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학생 운동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해찬은, 여러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지역구로 공천을 받아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5회 연속으로 관악을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고 20대까지 합해서 현재 7선 의원을 기록 중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5공 청문회의 일원으로 참석해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사건과 녹화사업 등을 추궁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주로 야당이었지만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했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공을 세웠다.


88년 등원 직후부터 5공청문회에서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이인제 의원과 함께 송곳 질의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스타가 되었지만, 당내 활동에서는 DJP연합 당시 정책 공조 협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선거 전략가로 더 알려지게 된다.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에 따르면 선거 운동 들어가기 직전에 이긴다고 말하며 예측한 백분율이 소수점까지 딱 맞아떨어져, 한동안 '선거의 제왕'이라 덕담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 및 국무총리 시절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여당의 일원이 된 이후로는 48세에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 교육 정책을 주도하고 공무원 성과급 제도를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들로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특기-적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을 딴 이해찬 세대를 양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의 정부가 저물 때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을 지지하였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얼마 안 가 국무총리에서 사임하자 후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총리 시절 국회 질의에서 야당 측과의 공개 설전을 마다하지 않은 파이터 기질을 발휘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더불어 내각을 이끄는 막중한 자리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에 눌려 제대로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고, 그냥 얼굴마담이나 대통령의 방패막이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면서 참여정부의 국무총리들은 비교적 강력한 권한을 휘둘렀다.


이해찬 총리도 그 혜택을 본 인물로서 '대표적인 책임총리(또는 실세 총리)'라는 타이틀이 생겼고,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지휘하는 등 현실 정치에서도 실세 총리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지금도 책임총리나 실세 총리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이해찬 총리다.


그러나, 강원도 양양군에 산불이 번지는 와중에도 골프를 친 사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고, 이후로도 이런 행적은 정치적 부담이 되어버려 평생까임권 공격의 주요 소재가 되어버렸다. 이후 골프와 관련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국무총리에서 사퇴했다.


사실 이해찬 총리가 재직 시절 골프로 구설에 오른 것은 양양 낙산사 산불건 외에도 몇 차례 더 있었다. 가장 먼저 구설에 오른 포천 포사격 훈련 사고는 당시 골프를 치다가 사건 보고를 받고 즉각 조문을 가서 별 문제가 안 됐지만, 양양 낙산사 산불 사건으로 상당한 논란이 되었고, 같은 해 남부 지역에 홍수로 수해를 입고 있었는데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는 바람에 빈축을 샀다. 결정적으로 2006년 3.1절 기념식에 불참하고 부산에 골프치러 갔던 것이 밝혀지자 청와대에서도 쉴드를 포기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10년 만의 정권 교체로 다시 야당이 된 이후 유시민 등 친노 세력을 모아 탈당한 뒤 기존의 열린우리당의 부활을 염두로 신당 창당에 박차를 기울였다. 바쁜 일정 때문인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연임 기록은 일단 5선으로 마감했다. 



그러다 대선이 임박해오자 친노 및 진보 NGO 인사들과 함께 가칭 '시민통합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 민주당과 합당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에 복당하였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의 호남이라고 불릴 만큼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제일 막강했고 자신이 내리 5선을 지내기도 했던 서울특별시 관악을 지역을 떠나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했다.


이해찬 후보는 자유선진당의 심대평을 무려 14%P차로 밀어내고 4년 만에 국회로 복귀했다. 당초에는 지역 거물 정치인이던 심대평의 당선이 점쳐졌지만 이해찬 후보는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 하나만으로도 전국적인 인지도가 월등한 데다 국무총리 시절 세종특별자치시 설립에 앞장선 경력도 있고 여기에 지역적 연고까지 있어서 생각보다 큰 7,000여 표 차로 이겼다. 


설마 이해찬... 그 4년 사이에 세종으로 아예 옮긴 건가...여담으로 2년 뒤 치뤄진 6.4 지방선거에서도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의 첫 지도부였던 한명숙 지도부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그 뒤를 이을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경선에 출마해 김한길 의원 등을 쓰러뜨리고 당선되기도 했었지만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인적쇄신론이 나오면서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당대표 대행을 맡기고 사퇴했다.


대선 이후에 한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내리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임금의 70%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가 야당이 '이명박 정부부터 지금까지 약 5억 2,000만 달러가 개성공단에 들어갔는데, 이 돈이 무기 개발에 쓰여진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방치했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반론하자 급히 말을 바꾼 것을 두고 한 차례 비판한 뒤, 현역 통일부 장관도 모르고 있었던 개성공단의 임금 흐름을 설명하며 홍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자후를 보여주기도 했다. 




난항 끝의 재등원(再登院)

2016년 3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지도부가 그의 지역구인 세종시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해 이 의원을 쫓아내면서 다시 그의 존재감이 되살아났다.


공천관리위원회는 이해찬 후보에겐 부적격 사유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를 공천하려고 했지만 김종인 대표가 차일피일 결재를 미뤘다고 한다. 이 행동을 놓고 모두들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에게 '내 손으로 잘라내기 전에 본인이 명예롭게 물러나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해찬 의원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결국 더민주 지도부는 이해찬 의원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김종인 대표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찬 후보를 컷오프한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선 주로 당내 다선 의원 물갈이의 연장선상에서, 또는 실체없다는 말도 많지만, 어쨌든 많이 비판받는 '친노 패권주의'를 표면적으로나마 청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을 제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부수적인 이유로는 과거 서울 관악 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찬과 맞붙었다 패했던 김종인 대표의 사적인 감정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고, 세종시에서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결과가 형편없어서 탈락시켰다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는 문재인 전 대표가 친문계 세력으로 친노계를 재편하려고 배후에서 조종해 친노계의 2인자인 이해찬 의원을 김종인 대표를 통하여 쫓아낸 거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다 나왔다.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면, 문재인 전 대표 쪽은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을 잘라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해찬 의원 컷오프가 확정되기 전날,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여기서 김 대표는 '전체 선거 구도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내게 맡겨달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김 대표 본인도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일반 대중의 시각을 생각해 이해찬 의원을 일찌감치 잘라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 같다.


어찌되었든, 탈당은 없을 거라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는 달리 이해찬 후보는 3월 15일, "어떠한 결격 사유도 없는데 모욕을 주고 강제로 쫓아내면서 친노를 척결한다고까지 말하는 객관적이지 않은 공천 방식은 인정할 수 없으므로 무소속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종인 대표는 이해찬 후보의 상대로 다른 곳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인지도 낮은 후보를 보냈다 다만 자길 따라 동반 탈당하겠다는 세종시 당원들과 시장, 시의원들은 당에 남아 있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고, 본인도 당선될 경우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결과는 새누리당 박종준 후보, 더민주 문흥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된 직후 인터뷰에서 이해찬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컷오프'에 대해 엄중히 항의해 사과를 받아낼 것이며 복당이 된다면 당을 바로잡겠다'며 복당하면 차기 당대표 선거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를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당선으로 그는 7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지지않고 전승한 국회의원이 됐는데, 이는 윗 당선 수를 따져봐도 9선 의원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외에는 없다. 허나 그 JP조차 비례대표 1번을 받고도 떨어지는 굴욕을 겪은 바가 있다.


참고로 JP와 같은 9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4대 총선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3대 총선과 4대 총선에서 낙선한 흑역사가 있다. 8선 의원 중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경우 2번의 낙선, 정일형 전 의원의 경우 한 번의 2위가[22] 있으며, 새누리당의 서청원 전 최고위원의 경우 1번의 낙선이 있어 김재광 전 의원만 8선 모두 당선(!)되는 진기록을 가졌다.


같은 7선 의원인 정몽준 전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는 7회 모두 당선되었으나, 2014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패배하여 1번의 낙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찬 의원은 농담 삼아 "좀 교만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왜 선거에서 지는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함으로써 선거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이어가게 되었다.




당선되는 즉시 복당하겠다며 복당을 일찍이 천명했지만, 탈당한 인물들을 복당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우고 있는 새누리당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이해찬, 홍의락 두 의원의 복당 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홍의락 의원이야 본인이 복당할 뜻이 없다고 말했으니 그렇다고 친다지만, 이미 본인 스스로도 복당을 천명한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튼튼한 지지층인 친노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한 이해찬 의원의 복당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 것은 이해찬 의원이 복당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아마도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가 될 것이고, 그럼 김종인 대표는 자기가 갖고 있었던 당 지휘권을 앙숙(?)인 이해찬 의원 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원치 않아서라고들 보고 있다. 


그래서 이해찬 의원의 복당은 빨라도 아마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공식 지도부가 선출된 다음인 2016년 가을 즈음, 늦으면 대선 직후에나 이뤄질 듯하다. 이해찬 의원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마도 2016년 9월 쯤에 복당할 수 있을 거라 내다보는 중이라고.


일단 일여다야 구도에서 무소속으로 나갔는데도 무난히 당선돼 '컷오프는 잘못됐다는 걸 세종시민들이 입증해 주었다'는 등의 명분도 생겼고 전당대회에서 친문 성향 최고위원들이 다수 당선되고 친문 진영에서 밀었던 추미애 대표가 압도적 득표율로 새로 당선되면서, 복당은 시간 문제일 듯.



2016년 8월 18일, 세종시 전동면에 있는 자신의 전원주택 근처에서 퇴비 냄새가 난다고 해서 민원을 넣었다. 


이에 세종시청에서부터 심지어 세종시 행정부시장까지 나서서 이웃 농민의 퇴비를 15톤이나 수거해 가는 바람에 갑질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악취의 농도도 허용치 안이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자 이해찬 의원실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문제의 퇴비는 일반적인 퇴비가 아닌 돼지 분변을 바탕으로 한 퇴비로, 악취가 심해 그 주변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찜통 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이해찬 의원도 세종시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피해를 보고 있었던 인근 주민이었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을 대표해 민원을 넣었다는 거였다. 


세종시청에서는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땅 주인에게 수거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 지지자들이나 반노/반문 성향의 야권 지지층의 반응들은 대체로 '전원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며 갑질이라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세종시당도 '이해찬 의원의 민원은 황제 민원이다'라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의 해당 비료를 조사한 결과 중금속인 아연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해 부적합 결과가 나왔으며 설상가상으로 해당 마을은 상수도를 쓰지 않고 지하수를 쓰는데, 비료가 뿌려진 땅이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중금속인 아연이 마을의 상수원으로 흘러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발행인은 김종인 대표가 이해찬 의원 쪽과 가까웠던 당직자를 몰아내고 더민주 세종시당 사무처장에 앉힌 사람이라 중립적인 시각에서 나온 보도인지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6년 9월 3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의에서 이해찬 의원과 징계를 받았던 세종시당 당원들의 일괄 복당을 의결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했다.  그리고 1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이 당 국정자문회의를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와 국가경제 자문회의로 이원화한 뒤 이해찬 의원을 외교안보통일 의장에 선임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선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선거 캠프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중립을 지켰다. 몇 차례 경선 과정을 비판하는 의견을 낸 적은 있지만 특정 후보를 겨냥하지는 않은 원론적인 의견에 가깝다. 이후 문재인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 선대위원장이 되었다.





정의당의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진보정당 소속 유일 3선 국회의원. 

진보정당 역사에서 대통령선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인물이자 진보 맏언니 


심상정 (沈相奵)/1959년 2월 20일/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출생

학력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전공 학사

가족관계 : 남편 이승배/자녀 이우균

소속 정당 : 정의당/지역구 : 경기 고양시 갑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으로서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싸워왔다.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예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 되기 전부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의정활동을 해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를 득표하여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득표율을 얻었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사태로 보수층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진보층 유권자가 증가한 유리한 상황에서 겨우 6% 득표율을 올린 것을 유의미한 성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이 있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호통 사건이나, 살찐고양이법 발의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유도하는 스타성이나 주목을 유도하는 실력은 뛰어나다는 평가. 


물론 살찐고양이법은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다는 것은 본인부터 잘 알고 있겠지만 시민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고 의식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과가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선거구지역 활동에도 성실히 참여해 진보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지 기반을 안정화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다.


소통은 미흡하다는 게 중론. 그래도 다른 정당이나 같은 당내의 중진급 인물들에 비해서 소통력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당명을 정할 때 당원투표를 하거나 당대표 자리에 미련을 갖지 않고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등 독재자 스타일은 아니다.


주로 '소통은 미흡하다'라고 제시되는 것은 당의 노선과 대치되는 입장들에 대한 것이다. 


메갈리아 사태 때 노회찬 원내대표를 제외한 당내의 중진들과 단체로 귀막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식의 덮어가기 언행을 보인 것 등이다. 후에 사과를 하긴 했지만 후술하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사과는 아니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에서도 초동진화를 하지 않았다. 전임자였던 천호선 대표 시절에는 당직자를 공채로 뽑았지만 심상정 대표 체제에 들어와서는 그런 거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당직자의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릴 수 있는 개고기 식용 문제에 대해 당대표 직함으로 반대 집회에 참석했으면서 정작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통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담으로 불도저같으면서도 독단적인 면이 있는 데다, 이명박 前 대통령과 이목구비가 닮은 면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여자 이명박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2016년 8월 16일,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있는 한미연합 훈련을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내부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고 변명하였지만, 내부 내용을 모르고 국회의원 서명을 해준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나 당내 일부 참여계를 제대로 자극했던, '야당에는 친노 vs 비노가 싸우지만 정의당엔 친국민뿐이다!'라며 전형적인 양비론 문구를 써 붙였던 현수막 건이나 당원 게시판 무더기 징계 건에서 대처도 매우 늦었고, 특히 무더기 징계 건에서 면담 요청에 응하지도 않았다. "문재인을 찍을 바에는 유승민을 찍어라"라는 식의 발언도 논란이 되었다.



2017년 5.18 추모 행사에서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선거 유세나 영화제가 아닌, 추모 행사인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었다는 주장. 하지만 당일 5.18 추모식 입장 영상을 보면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모두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2017년 9월 중순에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관련으로 생리대에 대한 1차 성분검사가 가까워지자 이낙연 총리에게 다시 검사를 부탁한다는 트위터를 올렸다. 일각에서는 물타기를 하는거냔 비난을 들었다. 


개헌 관련해서 국회의 총리 추천을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경우 대통령이 문재인인데 국회 추천 총리가 홍준표이면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는지 이름만 다른 내각제 주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중. 국회총리제 관련하여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고 개헌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비난 받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례적으로 정의당의 심상정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기도 


한편 시의원 선거제를 4인 선거구제를 2인 선거구제로 바꿨다고 민주당이 홍준표의 행동대장이라는 비판을 했다. 사실상 시의원 등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뽑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실상 4인 선거구제이든 2인 선거구제이든 해당 지자체 의원수에는 변화가 없다. 선거구를 얼마나 쪼개는 지에 따라서 4인, 3인, 2인 선거구의 숫자가 달라질 뿐이다. 2인 선거구의 경우 사실상 민주당, 자유한국당 양대정당이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민의를 왜곡하는 부작용이 있다. #


진보정당 역사상 대선 최다 득표자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19대 대선 1년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다시 19대 대선을 치르면 뽑을 인물"로 심상정은 겨우 1%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 



7차 지방선거에선 아무래도 당적과 위치 상 정의당 유세를 돕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광주 유세에서 민주당 일당독점을 논했지만 정작 광주광역시 국회의원엔 민주당 소속 의원이 없는 상황이라 잘못되었단 지적을 받고 있다. 이분 설마 예언하신건가? 


입지가 입지인 만큼 정의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당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노회찬 사후에 정의당 의원들은 집무실이나 당대표인 이정미도 아닌 심상정의 의원실에서 대책회의를 하기도 했다.


심상정 TMI

고양시와 수도권에서 유일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학생 시절 학생 야구기자로도 활동했고 야구 때문에(?) 재수를 결심했다는 말도 있다.  



운동권에 발을 들인 계기는 입학 후 연애 좀 하려고 하니 괜찮은 남자애들이 거기에 많아서라고. 배우자도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쓸신잡 7회에서 유시민이 생각하길 원래 그냥 운동권이라고.


SNS에 심블리를 밀고 있는 것 같다. 노회찬 의원과는 다르게 유머 감각이 좀 떨어지지만, 보좌진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심상정과 정의당을 엮어서 심상정의당이라고 한다. 심상정이 정의당 그 자체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종친이며 사석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둘 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놀라울 것도 없는 일.


PD 계열의 대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지역구의 기초 의원들은 모두 정의당에서 석권하고 있고 이들은 당 내외에서 심상정의 행보를 지원하고 있다. 다른 지역구에서는 국회의원은커녕, 기초의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정의당의 당연한 현실에 비하면 이례적인 모습. 반대로 노회찬과 조승수는 조직과는 담을 쌓고 개인기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PD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사람 안 키우는 행보가 두 정치인, 특히 NL과 척을 진 조승수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무조건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가는 바람에 '8대2'(...)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해진다. 본인도 알지만 잘 안 고쳐진다고.


유시민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서울대학교 동문이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였던 데다 통합진보당 시절 당권파와 대립하며 정의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PD계열의 얼굴 마담인 심상정과 참여계의 유시민이 교류를 안 할 수가 없었는 데다 아메리카노도 같이 마신 사이다 정의당 창당 이후 정의당 입장에서 홍보수단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20대 총선에서 정도로 매우 도움이 됐던 만큼 당대표였던 심상정이 유시민과의 친분이 유지됐을 것이다. 썰전(2017년 3월 9일 방송)에 출연한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티격태격대며 알고 지낸 사이라 2초 김고은 정도는 용서해줄게 라고 너스레 떨 정도로는 서로 허물없는 친한 사이이며, 심상정 의원이 유시민 작가의 여동생이나 아내와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날 유시민 작가는 드물게도, 앞서 나온 대선주자들을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치 외적인 부분에서 디스를 걸거나 중간중간 말을 놓는 모습도 보였다.


이명박 前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 먼저 찾아와서 심상정에게 직접 인사했다. 더구나 이명박의 옛 이름이 이상정이었다고. 거기다가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랑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때,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심상정의 지역구이자 심상정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고양시 갑 선거구 지역은 유시민이 재선한 적이 있는 지역구다. 유시민은 고양시 덕양구 화정1동 은빛마을에 살다가 2013년 정계은퇴 선언 후 성사동(원당)으로 이사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자살한 이유가 차명계좌 때문이 아닌가라고 발언한 경찰청장 조현오를 인사 청문회에서 만나서 꾸짖으면서 일갈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심상정이 이명박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 출마 예정 일정을 밝힌 후, 이명박을 4대강 관련 문제로 국정조사에 세우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이명박이 엄청나게 투덜댔다고 한다. 그러자 심상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임기 말 인기도가 가장 낮은 대통령 중 한 명이 됐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맞받아쳤다고.(...)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가 국회의장인 정세균을 만나서 의견을 전달하던 날에 왕복하는 도중, 심상정과 마주쳤는데, 심상정이 박근혜를 보고 면전에서 "퇴진하세요." 하고 대놓고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근데 박근혜는 이런 말을 듣고도 웃으면서 지나갔던 듯.


TVN 행복 난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덴마크에 갔는데, 여러 시민들이 알아보며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무수히 부탁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사람들은 조작이 너무 심하다는 반응.



[출처 : 심상정]



1969년 서울특별시 출생 남성, 실명 김동원, 닉네임 드루킹으로, 명지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에서 근무하며 2000년대 초중반 친노 커뮤니티 서프라이즈에서 쁘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친여권성향 논객인 동시에 정치자영업자이다. 



참고로 그 유명한 변희재도 여기 출신이다. 여기에서 탈퇴해서 지금의 극우 성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본명은 김동원, 페이스 북에서는 Sj KIM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2018년,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여론 조작을 하다가 구속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문 정부를 공격하는 댓글 공작을 통해 역으로 보수 세력의 댓글 부대에 대한 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행동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국내 정치 동향, 국제 정세를 분석한 글들을 주로 올리고 2009년부터 닉네임을 드루킹, 블로그 이름을 드루킹의 자료창고로 바꾸고 활동했다. 2009, 2010년 2년 연속 네이버에서 파워 블로거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부터 2018년 2월까지 유령 회사이지만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507-7에 위치한 유령 회사 느릅나무 출판사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경제적 공진화 모임이라는 사이비 종교 수준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드루킹 본인이 직접 강연을 하거나 국내외 인사(노회찬, 유시민, 다마키 타다시 등)들을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강연을 개최하였다. 또한 파주시 출판단지 인근에 '산채'라고 하는 사무실이 존재한다고 한다.


'경인선', '경공모', '세이맘'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당 경선 대선 그리고 현정부 초기까지 때부터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과 연관되어 네이버 댓글 및 기사순위조작과 대형커뮤니티에 여론조작 그리고 인사청탁을 한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드루킹은 일본 침몰을 예언하였는데, 이를 대비하여 일본 침몰 후 일본의 이재민들을 개성으로 피난 시켜서 자신이 운영하는 특별지구를 만들 목적으로 김경수 의원에게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하였다. 



김경수 의원이 청와대에 추천했지만 청와대에서 이를 거절하자 문재인 정부를 프리메이슨과 연관된 제수이트 같은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주장하며 공격하였다. 그는 음모론이나 예언들을 섞어 황당한 주장을 경공모 회원들에게 주입하고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드루킹을 잘 안다고 주장한 사람이 드루킹의 실체라며 드루킹에 관한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려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특검의 수사결과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이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김경수 의원이 재벌개혁의 자문까지 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드루킹이 일방적으로 여권 정치인들에게 접근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드루킹은 정치 경제 파워블로거로 활동하여 네티즌들에게 인지도가 있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국내 정치에 관한 예측과 관련해선 파격적이면서도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의 제공과 함께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을 보면 역사, 인물 및 철학에 관한 인용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일관된 경향이 있다. 오랜 과거의 것들을 다소 난해하고 현학적으로 다루는 이들과 다르게, 아주 간단한 언어로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서 전달하고 있다.


미디어펜에 따르면 드루킹은 육아정보 카페 '세이맘'(세상을 이끄는 맘들) 등에서 회원들에게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하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가입 방법을 자세히 공지하기도 했다. 세이맘은 주부들이 육아와 요리 정보 등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온라인 카페이지만 정치 색이 뚜렷한 게시 글로 가득하며 현재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밖에도 드루킹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팬 카페인 '우경수'(우윳빛깔 김경수), 블로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 등의 가입과 접속을 권유하는 등 홍보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드루킹 일당이 조직적으로 댓글 조작을 관리한 기사의 종류가 일부 드러났다.


같은 날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의 매크로 구입 시기는 2018년 1월 15일이고 첫 사용 날은 이틀 뒤인 17일이다. 그 외에도 현 청와대 인사와 접촉 정황 및 김경수 후원정황 기사가 보도되었다.


안철수 후보를 비난하고 안희정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 조작,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를 이용해 네이버 보안망을 뚫고 댓글을 조작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2018년 4월 1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가장 곤경에 처하게 했던 네거티브 선거 전인 MB 아바타 공격은 드루킹과 그 지지자 세력들의 댓글 조작으로 인한 프레임이라고 한다.


2018년 4월 19일 문화일보 보도에서는 드루킹이 자신의 조직을 활용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경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보도하였다.기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은 구속되기 직전까지 실시간으로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고 한다.기사


2018년 4월 19일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드루킹이 김경수와 어떻게접촉하고 댓글을 썼는지 일부 공개되었다. 



이같이 '경인선', '경공모', '세이맘'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당의 경선, 대선, 그리고 현 정부 초기까지 때부터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과 연관되어 네이버 댓글 및 기사 순위 조작과 대형 커뮤니티에 여론조작, 그리고 인사 청탁을 한 것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특검을 계속 해 봐야 알겠지만 어찌되었든 가장 핵심 쟁점사항인 김경수와 민주당 인사가 금품을 주며 댓글조작을 사주한 정황이 드러난다면, 정부와 여당에게 타격이 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문 대통령이 현재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명박근혜에 비해 인격적으로 낫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이런 핵심측근과 당의 행동을 인지했고 지시했는지에 대한 여부로 수사방향이 확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여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대통령직 퇴임 후 구속수사까지 받을 수 있는 사항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핵심측근 혹은 민주당 인사가 이런 위법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인지조차 못한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민주당도 댓글조작 범죄를 방조한 파렴치한 정당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드루킹이라는 존재는 정치인 커넥션보다, 정치인으로도 언론인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개인"이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여 그룹을 만들고, 세력을 형성해 가면서 "언론인"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적용할 수 없는 애매한 신분을 유지하며, 개인의 명예, 개인의 만족, 혹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오가면서 어떤 여론조작과 비슷한 행위를 할때.. 과연 어떤 처분이 내려지고, 어떤 선례를 만들지에 대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0% 단정할 수 없는 애매한 증거로 김경수-드루킹 커넥션으로 김경수를 처벌한다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그야말로 온라인 전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으로 걸어서 똥물을 뒤집어 씌우기 쉬워질 수도 있고.. 


한편 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김진표 의원의 페이스 북 글이 화재가 되고 있다. 



김진표 의원은 허익범 특검은 지금 이미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가 나온 것처럼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망신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논두렁시계'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지방선거 때 야당이 드루킹으로 정치공세를 펼칠 때 김경수 본인이 특검을 가장 먼저 요구했다...지난 지선에 경남에 선거운동을 하러 갔을 때 저는 당당하게 우리당의 김경수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특검은 구시대적인 마녀사냥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경수 도지사 역시 8월 2일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한 의견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타임지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50대 영향력 있는 정치인물 중 93위에 들기도 했다.(2013) 이해찬, 전해철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 성장과정 

1957년 서울특별시에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회영과 한산 이씨 이은숙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아버지 이규동과 어머니 변봉섭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 국회의원이자 국가정보원장 이종찬의 사촌 동생이다. 그리고 성재 이시영의 조카손자이다.


국민학교 시절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현 안양시)으로 이사하여 성장 했다. 예원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노동자 야학운동을 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복무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학사편입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하였다.


  • 정치 활동 요약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김일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1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MB의 졸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유인촌 장관이 "찍지 마 X발"이라는 표현을 하게 만들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5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주도했으며 3월 2일 마지막 주자로 나와 대한민국 국회의원 단독 연설론 가장 오래 발언한(12시간 32분) 인물이 되었다. 그동안 문재인 대표체제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파업을 벌인 행위는 잘못된 것이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고, 새삼스레 선친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다만, 지역구인 만안구의 여론 자체로는 새누리당 후보와 기껏해야 박빙 우위인 데다, 당 내에서는 강득구 후보 에게 밀리는 지라 20대 국회에서 그를 보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평촌신도시를 업은 동안구가 만안구를 앞지른 상황 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딱히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탓이다. 안양 지역구 3구를 전부 양당의 원로 의원이 차지 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안양 내 타 지역구 의원들에 비하면 컷오프 유력 후보 쇄신 대상으로 더 부각되는 처지.


이종걸 프로필]


그런데, 경쟁력 높은 같은 당의 강득구 후보를 제치고 경선도 아니고 단수공천 됐다. 공천위원장의 말로는 딱히, 이종걸 후보가 경쟁력이 있어서 단수 공천한 것이 아니라 원내대표로서 고생했기 때문에 단수공천을 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며, 공정하지 않은 선정 방식. 즉, 계파 배분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정청래의원이 같은 당내 인물에게 날린 막말을 이유로 공천배제를 당한 반면, 밑에 나와 있듯이 현 대통령에게 막말을 날린 적이 있는 인물이 막말 논란 없이 단수공천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공천의 불공정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고 있으며 필리버스터로 얻은 인기를 다시 날려먹고 있다. 


단수 공천 확정 이후로는, TV조선을 비롯한 종편에 출연하면서, 이해찬 전 총리에게 "자진해서 출마를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등,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걸 보여주며, 친노 진영 네티즌들에게 필리버스터로 쇄신된 이미지를 다 날려먹었다. 


본선에서는 만안구에서 시, 도의원을 지낸 새누리당 장경순 후보 와 맞붙었다. 투표전 여론조사에서는 별로 상황이 좋지 못했으나 문재인 전 대표의 응원영상 효과 덕인지 개표결과, 45.4%를 득표해 8762표차로 이기고 5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5일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와 함께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종인, 박영선 의원 등의 만류에도 7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출마하였고, 8월 5일 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8월 27일 본 전당대회에서 추미애에 밀려 패하였다.


그후 19대 대선 경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그렇지만 문재인이 후보로 선출되자 문캠에 합류했다. 합류 후에는 정력적으로 대선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대선토론 당시 유승민에게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 라는 까다로운 색깔론공세에 대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반박해 대선정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보수언론 및 보수정파에서 시동 걸려고 했던 색깔론 공세에 완벽한 반박의 논리가 된 데다가, 글 쓴 사람도 문재인과 사이가 아주 나쁜 걸로 여겨지던 이종걸이라는 점이 큰 화제가 되어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등, 문재인 후보에 대한 색깔론 확산을 틀어막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종걸 페북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존재감이 많이 떨어진 편. 소속위인 국방위원회 와 지역구에서의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중앙당에서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에 대해 국민의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한 사례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2018년 6월 21일 새 당대표를 뽑는 8.25 전당대회 출마를 당내에서 가장 먼저 공식화했다.


  • "문재인 대표는 부산 마이너리티" 발언 논란 

2016년 1월 8일에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식사를 하며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문재인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힘을 이어받은 부산개혁파"라며 "부산 마이너리티라 그런지 화법이 안 맞는다. 어제 문 대표와 만났는데 생각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 는 발언을 했다. 이어 "여의도 야당이 부산개혁파 손에 바뀔 수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는 발언까지 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려는 일부 의원들과 궤를 같이 하려는 취지를 내 비쳤는데...


2015년 12월 중순부터 최고위원회에 불참하는 등 원내대표로써 당무를 거부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들로부터 원내대표가 당무거부로도 모자라 당 대표를 잡아 흔들고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다며 맹비난을 받았다. 


이 후 19대 총선이 끝난 5월 5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는 "두 사람의 스타일의 차이로 서로 부딫히는 경우가 많았었다. 문재인 전 대표를 곁에서 모시면서 인간적으로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정말 후회도 된다"고 말했었으며, 8월초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분당 사태의 절반 이상은 문재인 당시 대표의 책임이다"고 말하면서 "부산 마이너리티 발언은 '그들이 어떤 현상을 주도하고, 그야말로 안정된 주체세력으로 추진해나가는 데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얘기한 것이었는데, 이번 총선을 보니 아니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월에 있었던 인터뷰에서의 발언을 계기로 '부산 마이너리티'란 용어는 친노, 친문 지지층들이 이종걸 의원을 비난할 때 수시로 언급되는 중.


이종걸 문재인

친노계, 친문계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 '실세 총리'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중 현역 최다선 의원


이해찬 당대표 출마이해찬 당대표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대한민국의 제13대~17대, 그리고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겼다.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낸 인물이다.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역대 국무총리 중 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며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무현계의 상징적인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투 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문계의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수장으로 존중해준다.


그리고 무려 7선 국회의원인데 이는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며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지만, 서청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선 의원이라고 봐야 한다. 즉, 이해찬은 공식적으로 서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다선 국회의원인 셈이다.


이해찬 의원이해찬 친노


이를 봤을 때 20대 국회의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나면 보통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거나 정부 관료를 역임하지 않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이지, 최고령 의원은 아닌데다 여전히 친노계와 친문계의 큰어른인 거물이기에 아직은 정계 은퇴를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 2018년 기준 65세로, 역대 대통령 중 그보다 많은 나이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만 넷이니 그리 많은 나이라 보기도 힘들다. 막말로 다음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나이로 공격 받을 소지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유력한 후보군 중 한 명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면(현 청양읍)에서 아버지 이인용과 어머니 박양순 슬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 참고로 이해찬의 조상은 덕흥대원군이다. 


이해찬 어린이이해찬 당대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절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해찬은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부친인 이인용 씨가 청양면 면장 출신이기 때문. 이인용 씨는 광복 후에 32살의 나이로 청양면장을 맡아 4.19 혁명 때까지 면장을 지냈을 정도로 마을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한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에 말기에 치러진 지방선거 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 면장에 당선 되었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의 신망이 투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덕수중학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입학한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를 다녔으나 적성에 맞지않아 자퇴하였고, 이듬해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주로 운동권에서 활동했는데,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 사건 후 무역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차린 번역실에서 번역을 하기도 했으며,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일하는 등 재야 인사로 지냈다. 1979년에는 돌배개출판사를 창업했다.


이해찬 과거이해찬 당대표


그러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는데,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 지 14년 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 말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학생 운동의 이력을 지니고 있었던 이해찬은, 여러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지역구로 공천을 받아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5회 연속으로 관악을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고 20대까지 합해서 현재 7선 의원을 기록 중이다.


이해찬 레전드이해찬 당대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 '찬들이형',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해골찬'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제20대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다. 현직은 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총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꾸 보여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여러 모로 고문 후유증이 아니냐는 염려가 있다.


운동권 출신이었던 데다 친노의 좌장인 만큼, 운동권, 친노계가 포진되어있는 정의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편이다. 6월 15일 tbs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개혁 우파, 진짜 진보는 정의당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그 호의를 보여주었다. 실현 가능한지는 묻지 말자 일단 지금은 민주당이 개혁 우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단체, 노동운동, 진보정당들과 함께 진보의 저변을 민주당쪽으로 확장시키는게 목표라고.


이해찬 문재인이해찬 당대표


선거의 귀재 해찬불패


지역구 7전 7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선거 득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주당 중진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역구 6전 6승에, 모두 50%를 넘긴 득표율로 승리한 걸 비교 대상으로 드는데, 정세균은 2012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는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던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으니 적당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서울 관악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에서 제일 강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호남만한 텃밭은 당연히 아님에도 연잇어 5선을 한 것은 대단한 결과이다. 


물론 항상 유리한 지역에 출마해온 것은 사실이다. 관악구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서울 내에서 가장 민주당 계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고, 세종시는 본인이 국무총리 시절 수도 이전을 전면에서 지휘한 곳인데다가 자기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다. 물론 이를 감안해봐도 7전 7승은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을만한 기록이기는 하다. 남경필이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이기는 했어도 수도권에서 6전 6승을 한 것이 대단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해찬 명언이해찬 당대표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의 경우, 두 차례의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06년 5.31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누가 봐도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해 보였던, 그것도 대통령으로서 이끌었던 20대 총선에서는 참패해 박근혜가 본인의 능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얻게 된 승리를 박근혜의 능력 덕택에 얻은 것처럼 포장이 된 건지 불투명하게되었다


반면, 이해찬은 소위 말하는 험지 출마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항상 유리한 지역을 출마해왔다는 점은 박근혜와 같을지 몰라도 13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의 김종인, 통일민주당의 거물 김수한을 꺾고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 정치권의 거물 심대평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큰 선거를 이끌어본 경험도 서울시장 두 명의 당선에 기여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37] 자신이 참여한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맛 보았으니 박근혜에게 크게 뒤쳐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8년 첫 출마부터 2012년 총선까지 소속 정당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이인제나 김한길처럼 탈당을 밥먹듯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몸 담고 있었던 민주당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문희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신민주연합당 시절과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인한 탈당 및 20대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 등 3번 탈당하긴 했다.


이해찬 문희상이해찬 당대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