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대의 경제사범이자 범죄자. 1944년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으로, 장영자 사건이 터졌던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및 당시 야권의 거물급 인사였던 김대중과 동시에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배우 김주승의 장모로도 알려졌으나 김주승은 생전에 그녀의 딸과 이혼하였다. 


1944년 10월 25일, 목포시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1953년 서울특별시로 올라왔다. 계성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교육학과에 다니다가,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로 편입학하여 졸업하였다. 


대학생 시절 결혼을 2번 하였으나 모두 이혼하였고, 부유한 집안의 내력을 볼모삼아 이철희와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렀던 것으로 알려져 사회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1982년 남편을 앞세우며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사기 사건인 장영자, 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주도하여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1991년 가석방된 후에도 용인술, 처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언론 보도를 내는가 하면, 다시 시중 은행의 주요 간부들을 자신있게 찾아 다닌다. 


하지만, 1994년에 다시 14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저질러서 4년간 복역한다. 일명 '2차 장영자 사건'으로 여기에 연루된 동화은행과 서울신탁은행에도 불똥이 튀어 현임 은행장들이 사임하였으며, 이들 기관들도 징계를 받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8.15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2000년 구권 화폐 사기사건으로 교도소에 재수감되었다. 


2016년 출소 예정...인 줄 알았는데 2015년 1월 22일 출소했다. 


4차 장영자 사건이 5년 안에 일어나겠구만 그리고 역시나 2018년 12월 20일자 언론보도로, 출소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7월부터 2017년까지 4차례에 걸쳐 사기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남편 이철희에게도 그 사건의 공범으로 몰리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2018년 12월 21일, 출소 3년만에 또 6억대 사기를 쳐서 구속되었다.



가족 및 친인척 관계가 여러모로 복잡하면서도 화려하다.


장영자는 대학시절 두 차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나중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와 재혼했다. 이 사람은 대북 작전 쪽에서 활동한 전문가이며,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공안사건에도 개입한 인물이다.


장영자가 유명하게 된 1982년의 사기사건도 이 남편과 함께 저질러서, 부부가 나란히 교도소에 들어갔다. 


자녀는 1남1녀가 있는데, 모두 이철희와 결혼하기 전의 결혼에서 얻은 자식들이다. 이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밑에서 컸고, 아버지가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유학생이 드물었던 80년대에 유학을 다녀오는 등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남매 모두 어머니 장영자와 얽히며 구설수에 오르고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남매 중 첫째인 딸은 배우 김주승과 결혼해서 외동딸을 낳고 잘 살았는데, 장영자가 출소하고 다시 사기 사건을 일으켰을 때 김주승이 연루되었다. 그 여파로 김주승의 연예계 제작사가 부도나고 김주승은 한동안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 일과 그 밖에 여러 사정으로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2007년에 김주승은 지병으로 사망했다. 



남매 중 둘째인 아들은 어머니 장영자가 2000년에 구권 사기로 구속될 때 함께 잡혀갔다가 풀려났는데, 그 후에 뺑소니 사고를 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몇 년 후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상태로 귀국했다가, 외국으로 도피하기 전에 사귀다가 헤어졌던 여배우 차주옥이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영자의 아들은 차주옥과 혼인신고를 해서 법률상 부부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그런데 장영자의 아들이 생전에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누나에게 소송을 건 상태였는데, 소송 중에 사망하면서 유족인 차주옥이 그 소송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장영자의 딸과 며느리 사이에서 재산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장영자의 친언니는 전두환의 처삼촌(즉, 이순자의 삼촌) 이규광과 결혼했다. 장영자가 1982년에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라는 대규모 사기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 중에는, 당시의 영부인인 이순자가 자기 친언니의 시조카라는 점을 어필했던 것도 있다. 


장영자가 전두환 처가 쪽으로 인척관계이며 평소에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점 때문에, 사기사건이 터진 후 전두환과 이순자 일가가 이 사건의 배후세력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공교롭게도 전두환 정권에 맞서던 김대중과 결혼했다. 다만,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김대중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희호가 아니라, 김대중의 첫 부인이며 김대중의 첫째 아들 김홍일 및 둘째 아들 김홍업을 낳고 일찍 사망한 차용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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