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국제

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기분 좋게 맑게 갠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외투 차림이었다. 바로 전날은 일요일, 그다음 날은 공휴일- 즉,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평일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오늘 하루는 쉬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당신은 휴가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 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인생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붙인 젊은 남자 다섯 명이 갈개로 뾰족하게 갈아둔 우산 꼬챙이로 기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찌르기 전까지는.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中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일으킨 대규모 지하철 화학테러 사건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사건,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카메이도 악취사건 등의 온갖 대형 강력범죄를 저지르던 옴진리교는 그 결과 이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 시작하면서 경찰 수사가 포위망을 좁혀 오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경찰의 수사력 및 관심을 분산시켜 궁극적으로 옴진리교가 조사받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지금까지와 수준이 다른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특히, 테러 대상으로 도쿄의 주요 관공서가 밀집된 지역 등을 골라 일본 정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까지 노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계속적으로 테러를 저질러 왔기 때문에 옴진리교는 요주의 대상으로 찍혀 있었다. 이 상황에 대규모 테러를 저지를 경우 오히려 제일 먼저 용의 대상으로 지목받기 쉽다. 역시나 이 사건이 터지자 옴진리교는 확실하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궁지에 몰리자 망상적인 발상으로 최악의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1995년 3월 20일 아침 8시, 옴진리교는 한창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출근 및 등교로 바쁜 러시아워 시간대에 에이단 지하철이 담당하는 노선에서 총 5개 편성을 노려 차량에 대량의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실행자들은 각각 2명씩 패를 이루어 한 명은 지하철에 탑승하여 사린을 담은 비닐봉투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사린을 살포하고, 다른 한 명은 살포자를 태워 도망치는 운전수 역할을 맡았다.


마루노우치선과 히비야선에 각 2편성, 치요다선에 1편성을 노렸는데, 이들 3개 노선의 공통점은 도쿄의 주요 관공서 밀집지역을 지난다는 것이다. 카스미가세키로 불리는 이 지역은 한국의 세종로와 비슷한 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위치한 주요 성급 부서만 해도 법무성, 후생노동성, 환경성, 경제산업성, 총무성, 국토교통성, 재무성, 문부과학성 등 8개에 이르며 또한 이들 부서의 산하기관이 수두룩하게 밀집해 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는 어떤 종교?



당연히 통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고 그들을 핵심 타겟으로 노려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평상시에는 출근 시간이 9시 30분까지지만 사건이 일어난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조례를 하는 곳이 많아 사건이 일어난 시각 즈음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즉 옴진리교 내부에 이런 일본 정부 관청가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사건으로 도쿄는 혼란에 빠졌다. 그나마 일선 부서의 발빠른 대처 및 숭고한 희생으로 살포 지역의 무정차 통과 및 열차운행 중단 등의 조치가 이어졌고, 살포된 독가스가 사린이라는 것도 비교적 초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도쿄도 내의 각 병원에 사린 가스의 해독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병원에 비교적 빨리 도착한 피해자들을 제외하면 추가 치료가 불가능해 대재앙이 발생할 뻔했다. 사린의 해독제로는 아트로핀과 프랄리독심(Pralidoxime, 2-PAM)이 쓰이는데, 프랄리독심은 유기인계 농약 중독의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물질이어서 대도시인 도쿄에는 물량이 얼마 없었다. 


다행히 스미토모(住友) 제약회사에서는 이 프랄리독심을 생산하고 있어서 서일본 지역에 있는 아트로핀과 프랄리독심을 긁어모아 도쿄 지역의 병원에 공급해 사태가 크게 번지는 일을 막았다.


자위대에서는 화학전 담당 부대(제101화학방호대)를 중심으로 화학학교 교관 등을 파견하여 환자 치료를 도왔다. 자위대중앙병원에서 파견한 의사가 이전의 간부연수에서 화학병기 대응 교육을 받았고, 현장으로 파견될 때 연구자료를 가지고 와서 화학병기로 인한 테러라고 판단하고 병원에 아트로핀과 2-PAM을 투여할 것을 조언해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이 테러로 13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사실 테러의 규모, 살포된 사린 가스의 양을 보면 이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는 어떤 종교?


옴진리교와 아사하라 쇼코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본 경찰은 테러의 배후로 옴진리교를 지목해서 집중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테러의 배후가 옴진리교임이 밝혀지자 일본 경찰은 후지산 근교에 있던 옴진리교의 본부인 제 6 사티안(サティアン)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가족이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사하라 쇼코 본인도 제 6 사티안에 은거 중일 것으로 판단해 체포작전에 나섰다. 


아사하라 쇼코의 도주를 막기 위한 대규모 경찰 병력과 사린 테러의 주범이 체포되는 모습을 기다리는 취재진들이 사티안을 포위하였고, 사티안 내부에 돌입하는 체포조는 혹시나 있을 신도들의 독가스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가스를 감지하기 위한 카나리아 새장과 독가스를 막아 줄 방독면을 구비하였다. 


체포조는 철문을 쇠톱으로 열고 사티안으로 진입했지만 사티안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4시간이 넘게 수색해 봐도 아사하라 쇼코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수색을 하던 경찰 병력이 사티안의 2층 계단과 3층 계단 사이에 작은 공기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얼마 안 가 계단 사이의 좁은 밀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사하라를 체포할 수 있었다. 


아사하라 쇼코는 체포 이후 사형 판결을 받고 20년 넘게 복역하다 2018년 7월 6일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그리고 옴진리교는 테러 단체로 지목되어 강제 해산되었다. 관련인은 도합 188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그중 13명이 사형 확정을 받았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는 어떤 종교?



한편, 옴진리교는 원래 사린 가스가 아니라 탄저병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옴진리교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탄저병을 포기하고 사린으로 전환했다. 탄저균 배양에는 성공,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살포를 하였으나, 악취만 남게 된 카메이도 악취사건이 벌어진다.


사린 제조 프로젝트에 관여한 키쿠치 나오코(菊地直子)는 2012년 6월 3일 저녁,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서 체포되었다. 키쿠치는 1996년에 타카하시와 함께 숨어 산 것으로 알려져 일본 경찰은 키쿠치가 타카하시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추궁 중이라고 한다.


히비야 선 구간에서 운전수 역할을 포함한 총 5가지 사건에 관여했던 타카하시 카츠야(高橋克也)는 다른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지명수배 중인 상태였으나 2012년 6월 15일 도쿄 오오타구(大田区)에서 타카하시가 잡히면서 사건 17년만에 드디어 모든 관계자가 잡혔다.


사건 전에도 만화를 좋아했던 터라 만화방에서 나오다 잡혔다고 한다. 잡히고 나선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드립을 치고 있다. 그러더니 경시청 조사에서는 또 옴진리교에서 수행하고 싶다는 드립을 쳤다!!! 또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체포됐을 때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의 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도주하는 17년 동안 반성이나 후회를 했을 가능성은 전무한 걸로 보인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는 어떤 종교?


최후의 옴진리교 재판인 타카하시 카츠야의 재판은 2015년 1월 16일 시작되어 2015년 4월 30일, 1심에서 구형 그대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본인은 뿌려진 것이 사린 가스인지 몰랐다고 하지만 재판장은 그가 "지하철에 위험한 독극물을 뿌리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17년간의 도주와 재판 중의 태도에도 갱생의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무기징역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타카하시 피고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지만 그가 요구한 아사하라 쇼코 사형수등의 증인 심문은 각하당하고 피고인 질문도 행해지지 않은채 1심의 무기징역을 지지한다며 9월 7일 도쿄 고등 법원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런데 2015년 11월 27일, 도쿄 고등법원에서 키쿠치 나오코가 살인 미수 방조 등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재판정의 발언에 일본 현지는 충격의 도가니. 당연히 검찰측은 상고를 진행중이다. 결국 2017년 12월 27일,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한편 2018년 1월 19일,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마지막 수배자인 타카하시 카츠야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옴진리교 관련 사건 재판은 22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마무리되었다. 한편 재판이 끝난 후 옴진리교 사형수들은 도쿄에서 전국 각지의 구치소로 흩어졌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이유는 잔존 신도들의 반발 때문이라고.



[출처 : https://namu.wiki/w/%EB%8F%84%EC%BF%84%20%EC%A7%80%ED%95%98%EC%B2%A0%20%EC%82%AC%EB%A6%B0%EA%B0%80%EC%8A%A4%20%EC%82%B4%ED%8F%AC%EC%82%AC%EA%B1%B4]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는 어떤 종교?



옴진리교 / 사이비 종교, 신흥종교, 테러 단체 / 출가자 1700명, 총 신자 약 1만명 / 교주 :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일본의 사이비 종교 집단 및 테러리스트 범죄 집단이다.


옴진리교는 요가 수행자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본명은 마츠모토 치즈오)가 세운 교단으로 당시 일본에서 널리 퍼진 오컬트 붐이나 세기말에 만연한 흉흉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했다. 전성기에는 약 1만명의 신도가 있었다. 심지어 당시 공산주의 붕괴로 젊은이들이 아노미에 빠져있던 러시아에도 세력을 확장하여 상당한 규모의 교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러시아 지부도 일본에서의 테러 사건 이후 강제로 해체되었다.


이들이 벌인 대표적인 사건


-1989년의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 

-1990년의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사건

-1993년에 일어난 카메이도 악취사건

-1994년에 일어난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1995년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그리고 무엇보다도 

-1995년 3월 20일 에이단 지하철(현 도쿄 메트로)이 운영하는 지하철 3개 노선 5개 편성 전동차에 사린 가스를 살포해 13명의 사망자와 무려 6300명의 부상자를 냈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전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져 옴진리교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는데, 이들은 단순히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전복시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옴진리교의 그 희대의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보자면, 일본 정부를 전복시킨 다음 덴노를 폐위시키고, 아사하라 쇼코가 신성법황으로 군림하는 신정국가(가칭 진리국)를 세운다는 목표였다. 참고로 교주부터가 LSD 중독자다.


옴진리교의 생화학 무기는 테러때 사용했던 사린 가스가 가장 유명하지만, 사린 이외에도 VX 가스, 포스겐 등 여러 독가스를 제조하여 여러 암살 사건에 사용하였으며, 심지어 탄저균을 배양하여 이를 이용한 생물 테러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주변에 악취만 풍긴 카메이도 악취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3년 6월 27일과 7월 2일 2차례,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있던 옴진리교 지부가 (정확하게는) 탄저균의 배양에는 성공했지만, 정말 정말 다행스럽게도 살포하는 과정에서 고압 분무기를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탄저균이 모두 사멸해버리고 독성이 없는 악취만 남게 되었다 .


또 한 가지, 일본어 위키백과 카메이도 악취사건 문서를 보면, 옴진리교는 본래 사린 가스(Sarin Gas)가 아닌 탄저균을 배양 살포하는 생물테러를 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서의 탄저균 사멸 카메이도 악취사건으로 생물테러를 포기하고 사린 가스와 같은 화학테러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만든 사린 가스의 성능을 실험하고자 1994년 6월27일 저녁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에서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심지어 핵무기 제조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발표로는 계획으로 끝났다고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옴진리교 시설에서 핵실험 때 발생하는 지진파가 감지되고 어보리진 몇 명이 근처에서 강한 섬광을 목격했다는 비공식적인 정보가 있다.


러시아 지부를 통해 군용 헬리콥터를 구입했으며,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공중에서 사린을 살포할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옴진리교 신도들 중에는 군인 출신도 있어서 교주 아사하라가 체포되자, 일본에 잠입해서 무력으로 구출할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돈이 썩어나는가보다..


1995년 3월의 일본 경찰의 강제수사에 의해 좌절되긴 했지만, 이들은 1995년 3월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후에 후속 테러로 11월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1995년 11월 국회회원식에 맞추어 교단이 소유한 군용 헬리콥터를 도쿄 상공에 띄워 사린 가스를 살포해, 덴노와 각료, 국회의원을 포함한 도쿄 시민을 무차별 대량학살하려고 했다. 


그 후 단기간에 전국을 돌면서 일본 주요 도시에도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그 혼란의 와중에 사린가스 살포로 국가 기능이 소멸된 수도권 포함 일본 전체를 자동소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하얀 사랑의 천사'들이 남은것까지 다 파괴한 후, 신정권(神政權)인 '진리국'을 수립하려고도 했다.


영화 스턴트 배우를 모집한다는 핑계로, 젊고 건강한 남성을 모아 집단 생활을 하게 해서 세뇌를 시킨 후,하얀 사랑의 전사들이라고 하는 교단의 군대를 조직하여 영화 촬영을 한다는 핑계로 야산에서 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자위대에 체험 입대하거나, 러시아에서 군사훈련 연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단의 사병단은 약 수십 명 정도의 규모로, 이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자동 소총 AK-74의 제조를 몰래 시도하기도 했다.


원래는 선거에서 패배한 후 무력 노선으로 전환했을 때에 무기를 구입하러 러시아에 갔으나 판매를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하자 구입을 포기하고 대신에 총기를 분해하여 총기 구조를 암기한 내용을 토대로 제조를 시도한 것이다.


이들이 제조한 총기를 압수하여 조사한 결과, 기술 수준이 떨어져서 수백 발 정도를 발사하면 총기를 아예 폐기해야 하는 수준인 데다가 자동 사격 도 되지 않는 극악의 저질품이라 본격적인 군사 용도로 쓰기에는 부적합 그 자체인 물건이었지만, 만일 이들이 정말로 무장봉기를 시도하였다면 고작 이런 수준의 조잡한 총기를 썼다고 해도 심각한 사회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거나 경찰이나 자위대원을 불시에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하는 용도로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2006년 9월 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린 가스 테러를 할 정도로 흉악한 잔당들이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2018년 7월 6일 옴진리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형이 최초로 집행되었다. 관련 기사 그와 함께 사형을 언도받은 간부 12명 중 몇명도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강제로 해체되었고 일본 정부는 물론 러시아 정부도 불법조직으로 지정했지만, 잔존세력은 이름을 바꾸거나 분열하여 다른 단체를 세우거나 하여 아직도 남아있다. 잔존세력 중 대표적인 곳이 알레프(Aleph)다. 창설 당시엔 アレフ라고 썼지만, 그로 인해 동명(同名)의 회사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장음을 하나 넣어 アーレフ라고 바꿨다. 현재는 알파벳 표기인 Aleph로 이름을 바꿨다. 


옴진리교와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도 매스컴은 물론이고 경찰의 주시대상이며 교단의 지부가 있는 맨션 현관에는 사복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에서는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 또한 아레프로 이름을 바꾼 것은 사실 훼이크이며, 이름마저도 바꾸지 않고 옴진리교인 상태라는 보도가 떴다. 언론에도 '옴진리교 주류파'라는 설명을 담고 있으며, 2013년 12월 4일엔 지인을 알레프에 가입하도록 강요한 신자 가 체포되기도 했다. 


2012년 1월에 신도 납치살해 용의자로 지명수배된 뒤, 숨어살던 간부 중 한 명인 히라타 마코토가 결국 자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상도 못할 엄청난 병크가 터졌다.

[도쿄는 지금]17년만에 자수하러 갔더니 “바쁘다… 옆 경찰서 가라” 황당한 日 경찰 


사족으로 해당 교주의 딸은 아버지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며 자신의 회고록(Stopped Clock(가제, 멈춘 시계))을 낼 것이라 한다.


이 종교는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활동 중이다. 그래서 신도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하며 2016년 3월 30일에 몬테네그로에서는 옴진리교와 관련된 58명의 외국인들이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2016년 3월 6일에 러시아에서 옴진리교 조직이 발각되고 옴진리교 조직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7일에 옴진리교의 마지막 피의자도 일본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에까지 마수를 뻗으려는 중인지 돌아다니다 보면 자아수련 강의를 빙자한 포스터가 자주 발견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옴진리교의 마수가 뻗지 않아서 특별한 법률을 제정하지는 않았는데 한국에서 옴진리교에 가담할 미친놈이 나올리는 없겠으나 대한민국 정부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가담시 폭처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2018/07/06 - [실시간 핫이슈/사회] - 옴진리교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출처 : https://namu.wiki/w/%EC%98%B4%EC%A7%84%EB%A6%AC%EA%B5%90]

탈레반과 더불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 단체

현존하는 21세기 악의 축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테러 단체이다. 주로 이라크, 시리아를 중심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추종 세력을 받아들이며 예멘, 이집트(시나이 반도),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보코 하람),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튀니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니제르, 러시아, 소말리아, 필리핀, 프랑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벨기에, 이란, 터키 등에서 IS의 테러 활동과 공격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리아 근방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만을 추종하며 이견도 존재하지 않는 반국가단체로 인식되며, 국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잔인한 테러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알 카에다가 이들의 기원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하지만, 알 카에다는 '서구 문명을 중동에서 추방하고 이슬람 낙원을 건설하자'는 나름대로 호소력 있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알 카에다의 이상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소수 존재했기에, 알 카에다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집단은 알 카에다와 달리 이슬람의 입장에서 봐도 모독적인 이단 행위를 여럿 저지르고 다녀서 그 부분에서조차 옹호받지 못하게 되었다. 즉, 그 어떤 부분에서 단 하나도 좋게 봐줄 여지조차 없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륙 지역과 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이자 민간인 학살 및 성범죄, 거주지 방화를 일삼는 반란군 집단. 보통 줄여서 ISIL 혹은 IS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주로 이라크에서 발흥한 것과는 달리 실질적인 중심지는 자칭 수도인 시리아의 라카 지역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시리아를 넣어 ISIS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라크의 주요 도시 모술도 이들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이들의 지하드 전선 가입은 자신의 인생을 막장으로 끌고 가는 지름길로 사실상 그 위험성은 도박, 마약, 사채, 보증을 한 번에 하는 것 이상이 될 것이다. 이들이 한다고 설치는 지하드에 참여한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살아 돌아올 가능성조차 거의 없고, 겨우 살아서 돌아와도 호적에 빨간줄 그이고, 살인자라고 온갖 모욕을 당하고 죽어서도 고인능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재물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탕진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도자는 칼리프를 참칭하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즉 '바그다드의 아부 바크르' 라는 인물이다. 이들의 사상과 행동은 전근대적인 경전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며, 그를 전근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비판적인 환경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이슬람 교리는 여기에 안전장치가 최소 1~2개는 걸려있다. 현대적인 가치로 재해석한다든지, 절대권위자가 없든지...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산 증인. 전 세계의 공공의 적으로 20세기에 추축국이 있었다면 21세기 초에는 ISIL이 있다. 추축국은 정식적인 국가로 인정받기라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심지어 나치 독일에서 베를린 올림픽도 열렸다.


주요 구성원은 수니파 계열 아랍인들이며, 주된 활동 영역은 이라크와 시리아다.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에도 슬슬 나타나는 상황이었으나, 리비아에서는 2016년 리비아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시르테 등 거점지들을 잃고 붕괴되어버렸다.


이들은 국가로서 영토, 국민, 주권을 갖고 자기들이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누구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범이슬람주의 이슬람'을 국교로 내세우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앞에 '무릇 범(凡)'을 감히 붙일 수가 없다. 게다가 일단 기본 성향부터가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브파 및 살라프파의 혼합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둘 다 아니다. 와하브파가 쿠란의 본분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자기네 멋대로 경전을 날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쿠란에 적혀 있지도 않은 내용을 진실인 양 위조하여 지하드를 합리화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 살라프파에서는 시아파 무슬림은 기본적으로 이단으로 취급해 적대하되 수니파 무슬림은 죽이지 않지만, 이 집단은 수니파 무슬림도 자신들에게 반발하면 서슴없이 공격하거나 학살했다.


시아파, 수니파 등 이슬람 양대 교파를 대상으로 살인 행각을 벌이고 있고, 같은 수니파여도 IS의 조직원들과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집단 외의 전부를 사냥감으로 보고 무조건 죽이는 이중잣대의 결정판이다. IS에 충성을 맹세한 살라피스트가 아니면 무조건 죽인다.



게다가 이들은 세계 역사를 둘러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폭력 조직으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오직 자신들이 왜곡한 샤리아가 아니면 죽음 뿐을 외치고, 다른 종교와의 공존과 원칙을 일체 거부한 채 무분별한 학살을 행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다. 자기파괴본능의 극을 달리면 종교가 얼마나 정신 나간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들 중 하나


규격과 글씨체를 제외하고 알샤바브의 상징기랑 같다.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의 깃발은 우상숭배를 배격한다는 차원에서 국기에서 보이는 복잡한 도안과 상징물이 없이 문자 뿐인 흑백의 도안을 채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단,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닌 게, 말레이시아의 파항 주나 트렝가누 주도 흑백으로 되어있다. 국기에 써있는 문장은 샤하다 구절인 'لا إله إلا الله'와 'محمد رسول الله'(원 안의 글씨)이며 글씨체도 현대 아랍어 서체가 아닌 무함마드 시절의 초기 글씨체를 '재현'하고 있다. IS와는 연관이 없어도 그냥 IS의 깃발을 내걸고 싸우는 집단도 무수하다.


난민 신청했던 시리아인, IS 포섭 활동 혐의 구속

한국에 입국한 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가입을 권유한 30대 시리아인이 경찰에 구속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6/2018070601020.html?utm_source=daum&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로 칭하며, 이들의 사상은 서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이슬람 질서(니잠 이슬라미)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SIL은 21세기에 1990-2000년대 탈레반이 했던 짓이 연상될 수준의 극단적인 사상을 문자 그대로 전 세계에 실현시키겠다고 하므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21세기의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 심지어 중동 주권국들도 형식적으로나마 따르는 개인의 종교 자유 보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고, 오로지 자기네 식의 이슬람만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 불과하다. 미군 중동 파병 이후 생겨났다. 


이들은 2003년부터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시작해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에 참여했으며, 2014년 6월 29일에 칼리파 국가 수립을 선포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반군 집단이자 미승인국. 실질적으로는 그냥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대한민국,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전 국가는 물론 대다수 이슬람 국가, 즉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모로코 등 치안 상태가 안전하고 국제 질서에 협조적인 국가조차 ISIL을 아예 국가로도 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 그 외에도 시나이 반도와 리비아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



자신들은 자기들을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미승인국과 유사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윤리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현실적으로 이들이 국가가 맞는지는 이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역대 유명한 막장 불량 국가들인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북한 등은 실제로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 수반이 존재하며, 국제적으로 일단 국가로 인정은 받고 있으나, ISIL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실상 하는 일들도 영역을 가진 약탈자 패거리에 불과하다. 좋게 봐줘야 군벌에 가까운 집단.


이 인간 쓰레기들이 "이슬람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ISIL이 테러리스트로 받아들인 외국인의 상당수가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이전에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한 경력이 있는 등 이슬람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고, ISIL도 이라크에 음란물을 밀수하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는 등 이슬람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 , 심지어는 칼로 쿠란을 훼손, 거기에 폭탄을 설치한 점 이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ISIL에게 이슬람은 단지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 및 '적대 국가'들로부터 조직원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 일 뿐이라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미국 대통령 공식 발표, 영국 총리 인터뷰 발언 등 서방 세계는 물론이고, 무슬림과 무슬림 지도자들도 이슬람적이지 않은 걸 넘어 반이슬람적이라고 규탄 하고 있다. 그러나 구성원 대다수가 무슬림인 점, 알라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쿠란을 믿으며 무함마드를 최후 예언자로 인정한다는 점, 과거 문제가 된 탈레반, 알 카에다 등의 변종들에 대해서도 이슬람으로 불러왔다는 점, 무엇보다 스스로 정한 명칭이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슬람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IS에 의한 대부분 희생자들이 수니파 무슬림들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이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이슬람 교리를 위반하고 신도들을 착취하기 위해 또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형태로 재해석된 게 IS라, 이들은 이슬람계 사이비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정통 이슬람 제국의 전면적 부활'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바스 왕조가 1258년에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 후 이집트로 망명한 아바스 왕조의 잔존 세력이 칼리파 칭호를 유지하였으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면서 이집트의 아바스 칼리파 역시 소멸하였다. 이슬람 국가가 셀림 1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칼리프로 보고 있는지, 찬탈자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이 없다.


칼리파로 즉위할 수 있는 자격이 시아파에서는 알라와 그의 후손들만이 진정한 칼리파로 즉위할 수 있고 칼리파로 인정한다. 수니파는 무슬림 공동체에 의해서 선출된 칼리파면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라도 상관없고, 무함마드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칼리파로 즉위하는 것에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런 칼리파에 즉위하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주장에 의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칼리파 지위는 대체로 수니파가 독점했으나, 몽골의 바그다드 침공 당시 칼리파가 살해당하고 한동안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칼리파 자리를 겸임한 것을 수니파들은 인정했다. 그러므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을 칼리파로 인정을 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다.


ISIL은 이렇게 사실상 소멸한 아랍인 중심의 정통 칼리파 국가의 부활과 이슬람에 의한 세계정복을 명분으로 삼으며 자신들의 반인륜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하드(성전)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절대 이슬람의 입장에서도 지하드가 될 수 없다. 그들이 하고 있는 테러, 학살, 폭정 등의 만행 전부가 이를 다 말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이후 최초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를 적으로 돌렸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전통의 앙숙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및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같이 적대하며 일대에서 사이가 좋을 리 없었던 동방 기독교도와 시아파, 쿠르드가 손을 잡을 정도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격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마저 무력 사용을 필요불가결하다 인정할 정도에다가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인격자인 달라이 라마도 이들을 비판했다. 


단, 아랍권 수니파 민간측에서는 과거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를 암묵적으로는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각국 지도부는 이 집단이 미친 걸 알아서 어떻게들 쫓아낼 방법을 찾고 있긴 하나 국민들이 따라가지를 않는 게 현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손아귀에 있던 기억이 있었으니 또 외세가 들어오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2월, 그들은 스스로 저지른 이단적인 분살 행위를 영상으로 공개해 그들을 지지하던 수니파 무슬림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안으로 굽어있던 팔들마저 밖으로 꺾이는 지경이 된 것이다. 결국 연대 및 협력 조직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렸다.


거기에 알 카에다 까지 칼리프 이브라힘의 목에 현상금 2500만 달러를 걸었다. 게다가 이슬람 최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메카를 테러하려고까지 했으니 모든 무슬림들이 격분할 수 밖에 없었다.


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다. (짙은 녹색은 시아파, 연두색은 수니파)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으며,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쫓겨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도 알카에다(AQAP)(흰색)가 통제하고 있다.




예멘 수니파와 종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후티 반군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


2015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 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 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관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현 대통령이 반군에 의해 관저에 '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전면적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는데, 후티가 정권을 쥐면 알 카에다와 수니파 무장 조직들이 반시아파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가망이 매우 크다. 더욱이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참혹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거기다 남예멘 사회주의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도 있으니(...)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 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


2018/06/22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및 종파 갈등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멘 난민] 예멘 풍습 : 조혼이 잦은 나라..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 1인당 4정의 총기 보유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난민]도대체 예맨이 무슨 문제야..?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허핑턴 포스트 기사. 후티 반군이 예멘의 의회,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회를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혼란상이 극심해지고 치안이 갈수록 악화되자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와 사우디 아라비아까지도 대사관을 폐쇄하고 철수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사직서를 내고 연금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지지 기반인 남부로 달아난 듯 했으나 이내 사퇴를 번복하고 남부 6개 주의 지지를 받은 뒤, 아덴을 임시수도로 선포하고 합법 정부로서의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 후티 시위도 일어나는 중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예멘이 눈 앞에서 붕괴되고 있다'라며 경고하였다.



2015년 3월 20일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까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같은 날, 예멘에 주둔하던 미군(규모 100여명)이 완전 철수했다. 22일에는 후티 반군이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점령했다.


26일부터 사우디군이 예멘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5만명 규모의 병력과 100여 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였으며, 아랍 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습 전날 백악관에서는 사우디에 정보와 군수 지원 명령을 내렸다. 물론 미국도 군수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보자산(드론) 등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인 만큼 개입이라고 봐도 타당할 듯하다. #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군사작전은 하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전투는 예멘 수니파 정부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 지상군 병력의 80%가 예멘에 투입된 가운데, 이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생지옥의 참극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시아파 종파갈등 성격의 중동 국제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은 4월 1일에는 하디 행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까지 점령했다. 하디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망명.



5월말, 오만의 중재로 미국과 후티반군이 협상을 했으며, 6월 14일 제네바에서 정부 측과 후티 반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개시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선 남북 재분할 얘기도 나온다. 완전 재분할은 아니고 상징적 대통령을 두는 느슨한 연방제라는 전망. 


사우디군이 병력을 계속 예멘에 투입하고 있으나, 게릴라전을 하는 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역으로 사우디 지잔 주를 공격해 사우디 AMX-30을 노획하는 후티 반군


후티의 게릴라 전술에 크게 데인 사우디군은 공격 헬기까지 투입하여 반군의 기갑부대를 격파하고 마리브 주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은 결국 사우디 내륙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처음엔 지잔 주 가 돌파당하고 뒤이어 반군이 아시르 주로 진군 중이라 한다.


게다가 아시르 주의 군사기지 한 곳을 사실상 무저항으로 후티 반군에게 내줬다고 한다. 교전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죄다 도망을 쳤다는데 마치 ISIL에 맞서 졸전을 면치 못하던 무능한 이라크군을 보는 듯하다. 만약 이들을 몰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내전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역시 이슬람 국가들의 군대는 선전만 잘하지 실제론 당나라 군대다.


2016년에도 내전은 지속되고 있고, 예멘은 완전히 실패국가가 되어버린 상태다. 국민들은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도 없이 고통받고 있으며, 지긋지긋한 종파 간 갈등과 내전은 1년 넘게 끝나지 않고 있다. 내전에서의 사망자는 6400명이 넘어가고,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은 70%에 달한다.


내전에 휩싸여 비참한 처지에 놓인 예멘을 취재한 미니다큐.


이런 상황 속에 2016년 4월부터 정부군과 후티 반군간의 평화협상이 쿠웨이트에서 논의되고 합의되었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져 가는 와중에도 2016년 5월 29일, 샤브와 주에 주둔한 정부군을 반군이 기습해 정부군 20명과 반군 28명이 전사하는 등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2016년 5월에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세력이 움츠러들고 있는 ISIL이 시리아와 예멘에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아덴에서 사망자가 최소 45명이 발생했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신병훈련소를 겨냥해서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민 시아파 반군 후티의 고위급 인사의 부친상이 열리던 사나의 알쿠브라홀을 두 차례 공습하였는데, 장례식 폭격으로 인한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크게 일어나자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어서 사우디가 이를 예멘 장례식장 폭격을 오폭으로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죄없는 어린이들은 37만 명 영양실조·아사 위기라고 말했다. 5세 이하는 무려 31%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예멘은 2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 부상자가 4만 명에 달했다 게다가 콜레라까지 번지면서 115명이 죽고 8,500여 명의 감염자가 발생되었고 한 달여 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600명에 달하고 감염자도 7만 명에 달했다. 결국 예멘은 콜레라가 확산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예멘에서 콜레라가 확산되자 다른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예멘에서는 한달반만에 콜레라 사망자가 1천 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2달 만에는 사망자가 1,500명에 달했고 이 중 25%가 어린이들이었다. 게다가 콜레라 의심 환자가 30만 명을 넘으면서 점점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치닿고 있다. 그리고 2017년 8월 30일에 폭우와 홍수로 15명이 사망하면서 콜레라확산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7월 27일에 예멘 반군이 쏜 미사일이 메카(!)인근에 떨어졌다. 


그리고 2018년 1월 30일에는 예멘 반군 후티가 리야드의 공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2월 1일에 사우디군은 부인했다. 


최근(2017년)에 예멘을 통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 부유한 걸프국가들로 이주하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 중에 민간인 10,000명 이상이 숨졌고 이 중 1,000명은 어린이였다. 


 예멘 타이즈에서 반군의 포격으로 어린이 4명이 숨졌다.


 예멘군이 알카에다의 거점도시 마파드를 점령했다.



2017년 11월 6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동맹군이 예멘의 육해공을 봉쇄하였다.# 이 봉쇄조치로 가뜩이나 열악한 예멘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후티 반군은 봉쇄에 반발하며 사우디와 UAE에게 보복하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유엔의 예멘 민간인 구제는 허용하여 유엔이 사우디군의 통제하에 있는 예멘의 사나 공항을 이용하도록 허가해주었다. 물론 그외에는 전부 봉쇄했다.#


그리고 12월 4일, 후티 반군은 사나에 머물고 있던 '''살레 전 대통령에게 헤드샷을 날려 처형했다. 살레 전 대통령과 후티는 한때 한 배를 탔었으나, 이후 결별했다. # 후티 반군이 살레 전 대통령을 처형한 이유는 후티의 적국을 도와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동맹을 제안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줄타기를 시전했다는 것이었고, 결국 후티의 화를 자초하여 자신이 이끄는 무장단체, 지지자들과 함께 사이좋게 처형 당했다. 꼴 좋다!


예멘은 내전중에 콜레라에 이어 디프테리아(!)까지 확산중이라서 10명중에 1명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보건시설은 55%가 파괴되면서 의약품공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8년 1월 28일에는 예멘 정부를 돕던 분리주의 세력이 임시정부청사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되었고, 예멘 정부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아덴전역에서는 분리주의진영의 시위가 일어났다.# 거기에다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은 1월 28일에 아덴의 정부청사를 정부군과의 전투끝에 점령했고 1월 29일에는 병력을 증파하는 등 남예멘 분리주의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덴에서 정부지지자들과 남부분리주의자들이 충돌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예멘 정부군과 남부 분리주의세력간에 교전이 일어나자 아흐메드 빈다게르 총리는 사우디로 도피할려고 하고 있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은 사우디로 피신했다.# 결국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중재를 위해 대표단을 아덴으로 파견했다.#


2018/06/22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및 종파 갈등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멘 난민] 예멘 풍습 : 조혼이 잦은 나라..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 난민] 예맨 내전 : 1인당 4정의 총기 보유

2018/06/21 - [실시간 핫이슈] - [예맨난민]도대체 예맨이 무슨 문제야..?



2018년 2월 3일에 사우디주도의 아랍동맹군이 예멘 반군을 폭격하면서 군사시설, 학교, 민가 등을 표적으로 삼아 어린이까지 대거 희생되었다.#

2018년 4월 11일에 후티 반군은 전투용 드론으로 사우디 남부 국경지대의 공항과 석유시설을 공격했다.# 그리고 사우디군은 2018년 5월 7일에 예멘의 사나에 위치한 옛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2018년 5월 3일 아랍에미리트가 뜬금없이 자국 군대를 파견하여 소코트라 섬을 점령했다.# 시아파 반군 후티에 맞서 원 정부인 하디 정부 편을 들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온 아랍에미리트는 2017년 말부터 하디 정부에서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으로 편을 갈아탔고 이 분리주의 조직은 2018년 초 하디 정부를 몰아내고 임시 수도였던 아덴을 장악했다. 아랍에미리트가 군대를 파견하면서 공항, 항구, 정부 관공서 등 주요 시설에 게양되고 있던 예멘 국기를 내리고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내걸었으며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정부에게 소코트라 섬의 99년 기한의 조차를 주장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남예멘 분리주의 조직을 지원하여 예멘 정부가 자국군의 행동에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든 후 소코트라 섬을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로 영구히 합병할 속셈인 듯하다.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의 소코트라 섬 점령이 예멘의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비난했으나 본토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신경쓰느라 바쁜 하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는 이런 행각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2018년 6월 13일 사우디 주도의 아랍 연합군과 예멘 정부군은 후티의 물류 요충지인 호데이다 항구를 탈환하기 위한 대공세에 들어갔다.# 그래서 하루만인 6월 14일에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 남부의 나킬라 마을을 탈환하였고#, 6월 16일에 호데이다의 공항을 완전히 포위하고 공항의 후티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6월 19일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군과 호데이다에서 격전을 벌였지만,# 결국 예멘 정부군과 아랍 연합군은 호데이다항구를 탈환했다.# 하지만 호데이다 전투가 확장되면서 시민들중에는 피난을 떠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멘 내전이 길어지면서 미국은 내전에 개입(!)을 시사했다.# 예멘은 의료기관 등의 붕괴로 콜레라가 확산되었는데 새로운 콜레라(!)가 확산될려는 조짐을 보이자 사나 정부는 살충제를 살포했다.## 그리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예멘내 직원들의 안전문제와 위협때문에 결국 직원들을 철수시키기로 밝혔다.# 그리고 프랑스도 6월 16일에 예멘에 특수부대를 파견돼있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내 주변에는 외국인 친구들이 많고 직업 특성상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 친구들이 많다.


동남아시아에는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친구들이 많이 와있어서 대화할 기회가 많다,


예맨 난민 제주도...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많은 아프리카 중동 친구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예맨난민과 여성인권 차별을 조장하네.. 이런 기사를 쓰기 전에.. 


제발 예맨이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무슬림이 어떤 종교이고, 

그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나가서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고? 사는지를 좀.. 봤으면 좋겠다


직접적인 무슬림에 대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말했다.


그사람들은 돈 금방 모아. 길에서 자고, 음식 주워서 먹고 하면서 돈 금방 모아서 집 한칸 마련하고, 

작은 비지니스 시작하고, 서로 같은 종교인 사람들 도와주고,

애도 엄청 많이 낳아. 진짜 많이 낳아.. 


숨어 있는것 처럼 보이고, 불쌍한것 처럼 보이지만 정신 차려보면 어느 순간 그사람들은 너네 나라 곳곳에서 

아주 잘 살고 있어. 그리고 때가 되면 자기들 종교와 문화를 강요할거야.


그리고 그게 안먹이하면.... 어떻게 될지 주변을 잘 돌아봐.


무슬림이 위험한건 자기들 종교와 생각이 다르면 죽여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고

종교는 단순 종교가 아니고 문화와 생활 습관 등등이 다 포함되어 있어.


그 사람들 맨날 라디오 들고 다니면서 들을꺼야.


너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들 끼리 한순간 어느 지역에 몰력 가서 테러 시작할지도 몰라.


한번 발들이면 절대로 안없어져.. 


우리나라 XX지역도 그사람들이 와서 다 사람들 죽이고 있어... 

 



기사 쓴 분들.. 무슬림 사는 지역, 한국에 무슬림 모여사는 지역이라도 상관 없음.

거기에 본인 딸 자식, 없으면 누나, 여동생, 아니면 여자 조카라도 보내서 살게 하실 수 있으면 인정!! 




예멘은 돈을 받고 어린 소녀를 결혼시키는 조혼(早婚)이 잦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보니 교육 수준이 낮은 데다가 설사 교육을 받는다 해도 좋은 직장은 구하기도 힘들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지참금을 받고 딸을 일찍 시집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1980년대까지는 결혼 최소 연령을 15세로 지정했지만, 1990년대 이후 ‘딸의 결혼 시기는 부모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해당 법을 무효화했다. 


예멘 보건사회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5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은 전체 여성의 25%에 달한다 한다. 때문에 이런 일도 있다. 


예멘의 소녀 신부 대부분은 성숙 연령기에 이를 때까지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예멘에서는 가난한 가족의 경우 어린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거나 결혼 대가로 신랑 측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어 딸을 조기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조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세계일보]조혼 악습 이어지는 예멘…12살 할리마의 꿈은 이뤄질까?


미국 CNN방송은 예멘에서 18세 이하 전체 소녀들 중 3분의 2가 카파처럼 조혼에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양가족을 최대한 줄이고, 딸을 결혼시키면서 사위로부터 지참금을 받을 목적으로 조혼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둘라도 카파를 결혼시키고 2000달러를 받았다.


예멘의 대표적인 악습인 조혼은 내전으로 경제가 황폐화되면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현재 예멘은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걸프 동맹국들 간의 공방전이 지속되면서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다. 시민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나딘 드러먼드 대변인은 “최근 음식 가격이 200% 오르는 등 생활비용이 최소 33% 이상 치솟았다”며 “많은 소녀들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 예멘에서는 200만여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 상태이며 100만여명이 콜레라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사우디 걸프 동맹국 등이 예멘의 국경을 폐쇄해 국제기구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원조가 끊기면서 인도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위기에 내몰리는 건 예멘 사회에서도 약자인 여성, 그 중에서도 10대 소녀들이다. 예멘은 결혼 제한 연령을 법에 명시하지 않은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다. 할리마의 아버지 압둘라는 “아이의 꿈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전쟁이 벌어지고 로켓이 매일 내 머리위를 지나가고, 집이 무너지고 있는 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CNN은 예멘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조혼 근절은커녕 오히려 결혼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메리트셀 렐라노 유니세프 예멘 지역 대표는 “조혼하는 소녀 중 44%가 15세가 되기도 전에 결혼하고 있다”며 “이제는 9세 아이들까지 결혼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계속된 공습으로 1600여개의 학교가 폐쇄되는 등 200만여명의 예멘 아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잃고 있는 등 할리마의 꿈이 이뤄지기 어려운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방송은 여전히 할리마가 긍정적인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할리마는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 11, 12, 13살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있어요. 친구들의 미래는 좋지 않아요. 우리도 자라서 선생님이나 의사가 될 수 있고, 22살이나 25살에 결혼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좋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In the past, Yemen had a title of democratic country in the Arab world. 

2018/06/21 - [Hot Issue / Real Time Hot Issue] - [Yemen Refugees] What is the problem with Yemen?



There are a few electoral systems and the protection of individual human rights, including women, is relatively good compared to other Arab countries. So far, it looks good, but ironically it is not. 


High unemployment rate + corrupt system + Western democracy = government lack of legitimacy. 



In fact, the election system is fairly formal, with 111 senators appointed by the president, and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in the 2003 general election, with 238 seats in the House seats of 301 seats, with 226 seats (precisely 226 seats) And 12 independent lawmakers joined the GPC shortly after the election). In the 2006 presidential election, Salle won 77.2% and the opposition candidate won only 21.8%. 


Since then, there has been no election with a competition even in nominal terms, and this is about 10 years ago. Now it is time to protest against the democracy movement in the Arab world, largely oppressing the people as a whole, and after the coup The democratic rights of the people are shrinking and the instability is maximized on the trains of Syria and Libya.


In other words, the government is not a government. The Yemeni government's control has been weakened by a variety of forces including Saudi Arabia's Whakai, local tribes, and Al Qaeda. In addition, there is chronic water shortage due to the large amount of water required for mass cultivation of the traditional symbolic psychedelic cultivars (قات, Khat).


In the end, the government is merely controlling the "lines and points" of all major roads, oil fields and pipelines. Colonel Bob Adolf, UN Security Officer, said that the Yemeni government has only 50 percent of the country's control. In fact, if you look at the situation now, it's probably 50%



When oil was blown up and became oil-producing, it was expected that it would be able to overthrow the feudal chieftains. The oil has entered the bribery income of the chiefs and has not achieved the development of the country, and it is still unable to leave the title of being the poorest country in the Arabian peninsula.


According to the Japan Travel Safety Site, Yemen is the country where the whole country is painted red with countries such as Somalia, Afghanistan, Central African Republic, Libya, South Sudan and Syria.


According to the vulnerable country index, Yemen is the fourth most unstable country in the world

2018/06/21 - [Hot Issue / Real Time Hot Issue] - [Yemen Refugees] What is the problem with Yemen?



The first is legendary legend, not Somalia. If you do not feel it, you can see that Syria is the 6th and Iraq is the 11th.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살레가 실각한 후에도 사회 혼란은 지속되어서, 북부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준동하고 있으며 남부에서는 남예멘의 재분리를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침투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살림을 차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안정을 위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나, 부족주의 성향이 강한 예멘 특성상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듯하다. 오죽하면 제2의 시리아가 되어간다고 할까. 거기에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스티븐 오브라이언 국장은 예멘이 모든 면에서 붕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혼란스러운 역사와 막장인 정치 상황 때문에 1인당 4정(4인당 1정이 아니다!) 꼴로 총기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1980년대 남예멘에서는 귀찮은 협상이나 투표가 아니라 '총질'에 의한 개각을 시행하려고 했을 정도. 대통령 경호원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는데, 더 황당한 건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장관들의 경호원들도 무장 중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 측 경호원들vs장관들+장관 경호원들 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거기다가 장관들이 죄다 족장들이라 수도 시내로 총격전에서 확대되어 전투가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잘 조직되고 정부 경찰 제복으로 위장한 6명의 테러리스트가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었다. 물론 위험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은 요새화가 되어 있으므로 미국 대사관 테러는 실패했고 애꿎은 예멘 정부군만 다쳤다.


이렇게 개막장인데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많은(연간 2.8%) 나라다.

2018/06/21 - [Hot Issue / Real Time Hot Issue] - [Yemen Refugees] What is the problem with Yemen?



This rate doubles the population 25 years later. The population was 2000 million in 2005, and in 2011, six years later, it was 2,383,000. Yet this level is much better, and at one time it had the title of the country with the highest fertility rate in the world, with a total fertility rate of 9. [24] Now it has been reduced to 4-5 people. The problem is that Yemen is a poor country, and if this population grows, there will be no burden on the nation.


With the Tunisian Revolution, the entire Arab region was swallowed up by revolutionary enthusiasm. 


In Yemen, Egypt and Libya, along with a representative example of regime abduction. The revolution in the Arab region is led by young people under 30 who make up 40% to 50% of the total population. In Yemen, the population below 30 is 75% of the total population!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many Muslims have banned contraception and gave birth to a large number of children. Many of the countries have a huge population growth rate, and many young people are contributing to the expansion of the revolution. 



예맨 난민이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예맨, 무슬림? 도대체 뭐야? 한국인에겐 너무나 생소한 국가이고 종교입니다.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예맨...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 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부터 부유한 예맨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위낙에 중간에서 빼돌리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축복받은 아라비아의 칭호는 한낱 동쪽 어촌들이었던 곳들에게 물려주고 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예맨 으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주 고대에는 사바 왕국이 존재했으며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이후에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지고 한동안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되는 등의 역사를 겪었다. 7세기에 예맨은 이슬람화가 이루어졌으며, 1517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 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


1918년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 예멘이 먼저 독립했다. 북 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은데,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참여하는 아랍 연합 공화국에 준가맹했다가 1961년에 예맨은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살레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


한편 남 예멘은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후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아덴은 제외),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독립하여 공산화되었다.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2년 전면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1달도 안 되어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1973년과 1979년에도 전쟁이 일어났다.한국으로 치면 한국 전쟁이 3번이나 터진 셈.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둘 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 좋은 개도국이었던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 결국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하에 1990년 5월 남북 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그냥 문서에 사인하고 '통합 좋지~' 하는 분위기가 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루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력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을 했지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내전이 발발하면서 북부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남부는 정부군이 장악한다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활개치는 한편,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무장봉기를 일으킨 상황. 여기에 외세의 개입(사우디는 정부군,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은 UAE)은 덤.


이런 배경 탓인지 냉전 시절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북한학이나 통일 관련 정치외교학 쪽에서는 베트남 분단이나 독일 분단에 비해 남북 분단의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적다. 다만 통일 후 내전이나 갈등 폭발 가능성 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예멘은 국민의 38%가 절대빈곤에 처한, 아랍 국가 중 최빈국가이다. 


이는 내전과 테러리스트들로 인한 치안 불안도 있고, 석유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족장들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쓰이는 까트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어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보다 압도적으로 잘 산다는 점과 많은 예멘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잘사는 나라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감을 생각하면 사실 까트만이 예멘이 가난한 원인은 아니다.

또한 통일을 하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 경제 지원을 해서 둘의 경제가 대등한 수준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하지만 예멘은 통일만 했다뿐이지 그런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아 빈부의 상황이 기형적이었고(공산주의국가였던 남예멘만 기형적으로 못살았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경제는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A deadly 6.1 magnitude earthquake rocked the Japanese city of Takatsuki, in the Osaka Prefecture, in the early hours of Monday morning.


In the video, cars on a busy motorway shook as the powerful quake hit the city, with lampposts shaking side to side.


The Japan earthquake struck at around 7.58am local time (11.58pm UK time) forcing local airports to close for several hours.


Train lines in the area were also interrupted and factories were forced to halt production.





Local authorities confirmed there was no tsunami warning and nuclear plants in the area are operating normally.


The tremors measured magnitude 6.1 on the Japanese earthquake scale and trackers at the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USGS) measured the quake as magnitude 5.3.


A nine-year-old girl and an 80-year-old man were killed by collapsing walls and a third elderly man in his 80s died under a fallen bookcase.


More than 200 people were reported to have been injured.


Several people were trapped in elevators and roads were cracked with broken pipes spilling water.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pledged to deal with the fallout of the earthquake, which has left at least 100,000 Osaka prefecture residents without gas, quickly and effectively.





He said: “The government will act as one to deal with this earthquake in Osaka, making human life the top priority.


“The first step is moving quickly to bring damage under control.”


Authorities warned residents to brace for potential aftershocks in the following days.


Government spokesman Yoshihide Suga said: “Large-scale quakes are likely to happen in the next two to three days.”


The Japan Times reported around 170,000 homes have been left without power and more than 100,000 houses were without gas supplies.


Japan was last struck by a major magnitude 9.0 earthquake on March 11, 2011, when tremors out in the Pacific caused a devastating tsunami.


18일 오전 8시쯤 일본 오사카 일대에서 규모 6.1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192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오사카에서 일어난 지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4명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다쳤으며, 신칸센은 산요 신칸센과 도카이도 신칸센의 일부 구간에서 정전이 발생해 열차 운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그동안 비교적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됐던 오사카 일대를 덮친 강진으로 이날 오전 오사카 도심은 일시 마비됐습니다.


오사카는 작년에만 한국인 241만여 명이 방문한 주요 관광지이자, 인구 880만 명이 모여 사는 일본 제2의 대도시입니다.  


이번 지진과 관련해 오사카 총영사관 측은 현재까지 확인된 교민피해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앞으로 일주일 안에 다시 강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한편, 일본 오사카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몇 시간 뒤 태평양 건너 과테말라에서도 규모 5이상의 지진이 일어나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불의 고리’가 다시 활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 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후 8시 32분 과테말라 남서부 도시 에스쿠인틀라에서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했다 합니다.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국가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 뉴질랜드 등 태평양의 여러 섬, 북미와 남미 해안까지 총 4만여㎞에 이르며 고리 모양의 지진·화산대로 세계 활화산과 휴화산의 75%가 몰려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