네? 전 보고들은것을 말했고 그 다음은 시민들 시간들 신께서 알하서 하시겠죠 한가지 하느님만 믿고 갑니다. 그분이 날 어떻게 보시는지만 생각합니다. 다른것들은 구름을 잡는것보다 허망해요"라는 글을 올린다. 


2018년 6월 9일 공지영은 페이스북에 다시 이재명을 저격하는 글을 썼다. 공지영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문제는 사생활(불륜)이 아니다'라고 한 후 '르윈스키처럼 체액이 묻은 속옷이라도 챙겨두지 못한 김부선을….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마음대로 짓밟으며 전국민에게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라고 이재명을 비난한다. 


2018년 6월 11일 밤에 공지영은 정윤철 감독과 설전을 벌인다. 


2018년 6월 19일 공지영이 트위터에 '제가 오해했다면 주기자가 나서서 말하세요 제가 완전 잘못 들었다면 사과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성남시 모라토리엄 ?

이재명(1964)/성남시정에서 밝힌 2010년 7월 성남시 모라토리엄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국토해양부에서 판교 사업과 관련된 사업비 정산(5200억원)을 요구했는데 이에 응할 돈이 없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감사원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고 이재명(당시 성남시장)은 말하고 있으나, 국토해양부에서 성남판교지구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한 이야기에 따르면 국토부는 성남시에 채무상환 자체를 요구한 적이 없고 해당 백서를 작성한 감사원 담당자에 따르면 감사 백서 또한 성남시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매년 2000억원 안팎의 재정 초과 이익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설사 5400억원을 상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더라도 모라토리엄 선언은 전혀 불필요했다는 행정자치부 관계자의 지적도 지적이거니와 "모라토리엄을 해결하겠다"며 5400억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조달한 지방채 발행으로 내지 않아도 되는 연 47억원의 이자비용까지 성남시 재정으로 부담해야 했다는 지적은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과연 성남시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오고 있다. 


[기사] 이재명·남경필 '채무제로' 속편 ·· 성남시 '모라토리엄' 공방



  • 성남 철거민 사태 논란

2004년 판교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원래부터 무허가 주택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보상 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을 성남시청이 촬영한 항공사진 때문이라며 항의하던 철거민들은 이재명이 성남시장이되자 인권변호사 시절의 인연을 빌미로 법적 근거가 없는 특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이를 거절하자 분노한 철거민들이 성남시 행사에 참여한 이재명 시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 등의 폭행과 이를 저지하던 비서관의 얼굴에도 상처를 입혔다. 


뒤에서 달려드는 철거민을 팔로 막은 이재명 시장을 마치 이재명 시장이 철거민을 폭행한 것처럼 동영상을 편집하여 유포하면서 논란이 되었고 법원에서는 조작된 불법 영상물임을 인정하여 철거민대책위원회도 동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하였다. ‘인권뉴스’는 동영상 판독을 통해 이 문제를 집단폭행이 아닌 한 철거민의 우발적 사고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재명 폭행


2017년 1월 2일 토론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 건을 질문했을 때 이재명 시장의 말을 옮기자면 공직자는 권한을 공정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철거민은 LH 공사에게 철거를 당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LH에서 받아야 맞지만 성남시에게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1년 6개월 동안 시장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즉, 시장의 권한 밖의 일에 대해서 철거민이 부당하게 주장하고 자신을 괴롭혔다고 해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태를 이재명 시장이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재명 스스로 변호했던 사건인 만큼 시장의 권한을 이용해서 철거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처리를 해줬으면 철거민과 다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형수 욕설 파문처럼 원리원칙대로 직권남용을 하지 않겠다는 이재명 시장의 원칙이 이런 파문을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2018년 6월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선대위의 가짜뉴스대책단은 이 후보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철거민에 의한 폭행과 관련해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국정원과의 법적 공방

아래의 트윗은 이재명 성남시장 본인이 올린 것이다.


이재명 국정원


트윗을 보듯 이후 이재명 시장은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사무관은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면서 이재명 시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재판을 담당한 수원지법 성남지원 재판부에서는 이재명 시장이 증거 자료로 제출한 국정원 사무관과 가천대 직원 간의 대화 녹취록이 편집됐으며 두 사람의 대화 중 이재명 시장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한 대화는 많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이재명 시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국정원 사무관에게는 국정원 소속 사무관 중 한 명일 뿐 주요 직위자라고는 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없으며, 정보 기관의 업무처리 공정성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재판부는 이재명 시장이 건 소송과 국정원 사무관이 건 소송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고, 이후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됐으나 또 다시 패소하여 원심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이후에도 자신의 SNS나 언론을 통해서 국정원이 가천대에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조사 요청을 해놓았다.


  • 성남 FC 변덕적인 운영과 2부 리그 강등

이재명 시장이 성남 FC를 인수하고 시민구단 전환 관련 발표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최소한 박규남의 거지같은 운영보다는 훨씬 발전한 운영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촌스럽기로 소문난 노란 유니폼, 지역 구로 나눈 좌석 배치 등 출정식의 졸속한 행정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나중에 만화가 샤다라빠의 의견대로 유니폼을 수정했다. 


그렇지만 전 시즌 주포인 김동섭의 삽질과 박종환의 쌍팔년 축구로 온 K리그 빠들이 가루가 되게 까는 경기력으로 지탄 받고 폭력 문제로 경질된 이후 축구단에 대해 무관심하다 어처구니 없는 대행의 대행 임명 이후 김학범이 FA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그제서야 오심 관련 인터뷰를 하며 숟가락 얻고 잦은 언플을 던져 K리그의 가려운 곳을 긁은 결과 이전까지 팀에 무관심한 구단주로 평가받던 그를 축덕이라고 주장하는 수준 미달의 언론과 서포터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감독과 대표이사를 박종환과 신문선이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인사로 구성해 팀의 근간을 흔드는 인사를 보여준다.


AFC 챔피언스리그를 진출하고 리그 상위 스플릿으로 올라가는 선전한 2015시즌 이후에는 축구단 관련 인터뷰 및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방문해 기대를 높였고 수원 FC 염태영 구단주와 설전으로 깃발더비라는 더비를 만들었으나 관계도 없고 역사는 비교조차 안 되는 두 팀의 신경전에 정치적 친분을 가진 구단주들의 쇼라는 비판이 많았고 전통의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보다 더 홍보하는 기행을 보여줬다. 


성남fc 코마트레이드


그리고 같은 당 박원순이 시장이었던 서울특별시의 연고구단인 FC 서울에도 비슷한 형식의 빚탕감 더비를 제안했다가 서울에게 우리가 시민구단인줄 아느냐는 면박만 들었다. 위에 서술된 성적 하락 이후에는 축구단 관련 행동 및 발언은 없고 김학범 감독은 사퇴지 경질이 아니라는 입장 표명을 했다.


나중에는 가변석을 새롭게 만들어준다거나, 먹거리를 늘린다거나, 촌스런 유니폼을 새롭게 뜯어고쳤다. 결국 성남 FC는 시민구단 최다 관중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성남 FC가 강등당한 이후로 장문의 글로 "팬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송구스럽다"라는 글을 올렸다. 강등당해 예산감축이 불가피한데도 불구하고 약속대로 클럽하우스를 건립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강등은 프런트나 감독의 책임이지 어째서 시장의 책임이냐며 옹호하기도 하나 이는 자가당착이란 의견도 있다. 성남 FC의 성적이 상위권일 때에는 성남 경기가 있을 때마다 SNS로 홍보를 했고 심지어 태국 원정까지 따라가며 홍보기사를 내며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이렇게 축구팀을 시정홍보와 본인 언론노출도 증가의 도구로 삼더니,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SNS에 성남 FC관련 언급은 뚝 끊겼고 경기장을 찾는 일도 뜸해졌다.


단적인 비교사례로, 성남FC를 꺾고 1부리그로 승격한 강원 FC만 보더라도 승격이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공이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최윤겸 감독이나 조태룡 대표를 칭찬하는 의견은 있어도... 지자체장이 구단주인 다른 시도민구단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재명이 욕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시민 구단주와는 다르게 자신의 지분을 크게 했고 축구단의 성공으로 자신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호재가 있은 뒤에 여러 언플이나 홍보로 성남과 자신을 k리그 시민 구단의 모범 사례로 홍보하는 등 강원의 최문순 등 다른 구단주들과 다르게 자신의 치적임을 과시하다가 성적이 떨어지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는 더 좋은 먹이감이 나타나자 팀을 버린게 문제인 것이다.


이재명 김혜경


결론적으로 이재명을 구단주로 평가한다면 

  1. 성남fc를 연고이전에서 지킨 공과 (성공적일 때 한정) 예산 지원, 시정과 관련해서 시민 구단으로서의 지역 연대 등의 공이 있지만, 
  2. 자신의 치적으로 삼는게 목적이었고 관련된 능력이 없었기에 정치적인 인사와 성적 하락 이후의 행실은 공과 과가 같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3. 더욱이 최순실 게이트 이후 구단을 방관하였고, 남준재 연봉 미지급 논란 등 떠날 때까지 구단이 흔들릴 때 전혀 구단을 챙기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잘 나갈때는 잘 나갔지만, 흔들릴 때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구단주계의 선조라 할 수 있다.




  • 장애인 콜택시 요금 인상관련 장애인 단체와 대립

장애인 콜택시 이용 문제로 일부 장애인 단체가 이재명 시장에게 불만을 갖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성남시가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성남시 외부에서 너무 자주 이용하는 바람에 정작 성남시의 장애인과 응급환자들이 제대로 이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성남시에서 요금장벽을 만들어 외부의 이용횟수를 줄이려고 한 것. 그리고 성남시 안의 응급환자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요금을 올려 장거리 이용을 억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성남시는 이러한 내용을 이미 지난 3개월간 지역 내 9개 장애인단체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성남 장애인 콜택시는 성남의 지방세를 이용한 성남의 시정이므로 경기장차연은 경기도지사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경기도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단체이고, 성남에는 성남지역 장애인 단체가 있다. 성남시 집행부와 성남 시민인 성남거주 장애인들이 협의해 진행한 사안에 대해 물리적으로 시장실을 점거하는 등의 불법 방식으로 행동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장차연은 '성남시 장애인콜택시 요금 조정'과 관련해 경기도청에 가서 시외 장애인콜택시의 편의성을 추가로 도모해 달라는 요청을 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는 10월 중순 이 시장과 대중교통과 등 성남시 주무부처에 장애인콜택시 42대 증차를 요구했으나 성남시 측은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해당 단체의 주장. 이런 상황에서 성남시가 증차 없는 요금 인상에 나서자, 경기장차연은 요금 변경 하루 전인 31일 오후 2시 성남시청 시장실에 기습 방문해 시장 면담을 요구했다.


이재명 장애인 콜택시



해당 단체가 기습방문하여 이재명 시장과 면담을 시작했으나 '요금인상은 필요 없고 장애인콜택시 법정기준 200% 증차계획을 공문으로 달라', ‘200% 증차 약속’,“공무원들은 철밥통이라서 이해 못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요구를 하였고# 여기에 더해 성남시측 장애인 협회가 이 소식을 듣고 시장실에 찾아와서 캣파이팅을 벌이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이런 난장판이 되자 이재명 시장은 “성남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인데, 시외요금이 너무 싸서 콜택시가 자주 관외로 나가면 성남시민들이 불편해하지 않느냐”며 “부족한 예산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관내 성남시민들이 우선적으로 이용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이것은 내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고 요금 인상 강행을 다시금 못박으면서, 면담을 지속해서 요구하는 경기장차연에 이재명 시장은 퇴거를 명령했고, "이번 일에 대해 경찰에 고발할 것", "대화할 자세가 전혀 되지 않았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장애인들이 택시요금으로 항의 방문했을 때 이재명이 보여준 태도가 논란이 된 영상이 있다.. 이재명은 이 영상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청내 질서가 왜 이 모양이야?”라고 반말로 다그치고, 항의하는 장애인 단체에겐 “대화할 자세가 안 되어 있다”라며 돌아선다. 그의 등 뒤로 재차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자 부하 직원 한 명이 이재명 시장이 들을까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한 번만 조용히 해달라며 쉬쉬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당 영상의 1700여 개 댓글에는 이재명 시장이 나쁘다라는 의견도 있고 전체 영상을 올려달라. 음해성이다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짧게 편집 된 이재명 공격용 영상이라는 댓글이 많다.


그리고 이재명이 장애인들을 내쫓았다고?에서 중립적인 입장의 글도 있다. 성남시는 법적으로 잘못한 게 전혀 없고 정부나 경기도에 항의해야 할 내용을 본인들에게 따지는 형국이니 억울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던 성남시의 장애인 콜택시 요금 인상에 막막한 심정에 항의한 것이다. 



  • 김사랑 강제납치 감금 논란

2017년 11월 14일 이재명 성남 시장에 지속적 비판을 한 김사랑(본명:김은진)을 성남 경찰이 납치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 김사랑 진상규명위는 “이재명 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로부터 9건의 고소 고발이 들어왔고 김사랑씨는 3백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자 기존 경찰의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상태에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실종신고가 되었고 백주대낮에 경찰에 의해 납치되어 상권활성화재단이 있는 건물의 휴엔정신병원에 감금이 되었으며 남자 조무사에 의해 강압적으로 옷이 벗겨지고 알 수 없는 주사를 대량으로 맞고 실신하게 되었다”고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상태이다. 


이재명 김사랑

[성남일보] “김사랑 정신병원 감금 진상 밝혀라”



[출처 : https://namu.wiki/w/%EC%9D%B4%EC%9E%AC%EB%AA%85(1964)/%EB%85%BC%EB%9E%80%20%EB%B0%8F%20%EC%82%AC%EA%B1%B4%EC%82%AC%EA%B3%A0#s-7]

  • 이재명과 경기동부연합..


이재명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김미희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야권연대 단일화 대가로 경기동부연합 쪽에서 운영하는 '나눔환경'이라는 업체를 성남시 청소용역 업체로 선정해 특혜를 제공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제기되었다. 이 기사에서 경기동부연합 연관성 의혹을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야 정치권과 재야·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주사파 혁명론과 민족해방(NL) 이론으로 무장한 구 통진당 인맥과 경기동부연합 운동권 세력이 이재명의 실질적인 정치 기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일 이외에도 이재명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일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구 통합진보당의 핵심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소속 조직이 지지 핵심 기반이라는 의혹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을 소개한 한 언론의 기사에 따르면 이재명의 주요 지지기반을 경기동부연합으로 분석하였다. 언론에서도 나올 정도로 이재명은 선거에서 성남시에 기반을 둔 단체인 경기동부연합의 지지를 받았고, 이들이 주요 지지기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재명과 경기동부연합의 연관성은 적지 않다.


이재명 논란


경기동부연합이란 이재명이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경기도 성남시에 기반을 둔 정치단체로, 이석기의 내란음모 혐의로 인하여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판결을 받아 해산된 구 통합진보당의 핵심 세력이었다. 이정희, 김세연, 이석기 등등이 주요 인물이었고, 2012년 총선 직후 터진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을 저지른 세력이기도 하다. 


물론 시장으로 출마한 성남시에 기반을 둔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선거유세를 다니고,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해당 단체가 논란이 있어왔고, 이 조직이 소속된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이 종북 논란이 있었고, 한 당원의 내란음모 관련 발언을 이유로 정당이 해산까지 받았던 것을 고려해 보자면,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이러한 단체를 선택한 것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비판


  • 이재명의 띠 색깔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은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당의 색깔인 파란색이 아닌 주황색 띠를 차고 왔는데 주황색은 구 통합민주당의 핵심 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민중연합당의 색깔과 비슷하다. 이재명의 띠 색깔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으나, 이재명은 오렌지 혁명을 상징하는 주황색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이재명과 오렌지 혁명이 무슨 관련이 있다고?


이에 대해 이재명은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종북이라고 매도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종북몰이라고 강력히 비판했지만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서 당의 색깔이 아닌 다른 색을 썼을 때 일어날 논란을 생각했다면 경솔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주황색


2017년 7월 6일, 양심수 없는 나라로에 참가하였는데 이것이 이석기 석방 운동 아니냐는 의심어린 눈초리가 보수 세력에서 제기되었다. 다만 해당 단체는 전국여성연대, 조계종,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원불교,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제도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도 참여한 단체. 일반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여 정치/종교/인종/문화 등의 온갖 요인으로 인해 박해를 받아 구속된 모든 사람을 석방하라는 요구지 이석기를 석방해달라는 요구가 기본 전체가 된것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종북적 행위일시 대한민국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지지자와 조계종, 원불교, 장로회, 감리교는 종북화한다. 해당 언론에선 양심수(이석기)라는 병기를 사용 중이지만, 해당 언론사는 박근혜를 반대하는 국민을 촛불세력이라 규정하거나 트럼프의 행적을 지지하거나 수리온에 대해 옹호적이고 문재인 및 원내정당중 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 비판을 가하는 언론사이므로 걸러서 들어야 한다. 


사실 이재명은 종북은 정신병이라 하거나, 더민주 신입당원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지금 북한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종북은 당연히 문제고, 종북몰이도 과감하게 대처해야 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9D%B4%EC%9E%AC%EB%AA%85(1964)/%EB%85%BC%EB%9E%80%20%EB%B0%8F%20%EC%82%AC%EA%B1%B4%EC%82%AC%EA%B3%A0#s-8.6]

바닥에서 오로지 능력과 노력만으로 정상에 오른 영화 같은 인생사. 


인생사가 다사다난하다. 빈농 노름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초졸 소년공으로 온갖 산업재해를 입고 보상도 못받고 검정고시로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학금 하나 믿고 뼈를 깎는 수험 생활 끝에 변호사가 됐다. 정치인이 돼서도 한 번에 당선되는 법이 없었다. 3회만에 당선됐지만, 2017년에 사망한 셋째 형이 동생의 공직 자리를 이용해 알선 수재를 하려다 까이고 원수가 됐다. 여동생은 청소부 일을 하다 과로로 죽었다.


그의 인생사를 쭉 훑어보고 그의 정치 커리어를 쭉 훑다보면 "나는 어차피 밑바닥이니 잃을 게 없다. 이렇게 살다 죽더라도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 세상을 다 씹어먹어보이겠다" 라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것만 같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정계의 에미넴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셈.



이재명 성남


  • 출생 그리고 가족

1963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5남 4녀 중 일곱째였으나, 누나 둘이 요절하면서 다섯째가 됐다. 


그의 부친 이경희는 경북 영양군 사람으로 대구 청구대학교를 중퇴하고 순경, 교사 등을 하다 노름에 빠졌고, 이후 탄광관리자 등을 전전하다가 경북 안동군 예안면 산골 '지통마'에서 농사를 지었었다. 그의 부친에 대한 증언으로는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 산골 마을에서 동장을 맡았다 등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조그만 땅뙈기까지 노름에 날리고 976년 하산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장통에서 청소부 일을 했다. 참고로 이재명 시장의 모친은 공중 변소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요금을 받았다고. 너무 가난해 남들 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재명은 성남 상대원 공단 소년공으로서 괴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생일을 까먹은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 정했다고. 생일 파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학교 등록을 하려면 알아야 되니까.


초등학교는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다녔지만, 초등학교와 집의 거리가 6km이 였기에 재해나 추위가 닥치면 가지 못하거나 본인이 재해를 만들거나(...) 해서 결석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엔 교사만을 보고 본인도 교사가 되면 권위적일수 있겠다는 체벌도 할 수 있고 생각에 교사를 내심 꿈꿨지만 바로 공장 일을 하였기에 포기했다고 한다.


  • 공장생활 시작

첫 번째 공장은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이었고, 2번째 공장은 붕산으로 땜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떼였다. 


이후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5번째로 일한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기 작업 중 프레스기에 왼쪽 팔이 그대로 끼어들어가는 산업재해를 당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으나, 당시 본인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해 치료를 받지 않았다. 팔부상으로 병역 신체검사에서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여담이지만 군의관이 엑스레이를 보며 "이 새끼 이거 개판이네"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얘기는 이재명 시장이 그 말에 상처 받았는지 두고두고 언급하는 말이다. 사실 이 사실은 이 시장이 장애를 숨기고 싶어했던 그 이유 때문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스티브 유가 주제넘게 병역문제로 디스하자 본인이 직접 꺾인 왼팔을 보여주며 인증했다.  참고로 현재는 왼쪽 손목 뼈없이 근육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한다.


당시 자신을 개 패듯 두들겨 패던 공장 관리자가 고졸인 것을 보고, '나도 고졸이 되면 관리자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락카실을 자원해서 일을 했는데, 락카질은 도금 공정의 마지막 단계 이기에 먼지 하나 없는 밀폐 구역을 만들어 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근무시간에조차 허락 없인 열리지 않는 이중문 안쪽에서 혼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할당된 작업량을 서둘러 끝낸 뒤 귀퉁이에 숨어 몰래 책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밀폐된 열악한 작업 조건 아래 벤젠과 아세톤 냄새를 너무 맡아 후각을 상실했으며 코가 비뚤어졌다. 


또, 3번째 공장에서는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혔는데 파편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특히 4번째 공장 때 날카로운 함석들에 찔려 흉터가 많다고 한다. 더불어, 폭력을 휘두르던 작업반장 때문에 난청과 부분적 청각 장애도 있다. 


우울증과 장애로 너무 힘든 나머지 17살 때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첫 시도 때 연탄불이 알아서 꺼졌고, 2번째 때는 둘째 형이 구해줬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지막 시도땐 다량의 수면제를 구하러 갔다가 눈치 챈 의사가 소화제를 대신 줘 죽지 못했다. 


이 무렵 어머니는 낮에는 일을 하시다 밤에는 막걸리 장사를 하셨는데 손님 중 한 명이 안주를 나눠 주더니 "귀가 참 잘 생겼네" 라며 복귀라고 뭘 해도 잘 될 놈이라 칭찬하였다. 때마침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울했던 것이 점점 상쇄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재명 과거


  • 검정고시와 대학입학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1982년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밝힌 법대 진학 이유는 순전히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때문이었다. 당시 공장 월급이 8만 원 정도였는데 등록금 면제는 물론 생활비로 매월 20만 원 가량을 지원받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중앙대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가 교복을 사주어 교복을 입고 중앙대학교를 갔다. 어머니도, 그 외 가족들도 대학은 물론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 교복을 입는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 이재명 시장은 중고등학교를 못 다녀봐 교복을 못 입어 봤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어머니가 교복을 사주실때도 가만히 있었다고. 사실 이 시장도 몰랐는데 변명하는 거 아닐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보니 교복을 입은 사람은 자기 뿐이였다고 한다. 아싸가 안된게 다행이다


역시 공장에서 일하던 셋째 형 이재선에게 지원받은 생활비를 쪼개주겠다 설득해 대입 시험을 치르게 했고, 이재선은 건국대학교에 들어가 공인회계사가 됐다.


대학교에 다니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고 원래부터 약자에 대해 동병상련이 있었던지라 세상이 자신만 잘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였다는 것을 이때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 인권변호사 겸 시민운동가 시절 

선배들에게 사법시험에 관해 들었고, 특히 장애인이라 취업이 힘든 자신에게 고시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사법시험에 도전한다. 1986년 사법시험에 붙기 직전 청소부였던 아버지 이경희가 위암으로 위독해 입원했는데, 정작 문병을 가니 아버지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놈을 내가 거길(법대를) 보냈어"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공부한다고 밀어주기는커녕 이 모든 가난의 원인이었던 아버지였지만 아픈 마당에 구태여 반박하기도 그래서 그때는 그저 맞다고 했다고 밝혔다. 


결국 1986년 10월 23일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급히 병세가 나빠져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 귀에 합격했다고 보고를 했지만 이미 의식이 없어 들었는지는 알턱이 없다고. 며칠 후 이경희는 사망했다.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은 후,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뜻으로 자신이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고 순간 멈칫했다지만 결국 변호사 겸 성남 지역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사족이지만 모친에게는 성적이 안 나와서 변호사를 하는 것이라 둘러댔다고 한다. 


한편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앞서 말하였던 대학생활 중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를 알게된 것도 있고,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 볼 때 사회모순으로 억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법률사무소를 연 초반에는 상당히 젊은 나이였기에 상담 오는 사람마다 족족 젊은 사람이라 신용하지 못하고 나가는 데다 개업한지 얼마 안 된 터라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한다. 변호사 초장기엔 노동운동이나 인권과 관련된 변호 활동을 위주로 하였고 이 당시가 바로 인권변호사 시절이다. 


문민정부 집권 이후 고문이나 시위 강제진압들이 사라지면서 1995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가가 된다.


이재명 변호사


  • "양심값은 5천억"

2002년 분당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당시 이재명이 본격적으로 이에 대해 이의제기와 문제제기를 하였었는데, 당시 관련 인물들은 20억 상당의 지역신문사를 보장해줄테니 문제제기를 자제하라고 회유를 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재명은 "양심값은 5천억"이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이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들이 이재명과 모종의 거래를 하다 실패하였다는 식으로 말하며 몸값을 높여 당황하였다고 회고하였다. 


그렇게 되며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협박을 받을 당시 실제로 두려움을 느껴 총포소지허가증를 받아 가스총을 소지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협박에도 회유가 되지 않자 패륜아, 악덕 변호사 등의 이미지를 붙여 그를 공격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떨어져 나갔다고.농담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2004년, 이재명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 있는데 당시 성남시민들이 공공 의료원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 최초로 2만명이 주민 발의 조례를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주민이 시 의회에 장정 1년을 준비한 해당 조례를 넘기자 47초 만에 날치기로 심의 자체가 거부 되었었다. 당시 이재명은 주민 대표 중 한명이였는데 이 당시 성남시민들과 의회에서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회의 속개를 진행하고 의회를 나간 의원들을 붙잡으러 다니다 30여명이 같이 연행되며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죄를 선고하였다. 당시 대표 주민이였던 임모씨에겐 구속 영장을 발부하였으나 기각되었다.


당시 이재명 시장이 흘린 눈물이 현재도 자주 화제가 되는데, 이재명 시장은 부결까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심의 자체가 거부 당하자 마음 속에서 울분과 허망감이 나와 울음을 흘렸던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이후 교회 지하실에서 지인과 도시락을 먹으며 또 울다가 시장이 되서 시립의료원을 만들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본래는 정치에 나오면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에 하지 않았었다고.


여담이지만 이재명 시장은 생각보다 자주 눈물을 흘리는데, 이 때문에 인간스럽다는 평[21]과 더불어 갭모에 겉바속촉 외강내유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재명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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