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학력/정치입문

2019. 3. 27. 16:36

대한민국의 전직 방송인이자 정치인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 중 한 명으로, 민주당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여성 의원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의 제17~20대 국회의원이며, 지역구는 서울 구로구 을 지역이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비례대표)으로 당선된 이후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최고위원, 제19대 국회 법사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재벌개혁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지난 2013년 법사위원장 시절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중소기업계와도 인연을 갖고 있다. 

 

박영서 젊은 시절

 

또 지역구인 구로구 을의 경우 서울 최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디지털단지가 있어 중소 및 벤처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나름 높은 편이고 2011년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지키는 의원 모임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어 중소벤처기업부의 초대 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초대 중기부장관 자리는 홍종학 전 의원에게 내주었지만 그 이후에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며 굵직한 역할을 이어갔고, 2019년 3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중기부장관으로 내정됐다.

 


박영선 학력

1960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아버지 박정서와 교사이신 어머니 슬하 2남 1녀 중 첫째로 출생했다. 열 살 무렵 서울로 상경 후 예일초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수도여자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에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곧 보도국으로 발령이 나서 기자로 전직했고 입사 5개월 만인 1983년부터 MBC 뉴스데이트를 맡았다. 1984년 10월부터 85년까지 여기는 MBC의 진행을 맡았다. 

 

1985년에 결혼을 하고나서는 미국으로 잠깐 유학갔다가 1987년부터는 귀국해서 기자로 일했고, 90년대 초반에 MBC 마감뉴스의 앵커직을 맡았다. 

 

박영선 앵커 시절


그리고 1993년부터 95년까지 MBC 뉴스와이드의 앵커직을 맡았다가 미국 LA 특파원으로 발령이 났고, 1997년에 다시 귀국하여 MBC 뉴스센터 500의 진행을 맡았다가, 1998년 9월 19일부터 1999년 12월 26일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직을 맡았으며, 2000년에 피자의 아침-MBC 아침뉴스 앵커직을 맡았다. 2000년대 초에는 '경제매거진'의 진행을 맡으면서 MBC 보도국 경제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LA특파원 시절에는 미국 영화인협회 등록 외신기자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방송에서 배우와 유명 감독들을 대면하면서 알게 된 그 이면을 소개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따뜻한 눈빛, 메릴 스트립의 차가운 시선. 이렇게.
 


박영선 정치 시작

2004년 초에 MBC에서 퇴사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고 그해에 공천을 받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과 첫 여성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를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려 하였으나 무소속 박원순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한 경선에서 박원순 변호사에게 패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평판은 괜찮았고 의정 활동도 우수했기에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그에게 대놓고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노골적으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김태호 전 의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낙마시킨 일등 공신이기도 해 보수 진영에서 박영선 의원은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이 때 박영선의 행적을 보면 반대 진영에 있었던 전여옥과 행적이 상당히 비슷하다. 전직 언론인인 것까지. 사실 다른 점도 적지는 않은 게, 박영선은 지역구 관리는 기막힐 정도로 잘해서 나름대로 정치인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조인. 박근혜 정부 초기 제55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가 불과 1주일도 안 된 2013년 3월 21일에 성접대 논란으로 사퇴했다. 건설업자의 주선으로 강원도 별장에서 젊은 여성들과 난교를 벌였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에, 중국 수호지식으로 누리꾼들이 그에게 붙여준 4자 애칭은 다름 아닌 '별장난교 김학의'.



1956년 8월 2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97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80년에 졸업했다. 군대를 면제받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 재학중인 1982년에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984년 사법연수원을 제14기로 수료했다. 연수원 동기로는 김진태 전 검찰총장,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이 있었다.


검찰 재직 시절에는 업무 처리가 깔끔하고 원만한 성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수원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을 거치는 등 공안 쪽 업무를 많이 맡았지만, 임관 초기엔 대검 중수부 연구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하기도 했다. 



탁월한 리더쉽으로 안정적인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 받았으며 친화력과 대인설득력이 뛰어나 상하간 대인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하를 편안하게 대해주는 편이어서 부하들 사이에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기획력 역시 돋보이는 수준이었으며, 춘천지검장 시절 직접 제작한 파워포인트로 CEO식 특강을 펼쳐 검찰 내에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선 독점규제법 전문가로도 정평이 나있었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2010년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제28대 인천지방검찰청 지검장을 지냈고, 2011년 8월부터 2012년 10월까지는 제41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는 제20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이렇듯 한때는 '대한민국 검찰청의 정통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검찰 내에서 촉망 받는 인재였다. 



2013년 초에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후임 인선을 위한 1차 후보군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천거한 최종 3인의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그때 만약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래서 옷을 벗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2013년 3월 15일 제55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어 극적으로 재기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보다 연수원 기수는 한 기수 아래여도 경기고등학교는 한 해 선배인 동문이었기 때문에, 장관과 차관 둘 다 경기고 출신의 공안통이라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자마자 법조계 고위층 성접대 동영상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다.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강원도 원주시 별장에서 이뤄진 은밀한 성접대 장면이 촬영된 문제의 동영상을 입수했는데, 여기에 김학의가 등장하였던 것.  


사실 이 동영상은 건설업자 윤중천의 아내에 의해 윤중천과의 간통 혐의로 고소되었다가 오히려 윤중천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사업가 권 모씨의 사건을 수사하던 와중에 발견된 것이었다. 경찰이 입수한 동영상 화면에는 상의 속옷 차림에 하의를 탈의한 중년 남성이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을 부르며 여성을 뒤에서 안고 노래 부르다 낯뜨거운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김학의 차관을 접대했다"고 직접 진술한 상황이었다. 별장에서는 각종 음란비디오와 쇠사슬, 채찍 등이 발견되었고,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은 모두 30명이며, 그 중 5명은 대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윤중천 역시 김학의가 원주시 별장에 왔다 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사진 참조 게다가 영상도 워낙 고화질이라 화면 속의 남자가 김학의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음성분석 전문가인 모 교수도 김학의와 95% 동일인이라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이에 경찰은 법무부에 김학의 차관의 출국금지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건설업자가 사업 관련 이권을 따내기 위해 검찰 고위직에게 향응을 제공한 것 자체도 큰 문제였지만, 건설업자가 이를 위해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협박하고 강제로 창녀짓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 


피해 여성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완전히 선의로, 장차 모델이나 의류 관계 일 같은 걸 해보고 싶다는 그런 꿈을 갖고서 윤중천을 만난 여대생들이었는데, 윤중천이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없이 순전히 폭력과 협박으로 최음제를 먹이고 성접대를 강요했으며, 동영상까지 무단촬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학의는 이러한 사정을 다 알 수 있었을 텐데도 태연하게 그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한번도 아니고 강원도 원주시와 서울 등지에서 수차례나...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여성들에게 윤중천이 마약을 먹인 정황도 포착됐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경찰은 윤중천의 강원도 별장에서 유력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진술한 여성 3명의 머리카락을 뽑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는데, 분석 결과 여성 1명의 모발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의 머리카락에서도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검찰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성상납 받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마약 먹은 여자와 몸을 섞었는데도 이를 전혀 몰랐거나, 여자가 마약 먹은 걸 알았을 텐데도 그냥 눈감아 주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


이에 김학의는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한 뒤, 2013년 3월 21일 법무부 차관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후일, 2019년 3월에 들어서야 박관천 전 경감은 이 사건이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알고 있고 공직기강비서관실도 이를 여섯 번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부담이 가는 수준이라 임명이 강행되었으며, 이 배후엔 최순실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전·현직 군장성, 미군 간부도 별장 접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출생: 1958년 충북 보은

학력: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경력: 간부후보 30기, 경남경찰청 수사과장, 충북 진천경찰서장, 인천경찰청 수사과장,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장, 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기획수사심의관, 경기경찰청 제2부장, 경찰청 수사국장, 대전지방경찰청장, 경찰청 보안국장,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인천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이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이다.


경찰 경력 대부분을 수사 분야에서 보낸 수사통


충북 출신으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고, 1982년 경찰 간부후보(30기)로 임용되면서 경찰에 입문했다.


총경 시절 경찰청에서 특수수사과장·과학수사센터장·형사과장을 거쳐 경무관으로 승진해서 경찰청 기획수사심의관으로, 치안감으로 승진해서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재직하는 등 수사경찰 생활이 경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가 2015년 12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임명되어 2016년 9월 23일 퇴임하였다.



이상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력을 요약해보면 제52대 진천경찰서 서장, 제31대 서울 은평경찰서 서장, 경기지방경찰청 제2부장, 제5대 대전지방경찰청 청장, 경찰청 보안국 국장,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제27대 인천지방경찰청 청장, 경찰청 처장 등을 거쳐 지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제31대 서울지방경찰청 청장을 지냈다.


요즘 가장 핫한 뉴스, 빅뱅 멤버 승리와 가수 정준영 등이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언급된 ‘경찰총장(경찰청장·검찰총장 오기)’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13일 민갑룡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가 공개한 카톡 대화방 내용에 따르면 대화 참여자 중 한 명은 2016년 7월경 “옆 업소가 우리 업소 내부를 사진 찍어 신고했고, ‘경찰총장’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사실 정확하게 ‘경찰총장’으로 불리는 직급은 없으며, 썼다면 두 가지가 의심된다. 경찰청장 그리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인데, 그때 당시의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네티즌 사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승리라는 가수에 대해 일면식도 없고 알지 못한다’고 반박했지만 이상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언론사의 연락에 ‘조금 이따 연락주겠다’하고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곧, 이상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참 황당하다. 그들과 일면식도 없고 알지도 못하고, 버닝썬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며 "강남에서는 근무를 하지 않았다. 본청(경찰청)에 주로 있었고, 서울청에는 청장하고 은평서장 두 군데 있었다. 그쪽하고 연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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