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덴

KBO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이자 2010년대 KBO 리그 최강의 선발투수 중 한 명


선수들이 뽑는 최고의 직구로 꼽힐 정도의 강력한 직구를 가지고 있다. 2m가 넘는 큰 키, 최고 156km/h 의 직구는 살인무기 수준. 


특히 하이 패스트볼과 타자의 몸쪽으로 꽂아넣는 직구가 주무기다. 국내에서는 이 정도의 높이를 가진 선수가 극히 드물다 보니 타자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있다. 혹자는 공을 2층에서 던지는 것 같다 하기도. 평균 구속은 140km/h대 중후반~150km/h대 초중반 정도. 게다가 회전수가 돌부처 오승환의 2300rpm보다 약 300회 더 많은 2600rpm이다. 다만 투심을 던지듯이 회전축이 수직이 아니어서 키가 커도 상하 무브먼트는 유희관보다 적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서클 체인지업, 커브를 가지고 있으며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고,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더 많이 던진다. 거기에 간간히 느린 커브도 섞는다. 슬라이더는 130km/h대에서 형성되며, 체인지업도 비슷한 정도의 속도. 특히 슬라이더는 2016년 기준으로 마구에 가까운 기록을 나타내고 있는데, 2016년 9월 3일 기준으로 피안타율 0.103, 피출루율 0.180, 피장타율 0.112, 피OPS 0.292라는 어마무시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어지간한 타자의 타율 수준의 OPS를 기록하고 있는 셈.



메이저리그에서 불안한 제구력으로 비판받았으나, 비교적 강타자가 적어 피해가는 피칭의 필요성이 적어진 한국에서는 9이닝 당 볼넷이 약 3개 수준으로 준수한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무한볼질을 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제구로 비판 받지는 않는 스타일.


한국에서의 연차가 쌓이면서 경험도 늘고 그만큼 한국 타자들을 상대로 한 수싸움에 능해졌다. 실점 위기에 몰려도 곧잘 삼진을 잡아내는 위기관리 능력이 일품. 같은 팀 동료인 장원준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상시 니퍼트는 70 내지 80% 정도의 힘으로 던지다가 주자가 나가면 100%의 힘으로 전력투구를 한다고 한다.


같은 팀에 금강불괴 이닝이터 토종 선발이 둘이나 있어 이 관련에서는 잘 언급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쪽도 만만찮게 천생 선발 체질이다. 불펜 니퍼트는 니레기라고 두산 팬들이 대놓고 말 할 정도. 실제로 불펜으로 나오면 작가님 저리가라 할 수준의 집필 능력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 2사에서의 블론세이브.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2011년부터 매년 좋은 성적을 올리며 꾸준히 두산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어서, 당연히 두산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도 니퍼트는 니느님으로 불리며, 어지간해서는 까이지 않는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WBC에서 독일 대표 출전 역시 가능하지만 문제는 독일 야구 실력이 축구 실력과는 반대하는게... 앤디 밴 헤켄 과 릭 밴덴헐크의 네덜란드는 나름대로 야구 강국이다.


KBO에서 뛰고 있는 외인들 중 유일하게 팀 내 유니폼 판매량이 순위권에 들어간다고 한다. 관련기사 이는 2015년 두산 유니폼 전체 판매량의 10% 가량을 차지하며, 두산의 전통적인 유니폼팔이 최강자라는 외야수 라인 김현수, 정수빈, 민병헌의 뒤를 잇는 순위이다. 


민병헌과는 3~4위를 다투는 수준이라고. 외인 선수의 유니폼이 판매가 잘 안되는 이유는 못하면 3개월 만에 방출당하고, 잘하면 일본이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사기가 꺼려지는데, 니퍼트는 유일하게 성적도 꾸준하게 상위권을 찍는데다가 자신이 은퇴를 두산에서 할 것이라고 못박았기에 유니폼을 사도 장기간 입을 수 있어서였다. KT 이적 후에도 여전히 니퍼트 유니폼을 소지하거나 입고 오는 두산 팬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203cm의 장신으로 사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자신이 가장 큰 선수라고 생각하면서 왔지만 정작 같은 팀에는 4센티미터가 더 큰 선수가 있었다. 이렇게 큰 키 때문에 니퍼트는 공을 2층에서 던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덤으로 신체비율이 좋은 편인데. 팔과 다리도 키에 걸맞게 길쭉길쭉하고 9등신에 가까운 신체비율을 보여준다.2016년 MVP 시상식에서 신재영과 함께


두산 베어스에서 영입하기 전에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영입을 고려했었고 다른 한 선수와 막판까지 저울질하다 니퍼트의 뇌진탕 부상 전력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선수를 영입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브라이언 배니스터. 그러나 배니스터는 지진과 방사능 위험을 이유로 줄행랑을 치고 두산 베어스로 간 니퍼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요미우리의 이 최악의 선택이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또한 기아 타이거즈도 트레비스 블랙클리와 니퍼트 사이에서 저울질 하다 왼손 투수인 트레비스를 선택했다. 



경기 중에 바지벨트를 고치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보기에 상당히 민망스럽다. 


2013 시즌 부터 매달 불우가정 아이들을 자비로 초청하고 있다. 구단에서 지원해주는 건 버스 대절과 할인 티켓 제공뿐이고 할인 티켓 구매비용, 식사비, 유니폼을 비롯한 야구용품등은 모두 니퍼트 자비로 지원한다고 한다. 혹시나 잠실에 직관을 갔는데 니퍼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30~40명 쯤 지나가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니퍼트가 초대하여 잠실로 직관온 아이들이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2016년 서울특별시 복지상 후원자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했다. 


그의 별명은 2011년 LG 트윈스에 있었던 벤자민 주키치와 함께 잠실예수라는 별명이 있었으나 주키치가 2013년 시즌부터 죽을 쑤게 된 이후부터 LG팬들에게 욕을 먹자 니느님이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 니느님이라는 별명은 본인도 알고 있으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생활만 5년이 넘어가자 코치들이 부르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등 한국식 문화를 몸에 익힌 듯 하다. '최장수 용병' 니퍼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두산 베어스 금연 캠페인 광고에 유희관, 함덕주와 함께 담배 전문가로 출연했다. 얼핏 보면 한국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NG가 많다... 실제 한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 알아듣고, 글자도 간단한 단어나 문장은 알아보지만 대화는 아직 그 수준까지는 못미치는 편. 본인도 6년간 있으면서 한국어를 익히지 않은게 아쉽다고 언급했다. 사실 처음 올때만 해도 이정도로 오래 있을줄은 몰랐을 테니...


8년 가까이 한국생활을 하다 보니,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알아듣는 수준이다. 2016 스프링캠프에서는 장난으로 야유하는 민병헌에게 정확한 한국말로 꺼져를 시전, 유희관에게는 내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기도.


2014년에 이혼했으나, 15년 한국인 여성과 재혼했다. 이거 덕에 귀화설이 나오고 있으며, 그게 실제로 일어나면 두산 외국인 TO가 1장 늘어나고, 2017 WBC에 니퍼트가 들어가는 등 국대 전력 강화에도 도움된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에서 프런트의 해외 선수 스카우터로 전향한 라이언 사도스키와 함께 "용병"을 팀의 일부인 "외국인 선수"로 바꾸는 데에 크게 일조한 바 있다. 위에도 숱하게 언급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모범적인 팀 플레이어다. 수비이닝이 끝날 때마다 야수들을 기다렸다가 격려를 해 주고, 거의 항상 마지막으로 덕아웃이나 불펜에 들어간다. 국내 투수들도 이러는 경우를 찾기가 극히 드물다는걸 감안하면, 외국인 투수인 니퍼트가 이런 행동을 하는게 더욱 돋보일수밖에 없다.


2016 시즌에 허경민의 머리 근처로 날아온 공을 보고, 덕아웃에서 뛰쳐나가려고 하여 다들 말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한때 두산 선수들 중 영구결번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선수였다. 실제 2017년을 기준으로 두산에서 뛰고 있는 현역 선수 중에서 영결될 가능성으로 따지면 정재훈 그 이상으로 가능성이 있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시즌 동안 2번의 우승, 2번의 준우승을 함께했으며, 두산 베어스 한팀에서만 통산 93승을 거둔지라 외국인선수 첫 100승 달성까지도 기대해봄직한 투수다. 그동안 흠으로 잡혔던 개인 타이틀이 없다라는 부분도 2016년의 22승+두산 통합우승에 투수부문 3관왕 달성으로 지워지게 되며, 2016시즌 MVP로 선정되었기에 영결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타이틀 홀더였다. 그러나 두산과의 협상서 고자세를 유지하다 계약이 해지되고 KT 위즈 선수가 되어서 두산에서 영구결번을 받을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완전히 제로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비록 kt로 갔더라도 니퍼트가 kt에서 두산보다 더 오래 뛰고 더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며 니퍼트는 자타공인 두산의 프랜차이즈라 인식되는 선수이다. 영구결번은 원클럽맨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롯데의 최동원이나 SK의 박경완이 예로 들수 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가 KBO에서 손꼽히는 순혈주의 팀이라는 점, 니퍼트가 외국인 선수이며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어 프런트한테 이미지가 좋지 않을 것이고 어쨌든 자의로 팀을 옮겼다는 점, 최동원과 박경완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구결번은 모두 원클럽맨이라는 점 이 니퍼트의 영구결번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하지만 순혈주의에서는 삼성도 두산 못지 않지만 양준혁에게 영구결번을 줬다는 점에서, 두산이 순혈주의로 발목을 걸 수는 없다.



이후 니퍼트의 후임 세스 후랭코프가 니퍼트의 등번호였던 40번을 쓰게 되었고 2월 10일 오전 니퍼트가 두산 프런트의 언플에 섭섭함을 드러냈으며 두산 측에서 이에 반발하면서 사실상 척을 졌다. 이로써 영구결번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되었다.


위의 영결, 귀화 관련하여, 두산팬들 사이에서는 아예 외국인 선수가 다년간 KBO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할 경우 외국인 쿼터에서 빼주는 '니퍼트법'을 정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니퍼트가 한국인 여성과 재혼하면서 귀화설이 터지면서 이런 논란에 불이 붙었다. 물론 다른팀간의 형평성 문제, 해당 선수의 처우 문제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더미고, 무엇보다 이전에는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두산을 떠난 2018년도 들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구단이 없어졌기에 더더욱.


[출처 : https://namu.wiki/w/%EB%8D%94%EC%8A%A4%ED%8B%B4%20%EB%8B%88%ED%8D%BC%ED%8A%B8?from=%EB%8B%88%ED%8D%BC%ED%8A%B8#s-2]

이제는 린철순 

니느님의 흔적을 지워버린 두산 베어스 부동의 에이스.


140 중후반의 위력적인 패스트볼과 함께 커브와 슬라이더 스플리터 체인지업도 구사하는걸 볼 수 있다.



195cm/108kg의 당당한 체격에 위에서 내리꽂는 속구는 위력적이다. 속구 구속도 91~95마일(146~152km/h)에 80마일 중반대(138~140km/h)의 슬라이더도 무기로 사용하며 커브와 체인지업도 던질줄 아는 투수. 2011, 2012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9이닝당 삼진 비율이 9에 육박할 정도로 상대를 압박하는 피칭을 했다.


문제는 저게 다 불펜 투수로 등판했을 때의 이야기라는 것. 선발로 등판하면 속구 구속은 144km/h 정도로 떨어지고 삼진 비율도 9이닝당 6.5개로 떨어진다. 물론 144가 느린 구속은 아니지만 공의 위력에 차이가 제법 된다. 


기본적으로 마운드에서의 승부욕이 강해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집어넣는 편인데, 불펜으로 등판하면 타자들이 공 위력에 눌리지만 선발로 등판하면 밋밋한 한복판 직구는 타자들의 먹잇감. 


변화구로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지만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에 싱커까지 사용한다. 슬라이더는 주로 우타자에게 던지며 위력이 제법 뛰어난 편이다. 좌타자를 상대로 커브, 체인지업, 싱커를 사용하는데 체인지업은 위력이 없어 피홈런을 잘 허용하고 싱커도 잘 가라앉지 않는다. 커브 역시 잘 꺾이지 않고 보여주기용에 가깝다. 



이때문에 좌타자 상대 피OPS가 2할 정도 높은 편. 결국 우타자에게는 투피치, 좌타자에게는 사실상 원피치 투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선발 투수로서 실패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선 실패한 선발 투수지만 한국에선 특급 에이스로 각성했다. 


메이저리그 시절 불펜에서의 구속을 선발 등판해서 뿌려대니 타자들로써는 미칠 노릇. 150km/h를 넘나드는 빠른 직구와 낙차 큰 커브를 동시에 구사하며 타자들을 잡아내고, 시즌 중엔 포크볼이 필요하다고 느끼자 포크볼까지 주무기로 활용하는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교야구 감독이 자기 맘대로 당겨쓰지만 않았어도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 지도 모른다. 리그 초반부터 마구 당겨쓰는 바람에 시즌 후반기엔 퍼진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때문에 내년 시즌 후유증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도 많았는데, 2016년에는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후반기에는 커터를 장착해 다시 기세를 회복한 것은 다행인 점. 그러다보니 KBO에 와서는 속구를 포심, 투심, 커터로 세 종류의 빠른공을 던지고 여기에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총 7가지 구종을 섞어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2017년 전반기를 보내고 롯데로 다시 돌아왔는데 2017년 후반기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영향을 줄 듯. 일단은 적응기를 거친 후 후반기에는 뛰어난 구위를 선보였다. 이후 롯데를 떠나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2015년 kt 위즈에서 뛰었던 댄 블랙과는 퍼듀대학교 시절에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블랙의 포지션은 포수였다고 한다.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일어나서 국내 분위기가 긴장되었음에도 북한의 도발은 하나의 루틴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8월 22일 삼성전에 앞서서는 구단의 도움을 받아 삼성 측에 이승엽의 사인을 요청했다.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에 사인을 받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한국 선수들 중 좋아하던 선수가 바로 이승엽이었던 것. 이 날 경기는 졌지만 린드블럼은 선발이 아니었고 거기다 야구도 평소 잘했기에 이 일을 크게 신경쓰는 팬들은 없었다.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유명한 선수 유니폼을 모으는 취미는 한국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2016년 3월 8일 동료 짐 아두치, 황재균과 함께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모비스 vs. 오리온의 경기가 열린 울산 동천체육관을 찾았다가 (이날부터 롯데 자이언츠는 울산 문수 야구장에서 시범경기를 하고 있었다.) 하프타임에 박기량과 함께 댄스를 췄다. 이 장면은 그대로 생방송을 탔다. 다음날 조원우 감독은 그 장면을 TV로 봤다며 "오늘 못하기만 해봐"라며 혀를 끌끌 찼는데, 린드블럼은 선발로 나와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5일은 본인 선발 경기는 아니었으나 덕아웃에서 픽미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면서 장난치는 모습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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