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현

동교동계 직계와 친노계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 친노계의 큰형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의정부시 행복로 근처에 위치한 숭문당의 창업주. 호는 정흥(正興)인데 사실은 개명 전 이름은 문정흥이었다. 야구인 김영조의 사위이며,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이다.


대한민국의 제14대, 16대~20대 국회의원이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2번이나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거물급 인사다.현재 20대 국회의원 기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중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1945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정부 지역의 대지주였다. 말하자면 금수저.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운동에 투신,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다. 이 때문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인다. 의정부시가 원래 실향민이 많아서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지역인데다가, 아버지 역시 열혈 박정희 지지자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당시 "빨갱이"로 매도되던 김대중 밑에서 일하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대노했다고 한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8/07/13 - [Hot issue/정치] - [주승용 국회부의장] 만렙 철새의 금의환향?

2018/07/13 - [Hot issue/정치] - 국회의장에 대해 알아보자 (임기, 선출 방법, 서열...등)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하고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두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 의원과 더불어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힌다.


2014년 말 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가운데 2004년, 처남의 대한항공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됐는데 "도대체 왜 짤린 거지?"가 대체적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취업 청탁 의혹이 있지만 이미 12년이나 지난(...) 문제일 뿐더러, 문희상의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도 없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분개했다고 한다. 결국 문희상은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었다. 결국 6선에 성공했다.


야권의 승리와 더불어서 2016년 4월 현재 20대 국회의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이석현, 정세균 의원보다 정계은퇴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 다만 2004년 취업청탁에 대한 구설수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의장직을 건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에게 패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가 되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여도 일본과 나름 연이 있는 인물이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위안부 합의가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서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베 신조와의 만남에서 아베는 높은 위치의 의자에 앉고 문희상 특사는 낮은 의자에 앉게 해서 일부러 이렇게 무시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MBN 기사 낮은 의자에 푹 꺼져 앉아서 야쿠자 보스 행세를 하고 있으나, 정작 아베는 높은 의자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다.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여기서도 문희상이 앉았던 의자와 똑같은 의자에 앉았고, 이 때도 홀대론이 나왔다.


2017년 국회 본회의 출석율 100%(!)를 기록했다. 다선의원들이 대체로 정당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전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기록이다. 문 의원을 제외하고 출석율 100%를 기록한 의원들이 모두 20명인데 모두 초선이나 재선, 높아봐야 3선 의원들이다. 괜히 부동명왕이 아닌가 보다.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 박병석 의원과 함께 출마했다. 묘하게 민주당은 재수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차기로 유력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도 재수였고, 원내대표도 재수였다.


2018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서 총 116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박병석 의원(47표)을 넉넉하게 제쳤다. 이후 여야 간 상임위 분배 기싸움으로 의장 선출이 연기 되었으나, 7월 10일 여야 원내대표들이 7월 13일 국회의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를 합의하면서 13일 의장으로 선출될 예정이다.그래서 요새 사진 보면 표정이 아주 밝다.


현역 정치인 중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인상파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주류 언론에서 외모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본인도 외모를 이용한 자학 개그를 만들 지경이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순한 성격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취미도 서예이며, 국회의 서예 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위에 나왔듯이, 정치 자체의 스타일도 자신의 주장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친화력으로 타협하는 위치에 가깝다.


언론이나 정계에서 불리는 별칭으로 '장비', '포청천' 등이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부동명왕'이라는 별명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그나마 칭찬해 주는 말이 "문희상, 겉은 장비 속은 조조"일 정도로 아무리 칭찬해줘도 외모는 결국 장비다(...).


인상이 강경 보수파 정치인으로 보여서 잘 모르는 젊은 지지자들 사이에선 '자유한국당 의원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얼굴이 자한당 한나라당 의원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2018/07/13 - [Hot issue/정치] - [주승용 국회부의장] 만렙 철새의 금의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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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질녀 이하늬는 2015년 12월 23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이 살 찌면 외숙부 문희상과 닮았다고 자학했다(...) 여담으로 네이버에 문희상 치면 연관 검색어가 '문희상 이하늬'이다. 실제로 이하늬는 외숙부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하늬의 아버지, 즉 문희상의 매제인 이상업은 문희상이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경찰청장 후보에 이름이 올랐었지만, 정작 이 문희상과의 관계 때문에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들이 어찌 납득하겠냐'라는 논리를 펴서 임명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문희상 본인도 반박할 수 없는 지적이라 받아들였다고.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외모를 나누자면 인상파에 분류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일한 스타일로는 이해찬 의원이 있다고. 다만 이해찬 의원은 까칠함이 많이 드러난다.


* 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이해찬과 문희상이 나란히 앉았는데, 이 두 사람의 표정만 보면 "강성 반문 성향의 원로 의원들이 억지로 취임식에 참여한 것 같다(...)"는 반응들이 올라왔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친노-친문계에서는 맏형급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뛴 인물들이다. 친문의 대장급인데, 두 사람 다 외모는(…) 뒤에 심재권 의원과 이석현 의원도 표정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일본 특사로 일본에 가게 됐을 때 일본인들에게 '야쿠자 두목, 오야붕, 악당 얼굴 같다'는(...) 인상 평을 들었다. "대화를 하자면서 야쿠자 오야붕을 보내다니..."라는 분위기.어쩐지 아베가 더 편한 의자에 앉은것 치고는 좌불안석 같더라니 사실 조선통신사 때부터 이어지던 유구한 전통이라고 한다



같은 지역구를 맡는 홍문종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과 같은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이다.

18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할때 당시 한나라당국방위 간사가 유승민 의원이였는데, 2009년 당시 제2롯데월드 논란에서 당시 유승민은 여당 간사임에도 매우 신랄한 비판으로 제2롯데월드를 반대했었는데 이것이 꽤 인상적이였던 모양. 당시 국회 속기록에서 "이런 분이 있기에 이명박 정권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존경의 염(念)을 표한다." 라고 하였으며. 훗날 문재인 대선 선대위원장을 맡았을때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유승민 후보는 대통령감이다. 자질과 역량을 모두 갖춘 정치인." 이라며 이례적인 상대후보 평을 한 적이 있을 정도.


2018년 지방선거의 결과로 보수가 궤멸했다는 표현에 대해 보수 세력의 몰락이지 보수의 궤멸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민주당도 한때 폭망했다가 살아났음을 언급하였다. 다만 보수 정치인들이 이번에야 말로 크게 반성하고 희생과 혁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덧붙였다.


2018/07/13 - [Hot issue/정치] - [주승용 국회부의장] 만렙 철새의 금의환향?

2018/07/13 - [Hot issue/정치] - 국회의장에 대해 알아보자 (임기, 선출 방법, 서열...등)


[출처 ㅣ https://namu.wiki/w/%EB%AC%B8%ED%9D%AC%EC%83%81]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이다.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정양석, 조훈현, 신보라와 더불어 광주전남(光州全南)출신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지역감정이 판을 치기 전 군부 독재에 맞서 투쟁하던 김영삼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경우와 다르게, 심재철이 신한국당에 입당한 시기는 군사정권의 연장인 민정당과의 삼당합당 이후로 김영삼이 인재수집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영입이었다. 


광주 출신인 심재철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대한 결정적인 위증으로 김대중을 사형 선고 받게 하였기 때문에 당시 김대중이 이끄는 평민당 입당에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이 심재철 항목은 심재철에게 비판적인 글은 끝없이 지워지고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보통은 그저 본인 홈페이지에나 올라와 있는) 사소한 수상 경력이나 입법 내용으로 도배가 됐었다.



민주화 후퇴의 책임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현재의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고,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진학한 후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대학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10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서울역 회군을 결정하는 오판을 한다. 


(이 문장 뒤에 "물론 지도부와 연락 중이던 DJ의 지시에 의한 것도 있다"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는 심재철 측의 첨부인 듯하다. 그 문장대로라면 서울의 봄 행사의 주동자가 김대중이라는 얘기가 된다. 오오 역사 창조)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는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에 항거하기 위하여 수만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었다. 밤 8시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시위 지도부는 계속 시위를 할 것인지 해산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과 이해찬이 시위 철수 반대를 주장했지만, 심재철은 철수를 강하게 주장하며 서울역 회군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단행한다. 


심재철 : "솔직히 처음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인원이 군집했다. 이 많은 인원 수를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대로 계속 청와대까지 진군하다간 사분오열되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지 모른다. 일단 각 학교로 해산 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진군하자"


유시민 : "지금 이 상태에서 해산을 명하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게 끝난다. 이 많은 인원이 현재 여기서 복귀한다면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걸 끝내야 한다."


당시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의 발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후에 심재철은 "엄청난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20대 초반의 우리는 너무 어렸고, 상황을 너무 몰랐다"는 발언으로 본인의 오판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나, 그 당시 서울의 봄이 무슨 20대 애들이 몰려와서 난동 부리는 수준도 아니고,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라는 이야기가 매우 많다. 때문에 공수부대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을 먹어 자진 해산했다는 비판이 이후 심재철의 일생을 따라다녔으며, 며칠 후 광주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포에 희생되고 행방불명 되는 참상이 벌어져, 철수한 학생들은 광주에 대해 평생 일종의 부채의식을 지니게 되었으나 심재철 본인은 5.18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보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니고 있다.


민간인 고문 (서울대 프락치 사건) 주동 후 책임 전가

심재철은 군사정권 당시 독재와 싸운다는 미명 하에 민간인을 고문했다. 이 사건 때문에 심재철이 아닌 뜬금없는 유시민이 그 폭력 행위를 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6년 유시민의 장관 취임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예전 일명 서울대 프락치 사건(학생 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에서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당했던 전기동이 "나를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을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은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을 돌려 보내며, 이 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당시 전기동의 주장은 "나는 (가짜 서울대생이였지) 프락치가 아님에도 여러 사람이 나에게 폭행을 가했고, 유시민은 폭행이 일어날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가 끝나고 나타나는 등, 교묘하게 뒤에서 지시하였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나를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폭행 가담자들에게 나를 돌려 보내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폭행을 뒤에서 조종한 자가 유시민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직접 폭행을 가한 사람은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덕분에 서로 할 말이 없어, 마타도어가 가장 난무하는 선거 때도 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허위 진술

심재철은 "김대중으로부터 20만원을 받아 시위에 사용했다"고 증언하였다. 이로 인해 김대중이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검찰이 기소하였고, 이 때문에 김대중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에 심재철은 "내가 가장 심하게 고문을 받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를 하였다.


그 뒤 교사에 임용되어 동대문여자중학교[9]에서 영어교사를 지내다가 MBC에 입사하였다. MBC방송국 보도국 기자를 지냈으며 1988년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어 초대 전임자를 지냈고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 중 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유2년 (1993.1.20)을 선고받는다.


이 항목은 심재철이 MBC방송국 보도국 기자를 지냈으며 1988년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어 초대 전임자를 지냈고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에서 옥고(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유2년 (1993.1.20)를 치렀다는 글로 수정되었다.[10] 당시의 상황은 이미 군부 독재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결정적으로 집행유예는 말 그대로 집행을 안 한다는 뜻이니 미결수로 구치소에 수감된 시기를 옥고를 치른 것으로 한 셈이다.


MBC 기자를 거쳐,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 동안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출신도 광주광역시고 나름 운동권이었기에 김대중에게 가려 했으나, 배신자는 당연히 안 받아줘서 신한국당으로 갔다는 얘기가 풍문으로 돌았었다. 


건국절 주장: 건국절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권이 없었다"며 건국절을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의도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광복회의 주장을 "견강부회"라며 비난했다.


" 대통령 재검표를 요구하는 집회에 사용한 플래카드에 북한에서 사용하는 광명체와 흡사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불법 사찰 국정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단 1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고 방치하면서 월 600만원씩 1년 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이 2013년 8월에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아무런 반응도 안 하고 4개월 후, 특위 설립 16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특위 활동을 종료하기 위해 모여 5분만에 회의를 마치며 특위를 해산했다. 이에 중앙일보에서 "1년 반 동안 21분 회의하고 해산한 국회 민간인사찰특위"#라는 비판적 기사를 게재하자 뒤늦게 활동비 9천만 원을 반납했다고 주장했다.


“광우병에 걸린 소로 만든 등심 스테이크는 먹어도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네티즌들이 반발하자 "'절대'라는 단어는 뺀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이후 MBC <PD수첩>이 '광우병' 방송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발언을 비방할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성실한 의정활동과 정직한 정치로 대학생들이 뽑은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으로 선정되었다.하지만 2013년 3월 22일 국회 본회의 도중 누드 사진을 본 것이 밝혀지고, 그에 대해 거짓 해명을 한 것이 밝혀짐으로 인해 그 빛이 바래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모욕적인 유언비어를 담은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다 걸린 적이 있다. 본인은 "남에게 받은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하였고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2008년 한 인터넷 카페에서 '배신의 역사 심재철'이라는 글이 올라오자, 스마일이라는 대화명의 유저가 "허위사실 유포"라며 "사이버경찰에 신고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때 다른 유저가 스마일의 대화명을 클릭하자 심재철의 공식 블로그로 연결되어, 네티즌들로부터 "본인이 댓글 알바하냐"고 조롱을 당했다. 아예 후원금이라며 18원을 보내는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


2013년 3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본회의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포착된 적이 있다. 심재철 의원은 '누가 카카오톡으로 뭔가를 보내줘 이게 뭔가하고 열어봤더니 그런 사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본인이 직접 '누드 사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모습을 찍은 기자도 있었기 때문에 얼마 안 가 거짓말임이 들통나고 말았다. 기사 공교롭게도 심재철 의원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이 일로 윤리특위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훗날 이 사건이 잠깐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내홍에 휩쓸렸을 때 심재철 의원이 당시 당 대표 권한대행도 겸하고 있었던 김성태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자,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놓고 "201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성의 누드 사진을 보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노출됐을 때 막아주지 않았느냐.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또 그걸로도 모자라 "당의 혜택을 받아 국회부의장을 하면서 특수활동비를 받았는데, 밥 한 번 산 적이 있느냐"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


2001년 3월 29일자 여러 신문의 1면에 등장하였는데, 그 방법이 매우 전형적인 언론 이용의 행태라 하여 손석희에게 지적당했다.


2017년 9월 4일 자유한국당 보이콧 시위를 촬영하고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손혜원 의원의 촬영을 피켓으로 막으려던 적이 있었다.


2017년 11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형사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사 이에 대해 여당 지지층은 "문 대통령에 대해 정녕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지, '해야 한다'고만 주장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슨 생각인 거냐"는 비판을 던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게 모범적인지는 둘째 치고 일부 보수층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보다 심재철이 조금이나마 낫지 않냐는 의견이다. 일단 본인이 DJ,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의원 중 한 명이었기도 하고. 물론 본인이 역관광 당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홍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하자 당권을 잡으려는 듯이 몸풀기를 하고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C%8B%AC%EC%9E%AC%EC%B2%A0#s-2.3]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동교동계 직계와 친노계에 모두 해당하는 인물. 친노계의 큰형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의정부시 행복로 근처에 위치한 숭문당의 창업주. 호는 정흥(正興)인데 사실은 개명 전 이름은 문정흥이었다. 야구인 김영조의 사위이며,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이다.




대한민국의 제14대, 16대~20대 국회의원이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에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2번이나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거물급 인사다.현재 20대 국회의원 기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중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1945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정부 지역의 대지주였다. 말하자면 금수저.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운동에 투신,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다. 이 때문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80년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인다. 의정부시가 원래 실향민이 많아서 레드 콤플렉스가 심한 지역인데다가, 아버지 역시 열혈 박정희 지지자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사였기 때문에, 당시 "빨갱이"로 매도되던 김대중 밑에서 일하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대노했다고 한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하고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두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 의원과 더불어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힌다.


2014년 말 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가운데 2004년, 처남의 대한항공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됐는데 "도대체 왜 짤린 거지?"가 대체적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취업 청탁 의혹이 있지만 이미 12년이나 지난(...) 문제일 뿐더러, 문희상의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도 없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분개했다고 한다. 결국 문희상은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었다. 결국 6선에 성공했다.


야권의 승리와 더불어서 2016년 4월 현재 20대 국회의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이석현, 정세균 의원보다 정계은퇴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 다만 2004년 취업청탁에 대한 구설수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의장직을 건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에게 패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가 되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여도 일본과 나름 연이 있는 인물이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위안부 합의가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서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베 신조와의 만남에서 아베는 높은 위치의 의자에 앉고 문희상 특사는 낮은 의자에 앉게 해서 일부러 이렇게 무시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MBN 기사 낮은 의자에 푹 꺼져 앉아서 야쿠자 보스 행세를 하고 있으나, 정작 아베는 높은 의자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다.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여기서도 문희상이 앉았던 의자와 똑같은 의자에 앉았고, 이 때도 홀대론이 나왔다.






2017년 국회 본회의 출석율 100%(!)를 기록했다. 다선의원들이 대체로 정당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전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기록이다. 문 의원을 제외하고 출석율 100%를 기록한 의원들이 모두 20명인데 모두 초선이나 재선, 높아봐야 3선 의원들이다. 괜히 부동명왕이 아닌가 보다.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 박병석 의원과 함께 출마했다. 묘하게 민주당은 재수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차기로 유력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도 재수였고, 원내대표도 재수였다.


2018년 5월 16일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서 총 116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박병석 의원(47표)을 넉넉하게 제쳤다. 이후 여야 간 상임위 분배 기싸움으로 의장 선출이 연기 되었으나, 7월 10일 여야 원내대표들이 7월 13일 국회의장 선출을 위한 본회의를 합의하면서 13일 본회의를 통해 후반기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현역 정치인 중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인상파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주류 언론에서 외모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본인도 외모를 이용한 자학 개그를 만들 지경이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유순한 성격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취미도 서예이며, 국회의 서예 동호회 회원이라고 한다. 위에 나왔듯이, 정치 자체의 스타일도 자신의 주장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친화력으로 타협하는 위치에 가깝다.


언론이나 정계에서 불리는 별칭으로 '장비', '포청천' 등이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부동명왕'이라는 별명이 새로 떠오르고 있다. 그나마 칭찬해 주는 말이 "문희상, 겉은 장비 속은 조조"일 정도로 아무리 칭찬해줘도 외모는 결국 장비다(...).



인상이 강경 보수파 정치인으로 보여서 잘 모르는 젊은 지지자들 사이에선 '자유한국당 의원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얼굴이 자한당 한나라당 의원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질녀 이하늬는 2015년 12월 23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이 살 찌면 외숙부 문희상과 닮았다고 자학했다(...) 여담으로 네이버에 문희상 치면 연관 검색어가 '문희상 이하늬'이다. 실제로 이하늬는 외숙부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하늬의 아버지, 즉 문희상의 매제인 이상업은 문희상이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경찰청장 후보에 이름이 올랐었지만, 정작 이 문희상과의 관계 때문에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매제가 경찰청장이 되면 국민들이 어찌 납득하겠냐'라는 논리를 펴서 임명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문희상 본인도 반박할 수 없는 지적이라 받아들였다고.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외모를 나누자면 인상파에 분류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일한 스타일로는 이해찬 의원이 있다고. 다만 이해찬 의원은 까칠함이 많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일본 특사로 일본에 가게 됐을 때 일본인들에게 '야쿠자 두목, 오야붕, 악당 얼굴 같다'는(...) 인상 평을 들었다. "대화를 하자면서 야쿠자 오야붕을 보내다니..."라는 분위기. 어쩐지 아베가 더 편한 의자에 앉은것 치고는 좌불안석 같더라니 사실 조선통신사 때부터 이어지던 유구한 전통이라고 한다.


18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할때 당시 한나라당국방위 간사가 유승민 의원이였는데, 2009년 당시 제2롯데월드 논란에서 당시 유승민은 여당 간사임에도 매우 신랄한 비판으로 제2롯데월드를 반대했었는데 이것이 꽤 인상적이였던 모양. 당시 국회 속기록에서 "이런 분이 있기에 이명박 정권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존경의 염(念)을 표한다." 라고 하였으며. 훗날 문재인 대선 선대위원장을 맡았을때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유승민 후보는 대통령감이다. 자질과 역량을 모두 갖춘 정치인." 이라며 이례적인 상대후보 평을 한 적이 있을 정도.



[출처 : https://namu.wiki/w/%EB%AC%B8%ED%9D%AC%EC%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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