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원 이명박

한국 염색연합회 이사, 창신섬유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2년 11월 10일 태어나 2012년 8월 2일 사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로 순수한 의미의 유일한 재정적 후원자로 알려져있다.


1952년 11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전주공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섬유사업을 했는데, 지역차별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그래도 1975년 설립한 창신섬유가 크게 성장하여, 부산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1998년 정치인 노무현이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할 당시 전화로 처음 만났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했던 노무현에 감명받아 2000년부터 노무현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노무현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소신껏 정치를 하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노무현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한치의 사업도 확장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공평무사한 정치를 하기 위해 자기 측근들을 요직에 거의 챙겨주지 못했는데, 강금원이 그러한 노무현을 대신해서 가난한 친노인사들에게 생활비를 대주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건만,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영화를 맛보긴커녕 검찰 수사로 고통만 더 심하게 당했다. 


결국 2003년 12월 배임 및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노무현은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강금원을 사면복권하였다.  2006년에도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노무현 퇴임 후에는 검찰이 그와 노무현 주변에 대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실시하였다. 이 당시 검찰에게 최우선의 수사대상이었던 게 노무현과 강금원 사이의 비리였다. 


그러나 둘 사이의 비리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의 올가미가 노무현과 강금원을 본격적으로 옥죄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봉하마을에는 친노인사들이 거의 발길을 끊다시피 하였고, 오직 강금원과 김경수 등 몇몇만이 노무현 곁을 지켰다.


2009년 4월에 검찰은 1999년∼2002년 주주임원에 대한 단기 대여금 형식으로 회사돈 50억원을 빼내서 회계장부상 비용과다 계상 등으로 허위변제 처리하고 같은 기간 법인세 13억5000만원을 포탈한 혐의. 특경가법상 배임 및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당시 노무현이 미안한 마음에 면회를 신청하려고 했으나, 마음은 알겠다면서 만류했다. 강금원이 수감되기 전까지 창신섬유는 직원이 400명에 이르는 등 부산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검찰의 계속된 수사와 거래업체 압박으로 직원이 60명까지 줄어들었다. 


구속기간 내내 지병인 뇌종양이 악화되어 진단서까지 떼어 보석을 신청했으나 거부되어 수술 시기를 놓쳐 2012년 8월 2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MB는 수면무호흡과 당뇨질환으로 수감 4개월만에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강금원과 노무현


2018년 5월 1일, 봉하마을에 강금원 회장의 이름을 딴 강금원기념 봉하연수원이 개원된다.


수천억 원대의 재력가였음에도 집안 살림은 매우 검소하였다. 다섯 개의 계열사에서 월급만 5억 원 정도를 받았지만, 휴대전화도 최신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구형 폰을 썼다고 한다.


노무현을 금전적으로만 후원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노무현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갖고 있던 요트를 노무현에게 빌려주어, 부산에서 (전남) 보길도까지 노무현이 쾌속 요트를 타고 다녀온 적도 있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청와대 뒤편에 있는 원두막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함께 돼지고기를 구워먹기도 했다. 노무현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청와대 경내를 둘러본 적도 있고, 대통령의 여름휴가 때는 경남 진해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민정수석 문재인이 안희정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면서, 문재인과 불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특히 유시민 전 의원 등이 국민참여당으로 독립해 나가는 것에 대해 강하게 만류하였으나, 결국 나가서 섭섭한 감정을 가졌다고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과 사돈을 맺었다. 그때 퇴임 직후의 노무현이 주례를 섰다.



[출처 : https://namu.wiki/w/%EA%B0%95%EA%B8%88%EC%9B%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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