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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은 충남 온양(지금의 아산시)의 육군 제13연대에 사병으로 배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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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방정국의 혼란 때문에 당시 군대는 악폐습, 똥군기라는 설명으론 가히 표현이 부족할 만큼 개판이었고 결국 가혹행위를 못이겨 불침번을 서던 와중에 탈영해버렸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 동기생의 자취방에 얹혀 살게 됐다. 한심한 처지의 울분을 억누르며 지내던 중, 해방이후 국도극장(國都劇場) 으로 이름을 바꾼 옛 황금좌 극장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와 마주쳤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극장 매점에 있던 교도대 중대장을 찾아가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재입대를 부탁했다(????????). 워낙에 탈영이 흔하던, 전쟁 이전 시절이라 중대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국 육사 교도대에서 다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김종필을 눈여겨 보던 중대장이 그에게 육사 입학을 권유했고 그렇게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리고 8기생 졸업식에서 우등상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때 1,300여명의 8기 졸업생들 중, 단 32명만이 육군본부로 배속됐는데 김종필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김종필은 정보장교로 배정 되어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북한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여기서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던 장도영, 전투정보과장 이후락, 정보국 선임하사 박종규, 전투정보과 상황실장 박정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박정희는 육사 2기로 임관하여 현역 소령으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과장으로 재직 중 남로당 입당 전력이 들통나서 김창룡이 주도한 숙군 작업으로 파면당한 후 장도영의 전임 정보국장 백선엽의 도움을 받아 문관 신분으로 직제에도 없던 정보국 상황실장 직을 맡고 있었다. 정보국으로 배치된 육사 8기생들에게 전투정보과장 이후락이 상황실장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했는데 박정희는 현역 장교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나한테는 인사할 필요 없다"라며 자리를 피해 버렸지만, 이후 박정희와 육사 8기생들은 서로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고 결국 이들은 쿠데타의 주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박정희의 중매(?)로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큰딸 박영옥과 결혼한다.



김종필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던 박영옥은 서울에 있는 유일한 친척이자 작은 아버지인 박정희를 자주 찾아오며 의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김종필도 안면을 익히게 됐고, 어느날 불쑥 "자네, 내 조카딸 어떤가?"하고 박정희가 말을 던졌다. 당시로서도 나름 미인이던 박영옥을 김종필이 싫다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김종필은 박정희와 처삼촌-조카사위라는 인척 관계로 묶이게 되었고 이후 박정희는 김종필을 조카사위 입장에서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거의 항상 임자라고 불러댔다


[데일리한국] JP(김종필 전 총리)와 박영옥 여사의 '잉꼬부부' 이야기



한국전쟁 무렵, 당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유양수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정보국장 장도영에게 찍히는 바람에 6사단 정보참모로 떨려났고 전투정보과 북한반장 백모 대위는 북한과의 무역거래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나면서 처벌받기 직전 권총으로 자살하는 등, 전쟁을 앞두고 김종필이 소속된 전투정보과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반의 선임 장교가 된 김종필은 이미 전선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북으로 정찰요원을 급파했지만 전원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개전 당일(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의 당직장교로 근무하던 김종필은 북한군이 38선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전면전임을 직감하고 육본의 각 국장 들을 호출했다. 아울러 채병덕 총참모장 및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전파하는 등 당직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당시 상황은 일개 중위였던 김종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후 1951년, 대위로 진급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장교단에 뽑혀, 조지아 포트 베닝(미 육군 보병학교)에서 연수를 수료했다. 김종필은 한국전쟁 후반부인 1952년 8월부터 53년 5월까지, 6사단 19연대의 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계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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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거물인 3김 중 하나.

영원한 2인자, 원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인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직 군인. 약칭은 JP.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이며 안경공 김영정의 증손인 해녕부원군(海寧府院君) 김희철(金希哲)의 방계 후손이다. 1926년 1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운정(雲庭)이다. 40년 이상 정치가로 활동하며 여러 정부에서 국무총리만 6년 반을 지냈다. 굳이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정치가.


한고제에게는 소하, 장량이, 유비한테는 제갈량이, 조조에게는 순욱이, 태종에게는 하륜이, 세조에게는 한명회가 있다면 박정희에게는 김종필이 있었다. 이른바 삼김시대의 삼김 중 한 명으로, 김대중이 2009년, 김영삼이 2015년에 숨을 거두면서 유일한 생존자였으나, 2018년 6월 23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만 92세)


둘째 형 김종익도 3선 국회의원을 역임, 셋째 형 김종락은 한일은행 지점장, 전무를 거쳐 무려 14년에 걸쳐 대한야구협회장을 지냈다. 


이른바 3김(金)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는데 2009년 김대중, 2015년 김영삼에 이어서 2018년 가장 고령이었던 김종필마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서 이들의 정치 데뷔 반세기만에 3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김 시대라 불렸던 이들도 결국은 사람이라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도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을 버리고 안락한 2인자를 선택해 9선의원과 2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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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재임하는 모습에 대해 아예 대위를 사단장에 임명시킨 꼴이라며 혹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말에 젊은 혈기가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2004년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행정수도 이전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외에는 인간미가 있고, 순진한 모습이 남아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이나 이인제 등을 저격하며 중립을 지켜서 '음지에서 노무현을 지원사격했다' 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평소 받았던 평가 그대로, 노무현의 다혈질을 두고 우려를 많이 표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 자질을 키우지 못하고 적만 만들다 일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비평했다. 김대중은 그 선을 잘 지키는 정치 프로였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


2016년 11월 3일 시사저널의 경영자 및 기자와 김종필 간에 있었던 대화가 11월 14일 기사화되어 보도되었다. 기사의 주요내용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지만 박근혜의 고집센 성격상 하야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육영수에 관한 뜻밖의 내용도 있어서 계속 다른 언론사에 인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종필은 육영수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것일 뿐 실제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며, 육영수의 실제 성격은 대중에게 알려진 온화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 4월 이재오가 김종필을 예방했을 때와 5월 홍준표가 서울 청구동 자택으로 문안인사를 왔을 때 문재인에 대해서 인신공격적인 언행을 남겼는데 베라먹을 자식(빌어먹을 자식), 그깟놈은 대통령 될 자격도 없어라고 말하여 문재인에 대한 증오와 배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물론 이재오와 홍준표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하였던 것이었지만 이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문재인의 정치적 성향을 증오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어보이나 본인이 군부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편이기 때문에 문재인 같은 성향의 인사를 싫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종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노무현 등의 정치인에게도 좋게 평가한 전례가 있어서 저렇게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오와 홍준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각각 자네같은 각오로 정치를 해야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통 책임감이 없어.(이재오에게 한 말) 자네는 정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관상이야, 자네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지, 나는 (홍준표 자네를)지지하겠다(홍준표에게 한 말)고 공개적으로 홍준표 지지를 표하였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인지 투표는 하지 않았다(!?) 또한 19대 대선에 출마한 늘푸른한국당의 대선후보이자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도 김종필을 예방했는데, 이재오 앞에서도 문재인에 대해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더 말하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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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뜻과 멋을 모두 갖춘 절묘한 사자성어로 덕담을 해줬을 JP가, 육두문자 수준의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김영삼, 이명박뿐만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내리며 덕담까지 했었기 때문.  실제로 JP는 다른 정치인에 대해서 특별히 험담하지 않았고, 상당히 차분한 어조로 평해왔던 편이다. 당장에 YS와 DJ가 사이가 좋지 않지만, JP는 YS와 DJ와 모두 가까웠고 두 정치인에 대해서 호평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그리고 과거의 정적들에 대해서도 본인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적개심들이 모두 씻어내려졌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해서 아무리 총리를 지낸 분이자 정치 원로라지만 특정 대통령 후보를 향해서 원색적인 비방을 하고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언행이야말로 선거법 위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홍준표가 낙선하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는 매스컴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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