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선 국회의원

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1920년대 태어나 1960년대(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정치를 한 시대다. 


사실상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 1960년대부터의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삼김을 빼 놓고서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김종필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3김이 완전히 정계를 떠난 2004년 뒤에도 정치가들은 삼김과 반드시 엮인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양김 산하의 정치인들이다


현재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고, 민주화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두 계파 모두 보수/진보진영 양측으로 알아서 갈라지거나 제 갈길을 찾아갔다. 현재의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은 김영삼의 영향이, 더불어민주당 / 민주평화당은 김대중의 영향이 크게 미쳤던 당들이다. 현재는 이 두 당은 YS가밀어준 이명박 대통령과, DJ가 밀어준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그 색이 많이 옅어져 YS와 DJ 시절 성향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명박(과 이회창)과 노무현은 자신을 키워준 김영삼, 김대중의 계파들을 쳐내고 권력을 장악하며 양김과 갈등을 쌓았다. 


김종필의 경우는 민주화 운동가였던 DJ와 YS에 비해 유명세가 딸렸고, DJ가 가진전라도, YS가 가진 경상남도 기반에 비해 JP의 충청도 기반 위력은 작은 편이었다. 결국 JP는 충청도 지역을 김대중에게 넘겨, 충청도 지역은 당시 민주당의 지역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을 겪으며 충청도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다소 잃었고, 한때 충청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부와 강원일대에서도 선전했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그 세가 크게 약화된 후신인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은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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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의 16대 대선, 17대 대선 역시 YS와 DJ의 부하들끼리의 양자구도 싸움 양상을 이뤘기에 18대 대선이 되어서야 양김의 영향력이 약해지게 된다.


삼김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정권을 휘어잡은 건 90년대부터인,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취임한 후부터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경력으로 주목받는 부분은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 맞서던 시기다. 당시 민중운동도 꽤 활발했지만 사실상 정치계에서의 민주화 투쟁이 절대적이었으며, 양김은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야당(민주당, 신민당 등)은 지리멸렬한 상황이었기에 야당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다며 온몸을 다 바치던 YS나 DJ가 유명할 수밖에 없긴 했다. 이 김씨들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게 항상 눈엣가시였다.


2000년대 들어서야 이회창과 노무현이 삼김에서 벗어나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각각 김영삼, 김대중에게 반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각각 신한국당,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을 자기 마음대로 꾸리고 공천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체제였기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 때문에 구시대적 관습을 없애자는 이회창/노무현 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일명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로 불렸으며, 김종필은 박정희 밑에서 사실상 넘버투로 일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신민당을 이끌며 테러/납치/감금/투옥을 비롯한 고초까지 겪으며 박정희에게 항거했다. 정부에게 항거한 양김, 박정희 밑에 있던 김종필은 대한민국 내에서 입지가 무척 탄탄했다. 물론 전두환 정부는 정적인 셋을 또 탄압했다. 알다시피 DJ와 YS는 목숨을 걸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에게 항거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건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이 있지만, 그 외에도 흉기 든 깡패, 폭발물 등등...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계에 등장한 세 사람은 1970년대 제7대 대통령 선거와 유신 정권에서 전면에 나섰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대에는 신군부에 고초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계속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결국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신한민주당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으로 부활한 세 사람은 각각 PK, 호남, 충청(충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연횡했으며, 제14대 대통령 선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대통령은 각각 1998년, 2003년 퇴임하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선 의원에 실패한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하는 것을 끝으로 3김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로 김대중 前 대통령은 2009년 8월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2015년 11월엔 김영삼 前 대통령도 사망하였다. 김종필 前 총리 역시 2018년 6월[11] 결국 사망함으로써 3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셋 다 성향과는 별개로 젊을 때의 인물이 워낙 좋아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JP, DJ, YS 이 사진들의 시기는 무려 김대중은 60년대, 김영삼/김종필은 50년대로, 사실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령의 할아버지들인 셈이다. 이 세 사람은 제1공화국때부터도 주요 요직이나 정치인 자리에 있었으니 정치에 관해선 수십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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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도 대한민국 정치권의 거물 대다수는 삼김 덕택에 정치를 시작하거나, 삶이 바뀌었다. 여야중진 대다수는 삼김에게 직접 영향을 받으면서 정치를 했다. 말하자면 삼김은 친 이승만, 즉 자유당 계열 정당 정치인들과 조병옥 등의 과거 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받았으며 박정희 때의 민주공화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정의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있었고 신민당-신한민주당 계열 정치인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는 보수정당의 민정계, 공화계, 민주계, 그리고 민주당계 정당의 동교동계가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민자당 정치인들과 신한국당 개혁성향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받았고 한나라당 대다수 정치인들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친노 정치인들과 386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은 물론, 친박계, 친이계 등도 삼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삼김은 군부세력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군부 쿠데타 핵심세력들과 신군부, 하나회는 물론, 군 장성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또 육,해,공군과 해병대, 야전군, 특전사 등의 군부 인사나 군 간부들도 삼김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았고 마찬가지로 검찰이나 법원의 고위인사나 원로 법조인 및 원로 변호사, 판사나 검사 등에도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친 곳이 없다. 또한 대형 로펌 대표를 비롯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에게도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그리고 또 언론계에도 마찬가지로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데가 없는데, 조중동, 한경오 등을 막론하고 삼김의 영향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그리고 지상파 및 종편의 방송에도 삼김의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특무대-방첩대-육군보안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로 이어지는 군 정보기관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에도 삼김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을 정도다. 


또한 대한민국의 거대 재벌 총수들과 재벌 오너 및 대기업 CEO, 재벌 기업인들과 대기업 임원들과 중소기업 CEO, 중소기업 임원들에게도 삼김의 영향이 많이 미칠 정도다.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과 아예 무관한 정치 세대가 주류를 차지하려면 적어도 20년은 더 필요하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삼김은 압도적인 존재다.


김종필의 계파는 청구동계라고 칭하는데, 3김 중에 제일 미약하고 인지도가 낮다. 2018년 6월 23일 김종필이 향년 92세로 사망하면서 삼김시대는 결국 반세기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 예로, 김종필이 미국에 가있는 동안 박정희의 조카딸이기도 한 김종필 부인이 첫아이를 낳고 쌀이 없어서 굶고 있었는데, 육영수가 자기 식구들에게만 밥을 먹이고 산모에게는 밥을 먹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는 것. 


기사 내용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봤을 때 당시 김종필 부인이 육영수와 한 집에 살거나 바로 옆집과 같이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종필이 귀국했을 때 부인이 김종필을 붙잡고 서러움에 울면서 그 이야기를 했고, 분노한 김종필이 육영수에게 남도 아니고 조카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다는 것. 


심지어 김종필의 부인이 계속 굶는 것을 보다 못한 박종규(당시는 군인으로 김종필의 부하였는데 훗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된다.)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상경하는 김에 쌀을 잔뜩 사서 김종필의 집에 가져왔다고 한다.


"육 여사가 애를 낳은 산모더러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저쪽에선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벽에 걸린 부인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날 붙들고 울고불고하더라"


그런데 정작 이 시사저널의 기사가 여러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된 후, 김종필은 같은 고향 사람인 시사저널측 경영자가 찾아와서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 주고 받았을 뿐인데, 몰래 녹음까지 해서 왜곡·과장해 비열한 기사를 만들어 기사로 냈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영철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왜곡이나 과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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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향 사람에게 뒤통수 맞은 것이지만, 일단 법적으로 녹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불법행위지만 대화 당사자 중 하나가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화내용을 허위 또는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고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일이 있고 넉달이 지나 헌재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부 언론이 추측했던대로 김종필 쪽에서 의도적으로 육영수 이야기를 시사저널측에 흘린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뿐 아니라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렇게 실수했다 또는 속았다는 핑계를 대며 언론에 기사거리 던져주는 행동을 한다.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고의로 그런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종필은 수십년 동안의 정치 경험을 통해서 언론을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이런 베테랑이 잘 알려지지 않고 그 파장도 클게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박근혜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론사인 시사저널 측 인사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순진하게 말해 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담 삼아 했다'고 말한 것 자체도 매우 의심스럽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필 본인의 조강지처인 박영옥을 소재로 농담을 했다는 의미인데, 김종필은 정치적 행보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가족관계, 특히 부부간의 금슬은 대단히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평생 금슬 좋게 지냈고 이미 고인이 되기까지한 아내를 두고, 밝고 유쾌한 내용도 아닌 매우 비극적인 내용으로 농담을 나눴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건 김종필이 거짓말(그러니까 '농담이었다'는게 거짓)을 말하거나, 아니면 김종필 본인이 지독한 위선자라고 자인하는 꼴이다. 앞뒤 사정을 고려하면 전자가 훨씬 가능성이 크다. 물론 김종필이 처음부터 육영수를 비난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관련 증언와 같은 증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김종필과 박근혜가 비록 사촌 형부-처제 관계이기는 하지만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가령 박근혜가 대선 직전 김종필을 만났을 때 호칭이 총재님이었다고 한다. 박근혜가 어렸을때부터 서로 자주 봐온 사촌형부-처제 사이인데도 굳이 '총재님'으로 말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하다. 또한 육영수의 좋은 이미지를 깨는 이런 이야기가 하필이면 박근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시점에 나왔다는 점 등도 의미심장하다. 처음부터 김종필이 이야기를 창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 의도가 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김종필이 이 시점에서 굳이 언급한 것이라면 역시 그 의도를 추측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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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친인척과 가족들은 의외로 서로 사이가 나쁘다. 


육영수 이전 김호남 사이에서 얻은 첫딸인 박재옥과 육영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박근혜와 박근령, 아들 박지만, 처제 육예수, 처형 육인순, 처남 육인수, 조카사위 김종필, 조카딸 박영옥, 박계옥 자매, 사위 신동욱, 며느리 서향희, 이종사촌조카 홍세표, 홍소자 남매 등 가족 친인척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견원지간이거나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 닭 보듯이 여기는 사이다. 


오죽하면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가 박근혜를 망치고 있다며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박지만과 박근령이 노태우에게 보냈을 정도였고 김종필 본인조차도 말년에 박정희-육영수 소생의 딸들인 박근혜와 박근령에 대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 좋은 점들만을 배웠다고 일갈했을 정도였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신드롬이 불었지만 정작 박정희의 친인척들은 같이 기념행사를 주최하거나 일치단결해서 선거에 임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박정희 추모식 때마다 누가 행사를 주도하느냐에 따라서 누군 오고 누군 안 오고, 설사 오더라도 서로를 마치 적대하듯이 대하는 등 볼썽 사나운 광경이 매번 연출되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것이다.



김종필은 충남 온양(지금의 아산시)의 육군 제13연대에 사병으로 배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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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방정국의 혼란 때문에 당시 군대는 악폐습, 똥군기라는 설명으론 가히 표현이 부족할 만큼 개판이었고 결국 가혹행위를 못이겨 불침번을 서던 와중에 탈영해버렸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 동기생의 자취방에 얹혀 살게 됐다. 한심한 처지의 울분을 억누르며 지내던 중, 해방이후 국도극장(國都劇場) 으로 이름을 바꾼 옛 황금좌 극장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와 마주쳤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극장 매점에 있던 교도대 중대장을 찾아가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재입대를 부탁했다(????????). 워낙에 탈영이 흔하던, 전쟁 이전 시절이라 중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국 육사 교도대에서 다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김종필을 눈여겨 보던 중대장이 그에게 육사 입학을 권유했고 그렇게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리고 8기생 졸업식에서 우등상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때 1,300여명의 8기 졸업생들 중, 단 32명만이 육군본부로 배속됐는데 김종필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김종필은 정보장교로 배정 되어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북한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여기서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던 장도영, 전투정보과장 이후락, 정보국 선임하사 박종규, 전투정보과 상황실장 박정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박정희는 육사 2기로 임관하여 현역 소령으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재직 중 남로당 입당 전력이 들통나서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으로 파면당한 후 장도영의 전임 정보국장 백선엽의 도움을 받아 문관 신분으로 직제에도 없던 정보국 상황실장 직을 맡고 있었다. 정보국으로 배치된 육사 8기생들에게 전투정보과장 이후락이 상황실장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했는데 박정희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나한테는 인사할 필요 없다"라며 자리를 피해 버렸지만, 이후 박정희와 육사 8기생들은 서로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고 결국 이들은 쿠데타의 주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정희의 중매(?)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 박영옥과 결혼한다.



김종필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던 박영옥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친척이자 작은 아버지인 박정희를 자주 찾아오며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김종필도 안면을 익히게 됐고, 어느날 불쑥 "자네, 내 조카딸 어떤가?"하고 박정희가 말을 던졌다. 당시로서도 나름 미인이던 박영옥을 김종필이 싫다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김종필은 박정희와 처삼촌-조카사위라는 인척 관계로 묶이게 되었고 이후 박정희는 김종필을 조카사위 입장에서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거의 항상 임자라고 불러댔다


[데일리한국] JP(김종필 전 총리)와 박영옥 여사의 '잉꼬부부' 이야기



한국전쟁 무렵, 당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유양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정보국장 장도영에게 찍히는 바람에 6사단 정보참모로 떨려났고 전투정보과 북한반장 백모 대위는 북한과의 무역거래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나면서 처벌받기 직전 권총으로 자살하는 등, 전쟁을 앞두고 김종필이 소속된 전투정보과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반의 선임 장교가 된 김종필은 이미 전선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북으로 정찰요원을 급파했지만 전원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개전 당일(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의 당직장교로 근무하던 김종필은 북한군이 38선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전면전임을 직감하고 육본의 각 국장 들을 호출했다. 아울러 채병덕 총참모장 및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전파하는 등 당직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당시 상황은 일개 중위였던 김종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후 1951년, 대위로 진급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장교단에 뽑혀, 조지아 포트 베닝(미 육군 보병학교)에서 연수를 수료했다. 김종필은 한국전쟁 후반부인 1952년 8월부터 53년 5월까지, 6사단 19연대의 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계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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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거물인 3김 중 하나.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인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직 군인. 약칭은 JP.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이며 안경공 김영정의 증손인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희철(金希哲)의 방계 후손이다. 1926년 1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정(雲庭)이다. 40년 이상 정치가로 활동하며 여러 정부에서 국무총리만 6년 반을 지냈다. 굳이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정치가.


한고제에게는 소하, 장량이, 유비한테는 제갈량이, 조조에게는 순욱이, 태종에게는 하륜이, 세조에게는 한명회가 있다면 박정희에게는 김종필이 있었다. 이른바 삼김시대의 삼김 중 한 명으로, 김대중이 2009년, 김영삼이 2015년에 숨을 거두면서 유일한 생존자였으나, 2018년 6월 23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만 92세)


둘째 형 김종익도 3선 국회의원을 역임, 셋째 형 김종락은 한일은행 지점장, 전무를 거쳐 무려 14년에 걸쳐 대한야구협회장을 지냈다. 


이른바 3김(金)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는데 2009년 김대중, 2015년 김영삼에 이어서 2018년 가장 고령이었던 김종필마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서 이들의 정치 데뷔 반세기만에 3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김 시대라 불렸던 이들도 결국은 사람이라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도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을 버리고 안락한 2인자를 선택해 9선의원과 2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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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재임하는 모습에 대해 아예 대위를 사단장에 임명시킨 꼴이라며 혹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말에 젊은 혈기가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2004년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행정수도 이전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외에는 인간미가 있고, 순진한 모습이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이나 이인제 등을 저격하며 중립을 지켜서 '음지에서 노무현을 지원사격했다' 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평소 받았던 평가 그대로, 노무현의 다혈질을 두고 우려를 많이 표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 자질을 키우지 못하고 적만 만들다 일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비평했다. 김대중은 그 선을 잘 지키는 정치 프로였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 4월 이재오가 김종필을 예방했을 때와 5월 홍준표가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문안인사를 왔을 때 문재인에 대해서 인신공격적인 언행을 남겼는데 베라먹을 자식(빌어먹을 자식), 그깟놈은 대통령 될 자격도 없어라고 말하여 문재인에 대한 증오와 배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물론 이재오와 홍준표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던 것이었지만 이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문재인의 정치적 성향을 증오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어보이나 본인이 군부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편이기 때문에 문재인 같은 성향의 인사를 싫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종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노무현 등의 정치인에게도 좋게 평가한 전례가 있어서 저렇게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오와 홍준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각각 자네같은 각오로 정치를 해야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통 책임감이 없어.(이재오에게 한 말) 자네는 정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관상이야, 자네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지, 나는 (홍준표 자네를)지지하겠다(홍준표에게 한 말)고 공개적으로 홍준표 지지를 표하였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인지 투표는 하지 않았다(!?) 또한 19대 대선에 출마한 늘푸른한국당의 대선후보이자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도 김종필을 예방했는데, 이재오 앞에서도 문재인에 대해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더 말하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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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 [실시간 핫이슈] - 김종필, 박정희, 박근혜, 육영수의 관계 = 견원지간..?


예전 같으면, 뜻과 멋을 모두 갖춘 절묘한 사자성어로 덕담을 해줬을 JP가, 육두문자 수준의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김영삼, 이명박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내리며 덕담까지 했었기 때문.  실제로 JP는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 특별히 험담하지 않았고, 상당히 차분한 어조로 평해왔던 편이다. 당장에 YS와 DJ가 사이가 좋지 않지만, JP는 YS와 DJ와 모두 가까웠고 두 정치인에 대해서 호평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그리고 과거의 정적들에 대해서도 본인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적개심들이 모두 씻어내려졌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리 총리를 지낸 분이자 정치 원로라지만 특정 대통령 후보를 향해서 원색적인 비방을 하고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언행이야말로 선거법 위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홍준표가 낙선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매스컴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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