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중립

선수 생활을 하던 시기 궂은 일을 안하고, 득점과 리바운드등 드러나는 성적에만 신경쓴다는 비판도 있으나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사실 한국프로농구가 출범한 이후 외국인 선수 도입 이후 한국 농구의 방향이 바뀌어버렸다. 황인에 비해서 흑인의 기본 신체적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에 신체적 능력이 중요한 농구에서 흑인과 황인과의 격차가 크며, 프로가 출범 이후 외국인 용병이 모든 팀의 주인공이 되었다. 득점, 리바운드등 농구의 핵심적 스탯을 용병이 장악해버렸다.



첫 우승팀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경우 국가대표 센터 김유택이 순식간에 식스 맨이 되고, 허재가 팀에서 존재감이 없어져서 결국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의 기아의 상황만 봐도 두 명의 용병인 클리프 리드와 저스틴 피닉스 이 두 명이 득점 리바운드를 장악해버리니, 그 동안 득점원 역할을 해줄 국내 선수 해결사는 필요가 없어지고, 그저 용병에게 패스나 잘 해주는 포인트 가드와 용병이 빼준 공을 받아서 외곽슛이나 던져주는 슈터... 수비가 되면 더 좋고... 정도, 그리고 용병이 쉴 때 백업을 해주는 식스 맨인 조동기나 앞서 말한 김유택이 필요할 뿐이었다. 하물며 다른 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팀 플레이와 궂은 일을 잘하고 수비를 열심하는 선수 모아놓고 그 위에 뛰어난 용병 둘을 얹으면 우승하기 좋기에 당장의 우승을 위해선 감독은 그냥 용병 뒷받침을 잘 해주는 선수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연세대 선배인 우지원은 선수 후반기로 갈수록 수비 참여를 하고 캐치 앤 슈터로 변신에 성공해서 적응했고, 원래 고려대학교 센터 출신이자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동료였던 이규섭도 우지원과 비슷하게 수비력을 갖춘 캐치 앤 슈터가 되었다. 



라이벌이었던 현주엽은 포인트 포워드라는 이름 아래 용병에게 패스해주는 걸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국 선수가 보조가 아닌 중심이 되어서 경기를 끌어갈 수 있는 선수는 서장훈과 방성윤, 그리고 문경은의 프로 초기와 2000~01 시즌 MVP인 조성원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국내 선수 중 살아남아서 각광받은 선수는 대부분 용병을 보조하는 궂은 일을 하는 선수들이었다.


서장훈은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궂은 일을 하는 선수가 더 가치를 인정받는 KBL의 풍토가 아쉽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용병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평균 20점씩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도 팀의 중심이 되지 못하여 궂은 일을 하는 스타일, 용병을 보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한국농구에 에이스 역할을 할만한 선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장훈은 궂은 일을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게 될 바에야 은퇴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선수이다.[87] 


실제로 서장훈의 이야기가 틀린 말이 아닌게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차 국내 선수의 득점과 리바운드 등의 기여도가 낮아져서, 2015년 현 시점에서 팀 공격의 중심으로 활약하는 국내 선수는 귀화선수인 문태영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식의 화려하고 개인 능력으로 득점하는 선수가 아닌 궂은 일을 하고 성실한 선수가 더 인정받는 KBL이 오히려 비정상이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궂은 일을 하는 선수가 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그 선수가 화려하게 득점하고 에이스 역할하는 선수보다 잘 한다고 볼 수 있는건 결코 아니다. 야구로 치면 제아무리 홀드를 많이 따내는 중간계투라도 15승을 해 줄 수 있는 선발투수에게 명함을 내밀 수 없는 것처럼. 보통 어떤 스포츠건 궂은 일을 하는 선수는 팀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궂은 일이 저평가받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차원의 접근이다. 궂은 일이 주목받는 일이 많다면 그건 이미 궂은 일이라 부를 수도 없다.



사실 다득점, 다포제션 게임인 농구에 있어서 팀 구성의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득점이고, 이때문에 농구는 샷 크리에이팅이 되는 스코어러가 팀의 기둥뿌리이자 대들보가 되는데, KBL농구는 이를 전부 외국인 선수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1)외국인 선수가 아예 못해서 망하거나, 

2)외국인 선수가 스코어러 형이 아니었거나, 

3)외국인 선수가 다치기라도 하면 국내선수 중 아무도 스스로 슛을 던질수 없는 

구성의 팀은 아예 득점창출이 안되는 팀이 되고, 용병을 단 1초도 코트 밖에서 쉬게 할 수 없는 리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항목에서 많이 언급된 궂은 일은 쉽게 말해 외국인 선수가 에이스인 상황에서 보조를 한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서 외국인보조라는 이야기다. 경기의 주인공이 용병이 된 상태에서 용병 보조, 수비 가담을 열심히 하고 용병이 빼준 공을 노 마크 3점 슛을 던질 수 있는 선수가 각광받는 시대란 이야기. 그 때문에 역대급 슈터로 불리던 문경은은 프로 초기에 팀의 중심이었지만, 차차 단순한 캐치 앤 슈터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어 이충희같은 압도적 커리어와 스타일을 갖지 못햇다. 이후 등장한 방성윤은 해결사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잦은 부상으로 29세에 은퇴, 그 이후 조성민의 13~14시즌 각성 전까지 토종 슈터는 한동안 찾기 어려웠다.



또한 프로 초기에는 김승현같이 용병에게 볼 배급해주는 포인트 가드가 득세하다가 나중에는 궂은 일 잘하는 양동근과 같은 포인트가드가 득세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제 대회에 한국선수중에 해결사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받아 먹는 슈터가 아닌 자기가 찬스를 만들어 해결할 능력을 가진 슈터와 큰 선수를 상대해야 할 빅맨이 부족한 황당한 상황으로 한국 농구가 흘러가기도 했다. 서장훈 이후의 스타인 김주성과 김승현은 원래 실력도 출중하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잘 맞춰주는 스타일로 더 주가를 올린 것이다.


그 결과 국제대회에서 접전상황에 점수 내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줄 스타 선수가 없어졌다. 만일 혼혈 선수인 문태종이 한국에 귀화해주지 않았다면 2014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힘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농구대표팀이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일부 몰지각한 중국인들은 한국 새끼들이 실력이 안되니까 미국 선수를 불러다가 서류조작해서 우승했다는 헛소리를 했지만 문태종은 혼혈이기만 했지 문태종의 국적은 엄연히 대한민국이다.


물론 서장훈도 나이를 먹으면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경향은 있었으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득점하고 리바운드를 잡으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서장훈은 마지막 두 시즌을 제외하고는 소속팀을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올린 선수였으며, 수비 능력도 나이가 많아 밀리는 것이지 기본적인 몫은 해주었다.


별명으로는 골리앗 센터, 언론에 쓰이는 공식 별명인 국보급 센터, 서장팔, 목장훈, 서역귀,  목도리도마뱀 등 부정적인 별명도 많이 갖고 있었다. 이미지가 좋아지고 KBL의 레전드 취급을 받게 된 말년 of 말년 시절부터는 농구팬들이 장팔이형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도 부른다. 


방송 인연으로 오정연 전 KBS 아나운서와 2009년 결혼해 화제가 되었지만, 2012년 합의 하에 이혼했다. 


당시에는 이혼 사유가 단순히 '성격 차이에 따른 결별' 이라고만 알려졌기에 사실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는데, 서장훈과 오정연이 본격적으로 예능 활동을 하면서 이 둘의 사생활이나 성격 등이 노출되자 둘이 진짜로 안 맞았겠구나는 여론이 늘었다. 


서장훈은 평소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나 물건을 종류별로 열을 똑바로 맞춰 놓고 유통기한을 앞으로 놓아둔 뒤 내림차순으로(...) 정렬을 해 놓아야 하는 등 강박증 증세가 있고, 집에 돌아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걸 씻어내야 한다' 며 샤워만 1시간 가까이 한다고 할 정도로 더러운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결벽증 증세도 있다. 오죽하면 은퇴 이후 누구보다 농구를 다시 잘할 자신은 없어도 누구보다 깨끗하게 씻을 자신은 있다고도 할 정도.(...) 게다가 혹여나 집이 더러워질까봐 집에 손님을 데려오는 것도 극히 꺼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오정연은 매우 프리하고 털털한 성격이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생활 패턴을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 이쯤 되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성격 차이로 인한 결별이었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두 사람은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깊은 친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을 못해서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 좋게 헤어진 것은 아니라서 그런지 둘은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는 사이라고. 사실 서장훈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유명인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 청소를 하는 노홍철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2015년 말 이후부터는 자기도 이혼한 김구라가 대놓고 둘에게 다시 잘 해보라는 식으로 반 농담, 반 진담성 드립을 날리는 중. 2015년 SBS 연예대상에서의 공식 재회가 그 재결합 드립의 절정을 찍었었다. 그 이후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이 전 부인과 관련된 얘기들만 나오면 꼭 트라우마처럼 이혼 사실이 언급되면서 본의 아니게 이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혼 얘기는 말할것도 없고, 이별, 결별, 짝, 아나운서 관련 얘기에 정연이라는 이름까지 꼭 서장훈과 연결이 되는 식. 


초반엔 그런 얘기 좀 그만하라라는 식으로 항상 화를 내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고정 출연하고 있는 아는 형님에서 멤버들이 하도 많이 놀리고 하다 보니 이제는 그냥 해탈한 듯.(...) 훈서방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덤.


결벽증과 강박증 증세가 있는데도 어떻게 오랫동안 운동 선수로 지냈는지가 참으로 궁금한데, 이거는 운동 선수 대다수에게서 보이는 현상이다. 프로 선수,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은 곧 반복 작업이다. 무엇이든 먹고 자는 시간, 일 보는 시간만 빼면 반복 훈련이다. 거기서 변수를 만들려고 들지 않는 심리가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이 징크스를 만들고, 그 루틴이 강박증 내지는 결벽증으로 바뀐다. 아닌 사례도 있지만, 웨이드 보그스 항목의 징크스만 봐도 알듯이 결벽증이나 강박증은 프로 선수에게 흔한 일이다.



특히 스포츠는 어떤 종목이든 간에 대진표가 어떻게 짜이느냐로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갈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결벽증 수준으로 징크스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참고로 서장훈의 이런 징크스는 실력이 부각되고 나서 더욱 심해졌는데 아무리 술에 취하고 시합을 뛰고 힘들어도 모든걸 깔끔하게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취침할 정도였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부담감이 많았던 결과라고 한다. 


더불어 박지성, 박찬호를 부러워 하면서 농구선수라는 꿈을 완전히 이루는데는 실패하였고 1만 3천점이 아니라 2만점 넘는 압도적인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예능프로에서 농구를 시켜도 되게 진중한 태도로 일관한다.


은퇴할 때 동시에 강동희 감독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자신의 은퇴식에서 "강동희 감독님은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던 선배였는데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너무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프로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리그에서 거의 손가락 꼽히는 고연봉자에다 재테크에 능해 약 200억 상당의 빌딩의 건물주이자 자산가다. 그럼에도 본인 소유의 건물 임대료를 시세를 해치지 않는 상식적인 선에서 인근보다 약간 저렴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착한 건물주로 불리며, 아버지에게 맡겨놓고 굴리는 부동산이라지만 잡음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임차인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다 오해가 생겨 많게는 인근의 반값 수준으로 임대료를 싸게 받는다는 소문이 돌고 기사까지 나오는 바람에 방송이나 인터뷰 등으로 여러 번 해명한 것으로 보아 그런 얘기 하지마아~ 사람들이 자꾸 와서 진짜냐고 물어봐아 이에 대한 스트레스도 나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능에서 본인 소유의 빌딩에 관한 토크가 나오면 이혼 얘기 못지 않게 매우 불편해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역시 익숙해졌는지 2016년 7월 9일자 아는 형님에서 일명 '건물주 전용 개그'를 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상술했듯이 여러 기부 활동에 참여하며 선행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중립적인 인물임을 자처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오인할 정도이다. 같은 1974년 동갑내기 친구이자 웹툰 작가인 강풀에게는 "너의 정치적인 발언 때문에 네 만화를 보지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반대로 이러한 극도의 중립성 표방 때문에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나이 들고 정치하려고 그짓 하냐고 여기고는 한다. 당장 김구라부터가 이런 말을 한 바 있으며, 이러한 중립적 입장견지에서 비롯된 "나는 공인이 아니라 셀럽이다" 발언도 그러하다.


선수 시절에 유명한 목 부상을 비롯해 다른 부위들에 더 부상을 많이 당했지만, 오히려 은퇴 이후에 그의 건강에 가장 무리를 주는 건 무릎 관절이라고 한다. 이는 무릎이 단순히 농구 같은 격한 운동에서만 무리가 갈 수 있는 부위가 아니기에 그런 것으로 판단되는데, 일상생활 중에도 2m 이상의 거인이라면 서 있기만 해도 누구나 겪는 무릎 관절에 가해지는 강한 하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젊을 때 농구까지 계속 하면서 더 큰 충격이 가해져왔던 후유증으로 보인다. 


덧붙이자면, 키가 작든 크든 무릎 같은 연골의 크기는 그 하중의 차이만큼에 비례해서 커지지 않기 때문에 키가 큰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노화가 진행된 후,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훨신 쉬운데 그 키 큰 사람들 중에서도 키가 큰 서장훈이 격렬하게 뛰고 점프하는 농구라는 운동을 하였으니 관절은 만신창이일 것으로 보인다. 


연골이라는 게 원래 한번 가지고 나오면 죽을 때까지 사용해야 되는 것이라 다 닳아버리면 살아가는 데 지장을 주며, 인공 연골 같은 수술이 있긴 한데 여럿 운동선수들의 사례를 보면 아주 큰 효과는 아닌 걸로 보인다. 나이 40이 넘은 이후로 갈수록 무릎에 물이 자주 차서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뺀다고 한다. 무릎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을 때는 한 층을 이동할 때조차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것도 피한다고. 거인의 슬픈 숙명...


키가 워낙 커서 병역 신체검사 당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일반적인 병역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훗날 병무청에서는 그보다 더 큰 최홍만에게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부과했고 애초에 2미터 넘는 사람이 한국에 꼭 서장훈, 최홍만 등만 있는게 아니며 그 둘보다도 키가 더 큰 하승진이 별 일 없이 공익근무요원으로 잘 복무하다 왔기 때문에 의문점을 남겼는데...


이는 1998년에 병역법이 바뀌면서 키로 인한 제2국민역(면제) 조항을 1998년에 없앴기 때문에 그 전인 1993년에 신검을 받은 서장훈은 키로 제2국민역(면제) 판정을, 그 이후인 1999년에 신검을 받은 최홍만이나 하승진은 키로 보충역(4급)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더더욱 서장훈에게 병역 의무에 관한 시비를 가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 왜냐하면 서장훈은 신체 조건 때문에 합법적으로 현역과 보충역 징집 대상이 아니었는데다가, 2002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해서 예술체육요원 복무 혜택을 받았기에 병역 대상이라고 할 지라도 어차피 갈 일이 없었다. 



한때 서장훈의 쌍꺼풀 수술설이 있었는데 본인이 은퇴 후 공식적으로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자연산 쌍꺼풀이라고 한다. 단지 나이를 먹으면서 생겨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고.. 그의 가족들도 대부분 쌍꺼풀이 있었는데, 본인은 어릴 때는 피곤할 때만 생겼을 뿐 평소에 없었다가, 성인이 되고 나이를 더 먹으면서 쌍꺼풀이 평소에도 생겼다가 없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자연적으로 쌍꺼풀이 자리 잡혔다고 한다.


 


자신의 수술여부를 의심하는 시선에 대해 말하면서 '저보고 느끼하게 보이게 그걸(수술) 왜 했냐,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말씀들 하시는데, 제가 이거(쌍꺼풀) 생긴다고 잘 생겨지는 것도 아니고, 쌍꺼풀 수술을 해도 별로인(?) 얼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는데 제가 왜 그런 수술을 했겠습니까? 정말 안 했습니다' 라고 호소하며 억울해 했다.


또한 방송에서 과거 연세대 재학시절 우지원, 이상민 등 잘생긴 선배들과 함께 스타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팬들에게 외모로 지적받았던 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가 언제 제 스스로 잘 생겼다고 했냐고요. 전 항상 가만히 있었는데 대체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이라며 억울해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농구 경기장에서 자신에게 외모로 대놓고 지적질했던 여성팬과 인터넷에서 본인에게 못 생겼다고 한 농구팬들을 회상하며 "솔직히 세상에 그렇게 얼굴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 많지 않습니다. 본인들은 뭐 얼마나.. 아니 차라리 장동건, 원빈 같은 사람이 나한테 와서 '야, 너 진~짜 못생겼다'고 하면 깨끗하게 인정하겠습니다. 근데 대놓고 저한테 얼굴 가지고 못 생겼다고 뭐라고 하신 분들, 대부분 그렇지(?) 않았거든요. 지~들도 그러면서(?) 뭘 나한테만 자꾸.."라고 하며 서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야구선수를 했던 경력 때문인지 농구 외에는 야구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초등학생 시절 박철순 선수를 응원했던 인연으로 현재까지도 두산 베어스의 팬이며 2016년 8월 잠실 홈경기에서는 시구도 했다. 야구선수 드립 쳐놓고 시구할 때 공을 패대기친 건 안 자랑 여담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최대 라이벌 팀 홈경기에서 시구할 뻔 했던 적이 있다. 2011년 6월 2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경기가 비로 취소돼 시구가 무산됐다. 두산 팬인 그에게 LG 홈경기 시구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당시 그의 소속팀이 LG 트윈스와 한 식구인 창원 LG 세이커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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